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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무 신부님 _해당되는 글 9건
2011.04.05   귀농편지, 그럴 자격있습니다. 1
2010.06.24   귀농일기, 농사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는 분 
2010.01.01   귀농일기--올해 한가지 소망은 풀었다 
2009.10.28   어느 귀농자의 어떤 여유 1
2009.10.25   귀농일기--야콘도 캐야 하는데... 
2009.10.16   귀농일기--인터넷으로 병아리 키우기[1탄] 1
2009.07.12   귀농풍경--"엄마, 아빠 점심드세요!!" 
2009.03.18   귀농일기--내가 좋아하는 곳은?? 
2009.01.02   귀농아낙의 산골일기-- 앗, 한발 또 늦었다 

 

귀농편지, 그럴 자격있습니다.
+   [산골편지]   |  2011. 4. 5. 14:56  

2010년 6월

 

네덜란드 화가 반 고흐는 그의 누이에게 이렇게 설명했다지요.

 

“밤은 낮보다 색깔이 훨씬 더 풍부해...잘보면 어떤 별들은 레몬빛 노란색이고, 어떤 별들은 분홍색, 또는 녹색, 파란색, 물망초색으로 빛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라고...

 

이 글을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에서 읽었을 때, 바로 그 말에 테클을 걸었지요.
‘아무리 예술가라지만 상상력이 풍부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라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은 후로는 그의 상상력이 오바되었다는 것을 확인사살하기 위해서 밤만 되면 마당에 서서 관찰했지요.


그리고는 역시 그건 화가의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그런 단정이 우스워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별들을 여러 날 자세히 올려다 보니 별의 별 색을 다 띠고 있었어요.
정말 노랗다 못해 붉은 색을 띠는 별, 어떤 날은 녹색별, 파란색...다 있습니다.


밤이 낮보다 훨씬 화려했습니다.
밤이 낮보다 훨씬 찬란하고 눈부셨습니다.

 

‘난 이 사실을 귀농 11년차에 깨달았는데 반 고흐도 귀농인이었을까??^^
오늘은 장미처럼 붉은 색 별을 보고 싶은데 그는 나왔을까.‘
******************************

산골벽난로를 들였습니다.
오늘 세 사람이 그것을 설치해주러 먼길을 달려왔습니다.

 

대부분은 유럽식으로 멋지고 이쁜 벽난로를 선호한다고 들었습니다.
초보농사꾼은 성격대로 묵직하고 튼튼한 것으로 선택하여 네 사람이 들고 들어오느라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멋진 팬션이나 무슨 별장에서나 볼 수 있는 벽난로를 산골에 들였다고 하면 ‘별이 파란색’이라고 한 것만큼 머리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산골은 연중 겨울리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여름에도 불을 때야 합니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크다보니 낮에는 태영이 지글지글거려 살갗이 탈 정도로 덥지만 일단 해가 지면 태도를 바꾸어 찬물로 목욕하기 힘들 정도로 물도 차고 사람을 을씨년스럽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여름이라도 이틀에 한번 정도는 불을 때야 하고, 그나마 장마철에는 매일 때야 합니다.

산골의 난방은 나무 보일러지요.
오직 나무를 태워서 난방을 하다 보니 나무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때 많다는 표현은 1톤짜리 초보농사꾼 세레스로  정신없이 해나르더라도 늘 조바심을 내며 겨울을 나곤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무의 양이 얼마나 필요한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보농사꾼이 한 차의 나무를 해와서 보일러실 앞에 턱하니 부어 놓으면 며칠도 못가 높이 쌓였던 나무 무덤이 늙은이 뱃가죽처럼 주저 않습니다.


없는 집 제사돌아오듯 나무해 와야 하는 날은 빨리도 돌아왔습니다.

땔 나무는 산에 간벌해 놓은 것이나 눈에 쓰려진 것 등이 대상이 됩니다.


또 입지조건이 나무까지 차량진입이 가능하냐에 따라 수고로움이 변별성을 갖다보니 그런 곳은 눈치빠른 사람 몫이고, 한 발짝 늦은 초보농사꾼은 작업복에서 물이 떨어져야 한 차를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복을 벗으면 온몸이 상처 투성이었습니다.
무거운 나무를 차에까지 지고 가 싣고, 내리고를 공기돌 놀리듯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무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값이 만만치 않다 보니 별장에 들어 앉은 사람처럼 돈주고 따박따박 땔 수많은 없었습니다.

 

농사일로 허리가 아픈 날도, 무릎 관절이 아픈 날도 그는 가족들 등 따숩게 해주기 위해 때도 시도 없이 썩은 세레스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나이를 먹다 보니 나무해오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고 웬만큼 때서는 따숩게 느끼기도 힘들어졌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집을 새로 지을 때 벽난로를 입둔 사람마다 추천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첫째,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


그때 당시 약 5백만원 이상을 주어야 하는데 그 돈 들여 그 효과가 있을까, 그건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겨울에는 자다가도 몇 번씩 집 밖에 있는 보일러실을 들락거리는데 또 집 안에 나무를 이중으로 땐다는 것이 일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원무 신부님네 벽난로를 때 보니 그 보온성이 상상외였습니다.
많은 나무를 들이지 않고도 화력이 좋았습니다.

 

벽난로를 우리도 들인다면 나무를 적게 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초보농사꾼은 그때부터 벽난로를 알아보고 직접 가보고 했으나 결론은 가격이었습니다.

 

귀농 전, 성격같았으면 일단 저질러 놓고 볼 초보농사꾼이었지만 그는 생각이 많은 모양입니다.
고민을 하고 있는 초보농사꾼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고민하지 말고 사라고, 당신 그동안 가족들 따뜻하게 해주려고 뼈골 빠지게 나무해 나를 만큼 날랐다고, 식구들이 자는 중에도 당신은 털신의 눈을 털며 머리가 깨질듯한 산골 겨울바람을 뚫고 보일러실을 하룻밤에도 수도 없이 오가며 고생했으니 이제는 나무가 적게 들면서 효율적으로 난방을 할 수 있는 벽난로를 살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고생하는 당신을 위해 선우는 나무를 함께 등에 졌고, 딸 주현이는 손을 호호 불며 불쏘시개를 주워오곤 했지요.

 

많이 망설이던 초보농사꾼이 가족의 응원에 힘입어 벽난로를 들였습니다.
하루 일을 끝내고 들어와 벽난로를 들여다 보고, 나무를 때며 화력을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벽난로에서 나오는 불빛에 초보농사꾼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난 어느 광고 카피를 떠오릴며 중얼거렸습니다.


“열심히 나무해 나른 당신, 이제 벽난로 옆에서 한숨 돌릴 자격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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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일기, 농사이야기를 제일 많이 나누는 분
+   [귀농일기]   |  2010. 6. 24. 12:16  

 2010년 4월 4일

어제까지 답운재의 비닐을 걷었다.


엊그제에 가보니 날이 추운데가 비까지 와서 후퇴를 했고 이틀에 걸쳐 꼬박 비닐을 걷었다.
나머지 밭은 작년에 걷었는데 답운재밭은 워낙 늦게 아내랑 둘이 수확을 하다보니 추울 때까지 수확을 했다.




그리고 비닐 걷는 것은 다음 해로 미루었었다.


그러다 어제까지 다 비닐을 걷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성당에 다녀오면 조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이 노근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러다 보니 졸린 경우가 참 많다.


요즘 비닐 걷는 일로 바짝 일을 끝내서 오늘 더더욱 몸에 긴장이 풀리고 피로감이 몰려왔을 거다.

그렇게 산골에 도착하면 힘이 풀리고 일하러 나가려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 가게 된다.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이 내일 오시기 때문에 오늘 미리 개복숭아 묘목을 캐놓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커피 한 잔 하고 나서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미션 수행을 위해 삽을 들고 달밭으로 향했다.
오늘의 미션을 이 개복숭아 묘목을 다 캐는 것이다.




이 정도의 양을 캐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 미리 캐놓았다가 다음다음날 신부님이 논산으로 가시는 차에 싣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캐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굳이 이틀이나 미리 캐서 물에 담가둘 필요 없이 신부님이 가시는 날 캐서 막바로 신부님 차에 실어드리면 되겠다 싶어 두 아름이나 되는 이미 캔 묘목은 거북바위 엉덩이 아래 작은 연못에 담아 놓았다.


나머지는 모레 신부님 가시는 날 캐기로 하고....

그리고 연봉 5만원을 받는 ‘반장’ 역할을 하러 우리 반 할머님, 할아버님이 사시는 우리 반을 한 바퀴 돌았다.





말이 한 바퀴지 집이 독가촌으로 띄엄띄엄 골짜기를 차지하고 있어서 세레스 아니면 반장 역할을 하기도 쉽지 않다.
소금이랑 감자씨를 일일이 배달해 드려야 하므로....


옛날에 길이 더 안좋았을 때는 그런 배달을 하다가 차가 빠진 적도 심심찮게 있었다.

지금은 차가 빠지는 일은 없다.


겨울에는 땔감을 그렇게 배달해 드린다.
그런 일들은 젊은이가 없는 시골에서 그냥 당연한데도 어르신들께서는 늘 고마워하신다.



2010년 4월 5일


신부님이 오셨다.


신부님이 오시면 농장 이야기, 즉 야콘 농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야콘에 대한 가공이야기며 이런 저런 상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시간가는줄 모른다.

마당에 새 관리기를 보시더니 시운전을 하신다.


관리기를 새 것으로 장만하기는 귀농하고 처음이다.
그러니까 다 중고인데다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정도의 연식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부 보조 백만원에, 내 돈 1백 80만원 정도 들어가는 것으로 구했다.


늘 우리가 헌 농기계로 고생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는 신부님으로서는 마음이 좋으신지 한참 시운전을 해보신다.

그리고 나서 불영계곡의 물고기들이 잘 있는지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
낚시를 좋아하시는 신부님께서 나의 ‘바람’에 낚시대를 챙기신다.


신부님이 사주신 내 낚시대도 챙겨 불영계곡으로 향했다.

아직 추워서인지 고기들이 조용하다.


단 한 마리만 우리와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달랑 한 마리..

 


저녁을 먹으며 다시 야콘가공 이야기 등으로 날이 저물었다.
달이 나오고, 별이 나오고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은 강물처럼 잔잔해지곤 한다.


사실 귀농하고 신부님과 제일 많이 야콘 농사 이야기, 가공이야기, 그리고 다른 농사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같다.

이번에 처음 만들게 된 유기농 야콘쨈에 대한 이런 저런 의견도 주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데 맨정신으로 하면 酒神에 대한 모독이다.


아내는 꼭 일하는 것은 안찍고^^ 이런 것만 찍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야 상관없다.
그러거나 말거나.ㅎㅎ


내일 개복숭아 묘목을 캐는 일이 있으니 신부님과 마지막 잔을 건배하고 헤어졌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


신부님이 많이 피곤하실거다.
새벽 미사를 논산에서 드리고 그리고 달려서 울진까지 오셨으니 말이다.


그래도 저녁에는 기숙사에 있는 주현이와 통화를 하시려는 신부님.
아이들도 신부님 만난지 오래되었다며 아쉬워한다.





신부님은 신부님 집으로 올라가시고...
우린 멀리 못나간다는 말로 웃으며 헤어졌다.


2010년 4월 6일


개복숭아 묘목을 캐기로 했다.


신부님께서 점심 시간 전에 논산으로 출발하셔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 먼길을 하룻밤 주무시고 다시 가시자니 피곤하실테지만 항상 밝은 모습이라 이제는 거리감각이 없어질 정도다.

신부님 차를 밭으로 대고, 차례대로 묘목을 뽑아 실으니 한결 수월하다.


아내가 이번에는 특별히(이게 중요하다) 일하는 모습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큰 인심인 것같다.^^





그곳에 심어놓은 것을 다 캔 다음 차에 싣고, 이번에 새로 만든 유기농 야콘쨈도 성당에서 팔아보신다며 몇 박스 실으셨다.

신부님은 점심도 안드시고 출발하셨다.


식사를 하시면 가다가 졸리다고...
먼길을 그렇게 가시니..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차 한잔을 마셨다.
다시 한 해 농사를 위해 힘을 모으는 중이다.

저녁에 다 되어서 퇴비가 왔다.


내 세레스로 약 열두 차 정도 분량의 퇴비가 왔다.
답운재밭에 뿌릴 것은 답운재밭가에 내리면 좋겠는데 일단 집 앞에 내리고 나서 다시 묶은 다음 답운재로 가는 게 그 분에게 번거로울 것같아 다 집 앞에 내렸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까지 다시 세레스에 싣고 나르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렇게 세레스에 퇴비를 다시 싣고 나르는 일을 해야 할 것같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올해 한가지 소망은 풀었다
+   [귀농일기]   |  2010. 1. 1. 01:32  

 

 

2009년 12월

 

귀농하자고 했을 때 아내가 줄줄이 반대하는 이유를 말할 때 그때 그 항목에 들어갔던 거 중에 하나가 손재주 없다는 것이었다.

시골에 살려면 손재주가 기본이라나 뭐라나.

아파트는 뭐가 고장나면 관리실에서 다 해결해 주지만 시골은 혼자 다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말 그대로 개고생한단다.

   

맞는 말이지만 손재주 없는 놈도 다 시골에서 잘 먹고 잘 산다고 맞대응을 했었다.

사실 그래도 다 살수 있다며 살살 구슬러야 한다는데 난 성격상 그렇게 하는 성격이 못되었었다.

맞대응해봐야 내 손해고 점점 더 침을 튀기며 반대를 할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성격상 살살거리지 못하니 그냥 목청을 되려 내가 높였었다.

 



 

하여간 딴 얘기지만 손재주랑 낚시랑 상관이 있는지 몰라도 하여간 난 낚시를 못한다.

남들이 자루로 잡는 곳에서도 우리 박씨들 셋은 단 한 마리도 못잡은 경험을 끝으로 난 단정짓게 되었다.

정말이지 낚시는 팔자에 없나보다 하고 말이다.

 



 

그런데 올 어느 여름날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영계곡의 새점밭 옆으로 낚시를 나섰다.

주현이는 방학이라 서울에 가고 선우를 데리고 갔다.

선우를 데리고 간 것은 이 놈도 낚시하고는 거리가 멀다 보니 한번이라도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경험이라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한 마리 잡는 경험이 될수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번에도 안되는구나하고 아예 포기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스승님의 자상한 지도로 팔자에 없는 낚시에 성공한 것이다.

내가 고기를 잡게 되었다는 말이다.

 

선우도 나와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말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짜릿하기도 하고 아주 묘한 경험이었다.

 



 

선우도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금니 있는 데에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용기를 얻은 모양이다.

 

즉석에서 잡아 왼손잡이가 즉석요리(?)를 하여 안주를 삼으니 그 맛이란...

거기에 누구나 한번 보면 뻑 가게 되어 있는 불영계곡의 자지러지는 풍경을 안고 먹는 그 맛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

 

한 해를 보내는 마당에 이 낚시경험도 하나의 큰 기쁨이고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된다고 포기했으면 아마도 이 경험을 느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선우도 몇 번이고 고기를 잡은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주현이가 있었더라면 지난번의 그 한 마리도 못잡은 그 민망함을 복구했을터인데 서울에 가있느라고 경험을 하지 못했다.

 

“선우야, 우린 원풀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어느 귀농자의 어떤 여유
+   [귀농일기]   |  2009. 10. 28. 21:34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10월 16일


요즘 개복숭아씨를 심고 개복숭아 묘목을 옮겨심는 일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어제도 아내와 함께 집 위의 달밭에서 엎드려 새생명이 잘 자라나는 상상을 하고 그것이 더 자라 복사꽃도 아름답게 피고, 그 꽃이 진 자리에 옛날 분들이 '죽은 사람도 살린다'며 극찬하는 개복숭아가 열리는 상상을 하며 심었다.


그런 상상이 구체적이고 칼라플하면 할수록 기분이 업되고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안든다.
이번에 전지가위도 새로 사고, 허리에 가위를 찰 수 있는 권총집처럼 생긴 것도 두르고 그런 상상을 하니 더더욱 상상력이 힘을 받는 느낌이다.

어제 논산의 이원무신부님이 장미를 다섯그루 주셨다.
신부님 집 주위에 심으신다고 주문하신 것인데 꼼꼼히 직접 심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장미이다.

신부님 말씀으로는 두톤인 장미라서 이쁘다고 하셨는데 그게 뭔 소린가 했더니 한 송이에 두가지 색깔의 꽃이 핀다는 말씀이시다.
한송이 장미에 꽃잎 끝은 빨강색이고 그 안쪽의 색은 노랑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나야 워낙 그런 것에 세심한 관심을 못기울이며 살아서 상상이 안갔지만 투톤이라면 아주 이쁠 것 같았다.

또 이름도 그냥 장미가 아니라 나름대로 이름이 있다.


발음도 어려워 듣고도 생각이 안나 집에 와서 장미를 주문하셨다는 곳의 홈에 들어가보니 이름이 나와 있다.
하나는 오렌지메이안디나이고 투톤이라고 하셨던 그 장미의 이름은 찰스톤이었다.
하여튼 이름도 멋지고 거창하다.

찰스톤이고 오렌지메이단디나이고간에 잘 심어서 살리는 것이 내 임무이다.


귀농하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이런 꽃에 관심을 갖게 된지가 오래 되지 않는다.
꽃이나 작은 나무에 관심은 많은 아내지만 내가 뒷받침을 해주지못한점을 인정한다.
니름대로 이유를 대자면 타지에 와서 적응해야 했고, 이렇게 저렇게 생기는 보도 듣도 못한 문제들을 극복하며 산다는 것이 그럴 여유를 만들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서너 해 전부터는 귀농 짠밥이 늘수록 그런 곳에 눈을 돌릴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에 신부님께서 이 넝쿨장미도 주셨지만 그 장미가 잘 타고 올라갈수 있도록 아치형 구조물도 두개 주셨다.
스텐으로 된 구조물이라 값이 많이 나가게 생겼고 아주 튼튼해 보이는 것이었다.


장미를 받은 날은 개복숭아를 심느라 손을 대지 못하고 오늘 장미뿌리가 마르기 전에 서둘러 일을 시작했다.
일단 스텐 아치 구조물을 박아야 했다.


적당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아내가 설치해 주길 바라는 위치를 설명듣고 땅을 팠다.
그곳은 땅이 푹신 푹신한 곳이 아니라 삽으로 땅을 파는데 쉽지않았다.





일단 두개를 터널식으로 만들 생각을 하는 아내이기 때문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박았다.
그런 다음에 아끼던 양질의 퇴비도 아낌없이 듬뿍 주고, 물도 한다라이 받아다가 듬뿍 주고 각각의 구조물끝에 하나씩 장미를 심었다.
그리고 장미덩쿨이 쓰러지지않도록 장미농원에서 보내준 끈으로 묶어주었다.내 성격에 이건 거의 작품이다, 작품.

분명 찰스톤인지, 오렌지메이안디나인지 구별하는 표시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려니 깜깜하다.
피어보면 알겠지.


찰스톤이면 어떻고, 오렌지메이안디나이면 어떤가. 피어서 이쁘면 되지.


아내 같았으면 같은 종류로 하던지, 하나하나 하던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내가 나오기 전에 후다닥 심었다.
아치 옆에 장미를 다 심었는데 내가 못믿어웠는지 효소 발송준비를 서둘러 끝내고 나와서는 바로 지적을 한다.


위치가 거기이면 앞에 있는 게시판식 구조물에 가려져 멋진 장미가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구조물 하나를 더 앞으로 당겨달란다.


말이 앞으로 조금 당기는 거지, 죽으라 땅파고 스텐구조물을 심었는데...
그러나 또 내가 누군가.
심어서 어쩔수없다고만 말 하면 자기가 뽑아서 다시 심어도 심을 사람이니 나도 머리를 썼다.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심었노라고 , 나도 위치를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고 다 해서 심은 거라고 하고는 잽싸게 나머지 장미를 심으러 집앞으로 올라갔다.

아내는 한동안 구조물을 바라보더니 따라온다.


더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남편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미리 위치를 말해달라는 아내에게 주문을 했고 아내는 효소 택배발송준비를 하느라고 밖에 나와 이래라 저래라 참견할 시간이 없어 말로만 대충 설명한 것을 딥다 후회하는 눈치였다.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나름대로 없는 상상을 동원해서 장미가 피어 덩쿨이 이렇게 올라가게 해야지 등등의 계획은 있었다. 비록 마음은 밭에  가있었지만.


이제 두그루는 물건너 갔고, 집주위에 심는 것은 이왕 아내가 나와서  도끼눈을 뜨고 있으니 아내의 의향을 물었다. 엄청 배려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미 기분이 상했는지 볼멘소리로 당신이 그렇게 세심하게 배려했다 하니 이것두 그런 깊은 배려심을 발휘해서 심으란다.
어째 뼈있는 말 같았다. 나야 심는 거야 잘 심지.


그렇게 이름도 어려운 장미를 내년이면 볼수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다 심고 밭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이왕 심는 거 아내가 그렇게 원하는 아치 구조물의 위치를 하나만 옮겨줄껄 그랬나 싶은 마음이 들어 뒤돌아 보니 아내는 장미를 한참 둘러보고는 밭으로 따라온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로!!


귀농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야콘도 캐야 하는데...
+   [귀농일기]   |  2009. 10. 2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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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5일

요즘 개복숭아랑 씨름을 하느라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가을 걷이도 빨리 빨리 끝내야 하는데 성격상 어느 것 하나를 먼저 시작했으면 그것이 다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을 시작 못한다.
조금 덜 바쁜 것을 하다가도 더 바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게 잘 안된다.

 

일단 개복숭아를 먼저 옮겨심고, 개복숭아씨도 다 심고 나서 야콘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내는 내가 개복숭아를 먼저 끝내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면 또 따라주니 아내 역시 다른 일을 못하고 나와 함께 개복숭아에 매달려 지내고 있다.

 

어제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이랑 신자분들이 오셔서 장미도 심으시고 신부님 댁의 거실 마루바닥 공사도 재시공하시는 동안 우리 부부는 개복숭아와 함께 흙과 함께 엎드려 있었다.

 

 

손수레에 개복숭아씨랑 퇴비를 싣고 비탈길 푹신 푹신한 밭 언덕을 올라가려니 바퀴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자꾸 빠진다.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시고 올라갔다.


혼자 올라가도 이제 헉헉거리는데 수레에 짐까지 모시고 올라가려니 거기서 기운 다 빠졌다.

그렇게 기운빠지기만 한 것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단풍놀이 온 듯 주변 가을풍광이 끝내준다.
헉헉 거리며 수레 끌고 올라와 땀흘린 몸으로 담배 한대를 빠는 기분....

 

 

 

난 사실 쭈그리고 앉아서 하세월 일하는 것을 잘 못한다.
무릎이 아프기 때문에 거의는 무릎을 꿇고 일한다. 남이 보면 무지 경건한 자세로 알지만 사실은 까놓고 보면 신체 구조상 그게 편해서 그런 자세를 자주 취한다.

 

 

 

 무릎을 꿇고 죽으라 심은 것보다 아내가 달라들어 후다닥 심은 것이 순식간에 드러난다.
손이 빠르긴 엄청 빠르다.
내일 저녁이나 모레 비가 온다고 하니 손에 속도를 재촉한다.

 

아내가 다른 일을 하다가 내가 하는 일을 돕기 시작하니 일의 진행속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아내는 손이 빠르니 심으라고 하고는 신부님 장미심으시는 데에 가보니 벌써 다 심으셨단다.

 

다시 밭으로 내려와 개복숭아 묘목을 옮겨 심었다.
요즘 아직도 가뭄이 심하다. 올해 처음으로 송이가 단 한 개도 안났으니까.
귀농하고 이런 이변이 생기기도 처음이다

 

비가 한번 충분히 와서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었으면 바란지도 오래 되었다.
개복수아를 빨리 끝내야 야콘을 캐는데 이래저래 자꾸 예정일 보다 늦어지니 마음만 급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귀농 주동자 겸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인터넷으로 병아리 키우기[1탄]
+   [귀농일기]   |  2009. 10. 16. 10:11  




2009년 10월


지금부터 우리집 새식구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좀 찔리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니 닭이야기이다.


닭이야기를 하려니 선우 , 주현이를 이렇게 관심갖고 키웠으면 아마 아내가 옛날 이야기하며 궁시렁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들이란 다 같은 이유를 둘러대지 않는가.


인생살이가 바빠서 그랬다고, 나도 자식 이쁜줄 안다고 변명을 들이대지만 사실 설득력없는 이유라는 것을 남자들도 안다.

이렇게 오늘은 거창하게 서론이 나가는 것으로 보면 본론도 무지 길거라는 상상을 하실 거다. 맞다.
이야기가 길다보니 이제나 저제나 미루어 왔던 이야기인데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왔다.


지금 이야기할 꺼리가 많으니까 1탄, 2탄으로라도 해야 나중에 진행상황을 까먹지않는다는 판단이 서서 요즘 개복숭아 씨 심느라고 무지 힘들지만 기억을 더듬어 쓰려고 한다.


예전에 논산의 이원무신부님께서 관상용 닭을 사올테니 키워보라고 하셔서 아내와 나는 자신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신부님은 산골에서 닭을 키우고 병아리를 키우는 재미도 보고, 또 유정란을 낳으면 가족끼리 먹는 재미도 있고 하여 마음을 써주신 것이다.
신부님은 늘 그렇게 마음을 써주셨다.


예전에, 귀농초에도 토종닭을 연구하시는 분이 진주에서 여기까지 직접 그 많은 닭을 실어다 주고 가셨다.
공짜로...


정말 보니까 덩치도 작고 색깔도 일반 닭과는 달랐다.새박사라고 했는데 정말 그냥 말하는 박사가 아니고 조류쪽을 전공하신 분이셨다.
얼마나 고맙던지..용기를 내어 키우는데 까마귀가 그랬는지 들짐승이 그랬는지 자꾸 닭을 물어 죽이는 거였다.


나중에는 폐그물을 얻어다가 쳐주곤 했는데 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놈들을 개가 풀려서 결국은 다 잡아 죽이고 말았다.
개는 죽여만 놓았지 먹지도 않는다.


얼마나 마음이 안좋은지 다시는 닭을 안키운다고 아내와 다짐을 했다.

그러다 아이들 운동회때 경기 우승으로 받은 닭도 개가 물어 죽이고 하여간 우린 동물이랑은 인연이 없었다.


그렇게 아픈 상처만 남기고 닭은 물건너 갔고, 꿈에도 닭을 키우지않겠다고 했는데 신부님이 관상용 닭이라며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 이유로 자신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신부님 생각은 유정란을 꺼내 먹을 수 있고 , 말 그대로 관상용이니까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병아리 낳으면 길러도 보면 참 좋을 거라는 배려에서였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7월에 따가운 날에 신부님은 트럭에 닭장이랑 닭이랑 싣고 신부님도 차로 오셨다.
닭장은 조립할 수 있도록 하여 오셨기때문에 여기와서 조립을 했는데 그럴듯한 단독주택이 되었다.
물론 이것도 사오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생명이 우리집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사냥개 벤자민 이후 또 다른 생명을 들인 것이다.


그런데 신부님이 가시고 나서 다음 날 한마리가 죽었다.
얼마나 마음이 안좋은지...


또 그렇게 마음을 써주셔서 가져오신 것을 금방 한마리 죽였으니 할말이 없었다.

나 역시 잘 자라주기를, 이번에 닭은 어디 한번 잘 키워보려고 마음을 먹었건만 바로 다음날 원인모를 이유로 죽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마리랑 함께 살았다.


우리집에서 새로 지은 신부님 집까지 언덕을 헉헉거리며 걸어올라가야 하는데 매일 밥주고 물주고 그리고 다른 동물이 해꼬지 하지않는지 걱정되어 오르내렸다.


그런데 어느날 모이를 주러 올라가는데 그애들 집이 길 중간까지 내려와 뒤집어져 있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모습과 같이 둥지는 둥지대로 나가떨어져 있고 집도 다시 쓸수 없겠다는 판단이 설 정도였다.

일단 닭집을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고 보니 닭들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이거야 원, 역시 우린 동물 키우는 것은 어려운가 보다 등등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맥빠져 했다.
그런데 일단 닭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날 신부님 집에서 공부하고 잔 아들 선우가 집 근처에서 닭울음소리가 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집 뒤 나무 아래서 세마리가 사이좋게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닭장 밖에 모이를 주었더니 우리가 없으면 내려와 모이랑 물을 먹고 가곤했다.

며칠 뒤에 신부님이 오셔서 함께 닭장을 수리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닭을 어떻게 잡아서 닭장에 넣어주느냐였다.
닭은 밤에 눈이 제구실을 못하기때문에 밤에 잡아 닭장에 넣어주기로 했고 세 마리인니 신부님과 나 그리고 선우가 한마리씩 담당해서 잡기로 했다.

 

세 마리가 신부님네 집 뒤 보일러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을 한마리씩 덮치기로 하고 하나, 둘, 셋 하고 덮쳤는데 선우가 잡았다가 놓쳤다.

나중에 다시 잡아  무사히 세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알은 커녕 그림자도 없었다.





알때문에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알을 낳으면 흥미로울 것 같아서 매일 둥지를 확인해도 깨끗했다.
우리에게 무슨 유정란이 굴러들어올까라며 서서히 흥미를 잃어갈 즈음 알을 낳은 것이다.
한번에 두 개씩...





신기하고 하여 꺼내다 주현이랑 들여다 보고 깨서 그냥 먹어도 보고 하니 옛날 생각이 났다.


엄마가 뜨거운 밥 가운데를 숟가락으로 파서 거기에 계란을 깨넣어주시면 간장넣고 참기름넣고 비벼먹었었다.

그렇게 하루에 두 개씩 거의 우리 가족의 입을 즐겁게 해줄 때, 신부님께서 이제는 꺼내는 것을 먹지 말고 보관했다가 나중에 암탉이 품으면 다시 넣어주라고 귀뜸을 해주셨다.


그러다보니 정말 어미닭이 품기 시작했고 보관하고 있던 알을 못넣어주었다. 품고 있는데다가 냉장고에 보관했던 것이라서...

품으면서 낳은 것까지해서 모두 8개를 품기 시작했다.



 



암탉은 죽으나 사나 품고 앉아있었다. 그 위 호수밭에서 일하다가 가보면 또 앉아 있고 앉아있고 배고플텐데 수탉이 먹여주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더 자주 가보았는데 아주 가끔 내려와 모이를 먹고 다시 올라가는 것이었다.

야콘밭에는 지렁이가 많다.


유기농이니 당연한 거지만 풀을 뽑다보면 아내가 자주 놀란다.
뱀인줄 알고, 사실 나도 가끔 놀랄때가 있다 무심결에 풀을 뽑으면 그 아래서 기어나와서 말이다.


오늘은 그 놈을 몇 마리 잡아다 닭장에 넣어주니 수탉이 알을 품느라 고생하는 암탉에게 양보를 한다.
암탉이 아주 잘먹는다.





그리니까 임신부에게 영양식이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품는 날이 오래되었는데 깨어나질 않는다. 새끼가.


매일 들여다 보아도 매일 품고만 있다.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보니 15일 정도면 깨어 나온다는데 우리집 알은 깨어날줄을 몰랐다.
이제 거의 관심을 놓고 속으로 기대치도 많이 바닥으로 떨어져있던 어느날보니 어미닭있는데서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미닭은 계속 마저 품고 먼저 깨어나온 병아리는 밖이 궁금한지 자꾸 기어나오려고 하면 어미닭은 도로 날개로 끌어안고 그런다.
내가 동물을 이렇게 자세히 끈덕지게 관찰한적이 없는 것 같다.

하여간 네 마리가 깨어났다.


어느날보니 어떻게 내려왔는지 바닥으로 내려와 있다.
어떻게 내려왔을까 무지 궁금하다.


그렇게 신기해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한 마리가 죽었다.
머리를 뜯겨서 죽어 있다.


근처의 땅을 파고 묻어주었다.


왜 죽었을까.

안그래도 다른 동물들이 침입해서 물어 죽일 것 같아서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산골에서 병아리 키우는 것은 이렇구나 싶어서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확인하고 문단속을 하고 내려왔다가 야콘밭에 가면서 또 가보니 또 죽었다.
그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죽어 있었다.


밭에 갈 기운도 안났다. 나머지도 죽이게 생겼으니 대책이 서질 않았다.

다시 밭에서 내려와 아내에게 말했더니 하루에 다 죽었으니 어차피 거기에 두면 또 죽게 된다며 나머지 두 마리를 데리고 내려오란다.
어쩌려고???

박스에서 키워보잔다.


그게 더 안전하다고...
물론 어미옆에서 자라는 것이 최상이지만 지금처럼 사망률이 높은 상황에서는 모험을 걸어야한단다.

이럴 때는 단호한다.





내가 생각해도 당분간 몸집을 키워 보내주면 어떨까 생각하며 두놈을 데리고 내려왔다.

주현이가 바쁘다.

인터넷 먼저 뒤진다.

이제부터 인터넷으로 병아리 키우기가 시작되었다.
박스를 가져오고, 박스안에 병아리들이 춥다고 신문지를 갈기갈기 찍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추위에 약하므로 패트병에 물을 뜨겁게해서 넣어주던지 전구를 넣어주던지 하여 체온유지에 조심하라고 되어 있다며 패트병에 물을 넣어 주었다.




그랬더니 꼭 패트병만 새로 넣어주면 그 옆에서 두 놈이 붙어 잔다.

생후 5일째 되는날 병아리 집을 청소해야 한단다. 똥을 쌌으니 신문지도 갈아주고 물도 갈아주고. 그러는동안 잠시 외출..
5일된 병아리이다.



주현이는 학교갔다오면 병아리를 돌보느라 바쁘다.
손님들이 오면 못만지게 해야 한다고 당부당부를 한다.
엄마도 만지지 말라고..


애들이 겁도 먹지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인터넷으로 병아리를 키우고 있다.

인터넷이 시키는대로 주현이는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해보고 자기 의견을 덧붙여 두 병아리를 보살폈다.

그리고는 또 흙을 넣어주란다.
흙을 먹어야 소화를 시킨다고...

중3인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이고 더없이 신비로움 체험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태어나자마자 엄마 떨어져 5일밖에 안된 생명이니 얼마나 사람이 무서울까.
나도 들여다만 봤지 만지지않았다.


그런 주현이는 인터넷에서 계란을 삶아 노른자만 주라고 했다며 계란을 삷는다.

정말 보니까 잘먹는다.
그런데 그것두 너무 오래 먹이면 안된다며 하루에 반개만 주라고 지엄마에게 부탁한다.





주현이는 가끔 넓은데에서 운동도 시켜야 한다며 꺼내준다.
똥도 닦아주는 주현이다.
 

내가 물을 갈아주려고 하면 겁을 먹고 막 두망가는 녀석들이 주현이가 손을 내밀면 닥아와서 같이 논다. 신기하다.




주일에 성당에 다녀온 주현이가 병아리들이 이제 어미품으로 돌아가는 연습으로 바깥세상 적응훈련을 해야한다며 데리고 나간다.
꽃밭에서 적응훈련 첫째날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것을 쓰는동안 나 반성많이 했다.
귀농전 아이들이 어려서 내가 이렇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키웠다면 아내에게 상받았을 것이다.
안그래도 아내가 애들 어려서 기저귀 갈아준 것이 다섯 손가락도 남는다고 심심하면 그 레파토리를 꺼내는데 사실이니 난 할말이 없다.


그래도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자면, 그때 소장이 되기 전이니 물불 안가리고 일할 때다.


그러다 소장이라는 완장을 어린 나이에 채워주니 더 목숨걸고 일하고...
그렇게 일한 것에는 조금도 후회없다.


남자로 태어나 내가 한 직장생활의 모습이 나로서는 아주 최선이었고 만족한다.
그래서 이사님께 사표를 낼 때도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쏟을 시간이 없었다.


목에 넥타이줄 매고 다니는 직장인 아빠들이 많은 부분 그랬다고 위로도 해본다.

다른 아빠들처럼 달콤한 아빠가 되어주지 못했는데도 아내는 바가지 긁지않고 참아주어 그게 요즘 고맙다.
귀농을 안했으면 아직도 이런 반성을 못했을 것이다.


암만 그래도 그 놈의 다섯 손가락 기저귀 얘기는 좀 안했으면 좋겠다. ㅎㅎ

1탄은  여기까지다.


더 하면 날짜도 엉키고 이제 잘 적어두었다 2탄에서 성장기를 보고하겠다.

내가 귀농일기도 이렇게 자세히, 여러 날의 상황을 적어가며 이렇게 순서를 정해 쓰지못했는데 뼝아리들때문에 이런 경험도 해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

귀농하자고 막무가내로 주동한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풍경--"엄마, 아빠 점심드세요!!"
+   [산골풍경]   |  2009. 7. 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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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6일 토요일

아들 선우와 주현이가 달밭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지들끼리 한참을 머리맞대고 무얼했는지 점심을 먹으란다.

초보농사꾼과 나는 달밭에서 오늘도 풀과의 전쟁의 벌이고 있었다.
팔목이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한 골을 끝낼 때마다 서로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도 서로의 손을 마주치며 다시 한 골을 잡고 앉는다.
그래서 한 번 웃으며 다시 시작한다.

둘이 하면 덜 심심하고 일도 빨리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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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skyheart.co.kr/po/S8005344.jpg">

아이들이 빨리 오셔야 한다며 다시 한번 재촉을 한다.
아이들이 점심으로 준비해 준 것은 따뜻한 스파게티...

사실 스파게티 소스는 지난 번에 이원무 신부님이 오셨을 때 아이들 주라고 직접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셨다.
그것으로 애들이 점심을 차려주었다.
물론 오이피클과 치즈가루도 신부님 찬조...

너희들은 왜 안먹느냐고 하니 엄마, 아빠 드시는 것 보고 자기들 것은 끓여 먹는단다.
주현이는 식으면 맛없다고 빨랑 드시라고 성화다.

엄마, 아빠가 먹는 것을 다 지켜보고 나서 지들끼리 양을 정해 다시 끓인다.

이제 다 컸다고 엄마, 아빠 밭에서 일하시는데 힘들다고 이렇게 점심도 차려주고...

선우가 공부 하다 창 밖을 내다 보니 엄마, 아빠가 풀을 뽑고 계시더라며 마음이 안좋았단다.
고딩이라 나가 도와드리면 엄마가 걱정하실 거고..

마음이면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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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skyheart.co.kr/po/S8005342.jpg">

나도 아이들이 스파게티를 먹는 것을 본다.
선우가 학교 급식 때도 스파게티가 나오는데 완전히 달달한 것이 이 맛하고는 천지차이라고...
오늘 이렇게 스파게티 먹을 줄 몰랐다며 즐겁게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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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skyheart.co.kr/po/S8005347.jpg">

산골아이들을  자식처럼 대해주시는 신부님...
다음에는 어떤 요리가 먹고 싶은지 정해주면 만들어 주시겠다며 주현(안나)이랑 요리책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실 때는 등골이 따사로웠다.

밭으로 가려는데 둘이서 설거지 하는 소리가 달그락달그락 들린다.

아이들이 차려준 점심으로 인해 풀뽑는 내내 마음까지 든든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귀농일기--내가 좋아하는 곳은??
+   [귀농일기]   |  2009. 3. 1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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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난 오지를 좋아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좋아하듯 땅도 누구도 크게 손상시키지 않은 곳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나의 이런 성향을 알고 어디가 참 오지더라, 어디가 정말 끝내주더라 하는 말을 들으면 간단한 약도만으로도 우린 바로 확인사살에 돌입한다.

한번은 산골아낙에게도 말도 안하고 나섰다가 어두워지고 밤이 되어 집에 오니 난리가 났었던적도 있었다.
실종신고를 한다고 동네 형에게 말하고 난리였다.
처음 가려고 한 것이 아니고 볼일 보러 나갔다가 그 생각이 탁 나면 바로 돌진...
핸드폰이 안터진는 곳이니 연락할 방법도 없고 금방 갔다오면 되지 하고 나섰다가 그렇게 된 적도 몇번 있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과 살아서 알아서 감잡으면 좋겠는데 꼭 걱정을 하고 별별 상상을 다하고 기진맥진해 있곤 한다.
이젠 나이도 먹고 했으니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도 그 오지가 부르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 근성은 못고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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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논산의 이원무 신부님이 오셨기에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새점 밭을 구경시켜 드렸다.
새점밭은 바로 불영계곡과 접해 있어서 풍광이 좋다.
신부님과는 통하는 것이 많아서 말씀드렸더니 가보자고 하신다.

아내랑 새점밭으로 가서 밭을 보고 우린 불영계곡을 걸었다.
신부님도 풍광이 좋다고 하신다.

불영계곡의 물소리가 힘차다.
불영계곡은 겨울에도 을씨년스럽지 않다.
겨울에도 늠름하면서 멋지다.

새점밭 바로 옆이 이 사진의 모습이다.

신부님과 계곡을 걸으며 이런 저런 오지 이야기를 하며 한바탕 웃었더니 계곡도 쩌렁쩌렁 울리는듯했다.
사람과 사람
계곡물과 사람
모두 한데 어우러져 이야기꽃을 피웠다.

초보농사꾼 박찬득(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귀농아낙의 산골일기-- 앗, 한발 또 늦었다
+   [산골풍경]   |  2009. 1. 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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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해 바닷가로 달리며 대전 교구의 이원무 신부님을 떠올렸습니다.

무슨 때만 되는 우린 앉아서 전화만 받았으니까요.
어제 처럼 새해, 성탄, 부활, 두 번의 명절과 기타 등등 특별한 날에 신부님은 발빠르게 하늘마음가족에게 전화를 하십니다.

끊고 나면 아,,,,,
하여간 신부님과 인연이 되고 저희가 먼저 한번도 부지런함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해바다고... 봉평해수욕장으로...해돋이를 보고 미사를 보고 장현칠님을 처음으로 만난다는 꿈을 부풀었지만 신부님을 떠올리며
'내 오늘 바닷가에서 신부님 ,,, 해돋이 보고 있어요. 새해에는..... 주저리 주저리...."
이 얼마나 깔끔한 멘트일까....

해를 보며
'신부님께 그동안의 감사하는 마음을 보태고 보태서 그렇게 새해의 기운을 날려보내드려야지....'

그런 쌈빡한 생각으로 도착,,,,
해는 돋고 미사는 시작되었고...
그렇게 미사가 끝나고 장현칠 님과 만나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러면서도 전화를 기억에 두고 있는데
초보농사꾼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뭐라뭐라 통화를 합니다.

내용이 범상치 않아 들어보니
신부~~~님...

크............
아, 아깝다, 이번에도 또 한 발 늦었다.....

햐,,,
이거 안되네요.
게으른 사람은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멋진 멘트도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그 앞의 바닷가에서 물거품으로 변해 저 멀리 휩쓸려 갔습니다.

사람이 더러는 표현도 하고 살아야 하는데 우린 늘 그 표현만 받고 사니 올해도 영 발빠르기는 팔자에 없나 봅니다.
하지만 이제 수첩에 적어두는 버릇을 들였으니
올 한 해는 그때그때 미루지 말고 잘 표현하고 사는 것도 제 계획 중 하나랍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들에게 작은 표현을 제때에 하는 그런 산골아낙이고 싶습니다.

(사진은 여름에 방글라데시에서온 신학생과 한국 신학생 그리고 신부님이십니다. )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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