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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기 _해당되는 글 81건
2010.06.04   귀농일기, 야콘즙 박스도 만들어야 하고 
2010.06.04   귀농일기, 함께 날개짓해준 사람 
2010.05.12   귀농일기,대단한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1
2010.04.09   귀농안했으면 반성못했을 이야기[2탄] 1
2010.04.08   귀농일기 지게로 지어나르자!!! 
2010.04.01   귀농일기--결국은 트렉터에 끌려서... 
2010.03.27   귀농일기--산골소녀가 학교다니던 길을 걷는다. 
2010.03.05   귀농일기--밭으로 출근하고 싶다. 
2010.02.08   귀농일기--귀농했으니 누리는 혜택이다. 
2010.02.02   귀농일기--며칠 여기에도 올인하려 한다. 2

 

귀농일기, 야콘즙 박스도 만들어야 하고
+   [귀농일기]   |  2010. 6. 4. 14:55  

2010년 3월 29일


최근들어 산골에도 황사가 아주 심해서 모든 물건들이 흐끄무리하게 보였었다.
차도 그렇고, 밖에 두었던 모든 물건들, 책상들이 눈에 계속 들어왔었다.
제일 정도가 심하고 눈에 거슬리는 것이 통창이었다.


산골 집이 전면이 다 통창으로 되어 있다보니 황사로 인한 먼지가 비로 인해 얼룩이 져서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그래도 급한 일 먼저 하고, 급한 일 먼저 하고 노래를 부르다 오늘은 도저히 안되겠어서 청소를 시작했다.

내가 오늘도 거르고 안할까봐 아내가 벌써 창문닦은 것이랑 호스랑 다 끌어다 놓았다.


산골아낙이 꽃밭에 물줄 때 쓰는 호스인데 길이가 짧아 창문에까지 물뿌리기를 할수가 없었다.
대야에 물을 받아서 뿌려가며 청소를 시작했는데 계속 전화가 온다.

몇 달 전부터 야콘쨈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여러번 시험을 거쳤다.
우리 산골에는 그런 기계를 갖춘 가공시설이 없기 때문에 귀농 후배가 있는 영덕까지 가서 쨈을 만들어 오는 것이다.


물론 야콘은 내가 농사지은 유기농 야콘이다.
야콘을 가지고 가서 가공시설만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위생적이고 식품허가가 나오기 때문인데 그렇게 내 기계에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별로 남는 것도 없다.

 야콘쨈유기농 설탕을 사용했고, 아이들이 먹는 경우가 많은 쨈이다 보니 되도록 많이 달지 않도록 만들었다.


야콘 자체가 올리고당이 많아서 기본적으로 단맛을 유지하고 있는 먹거리라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쨈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고 성분검사 등을 받기 위해 일일이 연구소로 샘플을 보내야 하고 그 결과 나온 것을 가지고 스티커 작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스티커를 도안하여 인쇄에서 샘플을 보며 수정을 여러 차례 했고, 완성된 스티커를 찾아왔다.
무엇 하나를 시작하려면 계속 돈이 들어간다.


박스든, 스티커든 대량으로 해야 하다보니 영세 농장에서 묶이는 돈도 많고 하여 벌써부터 만들고 싶어했던 야콘쨈이었지만 사실 엄두를 못내왔던 터였다.

그 다음은 야콘즙 박스다.


야콘즙
박스가 별도로 없어서 야콘박스에 즙을 담아 팔다보니 상품성이 떨어져 보인다.
내용물이야 내가 온 힘을 기울여 만든 것인데 제대로된 야콘즙박스에 넣으면 더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박스값이 부담스러워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군에서 보조도 나오고 나머지는 내 부담의 돈을 들여 야콘즙 박스도 만들게 되었다.

이야기가 정말 샜다.
이런 일들이 진행중이다 보니 계속 전화가 온다.


물청소를 하다가 집어던지고 전화받고, 컴퓨터로 보내온 것을 확인하고 수정하다 보니 일의 진도가 안나갔다.
또 전화를 받고 나면 또 다른 일을 하게 되고 나중에 보면 유리창을 닦다 말았고...


전면의 유리는 어떻게 닦았는데 측면에 있는 방충망을 떼어내고 닦는 것은 못했다.
일단 급한 눈을 닦았으니 다행이다.


언제 나머지를 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모든 물청소 도구들이 데크에 널브러져 있다.

저녁이 되어 하려니 날이 엄청 춥다.
내일은 내일의 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일 완료를 할지 모르겠다.
황사가 무섭긴 무섭다.


얼마나 진흙탕처럼 얼룩이 심한지...

이제 건강을 위협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는 환경하에 살다보니 우리 세대가 얼마나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일에 열중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연 가까이 살다보니 그 고마움을 더 깊이 느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 있습니다.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함께 날개짓해준 사람
+   [귀농일기]   |  2010. 6. 4. 14:25  


얼마 전에 아내가 책을 컴퓨터 책상에 놓고 밥하러 갔기에 들여다 보았다.
몇장을 흥미롭게 읽어가던중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일곱 가지’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에 하도 이런 제목을 내세운 책들이 많아 ‘이젠 독자들도 왠만큼 겁주는 제목이 아니면 들여다도 안보나보다’하고 씁쓸해했었다.

사람들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점점 점점 쎄져서 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건성건성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 하나 읽어갈수록 내 이야기를 쓴 듯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대충보면,
첫째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어? 이건 내 얘기 아냐?’


난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도시의 한 독방 사무실에서 지내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입생 시절에는 저 독방(그때 소장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우린 그렇게 불렀었다)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 일찍 독방에 들어앉았을 때 기분 참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분좋음이 퇴색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박광수씨 말대로라면 난 거기까지만 해도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인데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껏 죽 해왔던 일을 과감히 던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
그러니 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한 행운의 싸나이다.


둘째,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 “저 사람은 미쳤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거라고 적어 놓았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기 일에 미쳐 보지 않은 사람이 그 일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절대 없다는 것이다.

“햐, 이거 나를 모델로 쓴 거 아냐?”하면서 “이 친구 글 잘쓰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 생각이랑 일치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글을 잘 쓰고 못쓰고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도 나를 보는듯해서 그런 말이 절로 튀어나와 자판 위에 굴러다녔다.


내가 처음 귀농 얘기를 꺼냈을 때 이구동성으로 “미쳤어.”소리를 들었다.
나를 낳아주시고 죽으라 키워주시고 없는 돈에 머리에 투자하면 망할 일이 없다며 공부를 시키셨던 엄마도 “너 단단히 미쳤구나.”하셨고 며느리에게도 대놓고 “저 놈 미쳤으니까 애미야 이혼해라. 손자들이랑 너까지 고생시킬 수 없다”며 통곡을 하셨다.


그리고 며칠씩 밖에 외출도 안하셨단다. 기운이 없고 챙피해서...
그렇게 난 그 말, "미쳤다"는 말을 귀농 전에 원없이 들었다.


하도 많이 들어서 나중에는 그 말이 그다지 기분 나쁜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셋째,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한번쯤 꼭 해봐야 할 일은 멀고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진정 목숨을 걸고 날갯짓을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란다.

정말 그랬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삶을 열망했고, 그 선택이 어떤 시련과 고난이 동행할지 눈감고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삶은 단 한번만 주어지기 때문에 뒤로 미룰 수도 없었고,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난 날갯짓을 했다.


그 날갯짓뒤에 후폭풍이 어떻게 몰아칠지도 다 알면서 어린 아이들과 농사
도 모르는 마음 여린 아내를 데리고 난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산골로 둥지를 옮겼다.

그러나 그 날갯짓에 늘 내 옆에서 같은 진동과 폭으로 함께 날갯짓을 해주어 그 길이 결코 외롭지 않게 해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나와 같이 힘든 날갯짓을 해주었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아내는 따뜻한 국과 밥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다.
난 뜬금없이 “고마워. 잘 먹을께”했다.


아내는 그 말이 어떤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함께한 날갯짓에 대한 깊은 내 마음 속 표현인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대단한 사명감이라기 보다는...
+   [귀농일기]   |  2010. 5. 12. 16:57  


2010년 3월

귀농하자마자 실천한 것이 유기농이다.
아니, 귀농전부터 다짐한 것이 유기농이다.

2000년에 귀농했으니 그때만 해도 그 흔한 웰빙이라는 단어도 없었을 때다.
웰빙은커녕 유기농으로 지은 농산물이라고만 해도 대놓고 미친 놈 취급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귀농 첫해 유기농으로 고추를 수확해서 장모님과 처형께 드리려고 고추를 잔뜩 싣고 서울로 갔다.
장모님댁 근처에 차를 세우고 고추를 내리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많은 양을 내리니 장사로 보았는지


“이거 한 근에 얼마예요?”했다.


“파는 게 아니고 선물로 가져온 거예요.”


농사지은 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팔면 얼마예요.? 한 근에...”


물어도 툭툭 내던지는 말투에서 농사꾼을 대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이 여전하구나 싶어 귀농하지 얼마 안된 우리 부부로서는 솔직히 별로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진정한 농사꾼이 다된 지금 그렇게 물어오면 웃으며 대답해줄 여유가 있을텐데 하여간 그땐 그랬음을 고백한다.


“이거 비싼 고추예요. 약 하나도 안치고 유기농으로 키운 거예요.”


난 나름대로 애지중지 약 안치고 기른 것이라 목청을 가다듬고 말해주었다.


“이 아저씨가 사람 놀리나. 고추를 약 안치고 어떻게 키워요.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나도 옛날에 농사지어 본 사람이라서 다 아는데 그런 소리를 해요?”


신경질을 확 내고 간다.

그때는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되었다.


내가 유기농을 선택한 것은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린다는 거창한 사명감같은 것이  앞선 것은 아니다.
이 땅은 꼭 내가 살려야 한다는듯이,  모든 것은 내가 다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부르짖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내 식구 입에 들어가는 것에 약치는 것은 싫으니 남의 입에 들어가는 것도 내 식구같은 맘으로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땅을 살리고 그 안의 생물들도 함께 살아가고, 당연히 사람도 같이 사는 좋은 순환이 절로 된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귀농하면서의 초심이 그렇게 단순했듯이 귀농 11년차의 마음도 단순하다.
수확이 적어도, 약을 안쳐 병이 와 다 말아 먹어도 내 식구 입, 남의 입 구별 안하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안했으면 반성못했을 이야기[2탄]
+   [귀농일기]   |  2010. 4. 9. 09:16  

 

제목이 ‘귀농을 안했으면 지금도 반성을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병아리를 키우면서 아내가 하도 놀려 생각해본 제목이었다.

그러니까 작년 10월에 1탄을 쓰고 2탄을 이제야 쓰니 2년 걸린 셈이다.


자세한 지난 이야기는 <귀농일기>435번 ‘귀농을 안했으면 지금도 반성을 못했을 것이다’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병아리 두 마리를 집에서 키우게 되면서 주현이가 제일 바빠졌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다 보니 그 관심은 놀랄만하다.
병아리들을 바라보는 모습도 진지하고 따뜻하여 나도 닥아가 들여다 보게 만든다.





바깥 세상 적응훈련을 시킨다며 마당으로 데리고 나온 주현이는 갑자기 코스모스 향기를 맡아보라며 병아리의 코를 코스모스 가까이에 들이댄다.
아이들의 생각은 정말 놀랍니다.
기발하고, 세심하면서도, 따듯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저런 아이들을 기계식으로 학원으로 전전하게 하고, 콘트리트 벽에만 가두어 공부만 시키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참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나날이 그 건조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게 병아리들을 꽃밭에서 놀게 하더니 이번에는 그 꼬맹이들의 집 평수를 두 배로 늘려주어야 한다며 박스를 찾는다.
딸아이의 그런 호기심과 애정을 지켜보던 아내가 바로 박스를 구해다 준다.




어쩌나 하고 보니 박스 하나의 벽을 트더니 다른 박스 하나를 테이프로 붙여주고 있다.
완성된 것을 보니 근사한 넓은 평수의 병아리 집이 되었다.
그제서야 병아리들이 운동도 하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며 좋아한다.


2009년 10월 14일


오늘은 주현이가 밤에 손전등을 찾는다.
이 밤에 어디를 가느냐고 하니 병아리들을 이제는 이유식을 시켜야한단다.
이유식이라...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가지고 이유식을 어떻게 시킨다는 건지 지켜볼 수밖에...





밭으로 가서 한참만에 나타난 주현이 손에 정말 병아리의 웰빙식사재료가 들려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쑥도 보이고, 씀바귀인지의 잎도 보인다.
유기농하는 에서 뜯어왔으니 병아리 이유식도 유기농 식단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이유식은 없을 것이란다.
이번 병아리 때문에 놀란 것은 주현이의 동물사랑의 정도이다.





아이는 따뜻하게 동물을 대하고 있고 사랑하는 흔적이 행동으로 나타난다며 아내도 주현이의 행동이 대견한 모양이다.
밭에서 뜯어온 것들을 가위로 잘게 썰어 넣어주는 아이





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지나 병아리 두 마리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나중에 또 들여다 보니 작은 부리로 쪼아먹기 시작한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아니면 쪼기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쪼기는 한다.





만약 목구멍으로 못넘긴다면 언젠가는 넘길 것이고, 동물들은 바로 먹이넘기는 것을 잘 하니까 이제는 주현이 말대로 제대로 이유식이 될 것이다.


2009년 10월 20일


점점 병아리 소리도 커지고 손님들이 와서 병아리를 만지자 주현이가 날로날로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지엄마를 보면 제발 손님들이 병아리를 못만지게 해달라고 당부를 하고 안타까워 하기 시작했다.




또 언제까지 집안에 둘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병아리집을 보일러실로 옮기기로 가족간에 합의를 보았다.
보일러실에 두니 나무를 때기 위해 가서는 운동도 시키고 더 좋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시키기 위해 밖에 내다 놓고 노는 것을 들여다 보니 아무래도 한 녀석의 다리가 문제가 있다.
걷는 것도 뒤뚱거리고 하여 집어 들여다 보았다.
한쪽 다리가 부어올랐다.
그래서 그렇게 발이 자유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항생제도 안맞고 그저 태어나자마자 자연에서 먹이만 먹고 자랐으니 이런 일이 있는가보다.
주현이도 자꾸 병아리가 다리를 전다며 걱정이 많다.




어쩌랴.
지켜보는 수 밖에. 운동을 많이 시키면서...


2009년 10월 29일


가을이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야콘밭을 오가며 들녘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난 섬세하지 못하지만 가을은 그 깊이가 있다.
신부님 집도 가을 풍경속에 잠기어 들고...(가을이라 그런지 이런 말도 구사되고 용됐다.)





그러는 동안에 신부님집 바로 옆에 집을 마련한 닭장에 새로운 식구들이 또 합류를 했다.
한쪽 집만 사용하던 것을 중간에 구멍을 내고 두 집을 다 사용하기로 했다.
두 칸을 오가며 잘 먹고 잘 싸고 있는 닭들.


다시 병아리들의 발육상태를 체크해 보기로 했다.
한 놈은 비록 보일러실에서 컸지만 잘 커주고 있는데 시원찮았던 녀석은 기형의 다리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마음이 편치가 않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얼마나 고통중에 있을지...
이제는 보일러실에 먹이랑 물을 주러 가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주현이도 자꾸 시원잖은 놈에게 관심이 더 가는 모양이다.


별다른 방법이 없는 날을 보내다 결국은 한 놈이 삶을 등지고 말았다.
작은 구덩이를 파고 흙을 덮어주었다.


그동안 산골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을 주고 간 녀석이다.
이래서 동물키우는 일은 좋은 것만이 아니다.

한 녀석이 산골을 떠나고 나니 나머지 한 녀석이 안스러워 보인다.


둘이 박스속에서 빠약거리며 잘 지냈는데 이제 혼자 살아가고 있는 한 놈 아리가 더 안스러워 보인다.
주현이가 이름을 아리라고 지어주었는데 지엄마가 왜 이름이 아리라고 하니 병아리의 아리란다.


이제 아리도 웬만큼 컸다며 주현이랑 아내가 아리를 이제 다른 닭들이 있는 닭장으로 넣어주는 좋겠다고 결정하고는 주현이를 시켜 닭장으로 보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닭장에 넣어주자마자, 다른 닭들, 특히 제일 큰 숫컷이 이 어린 아리를 잡아먹을 듯 하도 쪼아붙이고 하는통에 앗 뜨거워라 하면서 다시 데리고 내려왔단다.





그 말을 듣고 내 경험도 얘기해 주었다.
주현이보다 먼저  닭을 데리고 갔었다. 닭장에 넣어주러.
그런데 그 놈의 숫놈이 어찌나 아리를 쪼아죽이려고 달려드는지 금방이라도 죽일 것만 같아서 나 역시 주현이처럼 부리나케 데리고 내려왔었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집단으로 쪼임을 당해서 아리가 정신줄을 놓은 것같단다.

다시 아리는 보이러실 박스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2010년 2월 5일


새해가 되었다.
벌써 두 살이 되는셈인가 보다.
보일러실에서 무럭무럭 큰 아리.




이제는 제법 어른티가 난다.
보일러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 운동도 하고 물 한 모금 먹고 하늘을 보고 할짓은 다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녀석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늘 있었다.


이제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워낙 수탉이 죽인다고 달려들어 어쩔수가 없다.


아내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급한 일도 재껴놓고 보일러실을 치우기 시작한다.
벌써 치운다고 하더니 이래저래 급한 일이 생기니 마음만 썼었단다. 이제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보일러실의 아리집 근처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잘 때는 횟대가 없으니 통나무 횟대 역할을 하라고 커다란 통나무 한토막을 굴려서 횃대처럼 해주었다며 보여준다.





아리는 이제 제집처럼 보일러실 통나무 위에 앉아서 잠을 청하고 자라고 있다.
밖에 나가 운동도 하고 먹이도 쪼아 먹으며 제 잘 곳이 어딘지 이제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아내 말이 위의 닭장에서 닭울음소리가 나니까 그 소리를 듣고는 저도 작음 소리로 화답을 하더란다.


2010년 2월 26일


오늘 저녁을 먹으며 아내가 말한다.
이제 위의 동료들이 있는 닭장으로 가기는 틀렸고, 보일러실에 닭장에 있는 암탉을 한 마리 데려다 아리의 벗이 되게 해주어야겠단다.
횃대도 만들어주고...


그런데 그 암탉이 도망가지 않고 보일러실을 제집으로 잘 알는지...
그게 숙제다.

아내 말대로 육아일기를 이렇게 한번이라도 썼었으면 아마 아내가 상장과 금일봉을 내렸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지게로 지어나르자!!!
+   [귀농일기]   |  2010. 4. 8. 09:37  

 


 (▲ 어둠 속 산골 박씨들의 오늘 미쎤은???)


2010년 2월


폭설로 인해 명절을 정신 바짝 차리고 보냈다.
명절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쏟아진 눈으로 인해 서울로 모시러 가려고 했던 어머니께서 산골의 아들이 위험한 운전하고 온다며 버스를 올라타시고 오셨다.


명절 장보러 가는 데에도 차가 미끄러져 트렉터로 끌어올려와야 했고 그렇게 명절을 눈속에서 보냈다.

명절이 지나면 한시름 놓을줄 알았는데 일은 계속 심심잖게 생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살이도 이와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고비 넘기면 다음에는 황금빛 물결이 넘실대겠지 하지만 그거 넘으면 또 고개...
그렇기 때문에 그저 대단한 무엇을 바라기 보다는 그때 주어진 상황, 그것이 고난이든 행복이든 온전히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터득한지 오래다.


명절 훨씬 전에 효소 병이 떨어질 것같아 주문을 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당분간 병을 안만들고 2월 말이나 만든단다.
공장에서 이렇기도 하나...싶어 급한 마음에 조금 비싸지만 대리점에 몇 박스만 주문해 두었다.





그런데 택배에서 찾아 차에는 실었는데 눈이 많이 내려 차를 국도가에 두고 오는 바람에 내리지를 못했다.
다음에 아찔아찔해가며 다리결까지 끌고는 왔는데 이젠 거기서 집까지 옮기는 일이 문제였다.


무거운 게 문제가 아니고 길이 미끄럽다는 것이다.
잘못하여 미끄러지면 병이라서 다칠 염려도 있고 말이다.


결국 아이들이랑 나섰다.
만만한 놈이 선우라고 선우는 두박스를 묶은 것을 어깨에 지어주었다.
조금 가더니 어깨가 아프다며 끌어안고 가는데 끌어안고 가면 그 언덕과 눈길을 가려면 더 고생한다고 했더니 해보겠단다.





산골살이에서 주현이라고 우린 예외는 없다.
주현이는 그대신 한박스다.
이 놈 역시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여 박스를 들고도 벤자민이랑 놀고 있다.
그게 보기에 좋다.





선우랑 같은 무게를 들으려니 미안스럽다.
나도 선우랑 같은 무게를 들고 걸어올라가는데 선우가 고생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깨에 매준다고 하니 끈이 풀려 그냥 가겠단다. 아빠나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시라고 걱정까지 하며 나를 돌아보고 서있다. 무거운 것을 들고 말이다.





그렇게 빈병을 옮겨 놓았으니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문제는 뭐냐 하면 택배차가 국도가에서 못올라온다는 것이다.
명절 전에 주문하여 연휴로 인해 택배에서 일찍 마감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기다린 분들도 계신데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송을 해야 했다.


무슨 수로..

생각 끝에 지게에 지고 나르기로 했다.
고3인 선우가 다시 동원되었다.
인상 한번 안쓰고 농담하며 오는 선우다.




지게에 올려주고 송장이 눈에 젖지않도록 비닐로 씌웠다.
일단 한번 다녀오면 두 번째는 더 노련해진다는 선우
그러면서 한 마디 던지고 간다.
“아빠, 옛날에는 제가 아빠를 도와드리는 수준이었는데 요즘은 힘든 일을 전담하는 수준이예요.^^ "하며 웃고 간다.




선우가 두어번 왔다갔다 하고 나머지는 내가 들고 나섰다.
선우가 눈보라 속에서 벤자민이랑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섰다.
등에는 지게를 지고 그 위에는 고객들에게 갈 효소를 지고서...


저 놈은 아마도 눈길을 걸으면서 지가 좋아하는 카프카를 생각했을 것이다.

매번 그의 천재성 등을 말하며 감탄을 하던 녀석이고 아마도 이 엄마가 그런 선우를 위해 카프카의 책을 거의 사주었을 것이다.





저 아래의 차에 싣기는 했는데 미끄러운 길 내려가는 것이 또 한번의 난코스이다.

산골에서 살면서 아내와 삶의 기준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어디에서 살면 그렇게 생각 안하고 살까.
하지만 그것이 여기서의 삶에서는 절실히 실천하며 산다.




고객들이 기다리는 생각에 병을 그렇게 날라야 한다는 생각이 그냥 당연했고, 지게 아니라 하나씩 품에 안고서라도 택배를 보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이들을 심부름시키고, 급한 일은 같이 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 또한 거기에서 교훈을 얻고 지혜를 얻으라는 생각이 우리 부부의 기본 교육이다.


일단 도와달라고 부르면 애들은 표정이 밝다.
“아빠, 오늘의 미션은???” 하며 웃고 온다.
그게 고맙고 기특하다.


이렇게 발송을 하고 나니 이제 한시름놓은 기분이다.
당분간은 이렇게 지게에 지고 비닐로 덮고 하여 산야초 효소, 야콘효소, 솔잎 효소야콘즙을 발송해야 한다.
그게 또한 의미있고 신선한 일로 닥아오는 눈오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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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결국은 트렉터에 끌려서...
+   [귀농일기]   |  2010. 4. 1. 14:53  


2010년 2월

 

눈으로 고립되고 나니 아내가 제일 근심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차례음식을 차릴 장을 봐와야 하는데 눈 때문에 읍을 갈수없어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갈수있다고 해도 며느리입장에서는 그말이 그다지 안심이 되지않는지 계속 밖에만 내다 보며 걱정이다.

이러다 마누라 잡겠다 싶어서 오전에는 야콘즙작업을 하고 점심을 먹은 다음 부랴부랴 나섰다.


사실 아내를 위해서 나선 것이라기 보다는 그때 안나서면 어두워져서 돌아오니 눈길걱정이 앞선 것도 있었다. 사실은 ...
해가 있을 때 돌아와야 그나마 눈이 빙판을 이루지 않기때문인데 지금 거북이 걸음으로 가다가는 해 있을 때에 돌아오기가 어렵지 싶다.

일단 다리결에서 국도가까지 차가 내려가는 것이 문제다.


일전에 어머님을 읍에서 모시고 올 때 조금이라도 많이 쌓인 눈길을 안걷게 해드리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차를 다리결까지 가지고 올라와서 내려가는 길이 걱정이 되었다.

국도가까지는 급경사도 많고, 위험코스도 많으니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안갈수도 없다.
무조건 가야 하는데 장을 보러...

일단 둘이 나섰다.


장을 보고 어제 친구와 대구에 갔다가 폭설로 산골로 돌아오지 못하고 친구집에서 잔 주현이를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
폭설이 내리자 서울가서 어머님을 모시고 오는 일이 제일 걱정이었고, 두번째는 읍에서 학교를 마치고 연휴를 보내러 오는 아들 선우를 산골로 들이는 일이 걱정이었고, 하필이면 졸업기념으로 친구와 당일코스로 대구여행을 간 주현이를 산골로 데려다 앉혀 놓는 일 또한 걱정이었다.

 

선우는 무릎까지 쌓인 눈길을 걸어와야 하니 장화를 하나 사놓고 대기하라고 했었다.
파란색 장화를 사놓고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산골소년.


'저 놈들이 나중에 커서 이 모든 일이 그의 필림에서 반짝이겠지...'이건 내 머리에서 나온 표현이 아니고 아내의 표현이다.

일단 사람만 들이면 나머지야 최선만 다하면 되는 일이라며 아내가 안절부절을 못한다.
일단 어제로 어머님과 선우는 우여곡절끝에 산골로 잘 모셔왔는데 문제는 주현이었다.


여자 아이라 되도록이면 산골로 데리고 오려 했으나 밤에 울진읍으로 도착하는 바람에 도저히 되질않았다.

드디어 주현이도 오늘 산골로 데리고 오면 이제 폭설이 와도 마음을 졸이며 불안할 일은 한풀 꺾였다.

장보러 국도가까지 가는 길이 무슨 굴을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눈으로 만든 굴을 빠져나가는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온천지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을입구까지 가는데 한곳에서 미끌하는통에 진땀이 났지만 국도가까지 잘 나갔다.
그리고 읍으로 가는 길은 제설차가 분주히 다니며 눈을 치워주었지만 중간중간 미끄러운 위험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명절전이라 제설차도 몇 대가 돌아다니며 치우고 치우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눈이 그쳐야 저분들도 명절을 쇠러 갈텐데 이런 식으로 눈이 계속 오니 명절이고 뭐고 국도에서 지내게 생긴 것 같다.

읍에 도착하여 주현이 먼저 불렀다.
대구에 가서도 아빠가 눈이 많이 오니 빨리 오라고 하여 제대로 구경도 못했다며 웃는다.




‘너도 자식키워봐라....아빠 맘 알거다. 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나도 부드러운 아빠다. 이눔아.’

읍에서도 부랴부랴 아내가 장을 본다.
내가 외아들이다 보니 늘 혼자서 무거운 장을 봐서 혼자 음식을 다 만든다.


내가 도와주지도 못한다. 일도 못하고 저지레만 해서.

종이에 적어온 것을 보고 또 보고 , 다시 돌아가서 무엇을 사고 정신없이 아내가 뛰어다닌다.
산골에서는 이런 날 장을 제대로 못봐가면 다시 나오지도 못하고 옆에 슈퍼에서 사지도 못하고 아주 난감해서 이런 날 장보게 되면 며칠 전부터 아내는 종이 적고, 적고 중얼거리고 그런다.

 

마침 장날인데 아내는 아는 사람도 많아 장보랴,이러지리 인사도 하랴, 안부도 묻고 바쁘다.
나야 뒤에서 짐이나 받아들지 잘 모르니 그저 따라 다니다 짐이 많아지면 주차장에 있는 차에다 싣고 다시 와서 짐을 받아 싣고를 반복했다.

그나마 주현이가 이제는 엄마를 잘 도와 둘이서 다니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그러고 다니다 주현이가 대학가면 혼자서 주현이 생각하며 아내는 쓸쓸해할 것이다.
장을 다 보고 나니 시간이 꽤 되었다.

 

서둘렀다. 그러지 않으면 어두워져서 올라가야 하고 그러면 눈도 얼어서 더 미끄러질 확률이 높아진다.
서둘러 밟으려니 다른 차들이 엉금엉금 앞에서 길을 터주지 않는다.

 

겨우 마을입구로 들어서서 난코스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얼마쯤 갔을까 첫 번째 걱정한 코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언덕을 못올라가고 미끄러지는 차.

 

다시 후진을 하여 가속도를 붙여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은 고무타는 냄새만 산골에 진동을 하고 다시 미끄러진다.
다시 하다가 후진하면서 그만 계속 미끄러지다 가드레일을 박고서야 차가 멈췄다.
모두가 초긴장상태.
가드레일이 없었다면 아마 개울로 빠졌을 것이다.

 

 

 

 

 

아까 읍에서 사온 눈삽을 꺼내 바퀴 뒤의 눈을 파보지만 허사다.
두어번 눈을 파다 그나마 새로 산 삽자루가 똑 부러진다.
어쩜 그렇게 약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을에 큰 트렉터를 가진 분이 임성도 전 이장님이다.

 

 

 


그래서 임이장님께 전화를 걸어 차를 좀 끌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기다리라며 어디냐고 하신다.

오늘 하루 종일 마을 눈치우시느라 고단한 몸을 풀고 계신 것같은데 내 부탁에 두말도 않으시고 지금 내려간다며 혹시 고리는 있느냐고 하신다.
고리가 없다고 하니 걱정말고 그냥 있으란다. 알아서 챙겨간다고...

트렉터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부러진 삽으로 눈을 치운다.
우리는 트렉터가 와서 끌고가지만 마을분들 차라도 우리처럼 미끄러지지 말라고 굳어진 눈을 깨야 한단다.

 

 

 

 


그래가지고 되지도 않으니 그만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저렇게 용을 쓰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등을 다쳐 피가 나고 부풀어올랐다.

 

 

 

 

 

지엄마를 따라 이번에는 주현이가 눈을 파고 난리가 났다.
마을입구에서 집에 있는 선우에게 전화를 했었다.
이제 곧 다리결에 도착하니 거기로 짐을 들러 나오라고

 

 

 

 

그 놈이 다리결에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걸어오고 있다.
기다려도 안와서 이거 무슨 일 난 게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개울을 쳐다 보며 왔단다.
아이가 걱정한 티가 역력하다.

 

우리 차가 미끄러져 있는 것을 보니 그나마 안심인가보다.
자기는 개울로 떨어진줄 알았다고...

 

 

 

 

한참을 기다렸나 보다.
한 30분은 기다린 것같은데 날은 벌써 어두워져 있다.
아내가 주현이를 집으로 먼저 걸어서 올라가라고 보낸다.

주현이더러 할머니가 우리가 이 정도로 안오면 분명히 걱정되어 그 미끄러운 길따라 내려오실 분이니 가서 아빠가 아는 분을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니 걱정말라고 하고 할머니랑 있으란다.

 

난 그 깊은 뜻도 모르고 짐 같이 날라야 한다고 했으니 ....

주현이가 가고 멀리서 트렉터소리가 나더니 불빛이 보인다.

 

 

 

 

우리 집에서도 한참 위에 사시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천천히 오시느랴 늦으신 모양이다.
눈을 치우며 내려오고 계시다.

 

 

 

 

 

우선 고리를 만들어 우리 차에 끼웠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트렉터 아래에 걸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차를 끌고 가는데 문제는 직선 거리는 상관없는데 곡선으로 된 곳에서 트렉터의 긴 끈이 차를 잡아끌면 곡선따라 가는 것이 아니고 직선으로 가기 때문에 그게 위험하다.

일단 차에 온가족이 타고 출발을 했다.


트렉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긴 끝이 팽팽하게 되자 소리를 내며 우리차가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 가드레일에서 떨어져 비탈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곡석으로 된 곳이 두군데 있는데 그곳이 문제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계곡쪽으로 떨어지는줄 알았다.
트렉터는 직선으로 끌고 가고 아주 굴곡이 심한 곳에서 거의 떨어질 정도의 거리에서는 아내도 아이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내가 괜찮다고 해도 아내는 트렉터를 세우라는 트락션을 울리라고 했지만 그냥 갔다.


겨우 그곳도 빠져갔다.

이제 차는 여기까지 밖에 못간다.


다리결에 차를 세워두고 거기부터는 장봐온 것을 다 날라야 한다.

 

 

 

한번에는 안되고 일단 끌것에 끌고 들고 가고 나머지는 다시 내려와서 옮기기로 했다.
아내가 집에 도착하여서야 큰 숨을 쉰다.
차가 미끄러져 애가 많이 탔고 곡선길에서 직선으로밖에 트렉터가 끌어주지 못해 개울로 떨어지는줄 알고 겁을 먹었다며 이제 명절 다 쇤 것같다며 주저앉는다.

 

어제는 어머님을 읍에서 모시고 오는 것도 폭설로 큰 일이었는데 오늘은 또 장을 봐오느라 큰 일이었다.
가드레일을 박느라 뒷 범퍼는 박살이 났지만 그래도 사람 다치지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어머님은 주현이가 와서 아빠가 아는 분을 만나서 이야기하시느라 늦으시는 거라고 하여 그렇게 믿었다며 세상에 미끄러져 얼마나 고생하고 놀랐냐며 애들을 만지신다.


주현이가 안왔으면 지팡이짚고 내려갔을 거라고.

뭐니뭐니 해도 오늘 트렉터로 그 어둡고 먼 길을 내려와 주신 임이장님께 고마운 마음이다.
산골에서는 이렇게 서로서로 도우며 산다.




차가 빠지면 서로 다른 일을 재껴놓고 빼주러 가고, 이런 일도 그렇고 ...

눈이 펑펑 쏟아진다.


장을 봐온 것이 꿈만 같다며 아내가 긴장을 푼다.
하얀 눈은 잠도 안자고 계속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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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산골소녀가 학교다니던 길을 걷는다.
+   [귀농일기]   |  2010. 3. 27. 14:07  

2010년 2월 10일

 

오늘은 딸 주현이의 졸업이다.
아내는 딸이라 그런지 이것 저것 선우때와 또 다른 마음이 생기는지 어제 늦도록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뭘 하더니 아침에도 뭘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인다.

 

 


[왼쪽에서 두번째 아이가 딸 주현입니다. 낯이 익어서 보니 일전에 산골집에 놀러 왔었던 친구들입니다.)

이제 학교차를 타고 다니는 시절도 이제 끝이다.
마을입구에서부터 걸어서 집까지 올라오는 것을 즐겼던 딸아이다. 엠피쓰리를 듣고 길바닥에 개구리가 죽어 있는 것도 안타까워 하면서 딸아이는 걸어서 학교차를 타고 다녔다.

 

 

 

여름이면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가에서 엄마, 아빠에게 준다고 산딸기를 따오곤 하는 것을 보면 기특하고 대견했지만 표현을 못했다.

 

 

 

요즘은 사탕처럼 달콤한 아빠(이런 표현이 난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렇게들 표현한단다)들이 많아 아빠가 딸에게 자상하게 책도 읽어주고 같이 놀아도 주고 선물도 하고 그런다지만 난 그런 부류는 못된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귀농 전보다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고 할수 있다.
자가진단이지만.

 

 

 

비오거나 눈이 오면 지엄마가 태워다 주기 때문에 어떤 때 보면 비가 온다고 좋아하기도 했으니 본인인들 왜 그렇게 걷는 것이 귀찮지않았을까.

그래도 초등학교때부터 군말 한번 없이 봄여름가을겨울없이 걸어서 다니는 것을 보면 기특하고 그랬지만 난 워낙 표현이 잘 안되는 아빠지만 오늘만큼은 수고했다는 말은 해주고 싶은 날이다.

 

 

 

여하튼 오늘은 아빠 말에 거역한번 못하고 잘 자라서 그렇게 친구들이랑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즐거워 하는 딸아이를 보니 대견했다.

딸아이는 친구생일이라서 축하자리가 있다며 읍에 남았고 선우는 선우대로 남고 우리 부부만 산골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읍에서부터는 계속 비가 왔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눈이 펑펑 오기 시작한 거다.

서둘러 밟았다.
산골의 눈은 금방 쌓여 어떤 사태를 불러올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결에서 조금 올라가서 집으로 들어서는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차가 미끄러진다.


힘껏 밟아 돌진해서 겨우 집에 도착했다.

문제는 내일 서울로 엄마를 모시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명절을 산골에서 지내기 때문에 엄마를 모시러 서울로 가야 하는데 눈이 예상보다 많이 오기 시작한다.

아내와 상의 끝에 차 두대 다 국도가에 내려다 놓기로 했다.
아내는 쉬라고 하고는 한 대씩 내려다 놓았다.


한 대를 내려다 놓고 다시 한 대를 내려다 놓고...

다 내려다 놓고 그냥 올라오면 서운하다.


오늘 내 딸 주현이의 기쁜 졸업식도 있었는데 아내가 말하는 방앗간에 들려 막걸리 한잔 하고 가야지...

유이장님댁에서 막거리를 마시고 혼자 올라오는데 저 멀리서 작은 키에 우산을 쓰고 내려오는 사람이 보인다.
나를 마중오는 아내다.

 

눈이 쏟아지니 우산을 쓰고 내려온다.
얼굴색이 아주 좋으시다며 놀린다.
기쁜 날이라 한잔했다고 했다.

 

 

 

아내는 우산을 쓰고 내 뒤를 따라오고 난 시원한 눈을 맞으며 간다고 앞장을 섰다.
요즘 계속 야콘즙 작업을 하기 때문에  바빴는데 이렇게 뒷짐을 지고 딸 주현이가 걸어다닌 길을 걷자니 다시 새삼스러워졌다.

 

 

 

내일은 어머님 모시러 가야 하는데 눈이 그쳤으면 좋겠다.
그런데 쉽사리 눈이 그칠 것 같지가 않다.

 

집 처마 밑에서 눈오는 모습을 보며 졸업식장에서 못한 말을 뱉어보았다.
“주현아, 졸업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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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밭으로 출근하고 싶다.
+   [귀농일기]   |  2010. 3. 5. 14:51  

 

2010년 2월

 

산골의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 뿐만 아니라 벌건 대낮에도 모가지를 바짝 오그릴정도로 춥다.
아래, 위 내복을 입는 것은 기본이고 그 위에 작업복 그 위에 오리털 잠바 정도는 걸쳐 줘야 육신을 제대로 펼수가 있다.

 

야콘즙 작업을 할 때는 그 안이 증탕기의 열로 겉옷을 벗고도 작업을 할수 있지만 문 하나만 열고 나오면 안과 밖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러나 이틀만 있으면 입춘이다 보니 봄이 어디쯤 와 있는지 자꾸만 밭쪽을 올려다 보게 된다.


귀농 초에는 눈도 엄청 많이 왔고 날도 더 매섭게 추웠었는데 점점 갈수록 눈도 놀랄 정도로 쏟아지지 않고 매섭던 추위도 조금 위세를 덜떠는데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날씨의 변화로 도 그렇게 꽁꽁 얼지 않은듯 뭔가 꼼지락거리고 올라 올 것만 같아 을 자꾸 들여다 보게 된다.
잃어버린 돈을 찾는 사람처럼..

농부가 자꾸 밭쪽에 관심을 갖게 되면 봄이 멀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두꺼운 얼음이 이불처럼 덮여있지만 그 아래에는 파란 물결이 봄처럼 농부의 마음을 자극한다.

이렇게 봄인듯 콧구멍에 바람을 들이지만 4월에도 자중하라고 산골에는 눈이 온다.


입춘을 떠올리는  때지만 아직도 몇 번의 눈이 산골을 찾아올 것이고, 세찬 추위도 몇차례 드나들 것이다.
날이 조금 풀리면 야콘즙을 짜고 난 찌꺼기를 작년 가을에 아내와 심었던 개복숭아 묘목 주위에 줘야겠다.


그러면 어린 묘목 주위에 풀도 덜나고 그것이 거름이 되어 많은 열매를 열 것이다.

빨리 봄이 되어 밭으로 출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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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귀농했으니 누리는 혜택이다.
+   [귀농일기]   |  2010. 2. 8. 15:50  

 


2010년 1월 2일


아이들이 고등학생이다 보니 방학이 없다.
그나마 이번에는 연말에 며칠 함께 산골에서 보냈는데 애들이 참으로 좋아한다.
산골을 저렇게 좋아하니 귀농을 주동한 사람으로서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다.


선우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아이를 앞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했었다.
고등학교부터는 너희들이 원하는대로 보내겠다.


어려서는 자연에서 무조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산골로 데리고 왔지만 이제 고등학교부터는 너희들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다.


선우가 신중하게 듣더니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신중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며칠 후 우리 가족이 다시 마주 앉았을 때, 선우는 산골에 남기로 했단다.
서울로 가는 것도 싫지는 않단다.


더 넓은 곳에서 많은 아이들과 서로 자신을 비교해 가면서 자신을 다듬어 가는 것도 좋다고...

하지만 그 좋은 것보다 산골을 떠나는 것이 훨씬 싫기 때문에 산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마음을 정했단다.
어린줄로만 알았는데 이 놈 이제 믿어도 되겠구나 그때 생각했다.


그 믿는다는 게 그동안 못믿었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말에 책임도 지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알아서 고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 되도록이면 아들의 말에 힘을 얹어주어야겠다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벌써 새해로 고3이 되었다.


산골을 좋아하는 아이라 산골에서 며칠 온가족이 뒹굴고 놀고 책보고 야콘즙 노가다 하고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단다.


이제 내일이면 두 놈 다 학교 때문에 이 즐거움도 막을 내려야 한다.
아침부터 애들 인상이 시원찮다.


기운이 없고 말수가 우선 없어졌다.
성격이 섬세하지 못한데 귀농하고 점점 성격도 조금씩 변하는지 이제 눈에 그런 현상이 잘 들어온다.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ㅎㅎ


아내도 벌써 말이 별로 없고, 어제  아니 오늘 새벽까지 웃고 떠들고 하던 것은 어디로 가고 모두 기운이 없다.
저녁을 먹고나니 더 심해졌다.



 


“자, 가자.”
어디로 가느냐고 모두 쳐다본다. 정신나간 사람 쳐다보듯이 한다.
어디는 어디야 야간 산행이지.


우선 아내가 말린다. 그 이유는 멧돼지 때문인데 그 말도 일리는 있다.
며칠 전에 옆 동네 사는 사람이 산에 갔다가 멧돼지를 떼로 만나 나무위로 올라가 화를 면할수 있었다고 하는 소리에 겁많은 사람이 더 난리가 났다.


하도 그러기에 임도 입구까지 간다고 하고 나섰다.
주현이는 낮에 벤자민(사냥개)을 데리고 충분히 운동을 했다며 안간다고 쪽 뻗는다.
그럼 선우랑 둘이서 간다고 하니까 아내가 굳이 따라나선다.


분명히 걱정이 돼서 따라나서는 것이 틀림없다.

집에서 한참 내려온 곳에 임도가 있는데 그 입구에 이르니 약속대로 돌아간다.


‘그런게 어딨어. 말이 그렇지 뭐 뜻이 그런감.‘

들은척도 안하고 가니까 뒤에서 아내가 난리가 났다.
멧돼지 나오면 큰일난다며 손전등을 가지러 집에 갔다 온단다.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손전등.


조금 가다가 금방 갈테니 조금만 가자고 아내를 구슬렀는데 겁많은 아내는 금방 남편이랑 아들을 멧돼지 입에 넣을 것만 같은 모양이다.


저런 새가슴으로 어떻게 이 깊은 산중으로 들어와 살수있다고 나를 따라왔는지 고마운 일이다.
아내가 안보인다.


뒤돌아 손전등을 가지러 가는 모양이다.
이제 모퉁이만 돌면 그만 갈테니 빨리 따라오라고...


눈이 조금 온 날이라 길이 미끄러웠기 때문에 업어 준다고 꼬셔도 자꾸 손전등을 가지러 간단다.
선우가 가서 엄마를 데리고 온다.


선우 말이 아빠가 그런다고 안가실 분 아니니까 그냥 맘편히 재밌게 가자고, 아빠는 한번 한다면 하시는 분이니까... 그렇게 설득을 했단다.
아들 말에 넘어간 아내가 선우 옆구리에 끼어 올라온다.


약속한 곳보다 한참 더 오니 이제는 가는 거리가 워낙 멀어 손전등 얘기는 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내가 되돌아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을테지만 멧돼지가 너무 무서운 모양이다.


그 얘기 말고도 동네에서 멧돼지를 보았다고 한 사람들이 여럿 있으니 더 그랬을 것이고 이곳에 처형이랑 운동을 왔을 때도 어김없이 멧돼지를 보았기 때문에 아내의 그 마음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짓도 못한다.


위험을 무릎쓰는 일이야말로 기억에 남고, 추억이 되고, 얻는 것이 크다.
그렇게 생각하니 귀농이 그러네.


또 선우를 데리고 온 데에는 녀석의 기분도 전환시켜줄 마음도 컸지만 죽을 고생을 하거나, 안해본 일을 하게 되면 그만큼 가슴도 크고, 멋진 경험도 쌓인다고 생각한다.

생각같아서는 빙벽등반이라도 함께 가고 싶은데 아쉽지만 야밤에 눈이 쌓인 산길을 굽이굽이 도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것이다.


작년인가 이 길에 눈이 정말 허리까지 왔다.
그때 둘이서 나섰다. 그 긴긴 산을 넘어갔다 오자고.
눈이 너무 와서 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그나마 앞에 선 사람 뒤에 가면 뒷사람은 조금 덜 힘들 정도였기 때문에 우리 둘이 번갈아가면 앞장을 서곤 했었다.


그때 선우는 이 눈속에서 죽는줄 알았다고 했다.
눈은 많아 되돌아갈수도 없고 앞으로 너무 많이 남은 길을 갈수도 없고 게다가 날은 저물어가고 배는 너무 고프고 딱 죽는줄 알았단다.


정말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죽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줄 아느냐고 하면서 우린 목적지까지 다녀왔고 아내는 그때도 추운 밖에 서서 안온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러나 그 추억은 지금도 겨울만 되면 선우가 읊은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야밤에 좋은 경험을 만들자는 것이 아닌가.


 


달빛에 의지하여 어둔 산길을 올라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설악시’를 읊조렸다.
선우가 감탄을 한다.


내 시에 감탄을 하는 것이 아니고 달빛에 감탄을 하며 내게 고맙다고 정말 너무 멋진 경험이라며 가던 길 멈춰 서서 난리다.

달이 산등성이에 숨었다가 우리가 다시 언덕을 올라가면

등 뒤에서 환히 나타나 비춘다나 뭐라나.
책을 많이 읽은 놈이라 자연에 대한 감탄도 대단하다.

선우가 가던 길 서서 아빠 고마워요, 고마워요 소리를 몇 번이고 하니까 아내는 신바람이 난 모양이다.
애가 감격을 하니 멧돼지 생각은 이제 잊은 모양이다.


“선우야, 멋지지? 정말 그렇지?”
난리가 아니다.


그렇게 내가 애초부터 가려고 했던 곳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엔 아내가 신바람이 났다.
자기도 너무 좋다고...


일전에 넘어져서 아픈 발목이 시큰거린다고 하면서도 달빛에 눈이 온 산길을 이 야밤에 다녀온 것이 좋단다.

아들 선우가 그때의 감동을 글로 썼다니 내 글 밑에 붙이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복잡해도 잠깐씩은 일상을 벗어나서 안하던 짓도 하고 자연의 깊은 날개 속으로 들어가 보면 새로운 용기가 생긴다고 나는 확신한다.


초보농사꾼 박찬득


(아래 글은 아들 선우가 쓴 글이다)

<B><< 휘영청 달 밝은 밤에.>></B>


 자연 속에 은거(?)하는 사람들이 숙명적으로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는 ‘좋은 풍경 많이 보겠네?’ 이다.

도시 사람들 입장에서 이 질문의 답변은 대단히, 그리고 당연히 긍정적일 것이리라 생각될 것이다.

매일 개성이 실종된 콘크리트 덩어리만 보는 도시인들에 비하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글쎄, 확실히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알지만 부르주아(‘성 안 사람’, 즉 도시인이라는 뜻이 원형임.)분들의 생각처럼 매순간이 그림 같진 않다.


물론 산골의 자연은 아름답다. 하지만 10년 동안 가슴이 울컥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풍경을 떠올리라면 딱 2가지뿐이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산이 밤새 내린 폭설로 인해 온통 희게 빛나던 어느 겨울 아침 풍경 하나, 검푸른 하늘에 모래알처럼 은은하게 흩어져 있는 별들과 그 별을 옅게 덮어주던 구름이 찬란했던 풍경 하나, 두 가지다.


위와 같은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풍경은 도시인들과 다름없는 닳도록 친숙한 주위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몇 년 만에 다시 한 번 온 몸을 전율케 하는 자연을 다시 한 번 대면했다.


 새해 벽두부터 폭로라니, 슬픈 일이지만 글의 완결성을 위해서는 불가피해 보인다.
우리 아버지는 용기가 넘치신다. ‘많이’ 넘치신다.





해외에 갔을 때, 위험하니 밤에 나가지 말라고 사정하기도 하고 겁도 주는 가이드의 경고는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지키신 적이 없으시다.

그 뿐이면 말도 안한다.


박찬득 아들이 물을 무서워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맥주병 아들을 계곡물에 집어 던지신 건 그 분의 행적 축에도 못 낄 정도다. 주위 사람들(주로 어머니)이 아무리 뜯어말려도 우이독경으로 일관하신다. 덕분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깊은 곳도 주저 없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저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한 일 중 가장 재밌었고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 역시 바로 아버지와 함께한 만용의 모험들이라는 점이다. 아, 물론 예외도 있다.

몇 가지 모험은 지금도 치가 떨린다.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이제 방학이 끝난다고 칙칙한 기운이나 팍팍 풍겨대고 있던 것이 또 다시 아버지의 (젊은 놈보다 넘치는)혈기를 자극한 발단이었다.


밤 9시를 향해 시침이 치닫고 있는 때 갑자기 요 앞의 임도 산책을 다녀오자고 하신다. 하지만 따라나선 어머니가 멧돼지와 마주친다며 극력 아버지를 말리시는 바람에 아버지는 목적지는 ‘임도 입구’로 수정하셨지만, 난 애당초 믿지도 않았다. 아버지 성격에?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아버지는 기어이 어두컴컴한 임도로 나머지 두 사람을 인도(사실은 끌고)가셨다. 물론 어머니와 나는 말도 못하게 불안했다.


옆 동네에서 멧돼지와 마주쳐 죽을 뻔했다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제보되고 있던 때였으니까. 하지만 돌아가자는 어머니의 간청에도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소의 자세로 일관하신다. 나 역시 무섭긴 마찬가지였으나 귀농 훨씬 전부터 말리길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동장군의 입김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할 즈음, 불안함이 조금씩 가시고 대신 내 시선은 반짝이는 눈길위로 내리쬐는 달빛으로 옮겨갔다.


빛을 쫓아 올려본 하늘에는 연기처럼 유연한 구름사이로 새침데기처럼 간혹 모습을 나타내는 보름달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로 잰 듯 시원스럽게 뻗은 나무와 그 뒤로 푸른 비단처럼 펼쳐진 하늘은 겨울 특유의 상쾌함을 표현하는 듯 했다.

달은 장난스러운 아이처럼 검은 나무 뒤로, 부드러운 구름의 치마폭 안으로 숨으며 내게 나름의 환영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정상에서 난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정상에서의 풍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불가능하다.
 
억지로 해봐야 내 감상만 상할 것 역시 명백하니 포기하겠다.
다만 꿈속을 걷는 듯 환상적인 자연에 취해 버렸다는 미약한 감상평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하시길.
 
 3년 전 쯤, 구름 사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성단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이 있다.
‘이런 장관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너무 불공평해.’

 미안한 말이지만, 간혹 듣게 되는 도시에 매여 있기 때문에 자연을 접할 수 없다는 말은 너무 숙명론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시골 사람이라고 매순간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사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위대한 자연을 보기 위해 종종 떠나며 이번처럼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언급했다시피 평생 찬란한 자연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어이없을 정도로 불공평하다.
그리니 늦기 전에 떠나시길. 누가 봐도 무모한 용기라도 좋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 있습니다.!!

 

산골 고딩 박선우


 
 
        

 

귀농일기--며칠 여기에도 올인하려 한다.
+   [귀농일기]   |  2010. 2. 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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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오랫만에 애들이 방학이라 집에 있다.
방학을 해도 보충수업 등으로 학교를 다니다 보니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다.
요즘 제일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 야콘즙 작업이다.

야콘을 다듬고, 일일이 씻어서, 다시 슬라이스를 하고 다시 중탕기에 넣고...
다시 일일이 짜서 포장을 하고 하는 일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애들이 있으면 고등학생이건 아니건 일을 시킨다.
진종일은 아니어도 함께 일하는 시간을 꼭 갖는다.
그건 내 일을 분담하는 의미도 있지만 가족이면 함께 도와야 하는 것이 몸에 배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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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이들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줄로 알다보니 일할 때 지들이 재밌게 할 방법도 생각해 내곤 한다.
그렇게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가족이 함께 보낼 생각을 하게 된다.
무슨 일로 애들에게 새로운 기분을 들게 해줄까...

사실 난 세세한 재주는 없다.
만만한 게 함께 고기도 구워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요즘은 밖에서 그 상을 차리고 있다.
나무를 때는 보일러라 늘 불이 있으니 밖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했다.
애들이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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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다 구워먹고 나니 아쉽단다.
그러나 산골이라 삼겹살을 사서 갈수는 없으니 집에 있는 것을 내놓아보라니 아내가 꼬막밖에 없단다.
꼬막이면 어떤가. 우리 꼬막을 굽기로 했다.
잘 익혀 먹어야 한다며 아내가 말렸으나 우리는 말리면 더하는 성격이라 그대로 석쇠에 구웠다.

아내는 삼겹살 구운데에데 굽는다고 석쇠를 다른 것으로 갈아서 하라고 기다리란다.
다 입으로 들어가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뭐 그걸 가지구...그냥 구워먹었다.
미친단다.

날은 추워도 재미붙여 고기도 굽고, 옛날 이야기도 하고, 장래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하다보면 어느새 친구가 되고 형이 되어 있다.

다른 날, 선우가 슬슬 또 뭘 구워먹잖다.그것두 밖에서.
이 눔이 맛들였다.
너무 춥다며 안에서 구워먹으라고 아내가 판을 펴는데 우리 박씨들은 보일러실 안에다 판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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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이 꼭 다 갖추어야 판이냐, 그냥 김치랑 고기랑 놓고 신문지 깔고 앉으면 장땡 아닌가.
보일러실이 좁다.
셋이서 구워먹고 하는데 아내가 와보고는 먹는 거 바닥에 그냥 두었다구 난리다.

먹는 것을 바닥에 놓고 먹지 머리에 이고 먹나...
다 괜찮다.
사는 거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어떤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머리로 들어앉는 것이 어떤가가 중요하지 않은지.

내가 노래를 부르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주현이의 소감도 들어보고, 노래도 함께 부르고...
이것은 오늘 노동에 대한 댓가이기도 하다.

좁은 보일러실에서 이렇게 있으니 선우가 너무 좋단다.
서로 몸도 부딪치고 하는 것이 귀농하고 처음에 자기들이 어려서 작은 흙방 하나에서 네 식구가 잤었는데 그때 참 좋았단다.
그때 몸을 서로 부딪치며 자고도 옆이 남았었는데 그 방이 지금 있다면 둘이 자기도 벅찰 거란다.

지금 좁은 보일러실에서 이러고 있으니 그때처럼 참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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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있는 동안은 여기에도 올인해야 한다.

잘 자라다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의 귀농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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