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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_해당되는 글 139건
2009.10.11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아버지로부터의 꿈 
2009.10.10   귀농일기--안동교구 귀농가족이 다 모였다. 
2009.09.27   귀농편지--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벗들에게 쓴 편지 
2009.09.11   귀농풍경--귀농정보 하나 알려드리려구요. 
2009.09.11   귀농풍경--산골소녀의 간식은 이렇게 익어갑니다. 
2009.09.07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니가 이렇게 컸구나." 
2009.09.03   귀농일기--왜 자살했을까?? 
2009.08.2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의 미니 번개 
2009.08.13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2
2009.08.12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물고기 사랑을 기억해다오. 1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아버지로부터의 꿈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10. 11.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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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상세보기
버락 오바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오바마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1961년 8월 4일 아프리카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와 하와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낸...



자서전을 읽는 데에는 자신이 스스로 간 길에 대해 스스로 느낌과 반성, 후회, 그리고 알찼던 시간들, 환희에 찬 순간들을 직접 듣는다는데 큰 장점이 있다.
그래서 사실 자서전을 보면 읽고 싶어진다.

 

저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길을 갔을까...

다른 평가하여 쓴 글과 자서전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시간을 투자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번번이 자서전을 읽으며 실망을 한다.


기대가 큰 탓도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 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다 대통령이 되면서 다시 세상의 관심을 받고 너도나도 오바마에 관련된 책을 출판하고 거기에 흥미와 관심을 보인 독자 덕분에 그에 관련된 책은 최소한의 비명을 지르며 팔려 나간 것으로 안다.

나 역시 두 가지 점에서 이 책을 샀다.

 

첫째, 선우, 주현낭자에게 어떤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불가능이란 말이 어디까지가 불가능인지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배우게 하고 싶어서였다.

둘째,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면을 더불어 배우고 싶어했던 터에 나랑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너인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에서 추천한 도서라서 더더욱 신뢰를 갖게 되었다.

 

먼저 선우가 보다가 시험기간이 되어 잠깐 놓은 사이에 내가 먼저 읽었다.
왜냐 하면 그래야 애들이랑 대화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대화를 이끌 수도 있지만 애들이 조금의 관심을 보일 때 내가 읽었으면 바로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읽던 책을 뒤로 밀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의 분량도 만만치 않았다.


713쪽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니 말이다.

어떤 책이든 전혀 도움이 안되는 책이란 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들이 아까운 시간과 세상의 관심, 그리고 나의 관심과 책값 등을 고려하여 본다면 한 마디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누구나 책을 읽고 감동적이다 , 아니다의 기준은 없기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간단히 얘기를 하면 너무 세세하다는 거, 굳이 그런 내용이 없어도 되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많이 페이지를 갖고 있는데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점이 신기하다


 


자서전이면 어려서부터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의 사진이 단 한 장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표지에 실린 작은 사진 세 장이 그 책의 사진 전부다.

 

물론 사진이 많아야 자서전이고, 없으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서전은 말 그대로 내가 살아온 발자취이고 독자들에게 중간중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서전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선우에게 넌 다 읽지 않았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말했더니 안해도 될 말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단다.
최근에 읽은 또 다른 자서전도 엇비슷한 느낌이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 관련 책을 한 권은 사주려고 했었는데 다른 책을 골랐었다가 '지식인의 서재'에서 추천한 도서라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었던 것이다.

 

그래도 선우, 주현에게 읽힐 생각이다.
지금 읽고 싶은을 먼저 읽고 나서 한번 둘러 볼 수 있도록 중간중간 냄새를 풍겨주어야겠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안동교구 귀농가족이 다 모였다.
+   [귀농일기]   |  2009. 10. 10. 15:12  

2009년 8월 20일

 

내가 다니는 성당은 울진성당이고, 안동교구 소속이다.
안동교구에서는 해마다 두 번씩 안동교구 내에 귀농한 가족들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
주선 수준이 아니고 권혁주 요한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 속에 귀농한 가족들이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특강을 듣고 있는 귀농가족들))

 

그런데 매번 주로 춘양, 봉화에서 모임을 갖게 되어 아쉬움이 있었다.
주교님이 바쁘신 일정 중에도 늘 함께 하시어 미사도 주시고 함께 점심을 나누며 귀농가족의 어깨를 감싸주시는데 늘 엇비슷한 장소에서만 모임을 갖다 보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었다.

 

울진에 귀농한 가정도 궁금하실 것이고, 상주, 영덕 등의 다른 지역 귀농자들의 사는 모습도 궁금하실 것같았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졌던 때는 우리가 집을 짓지 못한 상태라 장소가 협소하여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그러다 작년에 새집을 짓자마자 아내와 의기투합하였다.
이번 ‘귀농가족 모임’은 주교님과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귀농한 많은 분들을 모시고 우리집에서 하자고...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시키지도 않은 손을 번쩍 들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저 서로 귀농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만 했다.

 

 

 

 


((▲ 그 많은 인원의 식사를 담당하신 울진본당 성모회장 솔란치아 형님과 남루시아 형님))


 

그날이 어제였다.

사실 한참 전부터 걱정이 된 건 사실이다.
우선 날씨가 걱정이었다.


올 봄부터 여름 내내 비가 왔다.
정말이지 하루 빤한 날이 없었을 정도였다.

 

만약 넓지도 않은 집인데 비라도 오면 어떻게 하나...
그리고 그 인원의 식사를 어떻게 준비하나 하는 걱정 등이었다.

 

 

 


((▲ 미사초보농사꾼))

 

그러나 첫 번째 고민은 내 소관이 아니고 하느님 소관이니 그분께 맡겼다.
그리고 식사는 울진본당의 성모회에 부탁을 하였다.

며칠 전에 행사장 주위의 풀을 뽑기 시작했다.


밭의 풀은 못뽑아도 여기는 뽑아야 한다며 아내가 몇며칠 들러붙어 풀을 뽑았다.
나는 주차장으로 쓰일 아랫 마당을 포크레인 공사를 하여 번듯한 주차장을 만들었다.


내가 한 게 아니고 늘 하늘마음농장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주는 김승하님의 손을 빌렸다.
이 기회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 미사중이신 안 상기 신부님))

 

그리고 주차장 주위의 플라스틱 박스 등을 치우고 하다보니 날짜가 코 앞으로 닥아왔다.
며칠 앞두고 울진성당에 세레스를 가지고 가서 천막 그리고 식탁으로 쓰일 길다란 상과 의자, 그릇류를 한 차 싣고 왔다.

마당에 내려놓으니 이제 행사가 임박했음이 실감났다.

아내는 풀을 뽑다 벌에 물려 이마가 퉁퉁 붓고 얼굴이 부어 내일이 행사라며 울상을 지었다. ㅎㅎ

 

 

 

 


((▲ 본 메뉴가 나오기 전))

 

하루 전날 밤, 우리 부부는 마당을 서성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는 많은 분들이 참석하신다는데 혹여 식사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어쩌지도 못하는 시간, 그저 의미있는 행사가 되기만을 빌기로 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오시는 분들이 찾아오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마을 입구와 다리결에 행사 표시판을 설치했다.
그리고 주차장 주위를 정리하는데  안 신부님과 도미니카 수녀님이 일찍 오셨다.

 

두 분을 뵈니 이제 행사가 시작되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 안동교구 사목국 도미니카 수녀님과 울진성당 미카엘라 수녀님도 팔을 걷어 부치시고...))

 

드디어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했다.
정말 이번 행사에는 많은 분들이 오셨다.
나중까지 오신 분들 모두 해서 약 70분이 참석하신 것으로 안다.

 

9시 30분부터는 접수가 시작되었다.
전원이 이름표를 달아 서로 이름을 확인하고 인사를 나누도록 수녀님이 준비를 해오셨다.

그 다음에는 일일이 사는 곳과 가족소개를 하며 그간의 반가운 얼굴들을 확인했다.

 

 

 


((▲ 울진이 자랑하는 섹스폰

연주자 장진환 님))

 

10시부터 울진지역자활센터 관장인 황천호 관장님의 ‘바람직한 유통망을 위한 전략’이라는 특강이 있었다.
천막 아래 뜨거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는 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애석하게도 주교님이 바쁜 일이 갑자기 생기신 관계로 참석을 못하시고 대산 안 상기 신부님이 미사를 드려주셨다.

안 신부님은 이번 ‘교구설정 40주년 기념 행사’에 대한 주교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셨고, 행사의 성격과 자세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다.

이제 식사시간...

 

 

 

 


((▲ 봉화신부님과 두 분의 수녀님이 오셨고, 서면의 면장님도 오셨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오t셔서 울진성당 솔란치아 형님과 남 루시아 형님은 땀을 비오듯하며 그 많은 분의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며칠 전에 김치도 담아주셨고, 장날에 장도 다 봐주시어 우리 부부가 행사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회덮밥이었다.
회값이 녹녹치 않았지만 울진하면 바닷가를 떠올리는데 회를 하기로 했단다.

 

 

 

 


((▲ 귀농가족의 즐거운 모습))

 

회덮밥과 떡, 잡채, 전, 회 안주 등등을 준비해 주셨고 우린 마당에서 맛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친교의 시간에는 울진에서 유명한 장진환 섹스폰 연주자를 초청하여 섹스폰 연주를 감상했고, 형제, 자매님들의 노래솜씨도 들을 수 있었다.

 

이럴 때 신부님과 수녀님의 노래솜씨를 못들으면 귀에 가시가 돋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무대로 모셨다.

 

 


((▲ 산골 안주인인 아내도 한 곡 ))

 

나중에 봉화의 신부님과 수녀님 두 분도 행사를 보시기 위해 오셨다.
더운 날 먼길 오신 신부님, 수녀님께 감사한 마음이었다.

또 내가 사는 서면의 남치우 면장님도 오셔서 행사의 흥을 돋워 주셨다.

 

 


((▲안 신부님도 마이크를 잡으시고 ))

 

울진의 산골에서 울려퍼지는 섹스폰 소리...
그동안 흙묻히고 살던 우리 귀농인들의 마음을 만져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섹스폰 소리를 들으며 그간의 농사이야기며 가공이야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귀농가족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 서로 부등켜 안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
서로 같은 생각으로 자연으로 돌아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 귀농인들...

 

 

 


((▲ 늘 귀농가족 모임을 준비하시느라 바쁘셨던 도미니카 수녀님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다시 힘찬 날들을 위해 파이팅을 하고 악수를 나누며 앞으로의 날들에 힘을 실었다.

어려운 점도 많았고, 힘든 점도 많았고, 상처도 많았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랬는데 내 바램대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반가운 모습들이 눈에서 멀어지고 우리는 다시 내년을 기약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 울진에 와서 알게 된 분인데 무지 마음이 따뜻하고 하늘마음농장을 아껴주시는 분이다.))

 

안동교구 모든 귀농인들이 돌아가고 우리 둘은 마당을 한참 걸었다.
부족한 점이 많았겠지만 행사에 최선을 다해서 마음이 참 좋다고 서로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 전체 사진을 찍었다. 그 이전에 사정상 가신 가족들이 있어 모두 함께 찍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귀농생활도 이처럼 가슴벅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참 귀농인들과 함께 했던 마당을 서성였다.

(그날 경비는 안동교구에서도 주셨고, 참석하신 가족당 만원씩 걷은 것으로 충당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로!!

 

귀농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프란치스코


 
 
        

 

귀농편지--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벗들에게 쓴 편지
+   [산골편지]   |  2009. 9. 27. 16:01  


2009년 9월 어느 가을날


친구인 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이 편지를 씁니다.
EBS FM 생방송 인터뷰 선약이 있어서 초보농사꾼과 함께 서울에 갔던 것입니다.

저를 양재동 방송국에 강아지가 똥을 떨구듯(^^) 그렇게 떨구고
"잘해!"라는 말도 부록처럼 붙여 떨구고는 볼일 보러 가더군요.
뭘 잘하라는 말인지...^^


초보농사꾼이 안산에서의  볼일을 다 보고  벗들을 만나 점심 한 끼 하러 간다고 전화했을 때는 방송 일도 다 끝난 시점이었지요.
그리고 난 친정으로 갔습니다.
엄마 얼굴 잠깐 보려고...

풍으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하셔서 시원찮은 발을 끌고는 운동하러 가시고 안계셨습니다.
운동에서 돌아오신 엄마와 짧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미리 연락을 안했습니다.

혹여 못가게 되면 엄마는 눈이 빠져라 막내 딸을 기다리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제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으십니다.


산골로 간 딸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실 것입니다.

짧은 만남으로 인해 서운한 마음을 있는대로 구겨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습니다.
서둘러 본가로 가려구요.


벗들과 점심을 먹고  온 초보농사꾼을 본가에서 만나 산골로 내려오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입니다.

전철 안에 있는데 담배갑만한 물건이 주머니에서 딥다 흔들어대더니  그의 목소리를 전달해 줍니다.
내용인즉, 점심때 얼굴 못본 벗들과 술 한 잔 하기 위해 저녁에 다시 만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옳커니, 올 것이 왔구나'했지요.


왠지 아세요?

제가 산골을 뜰 때, 여행 가방 하나를 챙겼습니다.


그 가방엔 초보농사꾼 추리닝, 양말 한 켤레, 칫솔, 그리고 내 분칠 도구(화장품 세트^^), 나도 집에서 입는 옷 그렇게 챙겼습니다.

산골을 떠나며 당일 내려오기로 둘이 약속했지만 오랜 벗들과 술 한 잔 하는 호사를 그이에게 누리게 하고 싶은 마음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귀농하니 철이 들어 이런 머리는 절로 잘 돌아갑니다.

생전 안해 본 농사를 하느라 손에 못이 박힌 초보농사꾼.
아이들에게 자연을 벗삼아 주고, 아이들의 친구되어 준 초보농사꾼.


성격에 안어울리게 귀농하고는 아내의 눈빛이 촉촉한지, 생기돋는지까지 파악하며 살고 있는 초보농사꾼에게 그쯤은 당연한 일이지요.

굳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래서 전철 안에서 쿨하게 "OK" 하고는 용수철 튕겨나듯 전철에서 튕겨져 내렸습니다.
이왕 산골로 못내려 가게 되었다면 산골아이들의 영혼을 기름지게 해 줄 책을 고르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는 전철을 바꿔 탔지요.

초보농사꾼은 열 명이 넘는 벗들과 즐거운 시간(술에 촉촉히 젖는 시간이었겠지요^^)을 보내고 새벽에 본가로 왔더군요.

그의 얼굴엔 나도 잘 알고 있는 벗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참 건강한 모습이지요.(술에 떡이된 모습을 건강한 모습이라고 하는 이유는 알지요?)

다음 날, 어머님이 챙겨주시는 항아리를 한 차 싣고는 초보농사꾼이 저에게 벗들 얼굴 잠깐 보고 점심도 먹고 가자고 합니다.
벗이 운영하는 방구리 토종 순대국집으로 갔지요.


거기서 세 명(한봉씨, 송철씨, 병화씨)의 벗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난 초보농사꾼의 벗들이 제 친구인양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 동갑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결혼 전 데이트할 때부터 함께 만나 와서  그런 것같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내 친구처럼 굴 때가 많은데 그 점은 불쾌하게 생각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 날 따뜻한 점심도 잘 먹었고, 아이들 맛있게 먹이라며 싸준 순대국도 잘 먹였습니다.


산골로 내려 올 일이 급해 오랫만에 산골에서 벗이 왔다며 모여준 나머지 벗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온  미안한 마음을 초보농사꾼 얼굴에서 읽었습니다.


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인사 전합니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 명대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인 뤼신우라는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인격을 향상시키고 일을 배우는 때는 청소년기이고,
도리를 분간하고 인격을 완성시키는 때는 중년기이며,
실제로 인(仁)과 의(儀)를 체득하는 때는 만년에 이르러서부터라고 했더군요.


이제 중년이 된 우리들.
주제넘은 소리 같지만 도리를 분간할 수 있도록,
인격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서로의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더러는 유리 파편보다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곧추 세워 주고,
더러는 흙집 아랫목보다 따사로운 말로 처진 벗의 어깨를 감싸주는 서로의 도반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늦은 밤에 산골에 도착했습니다.
오래 몸담고 살았던 서울에서 묻혀온 추억들도 소중히 짐과 함께 내려 놓았습니다.


벗이여!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주절이 주절이 세 치 혀로 나불대기 보다는 아래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라는 책의 한 대목입니다.


참으로 좋은 글이라 작은 공책에 적어 놓고 자주 들여다 보며 마음을 맑히는 구절입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선방에 가면 신발벗는 곳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표찰이 있습니다.
신발 벗는 섬돌에서 자기 발 뿌리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과연 내가 오른 이 자리에서 출가수행자로서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라는 교훈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저로서는 출가수행자로서가 아니라 자연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으로, 자연을 벗 하고자 들어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늘 살피며 살려고 합니다.
벗의 모습을 지켜봐 주십시오.


친구를 대신하여 아내가 남편의 벗들에게 쓴 편지글은 어느 책에서도 본 적이 없어 부끄러움도 있지만 오랫 동안 함께 만나와서 이런 용기도 내어 보니 이해해 주십시오.

조금 있으면 송이 철입니다.


가뭄이 심해 씨도 안보이지만, 그 놈이 보이면 연락하겠습니다.
그때는 벗들도 바쁜 하루의 짐을 내려놓고 산골에서 소나무 향기 말아넣은 막걸리 한 잔 합시다.

산골의 또 다른 나의 도반인 코스모스가 지기 전에...



 

그대들!
언제나 초보농사꾼의 든든한 벗이 되어 주어 고마운 마음 전하며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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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초보농사꾼의 아내 배동분 소피아



 
 
        

 

귀농풍경--귀농정보 하나 알려드리려구요.
+   [산골풍경]   |  2009. 9. 11. 17:05  

요즘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귀농한지도 10년차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송을 보고, 잡지 등을 보시고 찾아오시거나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국에서도 메일로 귀농 상담을 요청하기도 하고, 귀농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한 가족의 삶의 방향, 가치관의 방향을 바꾸고 재정립하는 것이 귀농. 귀촌이다 보니 상당을 해주는 우리 부부 역시 여간 신중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던중 농민신문에 난 공지를 보고 혹여 이 정보를 못보신 분들이 계실까 해서 올려 봅니다.

 

▲ 지난 8월 하늘마음농장에서 있었던 안동교구내 즉, 봉화, 영덕, 상주, 영주, 울진, 안동 지역의 귀농가족 모임 사진입니다.


농업인재개발원에서

농림수산식품부와 함께 안정적인 귀농. 귀촌 컨설팅 및 멘토링 수요자 선정을 하고 있습니다.

자격은 귀농희망자 및 2004년 이후 귀농자라고 하네요.

요즘 귀농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답답한 마음으로 저희 하늘마음농장에도 많은 문의를 해오시는데 한번 사이트에 들어가 보시고 정보를 얻으셨으면 합니다.

신청 접수 기간은 2009년 8월 18일부터 9월 13일 일요일까지네요.

비용 등 자세한 사항은 농업인재개발원에 문의 하시면 됩니다.

www.agriedu.net 입니다.

문의 전화는 농업인재개발원 교육지원팀 귀농.귀촌 담당자 031-460-8984

아무쪼록 좋은 정보를 얻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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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풍경--산골소녀의 간식은 이렇게 익어갑니다.
+   [산골풍경]   |  2009. 9. 11. 16:27  

 

울진의 오지 하고도 산골귀농하고 좋은 점이야 억수로 많지만 그 중 하나는 간식을 들판에서 거저 얻는다는 거다.
들판의 주인은 자연...

산딸기며, 오디며, 인동꽃이며 째진 눈을 크게 뜨고 보면 하염없이 퍼가라고 가슴펴고 기다린다.

새로 집을 지으며 포도나무 두 그루 심었다.


첫해는 죽지 못해 몇 송이 열리더니 올해 뭣도 모르지만 "전지 가위 휘날리며" 가지치기도 해주고 말도 걸어주고 했더니
제법 송이가 탐스럽게 매달렸다.

처음에는 쥐젖만한 알맹이가 매달리기 시작한다.
작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자연의 그 신비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긴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면 지들이 먼저 이렇듯 작은 손으로 인사를 한다.
그 인사에는 다른 이기심도, 감정도 들어있지 않으니 그들에게서 순수함을 배운다.

그렇게 생색내지 않고 제 몸을 키우는 자연
이젠 제법 몸집이 커졌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조금씩 날씨가 을씨스러워지면 이들 또한 제 몸을 다시 한번 단장한다.
내가 보기엔 그들도 한 해 갈무리를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기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귀농 아낙 또한 밭에 엎드려 일하느라 잠시 관심을 못주었어도 이렇게 제 몸을 숙성시키고 있다.
사람보다 낫다.
이제 숙성이 다 되었다며 내게 귀뜸을 해준다.


거저 얻는 자연의 선물


왠지 손을 대고 후두둑 후두둑 떼기가 미안스러워 고맙다는 인사를 건냈다.
잘 먹겠다고,,, 우리 산골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이쁜 손에 너를 올려주겠노라고 얘기를 하고 땄다.

학교에서 돌아온 산골소녀에게 포도랑 개복숭아 세 조각을 빗어 건냈더니 감탄을 한다.
벌써 이렇게 익었냐고...

중3인 산골소녀 볼에도 두어 개 난 여드름 옆으로 기쁨이 돋아난다.

귀농...
이 아름다운 귀농의 선물을 산골소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 속 보석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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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니가 이렇게 컸구나."
+   [산골편지]   |  2009. 9. 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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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6일


여름백수(여름방학) 기간 동안 서울의 네째 이모네 집에 갔던 산골소녀 주현 낭자가 어제 산골로 돌아왔다.
이모네 집에서 하루 전날 철수(?)하여 친할머님 댁에서 하루를 잔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 서울갈 때부터 계획한 거란다.


이제는 할머님댁에 가라 마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챙긴다.
짐이 많아 힘들텐데도 할머니댁에 왔다고 전화가 왔다.


할머니와 하룻밤을 자고 산골로 오는 버스를 탄 것이다.
면까지 초보농사꾼이 데리러 갔다.

백산님 부부가 와 있었기 때문에 저녁을 함께 먹고 늦은 시간에 헤어졌다.


수요일에 '안동교구 귀농가족모임'을 하늘마음농장에서 하기로 되어 있어서 준비도 해야 하기에 내 일을 계속 하는데 손님이 가시자마자 주현이가 작은 꾸러미를 내민다.

풀어 보니 옷이다.


눈물이 핑 도는 옷이다.

옷이 비싸서가 아니다.


그 옷은 사연이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사연...

지난 주에 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갔었다.
주현이는 이모네 집에 먼저 가 있었고, 볼일을 보고 시간을 내어 주현이랑 쇼핑을 했다.

옷이라도 사준다고 하면 무조건 됐다고 하는 주현이.


한창 멋부리고 싶은 나이에 철이 일찍 들어 이것 저것 사달라고 한 적이 없는 딸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라 주현이 눈이 가는 옷을 사주었다.


그리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쇼핑을 하는데 귀여운 옷이 있기에 한번 입어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가게를 나왔다.


옆에서 엄마 왜 안사냐고 하는 주현이...
"음, 뭐...작을 것 같기도 하고... " 그렇게 얼버무렸다.


다음 날 주현이와 헤어져 산골로 내려오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전철을 탔는데 문자가 왔다.


"엄마, 어제 그 옷 엄마에게 어울리던데 왜 안샀어?"

"음, 좀 비싸더라."
며 그땐 생각없이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주현이가 그게 어제부터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물어오는 거다.


말수가 많지 않은 놈이라 이 정도면 많이 생각하고 던지는 질문이다.

그 문자를 보는데 어찌나 뭉클하던지 전철 안에서 눈물이 주루룩...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이럴 때 제어기능, 통제기능의 약발이 떨어진다는 거다.

나는 참으려고 해도 눈은 그 눈치를 못챈다.
주루룩...


손수건으로 땀닦는 시늉을 하며 눈을 꾹꾹 눌렸다.
그러나 마음은 수건으로 꾹꾹 누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컸구나....'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산골에서 어디 갈 일도 별로 없고, 이모들이 사보낸 옷만해도 넘쳐난다...."등등,

그렇게 내가 산골로 왔고 어제서야 주현이가 산골로 왔다.


그런데 손님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선물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랑 쇼핑을 했던 거기까지 한참을 가서 바로 그 집을 찾아 그 옷을 사온 것이다.
내가 입어보고 그냥 나왔던 그 옷을...


다른 사람이 사갈까봐 점심도 안먹고 부랴부랴 다음날 거기에 가서 샀단다.

"엄마, 이 옷 맘에 들어했지?"


이제 엄마 마음속까지 투명하게 읽고 그 마음에 보탬이 되려 행동하는 주현이..
중3이면 묻는 말에 대꾸도 안하고, 부르면 지 방에서 문도 안열고 왜 그러느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할 나이라는 중3.


"엄마, 입어 봐."


난 손님이 가시고 행사 준비로 빨래를 삶고 하던 손을 놓고 옷을 아이처럼 입어 보았다.
아주 잘 맞는다며 우리 주현이가 더 좋아한다.

주현이를 안아 주었다.


'우리 주현이 애기 때, 우리 주현이를 맡아 길러주셨던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했을 때, 그럴 수 없다며 사표를 내던졌던 때, 그 때 다짐대로 우리 주현이를 키웠는지....


내 일도 중요하고 직장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따사롭게 잘 키워야 한다는 다짐으로 사표를 던졌던 그 다짐대로 우리 아들, 딸을 키웠는지...

미안하기만 한데 너는 커서 이렇게 엄마 마음을 읽는구나.
나 너의 마음을 얼마나 읽고 응답해 주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거봉포도가 목구멍에 걸린듯 순간 꽉 막힌다. 목구멍이...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산골의 두 남자 박씨가 막 야유를 보낸다.


"주현아, 아빠도 이쁜 옷 입고 싶은데...."


"주현아, 오빠 선물은 없냐? 이모들이랑 할머니한테 앵벌이해 온 용돈 반띵하자.^^"며  데모를 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늦은 밤에 차를 마셨다.


네 잔의 찻잔에 그려진 핑크빛 꽃들처럼 가슴 속에는 들이 만발한 화원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귀농하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이 있었을까....


아마도 초보농사꾼은 애들 볼 시간도 없이 빠듯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아이들이 자고, 초보농사꾼도 자는 시간.


혼자 깨어 딸아이가 부랴부랴 다시 가서 사온 그 옷을 또 입어 보았다.
그곳으로 뛰어가느라 헐떡여서인지 옷에서 딸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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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왜 자살했을까??
+   [귀농일기]   |  2009. 9. 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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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부터 산골아낙이 컴퓨터 책상 앞에 책을 한 권 올려놨다.
인간과 대지를 연결하는 한 농부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담은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라는 책인데 요즘 하도 피곤해서 책 한권 보지않는 나를 위해서 이것만은 꼭 보라는산골아낙의 시위인 것 같다.


소개글을 보니 삶의 근원인 대지,생명을 경외하는 농부의 마음을 진솔하게 담은 것 같아 꼭 시간을 내서 아니 시간이 없더라도 반드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선우가 학업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도 가끔씩 혼자서 산골주위를 산책하곤 했지만 최근엔 그 횟수와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고2의 학생이 받는 학업스트레스가 오죽하려니 해서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애비의 마음도 타 들어간다.

지난 주일의 일이다.그날도 산골을 산책하다가 들어온 선우가 근심에 찬 얼굴로 들어와서는 묻는다.


“아빠, 거북바위옆 포장도로에 지렁이들이 올라와서 자살을 하는 것 같아요?”


근심어린 얼굴이 걱정되어 같이 올라가 보니 정말로 지렁이들이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말라 비틀어진 것도 있고 마지막 남은 목숨 살려보려고 바둥거리는 지렁이들도 보였다.


다른 땅의 지렁이들은 땅 속에서 잘 지내고 있는듯한데 유독 새로 포장한 바로 그 길이만큼만 지렁이들이 목숨을 놓은 것이다.

토양에 지렁이가 많이 산다는 것은 토양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바로미터인데 이 토양에서 지렁이가 탈출하다가 죽는다면 분명히 이 근처의 토양생태계가 나빠졌다는 암시인데 걱정이다.
그렇다고 화학비료나 농약을 친 것도 아닌데….


이 산골처럼 청정한 곳에서 지렁이가 살지 못한다면 …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선우의 진지한 모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 심각한 표정을 나누어 가졌다.

귀농 전같았으면 피곤하니까 대충 대답을 하고 말았거나 아니면 귀기울일 여유도 없었을테지만 귀농하고의 삶에서 이런 일을 하루의 시간을 종일 바쳐도 아깝지 않은 그런 대화꺼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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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아낙과 주현이는 먼저 성당을 갔고, 선우와 단 둘이 세레스를 타고 미사를 보러가면서 지렁이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세레스의 그 화통을 삶아먹은듯한 소음에 더 큰목소리로 토론을 벌이자니 목구멍이 다 컬컬해졌다.

선우가 생각하는 지렁이들의 자살이유는 이랬다.

첫번째는 거북바위 옆 밭에는 해마다 고추와 야콘,상추나 푸성귀를 심었는데 올해 아빠가 소나무와 개복숭아 묘목, 천년초 등을 심는 바람에 고추와 야콘만 보아온 지렁이가 자기가 동네가 아닌 줄 알고 착각하고 이사 가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

두번째는 원래 시멘트 포장을 하기 전에도 그 길은 지렁이가 자기처럼 산책하는 산책길이었는데 시멘트포장을 해서(시멘트 포장은 작년 가을에 했음)그걸 모르고 3미터나 되는 시멘트 포장길을 횡단하다가 힘이 빠져 죽었을 가능성

세번째는 아빠가 심어놓은 소나무 골 사이에 잡초 방제용 검은색 부직포를 깔아놔서 너무
어둡고 칙칙해서 따뜻한 남쪽나라 찾아가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 등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산골소년 나름대로 심각하게 이유를 나열했지만 나로써는 수긍할 수가 없어 일단 좀더 정밀 조사를 해 보기로 하고 밭을 둘러 보았다.

우리 산골은 밭 바로 옆에 흐르는 실개천의 물을 그대로 모아서 식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농약이나 비료는 커녕 밭에서 일하다 오줌 싸는 것 까지도 조심을 하는데 이유가 뭘까를 고민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천년초

집에서 키우면서 식구들 먹으려고 심어놓은 토종선인장이라는 천년초가 범인인 것 같다.
모든 선인장이 가시가 있지만 이 천년초의 가시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미세하다.


바람에도 날라와 사람의 몸에 닿으면 여간 따갑고 가려운 것이 아니라 작업이 아주 힘들다.
가시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거하기는 더욱더 쉽지 않다.

천년초의 절반은 땅 속에 묻혀있고 나머지는 위에서 자라는데 이 가시가 지렁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한 원인인 것 같다.

아내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선우의 말대로 새로 시멘트 길을 연결해서 그 부분에서만 지렁이가 죽었으니 아마도 시멘트 길 아래의 지렁이들이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크단다.
우리 주현이도 거기에 끄덕이는 모양이고...

하여간 나는 천년초 가시가 손과 발도 없는 연하고 습한 지렁이 몸통에 붙었으니 답답하고 괴로워서 어떻게든 제거해 보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시멘트 포장에 까지 올라와서 죽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금더 지켜본 다음에 지렁이를 살릴 것인지 천년초를 살리 것인지를 결정해야겠다.


왜냐하면 산골소년이 주말에 오면 또 지렁이들의 목숨을 살필 것이고 그동안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귀농주동자로서의 얼굴도 서지않으니 말이다.

이거 농사지으랴, 아들의 호기심때문에 지렁이 자살 방지하랴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그래도 난 산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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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서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의 미니 번개
+   [산골편지]   |  2009. 8. 25. 17:50  


2009년 8월 10일

서울에 갔었다.
두 번째 책 내는 일로 출판사도 가야 했고, 과천에 있는 농수축산부에 들릴 일도 있고, 다른 일도 볼겸해서 나섰다.

산골을 한번 뜨려면 이런 저런 일들이 걸려 미루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다.
이번 서울행은 이틀 예정으로 떴는데 사흘이나 있다가 오게 되었다.
우리 산골소녀 주현 낭자랑 시간을 보내느라 그랬다.
오랫만에 갖는 둘 만의 쇼핑 시간.

무엇을 사서가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도 말하고, 우리 주현이가 좋아하는 것도 말하고, 그렇게 몇 시간 함께 한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일을 보는데 미니 번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하늘마음농장을 사랑하는 분들이 두 번의 번개를 가졌었다.
한 번은 '청계천 번개'였는데 그때는 우리가 참석도 하지 못했는데들 모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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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후기를 읽고 얼마나 고맙고, 가슴벅찼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 번개 때에는 부부 중 한 사람만이라도 꼭 참석하리라고...

그리고 한참 후에 '삼성동 번개'가 있었다.
그때는 초보농사꾼이 참석했었다.
고마운 분들이 많이 나오셨고, 초보농사꾼도 돌아와 설명해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이른 봄에 울진 산골에서 번개를 했었다.
그 바쁘신 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하룻밤을 보내시고 가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울진 번개 때에 마침  일이 있어 못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셔서 늘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살았었다.
그러다 이번 서울에 갔을 때 문득  여름이 가기 전에 못오신 분들을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일을 보면서 한 분 한 분께 문자를 드렸다.
치자꽃님, 산천어님, 김요셉 교수님, 김남걸님, 은행장님, 굼뱅이 엄니, 문영미님...

메히틸다 언니는 다른 언니들과 모임을 갖기 때문에 함께 오는 것이 나을 것같아 문자를 생략했다.
그리고 당수님께 이런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고 문자로 보고도 드렸다.^^

사실 갑자기 생각한 일이라 분명 내가 나쁜 머리에 기억 못하고 빠뜨려 발등을 찍을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건망증이 심한 거야 홈의 사랑방에 오시는 분들 모두 아는 사실이라 "생긴대로 살자!"를 외치며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일이 있어 어렵다고 하셨고, 김요셉 교수님은 회답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토요일에 산골로 오신 분이 김남걸 님 부부와 문영미님이었다.

문영미님은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
면에 있는 곳에 내리기로 하여 내가 마중을 나갔다.

정거장에서 우린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가방이 무겁길래 집에 와 보니 가방안에서 밑반찬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산골아낙이 손님맞이에 바쁠까봐 밑반찬을 열 가지 정도 가지고 왔고, 시계가 하루 전날 고장나서 초보농사꾼이 낭패를 보았는데 어찌 그리 귀신같이 알았는지 이쁜 시계와 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가지고 왔다.
버스를 갈아타고 불편했을텐데...생각하니 마음이 찡~~~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김남걸 님 부부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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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미님은 장갑끼고 호미들고 마당의 풀을 뽑기 시작하는데 정말 '개가 핥은 것'같았다.
어찌나 손을 잽싸게 놀리는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말끔해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이 산골에 왔는데 자연이라도 많이 보여줘야 하는데 풀을 뽑고 있다니...
서둘러 소광리로 '500년 된 소나무'를 보러 가자고 했다.
소광리로 들어서서부터 울진 금강송에 감동하는 영미님,...

쭉쭉 뻣은 소나무들과 흙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지러지듯 가을을 준비하는 소광리 계곡에 잠시 차를 세우고 맑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손을 담그며 서로 감탄했다.

그렇게 돌아오니 김남걸님 부부가 도착해 계셨다.
저녁은 데크에서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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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녁 메뉴는 오갈피와 뽕나무를 넣은 닭백숙을 하려고 했는데 닭 잡아 주는 곳에서 하루 전에 주문을 했어야 했단다. 엊그제만 해도 보는데서 잡아주드만...
벌써 오갈피 나무와 뽕나무를 톱으로 베어다 놓았는데 헛수고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메뉴를 삼겹살로...
안개비가 내리는데도 모두가 밖의 데크에서 먹자고 하여 우리는 돛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구웠다.
김남걸님은 초보농사꾼이 좋아하는 1회용 생맥주 통과 여성팬들이 좋아할 와인과 맛난 꽈자, 집에서 신는 신발, 내가 좋아하는 빵(^^) 등을 사오셨다.

선우와 초보농사꾼이 그런다.
얼마나 빵을 좋아한다고 광고를 했으면 오시는 분들마다 빵을 사오시느냐고...ㅠㅠ

그렇게 소주잔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산골이야기를 들으시고, 사랑방 손님들을 떠올리며 늦도록 식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김남걸님께서 우리 산골가족을 생각하시어 백암온천에 숙소를 정해놓고 미리 돈도 지불하시고 가방 하나도 그곳에 두고 오셨다는 거였다.

산골에서 모두 같이 자면 되는데 왜 그러셨냐며 볼멘소리를 했고, 결국은 숙박비를 포기하고 산골에서 주무시기로 했다.
가방은 내일 아침 일찍 찾아서 다시 산골로 오시기로 하고...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사랑방 손님들은 어쩜 그리 눈매가 선하디 선하신지...
오래 전에 만난 인연같고, 오빠같고, 동생같고 그랬다.
그래서 한없이 든든하고 ...

다음날, 김남걸 님 부부는 백암온천에서 가방을 찾아 오셨다.
어제 산골을 둘러보신 후, 집 꼭대기에 말벌집이 있다며 철거해야 한다고 한 걱정을 하시더니 에프킬라 두 통을 사오셨다.
그리고 초보농사꾼과 말벌집 소탕작전을 개시!!!

산골의 집은 워낙 지붕이 높아 아무리 높은 사다리를 펴도 해결이 안되다 보니 제일 긴 철 장대(하우스 대)로 해결하기로 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비옷을 입었다.
업무분장도 했다.
초보농사꾼은 엄청 긴 철 작대기로 벌집을 털어내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김남걸님은 에프킬라 두 통을 쏘면서 벌이 벌떼처럼 사람에게 달려들 것을 막기 위해 에프킬라를 양손으로 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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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붕이 워낙 높기 때문에 철 작대기로 여러 번 휘둘러서야 커다란 말벌집이 떨어졌다.
벌집이 공격을 당하자 말벌들이 주위의 두 침략자(?)를 향해 달려들기도 했으니 김남걸님의 쌍권총에 모두 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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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은 다리 아래로 , 머리 위로 달려들었지만 김남걸 님의 그 예리한 눈과 판단력과 지혜에는 꼼짝을 하지 못했다.
저렇듯 2인 1조로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또 사람만 두 명 있다고 가능한가??
아니다.

칼같은 판단력과 작전, 그리고 민첩한 행동 등 3박자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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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이 성격과 달리 말벌집 흔적을 말끔히 털어내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달 쯤 전에도 말벌집을 그 자리에 지었었다.
초보농사꾼과 선우가 위험을 부릅쓰고 소탕을 했었다.
그런데 그 말벌집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많은 말벌들이 우와좌왕하느라 난리다.

왜 안그렇겠는가.
입장바꿔 생각하면 똑같지.

그렇게 떨어뜨리고 잽싸게 집에 도망들어와 밖의 부서진 말벌집을 구경하고 다음날 보니 그 큰 말벌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다.

아들 선우 말이 자연물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며 감탄한다.

그런데 조금의 흔적이 남아있는 바로 그곳에 예전 것보다 더 큰 말벌집을 지은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짓는단다.

아들 선우가 한번 재해를 당하면 저런 생명체들은 다음에는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재연을 한단다.
어디서 알았냐고 하니 책에서 보았단다.
책 값 하는 선우 ㅎㅎㅎ
주현 낭자는 서울 가 있는 관계로 이런 모습을 못보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쉽고 그립고 그랬었다.


여하튼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서 두 남자들이 소탕작전에 몸을 바치는 동안 집 안에서 현관문을 꼭 닫고 통창으로 그 생생하고 스릴있는 ‘말벌소탕작전’을 관람(?)했다.




 

그 안에서는 통통한 애벌레가 쏟아져 나왔다.
정말 신기하다.
말벌집 구조도 신기하고, 시치로폼처럼 생긴 하얀 것들이 저들이 만들 공간이라는 사실도 신기하고, 그 안에서 애벌레가 살아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다


나머지 벌들은 집이 쑥대밭 되었으니 웬 놈들이냐며 웽웽거렸고, 그 기세를 노련하신 김남걸 님이 에프킬러로 짓눌렀다.

더운 날 비옷을 입고 그 놈들을 소탕하느라 두 사람 모두 땀이 범벅이 되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신 김남걸님은 다른 곳에 또 벌집이 있는지 늘 주의해서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대단위 작전이 끝나고 모두 소광리로 출발.
울진의 황루시아 가족(채영 아빠, 용선이, 채영 공주)를 소광리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죽변항에서 회를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회를 찾아 싣고서...
백산님네 부부는 영양의 수비에 펜션을 돌봐야 해서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모두 소광리 끝에 있는 500년된 소나무를 보고 소광리 계곡과 소나무 숲길 등에 감탄을 하며 둘러보았다.
벌써 계곡의 돌에는 돌에 붙은 잎사귀에 단풍물이 들기 시작했다.
어찌나 가슴으로 달려드는지...

소광리와 불영계곡이 만나는 곳에서 발을 담그고, 루시아가 사준 옥수수를 먹으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 산골로 돌아왔다.
김남걸님 네가 먼저 가셔야 한단다.
죽변항에서 사온 싱싱한 회 맛도 못 보시고 한 분은 부산으로, 한 분은 안양으로 가셔야 했기 때문에 먼저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루시아네 가족과 문영미님은 좀더 이야기 시간을 갖다가 문영미님이 서면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나와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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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같이 했는데 이별의 끈은 왜그리 길고 질긴지...
면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서로의 손을 잡았다.
영미님은 좋은 시간 보내고 간다고 했지만 먼 길 온 영미님께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손이 왜 그리 차갑던지...
스웨터라도 입혀 보낼 것을...

버스가 도착했고, 차창으로 손을 흔들고는 버스 뒤꽁무니만 바라보았다.
불영계곡을 돌아 집으로 오는 길...
차를 몇 번이나 세우고 마음을 눌렀다.
버스를 갈아타며 돌고 돌아 온 분들...
영미님에게 문자를 보내고 산골로 돌아왔다.

황루시아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루시아 가족 역시 늘 우리 산골가족에게 든든한 위로자인 사람들.
채영 아빠는 어쩜 그리 착한지(물론 루시아도 착하구..삐지지 말길...), 초보농사꾼에게 형님, 형님 하는 모습이 그리 이쁠(?) 수가 없다.
그 모습은 귀농 초에 만난 모습 그대로다.
세월이 변해도 늘 한결같은 마음 그대로인 사람.

루시아네 가족이 떠나고 나의 사랑하는 인연들이 산골을 다 빠져 나간 시간...
한참, 꽃밭 주위를 서성였다.
코스모스도 손을 내밀고, 노란 서양국화도 길게 허리를 굽혀 내 치맛가락을 스치며 아는체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위로방법이다.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의 길이 어떤 발자국을 남겨야 하는지,
내 살아가는 향기가 들꽃처럼 어떤 잔잔한 파장을 남겨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   [산골편지]   |  2009. 8. 13. 14:00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둘째인 딸 아이를 키워주시던 친정 엄마가 몸이 안좋아져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게 되었었다.
남에게 맡겨 보려고 사람도 구해보았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서 그만 울고 나왔다.


어떻게 남에게 이 어린 아이를 맡긴단 말인가.
그 생각으로 그 집을 나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절대로 남에게 이 어린 것을 맡길 수는 없어...'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 선우는 언니가 봐주다 시어머님이 봐주시지만 주현이까지는 어머님께 너무 어려운 일이고 ...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한 시간이었다.


그 결정은 나만이 할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 두는 일이야말로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남편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전공살려 일하는 직장을 그만 두라고 하지도, 그렇다고 남에게 아이를 맡기라고도 하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남편의 조언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결정은 내 몫이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못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 판...
그러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전공도 살릴 수 있었고, 직장 분위기도 좋았기 때문에 그 결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온 가족이 말렸다.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데 이제 왜 사표를 내느냐고 다 뜯어말렸다.
친정 아버지는 그렇게 대학원까지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냈더니 사표를 내느냐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결국 사표를 냈다.
얼마나 울었는지....


함께 근무했던 언니들도 의외의 반응이었다. 나의 사표에 대해...

그러나 내 생각으로 그것이 최선이었다.


꿈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던 시기에 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내가 올라가야 할 계단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사표를 낸 시기가 1995년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그만 둔 직장을 이번에 서울 갔을 때 들렸었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도 집에서 회사 일의 일부를 했었기 때문에 광화문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에 갈 일은 많았었다.

직장 그만두고 처음 한국생산성본부에 갔을 때, 그 현관에서 울었었다.
가슴이 뭉클뭉클하고...



그렇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남은 삶은 내 의지대로 산다며 오지 산골로 귀농하고는 한번도 못갔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뻔질나게 갔었으면서도 거기까지 들릴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TV '30분 다큐'를 보고 선배 언니가 얼굴 좀 보고 살자며 전화를 한 김에 일을 보다말고 광화문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은 벌써 머리끄댕이를 다 끄들려 놓은 것처럼 어수선했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경복궁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안국역에서 내려 한국생산성본부를 찾았으니...
다시 전철을 타고 내리니 선배 언니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하고 입사하여 결혼하고, 둘째 낳고 나서까지 다녔던 한국생산성본부.
그 현관을 보니 다시금 눈가가 촉촉해지고...

지하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언니들이 사준 커피랑 빵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귀농이야기를 하고, 직장이야기도 듣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다음은 빌딩으로 올라가 전에 국제부 시절, 같이 근무했던 상사분도 만나 보았고, 교육훈련사업본부에 근무했을 때의 동료도 만나 보았다.
거의 대부분은 많이 사퇴를 하여  얼굴을 몰랐지만 같이 근무했던 분들을 보았을 때는 온몸이 전기가 오는듯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추억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마지막 회식을 하고 왔을 때, 우는 나를 위로하며 남편이 말했다.
누구든, 어떤 위치에서든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은 거라고...
난 그 말을 흘려들었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그때 그만두길 잘했다고...


엄마 노릇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좋은 결정이었다고....

그렇게 그만 두고 나서 한번도 직장그만 둔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다만, 아쉬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산골로 귀농하여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은 지금 세상을 다 끌어안으듯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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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물고기 사랑을 기억해다오.
+   [산골편지]   |  2009. 8. 1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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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사지 멀쩡히 공밥을 축내고 있다는 자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이 여름 밭에 나가 김매고 효소꺼리를 채취하는 일을 즐겁게, 더 열심히 해두자 마음먹었습니다.
마음이 거기에 미치니 뙤약볕 아래 몸뚱이 놀리는 일을 더 지성껏 하게 됩니다.
마음이 요사를 부립니다.

****************************

일전에 논산이원무 베다 신부님이 오셔서 초보농사꾼이랑 계곡으로 고기를 잡으러 갔었습니다.
초보농사꾼이 오전에 예초기 작업을 하고 오후에 나서는 길이었지요.
일주일 내내 휴일도 없이 일하는 초보농사꾼에게 휴식도 이름을 달리한  일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니 재미지게 놀다오라고...

저녁이 다 되어 돌아온  두 사람의 모습에서 얼마나  계곡에서 행복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 젖은 옷에, 산중의 저녁 무렵 추위에도 입가에는 웃음이 덕지덕지 붙어 떨어질 줄 몰랐으니까요.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산골아이들에게 튀겨 주고 싶으셨던 신부님.
그러나 논산으로 돌아가실  시간이 되자,  튀김은 식으면 맛이 없다며 튀겨 놓고 갈 수는 없으니 이것을 금방 튀겨서 선우, 주현이에게 주라며 건내주시는 그릇...

들여다 보니 일일이 손질을 하셨더군요.
배를 가르고 씻어 내 손이 더 가지 않도록 해서는 건내주십니다.

그 고기그릇을 받고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세 치 혀로 나불거리는 말보다 침묵이 더 내 마음을 잘 전달함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산골소년 선우(아론)이 오려면 주말이 되어야 하는데 고기는 상할 것같고...
할 수 없이 나머지 식구들을 위해 고기를 튀기기로 했습니다.

꺼내보니 참 많았습니다.
난 물고기 이름이라고 해봤자 미꾸라지, 붕어, 피래미 정도가 전 재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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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에는 꺽지도 있다고 초보농사꾼이 일려줍니다.
피래미랑 꺽지가 주종을 이루는 것같았습니다.

주현이에게 이 물고기를 튀기게 된 경위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했습니다.
고기에게 밀가루를 초벌로 입힐 때도, 한번 더 튀김 옷을 입을 때도, 절절 끓는 기름에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넣으면서도 재차 설명해 주었습니다.

튀김을 해서 식기 전에 먹으라고 신부님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 여러 차례 준비를 시키고 튀김이 완성되자마자 주현이와 초보농사꾼을 불러 앉혔습니다
신부님이 그렇게 산골가족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나는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임무수행을 철저히 하려고 맘 먹었습니다.

따끈한 물고기 튀김과 간장...
그것만으로도 식탁이 화려합니다.
초보농사꾼과 주현이가 맛있게 먹습니다.
뜨거운 튀김을 먹으면서도 이것을 잡을 때 신부님과 어땠다고 부가 설명을 해줍니다.
그 별책 부록과 같은 가슴 훈훈한 설명은 물고기 튀김의 또  다른 양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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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빗속에서 살구를 따느라 힘들었던 초보농사꾼도 맛있게 먹습니다.
이 물고기가 불영계곡에서 어떻게 산골로 오게 되었는지 아빠에게 진지하게 듣던 주현 낭자도 맛있게 먹습니다.
튀김하랴 , 식기 전에 먹으랴  바쁜 나도 오랫만에 따뜻한 튀김을 먹습니다.

모두가 감사하고 좋은데 아쉬운 점은 고등학생인 아들 선우(아론)가 튀김을 못먹었다는 것입니다.
튀김이야 시장에서 사주려면 쌔고 쌨지만 이건 돈 몇 푼 주고 사먹는 튀김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아쉬운 점은 신부님이 아론과 안나를 더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해 그게 더 아쉬웠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번에는 글쓰기 위한 사진이 아니고,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아들 선우를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 찍었습니다.
사진이라도  보여 주며 아론과 안나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살아갈 때, 너희들도 이처럼 사랑을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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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이 말을 난 가슴에 담고 삽니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라"는 말입니다.

"선우, 주현아,
<물고기 사랑>을 기억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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