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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계곡 _해당되는 글 23건
2011.03.14   귀농편지,마가렛꽃과 같은 사람냄새 
2011.02.14   귀농일기, 고구마 모종에 베개도 고여주고... 
2011.01.21   귀농일기, 가을에는 웃는 얼굴을 기대한다. 
2010.07.13   귀농일기, 한 공정이 끝났다. 
2010.06.24   귀농일기, 농사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는 분 
2010.04.28   귀농일기, 마을에 당제사가 있는 날 
2010.04.09   귀농감동 
2010.03.24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소녀의 제 손님맞이 
2010.01.07   귀농풍경--혼자 간 해돋이 
2010.01.01   귀농일기--올해 한가지 소망은 풀었다 

 

귀농편지,마가렛꽃과 같은 사람냄새
+   [산골편지]   |  2011. 3. 14. 19:00  



2010년 5월 5일

 

올해는 소광리에도 야콘을 심었다.


그곳에 이장을 맡고 계신 분과 작년에 인연이 되었는데 올해 같이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초보농사꾼이 하기로 한모양이다.

지금 현재는 매번 심는 호수밭과 답운재밭에 야콘을 심었다.


달밭은 농사가 잘 안되어 소나무를 심었고, 답운재밭의 일부도 길로 나가는 부분이 있어서 야콘은 안심고 감자를 심었다.

그리고 소광리에 농사를 지으러 오늘까지 딱 3일 다녀왔다.


책 원고가 마무리 안된 상태라 머리가 한가롭진 않았지만 인도의 비노바 바베의 말대로 노동의 환희와 노동의 기적을 알기에 초보농사꾼과 함께 빨간 원피스 작업복을 입고 빨간 장화 신고 나섰다.

그곳은 핸드폰도 안터지는 곳이라서 산골에 연락이 안된다며 걱정 전화를 주신 분도 계셨다.

 

사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하는 일은 신경이 배로 쓰인다.
나 혼자 하는 일이면 힘들면 쉴 수도 있고, 일이 있으면 내일 할 수도 있지만 함께 하는 일이란 기본적으로 더 마음을 쓰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울진읍에 일이 있어서 가야 했지만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소광리로 향했다.
난 일을 못하는줄 알고 오지 않을줄 알았다고 하신다.


일을 하든 못하든 같이 하는 일에는 무조건 마음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내가 한 일은 삽질.
진종일 삽질을 했다.


바람은 불어 흙이 날려 눈으로 코로 들어오고 삽 자체의 무게때문에도 팔에 쥐가 나는 것같았다.
손으로 빨리빨리 하는 일은 잘하는데...

 

난 쥐는 힘이 없어서 사실 무게에 무지 민감하다.
그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하는 일은 배로 힘들어 한다.
그러나 어쩌랴.

 

누군 안힘드나 다 힘들지...
그러니 입을 꾹 다물고 하다보니 중간중간에 신음소리가 막 터져나온다.

 

그렇게 오늘까지 3일을 초보농사꾼과 나 그리고 이장님 부부 이렇게 열심히 일했다.
서로 마음을 챙겨주시니 힘든 일인데도 마음이 가벼웠다.

원래는 2틀 정도면 끝나는데 야콘씨가 남아 조금 더 심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러다 보니 5월 5일 어린이날에 달길님이 산골에 와서 포크레인을 봐주시기로 했는데 어쩌나 했다.

 

그래서 사실대로 일이 하루 더 해야 할 것같다고, 같이 하는 밭이라 빠지기 어렵다고 초보농사꾼이 말씀드렸더니 달길님이 괜찮다며 혼자 가서 하면 된다고...

 

그 일을 다 하고 소광리로 만나러 가겠다고 하셨다는 거다. 초보농사꾼에게...

안그래도 사람도 없는 집에서 혼자 우리 일을 봐주러 먼 길 오시는데 미안스러운 마음이었다.


소광리에서 일을 하면서도 핸드폰이 안터지는데 잘 찾아오실지...
전화로 위치를 알려드리긴 했는데 초보농사꾼이 걱정을 했다.

 

결국 일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핸드폰이 터지는 지역에서 전화를 했다.
달길님은  벌써 다 일을 하고 소광리로 우리를 찾아찾아 헤매셨으나 결국 우리를 못찾고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새 차인데 비포장길도 많은 그 멀고 먼 소광리길을 찾아왔었는데 못만나고...

 

어찌나 마음이 싸하던지...
직장인의 휴일이란 금쪽이 아닌지.

 

그런 분이 그것두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 어린이날 집을 비우고 산골로 와서 포크레인을 손봐주시다니...
사람도 없는 집에서 혼자...

 

불영계곡의 바람도 내 미안한 마음을 알았는데 세차게 바람을 차 안으로 밀어넣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초보농사꾼이 내게 아침에 꽃밭에 물을 줬느냐고 한다.


아니라고...
그런데 꽃밭 군데군데 젖었다나...(혹시 나의 노상방뇨를 의심하는 것 아니것지.)

그리고 꽃밭을 보니 마가렛이 심겨져 있었다.


아차, 아까 소광리 이장님댁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달길님 부인(그러니까 우리 홈 아이디는 달의 노래님)이 전화를 하셨다.

달길님이 산골에 가는데 그 길에 마가렛을 보내려고 하는데 산골에 그것이 있냐는 물음이었다.


없다고 하면서 어린이날 이렇게 달길님이 우리집 일 때문에 산골에 오셔서 어쩌냐고 하니까 남편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그 집에 어린이가 한 명 있는데...

 

그렇게 해서 산골로 오기로 되어 있던 마가렛.
그 하얀 꽃을 달길(김승하 님)님은 포크레인도 다 손봐주시고, 마가렛도 물을 주어가며 일일이 군데군데 심어놓고 가신 거야.

 

포크레인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초보농사꾼이 산골에 도착하자마자 보더니 내가 옆에서 잔손을 거들었으면 그래도 편하게 했을텐데 내가 없이 혼자서 해야 하니 이렇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플라스틱 통을 놓고 애를 먹으신 모양이라며 달길님께 고생하셨다며 전화를 건다.

그렇게 꽃까지 심어놓으시고 소광리 그 먼길을 우리 본다고 오셨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되돌아 가시는 생각을 하니 찡해왔다.

 

하얀 마가렛이 그 분의 마음처럼 깨끗하다.
이번 농사 일이나 급한 불 끄면 읍에서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

 

요즘 바람이 아주 세다.
그 바람 속에 사람의 향기가 묻어서 달려드는 느낌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 고구마 모종에 베개도 고여주고...
+   [귀농일기]   |  2011. 2. 14. 13:08  

 

세월이 흐르면 얼굴 뜨거운 일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게 된다는 것을 요즘 느낀다.

 

귀농한 사람이 만만하게 심는 것 중 하나가 고구마이다.
우리도 귀농하자마자 심었다.


집 바로 위 작은 터에 우리도 먹고 귀농을 질기게 반대한 서울의 양가 어머님께도 나누어 드린다고 보무도 당당하게 심었다.

그때는 농기계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을 몸으로 때웠다.


귀농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는 속으로 ‘역시 예상한대로 농사가 이렇게 힘들구나’하고 뼈저리게 느꼈겠지만 숨 몰아쉬는 소리만 입밖으로 냈지 다른 말은 속으로 쌓아두었는지 이날이때껏 꺼내지 않았다.

 

 

 

하여튼 고구마를 몇 고강심는데 애를 먹었다.


농기계도 없이 밭을 준비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고구마 모종을 심는데 온힘을 다 뺐었다.

고구마 몇 고랑을 심는데 아내와 나는 진종일 붙어서 모종을 떠받을듯이 심었다.


심는데 고생한 것으로 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쭉쭉 자라야 한다는데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 밭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왜냐 하면 몇 포기 되지도 않는 고구마를 위해 그 전밭의 풀을 일일이 맬 수가 없어서 그냥 풀을 놔둔 것이다.
그러니 자동 포기가 된 것이다.
풀들만의 자치판이 되었다.

 

아이들 방 아궁이에서 구워 먹을 정도의 고구마를 수확했을 뿐이다.
그 사연을 이웃 어른께 말씀드렸더니 대뜸


“그래, 모종을 똑바로 세워서 심었능교?”하신다.
“아니 모종을 똑바로 세워서 심지 그럼 뉘워서 심나요?”
뉘워서 심어야 한단다.

 

 

 

모종이 꼿꼿하게 서있는 것이 아니고 쉽게 말해 흐느적거리는 모종을 꼿꼿이 심어 세우려하니 길다란 모종이 자꾸 휘어졌다.
그래서 드 깊이 더 깊이 구덩이를 파고 심었다.
여하튼 그해 농사는 그렇게 절단이 났다.


단지 큰 교훈을 얻고 넘어갔다. 고구마는 세워서 심어야 한다는....

다음 해가 되어 다시 고구마에 도전을 했다.


뉘워 심으라고 했겠다...

뉘워 심었다.


식은죽 먹기였다. 긴 모종을 세워 심느라고 땅을 있는대로 파서 세워 심은 것에 비하면...
그런데 그해도 고구마 수확은 별볼일 없었다. 왤까?

 

이번에는 모종이 타죽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러니까 옆으로 뉘워 심으라고 해서 뉘워 심었는데 이번에는 비닐 위에 곧이곧대로 뉘워서 그만 비닐이 태양을 받아 뜨겁다 보니 여린 모종이 탄 것이다.

탔다고 하여 숯검뎅이로 탄 게 아니라 말라죽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해는 무지 더웠다.
또 다른 교훈을 얹어준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뉘워서 심되 머리가 비닐에 닿지 않도록 흙으로 머리를 고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내가 말했다.


“맞아, 사람이라고 생각해봐. 그 뜨거운 비닐에 머리를 대면 사람이라도 탈나겠다. 그 어린 모종을 그랬으니...사람 머리에 베개를 고여주듯 그렇게 해주어야 하는데...”

 

 

 

농사, 만만한 게 아니다.
만만하게 보고 온 것은 아니지만 지혜로움을 요구하는 직업이 농사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해부터는 뉘워서 심고, 베개(?)를 꼬박꼬박 배주고 있다.

 

그랬더니 탈없이 잘 커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농사는 교훈 하나 얻는데 자그만치 1년이 걸린다.


한번 ‘이 방법이 아닌가벼’했다간 1년 망친다.

신중하고, 지혜롭게 사람처럼 작물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초장에 경험했다.


올해의 고구마를 심는 날이다.
성당에 다녀와 새점밭이 있는 불영계곡으로 달렸다.

 

이 밭으로 가는 길이 없기 때문에 불영계곡을 차로 직접 건넌 다음 개울가에 난 우거진 곳을 지나 밭으로 간다.

어제 아내와 둘이 심다가 못심은 것을 아는 부부가 휴일이라고 와서 함께 심고 있다.


“뉘워서 심는 거 알지? 그리고 모종 끝의 머리를 들게 해주어야 한다구”
아내는 혹여 또 모종을 태울까 걱정인 모양이다.

 

 

 

 

몇 번이나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밭고랑을 오가며 혹여 고구마순의 머리가 비닐에 닿아 뜨거운 놈은 없는지 가끔 일어나 확인하는 눈치다.

이 밭의 고구마는 맛도 좋지만 보기에도 이쁘다.


새빨갛고, 조그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내가 키운 자식 자랑하는 걸 보니 나도 농사꾼 다 됐다.

 

이 밭은 불영계곡과 맞닿은 밭이라서 고구마들도 땅속에서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계곡물이랑 도란도란 친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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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가을에는 웃는 얼굴을 기대한다.
+   [귀농일기]   |  2011. 1.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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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아내와 아침을 서둘러 먹고 새점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내랑 함께 떠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대충 출발하면 될 것을 바구니에 챙기는 것도 많다.

책, 펜, 공책, 그리고 돛자리도 챙기고, 이런 저런 것들이 챙기다 보니 시간이 지체된다.
그렇다고 차를 두 대나 가지고 가기도 어렵다. 새점밭은...
세레스로 같이 가면 전천후 세레스가 불영계곡을 그냥 가로질러 건너지만 아내가 차를 따로 가지고 오면 국도가에 차를 세워두고 절벽 아래로 하산길을 내려오듯 곡예를 하고 내려와야 한다.

또 기름값 들이며 차를 두 대나 가져오는 것도 낭비고 하여 함께 뜨려니 동작이 굼뜬다.
새점밭은 차로 15분 정도 달려서 불영계곡을  건너가 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차로 가는 밭으로 답운재밭도 있지만 최소한 답운재밭은 계곡을 차로 가로지르지는 않는다. ㅎㅎ

새점밭으로 달려가는데 상대편 차선으로 이웃 마을의 형 차가 보인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발견하면 차를 세우거나 바로 핸드폰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둘다 신호를 받은 사람들처럼 차를 세웠다.

불영계곡이 워낙 꼬불꼬불한 길이라 안전한 곳에 세레스를 세우고 걸어가면 형도 트럭을 세우고 내 쪽으로 걸어온다.

그렇게 국도가에서 만나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형은 내게 친형처럼 잘해주는 형이다.
말수는 적으나 마음은 어떤지 내가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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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잔뼈가 굵어가는 형인데 이번에 일이 좀 있는 모양이다.
담배만 피우는 모습이 안타깝다.
나도 덩달아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다 새점밭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안그래도 요란맞은 이 놈의 썩은 세레스 소리가 더 요란맞게 들린다.
형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자기 일보다는 남의 일에 더 열성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더 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
자기 일은 정말 아내 표현대로 개가 핥은 것처럼 하면서 남의 일은 완전 건성인 사람 있다.
그 사람 성격대로라면 남의 일도 저렇게 팽개치듯 대충하고 나설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속 마음 볼 것도 없다고 아내가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겉다르고 속다르고 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다.

형은 내 일은 두고 남의 일 도와주러 다니는 사람이다.
남의 일도 내 일처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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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라는 것이 큰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우면서 농사가 망치기로 들고, 농산물의 시세가 폭락을 하다보면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다.
특히나 형이 주로 하는 배추 농사는 더욱 그런 것같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기에 마음이 쓰인다.

올해는 형네 농사가 잘 되고 다른 모든 일도 잘 풀려 가을에는 형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세레스의 툴툴거리는 소리에 묻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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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한 공정이 끝났다.
+   [귀농일기]   |  2010. 7. 13. 01:00  

2010년 4월 12일


어제는 아내와 거의 쉬지도 못하고 답운재밭의 퇴비를 다 뿌렸다.
봄이면 강행군이 이어지다 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일어날 때는 입에서 비명소리가 난다.


둘이 뚜엣으로...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하다 둘이 얼굴보고 웃는다.




웃는 이유는 안찍어먹어봐도 알일이다.
속으로 서로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귀농하고 몸이 절단났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할 일을 상의한다.
그러니까 직장으로 말하면 업무분담이라 할 수 있다.


농사도 직업이고, 농장이 직장이니 우린 아침에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서로 업무 이야기를 한다.
주로 함께 할 일 등 도와주어야 하는 일을 상의한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아내는 효소, 야콘즙


 

 


 


  등의 택배를 발송하는 날이라 그 일을 해야 하고 나는 호수밭의 퇴비 펴는 일을 하기로 했다.

아내는 가공실로, 나는 호수밭으로 올라갔다.


아내더러 혼자 할 수 있으니 올라올 것 없다고 했는데 아내가 헉헉거리며 걸어 올라온다.

발송을 다 하고 부랴부랴 올라온 모양이다.
아내와 나머지 퇴비를 다 뿌리고 우린 다시 세레스를 타고 다음 밭으로 향했다.
이번 향하는 밭은 차를 타고 약 10분 정도 가야 하는 새점밭이다.


새점밭은 다른 밭에 비해 크지는 않지만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다른 때같았으면 벌날으듯 날아다니며 이쯤이야 해치웠겠지만 손이 보이는 정도다. 안보여야 하는데.

그래도 아내랑 후다닥 뿌리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개운하던지.
이렇게 해서 전 밭의 퇴비화(?)를 끝냈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렇다고 남은 일이 없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세 군데 의 한 가지 공정이 끝날 때마다 느끼는 그 뿌듯함, 개운함은 농사 안지어본 사람은 모른다.

별걸 다 가지고 목에 힘준다고 하겠지만 안해본 사람은 그 목에 힘주는 기분을 모른다.ㅎㅎ

새점밭은 불영계곡과 바로 맞닿아 있다.


그냥 바라보아도 뻑갈 것같은 풍광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밭이 앉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불영계곡 낮은 곳을 골라 세레스로 물을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길면 하나가 짧다고 했듯이 다 좋은데 길이 그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 좋아 농사짓는 일이라 그냥 계곡을 세레스로 건너다닌다.

그렇게 계곡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후련하다.
이 후련한 기분으로 그냥 집으로 가느냐??아니다.

들려서 가야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유이장님댁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러 들어가니 두 분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우리에게 늘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두 분이라 아내도 따르고 좋아하는 분들이다.

알딸딸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개운하고 뿌듯하다.


통창으로 보이는 별들이 바람이 심해서 그런지 어째 흔들려 보인다.
절대로 막걸 리가 취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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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충동질한 사람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농사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는 분
+   [귀농일기]   |  2010. 6. 24. 12:16  

 2010년 4월 4일

어제까지 답운재의 비닐을 걷었다.


엊그제에 가보니 날이 추운데가 비까지 와서 후퇴를 했고 이틀에 걸쳐 꼬박 비닐을 걷었다.
나머지 밭은 작년에 걷었는데 답운재밭은 워낙 늦게 아내랑 둘이 수확을 하다보니 추울 때까지 수확을 했다.




그리고 비닐 걷는 것은 다음 해로 미루었었다.


그러다 어제까지 다 비닐을 걷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성당에 다녀오면 조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이 노근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러다 보니 졸린 경우가 참 많다.


요즘 비닐 걷는 일로 바짝 일을 끝내서 오늘 더더욱 몸에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이 몰려왔을 거다.

그렇게 산골에 도착하면 힘이 풀리고 일하러 나가려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가게 된다.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이 내일 오시기 때문에 오늘 미리 개복숭아 묘목을 캐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커피 한 잔 하고 나서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미션 수행을 위해 삽을 들고 달밭으로 향했다.
오늘의 미션을 이 개복숭아 묘목을 다 캐는 것이다.




이 정도의 양을 캐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미리 캐놓았다가 다음다음날 신부님이 논산으로 가시는 차에 싣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캐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굳이 이틀이나 미리 캐서 물에 담가둘 필요 없이 신부님이 가시는 날 캐서 막바로 신부님 차에 실어드리면 되겠다 싶어 두 아름이나 되는 이미 캔 묘목은 거북바위 엉덩이 아래 작은 연못에 담아 놓았다.


나머지는 모레 신부님 가시는 날 캐기로 하고....

그리고 연봉 5만원을 받는 ‘반장’ 역할을 하러 우리 반 할머님, 할아버님이 사시는 우리 반을 한 바퀴 돌았다.





말이 한 바퀴지 집이 독가촌으로 띄엄띄엄 골짜기를 차지하고 있어서 세레스 아니면 반장 역할을 하기도 쉽지 않다.
소금이랑 감자씨를 일일이 배달해 드려야 하므로....


옛날에 길이 더 안좋았을 때는 그런 배달을 하다가 차가 빠진 적도 심심찮게 있었다.

지금은 차가 빠지는 일은 없다.


겨울에는 땔감을 그렇게 배달해 드린다.
그런 일들은 젊은이가 없는 시골에서 그냥 당연한데도 어르신들께서는 늘 고마워하신다.



2010년 4월 5일


신부님이 오셨다.


신부님이 오시면 농장 이야기, 즉 야콘 농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야콘에 대한 가공이야기며 이런 저런 상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시간가는줄 모른다.

마당에 새 관리기를 보시더니 시운전을 하신다.


관리기를 새 것으로 장만하기는 귀농하고 처음이다.
그러니까 다 중고인데다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정도의 연식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부 보조 백만원에, 내 돈 1백 80만원 정도 들어가는 것으로 구했다.


늘 우리가 헌 농기계로 고생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는 신부님으로서는 마음이 좋으신지 한참 시운전을 해보신다.

그리고 나서 불영계곡의 물고기들이 잘 있는지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
낚시를 좋아하시는 신부님께서 나의 ‘바람’에 낚시대를 챙기신다.


신부님이 사주신 내 낚시대도 챙겨 불영계곡으로 향했다.

아직 추워서인지 고기들이 조용하다.


단 한 마리만 우리와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달랑 한 마리..

 


저녁을 먹으며 다시 야콘가공 이야기 등으로 날이 저물었다.
달이 나오고, 별이 나오고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강물처럼 잔잔해지곤 한다.


사실 귀농하고 신부님과 제일 많이 야콘 농사 이야기, 가공이야기, 그리고 다른 농사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같다.

이번에 처음 만들게 된 유기농 야콘쨈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도 주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데 맨정신으로 하면 酒神에 대한 모독이다.


아내는 꼭 일하는 것은 안찍고^^ 이런 것만 찍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야 상관없다.
그러거나 말거나.ㅎㅎ


내일 개복숭아 묘목을 캐는 일이 있으니 신부님과 마지막 잔을 건배하고 헤어졌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


신부님이 많이 피곤하실거다.
새벽 미사를 논산에서 드리고 그리고 달려서 울진까지 오셨으니 말이다.


그래도 저녁에는 기숙사에 있는 주현이와 통화를 하시려는 신부님.
아이들도 신부님 만난지 오래되었다며 아쉬워한다.





신부님은 신부님 집으로 올라가시고...
우린 멀리 못나간다는 말로 웃으며 헤어졌다.


2010년 4월 6일


개복숭아 묘목을 캐기로 했다.


신부님께서 점심 시간 전에 논산으로 출발하셔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 먼길을 하룻밤 주무시고 다시 가시자니 피곤하실테지만 항상 밝은 모습이라 이제는 거리감각이 없어질 정도다.

신부님 차를 밭으로 대고, 차례대로 묘목을 뽑아 실으니 한결 수월하다.


아내가 이번에는 특별히(이게 중요하다) 일하는 모습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큰 인심인 것같다.^^





그곳에 심어놓은 것을 다 캔 다음 차에 싣고, 이번에 새로 만든 유기농 야콘쨈도 성당에서 팔아보신다며 몇 박스 실으셨다.

신부님은 점심도 안드시고 출발하셨다.


식사를 하시면 가다가 졸리다고...
먼길을 그렇게 가시니..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차 한잔을 마셨다.
다시 한 해 농사를 위해 힘을 모으는 중이다.

저녁에 다 되어서 퇴비가 왔다.


내 세레스로 약 열두 차 정도 분량의 퇴비가 왔다.
답운재밭에 뿌릴 것은 답운재밭가에 내리면 좋겠는데 일단 집 앞에 내리고 나서 다시 묶은 다음 답운재로 가는 게 그 분에게 번거로울 것같아 다 집 앞에 내렸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다시 세레스에 싣고 나르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렇게 세레스에 퇴비를 다시 싣고 나르는 일을 해야 할 것같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마을에 당제사가 있는 날
+   [귀농일기]   |  2010. 4. 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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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오늘은 당제사가 있는 날이다.
우리 반에 모셔진 사당이 있는데 매년 대보름날 제사가 있다.
제사 목적은 우리밭 , 즉 새밭 주민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해서 제사를 지낸다.

우리반 남교장선생님 집으로 가는 길가 개울 옆에 사당이 있다.
그 옆에 흐르는 물은 참으로 시원하고 깨끗하다.
그러니까 불영계곡 상류의 물이 되는 셈이다.

새밭 반장인 나로서는 큰일이 없는 한 참석을 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참석을 하셨었는데 올해는 너무 연세가 많으시다는 이유, 또 이런 저런 이유로 참석을 못하셨다.

그래서 반장인 나랑 교장으로 오래 근무하시다 정년퇴직하시고 우리 새밭에 있는 생가로 귀농(?)하신 남교장선생님과 둘이서 제사를 올렸다.

사실 난 천주교 신자이지만 이런 것은 어르신들이 전통적으로 모셔온 것이고 순수히 우리반원들의 안녕을 위한 것이니 거리낌없이 참석하고 정성껏 제를 올린다.
올해는 산골아낙더러 간단히 과일이랑 닭이랑, 포, 술 등을 사오라고 했다.

아내가 닭은 잘 쪄주었고 전도 데워주었고, 이런 저런 것들도 보자기에 정성껏 싸주었다.
남교장선생님과 이웃에 귀촌하신(늘 상주하시는 분들은 아니고 주말이나 쉴 때 내려오시는 분이다.) 부부가 구경한다고 참석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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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천지에 마을분들의 성함을 일일이 적고 태우면서 안녕을 빌었다.
당제사가 끝나고 남교장선생님댁에서 제사지내고 난 음식을 놓고 막거리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밭 분들이 새해에는 더더욱 건강하시고 재미있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집으로 내려왔다.

바람이 시원했다.
한겨울 밤 바람이지만 모두를 위해 그렇게 제를 올리고 오는 기분이라 가볍고 시원한 모양이다.
이제 봄을 기다리며 힘찬 발을 내딪을 일만 남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에서 보세요.

귀농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감동
+   [산골편지]   |  2010. 4. 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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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성당에서는 성탄전야 미사를 있다.
초보농사꾼이 아이들은 두고 가자고 한다.
오늘 바로 방학해서 이제 읍에서 집으로 들어왔는데 다시 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그러니 내일 성탄미사 때나 데리고 가자고 한다.

"가장의 말씀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주현이가 오늘 밤 미사 언제 가실거냐며 계속 묻는다.
난 지오빠랑 할 얘기가 있어서, 아니면 영화보려고 그러나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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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이 몸살이 났기 때문에 나 역시 둘이서 성당가기로 합의는 보았으나 지금 몸이 안좋아 늘어져 자는 사람을 깨우기가 쉽지 않았다.
불러봐서 대답을 못하면 약을 한번 더 먹이고 그냥 자도록 두고 내일 성탄 미사나 가야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주현이는 계속 언제가실 거냐며 묻고...

초보농사꾼을 불러보니 대답 대신
"아, 성당가야지."하며 일어선다.

몸이 안좋으니 그냥 그만두자고 했다.
그래도 가야 한단다.

불영계곡을 그 밤에 돌아돌아 가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귀농 10년차도 지나고 이제 한 매듭이 지나 11년차가 되는데 하면서 뒤도 돌아보고 새해 꿈도 이야기하고...
그런 시간을 참 귀히 여긴다.
이 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이 오지 국가를 달리며 우리는 낯선 곳에 온 이후를 돌아 보았다.
참 의미있는 삶,
남들은 한번 택한 길을 가는데 우리는 뭐가 독특한지 두 가지 길을 가고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그 이슬이 미처 털리지 않은 숲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맑고, 영롱하다. 지금의 이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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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전야 미사를 드리고 좋아하는 분들과 성당 마당에서 막거리에 과메기, 두부부침 등을 안주로 한 잔 하고 돌아올 때는 내가 운전을 했다.
이럴 때 운전배운 것이 참 좋다.

귀농 전에는 장농면허로 그냥 두었다.
안그러면 뻑하면 회식이 있는 남편이 차 가져오라고 전화할 것이고 어린 아이들 두고 달려가는 것이 싫은 이유 하나, 또 그렇게 모시러 가다보면 자주 술을 마실 것같다는 이유 하나에서 아예 나 죽었소 하고 운전대를 안잡았다.

귀농하고 운전연수를 초보농사꾼에게 배워(그때 구박 하나도 안받았다고 하면 아무도 안믿는다. 진짠데...) 운전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신 초보농사꾼을 태우고 산골로 돌아올 때가 참 좋다.

집에 돌아왔는데 애들 인기척이 없다.
'벌써 자나???...'

안그러면 튀어나와 인사하고 장난하고 할텐데 두 놈 다 동시에 자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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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런가 보다 하고 현관문을 여는데 종이쪽지가 보인다.
이게 뭐지?
읽었을 때도 정확히 감이 안잡혔다.

일단 집 안으로 들어오면 트리로 눈이 가게 되어 있다.
그 위치이고, 이번에는 적당한 나무로 했더니 이쁘기 때문에 내가 자주 본다.
근데 그 아래 웬 박스가 있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넣어준다는 빨간 양말에 내 이름이 쓰인 흰 봉투가 보인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초보농사꾼은 집 뒤로 먼저 가서 나무 보일러를 확인하고 식구들을 따듯하게 해주기 위해 죽으라 나무를 해온 것을 보일러 아가리에 듬뿍 집어넣는다.

난 선물을 보고 놀라 초보농사꾼을 불렀다.
그리고 정말 자는지 애들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선우는 누워 자고 주현이는 방문을 잠그고 자는 것 같았다.

초보농사꾼이 들어왔기에 조용조용 보여주었더니 나보다 더 놀란다.
작은 소리로
"햐, 이게 뭘까? 이 놈들이 ..."

그때 애들이 와르르 방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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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깜짝 놀랐지?"

애들이 빨리 선물을 뜯어 보란다.
초보농사꾼이 박스를 뜯어보니 헉, 그렇게 하나 사려고 했던 CD플레이어다.

겨우내 가공실에서 일을 하는 초보농사꾼은 오래된 카세트를 듣는다.
물론 작년에는 테이프 돌아가는 것도 고장이 나고, 올해는 죽으라 라디오만 듣는다.
뉴스를 외울 정도로 듣고 또 들으니 너무 지겹단다.

그러면서 이거 하나 사야지 한 것이 돈 생각해서 덥석 못산 모양이다.
일전에 주현이가 서울에 다녀와서 할머니랑 이모들에게 앵벌이(?) 해 온 용돈을 보더니 돈이 많다며 아빠 CD플레이어 하나 사달라고 농담삼아 말했었다.

그때 주현이가 딱 잘라 안된다고 하더니만 이 짓을 한 것이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 양말에는 웬 구속영장과 상품권.

담당검사 : 박선우 검사란다.(선우의 꿈은 검사란다.)
문서번호라고 적은 것은 우리집 전화번호다. ㅎㅎ
어디서 본 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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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은 장난으로 만든 것이고 5만원을 주면서 상품권 대신 현금이니 꼭 엄마 옷을 사란다.

그러니까 주현이는 지아빠 선물을 한 것이고 , 선우는 내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초보농사꾼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이제 애들이 이렇게 커서 이엄마 아빠 마음까지 생각하는구나 싶으니 눈물이 났다.

벌써 초보농사꾼은 CD를 찾아 들어본다며 난리다.
선물받은 놈을 뚤어져라 쳐다보고 뒤도 만져보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아빠가 너무 필요했던 거라며...

내가 생각해도 하나 사주어야겠다 생각만 하고 주문해 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현이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이제 아이들은 고3이 되고, 고1이 된다.

졸업선물이니 입학선물이니 말을 꺼낼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초보농사꾼이 충격과 감격이 뒤엉켜 감정조절이 안되는 모양이다.
두 놈을 끌어 안아주고 고맙다고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성탄축하겸, 아이들 둘 다 기쁜 일이 있으니 그 겸사겸사 마주앙 한잔씩 하잔다.
모두 둘러앉아 마주앙을 마시며 오늘 선물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오빠랑 그렇게 상의를 하고 주현이가 미리 인터넷으로 CD플레이어를 사서 친구집으로 배달을 시켰단다.
안그러면 엄마가 받을 판이니까.
친구집에서 그 박스를 찾았는데 집으로 가져올 일이 난감하더란다.

엄마가 물을 텐데 뭐라고 대답할까부터 고민을 했단다.
안그래도 날이 추워 주현이 학교차가 오는 마을 입구로 데리러 가니 애가 무슨 박스 하나를 들고 탄다.
뭐냐고 했더니 이제 졸업이라 개인사물을 담아오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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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런줄 알고 보니 박스로 덕지덕지 뭐가 붙어 있고 그럴듯해서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을 박스에 붙였단다.

어린 것이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그 다음은 오늘 당일.
아빠가 몸살이 나셔서 아차하면 두 분이 성당을 못가시게 생겨 난감했단다.
일단 가셔야 그동안 그런 짓(?)을 해두고 하는데...

그래서 그렇게 성당 안가시냐고 물었던 거였었다.

선우는 엄마, 아빠가 귀농하고는 되도록이면 중고를 사고 하는 것이 맘에 걸렸었다고...
큰이모가 예전에  산골에 오셔서
"니 엄마는 예전에는 백화점 옷 아니면 안사입고 그렇게 그랬는데 ... 시골오고는..."그러면서 이모가 우셨단다.
그 말을 하는 선우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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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르는 일인데 아마 큰언니가 내가 시골로 온 것이 맘이 아파 선우 붙들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런 엄마가 알뜰히 살려고 그러셨다는 것을 안다며 자기가 드린 돈으로는 엄마 옷을 사입으란다.
선우는 옷값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
자기 옷도 사주면 입고 안사주면 있는 거 입고 그러는 아이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구속 영장이 등장한 모양이다.
피고는 배동분이고 죄명은
"피고는 그 간 정당한 구매욕구를 억누르고 중고, 특히 경매물품만으로 대리만족해온 혐의가 드러남"이라 한 모양이다.

구형이 재밌다.

"5만원 한도 내에서 자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할 것.
위의 권고를 어길시에는 빵과 커피 반영구 지급 중지에 처함."

아이고, 빵과 커피는 엄마 아킬레스건인줄 이 눔들이 훤히 아는구나....

우린 구속영장을 읽고 또 읽으며 웃고 또 웃었다.
CD플레이어를 틀어놓고 박씨 일가가 춤을 추고 따라 부르고 난리다.
물론 거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7080노래'다.

애들도 많은 부분 그 노래들을 안다.
아빠가 좋아하는 조용필 노래도 많이 따라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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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새벽이다.
모두 마주앙 한 잔씩 하고 오늘 선물에 대한 놀라움과 고마움을 전했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엄마 , 아빠가 생각보다 기쁨을 넘어 감격스러워 하고 좋아한다며 지들이 좋은 선물 받은 것보다 더 좋단다.

다 컸다.
이렇게 엄마, 아빠 마음을 헤아려주는 아이로 큰 것이 어디 부모 덕이겠는가.

하늘마음농장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들이,
집 옆에 졸졸 흐르는 개울이,
드넓은 대지가,
집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쳐진 늘 푸른 소나무들이,
봄이면 흐르러지게 피는 진달래, 개나리가,
여름이면 빨간 고추잠자리가,
가을이면 오색 단풍이,
겨울이면 모두가 하얘지라는 뜻으로 하늘이 내려주는 흰눈이....

그런 자연이 키운 것이다.

그리고 책이 또한 한몫했다.
늘 책을 소중히 여기며 읽고 감동받는 아이들에게는 책 또한 큰 스승이었다.

우리의 귀농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성공했다고 난 말한다.
남들은 성공했다면 아직도 연간 매출이 얼마냐고 묻는다.

그럼 위에 열거한 저런 자연의 혜택을 연간 매출로 매길 수 있을까....
금액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이니 그게 대성공이지 않은지....

내 아들 선우도 자고, 내 딸 주현이도 잔다.
엄마가 해준 것도 없는데 잘 자라주었다.

오늘은 내 대신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 그리고 아이들의 꿈을 위해 도움을 준 별, 달, 개울물, 등 자연에게, 그리고 책에게 큰 절 하고 자야겠다.

"선우야, 주현아, 오늘 참 많이 놀랐다.
기쁨보다는 충격 쪽이 더 나은 표현인 것같아.
이렇게 컸구나 감동이었고,
컸어도 속이 제대로 영글어가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나더구나.
그저 건강하게 그리고 은갈치처럼 반짝이는 꿈과 희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길 바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소녀의 제 손님맞이
+   [산골편지]   |  2010. 3. 24. 12:38  

충남 천안 병천에서 온 가족이 한양으로 입성하여 그 꾀재재한 짐을 푼 곳이 서대문구 홍제동이었다.
그때부터 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다.

어리디 어린 난 그 전까지는 무엇이 부끄러움인지 잘 몰랐다.


인간이 제일 먼저 느끼는 부끄러움이란 잘은 모르지만 아담과 이브로부터 시작된 ‘벗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닐까.

그러나 난 어려서 서울로 오고도 방학때마다 시골로 내려가 벌거벗고 멱감으러 다녔으므로 그런 부끄러움은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늦게 깨쳤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느낀 부끄러움은 ‘없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시골에 살 때는 모든 것이 풍족했던 어느 종갓집 막내 손녀딸이었다.


그 꼴난 공부한답시고 부모님따라 서울로 들어서고부터는 어린 것이 그런 부끄러움 먼저 배워야 했다.


(▲ 친구들을 삼킨  버스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그때는 선생님이 학생집을 죄다 찾아다니는 일명 ‘가정방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신경을 곤두세우셨다.


그래봤댔자 뽀족한 수는 없었지만 내성적인 엄마는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곤 했었다.
나의 친구들이 집에 온다고 하던 날도 여린 엄마는 더 말씀이 없이 멍해 하셨다.

 

혹여 딸아이에게 정신적 충격은 기본이고 그것으로 인해 사기를 잃을까 걱정하셨던 것같다.

아끼바리처럼 기름기가 좔좔 흘렀던 내 고향 병천에서의 살림과 전세살이인 서울살림이 몸뚱아리 하나 옮겨 놓는 것으로 손바닥 뒤집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것으로 치자면 그 당시 엄마, 아버지야말로 정신줄 제대로 잡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 버스 문으로 친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식들 줄줄이 허리춤에 꿰차고 서울에서 공부 빡시게 시켜 시집, 장가 빵빵하게 보내리라는 그 꿈 하나로 올라오셨기에 많은 자식들 눈동자만 합해도 야구경기장의 라이트 이상으로 당신들을 정신들게 했을 것이다.


서울 첫 살이를 그렇게 옹색한 전세살이를 하던 때, 우리 엄마 세대가 끔찍이도 높이 봤던(?)‘선상님’이 가정방문을 온다고 했다.

그때 이웃집에 살던 아줌마가 당신 딸 아이의 옷을 빌려 주었다.


엄마는 그런 것을 빌려달랄 주변머리도 못되는 사람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우리가 서울 올 때의 입성으로 보나 세간살이로 보나 없는 집구석 모양새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단다.


망한 것도 아니고 시골 재산 그대도 두고 서울로 올라오느라 하루 아침에 거지꼴이 되었으니 같은 거지(?)라도 질이 다르다고 느껴 우리에게만은 살갑게 대해 준 이웃이었다.


이 이웃이 주인집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같은 전세살이 아니 오히려 우리집 전세보다 못한 지하실 전세살이였다.

요즘 말하는 반지하 차원이 아니다.


그 집은 한참을 똥개천쪽 계단으로 내려가 있는 푸세식 공동화살실이랑 마주 보고 있는 문 속에 살았다.
그러나 먹성, 입성은 왠만한 부잣집 이상이었다.
내일 죽을 것처럼 먹고, 펑하고 사라져버릴 돈인양 옷을 사입고 가전제품을 들여 놓고 살았다.


그 당시 그 집엔 좋은 TV가 있었으니까.
그런 씀씀이로 인해 그 장마에도 똥물이 흘러들어오는 개천 옆 신세를 면치 못했다.






(▲ 이제 우리집 앞으로 가!!! )


우리 엄마는 굶어죽으면 죽었지 남의 외상지는 것과 빚지는 것을 질색으로 아셨다.

어린 기억으로, 그 집에 엄마 몰래 TV 보러 가서(엄마는 구걸하듯 TV보러가는 것을 질색하셨다. 자존심 하나는 풀먹인 교복 칼라처럼 빳빳하셨다.) 창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개천의 똥물이 아는체 하고 들어올 것같아 그 쪽에 눈도 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하여간, 그 집 아주머니는 시키지도 않은 옷을 싸들고 와서 서울 선생들은 애들 옷을 보고, 세간살이를 보고 애들 기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며 엄마의 대답도 들어보지 않고 자기 딸 옷을 내게 입히곤 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깐깐한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온 엄마에게 얻어 입히는 것도 아니고 빌려 입히는 것이 자존심 구기는 일이었건만 딸아이 기죽인다는 말에 찍소리 안하고 그 아줌마의 행동을 말리지 못했으리라.


그것 생각하면 지금도 엄마의 그 고뇌가 느껴져 머리통을 언 땅에 대고 진정시키고 싶다.

그랬다.
우리 엄마는, 내 엄마는 소설가 박완서님의 엄마처럼 그랬다.






(▲ '어린시절로 돌아가고파...')


박완서님의 엄마랑 우리 엄마가 너무 닮았고, 처지도 비슷했다.
자식들 공부시킨다며 종가집 뛰쳐나와 고생고생 서울살이 이겨낸 것이 똑같다.


박완서님네의 첫 서울살이가 서대문구 현저동이었으면 우리의 첫 서울살이는 서대문구 홍제동이었다는 것도 비슷했다.

시골에서는 윤택했으나 서울살이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악착같이 자식들 공부시킨 점도 엇비슷했다.


그 엄마의 그 딸도 비슷하여 박완서님이나 나나 그런 서울이 너무나도 싫어 방학하는 날, 하이에나가 먹이감을 발견한 것처럼 반은 눈이 뒤집어져서 시골로 내달렸고, 내일 개학을 코 앞에 두고 서울로 상경했던 점 등이 또한 비슷했다.

이제와서 뭐가 어쨌다고 지금 어린시절 시린 생각이 날까.


오늘,
오늘 산골에 산골소녀 주현낭자의 친구들이 온다는 날이다.
주현이가 근처의 초등학교 다닐 때는 곧잘 친구들이 오두막을 찾았지만 오히려 새 집 짓고는 이래저래 바쁘다는 이유로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 "우리 입으로 들어갈 음식이 제대로 될까???")


이제 중학교 졸업을 코 앞에 둔 딸아이에게 그게 미안해 날을 잡았다.
그 놈의 날을 잡으면 왜그리 일이 생기는지.


걱정하는 내게 의외로 초보농사꾼이 아무리 일이 생겨도 애들 오는 날은 건들지 말라고 하였다.
정히나 우리 손님이랑 겹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저 위의 신부님 집으로 애들을 보내자고 했다.


해먹는 것도 재료만 준비해 주고 지들끼리 구워먹든, 죽쒀먹든 해 먹으라고 하면 오히려 더 신바람 날 거라는 엄명이 있었다.

우리집 ‘가장’의 명대로 ‘주현이 친구오는 날’은 북박이로 고정시켜 두었더니 겹치는 문제들이 풀려갔다.
그래서 자식은 엄마의 똑똑함으로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아빠의 지혜와 우직함이 합해져야 제대로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5명의 공주들이 온단다.
주현이는 아침부터 신부님집으로 올라가 보일러를 켜고, 혹여 벗들이 추울까봐 벽난로의 불도 다 지펴 두었다.




 


(▲ 벗들을 위해 벽난로도 미리 피워 놓은 산골소녀)


친구들이 읍에서 10시 버스를 타고 온다며 주현이가 걸어서 마을입구로 마중을 나갔다.
엄마가 태워온다니 걸어오는 재미가 있으니 엄마는 신경 하나도 쓰지 말란다.

그래, 뭐 신경쓸 일이 있을까.


그 옛날의 내 엄마처럼 자식 친구들이 온다고 하여 걱정할 일은 내게 없지 않은가.

애들이 걸어서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다.


딸 아이 말마따나 지금 걸어오면서 추억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찐한 추억을...





(▲ 고기도 굽고... "햐, 빨랑 익어라")


한참만에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내다 보니 다섯 명이 깔깔거리며 오고 있다.
걸어오면서 놀다 와서 늦었다고 겉옷을 다 벗어 던진다. 덥다고...


그 ‘더움’은 소녀시절의 그 풋풋한 생기와 꿈과, 호기심 등이 발동하여 열고 변했으리라.

일단 우리집으로 와서 지들의 하루 먹을 꺼리를 건내주었다.
장을 봐다 달라는 품목만 딱 사주었다.


그 전에 몇 번이나 그 이상의 것은 하나도 못주니(^^) 미리 친구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식단을 짠 후 재료 품목을 넘기라고 했기 때문에 장봐온 것만 넘겨주었다.

그래도 김치, 김, 계란, 귤은 산골아줌마가 서비스로 추가 제공해 주었다.^^


재료 보따리를 나누어 들고 신바람이 나서 올라가는 아이들을 보니 설레임을 안고 소풍가는 아이들 같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고, 김치찌개, 핫케익도 만들어 먹고 달고나 등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집의 마당에 나서니 달밭 위 신부님 집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난 고기구워 먹으려니 전선줄이 필요하다고 하여 갖다준 것 말고는 일체 그 근처를 얼씬도 안했다.
부담없이 지들끼리 놀라고...




 


(▲ 세월이 흘러 구두의 땟깔과 사이즈는 변해도 너희들의 우정은 변치 않길 빈다 )


일단 4시가 넘어서 부모님들이 걱정하시기 전에 길을 뜨자고 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아래 집으로 소리를 친다.

왜 안그렇겠는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지들끼리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실수도 하고, 자빠지게 웃기도 하면서 보낸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기다려주었다.


주현이와 친구들을 태우고 읍으로 달렸다.
차 안에서도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뭐가 그리 재밌었냐니 계란말이는 자신있다고 아줌마께 큰소리쳤는데 말아지질 않아 후라이팬에서 다 먹어 치웠고, 핫케익 담당은 주현이였는데 다 태워서 검은 표고버섯 두 개가 있는 것같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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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들을 위해... 달고나의 달인, 산골소녀의 맛자랑 )


삼겹살이랑 김치찌개만 정상이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두 번이나 구워 먹었단다.
하기야 먹성 좋은 아이들이라 삼겹살을 넉넉히 사고도 부족한 듯 싶어 다시 정육점에 들어가서 산 것까지 다 주었는데 다 뱃속에 들어 앉았단다.

그러면서 너무 아쉽단다.


불영계곡의 어둠이 찾아들었는데도 그 아이들의 웃음과 재잘거림은 계곡물처럼 끝이 없이 이어졌다.

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말문을 열었다.


옛말에 ‘엄마 팔아 친구산다’는 말이 있는데 아줌마도 너희만할 때 엄마에게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살아보니 ‘친구’는 엄마를 팔 정도로 소중하고 살가운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아줌마도 그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 팔아 친구 산다’고 했듯이 지금 너희들의 이 우정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머리 희어질 때까지 이어지길 바란다는 말을 흘렸다.
알아들었는지....


아이들을 읍에 내려주고는 집에 도착하면 바로 주현이 핸드폰으로 문자날려 달라고 했다.
주현이 핸드폰이 문자를 받아먹느라 바쁘다.



 


(▲ " 너무 좋다~~~")


다시 불영계곡을 돌아돌아 주현이와 산골로 돌아오는 길.
주현이에게 오늘 친구들과 부족함이 없었느냐고 하니 태어나서 삼겹살 이렇게 많이 먹어보긴 첨이란다.(주현이는 선우만큼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들이 또 오고싶어 한다는 말도 귀에 넣어준다.


그래, 기회되면 다음에 친구의 엄마들과 직접 통화를 하고 졸업하기 전에 한 번 더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주현이가 하품을 하면서 “엄마, 내 손님을 치러서 피곤한가봐“ 한다.


“그래도 나 자면 안돼. 신부님 집 대청소는 했는데 고기 구워먹은 판은 기름이 많아 못 닦았어.그것 다 닦고 자야지.” 한다.

뜨거운 물로 어찌어찌 하라고 일러주었다.


자기 친구가 와서 해먹은 거니 자기가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는 말에 아이가 많이 여물었음을 느꼈다.

아이는 제 손님을 철나고 처음 치러본 셈이다.


이렇게 자주 제 손님을 치르다 보면 저도 남의 집 손님으로 갔을 때, 어떠해야 하는지도 배우고, 손님 맞는 사람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자세여야 하는지 스스로 깨쳐갈 것이다.

그것은 주현이가 세상을 깨쳐 가는데 중요한 하나의 퍼즐 조각이 될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풍경--혼자 간 해돋이
+   [산골풍경]   |  2010. 1. 7. 18:37  


새해 첫날 울진성당에서는 동해안 봉평해수욕장 소나무 모래사장에서 해돋이 미사를 드립니다.
해돋이를 보고 나서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저 혼자 바닷가로 내달렸습니다.


7시까지 가려면 6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불영계곡을 달리고 달려 죽변 바닷가로 달렸습니다.

초보농사꾼과 선우는 감기가 워낙 심해서 박씨 일가는 그 행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전날 아니, 그날 새벽 4시 넘어서까지 야콘즙 작업을 하고 집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5시가 거의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기 몸살이 더 심하고 잠까지 더 못자면 안될 것 같다고 부득이 올해 해돋이 미사는 포기해야겠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게 좋을 것같아 살금살금 혼자 일어나 준비를 하는데 아예 날을 새고 공부하는 선우가 혼자 나서는 저를 배웅합니다.
혼자서라도 잘 다녀오시라고...




다른 해와 달리 성당사람들과 합류하지 않고 혼자 바닷가에서 서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제 새로운 해를 선물 받았는데 난 그 귀한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나,
지나온 해에 대해 감사할 일도 너무 많았는데...하면서...

혼자 그러고 있으니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해가 모습을 드려냈습니다.
그때 옹알이를 했습니다.
홀서 서서...




너무 감사하다고, 지난 해에 얻은 것도 많고 감격스러운 일도 많고 가족 모두 건강한 것이 또한 기적같다고...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고...

그저 감사하다는 옹알이만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또 뭘 달라고 거지행세를 했을텐데...올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에 대한 감사만 웅얼거렸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내년 새해에는 더더욱 많은 감사할 일을 가지고 이 바닷가에 서리라고...

이제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렇게 사지 멀쩡히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지요.


그러한 행복을 유지하려면 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되 옆도 돌아보며 가리라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귀한 날을 받았으니
복되게 살리라고...




그리고 나서 해돋이 미사를 참석했습니다.
성당에서 오신 분들에게 무료로 떡국도 끓여주어 뜨끈한 국물로 속을 뎁힐 수 있었습니다.
고생하신 분들에게 어찌나 고마운지..




성당에서 마련한 떡국떡을 사고 소고기도 사고 산골로 달렸습니다.
새해 떡국을 끓여주기 위해...


가족에게 뜨끈한 떡국을 끓여 주기 위해 달려가는 그 여인은 행복한 사람이지요.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올해 한가지 소망은 풀었다
+   [귀농일기]   |  2010. 1. 1. 01:32  

 

 

2009년 12월

 

귀농하자고 했을 때 아내가 줄줄이 반대하는 이유를 말할 때 그때 그 항목에 들어갔던 거 중에 하나가 손재주 없다는 것이었다.

시골에 살려면 손재주가 기본이라나 뭐라나.

아파트는 뭐가 고장나면 관리실에서 다 해결해 주지만 시골은 혼자 다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말 그대로 개고생한단다.

   

맞는 말이지만 손재주 없는 놈도 다 시골에서 잘 먹고 잘 산다고 맞대응을 했었다.

사실 그래도 다 살수 있다며 살살 구슬러야 한다는데 난 성격상 그렇게 하는 성격이 못되었었다.

맞대응해봐야 내 손해고 점점 더 침을 튀기며 반대를 할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성격상 살살거리지 못하니 그냥 목청을 되려 내가 높였었다.

 



 

하여간 딴 얘기지만 손재주랑 낚시랑 상관이 있는지 몰라도 하여간 난 낚시를 못한다.

남들이 자루로 잡는 곳에서도 우리 박씨들 셋은 단 한 마리도 못잡은 경험을 끝으로 난 단정짓게 되었다.

정말이지 낚시는 팔자에 없나보다 하고 말이다.

 



 

그런데 올 어느 여름날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영계곡의 새점밭 옆으로 낚시를 나섰다.

주현이는 방학이라 서울에 가고 선우를 데리고 갔다.

선우를 데리고 간 것은 이 놈도 낚시하고는 거리가 멀다 보니 한번이라도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경험이라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한 마리 잡는 경험이 될수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번에도 안되는구나하고 아예 포기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스승님의 자상한 지도로 팔자에 없는 낚시에 성공한 것이다.

내가 고기를 잡게 되었다는 말이다.

 

선우도 나와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말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하고 아주 묘한 경험이었다.

 



 

선우도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금니 있는 데에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용기를 얻은 모양이다.

 

즉석에서 잡아 왼손잡이가 즉석요리(?)를 하여 안주를 삼으니 그 맛이란...

거기에 누구나 한번 보면 뻑 가게 되어 있는 불영계곡의 자지러지는 풍경을 안고 먹는 그 맛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한 해를 보내는 마당에 이 낚시경험도 하나의 큰 기쁨이고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된다고 포기했으면 아마도 이 경험을 느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선우도 몇 번이고 고기를 잡은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주현이가 있었더라면 지난번의 그 한 마리도 못잡은 그 민망함을 복구했을터인데 서울에 가있느라고 경험을 하지 못했다.

 

“선우야, 우린 원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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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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