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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 _해당되는 글 177건
2011.02.22   귀농일기, 진종일 업고 일했다. 
2011.02.21   귀농일기, 산야초 효소꺼리 채취하는 날 
2011.02.14   귀농일기, 고구마 모종에 베개도 고여주고... 
2011.01.25   귀농편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 
2011.01.21   귀농일기, 가을에는 웃는 얼굴을 기대한다. 
2011.01.17   귀농일기, 사람 바람?? 
2010.07.13   귀농일기, 한 공정이 끝났다. 
2010.06.30   귀농일기, 대지에 영양을 주는 날 
2010.06.24   귀농일기, 농사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는 분 
2010.06.15   귀농일기, 밥만 축냈다.^^ 

 

귀농일기, 진종일 업고 일했다.
+   [귀농일기]   |  2011. 2. 22. 11:06  

2010년 6월

 

5월까지 농부는 열심히 땅에 무엇인가를 심는다.
다른 지방이야 더 빠르겠지만 하여간 산중의 농부는 그렇다.


일단 땅에 고추도 심고, 야콘도 심고, 아피오스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아내가 안심는다고 뻐팅겼던 감자도 기어이 심었다.

그렇게 5월까지 정신없이 보낸다.
몸만 정신 없는 것이 아니고 머리도 정신이 없다.


비가 와 주어야 할 때 와주면 좋으련만 어디 농부의 입맛대로 되는지.

인생살이처럼 척척 손발이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귀농초처럼 애를 태우진 않지만 그래도 비 때문에 머리는 정신이 없다.

 

특히나 어렵게 품을 샀는데 비가 와버리면 다시 품을 사기 어렵기 때문에 그럴 때는 더 마음이 쓰인다.
아내와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의 경우는 오늘 비오면 내일 더 열심히 일해야지 하면 될 일이지만 품을 사야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음 날 그대로 품을 다시 살 수 있게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니 신경을 쓰게 된다.

 

그나마 논농사를 닫아 걸었으니 그것만 신경쓰지 논농사를 지을 때, 비가 오면 논물도 칼같이 감독해야  한다.
안그러면 바로 논물 보고 돌아서자마자 논둑 터져 포크레인 부른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인지...

 

이제는 밭농사만 지으니 그나마 정신적인 마음쓰임이 그 정도다.
그래도 큰 마음쓰임 없이 땅에 묻을 것은 다 묻어두었으니 올 봄은 하늘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고 본다.

 

어쨌거나 그렇게 밭에 질서정연하게 모종들을 줄세워 심어놓고 나면 한숨돌리기가 무섭게 풀들이 작물보다 먼저 자란다.
올해는 가뭄이 아주 심했는데 풀들은 가뭄도 타지 않고 제 할일을 충실히 해냈다. 농부의 머리가 흔들리도록...


야콘모종과 고추모종들은 목이 말라 한낮에 가면 머리를 비틀고 온몸을 비틀고 난리지만 풀들을 씽씽하다.

예전에는 그 씽씽함에 골이 났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도 살려고 이 땅에 몸붙이고 살고 나도 그러기는 마찬가지 입장인데 누가 누구더러 쓸모가 있느니 없까 싶어 이내 마음이 누그러든다.

이제 헛골에 난 풀을 어느 정도 손보자고나서 바로 집으로 올라오는 길의 예초 작업을 했다.
길 양쪽으로 풀들과 칡넝쿨들이 올라와 정신없던 터라 벼르다가 길로 나섰다.


밭에서부터 윙윙 소리를 내며 짊어지고 내려온 예초기로 길가를 다듬는다.

길가를 다듬으면 밭을 평정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 인다.


그러니까 밭의 풀을 평정하기 위해 밭에서 예초기 작업을 할 때에는 이 작업을 하고 나면 야콘모종과 고추 모종 등이 신바람이 나서 키를 키우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길가의 풀을 평정할 때는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달아오른 예초기로 인해 등이 뜨거워도 마음은 흐뭇하다.

 

오늘은 손이 떨리도록 등에 아기 하나 업고 진종일 작업을 했다.
봄에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가볍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산야초 효소꺼리 채취하는 날
+   [귀농일기]   |  2011. 2. 21. 15:17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년 6월

봄이 되면 산야초 효소꺼리 먼저 채취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밭준비가 끝나는대로  야콘과 고추, 고구마를 심는다.
언 땅이 녹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나오면 시작이다.

오늘은 일하는 중간에 산야초 효소 꺼리를 채취하기로 했다.
아내가 낫을 간다.
낫이라는 것도 처음 잡았을테지만 귀농하고 낫놀리는 솜씨가 나보다 더 노련했던 아내라서 그런데 낫을 가는 것도 고수같다.

아내 말이 뭣도 모르고 간다고 했다.
그래도 고수처럼 중간중간에 날을 공중에 올려서 눈을 째려 보기도 하고 슥 손으로 날을 만져도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나는 왼손잡이라서 남들이 보면 어설프다고 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내가 낫을 갈고 난 하던 일을 마무리 하고 내려와 머위를 채취했다.
머위는 우리 집 바로 뒷산에서 나고 그리고 달밭 제일 위와 산이 겹치는 그 골짜기에 많이 난다.
땀이 등골을 흐르면 허리를 펴고 먼 곳에 눈을 두면 보이는 것이 통고산 자락이다.

또 집 바로 뒤에도 머위가 나지만 거의를 훨씬 위의 달밭 사이 골에서 많이 나기때문에 그 골은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곳이라 일하다가 골로 더 들어가면 더위를 가실 수 있다.
또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채취하다 보면 내년의 계획도 세우고, 올해의 지난 일도 돌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지루함이 없다.

물론 이땅 전체는 약을 치지 않으니 그냥 채취해서 씻으면 된다.
아내와 머위를 채취하면 그 냄새가 향긋하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머위향이 참 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머위를 자르고 나르다 보면 작업복에 진이 묻는데 이것은 잘 안지워진다.
햇살에 풀이 꺾여 머위가 기를 못쓰고 있다.
주로 아침 일찍 채취를 하는데 오늘은 다른 일을 하느라 햇살있을 때 하게 되었다.

이제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깔때기들이 달라들어 자꾸 깨문다.
자루에 담아서 지고 내려가야 한다.

아래 산야초 효소실 옆 세척실에서 씻어서 효소를 담으면 된다.
이렇게 산에서, 들에서 나는 것들을 채취해 효소를 담으면 기분이 좋다.

산야초 효소를 다 담고 집에 올라오니 이마에 깔때기가 물려 다 부풀어올았다.
아내는 멀쩡한데 난 늘 그 작은 벌레에 쩔쩔맨다.
내가 땀을 많이 흘리다보니 그런 벌레들이 달라드는 것같다.

지들도 먹고 산다는데...
이마가 하도 긁어서 얼얼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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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고구마 모종에 베개도 고여주고...
+   [귀농일기]   |  2011. 2. 14. 13:08  

 

세월이 흐르면 얼굴 뜨거운 일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게 된다는 것을 요즘 느낀다.

 

귀농한 사람이 만만하게 심는 것 중 하나가 고구마이다.
우리도 귀농하자마자 심었다.


집 바로 위 작은 터에 우리도 먹고 귀농을 질기게 반대한 서울의 양가 어머님께도 나누어 드린다고 보무도 당당하게 심었다.

그때는 농기계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을 몸으로 때웠다.


귀농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는 속으로 ‘역시 예상한대로 농사가 이렇게 힘들구나’하고 뼈저리게 느꼈겠지만 숨 몰아쉬는 소리만 입밖으로 냈지 다른 말은 속으로 쌓아두었는지 이날이때껏 꺼내지 않았다.

 

 

 

하여튼 고구마를 몇 고강심는데 애를 먹었다.


농기계도 없이 밭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고구마 모종을 심는데 온힘을 다 뺐었다.

고구마 몇 고랑을 심는데 아내와 나는 진종일 붙어서 모종을 떠받을듯이 심었다.


심는데 고생한 것으로 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쭉쭉 자라야 한다는데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 밭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왜냐 하면 몇 포기 되지도 않는 고구마를 위해 그 전밭의 풀을 일일이 맬 수가 없어서 그냥 풀을 놔둔 것이다.
그러니 자동 포기가 된 것이다.
풀들만의 자치판이 되었다.

 

아이들 방 아궁이에서 구워 먹을 정도의 고구마를 수확했을 뿐이다.
그 사연을 이웃 어른께 말씀드렸더니 대뜸


“그래, 모종을 똑바로 세워서 심었능교?”하신다.
“아니 모종을 똑바로 세워서 심지 그럼 뉘워서 심나요?”
뉘워서 심어야 한단다.

 

 

 

모종이 꼿꼿하게 서있는 것이 아니고 쉽게 말해 흐느적거리는 모종을 꼿꼿이 심어 세우려하니 길다란 모종이 자꾸 휘어졌다.
그래서 드 깊이 더 깊이 구덩이를 파고 심었다.
여하튼 그해 농사는 그렇게 절단이 났다.


단지 큰 교훈을 얻고 넘어갔다. 고구마는 세워서 심어야 한다는....

다음 해가 되어 다시 고구마에 도전을 했다.


뉘워 심으라고 했겠다...

뉘워 심었다.


식은죽 먹기였다. 긴 모종을 세워 심느라고 땅을 있는대로 파서 세워 심은 것에 비하면...
그런데 그해도 고구마 수확은 별볼일 없었다. 왤까?

 

이번에는 모종이 타죽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옆으로 뉘워 심으라고 해서 뉘워 심었는데 이번에는 비닐 위에 곧이곧대로 뉘워서 그만 비닐이 태양을 받아 뜨겁다 보니 여린 모종이 탄 것이다.

탔다고 하여 숯검뎅이로 탄 게 아니라 말라죽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해는 무지 더웠다.
또 다른 교훈을 얹어준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뉘워서 심되 머리가 비닐에 닿지 않도록 흙으로 머리를 고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내가 말했다.


“맞아, 사람이라고 생각해봐. 그 뜨거운 비닐에 머리를 대면 사람이라도 탈나겠다. 그 어린 모종을 그랬으니...사람 머리에 베개를 고여주듯 그렇게 해주어야 하는데...”

 

 

 

농사, 만만한 게 아니다.
만만하게 보고 온 것은 아니지만 지혜로움을 요구하는 직업이 농사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해부터는 뉘워서 심고, 베개(?)를 꼬박꼬박 배주고 있다.

 

그랬더니 탈없이 잘 커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사는 교훈 하나 얻는데 자그만치 1년이 걸린다.


한번 ‘이 방법이 아닌가벼’했다간 1년 망친다.

신중하고, 지혜롭게 사람처럼 작물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초장에 경험했다.


올해의 고구마를 심는 날이다.
성당에 다녀와 새점밭이 있는 불영계곡으로 달렸다.

 

이 밭으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불영계곡을 차로 직접 건넌 다음 개울가에 난 우거진 곳을 지나 밭으로 간다.

어제 아내와 둘이 심다가 못심은 것을 아는 부부가 휴일이라고 와서 함께 심고 있다.


“뉘워서 심는 거 알지? 그리고 모종 끝의 머리를 들게 해주어야 한다구”
아내는 혹여 또 모종을 태울까 걱정인 모양이다.

 

 

 

 

몇 번이나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밭고랑을 오가며 혹여 고구마순의 머리가 비닐에 닿아 뜨거운 놈은 없는지 가끔 일어나 확인하는 눈치다.

이 밭의 고구마는 맛도 좋지만 보기에도 이쁘다.


새빨갛고, 조그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내가 키운 자식 자랑하는 걸 보니 나도 농사꾼 다 됐다.

 

이 밭은 불영계곡과 맞닿은 밭이라서 고구마들도 땅속에서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계곡물이랑 도란도란 친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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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편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
+   [산골편지]   |  2011. 1. 25. 13:18  

 

2010년 12월

 

울진읍에 있는 울진고등학교기숙형 고등학교다.

울진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주현이가 기숙사에서 나오는 날이다.
2주에 한 번 나오는데다 이번에는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오는 것이라 딸 아이도 지쳤을 것이라 미리부터 여행 운운한 사람은 나였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조촐하게 네 식구 여행을 가리라.
그렇게 벼르던 날이 닥아왔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런 저런 일로 내가 심신이 지쳐있었고, 몸살기까지 있어 오한이 들었다.


결국은 여행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거 아이들에게 한 약속이라 자꾸만 목구멍이 걸렸다.

 

 

 

늦은 저녁에 초보농사꾼과 상의를 했다.
초보농사꾼이 그러면 일단 내일 아침에 결정하고 나서보잔다.


내일 결정하자고 한 것은 초보농사꾼이 요즘 야콘즙 작업을 하는데 그 타임이 새벽에 확인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 야콘즙에 따라 아침에 출발할지를 결정하자는 거였다.

 

 


(▲ 퇴계 이황의  생가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로 여행을 준비하는 것, 참 싫어한다.
여행이란 길을 나서는 것 이전부터가 여행이다.


여행 갈 생각을 하며 들떠하고, 행복해 하고, 칫솔, 수건, 치약 등을 챙기며 흐뭇한 웃음을 함께 가방에 담는 것부터가 여행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가장의 명령에 따라 일단 대기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초보농사꾼은 일단 하던 일을 일찍 끝냈으니 떠나보잔다.
아이들이 신나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검색하고 의견을 나눈다.

 

 

 

 


(▲ 주현이가 쓴 모자는 지아빠 모자다. 주현이는 머리가 작고 뒤가 짱구라 모자가 잘어울리는데 선우랑 나는 머리가 커서 모자가 전혀.ㅠㅠ)


 

그러나 오한이 드는 것은 여전한 나로서는 가방 하나에 수건, 치약, 칫솔, 양말 등을 챙겼다.
초보농사꾼이 혹시 자고 올 수도 있다는 말을 흘려서다.


자고 오게 되면 그래도 챙겨갈 것이 있어야 하므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만 챙겼다.
그 기본 중에 곰베개 인형과 무릎담요를 잽싸게 챙겼다.

 

그 두 가지는 내가 여행을 갔다 하면 차에 먼저 태우는 종목이다.
우선 여행지에서 딸 아이에게 이 베개를 베어주고 싶은 마음과 작은 담요는 가면서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이 담배를 피워 문을 열면 추우니까의 이유도 있지만 그 담요를 워낙 좋아해서, 이런 저런 이유에  여행 때에는 먼저 챙긴다.

 

두 아이가 시간이 조급한지 의견일치를 금방 본다.
안동으로 가서 이육사 문학관과 도산서원을 먼저 둘러보고 그러면서 다음 여행지를 고민해 보잔다.

 

둘은 이제 역사적 장소나 미술관 등에 관심이 늘 있었다.
에 살지만 방학때마다 서울에 가서 스스로 미술관, 전시회 등을 찾아다니고 느끼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커가면서 더더욱 그것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같아 기특하기 그지없다.

 

 

 

 


(▲ 이황 생가 터에 선 딸 주현이와 나)

 

일단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한 차를 타고 나서는 여행이라 그 자체만으로 가족들은 여행에서 얻는 기쁨을 반 이상 얻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곳이 퇴계 이황의 종택이다.


원래의 건물은 없어졌으나 1929년 옛 종택의 규모를 참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 날은 가문의 행사가 있는지 관광객은 없고, 많은 분들이 장을 보아서 종택으로 분주히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먼저 그곳에 사는 분께 구경을 해도 되겠는지 어디까지만 구경하면 되는지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아이들도 그분들게 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종택을 둘러보았다.
규모로 보면 그다지 웅장하지 않고 아담하게 오밀조밀지어져 옛 선비의 체취가 더 느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날씨는 아주 추웠지만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려는 선우와 주현이를 보며 으스스한 몸으로 뒤따라간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으로 종택을 둘러보았다.

 

 

 

 

다음 행선지는 이육사 문학관이었다.
민족시인, 저항시인, 독립운동가 이육사.. 본명은 이원록.

 

이육사가 수인 번호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문학관에 도착하여 설명을 듣고 보니 부끄러움이 들었다.

나는 과연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거창한 그 무엇을 따지기 앞서 나 개인이 향기를 나누어야 할 때 얼마나 잽싸게 굴었는지 등이 떠올라 내 나이가 무겁게 느껴졌다.

 

 

 


(▲ 육사의 감옥생활)

 

아이들과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역시 문학관 구석구석을 정신 없이 둘러보며 감탄을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문학관이 너무 현대적 냄새가 강하다는 것이다.


향토적 색채를 감안하여 지었더라면 시인을 느끼는 마음도 더 푸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점을 안내하는 분께 말했더니 더러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고, 자기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아쉬워했다.

또 한 가지는 문학관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표지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오만가지 표지 중간에 끼어있어 눈을 부릅뜨고 찾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민족시인을 찾아가는 길 표지가 그렇게 사적인 표지와 끼어져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고 아이들도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아들 선우는 이육사 문학관에 도착하기 전에 시인의 작품 “교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무지 좋아하는 시라고...시를 읊으며 행마다 가슴 절절함을 토로했다.

<<교목>>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니리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오한이 들어 칭칭 감고 껴입은 옷에도 한기는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아이들과 이런 감동적인 곳을 여행한다는 것이 더없이 좋았다.
(죽어도 살쪘다는 소리는 안한다. 난.)

 

간단히 이육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육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보문의숙을 거쳐 도산 고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일본으로 유학했다가 관동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하여 대구에서 문화활동을 벌였다.
그후 중국 북경 등지에서 유월한국혁명동지회에 참가해 조직활동을 펼쳤다.


1927년 여름에 조재만과 동행해 귀국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그때의 수인번호 이육사를 따서 호를 ‘육사’로 지었다.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다시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 이듬해 마흔의 나이에 북경주재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

 

 

 

 


(▲ 육사의 모습)

 

맨 먼저 들어가면 육사의 가시밭길 같은 생애를 재구성한 영상자료를 상영해주는데 그것을 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선우와 주현이는 ‘여기 오길 정말 잘 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이런 배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대견하여 한참을 두 녀석 말에 귀기울였다.




(▲ 아들 선우와 딸 주현이는  여기 와 보길 정말 잘했다며 감격해 한다. )

 

그 문학관은 안내를 하시는 두 분의 애정이 절절하여 설명을 듣는 사람도 저절로 절절한 느낌이 드는 기분을 전염시켰다.
온 가족이 저와 같은 애정어린 마음으로 문학관을 찾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문학관도 드물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느낀 점은 아이들이 부모의 느낌을 닮아간다는 거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생각과 가치관, 보는 관점 등이 많은 부분 부모를 담아간다는 사실...


더더욱 조심하고, 노력하며 살 일이지 싶다.

 

 

 


(▲ 육사가 사용했던 안경과 친필)

 

문학관을 나오면 아이들에게 이육사의 시집 한 권과 그 분의 시 달력도 하나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다음은 이황의 묘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표지판이 없다.
어디에도 안내하는 글 하나 없는 곳에 묘가 있었다.

아쉬움이 너무 컸다.

 


(▲ 이황의 묘소)

 

그 묘를 찾기 전에 조금 산으로 올라가니 하나의 커다란 묘가 있었는데 선우와 난 그 묘가 이황의 묘인줄 알고 그것에서 조금 있다가 내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여 저 아래 마을의 사람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물으니 한참 더 올라가란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니 거기에 이황의 묘가 있었다.
선우는 감격스러운지 한참 무덤을 둘러보고, 무덤 앞에 앉아보고 , 석상들을 어루만져보고 감격해 했다.

 

 

 

다음은 서둘러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퇴계 이황이 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가르쳤던 곳이며, 사후에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들과 유림이 세웠다는 곳이다.

 

한참을 걸어서 가는 흙길이 참 고왔다.
길 한 쪽으로 유유히 휘감아 흐르는 강은 살얼음 그림자 등으로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러 선우, 주현이의 환호를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 딸 주현이와 나)

 

서원 한 쪽에는 이황이 직접 지었다는 도산서당이 있었다.
아주 아담하게 지은 작은 공간이었고,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 눈으로만 보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나는 조심조심 혹여 닳을세라 눈으로만 보았다.
또 그 앞에 들어가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팻말도 있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위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찰나,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안으로 들어가고 술래잡기를 하는지 난리가 났다.
이럴 때 못참는 성격.

 

거기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멀리서 소리를 질렀더니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말
“야, 들어가지 말란다.”하는 아이들 엄마의 소리.


그럼 바로 옆에 부모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아이들을 그렇게 두었다는 말인지.
그러니까 내가 그곳의 관리인인줄 안 것이다.
선우, 주현이도 몇 번이나 혀를 찬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모라고 말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구석구석 구경을 하는데 우리는 광명실이라고 쓰인 곳에 머물렀다.
양쪽으로 똑같이 건축물이 있는데 그것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란다.

 

 

 

 

 

동, 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아주 높게 지었다.
광명이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준다”는 뜻이라는 뜻이라며 아이들이 한참을 둘러본다.


책 욕심이 많은 우리 아이들로서는 책을 소중히 여기는 선비의 마음씀이 참 따뜻했던 모양이다.

도산서원을 나온 시간이 네 시.


아점을 먹고 나선 가족들이라 속이 허전했다.
그러나 서둘러 볼 곳이 있다며 간 곳이 경북 산림과학박물관이다.

 

주현이는 예전에 왔었던 곳이라며 다시 가보고 싶다고 좋아한다.
초보농사꾼이야 산에 사는 사람이니 당연히 구미가 당겼을 것이다.


선우야 무조건 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니 코드가 맞았을 것이고...

 

 

 


(▲ 도산서원, 책을 보관하는 서고)

 

다만 산골아낙 나만 오한이 심하고 편두통이 심해 차에 남아있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박씨 일가들이 안나온다.


푹 빠진 모양이다.

또 호기심 많은 초보농사꾼이 갔으니 얼마나 꼼꼼히 보고 느낄 것인가.
이제 해가 지고 있고 차 안은 추위에 물들었다.


안그래도 오한에 추위에...

기동을 걸려고 보니 키가 안꽂혀 있다.
초보농사꾼이 습관적으로 빼 간 거다. 아이고...


(▲ 선우가 부러운듯 오래 쳐다본다. 이황이 책의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높게 지었다는 서고)

발도 시려오고 머리는 더 아파오고...

 


세 박씨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차에 올라도 난 아,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키를 빼 간 것을 안 초보농사꾼.
서둘러 밥먹으러 가잔다.


그러면서 일단 밥먹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 많이 보았고, 날씨가 점점 추워져 산골생각들이 간절한 모양인지 다른 두 어린 박씨도 집에 가자고 한다.

 

오면서 숯불에 독특하게 굽기로 유명한 집이라는, 그런 집에 꼭 붙어있는 또 하나의 문구 어디 어디 방송에 나왔다고...그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더니 그제서야 얼었던 발이 녹는다.

 

그렇게 다시 산골로 돌아돌아 오는 길.
아이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소중하고, 느낌이 강하고, 유익한 여행이었다며 기회되면 또 나서잔다.


(▲ 이런 여행을 좋아하는 아들 선우와 주현이가 참 기특하다.)

 

교육이라는 것,


꼭 학교에서 언어영역, 수리영역, 외국어 영역, 사탐영역이라는 글자에 열을 올려야 함은 결코 아니라고 느꼈다.

 

아이들의 각각의 연세에 맞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감탄하게 해주어야 하는 그런 교육이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 아닐까.

 

이육사라면 다 민족시인, 청포도 어쩌구 저쩌구 외워서 다 아는 분이지만 직접 그 분의 생가를 보며, 그 분의 일대기를 설명들으며, 그 분이 쓰던 안경, 친필 원고 등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교과서에 들어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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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 가을에는 웃는 얼굴을 기대한다.
+   [귀농일기]   |  2011. 1.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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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아내와 아침을 서둘러 먹고 새점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내랑 함께 떠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대충 출발하면 될 것을 바구니에 챙기는 것도 많다.

책, 펜, 공책, 그리고 돛자리도 챙기고, 이런 저런 것들이 챙기다 보니 시간이 지체된다.
그렇다고 차를 두 대나 가지고 가기도 어렵다. 새점밭은...
세레스로 같이 가면 전천후 세레스가 불영계곡을 그냥 가로질러 건너지만 아내가 차를 따로 가지고 오면 국도가에 차를 세워두고 절벽 아래로 하산길을 내려오듯 곡예를 하고 내려와야 한다.

또 기름값 들이며 차를 두 대나 가져오는 것도 낭비고 하여 함께 뜨려니 동작이 굼뜬다.
새점밭은 차로 15분 정도 달려서 불영계곡을  건너가 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차로 가는 밭으로 답운재밭도 있지만 최소한 답운재밭은 계곡을 차로 가로지르지는 않는다. ㅎㅎ

새점밭으로 달려가는데 상대편 차선으로 이웃 마을의 형 차가 보인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발견하면 차를 세우거나 바로 핸드폰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둘다 신호를 받은 사람들처럼 차를 세웠다.

불영계곡이 워낙 꼬불꼬불한 길이라 안전한 곳에 세레스를 세우고 걸어가면 형도 트럭을 세우고 내 쪽으로 걸어온다.

그렇게 국도가에서 만나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형은 내게 친형처럼 잘해주는 형이다.
말수는 적으나 마음은 어떤지 내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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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잔뼈가 굵어가는 형인데 이번에 일이 좀 있는 모양이다.
담배만 피우는 모습이 안타깝다.
나도 덩달아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다 새점밭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안그래도 요란맞은 이 놈의 썩은 세레스 소리가 더 요란맞게 들린다.
형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일보다는 남의 일에 더 열성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더 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
자기 일은 정말 아내 표현대로 개가 핥은 것처럼 하면서 남의 일은 완전 건성인 사람 있다.
그 사람 성격대로라면 남의 일도 저렇게 팽개치듯 대충하고 나설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속 마음 볼 것도 없다고 아내가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겉다르고 속다르고 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다.

형은 내 일은 두고 남의 일 도와주러 다니는 사람이다.
남의 일도 내 일처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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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라는 것이 큰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우면서 농사가 망치기로 들고, 농산물의 시세가 폭락을 하다보면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다.
특히나 형이 주로 하는 배추 농사는 더욱 그런 것같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기에 마음이 쓰인다.

올해는 형네 농사가 잘 되고 다른 모든 일도 잘 풀려 가을에는 형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세레스의 툴툴거리는 소리에 묻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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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사람 바람??
+   [귀농일기]   |  2011. 1. 17. 18:02  

2010년 6월


오늘은 선거하는 날이다.


우리 쌍전리는 면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투표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작은 학교인데 그곳에 투표소가 설치되어있다.

집에서 면까지는 차로 약15분 거리라서 아내와 함께 움직였는데 아내가 읍에 갔기 때문에 각자 하기로 했다.


투표를 하고 야콘즙을 중국에 수출하고 싶다는 건으로 사람을 면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오늘은 달길님이 포크레인을 고쳐주시러 산골에 오시는 날이다.

포크레인의 유압호스를 교환해야 했고, 작동유도 교환하고 이런 저런 손을 봐주시러 또 직장인이 투표하고 쉬는 날 먼길을 달려오셨다.


지난 번에 와서 우리 없을 때 이렇게 저렇게 포크레인을 손보고 아내가 좋아하는 마가렛꽃인지 하는 하얀꽃도 아무도 없는 집 꽃밭에 물을 주어가며 심어놓고 가셨다고 아내가 몇 번이나 감탄을 하며 얼굴이 달아오르도록 인연을 말했었다.


오늘도 말은 아끼고 일만 열심히 하는 달길님,
어쩌다 형님 하고 부르면 뭘 집어달라거나 하는 정도의 말뿐인 사람이다.
이제 포크레인이 잘된다.



산골에 아주 자주 포크레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요긴하게 필요할 때가 간혹있다.
꼭 필요한데 사람을 부르면 장비값이 너무 비싸다.


또 일 자체가 하루 분량의 일이면 덜한데 달랑 잠깐이면 될 일인데 포크레인을 부르면 공2가 하루에 40만원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 안부를 수도 없고 사람이 할 수도 없을 때 정말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 산골의 포크레인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웃분을 번번이 부를 수도 없다.
또 사람 한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기계가 없을 때보다야 있을 때가 당연히 좋지만 산골생활에서는 요긴한 물건 중 하나이다.
돈 생각해서 썩은 것을 구입하다 보니  달길님이 번거롭긴 하지만...

읍에서 오면서 투표를 하고 아내가 왔다.
아내는 포크레인을 고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들어간다.


둘이서 꼬물꼬물 일하는 모습이 좋아보인다(아내의 표현이다)며 늘 말하곤 하던 아내는 아마 그 모습을 한참 본 것같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우린 모든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모든 이야기란 친한 사람일수록 피해야 하는 선거이야기, 정치이야기 등과 같은 예리한 사안에서도 코드가 맞으니 어떤 이야기도 그날의 반찬이 된다.


특히 교육이야기는 서로 통하는 구석이 많아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한다.
달길님 큰딸이랑 우리 딸이랑 동갑이다.


서로 자식키우는 이야기며, 요즘 애들의 입시위주 교육의 심각성 등 중요시여기는 부분이 서로 비슷하여 대화꺼리도 다양하다.

사실 달길님 역시 고향이 울진은 아니다.


이곳 원자력에서 오래 근무를 했기 때문에 이곳 울진을 제2의 고향으로 알고 애착을 갖고 살아가려는 의지와 가치관 또한 나와 엇비슷하니 여러 가지로 통한다.


오늘은 포크레인을 다 고쳐주고 가서 나보다 달길님이 마음이 더 시원할 것이다. ㅎㅎ
우리집에 뭐가 일이 생겼을 때,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이 되면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말없이 와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니 우리집 포크레인도 그의 숙제였을 것이다.


저녁 바람이 시원하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먼 길을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나서 마음이 시원한 경우, 그 시원함은 더위와는 상관없는 뭐랄까 하여간 그런 시원함이 있다.

‘사람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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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한 공정이 끝났다.
+   [귀농일기]   |  2010. 7. 13. 01:00  

2010년 4월 12일


어제는 아내와 거의 쉬지도 못하고 답운재밭의 퇴비를 다 뿌렸다.
봄이면 강행군이 이어지다 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일어날 때는 입에서 비명소리가 난다.


둘이 뚜엣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하다 둘이 얼굴보고 웃는다.




웃는 이유는 안찍어먹어봐도 알일이다.
속으로 서로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귀농하고 몸이 절단났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할 일을 상의한다.
그러니까 직장으로 말하면 업무분담이라 할 수 있다.


농사도 직업이고, 농장이 직장이니 우린 아침에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서로 업무 이야기를 한다.
주로 함께 할 일 등 도와주어야 하는 일을 상의한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아내는 효소, 야콘즙


 

 


 


  등의 택배를 발송하는 날이라 그 일을 해야 하고 나는 호수밭의 퇴비 펴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가공실로, 나는 호수밭으로 올라갔다.


아내더러 혼자 할 수 있으니 올라올 것 없다고 했는데 아내가 헉헉거리며 걸어 올라온다.

발송을 다 하고 부랴부랴 올라온 모양이다.
아내와 나머지 퇴비를 다 뿌리고 우린 다시 세레스를 타고 다음 밭으로 향했다.
이번 향하는 밭은 차를 타고 약 10분 정도 가야 하는 새점밭이다.


새점밭은 다른 밭에 비해 크지는 않지만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다른 때같았으면 벌날으듯 날아다니며 이쯤이야 해치웠겠지만 손이 보이는 정도다. 안보여야 하는데.

그래도 아내랑 후다닥 뿌리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개운하던지.
이렇게 해서 전 밭의 퇴비화(?)를 끝냈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렇다고 남은 일이 없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세 군데 의 한 가지 공정이 끝날 때마다 느끼는 그 뿌듯함, 개운함은 농사 안지어본 사람은 모른다.

별걸 다 가지고 목에 힘준다고 하겠지만 안해본 사람은 그 목에 힘주는 기분을 모른다.ㅎㅎ

새점밭은 불영계곡과 바로 맞닿아 있다.


그냥 바라보아도 뻑갈 것같은 풍광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밭이 앉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불영계곡 낮은 곳을 골라 세레스로 물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길면 하나가 짧다고 했듯이 다 좋은데 길이 그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 좋아 농사짓는 일이라 그냥 계곡을 세레스로 건너다닌다.

그렇게 계곡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후련하다.
이 후련한 기분으로 그냥 집으로 가느냐??아니다.

들려서 가야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유이장님댁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러 들어가니 두 분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우리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두 분이라 아내도 따르고 좋아하는 분들이다.

알딸딸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개운하고 뿌듯하다.


통창으로 보이는 별들이 바람이 심해서 그런지 어째 흔들려 보인다.
절대로 막걸 리가 취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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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충동질한 사람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대지에 영양을 주는 날
+   [귀농일기]   |  2010. 6. 30. 18:45  

 2010년 4월

 

올해는 유독 춥다.


겨울이 추웠다는 뜻도 되고 봄이 되었는데, 4월이 되었는데도 한겨울 날씨처럼 춥다.

날씨가 추우면 없는 사람들이 고생한다더니 우리 역시 나무를 때는지라 나무해나르느라 고생이다.
눈도 자주 왔기 때문에 쓰러진 나무 등을 해오는 일이 쉽지 않은 해였다.

 

그런데 봄인데도 이렇게 춥고 얼음이 얼고 하다보니 봄농사준비 역시 차질이 생겼다.
이제는 춥던지, 눈이 오던지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다른 해에 비해 늦은감이 있지만 날씨는 여전히 매섭게 땅으로 나선 농부의 등을 떠민다.

 

 

 

주일이라 성당에 다녀오면 늘 그렇지만 긴장이 풀려서인지 몰라도 축 늘어진다.
옷을 갈아입으려면 시간도 걸린다.
그때 주저앉으면 끝장이다. 하루 일은.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마음의 준비작업을 한 다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나서야 한다.
물론 농사꾼도 주일이 있겠지만 비오는 날, 눈오는 날이 휴일이니 굳이 주일이라고 해서 긴장을 풀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갑자기 일이 생기면 또 하루를 일을 못하니 그렇게 치면 평소에 그냥 열심히 하면 될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답운재 양 모두 퇴비를 뿌리려고 하는데 무리이긴 무리다.


그런데 아내가 따로 할 일이 있을텐데 따라나선다.
자기 삽도 가져가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한 몫 하려는 모양이다.

 

 

아내는 체구는 작지만 일할 때는 나와 성격이 비슷해서 너 죽고 나 살기로 한다.
그리고 쉴 때 쉬더라도 할 때는 그런 식이다.


아내가 찢어진 장화를 억지로 껴신는다.
다른 곳은 멍쩡한데 이상하게 뒤꿈치 거기만 찍어진다며 끙끙거리고 낀다.

답운재밭에 일단 퇴비를 군데군데 던져 놓은 일은 지난번에 다 해두었으니 오늘은 그것을 뿌리는 일이다.

 

아내의 일이 따로 있다.
아내는 칼로 퇴비비닐을 X자로 가른 다음 퇴비를 그 곳에 쏟아놓으면 내가 삽으로 그것을 떠서 골고루 뿌리는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내의 일이 아주 쉬워 보여도 그렇지가 않다.
허리를 구부려 칼로 자르고 다시 퇴비를 다 털어서 빈 봉투를 손에 잡고 다니며 작업을 하다가 손에 비닐이 많아지면 한 곳에 봉투를 모아 두었다가 묶어서 마을에서 모아두는 곳에 내놓아야 한다.

 

 

 

어쨌거나 이 일을 내가 혼자 하면 정말 진도가 안나간다.
그러면 일이 배로 힘들어진다.


일의 진척 정도가 눈에 들어와야 사람이 기운찬데 하는지 마는지 하고 있는 듯 보이면 벌써 성격이 급해진다.

아내의 일이 그래서 아주 소중하고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작은 덩치가 돌아다니며 퇴비 봉투를 갈라 엎어주고 다닌다.

 

 

 

아내는 성격이 잘 안쉰다.
나야 힘들면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는데 아내는 쉬지도 않는다.
얼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나와 같아서 자주 밥 때도 넘기곤 한다.

 

“이것만 다 해놓고 먹자”이런 식으로 손발이 맞는다.
퇴비를 한참 뿌리다 보니 옆구리가 아프다.


아내와 잠시 쉬자면 가져온 참도 먹고, 담배도 한 대 피워문다.
땅바닥에 허리를 이렇게 펴고 있으면 정말 좋다.

 

 

담배 맛도 좋고, 하늘을 보고 심호흡하면 그것이 뼈속깊이 스며드는 기분이라 좋고, 허리가 쭉 펴지니 시원해서 좋다.
쉬는 시간엔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작년에 이 대지는 농부에게 조금의 수확만 하도록 허락했다.
난 대지의 그 뜻을 잘 받아들여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올해 수확 역시 대지의 몫이다.
나는 아내와 최선을 다해 농부로서의 일을 하면 나머지는 대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내가 퇴비봉투 작업을 다 마치고 삽을 찾는다.


퇴비를 뿌리는 아내.

지금 속으로 귀농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라...ㅎㅎ
꼼꼼하게 골고루 뿌린다.

 

계속 산골이야기, 아이들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일해주니 난 고마울뿐.

 

아내가 뿌리는 일을 거드니 속도가 팍팍 나간다.


혼자 뿌리는 일을 했으면 결국 답운재밭 양쪽을 다는 못했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서서히 기운도 빠질 시간이지만 함께 진도를 해나가니 일이 수워해진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6시가 넘었다.
시골에서 6시면 모두 일을 마칠 시간이다.

 

하기야 우린 일이 남았으면 어두워 안보일 때까지 하는 성격이지만 마침 이때 답운재밭은 끝이 났다.

이제 제일 경사가 심한 집 뒤의 호수밭과 새점밭의 퇴비만 뿌리면 될 일이다.

아내와 돌아오는 길,


너무 마음이 좋다.
도시에서 퇴근시간이 이렇게 뿌듯하고, 개운하고, 상큼할까??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그러나 산골로 와서 대지로 출근해서 대지에서 퇴근을 하는 삶이 시작되고는 하루를 마치는 시간이 참으로 개운하고 상큼하다.

거기에 내 땀냄새를 내가 맡을 때의 그 기분은 더 보람차다.

가면서 마을 입구 유이장님댁 ‘방앗간’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 상큼한 기분이 절정에 달할 것이다.
“자, 방앗간 앞으로...“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농사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는 분
+   [귀농일기]   |  2010. 6. 24. 12:16  

 2010년 4월 4일

어제까지 답운재의 비닐을 걷었다.


엊그제에 가보니 날이 추운데가 비까지 와서 후퇴를 했고 이틀에 걸쳐 꼬박 비닐을 걷었다.
나머지 밭은 작년에 걷었는데 답운재밭은 워낙 늦게 아내랑 둘이 수확을 하다보니 추울 때까지 수확을 했다.




그리고 비닐 걷는 것은 다음 해로 미루었었다.


그러다 어제까지 다 비닐을 걷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성당에 다녀오면 조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이 노근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러다 보니 졸린 경우가 참 많다.


요즘 비닐 걷는 일로 바짝 일을 끝내서 오늘 더더욱 몸에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이 몰려왔을 거다.

그렇게 산골에 도착하면 힘이 풀리고 일하러 나가려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가게 된다.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이 내일 오시기 때문에 오늘 미리 개복숭아 묘목을 캐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커피 한 잔 하고 나서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미션 수행을 위해 삽을 들고 달밭으로 향했다.
오늘의 미션을 이 개복숭아 묘목을 다 캐는 것이다.




이 정도의 양을 캐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미리 캐놓았다가 다음다음날 신부님이 논산으로 가시는 차에 싣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캐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굳이 이틀이나 미리 캐서 물에 담가둘 필요 없이 신부님이 가시는 날 캐서 막바로 신부님 차에 실어드리면 되겠다 싶어 두 아름이나 되는 이미 캔 묘목은 거북바위 엉덩이 아래 작은 연못에 담아 놓았다.


나머지는 모레 신부님 가시는 날 캐기로 하고....

그리고 연봉 5만원을 받는 ‘반장’ 역할을 하러 우리 반 할머님, 할아버님이 사시는 우리 반을 한 바퀴 돌았다.





말이 한 바퀴지 집이 독가촌으로 띄엄띄엄 골짜기를 차지하고 있어서 세레스 아니면 반장 역할을 하기도 쉽지 않다.
소금이랑 감자씨를 일일이 배달해 드려야 하므로....


옛날에 길이 더 안좋았을 때는 그런 배달을 하다가 차가 빠진 적도 심심찮게 있었다.

지금은 차가 빠지는 일은 없다.


겨울에는 땔감을 그렇게 배달해 드린다.
그런 일들은 젊은이가 없는 시골에서 그냥 당연한데도 어르신들께서는 늘 고마워하신다.



2010년 4월 5일


신부님이 오셨다.


신부님이 오시면 농장 이야기, 즉 야콘 농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야콘에 대한 가공이야기며 이런 저런 상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시간가는줄 모른다.

마당에 새 관리기를 보시더니 시운전을 하신다.


관리기를 새 것으로 장만하기는 귀농하고 처음이다.
그러니까 다 중고인데다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정도의 연식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부 보조 백만원에, 내 돈 1백 80만원 정도 들어가는 것으로 구했다.


늘 우리가 헌 농기계로 고생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는 신부님으로서는 마음이 좋으신지 한참 시운전을 해보신다.

그리고 나서 불영계곡의 물고기들이 잘 있는지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
낚시를 좋아하시는 신부님께서 나의 ‘바람’에 낚시대를 챙기신다.


신부님이 사주신 내 낚시대도 챙겨 불영계곡으로 향했다.

아직 추워서인지 고기들이 조용하다.


단 한 마리만 우리와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달랑 한 마리..

 


저녁을 먹으며 다시 야콘가공 이야기 등으로 날이 저물었다.
달이 나오고, 별이 나오고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강물처럼 잔잔해지곤 한다.


사실 귀농하고 신부님과 제일 많이 야콘 농사 이야기, 가공이야기, 그리고 다른 농사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같다.

이번에 처음 만들게 된 유기농 야콘쨈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도 주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데 맨정신으로 하면 酒神에 대한 모독이다.


아내는 꼭 일하는 것은 안찍고^^ 이런 것만 찍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야 상관없다.
그러거나 말거나.ㅎㅎ


내일 개복숭아 묘목을 캐는 일이 있으니 신부님과 마지막 잔을 건배하고 헤어졌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


신부님이 많이 피곤하실거다.
새벽 미사를 논산에서 드리고 그리고 달려서 울진까지 오셨으니 말이다.


그래도 저녁에는 기숙사에 있는 주현이와 통화를 하시려는 신부님.
아이들도 신부님 만난지 오래되었다며 아쉬워한다.





신부님은 신부님 집으로 올라가시고...
우린 멀리 못나간다는 말로 웃으며 헤어졌다.


2010년 4월 6일


개복숭아 묘목을 캐기로 했다.


신부님께서 점심 시간 전에 논산으로 출발하셔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 먼길을 하룻밤 주무시고 다시 가시자니 피곤하실테지만 항상 밝은 모습이라 이제는 거리감각이 없어질 정도다.

신부님 차를 밭으로 대고, 차례대로 묘목을 뽑아 실으니 한결 수월하다.


아내가 이번에는 특별히(이게 중요하다) 일하는 모습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큰 인심인 것같다.^^





그곳에 심어놓은 것을 다 캔 다음 차에 싣고, 이번에 새로 만든 유기농 야콘쨈도 성당에서 팔아보신다며 몇 박스 실으셨다.

신부님은 점심도 안드시고 출발하셨다.


식사를 하시면 가다가 졸리다고...
먼길을 그렇게 가시니..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차 한잔을 마셨다.
다시 한 해 농사를 위해 힘을 모으는 중이다.

저녁에 다 되어서 퇴비가 왔다.


내 세레스로 약 열두 차 정도 분량의 퇴비가 왔다.
답운재밭에 뿌릴 것은 답운재밭가에 내리면 좋겠는데 일단 집 앞에 내리고 나서 다시 묶은 다음 답운재로 가는 게 그 분에게 번거로울 것같아 다 집 앞에 내렸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다시 세레스에 싣고 나르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렇게 세레스에 퇴비를 다시 싣고 나르는 일을 해야 할 것같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밥만 축냈다.^^
+   [귀농일기]   |  2010. 6. 15. 13:04  


2010년 4월 첫날

요즘 계속 되는 흐린 날씨탓에 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없는 날이 계속되어 마음에 피어오르던 봄기운도 잠시 주춤해졌다.
아들 선우때문에, 그리고 원고 때문에 읍에 자주 가는 아내가 나에게 연락이 안되어 걱정된다며 읍에 바로 달려왔다.


전화를 안받으면 혼자 일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고, 혹여 사람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고 있나 싶어서 다시 가야 하는데 산골까지 왔다.

얼마 전에 믿었던 친구때문에 내가 많이 상처받았을까봐 마음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다.아내도 그 자리에 있어서 상처로 말할 것 같으면 매한자기일텐데 말이다.


아침을 먹고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답운재밭의 비닐을 걷는다고 다짐을 했다.
작년 가을에 비닐을 걷어야 하지만 작년 야콘농사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답운재밭의 야콘캐는 일을 많은 부분 아내와 둘이서 하다보니 늦게까지 수확을 했다.


그리고 날이 추워져 비닐을 못걷었었다.
그 비닐을 이제 걷어야 하는데 그 밭은 응달이 많아 아직도 땅이 걱정되었었다.
점심에 먹을 것을 간단히 싸달라고 하니 아내가 말린다.


답운재은 무지 추울 것이고 추운 곳에서 음식을 먹으면 좋지 않다는 이유도 있고 아내가 함께 가지 못하니까 혼자 먹게 하는 것이 싫어서란다.
답운재밭에 가면 안그래도 조금만 가면 있는 휴게소에서 사먹는다.


시골식당이라 아줌마가 각종 산나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반찬으로 내놓기 때문에 아내와 그곳을 이용했었다.

그러면서 꼭 점심을 따뜻한 것으로 사먹어야한단다.
그렇게 물만 들고 답운재밭으로 갔다.


그런데 날도 추웠지만 이 부들부들하게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땅도 얼었고, 조금 하다보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치겠지 하고 하다보니 날은 추워오고 땅은 얼어 속도도 안나가고...


일부 녹은 곳으로 가서 비닐을 걷다가 도저히 비때문에 안되겠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고 나면 비가 그치겠지 하고 점심을 사먹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오는데 왜 비맞고 일하느냐고 빨리 오라는 내용이었다.
식당에서 나와 보니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다.


조금 기다리면 비가 그치려나 하고 담배 한 대 입에 들이 붙이고 시간을 끌어보지만 금방 그칠 비는 아니다.

결국 밥만 축내고 집으로 향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집에 가서 아내랑 먹었을 것을..
답운재를 넘어 집으로 향하는데 세레스가 이상하다. 안그래도 너무 오래된 차라서 여기 저기 고치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 또 이상 징후가 보인다.


잘 가겠지 했지만 결국은 덕거리에서 더 이상 운행하면 위험할 것같아 유이장님댁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아내에게 나 좀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아내가 데리러 와서 함께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이래저래 시간을 허비했다.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리고 세찬 바람까지 봄다운 모습은 아니다.


작년에는 봄가뭄으로 고생을 했었는데 올해는 눈도 많이 오고 봄비도 많이 오고 날씨도 춥고 작년과는 또 다른 기후이다.
이제 기후는 인간이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심할 것이다. 점점 자연 조건이 악화되고 있으니 그 속도에 따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래도 답운재밭에 가서 일을 조금이나마 하다가 와서 맘이 편하다.
그런데 저 세레스는 어떻게 한담.
아마도 내가 끌고 카센타까지 가지도 못하고 견인차까지 불러야 할 판이다.


산골의 모든 장비(세레스도 농사용 장비에 해당된다.ㅎㅎ)는 거의가 중고다 보니 사실 수리비, 유지비가 많이 든다.
목돈이 드는 새 기계 등은 사실 엄도도 못낸다.

비가 해맑게 그치듯 내가 애용하는 저 세레스가 큰 돈 안들고 산뜻하게 고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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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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