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말 없이, 날개 없이 떨어지는 복사꽃을 보며 나도 어떤 행위를 하면서 그렇듯 조건 없고, 뒷말 없어본 적이 있는가 되물어 본다.
대낮에는 땅에 코를 박고 내 얼굴로 흐르는 땀냄새를 양념으로 맡다가 부은 얼굴로 집으로 향하는 시간, 그 시간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지 모른다.
요즘 비노바 바베의 말이 자주 생각난다.
“내가 말하는 명상이란 기도와 탈키(또는 차르카) 물레질을 모두 의미하는 것이며, 탈키 물레질은 행동으로 표현한 명상이다”라고 했다.
그렇듯이 나 또한 대지에 코를 박고 챙 큰 모자 안이 우주인 듯 그 안에서 명상을 하고, 땀을 흘리다 보면 하루 해를 등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여름안거를 마치고 나서는 스님의 발걸음만큼 가볍다.
그렇게 들을 내려와 집으로 향할 때 두 농부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아는체하는 개복숭아 나무.
뿌연 어둠이 내리는지, 돋보기를 많이 쓴 탓에 눈이 맛이 갔는지 눈깔빠지게 들여다 봐도 복사꽃의 선명함은 맛보지 못했다.
내가 그런 성실하지(?) 못한 처지로 바라보아도 연한 핑크인지, 인디언 핑크인지, 허여멀건 핑크인지 하는 복사꽃잎이 농부를 위해 하늘하늘 땅으로 자세를 낮춘다.
나도 누군가에게 뒷말없이, 조건없이 행동한 적이, 자세를 낮춘 적이 있는지 괜시리 미안스러워지는 밤이다.
오늘은 귀눈이 콩만한 복사꽃이 내 혼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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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고 두 해인가 모를 심어봤다.
집이 딸린 6천평 땅 중에 세 다랑이나 되는 논이 있었다.
그것도 집 바로 앞 황금위치에...
논농사는 밭농사와는 달리 물에서 하는 일이다.
우선 봄에 모심기를 할 때면, 엉덩이를 하늘로 높이 치켜 세우고 모 몇 가닥을 다섯 손가락을 오무린 끝에 살포시 쥔 다음 땅에 박아야 한다.
이 때, 힘의 분배가 절정을 이루어야 한다.
너무 깊이 박으면 모의 모가지까지 물이 차서 죽게 된다.
그렇다고 힘을 빼서 꽂으면 내 손이 물 속을 빠져나오자마자 모도 얼떨결에 따라나와 수영장의 튜브처럼 둥둥 배회하고 다닌다.
내게는 수능만큼 어려운 모를 하나 심고 나서 다음 모를 심기 위해 발을 빼려면 논바닥 밑에 귀신이 달라붙어 있는지 도통 발목을 잡고 놓아줘야 말이지.
어찌어찌 허벅지에 힘을 주고 한 발을 빼면 그 옆 발이 안빠지네.
그렇다고 달랑 모 하나 심고 쳐들었던 엉덩이를 원위치시키고 직립 인간임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꼿꼿이 서서 발 빼는 작업에 있는 힘 다 빼고 언제 또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옆 모를 심는단 말인가.
그래도 자존심 하나는 꼿꼿해서 허리를 펴지 않고 눈깔빠지게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경배를 했었다.
난 모를 잘 심을줄 알았다.
왜냐 하면 난 손이 잽쌌기 때문이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면 손이 안보일 정도로 실력을 발휘해 왔던 전력으로 보아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내기를 하기 전 옷맵시부터 프로는 다르다는 되먹지 않은 생각으로 여물게 챙겨입고 의기양양하게 ‘논으로 돌진’이라는 초보농사꾼의 명령이 떨어지길 모가지에 힘주고 기다렸었다.
그러나 사단은 논에 들어가자마자 났다.
일단 들어가면 발이 빠져야 잰 손을 놀리든지 말던지 할게 아닌지.
어쩌다 발이 떨어진다 해도 물 속의 모간 간격이 영 어른거려 그것 눈대중치느라 또 분기탱천하던 사기는 논바닥에 패대기쳐지기 일쑤였다.
물밖 눈대중은 귀신인데 물 속 눈대중은 죽어도 안되었다.
르노아르는 장미를 그리다가 잘 안되면 장미꽃잎을 따서 먹었단다.
혹여 그러면 잘 그릴까해서란다.
그때 심정이라면 모라도 씹어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점점 사기는 떨어지고 하늘로 쳐든 엉덩이 중간은 부러질 듯 아프고 이래저래 내 맘대로 안되니 거의 논바닥에 얼굴을 닿을 듯 쳐내린 탓에 피가 몰려 건드리기만 해도 분수처럼 사방으로 피가 튈 것같았다.
혼자서도 내 자신을 수습못하고 있는 판에 산통을 깨는 쪽은 꼭 초보농사꾼이었다.
왜 옆으로 이동을 못하고 한 자리에 북박이라느니,
모심던 선우 엄마 뒷간 갔느냐느니...
다른 아주머니들도 웃겨 죽는단다.
안그래도 단순반복 작업을 잘한다고 되어 있는 나의 이미지에 금이 간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초보농사꾼까지 가세를 하니 그 말의 모서리에 찔려 논바닥에 박은 종아리에서 거머리에 물린 것처럼 피가 날 것같았다.
사실 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나의 손놀림을 믿어왔기에 그 상심은 아주 컸다.
이쯤되면 눈에 세운 핏대와 자존심을 누그러뜨려야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성질머리와 자존심은 뭣같아서 그러고도 논에서 오래 버텼다.
그 후로 난 논에 들어가지 않았다.
모심는 날이 닥아오면 나쁜 머리를 총동원하여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물 밖의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핏대를 세워가며 초보농사꾼 귀에 넣어주었고 단순한 그는 어렵지 않게 세뇌되었었다.
어쨌거나 논농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웃 할아버지가 당신이 들어갈 묘자리에 물길이 지나가면 안된다고 우리 논으로 들어오는 보를 막아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는 멀쩡히 그 가묘자리로 물길이 지나가도 전 주인이 논농사를 잘 하셨다는데 우리가 뭣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런 일이 생겼다.
초보농사꾼은 말싸움이 싫어 논을 닫아 걸었다.
그것으로서 세 다랑이 되는 논은 논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봄이다.
야콘을 심고나서 고추를 심을 시기가 되면 겨우내 물기 없이 뽀송거리던 마을 논에 물이 찰랑찰랑거리게 된다.
그리고 논을 삶는다(논을 간다는 표현을 이곳에서는 이리 표현한다.), 모를 심는다 분주해진다.
올해는 보무도 당당하게 이웃분의 논에 모를 심어드릴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논 주인이 ‘거부의사’를 밝혀올까 두렵다.
혹여 예전 나의 실력(?)을 기억해내신다면 그럴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
솔직히 모심는 실력은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니까.
내일은 야콘즙 포장작업이나 그 재다는 손으로 실력발휘해 가며 쌩소리나게 해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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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