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59)
하늘마음농장 소개 (1)
개복숭아효소(발효액) (24)
쇠비름효소(발효액) (23)
산야초효소(발효액) (7)
천연숙성비누 (8)
유기농 야콘, 야콘즙 (12)
산야초, 약초이야기 (5)
산골편지 (132)
귀농일기 (92)
산골아이들의 책이야기 (22)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39)
야콘 이야기 (1)
산골풍경 (74)
산골밥상 (8)
산골  귀농아낙  귀농  배동분  야콘  귀농일기  산골 다락방  농사  초보농사꾼  하늘마음농장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 Today :
+ Yesterday :
  

 

 

 

귀농이야기 _해당되는 글 29건
2017.09.05   대추야자효능 알고 보니.../귀농이야기 
2017.08.27   귀농밥상-야채밥부침이로 한 끼 뚝딱!!/귀농이야기 
2017.06.20   귀농이야기-유정란에 담긴 사랑을 먹는다/귀농 
2017.06.05   귀농이야기-아낌없이 주는 대추나무/귀농 
2010.04.09   귀농안했으면 반성못했을 이야기[2탄] 1
2009.09.19   귀농이야기--EBS FM생방송을 마치고... 
2009.08.13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2
2009.03.18   귀농일기--내가 좋아하는 곳은?? 
2009.03.18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오랫동안 주저앉고 싶다. 

 

대추야자효능 알고 보니.../귀농이야기
+   [산골편지]   |  2017. 9. 5. 08:30  


대추야자효능을 알고 먹으니 더 맛있네요.

귀농하고 알게 된 지인이 여행다녀오면서 두바이에서 대추야자를 사왔네요.

귀농해서 지금껏 우리 하늘마음농장 가족이라면

정을 다 쏟아부어주는 분입니다.


대추야자효능은 세포노화와 산화에 도움을 주고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 등에 좋다고 해요.



대추야자효능이 또 있는데 혈당을 조절해주어

당뇨에 좋네요.

비타민과 무지질도 많아 사막에서

꼭 먹어주어야 하는 필수 먹거리인 모양입니다.


귀농아낙이라서

씨앗을 보면 땅에 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드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석유재벌 만수르가 건강을 위해

꼭 먹어주는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어요.

대추처럼 생겼는데 크기가 대추의 두 배 정도 됩니다.

말린 것이라서 달고 맛있어요.

씨를 보니 가운데가 줄이 그어져 있어요.

우리나라도 점점 더워지고 있으니 심어보고 싶은

충동이 발동하더라구요.

저녁에 글쓸 때 세, 네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합니다.

이제 다 떨어졌는데...ㅠㅠ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귀농밥상-야채밥부침이로 한 끼 뚝딱!!/귀농이야기
+   [산골밥상]   |  2017. 8. 27. 01:41  


바쁜 아이들에게 나물과 야채를 골고루 먹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비빔밥이

유일하게 내 전략이 먹히는 일이었지만

매일 비빔밥만 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야채밥부침이'다.

냉장고에 들어 앉아 계신

모든 재료를 넣는다고 보면 된다.

밥을 식히고 있다.

일단 어묵이 있으니 잘게 썬다.



양파, 감자, 당근도 잘게 잘게 썬다.

이 세 가지야 거의 모든 가정에 상비약처럼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냉장고에 돌아다니는 나물까지 넣는다는 거다.

여기에 계란을 풀어 넣는다.

이런 반찬이 있을까 싶다.

얼핏 보기에는 비빕밥 같지만 아니다. ^^



어차피 내용을 억세게 익힐 필요가 없는 것라서

올리브유로 잠깐 부쳐내기로 했다.


(귀농밥상-야채밥부침이로 한 끼 뚝딱!!!/귀농이야기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팬이 '열받기'를 기다린다.

이 때 사람도 열받으면 안된다는 거...ㅎㅎ


두 입 정도의 크기로 숟가락으로

재료를 떠놓는다.

계란이 노릇노릇하게 익어 색깔을 드러내면

다 된 것이다.


밥도 들어 있고, 나물도 들어있고,

야채도 들어 있으니

달랑 김치 하나만 있으면 끝!!!!

귀농하고 지천이 친환경 나물이니

여간 감사할 일이 아니다.


녀석이 군말없이 게눈감추듯

먹었다. ^^

오늘도 전략 성공!!!


아이들과 두런두런 밥을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제일 소중하다.

그러려고 둘다 사표 내던지고 귀농한 것이니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모습입니다.^^



귀농밥상/야채밥부침이로 한 끼 뚝딱!!!/귀농이야기

하늘마음농장은 <아침마당> <휴먼다큐> <6시 내고향> <금요와이드>

등 35차례 이상 방송에 소개되었어요.


잡지에도 30차례 이상 소개되었구요.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귀농이야기-유정란에 담긴 사랑을 먹는다/귀농
+   [산골편지]   |  2017. 6. 20. 17:53  


귀농해서 알게 된 부부가 있다.

우리보다 선배이신 분들이지만 늘 편하게 대해주셔서 좋아하는 분들이다.


바쁜 농사를 지으면서도 가끔 두 집 부부가 외식을 한다.

시골에서 외식은 특별한 일이지만 우리는 자주 그런 시간을 갖는다.


울진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도, 자식들 이야기 등 편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며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핏줄인듯 마음이 따사로워진다.


이번에 만남을 하고 돌아오면 2차로 그 분댁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계란을 한 판 안겨주신다.

유정란이란다.


닭을 키우는 이유는 유정란을 얻어 자식들이 시골집에 오면 몇 판씩 주기 위함이라 하신다.

자식 사랑이란...


자식들이 가져가고 달랑 한 판 모아놓은 것을 싹쓸어 주신 것이다.

찡하다.


집으로 돌아와 그 마음을 이쁜 사진으로 연출해본다.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올 것만 같다.

삐약삐약하고...

어느 동시처럼 튀어나온 노란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보고 그럴 것 만 같다.


두 분의 사랑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노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낯설고, 물설은 이곳 울진,

학연이고 뭐고 연고 하나 없이 귀농한 이곳 울진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건 이런 분들의 응원과 사랑 덕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초보농사꾼이 좋아하는 계란찜을 해주어야겠다.


(귀농이야기-유정란에 담긴 사랑을 먹는다/귀농)


하늘마음농장 부부는

SBS 뉴스, KBS <아침마당>, MBC <휴먼다큐>,

KBS <세상의아침> <6시 내고향> <행복이 가득한 집> MBC <금요와이드>,

MBC <생방송 화제집중>,<공감! 특별한 세상> MBC<사람과 세상>,

SBS<모닝와이드>, EBS <한국기행> 등

30여 차례 방송에 출연하였습니다.



 

<주부생활> <좋은 생각> 등의 잡지에도 30차례 이상

하늘마음농장이 소개되었습니다.


귀농 아낙은 낮에는 개복숭아효소, 산야초효소, 쇠비름효소와

야콘즙을 만들고 저녁에는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있어요.

지은책으로는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과 <귀거래사>가 있어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이야기-아낌없이 주는 대추나무/귀농
+   [산골편지]   |  2017. 6. 5. 10:09  


귀농이야기-오래된 대추나무, 아낌없이 주는구나./귀농


오래된 것은 오래 묵은 고가구처럼 편안함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씁니다.

이곳 울진으로 귀농하고 보니 이 터에 아주 아주 오래된 대추나무가 몇 그루 있었습니다.


오래된 대추나무는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도 했지만 왠지 연고도 없는 이곳에 온 우리 가족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좋기만 했습니다.

 

처음엔 조금의 대추를 열어 주었지만 날이 갈수록 구실을 못하고 몇 낱 열매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얼마 안되는 대추를 달아도 고마웠고, 아무 구실을 못해도 좋았지요.

 


귀농이야기-오래된 대추나무, 아낌없이 주는구나./귀농


그러던 대추나무가 밭 중간에 버티고 있어서 불편해도 잘 지내더니 어느 날, 귀농 주동자인 초보농사꾼이 달밭 한 가운데에 있는 대추나무를 베어야겠다고 합니다.

여간해서는 굵은 나무를 베지 않는 사람이 대추나무 때문에 농사짓는데 아주 힘들고 위험하다면서...

 

우리집에 다녀가는 사람들 중 몇 명이 저 대추나무 때문에 농사 일하기 힘들텐데 뭐하러 모셔놓고 있냐는 말을 했던 터였습니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말에 팔랑귀인 초보농사꾼도 어느새 세뇌가 된듯합니다.


내가 봐도 농기계를 돌리고, 비닐을 깔 때에도 어사중간에 이 커다란 대추나무가 있으니 여간 힘들고 위험한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산골 지킴이처럼 서있는 대추나무를 농사를 조금 덜지어도 베지 말라고 했지만 농기계를 쓰는 초보농사꾼으로서는 다른 농부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겠지요.

그 후로 몇 번의 베라는 충고를 하는 농부들이 있었습니다.

참나....


 

어느 날, 초보농사꾼이 대추나무를 베어냅니다.

오래된 나무를 베는 일이 초보농사꾼도 마음에 걸렸는지 며칠 고민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때가 2004년 4월의 일입니다.


 

그렇게 나무가 베어지고 나무를 정리하여 차로 실어내오며 초보농사꾼이 말합니다.

“나도 나무를 베지 않으려고 몇 년 버티었는데 나무 때문에 경운기며, 트렉터며, 관리기 일을 하는데 대추나무를 피하느라 위험했었어. 꼭 저 땅에 농사를 지으려고 한 것은 아니야. ”라며 자신도 많이 아쉽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위험하다는데 하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귀농이야기-오래된 대추나무, 아낌없이 주는구나./귀농


그러나 자신도 베어내고 많이 마음이 쓰였는데 밭에 있는 또 하나의 대추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오늘날까지 쨍쨍하게 버티고 서 있습니다.

조금씩 열매를 달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열매를 걷우기만 했지 거름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밭 중간에 턱하고 버티고 서 있는 , 이 정도로 오래된 대추나무에 거름을 주는 사람이 없겠지만 한 해는 거름 한 포씩이나 퍼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에 많은 열매를 매달아주었습니다.

나 잘 살고 있다는 신호같았습니다.

나도 대추나무와 소통을 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찡했습니다.

 

올해 4월이 되었습니다.

초보농사꾼이 달밭에서 일을 합니다.

거름을 펴고, 땅을 트렉터로 콩고물처럼 갈아놓습니다.

워낙 썩은 중고 트렉터를 산 것이지만 느릿느릿 그래서 제 할 일을 합니다.

 

그렇게 콩고물처럼 땅을 만들었으니 오늘은 골을 타고 비닐을 펴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제 관리기라는 기계가 합니다.

 

밭 중간에 있는 대추나루를 피하기 위해 관리기질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 밭은 경사진 밭이라 평지밭보다 몇 배나 힘이 듭니다.


나도 조금이라도 일을 돕기 위해 참을 들고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땀흘려 일하다 쉴겸 참을 먹기 위해 대추나무 아래로 갑니다.

대추나무가 어여 와 쉬라며 손짓을 연신 해댑니다.

나무 아래 앉으니 자신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딱 우리 부부의 덩치만큼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괜시리 찡해집니다.

 



늙은 대추나무 그늘 아래서 참을 먹으며 한동안 쉽니다.

이 나이든 대추나무가 난 참으로 든든합니다.

이 나무를 보면 용맹정진하는 스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나무에 등을 기대고 쉬고 있으면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하늘의 구름이 어찌나 푸른 바탕에 뭉글뭉글 이쁜지 가을인 듯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늘 아래 스카이 쇼도 보면서 쉬는 시간이란...

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의 휴식시간이 이처럼 풍요로울까요.


몸은 땀으로 젖었지만 봄꽃까지 피곤을 풀어줍니다.

주위가 핑크빛으로 눈부십니다.

이런 풍경 앞에서 난 꼬꾸라질 것 같습니다.


초보농사꾼이 대추나무 아래 몸을 쉬고 있습니다.

아직 이파리는 달지 못한 시기이기에 자신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는 대추나무입니다. 


자연이 귀농 부부에게 베푸는 것이 이토록 많습니다.

이 보다 좋을 순 없습니다.

 


대추나무 그늘 아래 쉬웠으니 이제 또 일을 합니다.

그러다 또 덥고 힘이 들면 귀농 부부는 다시 대추나무 품으로 찾아듭니다.

그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바람을 불러줍니다.


갑자기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났습니다.

귀농 초에 베어버린 대추나무도 떠올라 애잔해져 옵니다.


 

순간순간이 감동인 삶입니다.

귀농하기를 잘 했다고 또 옹알이 하는 날입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이야기-오래된 대추나무, 아낌없이 주는구나./귀농


 
 
        

 

귀농안했으면 반성못했을 이야기[2탄]
+   [귀농일기]   |  2010. 4. 9. 09:16  

 

제목이 ‘귀농을 안했으면 지금도 반성을 못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병아리를 키우면서 아내가 하도 놀려 생각해본 제목이었다.

그러니까 작년 10월에 1탄을 쓰고 2탄을 이제야 쓰니 2년 걸린 셈이다.


자세한 지난 이야기는 <귀농일기>435번 ‘귀농을 안했으면 지금도 반성을 못했을 것이다’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병아리 두 마리를 집에서 키우게 되면서 주현이가 제일 바빠졌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다 보니 그 관심은 놀랄만하다.
병아리들을 바라보는 모습도 진지하고 따뜻하여 나도 닥아가 들여다 보게 만든다.





바깥 세상 적응훈련을 시킨다며 마당으로 데리고 나온 주현이는 갑자기 코스모스 향기를 맡아보라며 병아리의 코를 코스모스 가까이에 들이댄다.
아이들의 생각은 정말 놀랍니다.
기발하고, 세심하면서도, 따듯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저런 아이들을 기계식으로 학원으로 전전하게 하고, 콘트리트 벽에만 가두어 공부만 시키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참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나날이 그 건조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게 병아리들을 꽃밭에서 놀게 하더니 이번에는 그 꼬맹이들의 집 평수를 두 배로 늘려주어야 한다며 박스를 찾는다.
딸아이의 그런 호기심과 애정을 지켜보던 아내가 바로 박스를 구해다 준다.




어쩌나 하고 보니 박스 하나의 벽을 트더니 다른 박스 하나를 테이프로 붙여주고 있다.
완성된 것을 보니 근사한 넓은 평수의 병아리 집이 되었다.
그제서야 병아리들이 운동도 하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며 좋아한다.


2009년 10월 14일


오늘은 주현이가 밤에 손전등을 찾는다.
이 밤에 어디를 가느냐고 하니 병아리들을 이제는 이유식을 시켜야한단다.
이유식이라...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가지고 이유식을 어떻게 시킨다는 건지 지켜볼 수밖에...





밭으로 가서 한참만에 나타난 주현이 손에 정말 병아리의 웰빙식사재료가 들려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쑥도 보이고, 씀바귀인지의 잎도 보인다.
유기농하는 에서 뜯어왔으니 병아리 이유식도 유기농 식단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이유식은 없을 것이란다.
이번 병아리 때문에 놀란 것은 주현이의 동물사랑의 정도이다.





아이는 따뜻하게 동물을 대하고 있고 사랑하는 흔적이 행동으로 나타난다며 아내도 주현이의 행동이 대견한 모양이다.
밭에서 뜯어온 것들을 가위로 잘게 썰어 넣어주는 아이





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지나 병아리 두 마리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나중에 또 들여다 보니 작은 부리로 쪼아먹기 시작한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아니면 쪼기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열심히 쪼기는 한다.





만약 목구멍으로 못넘긴다면 언젠가는 넘길 것이고, 동물들은 바로 먹이넘기는 것을 잘 하니까 이제는 주현이 말대로 제대로 이유식이 될 것이다.


2009년 10월 20일


점점 병아리 소리도 커지고 손님들이 와서 병아리를 만지자 주현이가 날로날로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지엄마를 보면 제발 손님들이 병아리를 못만지게 해달라고 당부를 하고 안타까워 하기 시작했다.




또 언제까지 집안에 둘수는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병아리집을 보일러실로 옮기기로 가족간에 합의를 보았다.
보일러실에 두니 나무를 때기 위해 가서는 운동도 시키고 더 좋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시키기 위해 밖에 내다 놓고 노는 것을 들여다 보니 아무래도 한 녀석의 다리가 문제가 있다.
걷는 것도 뒤뚱거리고 하여 집어 들여다 보았다.
한쪽 다리가 부어올랐다.
그래서 그렇게 발이 자유롭지 못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항생제도 안맞고 그저 태어나자마자 자연에서 먹이만 먹고 자랐으니 이런 일이 있는가보다.
주현이도 자꾸 병아리가 다리를 전다며 걱정이 많다.




어쩌랴.
지켜보는 수 밖에. 운동을 많이 시키면서...


2009년 10월 29일


가을이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야콘밭을 오가며 들녘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난 섬세하지 못하지만 가을은 그 깊이가 있다.
신부님 집도 가을 풍경속에 잠기어 들고...(가을이라 그런지 이런 말도 구사되고 용됐다.)





그러는 동안에 신부님집 바로 옆에 집을 마련한 닭장에 새로운 식구들이 또 합류를 했다.
한쪽 집만 사용하던 것을 중간에 구멍을 내고 두 집을 다 사용하기로 했다.
두 칸을 오가며 잘 먹고 잘 싸고 있는 닭들.


다시 병아리들의 발육상태를 체크해 보기로 했다.
한 놈은 비록 보일러실에서 컸지만 잘 커주고 있는데 시원찮았던 녀석은 기형의 다리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마음이 편치가 않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얼마나 고통중에 있을지...
이제는 보일러실에 먹이랑 물을 주러 가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주현이도 자꾸 시원잖은 놈에게 관심이 더 가는 모양이다.


별다른 방법이 없는 날을 보내다 결국은 한 놈이 삶을 등지고 말았다.
작은 구덩이를 파고 흙을 덮어주었다.


그동안 산골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을 주고 간 녀석이다.
이래서 동물키우는 일은 좋은 것만이 아니다.

한 녀석이 산골을 떠나고 나니 나머지 한 녀석이 안스러워 보인다.


둘이 박스속에서 빠약거리며 잘 지냈는데 이제 혼자 살아가고 있는 한 놈 아리가 더 안스러워 보인다.
주현이가 이름을 아리라고 지어주었는데 지엄마가 왜 이름이 아리라고 하니 병아리의 아리란다.


이제 아리도 웬만큼 컸다며 주현이랑 아내가 아리를 이제 다른 닭들이 있는 닭장으로 넣어주는 좋겠다고 결정하고는 주현이를 시켜 닭장으로 보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닭장에 넣어주자마자, 다른 닭들, 특히 제일 큰 숫컷이 이 어린 아리를 잡아먹을 듯 하도 쪼아붙이고 하는통에 앗 뜨거워라 하면서 다시 데리고 내려왔단다.





그 말을 듣고 내 경험도 얘기해 주었다.
주현이보다 먼저  닭을 데리고 갔었다. 닭장에 넣어주러.
그런데 그 놈의 숫놈이 어찌나 아리를 쪼아죽이려고 달려드는지 금방이라도 죽일 것만 같아서 나 역시 주현이처럼 부리나케 데리고 내려왔었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집단으로 쪼임을 당해서 아리가 정신줄을 놓은 것같단다.

다시 아리는 보이러실 박스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2010년 2월 5일


새해가 되었다.
벌써 두 살이 되는셈인가 보다.
보일러실에서 무럭무럭 큰 아리.




이제는 제법 어른티가 난다.
보일러실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 운동도 하고 물 한 모금 먹고 하늘을 보고 할짓은 다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녀석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늘 있었다.


이제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워낙 수탉이 죽인다고 달려들어 어쩔수가 없다.


아내도 이제는 포기했는지 급한 일도 재껴놓고 보일러실을 치우기 시작한다.
벌써 치운다고 하더니 이래저래 급한 일이 생기니 마음만 썼었단다. 이제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보일러실의 아리집 근처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잘 때는 횟대가 없으니 통나무 횟대 역할을 하라고 커다란 통나무 한토막을 굴려서 횃대처럼 해주었다며 보여준다.





아리는 이제 제집처럼 보일러실 통나무 위에 앉아서 잠을 청하고 자라고 있다.
밖에 나가 운동도 하고 먹이도 쪼아 먹으며 제 잘 곳이 어딘지 이제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아내 말이 위의 닭장에서 닭울음소리가 나니까 그 소리를 듣고는 저도 작음 소리로 화답을 하더란다.


2010년 2월 26일


오늘 저녁을 먹으며 아내가 말한다.
이제 위의 동료들이 있는 닭장으로 가기는 틀렸고, 보일러실에 닭장에 있는 암탉을 한 마리 데려다 아리의 벗이 되게 해주어야겠단다.
횃대도 만들어주고...


그런데 그 암탉이 도망가지 않고 보일러실을 제집으로 잘 알는지...
그게 숙제다.

아내 말대로 육아일기를 이렇게 한번이라도 썼었으면 아마 아내가 상장과 금일봉을 내렸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이야기--EBS FM생방송을 마치고...
+   [산골편지]   |  2009. 9. 19. 10:2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에 EBS FM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쓴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이라는 책을 읽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래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고2이고 중3인데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방송을 하러 서울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나만 나와 달라는 거다.
곤란했다.


서울까지 가려면 하루가 아니고 이틀을 잡아야 한다.

산골을 뜨기 전에 할 일들이며 아침 10시 생방송이면 넉넉히 나가야 하므로 하루 전에 서울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교육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라 단호하게 거절을 못했다.


산골로 귀농하고 제일 큰 주목거리가 아이들 교육이었고, 이제 아이들이 산골에서 잘 성장한 지금 할 말은 적지 않았다.

일단 교육이야기라는 것에 승낙을 하고 드디어 어제 정확히 새벽 5시에 산골을 나섰다.


그리니까 그 전날 새벽 2시에 잤고 깨어난 시간이 4시이니 딱 두 시간 잤다.

초보농사꾼과 함께 새벽에 집을 나서는 기분이 조금 낯설었다.


내가 서울을 오가거나 해외로 여행을 가더라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서기는 처음이지 싶다.

열심히 달린 탓일까 조금 여유가 있어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양재동 EBS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초보농사꾼은 교육은 신종플루로 취소되었지만 약간의 볼거리가 있다며 안산으로 갔다.


TV촬영은 거의 스무 번에 가깝고 라디오도 세 번인가 나갔지만 한 번은 작가와 PD가 산골로 와서 인터뷰를 해갔고, 한번은 전화인터뷰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방송에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귀농이야기, 아이들 교육이야기를 했다.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라 떨릴 일도 없고, 긴장할 일도 없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그저 ‘살아온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산골살이 이야기, 귀농이야기 그리고 산골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기회가 되는대로 풀어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귀농10년차.


그 정도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삶을 이제 결정하려는 이들을 위해, 그런 교육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위해 조금의 참고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이제 다시 산골로 내려가면 내 위치를 더더욱 잘 확인한 후 나의 길을 가려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   [산골편지]   |  2009. 8. 13. 14:00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둘째인 딸 아이를 키워주시던 친정 엄마가 몸이 안좋아져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게 되었었다.
남에게 맡겨 보려고 사람도 구해보았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서 그만 울고 나왔다.


어떻게 남에게 이 어린 아이를 맡긴단 말인가.
그 생각으로 그 집을 나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절대로 남에게 이 어린 것을 맡길 수는 없어...'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 선우는 언니가 봐주다 시어머님이 봐주시지만 주현이까지는 어머님께 너무 어려운 일이고 ...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한 시간이었다.


그 결정은 나만이 할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 두는 일이야말로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남편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전공살려 일하는 직장을 그만 두라고 하지도, 그렇다고 남에게 아이를 맡기라고도 하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남편의 조언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결정은 내 몫이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못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 판...
그러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전공도 살릴 수 있었고, 직장 분위기도 좋았기 때문에 그 결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온 가족이 말렸다.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데 이제 왜 사표를 내느냐고 다 뜯어말렸다.
친정 아버지는 그렇게 대학원까지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냈더니 사표를 내느냐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결국 사표를 냈다.
얼마나 울었는지....


함께 근무했던 언니들도 의외의 반응이었다. 나의 사표에 대해...

그러나 내 생각으로 그것이 최선이었다.


꿈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던 시기에 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내가 올라가야 할 계단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사표를 낸 시기가 1995년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그만 둔 직장을 이번에 서울 갔을 때 들렸었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도 집에서 회사 일의 일부를 했었기 때문에 광화문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에 갈 일은 많았었다.

직장 그만두고 처음 한국생산성본부에 갔을 때, 그 현관에서 울었었다.
가슴이 뭉클뭉클하고...



그렇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남은 삶은 내 의지대로 산다며 오지 산골로 귀농하고는 한번도 못갔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뻔질나게 갔었으면서도 거기까지 들릴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TV '30분 다큐'를 보고 선배 언니가 얼굴 좀 보고 살자며 전화를 한 김에 일을 보다말고 광화문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은 벌써 머리끄댕이를 다 끄들려 놓은 것처럼 어수선했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경복궁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안국역에서 내려 한국생산성본부를 찾았으니...
다시 전철을 타고 내리니 선배 언니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하고 입사하여 결혼하고, 둘째 낳고 나서까지 다녔던 한국생산성본부.
그 현관을 보니 다시금 눈가가 촉촉해지고...

지하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언니들이 사준 커피랑 빵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귀농이야기를 하고, 직장이야기도 듣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다음은 빌딩으로 올라가 전에 국제부 시절, 같이 근무했던 상사분도 만나 보았고, 교육훈련사업본부에 근무했을 때의 동료도 만나 보았다.
거의 대부분은 많이 사퇴를 하여  얼굴을 몰랐지만 같이 근무했던 분들을 보았을 때는 온몸이 전기가 오는듯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추억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마지막 회식을 하고 왔을 때, 우는 나를 위로하며 남편이 말했다.
누구든, 어떤 위치에서든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은 거라고...
난 그 말을 흘려들었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그때 그만두길 잘했다고...


엄마 노릇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좋은 결정이었다고....

그렇게 그만 두고 나서 한번도 직장그만 둔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다만, 아쉬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산골로 귀농하여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은 지금 세상을 다 끌어안으듯 뿌듯하다.

자세한 내용은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내가 좋아하는 곳은??
+   [귀농일기]   |  2009. 3. 18. 20:52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1월 20일

난 오지를 좋아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좋아하듯 땅도 누구도 크게 손상시키지 않은 곳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나의 이런 성향을 알고 어디가 참 오지더라, 어디가 정말 끝내주더라 하는 말을 들으면 간단한 약도만으로도 우린 바로 확인사살에 돌입한다.

한번은 산골아낙에게도 말도 안하고 나섰다가 어두워지고 밤이 되어 집에 오니 난리가 났었던적도 있었다.
실종신고를 한다고 동네 형에게 말하고 난리였다.
처음 가려고 한 것이 아니고 볼일 보러 나갔다가 그 생각이 탁 나면 바로 돌진...
핸드폰이 안터진는 곳이니 연락할 방법도 없고 금방 갔다오면 되지 하고 나섰다가 그렇게 된 적도 몇번 있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과 살아서 알아서 감잡으면 좋겠는데 꼭 걱정을 하고 별별 상상을 다하고 기진맥진해 있곤 한다.
이젠 나이도 먹고 했으니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 오지가 부르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 근성은 못고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이 오셨기에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새점 밭을 구경시켜 드렸다.
새점밭은 바로 불영계곡과 접해 있어서 풍광이 좋다.
신부님과는 통하는 것이 많아서 말씀드렸더니 가보자고 하신다.

아내랑 새점밭으로 가서 밭을 보고 우린 불영계곡을 걸었다.
신부님도 풍광이 좋다고 하신다.

불영계곡의 물소리가 힘차다.
불영계곡은 겨울에도 을씨년스럽지 않다.
겨울에도 늠름하면서 멋지다.

새점밭 바로 옆이 이 사진의 모습이다.

신부님과 계곡을 걸으며 이런 저런 오지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었더니 계곡도 쩌렁쩌렁 울리는듯했다.
사람과 사람
계곡물과 사람
모두 한데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초보농사꾼 박찬득(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오랫동안 주저앉고 싶다.
+   [산골편지]   |  2009. 3. 18. 20:44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3월 8일

지난 24일에 서울에서 엄마와 네째 언니가 왔었다.
언니가 대상포진이라는 피부병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소식을 그 전에 접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다고 했다.
대상포진이 생기기 전에는 얼굴과 목에 열이 나고 그곳에 버즘, 화상입은 사람처럼 붉게 얼룩이 져 자주 애들 먹었었다.

그렇게 열이 나면 며칠을 잠을 못잤다.
사람이 피곤해도 잠을 잘 자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첫째 조건이 되는데 그 조건은 우선 팔자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두 가지 증상이 한꺼번에 왔고, 언니는 며칠을 날밤으로 새워야 했다.
조카는 엄마 병간호를 그렇게 지성으로 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가 조카들을 이뻐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시켜 보면 더더욱 지엄마에게 잘 하는 조카를 업어주고 싶을 지경인 것은 사실이다.

일단 대상포진은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그렇게 독하다는 약을 먹고 우선 잠재울 수 있었다.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열과 얼굴에 얼룩이 지고 가렵고 하는 것이었다.
이 증상은 내가 서울을 다니며 잘 봐왔기때문에 그 고통이 어떻다는 것도 잘 안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제안을 했다.
무조건 울진으로 오라고...
산골에 와서 솔숲에도 가고, 나무에게 말도 걸고, 맨발로 솔숲 걷기를 하고, 맑디 맑은 물을 먹고 , 맑은 공기를 마시자고 그러자고...

그러니까 자연에게 언니를 맡기고 싶었다.
누가 언니의 상태를 보고 이 말을 들으면 정신나간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며칠 내려와 있는다고 낫진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난 돌파리 기질이 있는지 몰라도 확신이 있었다.

당연히 언니는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잘은 몰라도 언니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막내가 농사일로 바쁜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또 성당 일도 보고 있는데...
아들 세무도 돌봐주어야 하고,,,,
마침 엄마도 네째 언니네에 머물고 계시고...

언니 발목을 잡는 일들 투성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뜸을 오래 들였다.

이번에는 조카들과 내가 동시 공작을 폈다.
겁도 주고, 윽박도 지르고 해서 겨우 산골로 오게 되었다.

산골에 온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아니다,  서서히 내성이 생길 것이고, 그동안 독한 약을 많이 먹은 언니 몸의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시켜 주고, 소나무, 하늘, 물, 공기 등 자연은 인간보다 더 현명하게 언니를 치료할 것으로 난 믿었다.

일단 눈을 뜨면 운동을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우리 소나무 산을 돌았고, 나중에는 초보농사꾼이 까밧골이라는 임도를 처형과 가면 좋을 것같다고 제안하여 셋이서 4시간 거리를 맨발로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통고산 정상까지 맨발로 산행을 했다.
저녁에는 우리 산의 질좋은 황토로 문제의 부위인 얼굴, 목을 마사지했다.
그러다 여리디 여린 솔잎을 따서 야콘을 넣고 믹서기에 간 다음 얼굴과 목에 붙이기도 했다.
그 황토를 숨쉬는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지장수로 매일 환부를 씻도록 했다.

그것이 더 병을 악화시키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처음 그렇게 했을 때 역반응이 나올 수는 있지만 자연의 것을 계속 접하다 보면 그것이 서서히 제 기능을 잘 하리라 믿었다.
자연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난 확신했으니까.
돌파리가 사람잡는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니는 주방을 떠나질 않았다.
산골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어 진종일 도마 소리를 냈고, 저녁에 우리 부부가 야콘을 씻고 다듬고 하여 야콘즙을 만들면 동행하여 함께 일을 했다.
그게 화가 났지만 언니로서 그럴 수 있겠구나 했다.
말려도 안되어 나중에는 늦은 밤이나 이른 시간에 언니 몰래 일을 하곤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8609.jpg">
(지장수로 얼굴과 목을 닦았던 그 흔적이 나를 지금 마음아프게 한다)

일하면서 언니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스스로 죽비를 두드리는듯했다.
"막내야, 이렇게 고생하는줄 , 이렇게 바빠 동동 걸음을 걷고 뛰어다니고 하는줄, 이 정도인줄 몰랐구나."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앞으로 꿈도 있고 하는데 뭘 그러냐고 해도 핏줄로서의 아리함을 언니는 감추려 해도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중에 눈이 왔다.
겨우내 그렇게 비치지도 않던 눈이 왔다.
언니는 산골에서 눈도 보고 좋아했지만 운동때문에 내 맘은 급하기만 했다.
눈이 왔는데도 임도의 소나무 숲길을 가자고 했다.

집에만 있어도 좋다며 언니는 동생 생각하여 안간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씨도 안먹히는 얘기였다.

그러다 비도 왔고 날은 추웠다.
그렇게 비도 안오더니 왜 이 귀한 기간에는 비도 오는지....
그런 날이라고 예외는 없다.
비가 오는데도 운동을 가자고 했고 언니는 눈때와 마찬가지로 데크에서 운동을 해도 되니 쉬라고 했다.
물론 내가 힘들까봐 언니는 안간다고, 다녀왔다고도 했다.
내가 다 알지 그거 모르까봐.

우산쓰고 내가 먼저 나섰다.
알아서 하라고...
결국 내 등살에 언니도 우산을 쓰고 우린 그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내가 대상포진이나 얼굴에 열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이번 상태만큼은 보진 못했기때문에 산골에서 좋아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언니는 약을 병원에서 받아 왔고 먹어야 하는데 산골에 와서는 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단다.
이 약을 끊어서 치료중인 것을 내성만 생기게 하고 재발 가능성만 높이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왜 안그렇겠는지...
속으로 걱정이 얼마나 되었을까...
난 그것도 모르고 매일 아침 언니 약먹었냐고 챙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언니도 점점 자연에 치료를 맡기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도 지팡이를 집고 아기처럼 아장아장 간신히 걸으셨는데 한 사흘 자갈 깔린 앞마당을 걸으시더니 지팡이 없이도 걸음을 걸으실 수 있게 되었다.
소화도 시원찮아 위로 가스가 올라왔었는데 아래로 나온다며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8610.jpg">
(훌라후프도 공기좋은 곳에서 한다며 ... 그랬었는데...)

언니는 서울로 올라가려고 기회를 보는듯했다.
내가 쐐기를 박았다.
이렇게 일찍 올라가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알아서 하라고...

언니의 문제는 우선 잠을 충분히 못잔다는 거다.
그래도 이곳의 공기가 너무 좋다며 창문을 열고, 데크에 나가 훌라후프도 돌리고 눈부신 햇살도 쐬고 기분 좋아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일찍 자야 하는데 책을 오랫동안 보았고, 기도도 오랫동안 하고 있는 것을 내가 문틈으로 확인할 때는 마음이 미어졌다.

서울의 아파트 침대에서 자다가 이렇게 바닥이 따뜻한 곳에 자니 참 좋다며 맨바닥에 누워 있기를 좋아했다.

드디어 서울가는 날을 스스로 정했고, 큰조카 세종이가 엄마랑 할머니를 모시러 온다고 했다.
엄마는 이곳에 더 계시게 하자고 초보농사꾼이 아무리 말해도 언니는 이 바쁜 사람들이 무슨 ... 말이라도 고맙다고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알았다며 고마운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나 안된다고 했다.

다음에 내려오면 그때 엄마를 며칠 계시게 하는 것은 몰라도 말도 꺼내지 말라고 일축했다.

세종이랑 새조카 며느리가 어제 왔다.
와서는 점심 먹자마자 이모부랑 밭으로 가서 작년에 썼던 말목을 차에 다 싣고, 고추밭에 깔았던 그 많은 부직포도 정리하고 싣고 답운재 밭으로 가서 내리고는 다시 땔감을 잘라서 한 차 싣고 왔다.

일단 저녁을 먹고 다시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야콘을 선별하고, 다듬과 세척하는 일이다. 야콘즙을 만들기 위해...

난 새조카 며느리가 시이모집에 처음 왔는데 이 일을 시키면 안된다고 했고 초보농사꾼은 이제 가족이기때문에 무엇이든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더 친해질 수 있고 좋은 거지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하면 그게 남이지 내 식구이냐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계속 남으로 남아야 하지 내 집 사람과 섞이기 어렵다며 단호하다.

난 그의 마음을 잘 안다.

초보농사꾼은 처형과도 농담을 잘하며 재밌게 지냈다.
이런 저런 자녀 교육에 관해 언니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에 귀기울이고 실행에 바로 옮기곤 했다.
당연히 조카들도 자기 조카처럼, 처형들도 누나처럼 그렇게 대하기때문에 조카 며느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난 씨도 안먹히는 얘기만 했고 결국은 가장의 말대로 모두 달라들어 밤 10시부터 야콘 작업을 했다.

야콘 작업이 끝나고 야참을 먹으며 산골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드디어 내 핏줄이 가겠다고 한 날이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은 것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봄날씨처럼 따사로운 날이 못마땅해보기는 귀농생활 10년만에 첨이다.

울 언니랑 엄마계실 때, 주구장창 이런 날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니가 깰까봐 살금살금 나와 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 송이산 한켠으로 달려가 질좋고, 때깔좋은 황토를 봉투 가득 퍼담았다.
그리고 다시 집 바로 뒤켠으로 올라가 아주 어린 소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니를 씻기려고 지장수를 만들었는데 다 쓰지도 못하고 갔다)


언니가 서울가서 이 소나무 숲에서 맡았던 냄새를 소나무 화분에서나마 맡으면 그 놈의 피부병에 쬐끔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다.
그리고 소나무를 캔 주위의 좋은 흙도 퍼담아 묶었다.

그리고 어린 소나무 가지를 가지치기 하여 신문지에 싸고 그것이 행여 가다가 마를까봐 비닐을 꼭꼭 쌌다.
서울 거실에서 펴놓고 소나무에서 나오는 좋은 성분을 쥐똥만큼이라도 얻으라고...

아침 먹고 성당가야 할 시간이 닥아올수록 내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이제 되었다.
이렇게 준비하고도 혹여 언니가 잊고 갈까봐 데크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 준비물을 죽 늘어 놓았다.
전리품처럼...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아침 준비를 하는언니를 호수밭으로 내몰았다.
공기가 너무 좋으니 오늘 호수밭이라도 올라갔다 와서 서울가라고...

언니가 아무 말없이 밭으로 올라간다.
난 아침 준비를 하러 들어가야 하나 언니의 모습이 분필만하게 보일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눈치도 없이 뭉클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동생네 집이라고 왔는데 야콘즙 일로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니 언니 맘을 아프게 했을 것이 또 아리했다.

미사를 다녀와 다시 산골에서 짐을 싸는 가족들...
내 핏줄들이 이제 가겠다고 짐을 싼다.
내가 거들어야 하지만 난 점심 먹은 설거지만 하고 있었다.

가슴팍이 뻐근한 것을 짓누르며 애궂은 그릇만 빡빡 문질러댔다.
엄마도 오늘 떠나는 것을 아시고 어제부터 안색이 안좋으셨다.
막내 딸...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라 엄마는 혹여 딸이 알아차릴까 표정을 몇 번이고 바꾸시려 애쓰셨다.

그렇게 오래 설거지를 해도 내가 거들어야 했다.
이제 핏줄들의 짐정리를 거든다.

"막내랑 아제 덕분에 너무 편하게 있다가 건강해져서 간다. 바쁜데 처형데리고 솔숲도 가고, 몸에 좋은 것도 잡아주고, 눈도 보고, 비도 보고 호강하다 간다..............."

그런 말 좀 안했으면 좋으련만 언니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 했다.
난 눈에 힘을 바짝 주었다.
새 조카며느리 앞이라 더더욱 애를 썼지만 주문빨이 잘 안먹혔다.

조카의 차는 서서히 떠났다.
조카도 발걸음이 무거운지 뭔가를 빠뜨리고 가는 사람처럼 느리게 느리게 , 차창으로 손을 내 흔들며 차는 그렇게 미끄러졌다.

난 그의 차를 따라갔다.
나도 조카를 흉내내어 천천히...
다리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까지 그렇게 걸었다.

드디어
다물었던 입이 터지며 울었다.
다리결은 휑했다.
핏줄의 그림자도 안남기도 휑했다.

한숨 자고 싶었지만 잘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 시원찮은 다리로 운동하다가 쉬는 의자를 보면 다시 왈칵거렸고,
언니를 지장수로 씻긴다고 마련한 지장수 항아리를 보고도 그랬다.
집에 들어오니 온천지에 엄마랑 언니의 흔적이 널려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엄마가 시원찮은 발로 운동하다 쉬던 의자)

운동하다 벗어놓은 옷이며, 잠이 안와 책을 보던 스텐드며, 공기좋은 곳에서 훌라후프하라고 내다 준 것이며, 언니가 만들어 주고 간 음식들이며,,,,
난 정신나간 사람처럼 그것들을 내 눈에서 치웠다.

핏줄들의 흔적을 치우지 않으면 난 내 정신으로 오늘을 날 수가 없다는 것을 귀농하고 터득했다.

이럴 때 무슨 단어를 떠올릴까...
헤어짐", 슬픔?, 그리움?...

그보다는
삶의 모습에서 흔적이란 무엇인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난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딸 주현이가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난 다시 마음이 추스려야 한다.
언니가 바쁜 아제를 위해 잎차를 끓여주던 곳에 언니를 흉내내어 잎차를 준비한다.

초보농사꾼은 내 마음을 먼저 알고 야콘즙 포장하러 벌써 가공실로 내려가고 없다.
주현이랑 마주앉아 차를 마셨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아리함을 잎차로 눌러본다.

내가 오늘 곧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지 난 자신이 없다.
옛날 같았으면 약발이 받았는데 점점 연해지는 약발에 자신감을 잃는다.
이런 상태는 오래 갈 것같다.

"삶의 모습에서 흔적이란 무엇인가??"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이전 | 1 | 2 | 3 | 다음>>

하늘마음농장'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