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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 _해당되는 글 80건
2009.11.17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제 새끼잡아 먹는 에미 
2009.10.2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작은 보답일 뿐입니다. 
2009.10.11   귀농풍경--농업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3
2009.10.11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아버지로부터의 꿈 
2009.09.11   귀농풍경--산골소녀의 간식은 이렇게 익어갑니다. 
2009.09.10   귀농아낙의 산골편지--귀농은 스스로 뻑가는 삶이어야 한다. 1
2009.09.07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니가 이렇게 컸구나." 
2009.08.31   귀농아낙의 산골밥상--세상에서 제일 쓴 골뱅이 무침 
2009.08.2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의 미니 번개 
2009.08.13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2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제 새끼잡아 먹는 에미
+   [산골편지]   |  2009. 11. 17. 02:42  

2009년 10월

여름내내 풍성한 잎파리 속에 실한 포도송이를 감추고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포도나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앉아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땅바닥을 서걱서걱거리며 마지막 남은 힘을 삭히는중인가 보다. 얼굴은 노래가지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 그를 보면 영원히 번창할 것같았지만 때가 되면 그 어떤 것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가 보다.
오늘은 유심히 더 노란 얼굴에 검버섯까지 펴 있고 구멍까지 난 모습으로 땅바닥을 기고 있다.

가을에는 더더욱 어느 것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오늘은 그의 땅바닥을 기는 소리가  유심히 크게 들린다.
한 해의 끝이 보이고 있다는 징조다.

*********************************

서울 언니네 갔을 때, 돌확 속에서 노는 물고기가 하도 이뻐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귀농한 동생을 늘 마음 아파하던 언니가 물고기를 담아 주었다.
패트병을 잘라서 그 안에...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름은 구피이고, 제 새끼 잡아먹는 놈들이니 단도리 잘 하라는 말도 물 속에 섞어 담아주었다.
난 후자의 부탁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설마...

물고기는 산골로 이사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깨를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부탁이 가시처럼 걸려 어른과 신생아를 칼같이 갈라 놓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떼어 놓는 것이 옳은 일일까 끙끙거리면서...

한참 지나 '그래도 그렇지 제 새끼 잡아 먹는 어미가 어딨냐"고 산골아이들이 하도 나를 공격하기에 얼떨결에 합쳐 주었다.

한동안 난 에서 돌아오면 숫자 세기에 바빴다.
새끼의 수를 칼같이 세고 또 셋다.
안그래도 숫자에 대해 야무지지 못한 나로서는 그 일도 큰 일이었다.

어제 요맘때의  숫자와 변동이 없다는 사실이 신통방통하여 먹이도 고봉으로 주었다.
후한 먹이 공세로 금방 물이 탁해졌다.
그물이 촘촘한 체로 어이, 새끼 할 것 없이 떠서 작은 그릇에 옮겨 주고 그들의 둥지를 깨끗이 청소를 하고 산골의 가재도 산다는 1급수 물을 담아다 놓았다.

그런데 그 옆의 화초를 간섭하느라 깜빡 잊고 작은 그릇에 있던 물고기들을 제 집에 넣어주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그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물고기를 원래의 집에 넣어 주려는데 새끼의 수가 형편 없이 모자란다.
아니, 새끼들이 아예 안보인다.

어디로 튀었나 하고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리 돋보기까지 동원해서 찾아도 새끼 8마리는 다 어디로 가고 달랑 새끼 한 마리에 어른 5마리만 남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제서야 제 새끼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우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다시 분리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어미 물고기 밥을 주지 않았다.

어둠이 깔리고 어린 물고기 혼자 제 집에 둥둥 떠있는 푸른 물배추 아래에 잠이 든 것을 들여다 보았다.
나의 까막정신이 어린 새끼들을 희생시켰구나...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작고 검은 돌 하나 집에 넣어주었다. 친구하라고...

그러는 동안 씩씩거리던 기분은 사라지고 과연 내가 어미 물고기를 타박할 자격이 있을까???

자연에서 키운다며 산골로 데려 와서는 농사 일로 바쁘다고 내 새끼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지, 어미로서의 역할을 칼같이 해냈는지 생각하니 누가 누구에게 지적질할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미 물고기에게 아까 주지 못한 먹이를 고봉으로 주면서
'너도 나도 어미 구실 잘 하자'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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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작은 보답일 뿐입니다.
+   [산골편지]   |  2009. 10. 25. 01:32  





2009년 9월 22일


산골가족은 집 옆의 작은 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끌어다 마시지요.
물론 저희가 효소를 만들기 때문에 매번 철철한 물 검사를 받습니다.

몇 십 항목이 되는 검사를 검사기관에서 물을 바로 떠서 연구소로 보내 검사를 받는데 합격입니다.
마실 때마다 감탄이 벌어진 이빨 사이로 새어나옵니다.


오늘도 그런 감탄을 흘리다 서둘러 꽃밭으로 갔습니다.
나 혼자 갈증을 푸는 것같아서지요.




함석 물조리개에 물을 길어다 꽃밭에 뿌려 주었습니다.
내가 먹는 그 물을 우린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금방 꽃의 표정에 생기가 돋는듯했습니다.


뒤늦게 피어난 초롱꽃과 두 송이 장미의 얼굴도 금방 환해집니다.

난 신바람이 나서 시원찮은 허리를 생각지 않고 한 말 정도 들어가는 함석 물조리개를 공기돌 놀리듯 들어 날랐습니다.
모두들 좋아죽겠다는 표정들입니다.


갈증나지 않은 모습으로 열반이 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사랑과 위로와 격려로 치자면 이건 새발의 피지요.


난 내친김에 할 일도 잊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건냅니다.
이야기라고 해봤댔자 농부의 아낙이 농사얘기지요.뭐.


난 퍼질러 앉아 우선 야콘이야기를 했습니다.
야콘이 전체적으로 썩 잘된 농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짧으면 하나가 길거라'는 것을 믿는다는 말도 껌처럼 덧붙였습니다.

꽃밭에 앉은 꽃들은 내 이야기를 시시껄렁한 말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어찌 아냐구요?


아무 말 없다는 것은 긍정한다는 또 다른 언어 아닌가요? ^^

난 해가 기울도록 농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역시 한갓진 날이 아니지만 그동안의 은혜에 보답한답시고 한 말이 고작 농사이야기였습니다.

이내 날이 기울었으므로 저녁을 부랴부랴 지어먹고 통창으로 꽃밭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들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보입니다.


매번 꽃들의 이야기와 향기에 취해 살던 이웃이 뭔 생각이 들어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지 몰라도 그 이야기가 싱겁지 않은 모양입니다.


내일은 산야초 이야기를 해줄까?....
산골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줄까?...
이제 재미붙였습니다.^^


지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는 말도 알지만 그것은 여기에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고 스스로 단정지었으므로 난 내일 산야초 이야기를 할 겁니다.

‘사랑이란 서로 상관없는 말에도 귀 기울여 생기돋게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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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풍경--농업연수원 교육을 마치고...
+   [산골풍경]   |  2009. 10. 11.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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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농업 연수원에서의 농업경영정보화 리더과정 교육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러니까 3달에 걸친 교육이었습니다.


1차에 3일씩이니 세 달동안 9일의 교육을 수원까지 가서 받았습니다.

뭐 어디를 가라면 못갈까마는 교통편이 불편한 울진에서 어디를 뜨려면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산골에서 새벽에 초보농사꾼영주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7시 50분 버스를 타고 수원에 내려 다시 택시를 타면 5천원정도의 거리에 연수원이 있지요.

돌아올 때의 방법도 딱 그리 했습니다.


지난 달만 서울로 갔다가 다시 울진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택했구요.

사실 어른이 되어서의 교육은 알고자 하는 욕구 반, 그리고 사람을 사귀는 거 반이지요.


어느 것이 더 중하냐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를 만족시켜주길 간절히 바라며 교육에 나서지요.

이번 교육은 초보농사꾼이 가려고 했는데 지금 받고 있는 교육이랑 겹치는 바람에 저를 등떠민 것입니다.


교육이란 무엇을 알기 위함도 있지만 좋은 벗들과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더 가슴이 뛰지요.

그런 인연이 소풍길에서 소중한 도반이 되기도 하고, 스승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복이었다 생각했습니다.


나와 갑장이 몇 사람있다보니 함께 기념사진을 박으려고 했는데 함께한 분들도 같은 한 장에 박혔습니다.


지금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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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다 잊어버리고 푹 쉬면서 영혼을 달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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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아버지로부터의 꿈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10. 11.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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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상세보기
버락 오바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오바마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1961년 8월 4일 아프리카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와 하와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낸...



자서전을 읽는 데에는 자신이 스스로 간 길에 대해 스스로 느낌과 반성, 후회, 그리고 알찼던 시간들, 환희에 찬 순간들을 직접 듣는다는데 큰 장점이 있다.
그래서 사실 자서전을 보면 읽고 싶어진다.

 

저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길을 갔을까...

다른 평가하여 쓴 글과 자서전은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시간을 투자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번번이 자서전을 읽으며 실망을 한다.


기대가 큰 탓도 있었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 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러다 대통령이 되면서 다시 세상의 관심을 받고 너도나도 오바마에 관련된 책을 출판하고 거기에 흥미와 관심을 보인 독자 덕분에 그에 관련된 책은 최소한의 비명을 지르며 팔려 나간 것으로 안다.

나 역시 두 가지 점에서 이 책을 샀다.

 

첫째, 선우, 주현낭자에게 어떤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불가능이란 말이 어디까지가 불가능인지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배우게 하고 싶어서였다.

둘째,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면을 더불어 배우고 싶어했던 터에 나랑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너인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에서 추천한 도서라서 더더욱 신뢰를 갖게 되었다.

 

먼저 선우가 보다가 시험기간이 되어 잠깐 놓은 사이에 내가 먼저 읽었다.
왜냐 하면 그래야 애들이랑 대화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대화를 이끌 수도 있지만 애들이 조금의 관심을 보일 때 내가 읽었으면 바로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읽던 책을 뒤로 밀치고 읽기 시작했다.
책의 분량도 만만치 않았다.


713쪽으로 이야기가 끝이 나니 말이다.

어떤 책이든 전혀 도움이 안되는 책이란 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들이 아까운 시간과 세상의 관심, 그리고 나의 관심과 책값 등을 고려하여 본다면 한 마디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누구나 책을 읽고 감동적이다 , 아니다의 기준은 없기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간단히 얘기를 하면 너무 세세하다는 거, 굳이 그런 내용이 없어도 되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많이 페이지를 갖고 있는데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점이 신기하다


 


자서전이면 어려서부터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의 사진이 단 한 장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표지에 실린 작은 사진 세 장이 그 책의 사진 전부다.

 

물론 사진이 많아야 자서전이고, 없으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서전은 말 그대로 내가 살아온 발자취이고 독자들에게 중간중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서전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선우에게 넌 다 읽지 않았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말했더니 안해도 될 말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단다.
최근에 읽은 또 다른 자서전도 엇비슷한 느낌이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 관련 책을 한 권은 사주려고 했었는데 다른 책을 골랐었다가 '지식인의 서재'에서 추천한 도서라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했었던 것이다.

 

그래도 선우, 주현에게 읽힐 생각이다.
지금 읽고 싶은을 먼저 읽고 나서 한번 둘러 볼 수 있도록 중간중간 냄새를 풍겨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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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풍경--산골소녀의 간식은 이렇게 익어갑니다.
+   [산골풍경]   |  2009. 9. 11. 16:27  

 

울진의 오지 하고도 산골귀농하고 좋은 점이야 억수로 많지만 그 중 하나는 간식을 들판에서 거저 얻는다는 거다.
들판의 주인은 자연...

산딸기며, 오디며, 인동꽃이며 째진 눈을 크게 뜨고 보면 하염없이 퍼가라고 가슴펴고 기다린다.

새로 집을 지으며 포도나무 두 그루 심었다.


첫해는 죽지 못해 몇 송이 열리더니 올해 뭣도 모르지만 "전지 가위 휘날리며" 가지치기도 해주고 말도 걸어주고 했더니
제법 송이가 탐스럽게 매달렸다.

처음에는 쥐젖만한 알맹이가 매달리기 시작한다.
작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자연의 그 신비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긴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면 지들이 먼저 이렇듯 작은 손으로 인사를 한다.
그 인사에는 다른 이기심도, 감정도 들어있지 않으니 그들에게서 순수함을 배운다.

그렇게 생색내지 않고 제 몸을 키우는 자연
이젠 제법 몸집이 커졌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조금씩 날씨가 을씨스러워지면 이들 또한 제 몸을 다시 한번 단장한다.
내가 보기엔 그들도 한 해 갈무리를 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기간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귀농 아낙 또한 밭에 엎드려 일하느라 잠시 관심을 못주었어도 이렇게 제 몸을 숙성시키고 있다.
사람보다 낫다.
이제 숙성이 다 되었다며 내게 귀뜸을 해준다.


거저 얻는 자연의 선물


왠지 손을 대고 후두둑 후두둑 떼기가 미안스러워 고맙다는 인사를 건냈다.
잘 먹겠다고,,, 우리 산골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이쁜 손에 너를 올려주겠노라고 얘기를 하고 땄다.

학교에서 돌아온 산골소녀에게 포도랑 개복숭아 세 조각을 빗어 건냈더니 감탄을 한다.
벌써 이렇게 익었냐고...

중3인 산골소녀 볼에도 두어 개 난 여드름 옆으로 기쁨이 돋아난다.

귀농...
이 아름다운 귀농의 선물을 산골소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 속 보석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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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귀농은 스스로 뻑가는 삶이어야 한다.
+   [산골편지]   |  2009. 9. 10.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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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7일

비가 온다.
아침부터 오는 비가 하도 반가워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한참 기분 째지게 걷고 있는데 발 아래 떨어진 꽃이 가슴 철렁하게 만든다.

봄부터 여름 내내 키만 키우며 나의 애간장을 다 태운 내 키만만 백합 한 그루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 마을의 대소사를 공지하는 이장님네 스피커처럼 동서남북을 향해 꽃을 피웠었다.

꽃밭의 다른 꽃들이 그를 우러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키에서 밀렸으므로...

그렇게 새하얀 얼굴로 산골가족의 가을 기분을 좌지우지하던 백합이 그만 땅에 떨어진 것이다.
사람이든 꽃이든 때가 되면 땅으로 가야 하지만 땅에 떨어진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
금방이라도 툭툭 털고 높다란 자기 자리에 다시 올라가 붙을 것만 같다.
너무 생생하게 소풍길을 접는 것이 섬뜩한 아침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이든, 꽃이든 죽을 때는 꼴이 영 말이 아니게 가는 것이 상식처럼 되다 보니 섬뜩하게 가는 꽃의 대명사격인 능소화 등을 보면 그렇게 소름돋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이 말짱한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혹시나 제자리로 올라붙을까 서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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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내가 좋아하는 고 김점선 화백의 책을 읽었다.
거기에 김 화백은 자뻑은 예술가가 되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아, 맞아. 이건 내가 생각했던 거랑 똑같잖아’ 하며 내 작은 다락방에서 책상을 쳤다.

김화백은 “나는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내가 그려논 그림을 바라보면서 자뻑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고백했다.

귀농이 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귀농한 것을 보고 시키지도 않은 주판알을 두드린다.
두 사람이 직장생활할 때 받은 연봉이 얼만데 손에 묻히고, 말이 작업복이지 너덜너덜한 그지같은 옷 입고 쉰 땀내 풍기며 얻는 돈이 얼마냐는 거다.

열심히 주판알을 두들겨 보라. 답이 나오는지...
왜 사람들은 손끝에서 현찰이 오고 가야만 그것을 벌었다고 생각할까?

사람이 돈을 밝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으로 집, 자동차, 명품옷 등을 삼으로써, 몽땅 끌어안음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행복은 상대적이라 남들 앞에서만 빛난다.

그러다 보니 돈=행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오고 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행복’ 뭐 그런 말일 것이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말해, ‘행복’하면 장땡 아닌가?
내가 귀농에 성공했다는 이유는 외형적, 상대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행복을 일일이 주판알을 튕기지 못하니 숫자로도 나타낼 수 없을 뿐이다.
귀농 전, 도시 살 때 최대의 고민 중 하나가 아빠와 애들과의 관계였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아빠가 워낙 바쁘다 보니 애들이 아빠 얼굴 한 번 보려면 2박 3일 걸렸다.

그러니 애들에게 아빠는 어려운 사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귀농하고는 아빠와 아이들이 친구가 되었다.
그것은 고딩, 중딩이 될수록 더더욱 진한 가족애를 느낄 정도로의 친구이자, 아빠이자, 멘토이자, 그 이상의 관계(이건 가족도에도 나오지 않는 관계이다)가 된 것이다.

귀농이 준 선물이다.
그것을, 이 가슴 터지도록 행복한 것을 돈으로 환산이 될까.

그 다음에 자연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같은 잣대로 닥아서는 스승이다.
인간처럼 지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고 늘 같은 온도로, 같은 색깔로, 같은 모양으로 닥아서는 스승 말이다.

언제 봐도 그 모습인 별을 보면 사람이 변함없어야 함을 배우고,
새초롬했다가, 만삭이 되었다 하는 달을 보며 아이들은 ‘채움과 비움‘에 대해 배우고,
철철이 소리 소문 없이 피는 꽃들을 보며 침묵과 때를 가릴줄 아는 지혜를 배우고,
산골 옆으로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배로 해야 함을 배우고,
봄이면 노오란 송홧가루까지 날려주는 센쓰까지 지닌 소나무를 보면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

이걸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 있는가.

생각할수록 복에 겨운 삶이다.
그렇기에 귀농이야말로 자뻑해야 한다는 거다.

귀농하여 얻은 가족간의 사랑에 소름끼치도록 뻑 가야 하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자연의 혜택과 가르침에 뿅 가야 한다.
자뻑하는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귀농’은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귀농한 사람이 스스로 뻑 가지 않고 도시에서처럼 돈으로 우열을 가리려 든다면 당장 보따리 싸서 되돌아 가야 한다. 뭐든 돈으로 환산되는 회색의 세상으로...

고딩인 아들 선우와 초보농사꾼이 서로 팔을 베개 삼아 주고 하더니 우당탕 난리가 아니다.
끌어 안고 ...
귀농 전 같았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모습이다.

귀농은 자뻑하는 삶이라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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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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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니가 이렇게 컸구나."
+   [산골편지]   |  2009. 9. 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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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6일


여름백수(여름방학) 기간 동안 서울의 네째 이모네 집에 갔던 산골소녀 주현 낭자가 어제 산골로 돌아왔다.
이모네 집에서 하루 전날 철수(?)하여 친할머님 댁에서 하루를 잔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 서울갈 때부터 계획한 거란다.


이제는 할머님댁에 가라 마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챙긴다.
짐이 많아 힘들텐데도 할머니댁에 왔다고 전화가 왔다.


할머니와 하룻밤을 자고 산골로 오는 버스를 탄 것이다.
면까지 초보농사꾼이 데리러 갔다.

백산님 부부가 와 있었기 때문에 저녁을 함께 먹고 늦은 시간에 헤어졌다.


수요일에 '안동교구 귀농가족모임'을 하늘마음농장에서 하기로 되어 있어서 준비도 해야 하기에 내 일을 계속 하는데 손님이 가시자마자 주현이가 작은 꾸러미를 내민다.

풀어 보니 옷이다.


눈물이 핑 도는 옷이다.

옷이 비싸서가 아니다.


그 옷은 사연이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사연...

지난 주에 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갔었다.
주현이는 이모네 집에 먼저 가 있었고, 볼일을 보고 시간을 내어 주현이랑 쇼핑을 했다.

옷이라도 사준다고 하면 무조건 됐다고 하는 주현이.


한창 멋부리고 싶은 나이에 철이 일찍 들어 이것 저것 사달라고 한 적이 없는 딸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라 주현이 눈이 가는 옷을 사주었다.


그리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쇼핑을 하는데 귀여운 옷이 있기에 한번 입어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가게를 나왔다.


옆에서 엄마 왜 안사냐고 하는 주현이...
"음, 뭐...작을 것 같기도 하고... " 그렇게 얼버무렸다.


다음 날 주현이와 헤어져 산골로 내려오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전철을 탔는데 문자가 왔다.


"엄마, 어제 그 옷 엄마에게 어울리던데 왜 안샀어?"

"음, 좀 비싸더라."
며 그땐 생각없이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주현이가 그게 어제부터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물어오는 거다.


말수가 많지 않은 놈이라 이 정도면 많이 생각하고 던지는 질문이다.

그 문자를 보는데 어찌나 뭉클하던지 전철 안에서 눈물이 주루룩...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이럴 때 제어기능, 통제기능의 약발이 떨어진다는 거다.

나는 참으려고 해도 눈은 그 눈치를 못챈다.
주루룩...


손수건으로 땀닦는 시늉을 하며 눈을 꾹꾹 눌렸다.
그러나 마음은 수건으로 꾹꾹 누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컸구나....'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산골에서 어디 갈 일도 별로 없고, 이모들이 사보낸 옷만해도 넘쳐난다...."등등,

그렇게 내가 산골로 왔고 어제서야 주현이가 산골로 왔다.


그런데 손님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선물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랑 쇼핑을 했던 거기까지 한참을 가서 바로 그 집을 찾아 그 옷을 사온 것이다.
내가 입어보고 그냥 나왔던 그 옷을...


다른 사람이 사갈까봐 점심도 안먹고 부랴부랴 다음날 거기에 가서 샀단다.

"엄마, 이 옷 맘에 들어했지?"


이제 엄마 마음속까지 투명하게 읽고 그 마음에 보탬이 되려 행동하는 주현이..
중3이면 묻는 말에 대꾸도 안하고, 부르면 지 방에서 문도 안열고 왜 그러느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할 나이라는 중3.


"엄마, 입어 봐."


난 손님이 가시고 행사 준비로 빨래를 삶고 하던 손을 놓고 옷을 아이처럼 입어 보았다.
아주 잘 맞는다며 우리 주현이가 더 좋아한다.

주현이를 안아 주었다.


'우리 주현이 애기 때, 우리 주현이를 맡아 길러주셨던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했을 때, 그럴 수 없다며 사표를 내던졌던 때, 그 때 다짐대로 우리 주현이를 키웠는지....


내 일도 중요하고 직장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따사롭게 잘 키워야 한다는 다짐으로 사표를 던졌던 그 다짐대로 우리 아들, 딸을 키웠는지...

미안하기만 한데 너는 커서 이렇게 엄마 마음을 읽는구나.
나 너의 마음을 얼마나 읽고 응답해 주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거봉포도가 목구멍에 걸린듯 순간 꽉 막힌다. 목구멍이...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산골의 두 남자 박씨가 막 야유를 보낸다.


"주현아, 아빠도 이쁜 옷 입고 싶은데...."


"주현아, 오빠 선물은 없냐? 이모들이랑 할머니한테 앵벌이해 온 용돈 반띵하자.^^"며  데모를 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늦은 밤에 차를 마셨다.


네 잔의 찻잔에 그려진 핑크빛 꽃들처럼 가슴 속에는 들이 만발한 화원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귀농하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이 있었을까....


아마도 초보농사꾼은 애들 볼 시간도 없이 빠듯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아이들이 자고, 초보농사꾼도 자는 시간.


혼자 깨어 딸아이가 부랴부랴 다시 가서 사온 그 옷을 또 입어 보았다.
그곳으로 뛰어가느라 헐떡여서인지 옷에서 딸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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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밥상--세상에서 제일 쓴 골뱅이 무침
+   [산골밥상]   |  2009. 8. 31. 13:03  

"엄마, 왜이렇게 쓴 거야?

"엄마, 어디서 또 무슨 소리 들으신 거지?"

"그래두 먹어지. 내가 좋아하는 골뱅이가 들었으니... 끙(애들의 이 앓는 소리)~~~ㅜㅜ"

니들이 그러면 나도 머리를 쓰지...

요즘 신종플루때문에 난리다.
무엇이 원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지만 중요한 것은 현대인들의 면역체계가 엉망인 것은 사실이고, 그것만 강하게 하면 어떤 질병에도 잘 견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현대인들 아파트 생활, 더군다나 듣기로는 요즘은 창문도 열 수 없게 지어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로 살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 숲의 소리나 냄새, 냄새 등을 경험하는 일은 드물다.

머리는 영악해져 자연을 대체할만한 것들은 쏟아져 나오나 그것들이 처음엔 관심을 받지만 이내 신통치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자연을 대체할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장담한다.
면역체계를 튼튼히 하는데 자연 이상 없다고 본다.
신종플루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쓴 야채를 많이 먹으라고들 한다.

하여간 쓴 것을 산골가족들에게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야콘밭의 풀을 평정하다 말고 내려왔다.
부랴부랴 내려와 호미들고 텃밭으로 올라가니 초보농사꾼이 뭔 일인가 한다.

밭이며 들에서 씀바귀류를 뜯었다.
그리고 치커리와 깻잎, 민들레 잎파리 등도 수북이...

집에 들어와 흐르는 물에 대충 씻으면 준비 끝...

이 쓴 것들을 어떻게 산골가족 입에 술술 넘어가도록 한다냐??
이게 숙제다.

그렇다면 산골가족이 좋아하는 골뱅이를 이용하자.
골뱅이 무침에 치커리 정도는 들어갔지만 이렇게 쓴 것들이 대량 투입되기는 첨이다.

들풀(?)을 썰고, 고춧가루에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다.
다진 마늘에 설탕 대신 효소 원액을 넣고,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했다.

식탁에 올라온 골뱅이 무침을 보더니 모두 환호성을 지른다.
서둘러 한 입씩 입에 넣는 산골가족...
표정이 말씀이 아니다.

그러더니 위의 대사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 인사해야 되, 이렇게 좋은 음식 주니까... 이것들아~~(웃찾사 버전)"

아이들과 그런 대화를 하니 초보농사꾼이 웃는다.
쓰거나 말거나 그날 접시를 딱딱 긁는 소리로 저녁 식사가 끝났다.

그럼 내 임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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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의 미니 번개
+   [산골편지]   |  2009. 8. 25. 17:50  


2009년 8월 10일

서울에 갔었다.
두 번째 책 내는 일로 출판사도 가야 했고, 과천에 있는 농수축산부에 들릴 일도 있고, 다른 일도 볼겸해서 나섰다.

산골을 한번 뜨려면 이런 저런 일들이 걸려 미루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다.
이번 서울행은 이틀 예정으로 떴는데 사흘이나 있다가 오게 되었다.
우리 산골소녀 주현 낭자랑 시간을 보내느라 그랬다.
오랫만에 갖는 둘 만의 쇼핑 시간.

무엇을 사서가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도 말하고, 우리 주현이가 좋아하는 것도 말하고, 그렇게 몇 시간 함께 한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일을 보는데 미니 번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하늘마음농장을 사랑하는 분들이 두 번의 번개를 가졌었다.
한 번은 '청계천 번개'였는데 그때는 우리가 참석도 하지 못했는데들 모이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 후기를 읽고 얼마나 고맙고, 가슴벅찼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 번개 때에는 부부 중 한 사람만이라도 꼭 참석하리라고...

그리고 한참 후에 '삼성동 번개'가 있었다.
그때는 초보농사꾼이 참석했었다.
고마운 분들이 많이 나오셨고, 초보농사꾼도 돌아와 설명해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이른 봄에 울진 산골에서 번개를 했었다.
그 바쁘신 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하룻밤을 보내시고 가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울진 번개 때에 마침  일이 있어 못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셔서 늘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살았었다.
그러다 이번 서울에 갔을 때 문득  여름이 가기 전에 못오신 분들을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일을 보면서 한 분 한 분께 문자를 드렸다.
치자꽃님, 산천어님, 김요셉 교수님, 김남걸님, 은행장님, 굼뱅이 엄니, 문영미님...

메히틸다 언니는 다른 언니들과 모임을 갖기 때문에 함께 오는 것이 나을 것같아 문자를 생략했다.
그리고 당수님께 이런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고 문자로 보고도 드렸다.^^

사실 갑자기 생각한 일이라 분명 내가 나쁜 머리에 기억 못하고 빠뜨려 발등을 찍을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건망증이 심한 거야 홈의 사랑방에 오시는 분들 모두 아는 사실이라 "생긴대로 살자!"를 외치며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일이 있어 어렵다고 하셨고, 김요셉 교수님은 회답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토요일에 산골로 오신 분이 김남걸 님 부부와 문영미님이었다.

문영미님은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
면에 있는 곳에 내리기로 하여 내가 마중을 나갔다.

정거장에서 우린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가방이 무겁길래 집에 와 보니 가방안에서 밑반찬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산골아낙이 손님맞이에 바쁠까봐 밑반찬을 열 가지 정도 가지고 왔고, 시계가 하루 전날 고장나서 초보농사꾼이 낭패를 보았는데 어찌 그리 귀신같이 알았는지 이쁜 시계와 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가지고 왔다.
버스를 갈아타고 불편했을텐데...생각하니 마음이 찡~~~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김남걸 님 부부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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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미님은 장갑끼고 호미들고 마당의 풀을 뽑기 시작하는데 정말 '개가 핥은 것'같았다.
어찌나 손을 잽싸게 놀리는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말끔해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이 산골에 왔는데 자연이라도 많이 보여줘야 하는데 풀을 뽑고 있다니...
서둘러 소광리로 '500년 된 소나무'를 보러 가자고 했다.
소광리로 들어서서부터 울진 금강송에 감동하는 영미님,...

쭉쭉 뻣은 소나무들과 흙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지러지듯 가을을 준비하는 소광리 계곡에 잠시 차를 세우고 맑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손을 담그며 서로 감탄했다.

그렇게 돌아오니 김남걸님 부부가 도착해 계셨다.
저녁은 데크에서 먹기로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래 저녁 메뉴는 오갈피와 뽕나무를 넣은 닭백숙을 하려고 했는데 닭 잡아 주는 곳에서 하루 전에 주문을 했어야 했단다. 엊그제만 해도 보는데서 잡아주드만...
벌써 오갈피 나무와 뽕나무를 톱으로 베어다 놓았는데 헛수고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메뉴를 삼겹살로...
안개비가 내리는데도 모두가 밖의 데크에서 먹자고 하여 우리는 돛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구웠다.
김남걸님은 초보농사꾼이 좋아하는 1회용 생맥주 통과 여성팬들이 좋아할 와인과 맛난 꽈자, 집에서 신는 신발, 내가 좋아하는 빵(^^) 등을 사오셨다.

선우와 초보농사꾼이 그런다.
얼마나 빵을 좋아한다고 광고를 했으면 오시는 분들마다 빵을 사오시느냐고...ㅠㅠ

그렇게 소주잔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산골이야기를 들으시고, 사랑방 손님들을 떠올리며 늦도록 식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김남걸님께서 우리 산골가족을 생각하시어 백암온천에 숙소를 정해놓고 미리 돈도 지불하시고 가방 하나도 그곳에 두고 오셨다는 거였다.

산골에서 모두 같이 자면 되는데 왜 그러셨냐며 볼멘소리를 했고, 결국은 숙박비를 포기하고 산골에서 주무시기로 했다.
가방은 내일 아침 일찍 찾아서 다시 산골로 오시기로 하고...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사랑방 손님들은 어쩜 그리 눈매가 선하디 선하신지...
오래 전에 만난 인연같고, 오빠같고, 동생같고 그랬다.
그래서 한없이 든든하고 ...

다음날, 김남걸 님 부부는 백암온천에서 가방을 찾아 오셨다.
어제 산골을 둘러보신 후, 집 꼭대기에 말벌집이 있다며 철거해야 한다고 한 걱정을 하시더니 에프킬라 두 통을 사오셨다.
그리고 초보농사꾼과 말벌집 소탕작전을 개시!!!

산골의 집은 워낙 지붕이 높아 아무리 높은 사다리를 펴도 해결이 안되다 보니 제일 긴 철 장대(하우스 대)로 해결하기로 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비옷을 입었다.
업무분장도 했다.
초보농사꾼은 엄청 긴 철 작대기로 벌집을 털어내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김남걸님은 에프킬라 두 통을 쏘면서 벌이 벌떼처럼 사람에게 달려들 것을 막기 위해 에프킬라를 양손으로 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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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붕이 워낙 높기 때문에 철 작대기로 여러 번 휘둘러서야 커다란 말벌집이 떨어졌다.
벌집이 공격을 당하자 말벌들이 주위의 두 침략자(?)를 향해 달려들기도 했으니 김남걸님의 쌍권총에 모두 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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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은 다리 아래로 , 머리 위로 달려들었지만 김남걸 님의 그 예리한 눈과 판단력과 지혜에는 꼼짝을 하지 못했다.
저렇듯 2인 1조로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또 사람만 두 명 있다고 가능한가??
아니다.

칼같은 판단력과 작전, 그리고 민첩한 행동 등 3박자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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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이 성격과 달리 말벌집 흔적을 말끔히 털어내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달 쯤 전에도 말벌집을 그 자리에 지었었다.
초보농사꾼과 선우가 위험을 부릅쓰고 소탕을 했었다.
그런데 그 말벌집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많은 말벌들이 우와좌왕하느라 난리다.

왜 안그렇겠는가.
입장바꿔 생각하면 똑같지.

그렇게 떨어뜨리고 잽싸게 집에 도망들어와 밖의 부서진 말벌집을 구경하고 다음날 보니 그 큰 말벌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다.

아들 선우 말이 자연물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며 감탄한다.

그런데 조금의 흔적이 남아있는 바로 그곳에 예전 것보다 더 큰 말벌집을 지은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짓는단다.

아들 선우가 한번 재해를 당하면 저런 생명체들은 다음에는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재연을 한단다.
어디서 알았냐고 하니 책에서 보았단다.
책 값 하는 선우 ㅎㅎㅎ
주현 낭자는 서울 가 있는 관계로 이런 모습을 못보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쉽고 그립고 그랬었다.


여하튼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서 두 남자들이 소탕작전에 몸을 바치는 동안 집 안에서 현관문을 꼭 닫고 통창으로 그 생생하고 스릴있는 ‘말벌소탕작전’을 관람(?)했다.




 

그 안에서는 통통한 애벌레가 쏟아져 나왔다.
정말 신기하다.
말벌집 구조도 신기하고, 시치로폼처럼 생긴 하얀 것들이 저들이 만들 공간이라는 사실도 신기하고, 그 안에서 애벌레가 살아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다


나머지 벌들은 집이 쑥대밭 되었으니 웬 놈들이냐며 웽웽거렸고, 그 기세를 노련하신 김남걸 님이 에프킬러로 짓눌렀다.

더운 날 비옷을 입고 그 놈들을 소탕하느라 두 사람 모두 땀이 범벅이 되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신 김남걸님은 다른 곳에 또 벌집이 있는지 늘 주의해서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대단위 작전이 끝나고 모두 소광리로 출발.
울진의 황루시아 가족(채영 아빠, 용선이, 채영 공주)를 소광리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죽변항에서 회를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회를 찾아 싣고서...
백산님네 부부는 영양의 수비에 펜션을 돌봐야 해서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모두 소광리 끝에 있는 500년된 소나무를 보고 소광리 계곡과 소나무 숲길 등에 감탄을 하며 둘러보았다.
벌써 계곡의 돌에는 돌에 붙은 잎사귀에 단풍물이 들기 시작했다.
어찌나 가슴으로 달려드는지...

소광리와 불영계곡이 만나는 곳에서 발을 담그고, 루시아가 사준 옥수수를 먹으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 산골로 돌아왔다.
김남걸님 네가 먼저 가셔야 한단다.
죽변항에서 사온 싱싱한 회 맛도 못 보시고 한 분은 부산으로, 한 분은 안양으로 가셔야 했기 때문에 먼저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루시아네 가족과 문영미님은 좀더 이야기 시간을 갖다가 문영미님이 서면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나와 차에 올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룻밤을 같이 했는데 이별의 끈은 왜그리 길고 질긴지...
면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서로의 손을 잡았다.
영미님은 좋은 시간 보내고 간다고 했지만 먼 길 온 영미님께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손이 왜 그리 차갑던지...
스웨터라도 입혀 보낼 것을...

버스가 도착했고, 차창으로 손을 흔들고는 버스 뒤꽁무니만 바라보았다.
불영계곡을 돌아 집으로 오는 길...
차를 몇 번이나 세우고 마음을 눌렀다.
버스를 갈아타며 돌고 돌아 온 분들...
영미님에게 문자를 보내고 산골로 돌아왔다.

황루시아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루시아 가족 역시 늘 우리 산골가족에게 든든한 위로자인 사람들.
채영 아빠는 어쩜 그리 착한지(물론 루시아도 착하구..삐지지 말길...), 초보농사꾼에게 형님, 형님 하는 모습이 그리 이쁠(?) 수가 없다.
그 모습은 귀농 초에 만난 모습 그대로다.
세월이 변해도 늘 한결같은 마음 그대로인 사람.

루시아네 가족이 떠나고 나의 사랑하는 인연들이 산골을 다 빠져 나간 시간...
한참, 꽃밭 주위를 서성였다.
코스모스도 손을 내밀고, 노란 서양국화도 길게 허리를 굽혀 내 치맛가락을 스치며 아는체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위로방법이다.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의 길이 어떤 발자국을 남겨야 하는지,
내 살아가는 향기가 들꽃처럼 어떤 잔잔한 파장을 남겨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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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   [산골편지]   |  2009. 8. 13. 14:00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둘째인 딸 아이를 키워주시던 친정 엄마가 몸이 안좋아져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게 되었었다.
남에게 맡겨 보려고 사람도 구해보았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서 그만 울고 나왔다.


어떻게 남에게 이 어린 아이를 맡긴단 말인가.
그 생각으로 그 집을 나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절대로 남에게 이 어린 것을 맡길 수는 없어...'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 선우는 언니가 봐주다 시어머님이 봐주시지만 주현이까지는 어머님께 너무 어려운 일이고 ...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한 시간이었다.


그 결정은 나만이 할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 두는 일이야말로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남편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전공살려 일하는 직장을 그만 두라고 하지도, 그렇다고 남에게 아이를 맡기라고도 하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남편의 조언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결정은 내 몫이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못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 판...
그러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전공도 살릴 수 있었고, 직장 분위기도 좋았기 때문에 그 결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온 가족이 말렸다.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데 이제 왜 사표를 내느냐고 다 뜯어말렸다.
친정 아버지는 그렇게 대학원까지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냈더니 사표를 내느냐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결국 사표를 냈다.
얼마나 울었는지....


함께 근무했던 언니들도 의외의 반응이었다. 나의 사표에 대해...

그러나 내 생각으로 그것이 최선이었다.


꿈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던 시기에 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내가 올라가야 할 계단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사표를 낸 시기가 1995년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그만 둔 직장을 이번에 서울 갔을 때 들렸었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도 집에서 회사 일의 일부를 했었기 때문에 광화문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에 갈 일은 많았었다.

직장 그만두고 처음 한국생산성본부에 갔을 때, 그 현관에서 울었었다.
가슴이 뭉클뭉클하고...



그렇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남은 삶은 내 의지대로 산다며 오지 산골로 귀농하고는 한번도 못갔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뻔질나게 갔었으면서도 거기까지 들릴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TV '30분 다큐'를 보고 선배 언니가 얼굴 좀 보고 살자며 전화를 한 김에 일을 보다말고 광화문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은 벌써 머리끄댕이를 다 끄들려 놓은 것처럼 어수선했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경복궁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안국역에서 내려 한국생산성본부를 찾았으니...
다시 전철을 타고 내리니 선배 언니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하고 입사하여 결혼하고, 둘째 낳고 나서까지 다녔던 한국생산성본부.
그 현관을 보니 다시금 눈가가 촉촉해지고...

지하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언니들이 사준 커피랑 빵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귀농이야기를 하고, 직장이야기도 듣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다음은 빌딩으로 올라가 전에 국제부 시절, 같이 근무했던 상사분도 만나 보았고, 교육훈련사업본부에 근무했을 때의 동료도 만나 보았다.
거의 대부분은 많이 사퇴를 하여  얼굴을 몰랐지만 같이 근무했던 분들을 보았을 때는 온몸이 전기가 오는듯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추억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마지막 회식을 하고 왔을 때, 우는 나를 위로하며 남편이 말했다.
누구든, 어떤 위치에서든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은 거라고...
난 그 말을 흘려들었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그때 그만두길 잘했다고...


엄마 노릇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좋은 결정이었다고....

그렇게 그만 두고 나서 한번도 직장그만 둔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다만, 아쉬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산골로 귀농하여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은 지금 세상을 다 끌어안으듯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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