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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_해당되는 글 139건
2009.12.24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 다시 서울로... 
2009.12.1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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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 다시 서울로...
+   [산골편지]   |  2009. 12. 24. 12:31  


 

 

 

2009년 11월

 

춘천에서 홈에 오시는 반가운 분들을 만나고 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굼벵이 엄니와 해담풀과 함께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하여 전철타기 알맞은 곳에 두 분을 내려드리고 나도 얼마 가지 않아서 내렸다.

초보농사꾼의 약속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나 역시 전철역에서 내린 것.


나의 다음 행선지는 서초동 교보문고이다.

내린 곳에서 서초동까지 그러니까 더 자세히는 강남역까지는 두 번이나 전철을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구두가 너무 아프다는 거.

 

 

 

 

 

전철을 타러 가는데 벌써 발이 아파 절룩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해 교보문고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두 번의 전철을 갈아타는데 왜 그렇게 많이 걷고 또 걸어야 하는지...
하여간 강남역 6번 출구라고 하여 나갔더니 거기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고 걷는 중에 두 번이나 물어야했다. 아무리 걸어도 안나와서...

어쩌면 발이 아파 더 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빌딩에 들어섰는데 책 냄새도 안풍긴다.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가니 계단이 나오고 세 층이나 죽으라 올라가도 계단...
나중에 알아보니 거긴 그 전체 건물의 비상구.


근데 왜 비상구 입구에 교보문고라고 써붙였을까나...발은 아파 절룩임의 정도가 도를 넘어 주위 시선을 둘러봐야 할 판국인데...

하여간 물어보니 지하란다.

 

지하에 내려가니 눈에 훤하게 책들이 들어온다.
그동안의 힘들이 다 날아가는 순간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망설이다 비닐 우산을 사서 나오니 몸만 젖은 길은 더 가을스러웠다.)

 

쳐다만 봐도 찰떡을 먹은 것처럼 뿌듯하고, 내 책꽂이가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침을 흘렸다.

이란 그런 거다.


사람 마음을 배부르게 하는 것.

 

움베르토 에코는


“책이란 숟가락, 망치, 바퀴 혹은 가위와 같아서 발명된 이후 더 이상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한참을 책을 보며 아이들에게 사줄 것을 적고, 내가 읽으면 좋을 책도 적고 신바람이 나서 책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초보농사꾼인데 밖에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는데 아느냐고?
모른다고요.... 지하라고요...^^

 

지금 비가 많이 쏟아지니 마천동 엄마에게 가기 어렵고,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 가까운 서초동 처형네로 가란다.
벗들과 만나 한 잔 하면서도 비가 쏟아지니 마누라가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귀농이 여러 사람 변화시킨다.

 

 

 

 

▲ (초보농사꾼의 소중한 친구들...)

나도 엎어지면 정강이 닿을 언니네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시누이 집에 잠깐 가신 어머님께 초보농사꾼이 전화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서울에 왔음을 눈치채시고 어머님이 집으로 오실텐데 내가 언니네 집으로 가면 부랴부랴 집으로 오신 어머님이 서운해 하실 것이다.

 

어머님이 내가 언니에게 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고 초보농사꾼이 전화를 해서 서울 운운은 하지 않았지만 며칠 전에 춘천에 가게 되면 서울로 갈지 모른다고만 했는데 어머님께 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시고 무지 서둘러 오실 것이다. 혹여 얘들이 밖에서 기다리나 ...별 생각 다하시고(우리가 어린 얜가??) 서둘러 데려다 달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비가 쏟아지는데 멀다고 안가면 허탈해 하실 것 아닌지...

 

 

 

그래서 마천동으로 갈 생각을 하고 지하 2층의 팬시 코너에 가서 우산을 샀다.
비닐로 대충 만든 것인데도 5천5백원이나 했다.


집에 우산이 쌨는데 사야 하는지...망설이다 샀다.

문닫는다고 안내 방송이 나오고 땅 위로 나오니 웬걸...


길 바닥만 비가 휩쓸었음을 암시하듯 젖어 있을 뿐 하늘은 검기만 하고 떨어지는 것은 없었다.
길바닥의 낙엽만 온몸이 젖어 뒹굴뿐...

비싸다고 망설이던 비닐 우산을 금쪽같이 움켜쥐고 걸었다.


발은 통증이 심해 더 한쪽 발을 절게 만들었으나 비온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내가 떠나간 서울, 다시 찾은 서울에서 지금 무슨 생각으로 걷는지...


이제 내일 산골로 가면 내가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이곳 서울은 다시 내 등뒤로 물러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바람이 정신차리라며 얼굴에 와 아는체를 한다.

 

다시 2번을 갈아타고 어머님 집의 역에서 내려 천천히 걷는데 벌써 12시가 가까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따라 일찍 들어온(밤12시에 들어오면 거의 기록이다.) 초보농사꾼이 어머님이 안들어 온다고 걱정걱정이시라며 어디냐고...
결국은 초보농사꾼이 마중을 나왔다.

내가 늦은 밤이라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비도 안오는데 손에는 우산을 들고 저만치서 나인 듯 하니 부른다.
서울 하늘 아래서 그 소리가 공중제비를 한번하고 나의 귀에 들어온다.

 

 

 

 

 

우린 연애시절처럼 반가워 하며 젖은 길을 걸었다.

 

어머님은 전화받고 말은 안해도 얘네들이 서울일거라고 생각하시고는 어찌나 맘이 급하던지 막 서둘러 오셨다고 하셨다.

“어머님, 제가 언니네로 그냥 갔으면 서운하셨을 것 같은데??”


“언니네 가는데 뭐가 서운해? 집으로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못보면 그게 그렇지...”하신다.

그렇게 새벽이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이다.
어제 밤에 평소보다 일찍 헤어지며 오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모양이다.
어머님네 집에서 챙겨주시는 짐을 다 차에 싣고 어머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 오는 길...

차 뒤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을 흔드는 어머님 모습에 가슴팍이 뻐근해진다.

 

함께 친구들이 모여있는 하남시로 가니어제 못나온 친구들도 나오고 모두 9명이 닭백숙을 먹으러 갔다.
친구가 관심있어 하는 땅도 덤으로 구경하고...

점심을 먹으니 당연히 이슬이는 따라 나오는 법.


산골로 내려가야 한다며 술을 안마시는 초보농사꾼.
어차피 지금 내려가도 어둔 시간에 도착할 것이고, 비도 오는데 그냥 좋은 벗들을 만났으니 술을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는 술도 깰겸 이사한 친구집에 내가 아직 못가보았다고 친구집으로 향했다.


초보농사꾼의  친구는 친구가 술이 깨서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동행하면서 여기 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애를 썼다.

자기도 엄청 바쁘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애들 좋은 옷을 싸게 파는 곳이 있다며 거기까지 데리고 가고...물론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 못사입혔지만 사입힌 것보다 더 마음이 따뜻했다.


좋은 벗에게서는 말보다 그런 행동에서 더 향기가 풀풀 난다.

덤으로 친구 집 뒤에 있는 말의 거처(?)도 가보았는데 말들이 내 키보다 몇 배나 커서 엄청 무서웠다.

 

 

 

 

그런데 신기하게 눈은 소보다도 더 순해 보였다.


모두  세 마리인데 그 중 한 마리는 하얀 암 말이다.
답게 고개를 숙이고 수줍어한다.

 

친구집에서 차를 마시고 산골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그제서야 정신이 바짝 든다.
비가 오고 있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으니 초보농사꾼이 운전하기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조건이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조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제 귀농 10년차가 지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여 앞으로의 계획, 꿈 등을 함께 나누었는데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산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춘천에서의 하늘마음농장 번개를 마치고 서울을 거처 산골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만남으로 인해 가슴뛰었던 시간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헤어짐으로 인해 찡한 시간들...
그런 시간들을 엮으면 가지런한 소풍길이 되는 것이리....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기
+   [산골편지]   |  2009. 12. 15. 13:00  


2009년 11월


올 가을에는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마다 가을이면 도지는 병이지만 올해는 금방이라도 일을 낼 것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매번 가을은 야콘캐는 철과 겹친다는 핑계를 대고 주저 앉곤 했다.


호수밭의 야콘은 홈에 오시는 황루시아 부부와 백산님네 부부가 도와주러 와서 캤는데 문제는 답운재밭이었다.

그러던중 홈게시판에 반가운 글이 번쩍 번쩍...
내 귀도 쫑긋...


삼전 베드로님께서 춘천의 버드나무 아래로 아래로 오세요...라고 벙개 공지를 올리신 것이다.
춘천이야 지명만으로도 여자분들의 눈이 풀리고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그런 곳이 아닌지...


그렇다면 문제는 답운재밭 야콘인데 날은 추워지기 시작했고 야콘이 얼까봐 마음이 급했다.
야콘만 캐면 콧노래를 팡팡 부르며 춘천으로 내달리련만 ...


그러나 내게 누군가.
“한다면 한다??”



 


 답운재밭의 야콘을 캐면 될일이 아닌지.
그때부터 누가 불러도 대답할 시간도 없이 답운재밭에 올인했다.





일단 올인하면 너 죽고 나 살기로 하는 스타일인 배 소피아.
첫눈이 온 2일 월요일부터 일단 야콘캐기 시작.


문제는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초보농사꾼이 다른 일과 겹쳐서 거의 나 혼자 해야 한다는 난제가 내 정수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초보농사꾼도 춘천의 벙개에도 가야 하고 일도 겹쳤고, 야콘도 캐야 하고...

결국 생각한 방법이 아침 일찍 초보농사꾼이 답운재밭의 야콘을 11시까지 캐놓고 가면 내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캐놓은 것을 따서 일일이 분리하여 담기로 했다.


눈오는 날 초보농사꾼은 언손으로 야콘을 캐놓고 갔고, 내가 어둡도록 혼자 나머지 야콘을 캐서 박스와 자루에 담아 놓았다.
그러면 초보농사꾼이 일을 보고 어두운 밤에 밭으로 와서 야콘박스와 야콘자루를 세레스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다음 날,
3일 화요일


고딩 선우가 열이 난다고 하여 신종플루 거점병원에 진종일 순서를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고열이 아니라며 타미플루 처방은 안해주고 감기약만 한보따리 받아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을 걸렸으니 점심 겸해서 서둘러 먹고 다시 산골로 돌아와 내복을 껴입고, 머프러로 목을 감싸고, 양말을 두 켤레 신고 다시 답운재밭으로 갔다.


오늘도 역시 초보농사꾼이 야콘을 일찍 뽑아 놓고 일보러 갔고 나는 다시 야콘을 뽑아 박스에 담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슬슬 아프기 시작한 배가 쥐어 뜯듯 통증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어둠을 끌어안으며 초보농사꾼이 밭에 도착했다.
같이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진해지기 시작했지만 어둔 밭에 초보농사꾼 혼자 두고 먼저 집에 올 수 없었다.




이젠 눈물이 나고 입에서는 엉엉 소리가 날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자 먼저 집에 가라고 했는데 말 안듣는다고 초보농사꾼의 톤이 높아지기 시작.
그때는 이미 거의 기다시피 눈물을 떨어뜨리며 집으로 정신없이 운전해 왔다.


혈압을 재어보니 156이다.
배는 정신을 놓을 정도로 아프고...
일전에 지어놓은 약을 먹고 잠시 후 구토를 시작했다.


구토를 하고 나니 조금 정신도 들고...

배아픔을 계속되었지만 밭에서와 같은 무서운 통증은 조금 사그라들고 잔통증만 사람을 잡아두고 있었다.
잠시 후에 초보농사꾼이 와서 굼벵이 엄니가 사다준 돌뜸도 준비해 주고, 약도 주고 물수건도 해다 주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도 같은 방법으로 아침에 초보농사꾼이 캐 놓으면 내가 가서 나머지 야콘을 캤다.
그날은 어떻게 어두워졌는지 모르게 주위가 아무 것도 안보일 정도로 깜깜해졌다.
점심도 먹기 싫어서 안먹었는데 초보농사꾼이 안온다.


저 멀리서 세레스소리가 요란스러워진다.
초보농사꾼이 차를 밭에 세우고 나를 사방에다 대고 부른다.


안보이니까.

어둔 밤 밭에서 서로 위치를 확인하는 산골부부.
내가 야콘농사를 귀농할 때부터 지금껏 지어도 이런 희안한 방식으로 캐긴 첨이다.gg





이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안갔다며 빨리 실을테니 먼저 가란다.
초보농사꾼을 어둔 밭에 두고 갈 수 있나...


함께 마무리 작업을 하고 고개를 들으니 별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어쩜 그리 아름다운지.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그림이 이 광경을 보고 그린거구나 할 정도로 아름답고 눈부셨다.
배고픈 것도 모르고 한참을 황홀한 밤하늘 별들을 눈을 통해 가슴에 담아두었다.

그날 저녁에 춘천벙개에 무조건 참석하기로 상의를 마쳤다.


그 이유는
첫째, 하늘마음농장을 통해 알게 된 인연인데 고맙게도 삼전 베드로님께서 멍석까지 펴주시고 준비까지 해주시는데 우리가 빠져서야 되겠느냐는데 입을 모았다.


둘째, 내일 하루는 초보농사꾼의 일이 없으니 둘다 야콘밭에 엎드려 열과 성을 다하면 어느 정도 다 캐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드디어 결정적인 금요일, 6일이다.


오늘은 둘다 서둘러 야콘밭으로 갔다.
초보농사꾼이 캐서 군데군데 쌓아 놓으면 난 가서 야콘을 딴 다음 야콘을 선별하여 박스와 자루에 넣는 일을 했다.





점심도 오후 3시에 먹으러 갈 정도로 했건만 다 캐지 못했다.
이제 남아도 벙개에 갈 것이라 어두워지도록 둘이서 캐고 차에 싣고 돌아왔다.

귀농하여 야콘농사를 여러 해 지어도 올해와 같이 주가 내가 되어 캐기는 첨이다.


저녁에 삼전 베드로님과 총무님이신 김남걸 오라버님께 우린 무조건 춘천으로 뜬다는 말씀을 한번더 박아드렸다.

이번에 하늘마음당(?) 당수님이신 최일선 파비아노 당수님께서는 마침 L.A 출장중이셔서 참석하지 못하셨고, 김동신 교수님은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 참석하지 못하셨다고 총무님께서 설명해주셨다.


근향님도 선약이 있으셔서 어렵다는 말씀을 홈에 남겨주셨다.
그리고 문영미님은 감기로 참석하기 어렵다는 전화통화를 나와 했다.


다음 날, 아침
예상보다 조금 늦은터에 여기 저기 전화하느라 (오늘 당번인 일이 있어서...^^) 더 늦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섰다.
그런데 차에 시동을 걸던 초보농사꾼이 차가 방전되었단다.


시동이 안걸리고...

안그래도 늦었는데 이건 무슨 영화와 같은 우연인지.
내가 어제 저녁에 밭에서 끌고와서는 제대로 시동을 끄지 못한 거다.


초보농사꾼 황당해 하더니 세레스로 뛰어가 시동을 걸어보나 워낙 낡은 세레스 시동에 한번에 안걸리고 갤갤거린다.
세레스에 시동을 걸어 테레칸 옆에 바쩍 붙여 대는 초보농사꾼.
점프선인지 뭔지 하는 것 끝에 빨래집게처럼 붙어 있는 집게를 차의 두 군데에 연결하던데 시동은 여전히 안걸린다.




집게를 여기에 집었다, 저기에 집었다 하더니 날더러 시동을 걸어보란다.
안걸린다.
이번에는 세레스의 집게를 다시 점검하니 시동이 걸린다.


휴~~~

이제 출발이다.
우린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럴 때 제일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초보농사꾼의 졸음도 쫓아줄 수 있고, 다른 일 생각이나 걱정을 내려 놓고 이야기하기에는 참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제일 일찍 가서 오시는 분들을 삼전 베드로님과 함께 맞이해야 옳거늘 그러지 못할 것같아 안절부절....

중간에 총무님과 삼전베드로님에게 전화가 오고...
마음은 더 급해지고...


이번에는 삼전 베드로님께서 열차표를 어렵게 구해서 치자꽃님께 보내셨단다.
그 열차를 이용하신 분이 치자꽃님 부부, 불영계곡님, 장의숙 언니, 굼벵이 엄니, 해담풀, 박종라 비르짓다님이었다.


그리고 김태경 오라버님과 김날걸 오라버님은 그 전날 늦게 참석할 수 있다는 결정을 하셔서 그 차량을 이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면서 중간중간 삼전 베드로님의 약도 지시를 받았는데 급한 나머지 두 번이나 오라는 길을 놓치고 한참을 내달려 되돌아 오는 일까지 겪었다.
지각생 주제에 할 건 다 한다. ㅎㅎ


한참만에 점심식사를 할 장소인 곳으로 들어섰다.
방에 계시던  반가운 분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와 뒤로 넘어갈뻔했다.
처음부터 조금 늦을 것같다시던 은행장님만 아직이고 모두 와 계셨다.


치자꽃님 부부, 삼전 베드로님 부부, 불영계곡님, 장의숙 언니, 김태경 오라버님 부부, 김남걸 오라버님, 굼벵이 엄니, 은행장님, 해담풀님, 박종라 비르짓다님 이렇게 해서 모두 15분이 모였다.

처음 뵙는 분들도 계시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 얼마 전에 보았어도 또 보니 언제 봤냐는 듯이 또 새롭게 반가운 얼굴들...





엄나무와 오갈피를 넣은 백숙을 맛있게 먹으며 한분 한분 자기 소개를 했다.
이번에 처음 나오신 분은 치자꽃님의 남편분, 불영계곡님, 해담풀, 박종라 비르짓다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우리 홈에 오시는 분들의 인상은 정말 따사롭게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행장님이 분당에서 달려오셨다.
모두가 일어나 도대체 어느 분이 은행장님이시냐며 궁금해 하신다.

늦은 점심만 부랴부랴 드시고 은행장님은 다시 분당으로 가셨다.


그 먼길을 인연을 만나기 위해 달려오셨다니...
그저 고맙고 마음이 짠해진다.

나머지 ‘하늘마음학교 학생’(삼전 베드로님 표현임.)들이 점심을 맛나게 먹고 출발한 곳이 호명호수다.
호수에는 우리집 거북바위 보다 조금 덜 생긴(?) 거북이가 호수위에 떠서는 물을 막 뿜어내고 있었다.





환영한다는 뜻인지 난 안다.
‘그려, 그려...쉬어.’

그 옆에 백조도 있으나 나보다 우아한 게 살짝 신경쓰여 안올리련다.^^
이곳에서 박종라 비르짓다님은 집안의 행사가 있으셔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먼저 가셨다.
어린 아이가 7살이라던데 직장맘이 하루 쉬는 날 쉬지도 않고 이곳에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그리고 삼전 베드로님께서 회사차를 준비해 주셔서 편안하게 지하 1300미터 막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부터 청평 양수발전소의 원리부터 시작하여 각종 겁나게 크고 어마어마한 시설들을 죄다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경우는 아마도 그 막장까지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하여간 우린 어느 분(?)의 빽으루다가 호기심 많은 초보농사꾼이 더 이상의 궁금한 점이 없을 정도로 삼전 베드로님께서 알뜰히 설명을 해주셨다.







거기서 삼전 베드로님께 배운 바를 토해내야 할 의무가 내게 있지만 나의 성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억력의 한계가 딱 요까지라서 이렇게 간단하게 마무리를 하게 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난생 처음 발전소를 막장 아래에까지 내려가 구경한 것도 처음이다.
아쉬운 점은 고딩과 중딩인 산골아이들까지 함께 왔더라면 더 큰 교육이 되었을 것같다며 굼벵이 엄니랑 입을 모았다.




그렇게 발전소를 둘러보고 다시 회사차를 이용하여 아까 백숙을 먹은 식당 마당에서 뒤풀이하였다.
떡과 과일 , 차 등은 모두 삼전 베드로님의 부인이신 율리안나 형님께서, 그리고 비스켓은 굼벵이 엄니께서 준비해 오셨다.

삼전 베드로님께서는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가평 잣 선물세트까지 준비해 주셨다.





그렇게 아쉬운 만남을 마무리 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올 때에 기차를 타고 오셨던 분들은 세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서둘러 각자의 보금자리로 출발했다.

우리 차에는 굼벵이 엄니랑 해담풀이 동승했다.


이 모임을 끝내고 산골로 간 것이 아니고 어머님도 뵙고, 볼일도 있고 해서 서울로 갔다.
우리가 서울로 가지 않았으면 울진팀과 함께 한 차로 소풍삼아 참석했을텐데 그러질 못해 아쉬웠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인연’의 냄새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진하고 고소한 커피향이 아닐까,


꽃으로 치자면 후리지아처럼 금방 코끝에서 향긋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가을 들녘에 핀 들국화가 아닐까.

어쩜 한 분 한 분의 그 얼굴 물결이 그토록 평안하고 따사롭던지...

서로서로의 향기를 묻히며 각자의 소풍길을 간다면 그 길이 스폰지처럼 폭신폭신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


삼전 베드로님, 율리안나 형님,

정말 고생하셨고, 며칠 전부터 비가 올까 걱정이셨고, 몇 분이나 오실까, 차편을 어떻게 조정할까,,, 등등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요.

멍석이란 그냥 둥글게 말린 것을 쫙 펼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그저 두 분께 감사할 뿐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풍경--밭에서 오는 길
+   [산골풍경]   |  2009. 12. 15. 12:30  




대부분의 마을입구는 복잡하거나 좀 어수선하기 마련입니다.


어려 가구가 모여 있기도 하고 농촌이라서 가축우리나 창고, 밖의 화장실 등 집 외의 부수 건물이 많다 보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입구는 아주 깨끗한 편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 우리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더 아름답고 이런 가을에는 고즈넉하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집이 한 골씩을 차지하고 있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집들은 대개 길을 사이에 두고 양측으로 줄서 있기 마련인데 우리 마을은 마을 초입만 조금 그렇고 나머지는 길가에 집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집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함께 가보실까요.


이제 꺽어지는 곳을 지나면 오른쪽 개울을 건너 윗 편에 호미할머님 집이 멀찍이 보입니다.
양지바른 곳에 반듯하게 한채가 햇살을 받고 있어 아주 따사로워 보이는 집입니다.




그곳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주위가 온통 단풍이 든 숲입니다.
참으로 이쁩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제가 자주 말하는 다리결이 보입니다.

저 위에 집이 한 채 보이지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남씨 할아버님이 사십니다. 늘 꽃을 선물로 주시는 ...

오른쪽에 작은 다리가 보이지요.




그리고 조금 올라가면 우리집의 표시인 '하늘마음농장'이라는 글이 큰 돌에 턱하니 박혀 있습니다.

산골가족은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따라 매일 집을 드나듭니다.


거기서 조금만 나가면 더 자지러지는 불영계곡이 늘상 팔을 벌리고 있구요.

울진...볼수록 여인네의 목도리처럼 따사롭고 , 남정네의 떡 벌어진 어깨처럼 우람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찍사는 배동분 소피아, 차 안에서 박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내 소유의 병원??
+   [귀농일기]   |  2009. 12. 10. 21:03  

산골로 귀농하고 와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참으로 많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 소개하면 <숲의 치유 능력>이다.

귀농하고 한참을 지나도록 환장을 할만큼 숲에 대한 놀라운 치유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대로 숲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니 엄청 좋을 것이다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은 2007년으로 기억하는데 아들 선우의 눈병때문이었다.
그때가 추석 연휴였는데 연휴 시작하는 날 학교다녀온 선우가 눈병을 옮아 온 것이다.


그때 눈병이 유행처럼 번져서 학교를 쉬는 아이들이 나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막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아들의 눈병.


추석 연휴가 시작되어서 병원 문도 닫았기 때문에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읍의 약국으로 갔었다.
약국에서도 처방전없이 조제는 못해주고 기성 안약은 줄수 있다고 하여 아내가 안약을 사왔다.

 

아내는 아이에게 눈에 약을 넣으면 먹는 약보다 더 안좋을 거라는 막연한 자가 판단으로 안약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
선우의 눈병은 그날 더 악화되었다.

다음 날 아내는 좋은 방법이 있다며 눈병으로 인해서  눈뿐만 아니라 얼굴도 부은 선우를 데리고 송이산에 다녀오라는 거다.

 

 

소나무 숲이 선우의 눈병을 치유해 줄 것이라고 아내는 일장 연설을 토했다.


내 짧은 상식으로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데리고 송이산으로 갔다.

소나무숲에서는 피톤치드 말고도 건강에 좋은 것들을 거저 얻을수 있다.
송이, 먹버섯, 싸리버섯 등도 얻을수 있다.

 

그날 송이와 먹버섯 등을 따오고 나중에 두 번 더 산에 올랐다.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버섯 딸 일도 없는데 오로지 아이의 눈병 치유를 위해서 말이다.


다음날부터 신기하게 눈의 부기도 빠지고 벌겋던 눈의 색깔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도 산에 데리고 갔다.

 

 

 

그렇게 해서 추석 연휴가 끝날 때쯤에는 거의 다 눈병이 나았고, 다시 학교에 가자 조금 주춤하더니 이내 안약 한방울 넣지 않고 눈병이 완치되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어 아내가 관심있게 읽는 숲치유에 대한 책을 읽어 보았다.

 

왜 소나무 산에 몇 번 다녀왔는데 눈병이 다 나았을까.
그저 일반 상식으로도 우리는 숲이 특히나 침엽수림이 사람 몸에 좋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방송국 PD를 지낸 윤동혁님의 ‘나를 살리는 숲, 숲으로 가자’에 나오는 한 대목을 소개하려고 한다.


“소나무로 예를 들자면 솔숲의 상큼하고 알싸한 냄새도 피톤치드이고, 나무가 상처 입었을 때 나와서 그 부분을 덮고 세균 침입을 막아주는 송진도 피톤치드이다.

 

그 이름부터 풀이해 볼까. phyton(식물)+cide(죽이다)가 피톤치드이다. 식물에서 나오는 어떤 물질이 문가를 죽이더라는 것이다. 모든 고등식물은 잎이나 꽃, 줄기, 뿌리에서 휘발성 방향물질을 내뿜는다.

 

그 냄새 속에 곰팡이나 균을 죽이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토킨 박사가 실험을 통해서 알아내고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병든 이들이여, 숲으로 가시오!“ ”

 

 

 

아내는 책의 이 부분에 형광펜으로 빡빡 그어놓았다.
이렇게 아들 선우의 눈병이 아주 쉽게 나은 이후로는 친한 손님들이 오면 소나무 숲으로 내몬다.


아내나 나처럼 그 신통한 치유력을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은 따라 나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웃기만 하고 바쁘다며 달아난다.

이 책을 몇 장 더 넘기면 이런 부분도 나온다.
“우리의 심신을 쾌적하게 해주는 식물의 휘발성 방향 물질 테르펜은, 언급했다시피 넓은 잎 나무보다 바늘잎 나무 쪽에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

 

 

 

여하튼 우리집 주위는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좋다.
그 중에 우리 소유의 산이 있으니 버섯도 얻고, 솔잎효소를 만드는 재료인 어린 솔도 얻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씩 무슨 치유소를 다녀온 것처럼 소나무 숲을 다녀오면 뿌듯하다.

 

이제 선우의 학기말고사가 끝나면 다시 한바퀴 다녀와야겠다.
가까이에 이런 소나무숲이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내 병원이라 할만하다.

(이 사진들은 작년과 재작년의 사진이 많다. 올해는 송이가 안났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초보딱지를 뗄 수가 없다
+   [귀농일기]   |  2009. 12. 4. 22:35  


2009년 11월 오늘이 언제인지...

 

초보농사꾼이라는 닉네임을 바꾸라고들 많이 얘기하지만 사실 그럴 처지가 못됨을 또 알았다.
이제 귀농10년차가 지나고 있으니 그 초보라는 딱지를 떼도 되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당분간, 아니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만 같다.

 

그 이유는 농사를 지으며 농기계를 사용하는 시간보다 그것을 고치러 여기 저기 쫓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게 이유 중 하나이다.

 

포크레인을 썩은 것을 샀는데 그것 역시 몇 번이나 사람을 부르고, 내가 쫓아가고 했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잘 되다가 유압호스가 안되서 혼자 하다 하다 달길님과 함께 하면 어찌 될까 해서 연락을 했다.

달길님은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산골의 애로사항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 그닥 쫓아오신다.

 

 


 

지난 14일 그러니까 아버지 제사라서 아내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혼자서 제사 음식을 차리느라 정신없는데 나는 포크레인 유압호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달길님이 오셔서 둘이 해봐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해결을 못하고 달길님 온 김에 선우 컨테이너에 전기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달길님.

새 집에 선우 방이 당연히 있는데 손님이 워낙 많이 오시니까 선우가 집중이 안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집의 천장을 워낙 높게 했더니 방음이 잘 안되어 거실의 소리가 아이들 방까지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 고민을 하다 생각해 낸 것이 집 옆에 있는 컨테이너를 변신시켜 손님이 오면 선우를 거기로 보내자고 아내와 합의를 했다.

그런데 전기를 아직 못끌어들인 것.


달길님이 꼼꼼하게 전기를 끌어다 주어 환하게 해주시고 가셨다.
먼길을 오셔서 애로사항을 봐주시니 고마운 마음이다. 항상.

하여간 그 유압호스가 마음에 걸려 일이 손에 안잡힌다.


결국은 호스 암볼트와 숫볼트를 들고 읍내의 농기계 수리센타에 가서 수리를 해달라고 하니 맡겨두고 가란다.

나는 속이 타지만 상대방이야 바쁠 일이 없으니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다.
몇 번을 들렸는데 여전히 해놓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갔더니 유압호스에 끼운 볼트 사이즈를 잘못 알고 너무 작은 것을 끼웠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압호스를 다시 제작해야 한단다.


난 그 집에서면 해결이 될줄 알았는데 기운이 쪽 빠진다.

며칠 후 짬을 내어 유압호스를 제작했던 공장에 가서 사정을 말하기로 하고 갔다.
말이 공장이라고 해서 가까운줄 아시겠지만 영주다.


울진에서 영주까지 달리고 달려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날이 장날이라고 사장님이 출장중이란다.


기운빠져 하는데 사장 부인이 대타로 나와서 이것 저것을 맞춰 보더니 자기네는 맞는 것이 없단다.
자기가 유압호스 전문업체를 소개해 줄테니 그곳에 가서 정확한 볼트를 찾아보라고 토스한다.

다시 물어물어 유압호스 전문 제작업체를 찾아갔다.
유압호스를 보더니 단박에 하는 말.


이것은 호스 사이즈를 잘못 끼운 것이 아니라 숫놈 볼트가 터져서 그런 것이니 숫놈 볼트를 바꿔야 한다는 간단한 처방을 내린다.

처음부터 잘못해 준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하여간 유압호스를 가져와서 인근 카센터 사람을 부르고 하여 지금은 시동이 펑펑 걸린다.

내가 유압호스때문에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맡기고 할 때 아내가 말이 없다.
그건 "내가 저럴줄 알았어."하는 체념 같다.ㅎㅎ


그 놈의 유압호스 하나로 며칠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보낸 시간이 얼마며 제때 해주지 않아 속을 끓인 것이 얼만지.
이래도 초보 딱지를 뗄 수 있는지...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실 수 있어요.

(사진은 전기를 해결해 주고 있는 달길님)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프란치스코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 돌팔이의 처방전
+   [산골편지]   |  2009. 12. 2. 03:04  


2009년 10월

 

햇살이 자글자글하던 초여름 무렵, 산골에 살구나무 한 그루 들였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소리인지 몰라도 살구나무 첨 봤습니다.
이젠 그의 목숨에 내 목숨을 겁니다.

혹여 목이 말라 죽는 것은 아닌지.


넓지도 않은 미간을 찌뿌리기까지 하며 걱정하는 척하지만 난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의 목마름을 잊습니다.

물론 핑계는 다 있습니다. 농사 일로 바쁘다고...
농사가 무슨 벼슬인지,


누구 위해 농사를 짓는지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지요.


안 바쁜 사람이 있는지.. 유치원생에게 물어봐도 거의 같은 대답일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의 목숨을 점검합니다.


뭣도 모르고 돌팔이가 점검해 봤댔자 죄다 오진이겠지만...

그의 목숨을 생각해 준답시고 처방한 것이 개똥입니다.

 

 매일 개똥을 정성껏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난 어느 날 보니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돌팔이를 원망하는지 억센 가시만 저를 향해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처방한 개똥이 너무 독했던걸까’
‘가을이라 그런가’
‘속이 타서 목이 말라 저리 기가 죽은 것일까’
‘겨울잠 준비를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하는지...’

 

이젠 고상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다 들먹입니다.

새 봄을 한번 맞이해 보면 결판날 일이나 그 안에 생명을 닫아걸까 그게 겁납니다.

 

이런 초라해지고 꾀죄죄한 살구나무를 며칠 봐서 인지 살구가 탱글탱글 열리는 환상은 벌써 물건너간지 오랩니다.

그런 환상만 갖고 나무를 들였다가 여러 나무 골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요.

 

시기가 절절치 못할 때 옮겨서 그럴 수 있고, 또 뿌리가 예민한 부분인데 뭣도 모르고 그저 가져가라고 했다고 신바람이 나서 앞뒤 안가리고  파재껴 와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물도 많이 주고 거름도 적당히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알고도 못한 그 부분은 제 불찰입니다.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은 있다고 전과자는 말합니다. 바빠서 그랬다고...

이제 그런 이유는 내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어설픈 처방이지만 나무 상태를 휘번뜩이며 관찰한 결과, 나의 처방전에는 물과 개똥 밖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처음 살구나무를 들였을 때의 처방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팔이 아프도록 물도 열심히 들어다 부어주었고, 개똥도 나무 주위에 소복이 쌓아주었습니다.

이제는 봄만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되어 가시만 곧추세우고 있던 그 자리에 파리한 싹이 돋아나면 나도 파리하게 놀라 환호성을 지르겠지요.

여하튼 생명붙은 것을 산골로 들이는 일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가을이라 안그래도 해골복잡한데....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책이야기--효재처럼 살아요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11. 29. 00:40  



"이제 읍에서 산골로 돌아가야 한다.
어둔 길을 차의 두 눈에 의지하고
그리고 달빛에 의지하여, 나  나의 둥지로 돌아간다.
내 옆 좌석에는 오늘 산 책들이 동행한다.
사람보다 더 편안한 상대라면 내가 너무 솔직했나?

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배동분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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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 책을 한 장 펼친 곳에 써 두었다.

그날 몇 책을 몇 권 사왔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떡을 찾아가는 것보다 더...ㅎㅎ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TV에서 이 분의 방송을 잠깐 보아서 대충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지난달 수원의 농업연수원에 교육을 갔었는데 강의장 바로 옆에 책방이 있었다.
책을 빌려주는 곳...책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교실 두 개 정도를 튼 작은 규모였으나 며칠 교육이 이루어지는 경우 빌려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정말 잘 한 것같았다.





그곳에서 들어가 책을 둘러 보다 이 책을 발견하고 사서 보기는 내용을 대충 알다보니 아깝고 잘 되었다는 생각에 빌려 읽었는데 앞 부분만 조금 읽다 돌아왔다.


그런데 왠지 끌리는 그런 여백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바로 한 권을 샀다.

사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이 분이 책을 세 권 정도 낸 것같은데 그 중 한 권이랑 이 책이랑 정가가 똑같았다.

이 책은 글이 얼마 없고 그저 사진이 다 차지하는 그런 편집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은 이 책보다 두 배 크기 그러니까 잡지판형의 책이고 글도 그림도 빼곡히 아주 묵직할 정도로 많이 수록되어 있다.

전자는 문학동네에서 낸 것이고, 그것은 어느 잡지도 내는 그런 출판사에서 낸 책이다.


망설임...

그러나 왠지 잡지냄새나는 책을 사기는 아까웠고 무엇보다 문학동네를 믿었다.

그렇게 망설임끝에 산 책...
이 책을 산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의 순서는 이렇다.

1.  어린 시절
2.  선물
3. 살림 이야기
4. 아름다움에 대하여
5. 부부이야기
6. 나이듦에 대하여


작가를 소개하면


성북동 길상사 앞 한복 숍 '효재'에서 혼수 한복짓는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하나로 온갖 것 예술처럼 싸는 보자기 아티스트이다.
살림만큼 창조직인 이이 없다며 입는 거, 먹는 거, 집 꾸미기까지, 사소한 일상을 아름다움으로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주부로 살다 보니 '살림의 여왕'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 '한국의 타샤 튜더' '자연주의 살림꾼' 등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라이프 스타일리스트이다.


우리 보자기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과 아이들 동화책을 쓰고 싶은 즐거운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으로 살림하며, 더 나이 들면 꼭 만화를 그리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효재처럼'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 어린이 동화책 '나는 치마저고리가 좋아'가 있다.

이것이 책 날개에 소개한 글이다.


이렇게 작가를 소개하면 내가 굳이 이 사람을 소개하는데 애를 안써도 되니 이렇게 먼저 소개한 것이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며 여자의 일생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거의 대부분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아이가 없다.


" 내게 아이가 하나 있다며, 그 아이는 남자아이다.
벼락스러운 남자아이가 혼날 짓을 하면,
마당 한구석에 모래밭을 만들어놓고 그리로 불러내서 두들겨 패겠다. 이마도 쥐어박고.
그러면 그 아이는 모래밭으로 꼬꾸라지겠지.
이마엔 모래가 박힐 것이고.
나는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울먹이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데리고 들어와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씻겨줄 것이다.
그리곤 꼭 삶아 빤 하얀 난닝구와 하얀 빤쯔를 입혀서
잠 재우고.
아이가 자라서 학교 갈 때쯤이면
유치원은 보내지 않고 제 아니 꽉 찬 여덟 살에
오솔길을 한참 걸어가야 하는 시골 초등학교에 보내겠다.
어쩌다 하는 서울 나들이엔 어리버리 촌놈 짓을 하겠지.
그런 남자아이의 엄마이고 싶었다."(본문 28쪽)


위의 글로 보아 아이를 갖고 싶으나 안타깝게 그렇게 되지 않은 것같다.
위의 글을 읽으며 아이가진 엄마로서 마음이 많이 아렸다.


그래서 인형의 옷도 만들어 입히는 등 인형을 갖고 노는 중년이라고 해야 할 것같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살림을 하고, 옷을 짓고, 보자기로 싸고, 인형옷을 만들어 입히고, 꽃을 가꾸고 풀을 매고... 그런다고 했다.

이 책은 한옥에서 사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한옥의 고즈넉함과 여인네의 섬세한 손길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참으로 멋스럽고 여유롭고, 여백의 미를 한껏 나타낸 그런 모습이다.

책에 글이 많지 않기 때문에 큰 사진이 주는 이미지와 잘 어우러진 경우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멋지게 가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아이가 없지만 그 남는 시간에 그렇게 부지런을 떤다고 했지만 남는 시간에 그렇게 수를 놓고, 풀을 뽑고, 화초를 기르고 , 인형옷을 만들어 입히고, 음식을 잘하고, 바느질을 잘하고...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생각한다.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나이들수록 더더욱 혼자서도 아주 잘노는 것이 제일 멋져 보인다.

이 책은 당분간 내 가방 속에 담겨다닐 것같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무서운 대물림
+   [산골편지]   |  2009. 11. 25. 03:15  

 

 

 

2009년 10월

 

저녁을 지어먹고 나무 보일러의 불꽃 상태를 보려고 밖으로 나갑니다.
주위는 검으티티한데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봅니다.

 

어둠으로 인해 눈은 까막눈이지만 나무들이 옷을 벗어 제 발등을 덮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하염없습니다.
장작 하나 집어넣으려던 나도 하염없이 서서 그 소리에 귀를 씻어냅니다.

 

나도 하루살이처럼 코 앞의 일에 헉헉거리고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긴 겨울 발등 덮을 것을 미리미리 장만해야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무의 성은이 하해와 같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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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인 아버지가 자식 공부시킨다며 온가족을 데리고 한양으로 갔을 때, 할머니 심정이 어땠을까를 왜 지금 사무치게 느끼는걸까요.
나이를 먹는가 봅니다.
내가 나이 먹는 것을 이제는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손자, 손녀가 여섯이나 되는 대가족이 살갑게 살다 훌쩍 떠나보냈으니 얼마나 가슴이 휑하셨을까요.
내가 딱 그 처지가 된 것처럼 가슴에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할머니는 봄부터 여름까지 더 정확히 여름방학때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손자, 손녀들이 내려오면 보여준다는 이유 하나로 그 큰 꽃밭을 진종일 지어다니셨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서 그만한 꽃밭(땅 적은 집 밭만했지요.)을 가꾼다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심고, 풀 뽑고, 함석 물조리개로 물주며 그곳에 치성을 들이셨습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특유의 향기를 내뿜으며 할머니와 함께 우리를 기다렸지요.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그 꽃밭은 황금 밭이 되어 지금도 내 가슴 한 켠을 도백하고 있다가 내가 힘들 때마다 특유의 향기로 나를 치유해주곤 했습니다.

 

 

 

 

난 지금 농사를 지으면서 내 능력에 부치는 꽃밭을 갖고 있습니다.


내 할머니의 꽃밭에 비하면 쨉도 안되지만...

 

할머니가 삭막한 서울로 가버린 손자, 손녀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가꾸셨듯이 나 또한 귀농할 때, 얼떨결에 따라 내려온 내 아들, 딸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경영은 내가 몇 년을 머리 싸매가며 전공한 ‘이윤추구’를 위한 경영이 아니고 ‘행복추구’를 위한 경영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을 잘 안배하고, 눈높이와 땟깔도 배려하고, 꽃의 모양새도 고려하면서 꽃을 키웠던 나의 할머니를 흉내내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보니 내 할머니와 똑같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찌 아이들을 위한 공간만이겠는지요.


그곳은 내 영혼이 지쳤을 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고 있고, 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임희숙의 노래 가사처럼 ‘등이 휠 것같은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또한 이곳입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시아 어느 시인은
"내게 은전 두 닢이 생긴다면 그 중 한 닢으로는 빵을 사고, 나머지 한 닢으로는 내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고 했듯이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최우선순위를 둔 것뿐입니다.


난 말이예요.
고2, 중3인 산골아이들이 우리집의 코스모스가 제일 아름답다고, 우리집의 국화가 제일 이쁘다고 하면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럴 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래, 아가들아! 눈에, 가슴에 찐하게 담아두렴.


그리하여 니들이 험한 세상 살아갈 때 한 자락씩 꺼내 보며 위안을 삼으렴.
그리고 엄마가 엄마의 할머니로부터 보고 배웠듯이 너희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너희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늘 생각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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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제 새끼잡아 먹는 에미
+   [산골편지]   |  2009. 11. 17. 02:42  

2009년 10월

여름내내 풍성한 잎파리 속에 실한 포도송이를 감추고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포도나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앉아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땅바닥을 서걱서걱거리며 마지막 남은 힘을 삭히는중인가 보다. 얼굴은 노래가지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 그를 보면 영원히 번창할 것같았지만 때가 되면 그 어떤 것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가 보다.
오늘은 유심히 더 노란 얼굴에 검버섯까지 펴 있고 구멍까지 난 모습으로 땅바닥을 기고 있다.

가을에는 더더욱 어느 것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오늘은 그의 땅바닥을 기는 소리가  유심히 크게 들린다.
한 해의 끝이 보이고 있다는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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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언니네 갔을 때, 돌확 속에서 노는 물고기가 하도 이뻐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귀농한 동생을 늘 마음 아파하던 언니가 물고기를 담아 주었다.
패트병을 잘라서 그 안에...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름은 구피이고, 제 새끼 잡아먹는 놈들이니 단도리 잘 하라는 말도 물 속에 섞어 담아주었다.
난 후자의 부탁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설마...

물고기는 산골로 이사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깨를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부탁이 가시처럼 걸려 어른과 신생아를 칼같이 갈라 놓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떼어 놓는 것이 옳은 일일까 끙끙거리면서...

한참 지나 '그래도 그렇지 제 새끼 잡아 먹는 어미가 어딨냐"고 산골아이들이 하도 나를 공격하기에 얼떨결에 합쳐 주었다.

한동안 난 에서 돌아오면 숫자 세기에 바빴다.
새끼의 수를 칼같이 세고 또 셋다.
안그래도 숫자에 대해 야무지지 못한 나로서는 그 일도 큰 일이었다.

어제 요맘때의  숫자와 변동이 없다는 사실이 신통방통하여 먹이도 고봉으로 주었다.
후한 먹이 공세로 금방 물이 탁해졌다.
그물이 촘촘한 체로 어이, 새끼 할 것 없이 떠서 작은 그릇에 옮겨 주고 그들의 둥지를 깨끗이 청소를 하고 산골의 가재도 산다는 1급수 물을 담아다 놓았다.

그런데 그 옆의 화초를 간섭하느라 깜빡 잊고 작은 그릇에 있던 물고기들을 제 집에 넣어주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그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물고기를 원래의 집에 넣어 주려는데 새끼의 수가 형편 없이 모자란다.
아니, 새끼들이 아예 안보인다.

어디로 튀었나 하고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리 돋보기까지 동원해서 찾아도 새끼 8마리는 다 어디로 가고 달랑 새끼 한 마리에 어른 5마리만 남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제서야 제 새끼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우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다시 분리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어미 물고기 밥을 주지 않았다.

어둠이 깔리고 어린 물고기 혼자 제 집에 둥둥 떠있는 푸른 물배추 아래에 잠이 든 것을 들여다 보았다.
나의 까막정신이 어린 새끼들을 희생시켰구나...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작고 검은 돌 하나 집에 넣어주었다. 친구하라고...

그러는 동안 씩씩거리던 기분은 사라지고 과연 내가 어미 물고기를 타박할 자격이 있을까???

자연에서 키운다며 산골로 데려 와서는 농사 일로 바쁘다고 내 새끼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지, 어미로서의 역할을 칼같이 해냈는지 생각하니 누가 누구에게 지적질할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미 물고기에게 아까 주지 못한 먹이를 고봉으로 주면서
'너도 나도 어미 구실 잘 하자'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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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인터넷으로 병아리 키우기[1탄]
+   [귀농일기]   |  2009. 10. 16. 10:11  




2009년 10월


지금부터 우리집 새식구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좀 찔리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니 닭이야기이다.


닭이야기를 하려니 선우 , 주현이를 이렇게 관심갖고 키웠으면 아마 아내가 옛날 이야기하며 궁시렁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들이란 다 같은 이유를 둘러대지 않는가.


인생살이가 바빠서 그랬다고, 나도 자식 이쁜줄 안다고 변명을 들이대지만 사실 설득력없는 이유라는 것을 남자들도 안다.

이렇게 오늘은 거창하게 서론이 나가는 것으로 보면 본론도 무지 길거라는 상상을 하실 거다. 맞다.
이야기가 길다보니 이제나 저제나 미루어 왔던 이야기인데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왔다.


지금 이야기할 꺼리가 많으니까 1탄, 2탄으로라도 해야 나중에 진행상황을 까먹지않는다는 판단이 서서 요즘 개복숭아 씨 심느라고 무지 힘들지만 기억을 더듬어 쓰려고 한다.


예전에 논산의 이원무신부님께서 관상용 닭을 사올테니 키워보라고 하셔서 아내와 나는 자신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신부님은 산골에서 닭을 키우고 병아리를 키우는 재미도 보고, 또 유정란을 낳으면 가족끼리 먹는 재미도 있고 하여 마음을 써주신 것이다.
신부님은 늘 그렇게 마음을 써주셨다.


예전에, 귀농초에도 토종닭을 연구하시는 분이 진주에서 여기까지 직접 그 많은 닭을 실어다 주고 가셨다.
공짜로...


정말 보니까 덩치도 작고 색깔도 일반 닭과는 달랐다.새박사라고 했는데 정말 그냥 말하는 박사가 아니고 조류쪽을 전공하신 분이셨다.
얼마나 고맙던지..용기를 내어 키우는데 까마귀가 그랬는지 들짐승이 그랬는지 자꾸 닭을 물어 죽이는 거였다.


나중에는 폐그물을 얻어다가 쳐주곤 했는데 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놈들을 개가 풀려서 결국은 다 잡아 죽이고 말았다.
개는 죽여만 놓았지 먹지도 않는다.


얼마나 마음이 안좋은지 다시는 닭을 안키운다고 아내와 다짐을 했다.

그러다 아이들 운동회때 경기 우승으로 받은 닭도 개가 물어 죽이고 하여간 우린 동물이랑은 인연이 없었다.


그렇게 아픈 상처만 남기고 닭은 물건너 갔고, 꿈에도 닭을 키우지않겠다고 했는데 신부님이 관상용 닭이라며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자신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신부님 생각은 유정란을 꺼내 먹을 수 있고 , 말 그대로 관상용이니까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병아리 낳으면 길러도 보면 참 좋을 거라는 배려에서였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7월에 따가운 날에 신부님은 트럭에 닭장이랑 닭이랑 싣고 신부님도 차로 오셨다.
닭장은 조립할 수 있도록 하여 오셨기때문에 여기와서 조립을 했는데 그럴듯한 단독주택이 되었다.
물론 이것도 사오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생명이 우리집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사냥개 벤자민 이후 또 다른 생명을 들인 것이다.


그런데 신부님이 가시고 나서 다음 날 한마리가 죽었다.
얼마나 마음이 안좋은지...


또 그렇게 마음을 써주셔서 가져오신 것을 금방 한마리 죽였으니 할말이 없었다.

나 역시 잘 자라주기를, 이번에 닭은 어디 한번 잘 키워보려고 마음을 먹었건만 바로 다음날 원인모를 이유로 죽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마리랑 함께 살았다.


우리집에서 새로 지은 신부님 집까지 언덕을 헉헉거리며 걸어올라가야 하는데 매일 밥주고 물주고 그리고 다른 동물이 해꼬지 하지않는지 걱정되어 오르내렸다.


그런데 어느날 모이를 주러 올라가는데 그애들 집이 길 중간까지 내려와 뒤집어져 있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모습과 같이 둥지는 둥지대로 나가떨어져 있고 집도 다시 쓸수 없겠다는 판단이 설 정도였다.

일단 닭집을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고 보니 닭들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이거야 원, 역시 우린 동물 키우는 것은 어려운가 보다 등등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맥빠져 했다.
그런데 일단 닭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날 신부님 집에서 공부하고 잔 아들 선우가 집 근처에서 닭울음소리가 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집 뒤 나무 아래서 세마리가 사이좋게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닭장 밖에 모이를 주었더니 우리가 없으면 내려와 모이랑 물을 먹고 가곤했다.

며칠 뒤에 신부님이 오셔서 함께 닭장을 수리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닭을 어떻게 잡아서 닭장에 넣어주느냐였다.
닭은 밤에 눈이 제구실을 못하기때문에 밤에 잡아 닭장에 넣어주기로 했고 세 마리인니 신부님과 나 그리고 선우가 한마리씩 담당해서 잡기로 했다.

 

세 마리가 신부님네 집 뒤 보일러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을 한마리씩 덮치기로 하고 하나, 둘, 셋 하고 덮쳤는데 선우가 잡았다가 놓쳤다.

나중에 다시 잡아  무사히 세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알은 커녕 그림자도 없었다.





알때문에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알을 낳으면 흥미로울 것 같아서 매일 둥지를 확인해도 깨끗했다.
우리에게 무슨 유정란이 굴러들어올까라며 서서히 흥미를 잃어갈 즈음 알을 낳은 것이다.
한번에 두 개씩...





신기하고 하여 꺼내다 주현이랑 들여다 보고 깨서 그냥 먹어도 보고 하니 옛날 생각이 났다.


엄마가 뜨거운 밥 가운데를 숟가락으로 파서 거기에 계란을 깨넣어주시면 간장넣고 참기름넣고 비벼먹었었다.

그렇게 하루에 두 개씩 거의 우리 가족의 입을 즐겁게 해줄 때, 신부님께서 이제는 꺼내는 것을 먹지 말고 보관했다가 나중에 암탉이 품으면 다시 넣어주라고 귀뜸을 해주셨다.


그러다보니 정말 어미닭이 품기 시작했고 보관하고 있던 알을 못넣어주었다. 품고 있는데다가 냉장고에 보관했던 것이라서...

품으면서 낳은 것까지해서 모두 8개를 품기 시작했다.



 



암탉은 죽으나 사나 품고 앉아있었다. 그 위 호수밭에서 일하다가 가보면 또 앉아 있고 앉아있고 배고플텐데 수탉이 먹여주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더 자주 가보았는데 아주 가끔 내려와 모이를 먹고 다시 올라가는 것이었다.

야콘밭에는 지렁이가 많다.


유기농이니 당연한 거지만 풀을 뽑다보면 아내가 자주 놀란다.
뱀인줄 알고, 사실 나도 가끔 놀랄때가 있다 무심결에 풀을 뽑으면 그 아래서 기어나와서 말이다.


오늘은 그 놈을 몇 마리 잡아다 닭장에 넣어주니 수탉이 알을 품느라 고생하는 암탉에게 양보를 한다.
암탉이 아주 잘먹는다.





그리니까 임신부에게 영양식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품는 날이 오래되었는데 깨어나질 않는다. 새끼가.


매일 들여다 보아도 매일 품고만 있다.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보니 15일 정도면 깨어 나온다는데 우리집 알은 깨어날줄을 몰랐다.
이제 거의 관심을 놓고 속으로 기대치도 많이 바닥으로 떨어져있던 어느날보니 어미닭있는데서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미닭은 계속 마저 품고 먼저 깨어나온 병아리는 밖이 궁금한지 자꾸 기어나오려고 하면 어미닭은 도로 날개로 끌어안고 그런다.
내가 동물을 이렇게 자세히 끈덕지게 관찰한적이 없는 것 같다.

하여간 네 마리가 깨어났다.


어느날보니 어떻게 내려왔는지 바닥으로 내려와 있다.
어떻게 내려왔을까 무지 궁금하다.


그렇게 신기해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한 마리가 죽었다.
머리를 뜯겨서 죽어 있다.


근처의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왜 죽었을까.

안그래도 다른 동물들이 침입해서 물어 죽일 것 같아서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산골에서 병아리 키우는 것은 이렇구나 싶어서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확인하고 문단속을 하고 내려왔다가 야콘밭에 가면서 또 가보니 또 죽었다.
그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죽어 있었다.


밭에 갈 기운도 안났다. 나머지도 죽이게 생겼으니 대책이 서질 않았다.

다시 밭에서 내려와 아내에게 말했더니 하루에 다 죽었으니 어차피 거기에 두면 또 죽게 된다며 나머지 두 마리를 데리고 내려오란다.
어쩌려고???

박스에서 키워보잔다.


그게 더 안전하다고...
물론 어미옆에서 자라는 것이 최상이지만 지금처럼 사망률이 높은 상황에서는 모험을 걸어야한단다.

이럴 때는 단호한다.





내가 생각해도 당분간 몸집을 키워 보내주면 어떨까 생각하며 두놈을 데리고 내려왔다.

주현이가 바쁘다.

인터넷 먼저 뒤진다.

이제부터 인터넷으로 병아리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박스를 가져오고, 박스안에 병아리들이 춥다고 신문지를 갈기갈기 찍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추위에 약하므로 패트병에 물을 뜨겁게해서 넣어주던지 전구를 넣어주던지 하여 체온유지에 조심하라고 되어 있다며 패트병에 물을 넣어 주었다.




그랬더니 꼭 패트병만 새로 넣어주면 그 옆에서 두 놈이 붙어 잔다.

생후 5일째 되는날 병아리 집을 청소해야 한단다. 똥을 쌌으니 신문지도 갈아주고 물도 갈아주고. 그러는동안 잠시 외출..
5일된 병아리이다.



주현이는 학교갔다오면 병아리를 돌보느라 바쁘다.
손님들이 오면 못만지게 해야 한다고 당부당부를 한다.
엄마도 만지지 말라고..


애들이 겁도 먹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인터넷으로 병아리를 키우고 있다.

인터넷이 시키는대로 주현이는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해보고 자기 의견을 덧붙여 두 병아리를 보살폈다.

그리고는 또 흙을 넣어주란다.
흙을 먹어야 소화를 시킨다고...

중3인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이고 더없이 신비로움 체험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태어나자마자 엄마 떨어져 5일밖에 안된 생명이니 얼마나 사람이 무서울까.
나도 들여다만 봤지 만지지않았다.


그런 주현이는 인터넷에서 계란을 삶아 노른자만 주라고 했다며 계란을 삷는다.

정말 보니까 잘먹는다.
그런데 그것두 너무 오래 먹이면 안된다며 하루에 반개만 주라고 지엄마에게 부탁한다.





주현이는 가끔 넓은데에서 운동도 시켜야 한다며 꺼내준다.
똥도 닦아주는 주현이다.
 

내가 물을 갈아주려고 하면 겁을 먹고 막 두망가는 녀석들이 주현이가 손을 내밀면 닥아와서 같이 논다. 신기하다.




주일에 성당에 다녀온 주현이가 병아리들이 이제 어미품으로 돌아가는 연습으로 바깥세상 적응훈련을 해야한다며 데리고 나간다.
꽃밭에서 적응훈련 첫째날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것을 쓰는동안 나 반성많이 했다.
귀농전 아이들이 어려서 내가 이렇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키웠다면 아내에게 상받았을 것이다.
안그래도 아내가 애들 어려서 기저귀 갈아준 것이 다섯 손가락도 남는다고 심심하면 그 레파토리를 꺼내는데 사실이니 난 할말이 없다.


그래도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자면, 그때 소장이 되기 전이니 물불 안가리고 일할 때다.


그러다 소장이라는 완장을 어린 나이에 채워주니 더 목숨걸고 일하고...
그렇게 일한 것에는 조금도 후회없다.


남자로 태어나 내가 한 직장생활의 모습이 나로서는 아주 최선이었고 만족한다.
그래서 이사님께 사표를 낼 때도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쏟을 시간이 없었다.


목에 넥타이줄 매고 다니는 직장인 아빠들이 많은 부분 그랬다고 위로도 해본다.

다른 아빠들처럼 달콤한 아빠가 되어주지 못했는데도 아내는 바가지 긁지않고 참아주어 그게 요즘 고맙다.
귀농을 안했으면 아직도 이런 반성을 못했을 것이다.


암만 그래도 그 놈의 다섯 손가락 기저귀 얘기는 좀 안했으면 좋겠다. ㅎㅎ

1탄은  여기까지다.


더 하면 날짜도 엉키고 이제 잘 적어두었다 2탄에서 성장기를 보고하겠다.

내가 귀농일기도 이렇게 자세히, 여러 날의 상황을 적어가며 이렇게 순서를 정해 쓰지못했는데 뼝아리들때문에 이런 경험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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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자고 막무가내로 주동한 초보농사꾼 박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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