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저녁을 지어먹고 나무 보일러의 불꽃 상태를 보려고 밖으로 나갑니다.
주위는 검으티티한데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봅니다.
어둠으로 인해 눈은 까막눈이지만 나무들이 옷을 벗어 제 발등을 덮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하염없습니다.
장작 하나 집어넣으려던 나도 하염없이 서서 그 소리에 귀를 씻어냅니다.
나도 하루살이처럼 코 앞의 일에 헉헉거리고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긴 겨울 발등 덮을 것을 미리미리 장만해야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무의 성은이 하해와 같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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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인 아버지가 자식 공부시킨다며 온가족을 데리고 한양으로 갔을 때, 할머니 심정이 어땠을까를 왜 지금 사무치게 느끼는걸까요.
나이를 먹는가 봅니다.
내가 나이 먹는 것을 이제는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손자, 손녀가 여섯이나 되는 대가족이 살갑게 살다 훌쩍 떠나보냈으니 얼마나 가슴이 휑하셨을까요.
내가 딱 그 처지가 된 것처럼 가슴에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할머니는 봄부터 여름까지 더 정확히 여름방학때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손자, 손녀들이 내려오면 보여준다는 이유 하나로 그 큰 꽃밭을 진종일 지어다니셨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서 그만한 꽃밭(땅 적은 집 밭만했지요.)을 가꾼다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심고, 풀 뽑고, 함석 물조리개로 물주며 그곳에 치성을 들이셨습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특유의 향기를 내뿜으며 할머니와 함께 우리를 기다렸지요.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그 꽃밭은 황금 밭이 되어 지금도 내 가슴 한 켠을 도백하고 있다가 내가 힘들 때마다 특유의 향기로 나를 치유해주곤 했습니다.
난 지금 농사를 지으면서 내 능력에 부치는 꽃밭을 갖고 있습니다.
내 할머니의 꽃밭에 비하면 쨉도 안되지만...
할머니가 삭막한 서울로 가버린 손자, 손녀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가꾸셨듯이 나 또한 귀농할 때, 얼떨결에 따라 내려온 내 아들, 딸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경영은 내가 몇 년을 머리 싸매가며 전공한 ‘이윤추구’를 위한 경영이 아니고 ‘행복추구’를 위한 경영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을 잘 안배하고, 눈높이와 땟깔도 배려하고, 꽃의 모양새도 고려하면서 꽃을 키웠던 나의 할머니를 흉내내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보니 내 할머니와 똑같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찌 아이들을 위한 공간만이겠는지요.
그곳은 내 영혼이 지쳤을 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고 있고, 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임희숙의 노래 가사처럼 ‘등이 휠 것같은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또한 이곳입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시아 어느 시인은
"내게 은전 두 닢이 생긴다면 그 중 한 닢으로는 빵을 사고, 나머지 한 닢으로는 내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고 했듯이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최우선순위를 둔 것뿐입니다.
난 말이예요.
고2, 중3인 산골아이들이 우리집의 코스모스가 제일 아름답다고, 우리집의 국화가 제일 이쁘다고 하면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럴 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래, 아가들아! 눈에, 가슴에 찐하게 담아두렴.
그리하여 니들이 험한 세상 살아갈 때 한 자락씩 꺼내 보며 위안을 삼으렴.
그리고 엄마가 엄마의 할머니로부터 보고 배웠듯이 너희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너희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늘 생각하렴’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