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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분 _해당되는 글 61건
2009.12.26   귀농풍경--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2009.12.24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 다시 서울로... 
2009.12.1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기 
2009.12.15   귀농풍경--밭에서 오는 길 
2009.12.10   귀농아낙의 책이야기-문호리 지똥구리네 
2009.12.04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작가의 집 
2009.12.02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 돌팔이의 처방전 
2009.11.29   귀농아낙의 책이야기--효재처럼 살아요 
2009.11.2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무서운 대물림 1
2009.11.17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제 새끼잡아 먹는 에미 

 

귀농풍경--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   [산골풍경]   |  2009. 12. 26. 17:5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표고버섯을 가족 먹을 것과 조금씩 나누어 먹을 것 정도의 표고목을 했으면 했던 초보농사꾼.
그러다 이웃형과 함께 초겨울에 죽으라 표고목을 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표고나무에 종균을 넣기 위해 표고목에 드릴로 구멍을 내는 일을 했다.
그 집 것과 우리 것...


하여간 그렇게 함께 일을 했고 초보농사꾼은 결국 '테니스 엘보'라는 병명을 하나 얻게 되었다.
계속되는 팔 통증으로 병원에도 다니고 했지만 농사철이 시작되는 봄에도 계속 되어 사기까지 꺾었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표고목...


봄에 표고가 나와서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사랑방 손님들과 나눌 생각에 어찌나 마음이 좋던지...
결국 조금씩이나마 나누었다.

 



된장찌개에 넣어드시라고...


그러면서 가을에 나오면 또 한번 나누리...
그런데 가물어서 영 소식이 없다.
몇 번을 초보농사꾼 헛걸음을 했다.


그러다 잠시 밭에 한눈 파는 사이 표고가 자라고 비가 와서 썪었다.
얼마나 아깝던지 초보농사꾼


과 난 기가막혔다.

그리고 올 겨울에는 우리도 된장에 넣을 것 하나 없겠구나 했다.


그런데 비가 계속 오지 않고 그런대로 날이 따뜻하여 표고버섯이 자랐다.
생각도 안했는데 ...

이번에는 제대로 맞추어서 땄건만 양이 형편없다.
나누고 자시고 할 양도 안된다.


사람 욕심이 어디 한이 있는지...
전혀 가을에 기대안했던 것에 비하면 많다고 생각해야지...


산골의 표고버섯은 노지에 그냥 두어 자연의 온도대로 자라기 때문에,
그리고 아침 저녁의 기온차가 큰 곳에서 좋은 공기 속에 자라기 때문에 맛이 좋다.

많이 나누지 못해 이쁜 표고버섯을 따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 다시 서울로...
+   [산골편지]   |  2009. 12. 24. 12:31  


 

 

 

2009년 11월

 

춘천에서 홈에 오시는 반가운 분들을 만나고 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이별을 하고 굼벵이 엄니와 해담풀과 함께 타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하여 전철타기 알맞은 곳에 두 분을 내려드리고 나도 얼마 가지 않아서 내렸다.

초보농사꾼의 약속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나 역시 전철역에서 내린 것.


나의 다음 행선지는 서초동 교보문고이다.

내린 곳에서 서초동까지 그러니까 더 자세히는 강남역까지는 두 번이나 전철을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구두가 너무 아프다는 거.

 

 

 

 

 

전철을 타러 가는데 벌써 발이 아파 절룩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해 교보문고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두 번의 전철을 갈아타는데 왜 그렇게 많이 걷고 또 걸어야 하는지...
하여간 강남역 6번 출구라고 하여 나갔더니 거기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고 걷는 중에 두 번이나 물어야했다. 아무리 걸어도 안나와서...

어쩌면 발이 아파 더 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빌딩에 들어섰는데 책 냄새도 안풍긴다. 화살표 방향으로 들어가니 계단이 나오고 세 층이나 죽으라 올라가도 계단...
나중에 알아보니 거긴 그 전체 건물의 비상구.


근데 왜 비상구 입구에 교보문고라고 써붙였을까나...발은 아파 절룩임의 정도가 도를 넘어 주위 시선을 둘러봐야 할 판국인데...

하여간 물어보니 지하란다.

 

지하에 내려가니 눈에 훤하게 책들이 들어온다.
그동안의 힘들이 다 날아가는 순간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망설이다 비닐 우산을 사서 나오니 몸만 젖은 길은 더 가을스러웠다.)

 

쳐다만 봐도 찰떡을 먹은 것처럼 뿌듯하고, 내 책꽂이가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침을 흘렸다.

이란 그런 거다.


사람 마음을 배부르게 하는 것.

 

움베르토 에코는


“책이란 숟가락, 망치, 바퀴 혹은 가위와 같아서 발명된 이후 더 이상 개선될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했던가.

한참을 책을 보며 아이들에게 사줄 것을 적고, 내가 읽으면 좋을 책도 적고 신바람이 나서 책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초보농사꾼인데 밖에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는데 아느냐고?
모른다고요.... 지하라고요...^^

 

지금 비가 많이 쏟아지니 마천동 엄마에게 가기 어렵고,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 가까운 서초동 처형네로 가란다.
벗들과 만나 한 잔 하면서도 비가 쏟아지니 마누라가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귀농이 여러 사람 변화시킨다.

 

 

 

 

▲ (초보농사꾼의 소중한 친구들...)

나도 엎어지면 정강이 닿을 언니네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시누이 집에 잠깐 가신 어머님께 초보농사꾼이 전화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서울에 왔음을 눈치채시고 어머님이 집으로 오실텐데 내가 언니네 집으로 가면 부랴부랴 집으로 오신 어머님이 서운해 하실 것이다.

 

어머님이 내가 언니에게 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고 초보농사꾼이 전화를 해서 서울 운운은 하지 않았지만 며칠 전에 춘천에 가게 되면 서울로 갈지 모른다고만 했는데 어머님께 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시고 무지 서둘러 오실 것이다. 혹여 얘들이 밖에서 기다리나 ...별 생각 다하시고(우리가 어린 얜가??) 서둘러 데려다 달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비가 쏟아지는데 멀다고 안가면 허탈해 하실 것 아닌지...

 

 

 

그래서 마천동으로 갈 생각을 하고 지하 2층의 팬시 코너에 가서 우산을 샀다.
비닐로 대충 만든 것인데도 5천5백원이나 했다.


집에 우산이 쌨는데 사야 하는지...망설이다 샀다.

문닫는다고 안내 방송이 나오고 땅 위로 나오니 웬걸...


길 바닥만 비가 휩쓸었음을 암시하듯 젖어 있을 뿐 하늘은 검기만 하고 떨어지는 것은 없었다.
길바닥의 낙엽만 온몸이 젖어 뒹굴뿐...

비싸다고 망설이던 비닐 우산을 금쪽같이 움켜쥐고 걸었다.


발은 통증이 심해 더 한쪽 발을 절게 만들었으나 비온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에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내가 떠나간 서울, 다시 찾은 서울에서 지금 무슨 생각으로 걷는지...


이제 내일 산골로 가면 내가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이곳 서울은 다시 내 등뒤로 물러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바람이 정신차리라며 얼굴에 와 아는체를 한다.

 

다시 2번을 갈아타고 어머님 집의 역에서 내려 천천히 걷는데 벌써 12시가 가까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따라 일찍 들어온(밤12시에 들어오면 거의 기록이다.) 초보농사꾼이 어머님이 안들어 온다고 걱정걱정이시라며 어디냐고...
결국은 초보농사꾼이 마중을 나왔다.

내가 늦은 밤이라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비도 안오는데 손에는 우산을 들고 저만치서 나인 듯 하니 부른다.
서울 하늘 아래서 그 소리가 공중제비를 한번하고 나의 귀에 들어온다.

 

 

 

 

 

우린 연애시절처럼 반가워 하며 젖은 길을 걸었다.

 

어머님은 전화받고 말은 안해도 얘네들이 서울일거라고 생각하시고는 어찌나 맘이 급하던지 막 서둘러 오셨다고 하셨다.

“어머님, 제가 언니네로 그냥 갔으면 서운하셨을 것 같은데??”


“언니네 가는데 뭐가 서운해? 집으로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못보면 그게 그렇지...”하신다.

그렇게 새벽이 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이다.
어제 밤에 평소보다 일찍 헤어지며 오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모양이다.
어머님네 집에서 챙겨주시는 짐을 다 차에 싣고 어머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 오는 길...

차 뒤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을 흔드는 어머님 모습에 가슴팍이 뻐근해진다.

 

함께 친구들이 모여있는 하남시로 가니어제 못나온 친구들도 나오고 모두 9명이 닭백숙을 먹으러 갔다.
친구가 관심있어 하는 땅도 덤으로 구경하고...

점심을 먹으니 당연히 이슬이는 따라 나오는 법.


산골로 내려가야 한다며 술을 안마시는 초보농사꾼.
어차피 지금 내려가도 어둔 시간에 도착할 것이고, 비도 오는데 그냥 좋은 벗들을 만났으니 술을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는 술도 깰겸 이사한 친구집에 내가 아직 못가보았다고 친구집으로 향했다.


초보농사꾼의  친구는 친구가 술이 깨서 안전한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동행하면서 여기 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애를 썼다.

자기도 엄청 바쁘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애들 좋은 옷을 싸게 파는 곳이 있다며 거기까지 데리고 가고...물론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 못사입혔지만 사입힌 것보다 더 마음이 따뜻했다.


좋은 벗에게서는 말보다 그런 행동에서 더 향기가 풀풀 난다.

덤으로 친구 집 뒤에 있는 말의 거처(?)도 가보았는데 말들이 내 키보다 몇 배나 커서 엄청 무서웠다.

 

 

 

 

그런데 신기하게 눈은 소보다도 더 순해 보였다.


모두  세 마리인데 그 중 한 마리는 하얀 암 말이다.
답게 고개를 숙이고 수줍어한다.

 

친구집에서 차를 마시고 산골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그제서야 정신이 바짝 든다.
비가 오고 있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으니 초보농사꾼이 운전하기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조건이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조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제 귀농 10년차가 지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여 앞으로의 계획, 꿈 등을 함께 나누었는데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산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춘천에서의 하늘마음농장 번개를 마치고 서울을 거처 산골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만남으로 인해 가슴뛰었던 시간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헤어짐으로 인해 찡한 시간들...
그런 시간들을 엮으면 가지런한 소풍길이 되는 것이리....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춘천 벙개 후기
+   [산골편지]   |  2009. 12. 15. 13:00  


2009년 11월


올 가을에는 어디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마다 가을이면 도지는 병이지만 올해는 금방이라도 일을 낼 것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매번 가을은 야콘캐는 철과 겹친다는 핑계를 대고 주저 앉곤 했다.


호수밭의 야콘은 홈에 오시는 황루시아 부부와 백산님네 부부가 도와주러 와서 캤는데 문제는 답운재밭이었다.

그러던중 홈게시판에 반가운 글이 번쩍 번쩍...
내 귀도 쫑긋...


삼전 베드로님께서 춘천의 버드나무 아래로 아래로 오세요...라고 벙개 공지를 올리신 것이다.
춘천이야 지명만으로도 여자분들의 눈이 풀리고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그런 곳이 아닌지...


그렇다면 문제는 답운재밭 야콘인데 날은 추워지기 시작했고 야콘이 얼까봐 마음이 급했다.
야콘만 캐면 콧노래를 팡팡 부르며 춘천으로 내달리련만 ...


그러나 내게 누군가.
“한다면 한다??”



 


 답운재밭의 야콘을 캐면 될일이 아닌지.
그때부터 누가 불러도 대답할 시간도 없이 답운재밭에 올인했다.





일단 올인하면 너 죽고 나 살기로 하는 스타일인 배 소피아.
첫눈이 온 2일 월요일부터 일단 야콘캐기 시작.


문제는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초보농사꾼이 다른 일과 겹쳐서 거의 나 혼자 해야 한다는 난제가 내 정수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초보농사꾼도 춘천의 벙개에도 가야 하고 일도 겹쳤고, 야콘도 캐야 하고...

결국 생각한 방법이 아침 일찍 초보농사꾼이 답운재밭의 야콘을 11시까지 캐놓고 가면 내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캐놓은 것을 따서 일일이 분리하여 담기로 했다.


눈오는 날 초보농사꾼은 언손으로 야콘을 캐놓고 갔고, 내가 어둡도록 혼자 나머지 야콘을 캐서 박스와 자루에 담아 놓았다.
그러면 초보농사꾼이 일을 보고 어두운 밤에 밭으로 와서 야콘박스와 야콘자루를 세레스에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다음 날,
3일 화요일


고딩 선우가 열이 난다고 하여 신종플루 거점병원에 진종일 순서를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고열이 아니라며 타미플루 처방은 안해주고 감기약만 한보따리 받아서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을 걸렸으니 점심 겸해서 서둘러 먹고 다시 산골로 돌아와 내복을 껴입고, 머프러로 목을 감싸고, 양말을 두 켤레 신고 다시 답운재밭으로 갔다.


오늘도 역시 초보농사꾼이 야콘을 일찍 뽑아 놓고 일보러 갔고 나는 다시 야콘을 뽑아 박스에 담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슬슬 아프기 시작한 배가 쥐어 뜯듯 통증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어둠을 끌어안으며 초보농사꾼이 밭에 도착했다.
같이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진해지기 시작했지만 어둔 밭에 초보농사꾼 혼자 두고 먼저 집에 올 수 없었다.




이젠 눈물이 나고 입에서는 엉엉 소리가 날 정도로 통증이 심해지자 먼저 집에 가라고 했는데 말 안듣는다고 초보농사꾼의 톤이 높아지기 시작.
그때는 이미 거의 기다시피 눈물을 떨어뜨리며 집으로 정신없이 운전해 왔다.


혈압을 재어보니 156이다.
배는 정신을 놓을 정도로 아프고...
일전에 지어놓은 약을 먹고 잠시 후 구토를 시작했다.


구토를 하고 나니 조금 정신도 들고...

배아픔을 계속되었지만 밭에서와 같은 무서운 통증은 조금 사그라들고 잔통증만 사람을 잡아두고 있었다.
잠시 후에 초보농사꾼이 와서 굼벵이 엄니가 사다준 돌뜸도 준비해 주고, 약도 주고 물수건도 해다 주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도 같은 방법으로 아침에 초보농사꾼이 캐 놓으면 내가 가서 나머지 야콘을 캤다.
그날은 어떻게 어두워졌는지 모르게 주위가 아무 것도 안보일 정도로 깜깜해졌다.
점심도 먹기 싫어서 안먹었는데 초보농사꾼이 안온다.


저 멀리서 세레스소리가 요란스러워진다.
초보농사꾼이 차를 밭에 세우고 나를 사방에다 대고 부른다.


안보이니까.

어둔 밤 밭에서 서로 위치를 확인하는 산골부부.
내가 야콘농사를 귀농할 때부터 지금껏 지어도 이런 희안한 방식으로 캐긴 첨이다.gg





이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안갔다며 빨리 실을테니 먼저 가란다.
초보농사꾼을 어둔 밭에 두고 갈 수 있나...


함께 마무리 작업을 하고 고개를 들으니 별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어쩜 그리 아름다운지.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그림이 이 광경을 보고 그린거구나 할 정도로 아름답고 눈부셨다.
배고픈 것도 모르고 한참을 황홀한 밤하늘 별들을 눈을 통해 가슴에 담아두었다.

그날 저녁에 춘천벙개에 무조건 참석하기로 상의를 마쳤다.


그 이유는
첫째, 하늘마음농장을 통해 알게 된 인연인데 고맙게도 삼전 베드로님께서 멍석까지 펴주시고 준비까지 해주시는데 우리가 빠져서야 되겠느냐는데 입을 모았다.


둘째, 내일 하루는 초보농사꾼의 일이 없으니 둘다 야콘밭에 엎드려 열과 성을 다하면 어느 정도 다 캐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드디어 결정적인 금요일, 6일이다.


오늘은 둘다 서둘러 야콘밭으로 갔다.
초보농사꾼이 캐서 군데군데 쌓아 놓으면 난 가서 야콘을 딴 다음 야콘을 선별하여 박스와 자루에 넣는 일을 했다.





점심도 오후 3시에 먹으러 갈 정도로 했건만 다 캐지 못했다.
이제 남아도 벙개에 갈 것이라 어두워지도록 둘이서 캐고 차에 싣고 돌아왔다.

귀농하여 야콘농사를 여러 해 지어도 올해와 같이 주가 내가 되어 캐기는 첨이다.


저녁에 삼전 베드로님과 총무님이신 김남걸 오라버님께 우린 무조건 춘천으로 뜬다는 말씀을 한번더 박아드렸다.

이번에 하늘마음당(?) 당수님이신 최일선 파비아노 당수님께서는 마침 L.A 출장중이셔서 참석하지 못하셨고, 김동신 교수님은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 참석하지 못하셨다고 총무님께서 설명해주셨다.


근향님도 선약이 있으셔서 어렵다는 말씀을 홈에 남겨주셨다.
그리고 문영미님은 감기로 참석하기 어렵다는 전화통화를 나와 했다.


다음 날, 아침
예상보다 조금 늦은터에 여기 저기 전화하느라 (오늘 당번인 일이 있어서...^^) 더 늦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섰다.
그런데 차에 시동을 걸던 초보농사꾼이 차가 방전되었단다.


시동이 안걸리고...

안그래도 늦었는데 이건 무슨 영화와 같은 우연인지.
내가 어제 저녁에 밭에서 끌고와서는 제대로 시동을 끄지 못한 거다.


초보농사꾼 황당해 하더니 세레스로 뛰어가 시동을 걸어보나 워낙 낡은 세레스 시동에 한번에 안걸리고 갤갤거린다.
세레스에 시동을 걸어 테레칸 옆에 바쩍 붙여 대는 초보농사꾼.
점프선인지 뭔지 하는 것 끝에 빨래집게처럼 붙어 있는 집게를 차의 두 군데에 연결하던데 시동은 여전히 안걸린다.




집게를 여기에 집었다, 저기에 집었다 하더니 날더러 시동을 걸어보란다.
안걸린다.
이번에는 세레스의 집게를 다시 점검하니 시동이 걸린다.


휴~~~

이제 출발이다.
우린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럴 때 제일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초보농사꾼의 졸음도 쫓아줄 수 있고, 다른 일 생각이나 걱정을 내려 놓고 이야기하기에는 참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제일 일찍 가서 오시는 분들을 삼전 베드로님과 함께 맞이해야 옳거늘 그러지 못할 것같아 안절부절....

중간에 총무님과 삼전베드로님에게 전화가 오고...
마음은 더 급해지고...


이번에는 삼전 베드로님께서 열차표를 어렵게 구해서 치자꽃님께 보내셨단다.
그 열차를 이용하신 분이 치자꽃님 부부, 불영계곡님, 장의숙 언니, 굼벵이 엄니, 해담풀, 박종라 비르짓다님이었다.


그리고 김태경 오라버님과 김날걸 오라버님은 그 전날 늦게 참석할 수 있다는 결정을 하셔서 그 차량을 이용하지 못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면서 중간중간 삼전 베드로님의 약도 지시를 받았는데 급한 나머지 두 번이나 오라는 길을 놓치고 한참을 내달려 되돌아 오는 일까지 겪었다.
지각생 주제에 할 건 다 한다. ㅎㅎ


한참만에 점심식사를 할 장소인 곳으로 들어섰다.
방에 계시던  반가운 분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와 뒤로 넘어갈뻔했다.
처음부터 조금 늦을 것같다시던 은행장님만 아직이고 모두 와 계셨다.


치자꽃님 부부, 삼전 베드로님 부부, 불영계곡님, 장의숙 언니, 김태경 오라버님 부부, 김남걸 오라버님, 굼벵이 엄니, 은행장님, 해담풀님, 박종라 비르짓다님 이렇게 해서 모두 15분이 모였다.

처음 뵙는 분들도 계시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 얼마 전에 보았어도 또 보니 언제 봤냐는 듯이 또 새롭게 반가운 얼굴들...





엄나무와 오갈피를 넣은 백숙을 맛있게 먹으며 한분 한분 자기 소개를 했다.
이번에 처음 나오신 분은 치자꽃님의 남편분, 불영계곡님, 해담풀, 박종라 비르짓다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우리 홈에 오시는 분들의 인상은 정말 따사롭게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행장님이 분당에서 달려오셨다.
모두가 일어나 도대체 어느 분이 은행장님이시냐며 궁금해 하신다.

늦은 점심만 부랴부랴 드시고 은행장님은 다시 분당으로 가셨다.


그 먼길을 인연을 만나기 위해 달려오셨다니...
그저 고맙고 마음이 짠해진다.

나머지 ‘하늘마음학교 학생’(삼전 베드로님 표현임.)들이 점심을 맛나게 먹고 출발한 곳이 호명호수다.
호수에는 우리집 거북바위 보다 조금 덜 생긴(?) 거북이가 호수위에 떠서는 물을 막 뿜어내고 있었다.





환영한다는 뜻인지 난 안다.
‘그려, 그려...쉬어.’

그 옆에 백조도 있으나 나보다 우아한 게 살짝 신경쓰여 안올리련다.^^
이곳에서 박종라 비르짓다님은 집안의 행사가 있으셔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먼저 가셨다.
어린 아이가 7살이라던데 직장맘이 하루 쉬는 날 쉬지도 않고 이곳에 왔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그리고 삼전 베드로님께서 회사차를 준비해 주셔서 편안하게 지하 1300미터 막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서부터 청평 양수발전소의 원리부터 시작하여 각종 겁나게 크고 어마어마한 시설들을 죄다 볼 수 있었다.


대부분 경우는 아마도 그 막장까지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하여간 우린 어느 분(?)의 빽으루다가 호기심 많은 초보농사꾼이 더 이상의 궁금한 점이 없을 정도로 삼전 베드로님께서 알뜰히 설명을 해주셨다.







거기서 삼전 베드로님께 배운 바를 토해내야 할 의무가 내게 있지만 나의 성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억력의 한계가 딱 요까지라서 이렇게 간단하게 마무리를 하게 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난생 처음 발전소를 막장 아래에까지 내려가 구경한 것도 처음이다.
아쉬운 점은 고딩과 중딩인 산골아이들까지 함께 왔더라면 더 큰 교육이 되었을 것같다며 굼벵이 엄니랑 입을 모았다.




그렇게 발전소를 둘러보고 다시 회사차를 이용하여 아까 백숙을 먹은 식당 마당에서 뒤풀이하였다.
떡과 과일 , 차 등은 모두 삼전 베드로님의 부인이신 율리안나 형님께서, 그리고 비스켓은 굼벵이 엄니께서 준비해 오셨다.

삼전 베드로님께서는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가평 잣 선물세트까지 준비해 주셨다.





그렇게 아쉬운 만남을 마무리 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올 때에 기차를 타고 오셨던 분들은 세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서둘러 각자의 보금자리로 출발했다.

우리 차에는 굼벵이 엄니랑 해담풀이 동승했다.


이 모임을 끝내고 산골로 간 것이 아니고 어머님도 뵙고, 볼일도 있고 해서 서울로 갔다.
우리가 서울로 가지 않았으면 울진팀과 함께 한 차로 소풍삼아 참석했을텐데 그러질 못해 아쉬웠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인연’의 냄새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진하고 고소한 커피향이 아닐까,


꽃으로 치자면 후리지아처럼 금방 코끝에서 향긋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가을 들녘에 핀 들국화가 아닐까.

어쩜 한 분 한 분의 그 얼굴 물결이 그토록 평안하고 따사롭던지...

서로서로의 향기를 묻히며 각자의 소풍길을 간다면 그 길이 스폰지처럼 폭신폭신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


삼전 베드로님, 율리안나 형님,

정말 고생하셨고, 며칠 전부터 비가 올까 걱정이셨고, 몇 분이나 오실까, 차편을 어떻게 조정할까,,, 등등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요.

멍석이란 그냥 둥글게 말린 것을 쫙 펼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그저 두 분께 감사할 뿐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풍경--밭에서 오는 길
+   [산골풍경]   |  2009. 12. 15. 12:30  




대부분의 마을입구는 복잡하거나 좀 어수선하기 마련입니다.


어려 가구가 모여 있기도 하고 농촌이라서 가축우리나 창고, 밖의 화장실 등 집 외의 부수 건물이 많다 보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입구는 아주 깨끗한 편입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지나 우리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더 아름답고 이런 가을에는 고즈넉하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집이 한 골씩을 차지하고 있어서 라고 생각합니다.





집들은 대개 길을 사이에 두고 양측으로 줄서 있기 마련인데 우리 마을은 마을 초입만 조금 그렇고 나머지는 길가에 집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집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함께 가보실까요.


이제 꺽어지는 곳을 지나면 오른쪽 개울을 건너 윗 편에 호미할머님 집이 멀찍이 보입니다.
양지바른 곳에 반듯하게 한채가 햇살을 받고 있어 아주 따사로워 보이는 집입니다.




그곳을 조금 올라가다 보면 주위가 온통 단풍이 든 숲입니다.
참으로 이쁩니다.

조금만 올라가면 제가 자주 말하는 다리결이 보입니다.

저 위에 집이 한 채 보이지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남씨 할아버님이 사십니다. 늘 꽃을 선물로 주시는 ...

오른쪽에 작은 다리가 보이지요.




그리고 조금 올라가면 우리집의 표시인 '하늘마음농장'이라는 글이 큰 돌에 턱하니 박혀 있습니다.

산골가족은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따라 매일 집을 드나듭니다.


거기서 조금만 나가면 더 자지러지는 불영계곡이 늘상 팔을 벌리고 있구요.

울진...볼수록 여인네의 목도리처럼 따사롭고 , 남정네의 떡 벌어진 어깨처럼 우람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찍사는 배동분 소피아, 차 안에서 박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책이야기-문호리 지똥구리네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12. 10. 21:24  

 

 

 

 

주현낭자가 신종플루로 며칠의 휴교를 실시한다는 말을 늦게서야 들었다.
그저 오늘이 이 숙녀의 학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이구나 했을 뿐이다.

 

휴교를 해서 내일 학교에 안간다는 말을 늦게 듣고
"그럼 우리 바람쐬러 갈까?"
했더니 좋단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운전이 안된다는 거다.
이 놈의 운전은 울진에서만 누빌 수 있다.
신호등을 제대로 못볼 뿐더러 어느 차가 닥아만 와도 무섭다.

울진에는 신호등이 없고 내가 다니는 길은 국도라서 좋다.
그러니 가고싶어하는 부산을 못간다.


주현 낭자는 부산을 가보고 싶어하는데 내가 그러질 못한다.

그래서 버스타고 가자고 했고 잠은 어디서??? 이거 복잡해진다.


주현이랑 모텔에서 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신종플루가 난무하는 찜질방에서 잘 수도 없고....

서론이 너무 길었다.


어쨌거나 부산에서 만만한(?) 서울로 가기로 했다.
만만하다는 것은 그곳에 핏줄이 즐비해서 잠자리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가끔은 그런 희망사항이 있다.


정말 키가 하나 있어 내가 가서 쉬고 싶을 때 주부가 잠자리 걱정안하고 가서 묵상하다 오는 곳이 단 한 군데만 있음 정말 좋겠다고....

이 말에 주부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쩜 떼로 몰려다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복잡해질수록 '홀로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진 자만이 영혼이 녹슬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장담은 장담이고...

하여간 그렇게 서울로 튄 다음 간 곳이 서초동 교보문고이다.


주현낭자도 방학때 서울보내면 혼자서도 꼭 들리는 곳이 교보문고이니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곳에 보니 한 켠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둔 공간이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읽은 책이다.


이 말 하려고 여기까지 서론이 내려왔다.

이 책은 그런 곳에서 읽어도 될 것같았다.


굳이 중요한 점에 밑줄 그을 필요도 없고, 어느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나의 작은 공책에 필서할 일도 없고 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판단이 맞아떨어졌다.

양수리 옆 문호리라면 땅값도 비싸고 서울에서 가까운 전원지로 한참 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차례를 보면

 

파트 1 얘들아, 강변 살자
밭 가운데 있는 집
새로운 이웃들
꿈에 그리던 텃밭
느티나무에 그네를 매다
직박구리의 집
항아리 속의 물고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햇살 좋은 날, 딸기밭에 온 손님
두꺼비의 방문
열렬한 자연교 신자가 되다!
단풍나무를 좋아하는 이유

파트 2 아이들의 세상과 어른의 세상
흙은 행복한 기억을 할거야
개미 날려 보내기 놀이
깡충거미와 달리기하기
붉고 푸른 꽃물 편지
생각하는 의자
파란 시간
밤새우기 놀이를 하고 싶어
시래기를 걸고, 모이대를 만들고, 새집을 달고
책 읽기 말고는 할 게 없어!
겨울에 찾아온 사자
신나는 외출
달래 서리
강바닥 명개흙 머드팩

파트 3 살아가며 배우는 것들
봄의 전령
개구리 표정은 늘 스마일
검정 암탉과 흰 수탉과 병아리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건 고양이의 앞발
꽃밭 주인 밀짚모자 아저씨
지를 만드는 철
풋자두 한 양동이
하늘로 소풍 간 암탉!
엄마가 된 초롱이
양귀비 잎에 쌈 싸 먹다

파트 4 마음 만들기
딸과 함께 걷는 길
딸기 한 바구니에 10만 원?
봉숭아꽃 물들이기
박각시가 온다네
박나물을 기억해
아이들의 씨앗 농사
개울이 가져다준 선물
가을의 첫맛
가장 큰 걱정
산비둘기 구출작전
모닥불을 피우는 시간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얼음썰매는 어른도 좋아해
한겨울의 동거자
새 달이 온다

 

이런 차례로 글이 전개된다.

 

원제목 옆에 붙어 있는 작은 제목이 이것이다.
"병치레를 달고 살던 아이를 위해 선택한 시골생활"

이 집은 어떤 시골생활을 했으며 아토피 등이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치료되었을까가 궁금해졌다.
제목이 그러니까...

 

그런데 그 점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약하고 전체적인 아이들의 시골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문호리 지똥구리네>는 양수리 옆 문호리라는 마을에서 5년을 살면서 겪거나 체험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우리처럼 서울에서 줄곧 생활하고 일을 해오던  저자는 아이들의 천식 아토피 문제와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 위한 방법으로 이 길을 택한 생활이야기이다.

 

처음 문호리로 이사를 가면서  생각한 것이  ‘타샤 튜더 반만 따라 하기’ 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타샤 투더는 지구상에서 드문 분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나로서는 과연 어떻게 반까지나 따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끝까지 읽었다.

 

내가 타사 튜더 할머니에 대해 너무 엄청난 평가와 존경과 경외심을 갖고 있는지 몰라도 그렇다는 느낌은 없었다.

모든 책에는 단 한 줄이라도, 단 한 가지라도 느낌이 있다고 했듯이 이 책은 일단 도시를 탈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있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문호리 지똥구리네 상세보기
김수영 지음 | 동아일보사 펴냄
서울을 떠나 시골살이를 시작한 김수영이 전하는 따뜻하고 자연친화적인 삶 이야기~ 문호리 강변 마을에서 지낸 5년의 기록 『문호리 지똥구리네』. 2004년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기로 결심한 저자는 강변에...
문호리 지똥구리네 상세보기
김수영 지음 | 동아일보사 펴냄
서울을 떠나 시골살이를 시작한 김수영이 전하는 따뜻하고 자연친화적인 삶 이야기~ 문호리 강변 마을에서 지낸 5년의 기록 『문호리 지똥구리네』. 2004년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기로 결심한 저자는 강변에...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작가의 집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12. 4. 22:23  
작가의 집 상세보기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 윌북 펴냄
펼쳐진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20인의 집을 엿보는 이야기 『작가의 집』. 작가들의 정신과 일상적 삶이 함께...있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인 ‘작가의 집’을 엿보는 이 에세이는 작가의 집을 엿보는 동시에...


서울에 가면 꼭 들리는 곳이 교보문고이다.
주로 광화문을 가지만 넷째 언니네에서 가까운 서초동에도 교보문고가 생겼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니 근지러워 가봐야 한다.

그곳에 갔을 때, 새 책 코너에서 내게 말을 걸던 책이다.

 

이 책은 나도 흥미롭지만 선우, 주현이에게 읽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이들까지 영역이 잡히면 바로 사야지 굼시러워 견디질 못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 냄새를 맡았겠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20명이 소개되고 있다.
사람이 소개된다기 보다 집이 더 소프트 라이트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작가와 집...
어떤 관계일까.

 

 

 

내가 생각해도 작가에게 있어서의 집은 더없이 중요한 공간일 것이다.
누구든 집은 중요한 공간이겠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직장에서 생활을 하지만 작가는 집의 집필실에서 많은 시간이 보내다 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작가는 집에서 왕도 되었다가 , 왕따도 되었다가, 거지도 되었다가, 이 세상 고독을 다 짊어진 사람도 되었다가 할 것이다.
거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집 주위의 풍광이 그의 글 소재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집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의 어린시절, 결혼생활, 소개된 집에서 어떤 작품이 탄생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작가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의 집은 친구이며, 자극제이며, 위로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내가 자주 들어왔던 작가도 있지만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노벨상 수상자도 등장하는지라 읽던 책을 뒤로 밀치기에 충분했다.

 

쟁쟁한 작가들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데 그들이 늘상 몸담았던 집은 어떠했는지는 더더욱 호기심이 발동했다.

 

등장하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 --내면세계를 찾아 떠난 여행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스 --구대륙의 유목민 마담
어니스트 헤밍웨이 --키웨스트의 바다 사나이
비타 색빌웨스트 --영국 최고 정원의 안주인
알베르토 모라비아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 로맨티스트
마크 트웨인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만들어낸 스토리텔러
셀마 라게를뢰프 --옛날이야기 들려주는 여인
버지니아 울프 -- 로드멜의 ‘댈러웨이 부인’
장 지오노 -- 영원한 프로방스인
카렌 블릭센 -- 아프리카 농장의 연인
카를로 도시 -- 고고학에 심취한 괴짜 외교관
딜런 토머스 -- 웨일스의 보헤미안
장 콕토 -- 예술을 흠모한 자유로운 영혼
로렌스 더럴 -- 지중해를 그리워한 방랑자
윌리엄 포크너 -- 옥스퍼드의 신사 농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 가르도네의 사치스러운 탐미주의자
크누트 함순 -- 노르웨이의 외로운 은둔자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고향을 노래한 음유시인
피에르 로티 -- 동방을 동경한 모험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 팔레르모의 고독한 귀족

 

 

 

이 책을 쓴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는 서문에서 “그들은 그곳에서 살고, 창조하고, 고통받았다. 스스로 택한 고독과 글을 써야만 한다는 긴박감이 언제나 그곳에 도시리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글쓰기의 열정으로 집을 채웠고, 바로 그만큼 집을 사랑했다.“(본문 7쪽)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고독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독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나는 고독을 만들었다. 글쓰기를 우해서 이곳엣 혼자여야 한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리 된 일이었다. 나는 이 집엣 혼자였다. 나는 스스로를 가두어두었다. 물론 두렵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집은 글쓰기의 집이 되었고, 내 책들은 이곳에서 나왔다....”(본문 17쪽)

 

 

 

그러면 몇몇 작가를 소개해 보겠다.

 

헤르만 헤세는 스위스의 루가노 호수를 에워싼 언덕에 자리한 몬타뇰라 마을에 있는 카사 카무치 궁에 1919년 도착했다.

“몽상적인 작가는 이 ‘궁’의 과장된 모양새와 그 아래 울창한 정원의 관능미에 깊은 애착을 느꼈다. 목련나무, 등나무, 야자나무, 박태기나무가 어우러져 antd한 숲을 이루고, 정글을 연상케 하는 얽히고설킨 수풀과 조화를 이룬다.주변 산의 경관, 반짝이는 호수의 평화로운 전망도 그의 불안한 정신을 달래주었다.


“몇 년간 이어진 악몽으로 껴져버린 줄 알았던 글쟁이가 다시 깨어났고” 그곳에서 “자유, 공기, 햇빛, 고독, 일”을 되찾았다. 헤르만 헤세는 고독에 취해 창작의 불씨를 되살렸다....“(본문25쪽)고 소개되어 있다.

 

책 안에 들어있는 사진속 작가의 집


금방이라도 헤르만 헤세가챙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나올 것만 같다.

1951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출간하여 아케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받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특이하게도 친구와 늘 함께 살았다.


방도 하나씩 나누어 쓰고 함께 여행도 하고...

살면서 이런 도반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던 나로서는 여간 주의를 끌어들이는 사진과 내용이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
삶이라는 외로운 길을 그렇게 벗과 간다는 것....

 

 

 

 

여자들이 사는 집이어서인지 몰라도 차분하고, 다소곳한 분위기의 집이 소개되어 있다.
사진 속 집에 앉으면 글이 절로 써질 것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1952년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결혼고 이혼을 반복한 헤밍웨이는 자살미수를 여러 차례 하다가 엽총으로 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작가였다.

 

헤밍웨이는 집 뒤에 외따로 난 별채가 있는 점도 무척 좋아했다. 밖으로 철제 계단이 나 있는 방은 집필실이 되었다. 작가의 피난처요, 창작의 공간이었다. 벽을 따라 선반을 놓고 책을 정리하고, 단순한 원탁에 시가 공장에서 구입한 가죽 등받이 의자를 두고 일했다.
그는 매일같이 조용히 있기 좋은 아침마다 집필실에 갔다. 하루 여섯 시간씩 규칙적으로 일했다....“(본문 67쪽)

울프와 연인관계로 잘 알려진 비타 색빌웨스트...


비타는 “3헥타르의 대지에 탑이 4개, 난로가 100개, 계단이 52군데, 일 년의 날수에 따라 방이 365칸이나 있는 15세기 대저녁에서 비타는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타는 상상력과 시를 향한 열정 외에는 친구가 없는 외로운 소녀였다...(본문78쪽)”고 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본 작가의 집필실, 서재 중 가장 맘에 드는 곳이 비타의 탑 방이다.
그러니까 다락방처럼 꾸며진 탑 꼭대기 방이 그녀의 직업실 겸 안식처다.

 

“우리는 탑에 있는 방의 한쪽 구석에 난로를 세우고 탑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아치는 그냥 남기기로 했다. 가루를 위로 옮기고 시싱허스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처음으로 탁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비타의 일기 내용이다.

 

또 그는
“우리는 탑 꼭대기에 야번 침대 두 개를 놓고 잠을 자며 촛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남편도 그 탑에는 한 번 올라간 것이 다였고, 아들도 30면간 여섯 번뿐이 안올라갔다고 한 그녀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다른 작가의 탁트인 서재나 호화로운 작업실이 아니고 다락방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어 나의 관심을 자극했다.
나 또한 그런 공간이 좋다.

 

 

 

모든 생각이 다 달아나도록 탁 트인 전망을 가진 집필실보다는 이런 공간을 좋아한다.
책꽂이도 수수하고, 그 정리된 모습도 자연스럽다.
일부러 꾸며진 느낌이 없다.

 

우리나라의 어느 여류작가의 서재를 보니 엄청난 책을 전시라도 하는 듯 책꼭이가 너무 인위적이어서 불편했는데 이 사진을 보니 그런 공간 하나 갖고 싶어했던 내 마음에 다시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의 소설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비타와는 정반대로 탁트인 바다가 보이는 곳에 그의 집필실이 있다.
아니 그의 집필실과 그런 것이 아니고 집 자체가 바다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언제나 활동적이었던 작가는 해변에서 무릎을 꿇고 조개껍질을 줍는 것을 좋아했다 한다.

 

“1990년 9월의 어느 날, 모라비아는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소. 한 인생은 또 다른 인생만큼 가치있기에, 결국 모든 인생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기에 그렇소. 삶은 수수께끼 같은 몇 조각만을 차례에 맞게 건질 수 있는 완벽한 혼란이오.“(본문 108쪽)

 

마크 트웨인은 무모한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 그의 가족이 그렇게 좋아했던 하트포드 자택을 떠나야 했다.
그 심정은 하트 포드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아내에게 남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랑하는 리비, 하트포드에 도착해서 우리 집 근처로는 가고 싶지 않았소. 하지만 현관 문턱을 넘자마자 우리 가족 모두가 이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영영 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에 사로잡혔소.”(본문 129쪽)

그토록 작가가 좋아했던 집을 떠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가 하면 1909년에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셀마 라게를뢰프는 조상 대대로 정붙여 살던 모르바카 저택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팔리게 되었다.

그때 젊은 셀마는 옛 집과 영원히 남을 은밀한 서약을 맺었다고 했다.
“글을 쓰리라, 언젠가 유명해지리라, 그래서 집을 꼭 되찾으리라.....”(본문135쪽)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
“나는 몹시 고독하게 산다. 혼자 살며 글을 쓰든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아무 것도 못 쓰게 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했다.

 

 

 

 

1941년 3월으 지독히 추운 어느 날, 외투 주머니에 무거운 돌을 가득 넣고 강에 투신자살한 버지니아 울프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담벼락에 붙여 지은 오두막에 버지니아는 매일 아침 은거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 단출하지만 “낭만적인 방”에서 글쓰기에 전념했다.“(본문 15쪽)

 

작가는 8시 30분이면 세 시간 연속적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영원한 프로방스인인 장 지오노는 고향을 정렬적으로 사랑한 작가인 만큼 작가에게 있어 그곳은 삶의 전부였는지도 모르겠다.

“지오노의 작품은 자기 고장에 대한 연가다. ”앙젤로는 옛 회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시쪽을 바라보았다. 겹치고 얽힌 지붕들은 크고 불그스름한 느릅나무들과 문 위의 방어용 요철에 이르러서야 끝이 보였다“(본문 173쪽)고 ‘지붕 위으 기병’에 쓰고 있다.

그리고 케렌 블릭센의 집이 소개된다.


“나에게는 딱 한 가지 야망밖에 없다. 이야기들을, 아주 멋진 이야기들을 만들겠다는 야망”
에발 살롱의 책상 앞에 앉아 아프리카 기념물에 둘러싸인 작나는 마침내 과거를 살풀이 하고 “쓰디쓴 상실감 없이” 운명의 연인 데니스 핀치 해턴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본문 190쪽)

꽃을 좋아한 그녀의 집은 곳곳에 꽃을 두고 보기를 좋아했다.

 

 

이 외에도 카를로 도시,
영국의 시인인 딜런 토머스,
그 유명한 장 콕도,
“나는 내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방랑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 로렌스 더럴,
신사 농부 윌리엄 포크너,
시인이자 군인이었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누트 함순은 농사를 지으며 온전히 자신의 뿌리를 되찾았음을 느꼈고, 스스로 일년 농사를 계획하고 별채에 일꾼을 두어 땅을 경작했다고 한다. “나는 농사꾼 작가요”라고 고백했다는 그는 결국 ‘의 혜택’이라는 책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내 인생은 시에 있었다.시를 쓰기 위해 삶을 절구에 넣고 찧었다”고 했던 음유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피에르 로티에 대해서는 “이국적인 것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던 시골뜨기는 무한한 지평을 발견했다. 그는 오두막에 처박혀 흔들리는 촛불 앞에서 몸소 체험한 감정과 풍경을 생생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써내려갔다”고 적고 있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고전이 그득한 서재에서 독서에 탐닉했단다. 부자로 태어났지만 의심과 모순으로 망쳐버 인생의 유일한 기쁨은 독서였다고 고백던대로 서재와 집안 분위기 역시 중후하고 가볍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간단하게나마 이 책에 소개된 작가를 나열해 보았다.


공통점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다락방처럼 생긴 은신처와 같은 곳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 하려 하였고, 더러는 농사에 깊이 빠졌던 작가도 있었다.

 

 

 

 

우리 아들 선우와 딸 주현이에게 그처럼 포근한 다락방과 같은 서재를 하나 마련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꿈을 더 재차 확인하게 된 책이었다.

은 지니고 있던 꿈도 더 선명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사진은 무작위로 올렸음을 밝혀둔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 있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 돌팔이의 처방전
+   [산골편지]   |  2009. 12. 2. 03:04  


2009년 10월

 

햇살이 자글자글하던 초여름 무렵, 산골에 살구나무 한 그루 들였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소리인지 몰라도 살구나무 첨 봤습니다.
이젠 그의 목숨에 내 목숨을 겁니다.

혹여 목이 말라 죽는 것은 아닌지.


넓지도 않은 미간을 찌뿌리기까지 하며 걱정하는 척하지만 난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의 목마름을 잊습니다.

물론 핑계는 다 있습니다. 농사 일로 바쁘다고...
농사가 무슨 벼슬인지,


누구 위해 농사를 짓는지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지요.


안 바쁜 사람이 있는지.. 유치원생에게 물어봐도 거의 같은 대답일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의 목숨을 점검합니다.


뭣도 모르고 돌팔이가 점검해 봤댔자 죄다 오진이겠지만...

그의 목숨을 생각해 준답시고 처방한 것이 개똥입니다.

 

 매일 개똥을 정성껏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난 어느 날 보니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돌팔이를 원망하는지 억센 가시만 저를 향해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처방한 개똥이 너무 독했던걸까’
‘가을이라 그런가’
‘속이 타서 목이 말라 저리 기가 죽은 것일까’
‘겨울잠 준비를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하는지...’

 

이젠 고상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다 들먹입니다.

새 봄을 한번 맞이해 보면 결판날 일이나 그 안에 생명을 닫아걸까 그게 겁납니다.

 

이런 초라해지고 꾀죄죄한 살구나무를 며칠 봐서 인지 살구가 탱글탱글 열리는 환상은 벌써 물건너간지 오랩니다.

그런 환상만 갖고 나무를 들였다가 여러 나무 골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요.

 

시기가 절절치 못할 때 옮겨서 그럴 수 있고, 또 뿌리가 예민한 부분인데 뭣도 모르고 그저 가져가라고 했다고 신바람이 나서 앞뒤 안가리고  파재껴 와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물도 많이 주고 거름도 적당히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알고도 못한 그 부분은 제 불찰입니다.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은 있다고 전과자는 말합니다. 바빠서 그랬다고...

이제 그런 이유는 내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어설픈 처방이지만 나무 상태를 휘번뜩이며 관찰한 결과, 나의 처방전에는 물과 개똥 밖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처음 살구나무를 들였을 때의 처방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팔이 아프도록 물도 열심히 들어다 부어주었고, 개똥도 나무 주위에 소복이 쌓아주었습니다.

이제는 봄만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되어 가시만 곧추세우고 있던 그 자리에 파리한 싹이 돋아나면 나도 파리하게 놀라 환호성을 지르겠지요.

여하튼 생명붙은 것을 산골로 들이는 일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가을이라 안그래도 해골복잡한데....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책이야기--효재처럼 살아요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11. 29. 00:40  



"이제 읍에서 산골로 돌아가야 한다.
어둔 길을 차의 두 눈에 의지하고
그리고 달빛에 의지하여, 나  나의 둥지로 돌아간다.
내 옆 좌석에는 오늘 산 책들이 동행한다.
사람보다 더 편안한 상대라면 내가 너무 솔직했나?

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배동분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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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 책을 한 장 펼친 곳에 써 두었다.

그날 몇 책을 몇 권 사왔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떡을 찾아가는 것보다 더...ㅎㅎ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TV에서 이 분의 방송을 잠깐 보아서 대충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지난달 수원의 농업연수원에 교육을 갔었는데 강의장 바로 옆에 책방이 있었다.
책을 빌려주는 곳...책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교실 두 개 정도를 튼 작은 규모였으나 며칠 교육이 이루어지는 경우 빌려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정말 잘 한 것같았다.





그곳에서 들어가 책을 둘러 보다 이 책을 발견하고 사서 보기는 내용을 대충 알다보니 아깝고 잘 되었다는 생각에 빌려 읽었는데 앞 부분만 조금 읽다 돌아왔다.


그런데 왠지 끌리는 그런 여백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바로 한 권을 샀다.

사는데 많은 고민을 했다.


이 분이 책을 세 권 정도 낸 것같은데 그 중 한 권이랑 이 책이랑 정가가 똑같았다.

이 책은 글이 얼마 없고 그저 사진이 다 차지하는 그런 편집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은 이 책보다 두 배 크기 그러니까 잡지판형의 책이고 글도 그림도 빼곡히 아주 묵직할 정도로 많이 수록되어 있다.

전자는 문학동네에서 낸 것이고, 그것은 어느 잡지도 내는 그런 출판사에서 낸 책이다.


망설임...

그러나 왠지 잡지냄새나는 책을 사기는 아까웠고 무엇보다 문학동네를 믿었다.

그렇게 망설임끝에 산 책...
이 책을 산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의 순서는 이렇다.

1.  어린 시절
2.  선물
3. 살림 이야기
4. 아름다움에 대하여
5. 부부이야기
6. 나이듦에 대하여


작가를 소개하면


성북동 길상사 앞 한복 숍 '효재'에서 혼수 한복짓는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하나로 온갖 것 예술처럼 싸는 보자기 아티스트이다.
살림만큼 창조직인 이이 없다며 입는 거, 먹는 거, 집 꾸미기까지, 사소한 일상을 아름다움으로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주부로 살다 보니 '살림의 여왕' '한국의 마사 스튜어트' '한국의 타샤 튜더' '자연주의 살림꾼' 등 온갖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라이프 스타일리스트이다.


우리 보자기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과 아이들 동화책을 쓰고 싶은 즐거운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서 자연으로 살림하며, 더 나이 들면 꼭 만화를 그리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효재처럼' '효재처럼, 보자기 선물' 어린이 동화책 '나는 치마저고리가 좋아'가 있다.

이것이 책 날개에 소개한 글이다.


이렇게 작가를 소개하면 내가 굳이 이 사람을 소개하는데 애를 안써도 되니 이렇게 먼저 소개한 것이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며 여자의 일생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거의 대부분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아이가 없다.


" 내게 아이가 하나 있다며, 그 아이는 남자아이다.
벼락스러운 남자아이가 혼날 짓을 하면,
마당 한구석에 모래밭을 만들어놓고 그리로 불러내서 두들겨 패겠다. 이마도 쥐어박고.
그러면 그 아이는 모래밭으로 꼬꾸라지겠지.
이마엔 모래가 박힐 것이고.
나는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울먹이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데리고 들어와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씻겨줄 것이다.
그리곤 꼭 삶아 빤 하얀 난닝구와 하얀 빤쯔를 입혀서
잠 재우고.
아이가 자라서 학교 갈 때쯤이면
유치원은 보내지 않고 제 아니 꽉 찬 여덟 살에
오솔길을 한참 걸어가야 하는 시골 초등학교에 보내겠다.
어쩌다 하는 서울 나들이엔 어리버리 촌놈 짓을 하겠지.
그런 남자아이의 엄마이고 싶었다."(본문 28쪽)


위의 글로 보아 아이를 갖고 싶으나 안타깝게 그렇게 되지 않은 것같다.
위의 글을 읽으며 아이가진 엄마로서 마음이 많이 아렸다.


그래서 인형의 옷도 만들어 입히는 등 인형을 갖고 노는 중년이라고 해야 할 것같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살림을 하고, 옷을 짓고, 보자기로 싸고, 인형옷을 만들어 입히고, 꽃을 가꾸고 풀을 매고... 그런다고 했다.

이 책은 한옥에서 사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한옥의 고즈넉함과 여인네의 섬세한 손길이 만들어낸 분위기는 참으로 멋스럽고 여유롭고, 여백의 미를 한껏 나타낸 그런 모습이다.

책에 글이 많지 않기 때문에 큰 사진이 주는 이미지와 잘 어우러진 경우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길을 멋지게 가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아이가 없지만 그 남는 시간에 그렇게 부지런을 떤다고 했지만 남는 시간에 그렇게 수를 놓고, 풀을 뽑고, 화초를 기르고 , 인형옷을 만들어 입히고, 음식을 잘하고, 바느질을 잘하고...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생각한다.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나이들수록 더더욱 혼자서도 아주 잘노는 것이 제일 멋져 보인다.

이 책은 당분간 내 가방 속에 담겨다닐 것같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무서운 대물림
+   [산골편지]   |  2009. 11. 25. 03:15  

 

 

 

2009년 10월

 

저녁을 지어먹고 나무 보일러의 불꽃 상태를 보려고 밖으로 나갑니다.
주위는 검으티티한데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봅니다.

 

어둠으로 인해 눈은 까막눈이지만 나무들이 옷을 벗어 제 발등을 덮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하염없습니다.
장작 하나 집어넣으려던 나도 하염없이 서서 그 소리에 귀를 씻어냅니다.

 

나도 하루살이처럼 코 앞의 일에 헉헉거리고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긴 겨울 발등 덮을 것을 미리미리 장만해야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무의 성은이 하해와 같은 밤입니다.

 

*************************************

 

장손인 아버지가 자식 공부시킨다며 온가족을 데리고 한양으로 갔을 때, 할머니 심정이 어땠을까를 왜 지금 사무치게 느끼는걸까요.
나이를 먹는가 봅니다.
내가 나이 먹는 것을 이제는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손자, 손녀가 여섯이나 되는 대가족이 살갑게 살다 훌쩍 떠나보냈으니 얼마나 가슴이 휑하셨을까요.
내가 딱 그 처지가 된 것처럼 가슴에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할머니는 봄부터 여름까지 더 정확히 여름방학때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손자, 손녀들이 내려오면 보여준다는 이유 하나로 그 큰 꽃밭을 진종일 지어다니셨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서 그만한 꽃밭(땅 적은 집 밭만했지요.)을 가꾼다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심고, 풀 뽑고, 함석 물조리개로 물주며 그곳에 치성을 들이셨습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특유의 향기를 내뿜으며 할머니와 함께 우리를 기다렸지요.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그 꽃밭은 황금 밭이 되어 지금도 내 가슴 한 켠을 도백하고 있다가 내가 힘들 때마다 특유의 향기로 나를 치유해주곤 했습니다.

 

 

 

 

난 지금 농사를 지으면서 내 능력에 부치는 꽃밭을 갖고 있습니다.


내 할머니의 꽃밭에 비하면 쨉도 안되지만...

 

할머니가 삭막한 서울로 가버린 손자, 손녀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가꾸셨듯이 나 또한 귀농할 때, 얼떨결에 따라 내려온 내 아들, 딸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경영은 내가 몇 년을 머리 싸매가며 전공한 ‘이윤추구’를 위한 경영이 아니고 ‘행복추구’를 위한 경영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을 잘 안배하고, 눈높이와 땟깔도 배려하고, 꽃의 모양새도 고려하면서 꽃을 키웠던 나의 할머니를 흉내내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보니 내 할머니와 똑같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찌 아이들을 위한 공간만이겠는지요.


그곳은 내 영혼이 지쳤을 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고 있고, 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임희숙의 노래 가사처럼 ‘등이 휠 것같은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또한 이곳입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시아 어느 시인은
"내게 은전 두 닢이 생긴다면 그 중 한 닢으로는 빵을 사고, 나머지 한 닢으로는 내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고 했듯이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최우선순위를 둔 것뿐입니다.


난 말이예요.
고2, 중3인 산골아이들이 우리집의 코스모스가 제일 아름답다고, 우리집의 국화가 제일 이쁘다고 하면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럴 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래, 아가들아! 눈에, 가슴에 찐하게 담아두렴.


그리하여 니들이 험한 세상 살아갈 때 한 자락씩 꺼내 보며 위안을 삼으렴.
그리고 엄마가 엄마의 할머니로부터 보고 배웠듯이 너희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너희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늘 생각하렴’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제 새끼잡아 먹는 에미
+   [산골편지]   |  2009. 11. 17. 02:42  

2009년 10월

여름내내 풍성한 잎파리 속에 실한 포도송이를 감추고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포도나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앉아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땅바닥을 서걱서걱거리며 마지막 남은 힘을 삭히는중인가 보다. 얼굴은 노래가지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 그를 보면 영원히 번창할 것같았지만 때가 되면 그 어떤 것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가 보다.
오늘은 유심히 더 노란 얼굴에 검버섯까지 펴 있고 구멍까지 난 모습으로 땅바닥을 기고 있다.

가을에는 더더욱 어느 것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오늘은 그의 땅바닥을 기는 소리가  유심히 크게 들린다.
한 해의 끝이 보이고 있다는 징조다.

*********************************

서울 언니네 갔을 때, 돌확 속에서 노는 물고기가 하도 이뻐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귀농한 동생을 늘 마음 아파하던 언니가 물고기를 담아 주었다.
패트병을 잘라서 그 안에...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름은 구피이고, 제 새끼 잡아먹는 놈들이니 단도리 잘 하라는 말도 물 속에 섞어 담아주었다.
난 후자의 부탁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설마...

물고기는 산골로 이사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깨를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부탁이 가시처럼 걸려 어른과 신생아를 칼같이 갈라 놓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떼어 놓는 것이 옳은 일일까 끙끙거리면서...

한참 지나 '그래도 그렇지 제 새끼 잡아 먹는 어미가 어딨냐"고 산골아이들이 하도 나를 공격하기에 얼떨결에 합쳐 주었다.

한동안 난 에서 돌아오면 숫자 세기에 바빴다.
새끼의 수를 칼같이 세고 또 셋다.
안그래도 숫자에 대해 야무지지 못한 나로서는 그 일도 큰 일이었다.

어제 요맘때의  숫자와 변동이 없다는 사실이 신통방통하여 먹이도 고봉으로 주었다.
후한 먹이 공세로 금방 물이 탁해졌다.
그물이 촘촘한 체로 어이, 새끼 할 것 없이 떠서 작은 그릇에 옮겨 주고 그들의 둥지를 깨끗이 청소를 하고 산골의 가재도 산다는 1급수 물을 담아다 놓았다.

그런데 그 옆의 화초를 간섭하느라 깜빡 잊고 작은 그릇에 있던 물고기들을 제 집에 넣어주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그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물고기를 원래의 집에 넣어 주려는데 새끼의 수가 형편 없이 모자란다.
아니, 새끼들이 아예 안보인다.

어디로 튀었나 하고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리 돋보기까지 동원해서 찾아도 새끼 8마리는 다 어디로 가고 달랑 새끼 한 마리에 어른 5마리만 남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제서야 제 새끼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우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다시 분리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어미 물고기 밥을 주지 않았다.

어둠이 깔리고 어린 물고기 혼자 제 집에 둥둥 떠있는 푸른 물배추 아래에 잠이 든 것을 들여다 보았다.
나의 까막정신이 어린 새끼들을 희생시켰구나...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작고 검은 돌 하나 집에 넣어주었다. 친구하라고...

그러는 동안 씩씩거리던 기분은 사라지고 과연 내가 어미 물고기를 타박할 자격이 있을까???

자연에서 키운다며 산골로 데려 와서는 농사 일로 바쁘다고 내 새끼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지, 어미로서의 역할을 칼같이 해냈는지 생각하니 누가 누구에게 지적질할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미 물고기에게 아까 주지 못한 먹이를 고봉으로 주면서
'너도 나도 어미 구실 잘 하자'고 중얼거렸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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