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얼굴 뜨거운 일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게 된다는 것을 요즘 느낀다.
귀농한 사람이 만만하게 심는 것 중 하나가 고구마이다.
우리도 귀농하자마자 심었다.
집 바로 위 작은 터에 우리도 먹고 귀농을 질기게 반대한 서울의 양가 어머님께도 나누어 드린다고 보무도 당당하게 심었다.
그때는 농기계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을 몸으로 때웠다.
귀농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는 속으로 ‘역시 예상한대로 농사가 이렇게 힘들구나’하고 뼈저리게 느꼈겠지만 숨 몰아쉬는 소리만 입밖으로 냈지 다른 말은 속으로 쌓아두었는지 이날이때껏 꺼내지 않았다.
하여튼 고구마를 몇 고강심는데 애를 먹었다.
농기계도 없이 밭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고구마 모종을 심는데 온힘을 다 뺐었다.
고구마 몇 고랑을 심는데 아내와 나는 진종일 붙어서 모종을 떠받을듯이 심었다.
심는데 고생한 것으로 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쭉쭉 자라야 한다는데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 밭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왜냐 하면 몇 포기 되지도 않는 고구마를 위해 그 전밭의 풀을 일일이 맬 수가 없어서 그냥 풀을 놔둔 것이다.
그러니 자동 포기가 된 것이다.
풀들만의 자치판이 되었다.
아이들 방 아궁이에서 구워 먹을 정도의 고구마를 수확했을 뿐이다.
그 사연을 이웃 어른께 말씀드렸더니 대뜸
“그래, 모종을 똑바로 세워서 심었능교?”하신다.
“아니 모종을 똑바로 세워서 심지 그럼 뉘워서 심나요?”
뉘워서 심어야 한단다.
모종이 꼿꼿하게 서있는 것이 아니고 쉽게 말해 흐느적거리는 모종을 꼿꼿이 심어 세우려하니 길다란 모종이 자꾸 휘어졌다.
그래서 드 깊이 더 깊이 구덩이를 파고 심었다.
여하튼 그해 농사는 그렇게 절단이 났다.
단지 큰 교훈을 얻고 넘어갔다. 고구마는 세워서 심어야 한다는....
다음 해가 되어 다시 고구마에 도전을 했다.
뉘워 심으라고 했겠다...
뉘워 심었다.
식은죽 먹기였다. 긴 모종을 세워 심느라고 땅을 있는대로 파서 세워 심은 것에 비하면...
그런데 그해도 고구마 수확은 별볼일 없었다. 왤까?
이번에는 모종이 타죽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옆으로 뉘워 심으라고 해서 뉘워 심었는데 이번에는 비닐 위에 곧이곧대로 뉘워서 그만 비닐이 태양을 받아 뜨겁다 보니 여린 모종이 탄 것이다.
탔다고 하여 숯검뎅이로 탄 게 아니라 말라죽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해는 무지 더웠다.
또 다른 교훈을 얹어준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뉘워서 심되 머리가 비닐에 닿지 않도록 흙으로 머리를 고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내가 말했다.
“맞아, 사람이라고 생각해봐. 그 뜨거운 비닐에 머리를 대면 사람이라도 탈나겠다. 그 어린 모종을 그랬으니...사람 머리에 베개를 고여주듯 그렇게 해주어야 하는데...”
농사, 만만한 게 아니다.
만만하게 보고 온 것은 아니지만 지혜로움을 요구하는 직업이 농사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해부터는 뉘워서 심고, 베개(?)를 꼬박꼬박 배주고 있다.
그랬더니 탈없이 잘 커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사는 교훈 하나 얻는데 자그만치 1년이 걸린다.
한번 ‘이 방법이 아닌가벼’했다간 1년 망친다.
신중하고, 지혜롭게 사람처럼 작물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초장에 경험했다.
올해의 고구마를 심는 날이다.
성당에 다녀와 새점밭이 있는 불영계곡으로 달렸다.
이 밭으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불영계곡을 차로 직접 건넌 다음 개울가에 난 우거진 곳을 지나 밭으로 간다.
어제 아내와 둘이 심다가 못심은 것을 아는 부부가 휴일이라고 와서 함께 심고 있다.
“뉘워서 심는 거 알지? 그리고 모종 끝의 머리를 들게 해주어야 한다구”
아내는 혹여 또 모종을 태울까 걱정인 모양이다.
몇 번이나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밭고랑을 오가며 혹여 고구마순의 머리가 비닐에 닿아 뜨거운 놈은 없는지 가끔 일어나 확인하는 눈치다.
이 밭의 고구마는 맛도 좋지만 보기에도 이쁘다.
새빨갛고, 조그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내가 키운 자식 자랑하는 걸 보니 나도 농사꾼 다 됐다.
이 밭은 불영계곡과 맞닿은 밭이라서 고구마들도 땅속에서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계곡물이랑 도란도란 친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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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