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3일
<font color="#7B2183">사람이 어떤 계기가 있으면 더 삶의 바퀴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야기 듣는 등 간접 경험에 의해 내 삶이 비춰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Tom Jones의 "I who have nothing"과 “Delilah"라는 곡이다.
예전에는 가사에 심취하여 고개를 있는대로 흔들며 듣곤 했던 곡이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금은 그 가수의 그 절절한 가창력에 매혹되어 듣고 또 듣는다.
다른 가수들이 부르기도 했지만 이 가수 어림없다.
삶도 그러리라.
주어진 삶이라고 누구든 절절하게, 곱씹으며 살지 않으리라.
산중에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가을걷이 때 자주 눈이 마주친 다람쥐도 잠들고, 유독 뒷산에서 캥캥거리던 노루도 잠든 시간에 그 노래를 들으면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감싼다.
아마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것을 표현하자면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감도는 느낌이다.
어금니깨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은 달콤함에 젖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의욕으로 충만하다.
그것은 내 삶의 의지와 그 가수의 노래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지 싶다.
산골로 온지 9년차,,,
귀농밥을 먹을수록 삶이 더 절절하길 원한다.
누구는 그러고 싶지 않을까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고 싶고, 하루하루가 값지길 바라고 또 바라는 삶이다 보니 이 노래들을 들으면 그 각오가 더 절절해진다.
오늘도 이 노래를 틀어놓고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찬 삶이길...
내일은 오늘보다 더 절절한 삶이길....</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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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새점밭의 야콘을 캐는 날이다.
오전에는 답운재밭에 조금 남은 야콘을 캤다.
부랴부랴 근처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야콘박스를 주문해 두었는데 포항에서 지금 납품 온다고...
점심 빨리 먹고 새점밭에 남은 야콘을 종일 캐야 마무리 될 것같은데 ...
점심을 먹고 새점밭에 나만 남겨두고 초보농사꾼은 박스를 받으러 다시 집으로 향했다.
예전같았으면 일도 아닌 정도의 분량이나 지금 허리 상태로 보아 조금 무리다.
일단 초보농사꾼도 무릎이 아픈데 그가 돌아오기 전에 뽑는 것은 죄다 뽑아는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욕심은 많아서 허리 한번 안펴고 죽으라 뽑았다.
한 골 한 골 뽑아가는데 땀이 났다.
난 체질상 왠만해서는 땀이 안난다.
땀을 많이 흘리는 초보농사꾼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에 비해 초보농사꾼은 보통 사람 이상으로 땀을 흘리니 난 그 모습을 보는 것으로 땀이라는 것을 간접 체득한다.
그런데 오늘은 몸이 얼마나 달았는지 땀이 막 흐른다.
계절로 보아 아주 추운 시절이다. 이곳 산중에서는...
그렇게 껴입은 옷 속으로 땀은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야콘을 뽑는데 노란 박스가 보인다.
그 박스는 야콘을 담으려고 어제 그냥 두고 간 것인데 그 중 한 박스가 이상하다.
박스는 대부분 내려 놓을 때 똑바로 군데군데 놓지 저렇게 얌전히 엎어 놓지는 않는다.
물론 그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짚이는 데가 있었다.
야콘을 캐다가 보니 빈 자루가 착착 접혀져 있고 그 위에 날아가지 말라고 돌로 꼭 눌러 놓은 것이 있었다.
누굴까...
생각해 보니 분명 어제 새점 할매 모습이 생각났다.
다른 집에 일하다 오시는 할매께 야콘을 자루에 넣어 드렸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며 초보농사꾼이 차에서 내려 자루를 마루에까지 놓아드렸다.
할매는 자루를 그렇게까지 들어다 준 것이 너무 너무 고마우시다는 말씀을 계속 하시며 우유 끓여 먹고 가라고 자꾸 붙드셨었다.
주현이도 있어서 그냥 가야 한다고 하니 자꾸 우유 끓여 먹고 가라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우유는 소중하셨을 것이고 겨울이니 따끈하게 끓여 주고 싶으셨던 거다.
그런데 어제도 빨리 어둡기 전에 가서 야콘을 내리고 혼자 있는 주현이 때문에 가야 했다.
‘그래, 할머니가 오늘도 다른 집 일가신다고 우리 밭을 지나가시며 빈 자루를 이렇게 돌려주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니 저 바구니도 이유가 있어서 엎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콘을 캐다 말고 박스를 뒤집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검은 비닐이 들어 있다.
비닐을 풀어보니 하얀 비닐 속에 노란 감이 들어 앉아 있다.
어제 야콘을 줬다며, 그리고 그 야콘 자루를 마루까지 들어다 주었다며 그렇게 고마워 하시더니 할매로서는 최선의 보답을 하신 거다.
나 역시 그 어떤 선물보다 귀했다.
야콘을 정신없이 캐다 말고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감 하나를 들어 옷에 슥슥 문질러 먹었다.
달고 부드러운 감....
분명 할매는 일가셨다가 돌아오시며 우리 밭에 오실 것이다.
이쁜 스웨터를 입으시고 우리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막 걸어오실 것이다.
그렇게 감 하나 먹고는 야콘을 정신 없이 캤다.
초보농사꾼은 아픈 다리로 그 많은 박스를 나르고 있을 것이다.
야콘밭에 혼자 두고 온 나 때문에 더 땀이 나도록 아픈 다리도 잊고 일을 하겠지 생각하니 허리 펼 시간이 없었다.
다른 밭도 아니고 새점밭은 불영계곡을 가로질러 가는 밭이고 거기에는 아는 사람도 근처에 집도 없으니 그도 몸이 달았을 것이다.
부부란 세 치 혀로 나불거리지 않아도 알아주는 마음이 있는 관계...
그 마음도 이러려니 하고 미루어 헤아리는 마음이 있는 관계가 아닐런지...
할매 덕분에 잠시의 귀한 참을 먹었으니 나도 기쁘게 일을 해야 했다.
또 내 삶이니 절절이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힘듬도 잊을 수 있고, 오히려 더 힘이 난다.
한참을 야콘을 캐는데 초보농사꾼이 왔다.
생각보다 많이 캐놓았다며 두 골 남은 야콘을 캤고 그때부터 난 캐는 것을 놓고 야콘을 따고, 선별하여 박스에 담았다.
초보농사꾼에게 할매가 이렇게 감을 두고 가셨다며 그에게 하나 닦아 주었더니 씩 웃으며 먹는다.
그 웃음은 아마도 상대방의 따사로운 마음을 알겠다는 특수문자일 것이다.
날이 어둡기 전에 서둘러 다 1차 선별을 하고 박스에 담고 해야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추위가 갑자기 몰려온다.
땀을 흘린 터라 조심하지 않으면 감기 몸살을 앓아야 한다.
서둘렀다.
이제 거의 다 담고 상품이 안되는 야콘을 자루에 담으려는데 저 멀리에 누군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닥아오고 있다.
“할매다!!“
할매는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부리나케 우리 밭으로 진입하고 계시다.
하나라도 도와주려는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계신 거다.
그것을 난 안다.
야콘을 박스에 담다말고 소리를 질렀다.
“할매, 지금 일 끝나셨어??”
“그려, 아직도 일이 남았지?”
빈 자루며, 감이며 다 할매가 두고 가셨냐고 당연한 이야기를 물었다.
고개만 끄덕이시고는 정신없이 일을 도와주신다.
할매의 고운 스웨터가 더 곱게 눈에 들어온다.
일을 다 하고 우린 셋은 낡은 세레스에 몸을 실었다.
강을 건너 할매를 내려드리고 우린 다시 산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할매가 차 안에서 씩 웃으시며
“감 사가”
하신다.
감을 따신 모양이다.
볼품도 없는 감이다 보니 마땅히 팔 곳이 없으셨을 것이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거다.
아는 분들이 감을 많이 주셨다.
선물로도 받았지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바구니씩 주셨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 주기에는 너무 물러 그럴수도 없으니 천상 우리가 다 먹어야 한다.
그러나 할매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 아름 사왔다.
불영계곡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둠 속에 단풍이 뭐라 뭐라 속삭인다.
아마도 곧 추위가 닥쳐 오니 어여 가을걷이며 밭정리를 서둘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니들 마음 내가 알고, 내 마음 니들이 아는 산중이니 다 알아들을 수 있지. 고맙구나.’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