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5월까지 농부는 열심히 땅에 무엇인가를 심는다.
다른 지방이야 더 빠르겠지만 하여간 산중의 농부는 그렇다.
일단 땅에 고추도 심고, 야콘도 심고, 아피오스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아내가 안심는다고 뻐팅겼던 감자도 기어이 심었다.
그렇게 5월까지 정신없이 보낸다.
몸만 정신 없는 것이 아니고 머리도 정신이 없다.
비가 와 주어야 할 때 와주면 좋으련만 어디 농부의 입맛대로 되는지.
인생살이처럼 척척 손발이 맞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귀농초처럼 애를 태우진 않지만 그래도 비 때문에 머리는 정신이 없다.
특히나 어렵게 품을 샀는데 비가 와버리면 다시 품을 사기 어렵기 때문에 그럴 때는 더 마음이 쓰인다.
아내와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의 경우는 오늘 비오면 내일 더 열심히 일해야지 하면 될 일이지만 품을 사야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음 날 그대로 품을 다시 살 수 있게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니 신경을 쓰게 된다.
그나마 논농사를 닫아 걸었으니 그것만 신경쓰지 논농사를 지을 때, 비가 오면 논물도 칼같이 감독해야 한다.
안그러면 바로 논물 보고 돌아서자마자 논둑 터져 포크레인 부른 경험이 어디 한두 번인지...
이제는 밭농사만 지으니 그나마 정신적인 마음쓰임이 그 정도다.
그래도 큰 마음쓰임 없이 땅에 묻을 것은 다 묻어두었으니 올 봄은 하늘의 은혜를 많이 입었다고 본다.
어쨌거나 그렇게 밭에 질서정연하게 모종들을 줄세워 심어놓고 나면 한숨돌리기가 무섭게 풀들이 작물보다 먼저 자란다.
올해는 가뭄이 아주 심했는데 풀들은 가뭄도 타지 않고 제 할일을 충실히 해냈다. 농부의 머리가 흔들리도록...
야콘모종과 고추모종들은 목이 말라 한낮에 가면 머리를 비틀고 온몸을 비틀고 난리지만 풀들을 씽씽하다.
예전에는 그 씽씽함에 골이 났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도 살려고 이 땅에 몸붙이고 살고 나도 그러기는 마찬가지 입장인데 누가 누구더러 쓸모가 있느니 없까 싶어 이내 마음이 누그러든다.
이제 헛골에 난 풀을 어느 정도 손보자고나서 바로 집으로 올라오는 길의 예초 작업을 했다.
길 양쪽으로 풀들과 칡넝쿨들이 올라와 정신없던 터라 벼르다가 길로 나섰다.
밭에서부터 윙윙 소리를 내며 짊어지고 내려온 예초기로 길가를 다듬는다.
길가를 다듬으면 밭을 평정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 인다.
그러니까 밭의 풀을 평정하기 위해 밭에서 예초기 작업을 할 때에는 이 작업을 하고 나면 야콘모종과 고추 모종 등이 신바람이 나서 키를 키우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길가의 풀을 평정할 때는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달아오른 예초기로 인해 등이 뜨거워도 마음은 흐뭇하다.
오늘은 손이 떨리도록 등에 아기 하나 업고 진종일 작업을 했다.
봄에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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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