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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 _해당되는 글 18건
2011.03.12   귀농편지,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2011.03.10   귀농편지, 산골의 다락방 풍경 
2011.01.25   귀농편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 
2010.04.28   귀농편지, 달밤의 체조 
2010.04.17   귀농편지, 그 맛을 아는 사람이 좋다. 
2010.04.15   귀농편지-집터의 좋고 나쁨은 내가 만든다 
2010.04.13   귀농편지, 안그러면 절단이다. 
2010.04.09   귀농편지 마음이 급하다. 

 

귀농편지, 조금만 더 배려한다면...
+   [산골편지]   |  2011. 3. 12. 23:31  

풍경소리가 하도 은은하여 저녁상을 물리고는 에라 모르겠다 설거지도 안하고 마당에 섰다.
엊그제만 해도 눈이 내리고, 북풍한설 모진 바람이 4월 끝에도 산골을 차지하고 있었다.

 

올해는 유독 추위가 물러나지 않고 끈덕지게 서성이는 것이 꼭 인간사처럼 느껴진다.
물러날 때를 잘 모르는...

 

이런 봄추위로 인해 농사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이틀 전의 그 매서운 추위는 소리소문도 없이 가고 훈훈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 들어와 앉는다.

 

은은한 풍경소리만으로도 감지덕지한데 허스키톤의 개구리 한 마리만 잠을 자지 않고 은은히 우는 풍경소리에 후렴을 붙여주고 있다.

이런 때만큼은 방금까지 머리를 쥐락펴락하던 오만가지 생각들이 소나기처럼 후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질 것만 같다.


**************************

얼마 전에 고3 아들과 학벌 이야기를 했는데 뜬금없이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내 얼굴이 뜨거워져”한다.
이유를 물으니 학기 초만 되면 부모님 학벌을 조사한단다.

 

어느 교사는 눈감으라 하고 해당 사항에 손을 들라 하지만 대부분은 바로 손을 들라고 한단다.
어느 해인가 “부모님이 초등학교 나온 사람?” 하는 말이 떨어지자 한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슬그머니 손을 들더란다.
다음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으로 이어지고...

 

그 당시에도 선우는 엄청 실망했다는 말을 했었고 그런 아이에게 ‘그래 그건 선생님 생각이 짧았구나’하고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라도 식혀주고 싶어 서둘러 진정 분위기를 잡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이는 같은 톤과 불에 데인듯한 얼굴색으로 반응을 한 것이다.
선우 말은 그 친구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냐는 거다.

 

이번에도 난 아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친구의 마음까지 헤아려주는 아들 녀석이 기특하기도 했다.


요즘 어른 중에는 ‘우정’을 개도 안 물어가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던데...
자연과 책이 스승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23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같은 내용이 나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중 어느 부모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
“아이들이 학기 초마다 창피해했다. 부모 학력을 알아야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신문 내용에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 생활지도에 필요하다’며 부모 학력을 조사서에 포함시키고 있다는도 되어 있었다.

부모학력이랑 아이의 학습수준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부모가 학력이 높아도 아이는 엉망인 경우도 있을 것이고, 부모의 학력이 낮아도 수려한 가정교육을 받은 아이도 쌨을 것이다.

또 조금만 아이 입장에서 배려한다면 그런 홀라당 발가벗겨진 방식으로 묻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 이야기를 아는 엄마 둘과 만았을 때 대충 꺼냈었다.


그랬더니 그 엄마 너무나 태연하게
“선우엄마는 학벌도 괜찮으면서 뭘 신경써요.”한다.

 

그 말 때문에 두 번 뒤로 발라당하는줄 알았다.
나만 아니면 되는 사회, 내 자식만 아니면 되는 사회 풍토가 아주 짙게 깔린 모양이다.


과연 그 부모는 아이에게 ‘배려’라는 말을 입에 담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중요한 항목 중 하나가 난 ‘배려’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배려 해도 그만, 아니면 말구 하는 항목이 아니라는 말이다.

 

배려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인성’을 좌우하는지 안다면 그렇게 대놓고 조사를 할까.
나의 부모세대는 먹고 살기도 어려운 세대였다.

 

그랬기 때문에 당신 목에 거미줄이 쳐져도 자식 머리에 먹물을 많이 넣어주어 내 자식이 꿀리지 않게 해주는데 목숨을 걸었었다.

나의 부모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내 머리에 먹물을 넣으시느라 등골이 빠졌었다.


그러다 보니 그 먹물로 모든 것을 평가받았던 세대가 우리 세대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그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당사자의 능력, 인간성, 도덕성, 올바른 가치관 등으로 평가되는 시대는 아직도 먼 이야기인가보다.

그리고 사람들은 겉으로 번지르하게 보여지는 것에 눈이 뒤집어진다.


그러다 보니 돈과 관련이 되면 안에서 빛을 발하는 것들은 씹던 껌 뱉듯 미련 없이 뱉어버린다.

안으로 안으로 배려하는 마음이, 벗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침묵 속에 빛나는 진실과 도덕성 등이 값진 보석으로 남아야 하는데 말이다.

 

자식을 둘이나 키우면서 앞에다 데고 침튀길 일인지 돌아보는 시간이다.

저녁 훈기가 온화하다.


초보농사꾼이 커다란 나무를 나무보일러 아가리가 터지도록 집어넣더니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나무타는 구수한 냄새가 들어와 나의 뜨거워진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편지, 산골의 다락방 풍경
+   [산골편지]   |  2011. 3. 10. 17:35  



“그들은 그곳에서 살고, 창조하고 고통받았다.
스스로 택한 고독과 글을 써야만 한다는 긴박감이 언제나 그곳에 도사리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들은 글쓰기의 열정으로 집을 채웠고, 바로 그만큼 집을 사랑했다.
작가들의 삶에서 집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은 작가들의 추억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의 불안을 달래주며, 사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글은 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작가의 집>이라는 책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장 지오노, 장콕토, 윌리엄 포크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그 집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다룬 책이다.

 

난 환장하듯 읽어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닭꼬치처럼 엮여 있었기 때문에....

 

 

 

 

과연 이 유명한 작가들에게만 집이 그런 역할을 할까?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집은 그런 휴식처요, 창조의 산실이요, 사랑을 갈고 닦고 기름치는 정비소인 것이다.

나 또한 집이 그랬다.


처음 귀농한 집은 15평도 안되는, 눈만 씨게 흘겨도 금방 삐뚤어질 것같은 낡은 오두막이었다.
우리집에 오신 최용건 화백님의 표현으로는 김밥 옆구리가 터질 것같아 불안했다는 말씀을 하셨던 그런 오두막이었다.^^

 

 

 

작은 그 오두막은 어린 아이 앞에서도 맥을 못출 것 같이 힘없어 보였지만, 천만의 말씀.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당당함과 노련함이 검으티티한 서까래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었다.

 

그 집은 지금 새로 지은 넓은 집보다도 더 위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흙방의 구들은 늘 가장인 초보농사꾼의 배려로 절절 끓었다.


갈라진 흙벽 사이로 바람이 들락거리며 공기를 바꿔 주었다.

집 안의 공기를 귀신같이 정화해 준다는 무슨무슨 공기청정기 유도 아니었다.


네 가족이 막 귀농해서는 아이들이 어렸고 적응기간도 있기에 그 작은 흙방에서 4식구가 누워 잤다.
그러고도 공간이 남았다.

 

그렇게 누우면 더 많이 갈라진 흙벽 사이로 별들이 혹여 산골가족이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탈새라 밤새 지켜주는 모습이 죄다 보였다.
그 흙집 덕에, 자연 친구들 덕에 이 낯선 곳에서도 마음의 언저리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집은 그런 거다.
이제 새집을 지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좋아하는 현대인들 눈에는 지금 새 집이 번지르르하고 멋들어져 보이겠지만 난 사실 오두막에 마음이 간다.

오두막이 숭늉과 같은 맛이라면 지금 새 집은 스프 같다는 느낌이다.


오두막이 나무타는 냄새처럼 마음 한 자락을 아리하게 해준다면, 새 집은 원두커피 내릴 때의 냄새처럼 가볍게 향기롭다.

오두막이 구수한 사투리같다면, 새집은 똑 뿌러지는 서울 말씨 같은 느낌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오두막은 내 눈물 속에 포크레인 몇 바가지로 사라지고 새 집이 산골에 들어서 있다.

새 집이 싫다는 게 아니라 오두막이 더 정스러웠고, 훈훈했었기에 지금도 가슴 한 자리에 그렇게 오두막은 들어앉아 있다.
얼마 전에 아이들도 나와 같은 소리를 했다.


가끔 오두막이 그립다고...
자연으로 돌아와 살다보니 아이들과 느낌이나 감동도 비슷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새 집을 짓게 되었을 때, 난 모양새나 구조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귀농 전, 내 성격 같았으면 일일이 참견을 했을 것이다

.
이건 요래야 하고, 저건 조렇게 구조를 해야 하고, 여기는 이 모양이어야 하고...
내가 1류 건축가처럼 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들어와 살다보니 겉모양새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뭐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결국은 초보농사꾼이 거의 모든 설계를 다 했다.


다만 한 가지 다락방은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글을 쓰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초보농사꾼은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었고 다락방은 그렇게 해서 얻게 되었다.

 

진중권님이


“나의 다락방은 콜라주 같은 것이었어요.
벽엔 신문을 발라 놓았는데 거기에 수많은 기사들이 있었죠.
그게 초현실주의적으로 다가왔어요.

사용되지 못한 물건들이 있고 같이 있을 수 없는 물건들이 뒤엉켜 있고 어딘가 마법적이었죠....”


라고 한 말을 책에서 읽었다.

 

나에게 있어서 다락방은 “안개꽃과 같은 존재이다”
안개꽃은 다른 꽃의 배경이 되어 주는 꽃이다.


저 자신이 돋보여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뒷배경이 되어주고 다른 꽃을 튀게 해주는 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다락방은 그렇게 편안한 방석처럼 내가 들어서면 나의 배경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내가 기도를 하고 싶으면 촛불의 은은함이 주위를 감싸도록 다른 빛을 자제시키고, 내가 명상을 하고 싶을 때는 다락방의 아주 작은 창으로 새소리만 통과시켜 준다.


내가 글을 쓸 때에는 열어놓은 창으로 솔바람을 실어다 주어 머리를 한없이 맑게 만들어주는 그런 공간이다.

 

그곳은 어떤 강렬한 마음도 자제시켜주는 진정제와 같은 약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낮게 낮게 마음을 주저앉히라고 이명처럼 속삭여주는듯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가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다.

다락방은 노오란색 계단에서 시작된다.


노란 나무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다 오른쪽 벽면으로 머리를 돌려 보면 내 표현으로는 ‘아기자기한’ 우리 언니들 표현으로는 ‘조잡한’ 소품들이 걸려 있다.


주현낭자 어려서 사진도 걸려있고, 꼬맹이 선우가 내복바람으로 책읽고 있는 모습도 걸려있어 오르내릴 때 그 사진을 눈에 넣으며 씩 웃곤 한다.

그리고 내가 자지러지게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은은한 소리를 내주는 풍경들이 몸을 벽에 바짝 기대고 있다.

 

 

 

한 계단씩 올라가며 하나하나 들여다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렇게 올라가는 계단 끝마다에는 시어머님이 평생 자식처럼 아끼셨던 수석들이 새까맣고 뺀질뺀질한 얼굴로 나와 앉아 있다.

어머님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가지실 정도로 수석에 베테랑이시다.
그렇다면 그 분의 외아들인 초보농사꾼의 수석을 보는 안목은???


예전에는 짱돌이라고 해서 어머님께 지청구를 먹었는데 요즘은 변별력이 쬐금 나아졌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친정 엄마가 쓰셨던 재봉틀이 보인다.


아마 일흔 살 이상 잡순 분들은 재봉틀과 미싱이라는 말을 혼용했던 것으로 아는데 내 어설픈 기억으로는 후자가 더 많이 그 세대분들 입에 오르내린 것으로 안다.

 

 

 

재봉틀 알맹이는 내던지고 다리만 남겨놓고는 그 위에 칼라 유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콘솔이다.

그 위에는 사진액자와 동물농장 모습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가 있다.


신혼 때 선물로 받아 지금껏 들여다 보며 침흘리는 것인데 그 미니 도자기 속 그림이 어찌나 풍요로워보이던지...
결국 그쪽으로 나의 삶이 선회할 줄이야.

 

그 옆은 키작은 책꽂이가 새색시처럼 수줍게 앉아 있다.
다락방에도 거실처럼 책꽂이를 아예 집지을 때 짜 넣으려고 했는데 다락방이라 그 무게가 겁나서 포기하고 달랑 이 작은 책꽂이로 만족하고 있는데 볼수록 소박하다.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 박완서님 책 등이 들어 앉아 있다.
그리고 다락방에서 제일 많이  뭉개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이것들은 친정 부모님의 원대로 서울에 말뚝박고 사는 언니가 혼자 쓰기에 좋을 거라며 준 것인데 다 좋은데 내가 숏다리라 발이 편안하게 바닥에 닫지 않는 게 흠이었다.ㅜㅜ

결국은 망설임 없이 톱을 들었다.


그리고는 의자의 다리 길이를 과감하게 잘라냈다.
소가지 없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쓰기 편하면 되는 거지 모양은 뭐 말라비틀어진 모양???‘이라는 후렴을 붙여가며 톱질을 해댔다.

 

 

 

그렇다면 내 앞의 의자도 잘랐느냐?
아니다.


그 자리에는 주로 롱다리가 앉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 내 의자 다리만 절단냈다.

거기에 앉으면 오른쪽으로 난 창으로 소나무 싶이 내 옆구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들어오고 눈을 조금만 내리 깔면 나무장작이 쌓여 있다.

 

보일러 주둥이로 들어갈 번호표를 받아들고 대기중이다.
그들이 대기하는 모습에는 인간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조바심이 없다.

 

이 책상과 붙어 있는 곳에 풍금이 있다.
날카로운 피아노소리와는 달리 풍금소리는 고동소리처럼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울림이 크다.

 

 

 

 

책상 정면으로는 기도하는 자리가 보인다.
이 낮은 자리에 앉을 때야말로 신과 내가 가장 가까이서 투명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초에 불을 댕기고 살포시 눈을 감으면 마음에도 은은한 그 빛이 내리 깔려 어느새 내 몸은 따사로운 들판을 걷는다.
이 순간에 자리를 함께한  '침묵'과 '고독'과 '외로움'이 나를 키우는 퇴비가 된다.

 

피타고라스는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뛰어난 말을 하라‘고 또 다른 정리(?)를 해 주었듯이 난 뛰어난 말을 할줄 모르니 침묵해야 하지만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자신에게 물을 일이다.

 

 

 

그리고 뒤로는 홀로 앉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의자가 하나 있다.
주로 봉사처럼 눈감고 앉아 나를 훑어보는 살벌한 시간을 갖는 곳이다.

 

작은 다락방 구석구석으로 영혼을 데리고 순회하다보면 아주 까만 밤이 주위를 감싼다.
이제 서서히 일어나 다락방 난간에서 통창을 내다보면 하늘에 쫙 깔린 별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들어온다.

 

그 순간은 별의 그 날카로운 모서리에 정수리를 찔린 듯 정신이 바짝 들고, 뽕을 맞은 사람처럼 몽롱해지는 이중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뽕한 사람의 모습이야 영화에서 죄다 똑같이 연기를 하니 간접경험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머리를 산발한 여자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도 저녁에 다락방에 앉으면 어느 새 내 머리는 참빗으로 곱게 빗겨져 빛나고 있다.

 

 

내가 다락방이 그런 공간이듯이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


힘든 나를 대피시킬 수 있는 그런 공간.
그 공간이 좁든, 초라하든, 잡냄새가 나든 그건 상관할 필요가 없다.

 

내가 오두막에서 가장 많이 자신을 닦았듯이 눈에 보이는 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루를 전투를 치르듯 정신없이 산 자신을 토닥여주고, 위로를 해주고, 내일을 위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락방에서 내려갈 때는 아랫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내려간다.
그 아래는 또 다른 세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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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편지,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
+   [산골편지]   |  2011. 1. 25. 13:18  

 

2010년 12월

 

울진읍에 있는 울진고등학교기숙형 고등학교다.

울진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주현이가 기숙사에서 나오는 날이다.
2주에 한 번 나오는데다 이번에는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오는 것이라 딸 아이도 지쳤을 것이라 미리부터 여행 운운한 사람은 나였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조촐하게 네 식구 여행을 가리라.
그렇게 벼르던 날이 닥아왔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런 저런 일로 내가 심신이 지쳐있었고, 몸살기까지 있어 오한이 들었다.


결국은 여행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이거 아이들에게 한 약속이라 자꾸만 목구멍이 걸렸다.

 

 

 

늦은 저녁에 초보농사꾼과 상의를 했다.
초보농사꾼이 그러면 일단 내일 아침에 결정하고 나서보잔다.


내일 결정하자고 한 것은 초보농사꾼이 요즘 야콘즙 작업을 하는데 그 타임이 새벽에 확인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 야콘즙에 따라 아침에 출발할지를 결정하자는 거였다.

 

 


(▲ 퇴계 이황의  생가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로 여행을 준비하는 것, 참 싫어한다.
여행이란 길을 나서는 것 이전부터가 여행이다.


여행 갈 생각을 하며 들떠하고, 행복해 하고, 칫솔, 수건, 치약 등을 챙기며 흐뭇한 웃음을 함께 가방에 담는 것부터가 여행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가장의 명령에 따라 일단 대기상태로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초보농사꾼은 일단 하던 일을 일찍 끝냈으니 떠나보잔다.
아이들이 신나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검색하고 의견을 나눈다.

 

 

 

 


(▲ 주현이가 쓴 모자는 지아빠 모자다. 주현이는 머리가 작고 뒤가 짱구라 모자가 잘어울리는데 선우랑 나는 머리가 커서 모자가 전혀.ㅠㅠ)


 

그러나 오한이 드는 것은 여전한 나로서는 가방 하나에 수건, 치약, 칫솔, 양말 등을 챙겼다.
초보농사꾼이 혹시 자고 올 수도 있다는 말을 흘려서다.


자고 오게 되면 그래도 챙겨갈 것이 있어야 하므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만 챙겼다.
그 기본 중에 곰베개 인형과 무릎담요를 잽싸게 챙겼다.

 

그 두 가지는 내가 여행을 갔다 하면 차에 먼저 태우는 종목이다.
우선 여행지에서 딸 아이에게 이 베개를 베어주고 싶은 마음과 작은 담요는 가면서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이 담배를 피워 문을 열면 추우니까의 이유도 있지만 그 담요를 워낙 좋아해서, 이런 저런 이유에  여행 때에는 먼저 챙긴다.

 

두 아이가 시간이 조급한지 의견일치를 금방 본다.
안동으로 가서 이육사 문학관과 도산서원을 먼저 둘러보고 그러면서 다음 여행지를 고민해 보잔다.

 

둘은 이제 역사적 장소나 미술관 등에 관심이 늘 있었다.
에 살지만 방학때마다 서울에 가서 스스로 미술관, 전시회 등을 찾아다니고 느끼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커가면서 더더욱 그것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같아 기특하기 그지없다.

 

 

 

 


(▲ 이황 생가 터에 선 딸 주현이와 나)

 

일단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한 차를 타고 나서는 여행이라 그 자체만으로 가족들은 여행에서 얻는 기쁨을 반 이상 얻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곳이 퇴계 이황의 종택이다.


원래의 건물은 없어졌으나 1929년 옛 종택의 규모를 참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 날은 가문의 행사가 있는지 관광객은 없고, 많은 분들이 장을 보아서 종택으로 분주히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먼저 그곳에 사는 분께 구경을 해도 되겠는지 어디까지만 구경하면 되는지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아이들도 그분들게 폐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종택을 둘러보았다.
규모로 보면 그다지 웅장하지 않고 아담하게 오밀조밀지어져 옛 선비의 체취가 더 느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날씨는 아주 추웠지만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려는 선우와 주현이를 보며 으스스한 몸으로 뒤따라간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으로 종택을 둘러보았다.

 

 

 

 

다음 행선지는 이육사 문학관이었다.
민족시인, 저항시인, 독립운동가 이육사.. 본명은 이원록.

 

이육사가 수인 번호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문학관에 도착하여 설명을 듣고 보니 부끄러움이 들었다.

나는 과연 민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거창한 그 무엇을 따지기 앞서 나 개인이 향기를 나누어야 할 때 얼마나 잽싸게 굴었는지 등이 떠올라 내 나이가 무겁게 느껴졌다.

 

 

 


(▲ 육사의 감옥생활)

 

아이들과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역시 문학관 구석구석을 정신 없이 둘러보며 감탄을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문학관이 너무 현대적 냄새가 강하다는 것이다.


향토적 색채를 감안하여 지었더라면 시인을 느끼는 마음도 더 푸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점을 안내하는 분께 말했더니 더러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고, 자기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아쉬워했다.

또 한 가지는 문학관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표지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오만가지 표지 중간에 끼어있어 눈을 부릅뜨고 찾지 않으면 안된다.


과연 민족시인을 찾아가는 길 표지가 그렇게 사적인 표지와 끼어져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아쉬움이 남았고 아이들도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아들 선우는 이육사 문학관에 도착하기 전에 시인의 작품 “교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무지 좋아하는 시라고...시를 읊으며 행마다 가슴 절절함을 토로했다.

<<교목>>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니리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오한이 들어 칭칭 감고 껴입은 옷에도 한기는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아이들과 이런 감동적인 곳을 여행한다는 것이 더없이 좋았다.
(죽어도 살쪘다는 소리는 안한다. 난.)

 

간단히 이육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육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보문의숙을 거쳐 도산 고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일본으로 유학했다가 관동대지진을 겪은 후 귀국하여 대구에서 문화활동을 벌였다.
그후 중국 북경 등지에서 유월한국혁명동지회에 참가해 조직활동을 펼쳤다.


1927년 여름에 조재만과 동행해 귀국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7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그때의 수인번호 이육사를 따서 호를 ‘육사’로 지었다.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다시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 이듬해 마흔의 나이에 북경주재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

 

 

 

 


(▲ 육사의 모습)

 

맨 먼저 들어가면 육사의 가시밭길 같은 생애를 재구성한 영상자료를 상영해주는데 그것을 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선우와 주현이는 ‘여기 오길 정말 잘 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이런 배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대견하여 한참을 두 녀석 말에 귀기울였다.




(▲ 아들 선우와 딸 주현이는  여기 와 보길 정말 잘했다며 감격해 한다. )

 

그 문학관은 안내를 하시는 두 분의 애정이 절절하여 설명을 듣는 사람도 저절로 절절한 느낌이 드는 기분을 전염시켰다.
온 가족이 저와 같은 애정어린 마음으로 문학관을 찾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문학관도 드물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느낀 점은 아이들이 부모의 느낌을 닮아간다는 거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생각과 가치관, 보는 관점 등이 많은 부분 부모를 담아간다는 사실...


더더욱 조심하고, 노력하며 살 일이지 싶다.

 

 

 


(▲ 육사가 사용했던 안경과 친필)

 

문학관을 나오면 아이들에게 이육사의 시집 한 권과 그 분의 시 달력도 하나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다음은 이황의 묘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표지판이 없다.
어디에도 안내하는 글 하나 없는 곳에 묘가 있었다.

아쉬움이 너무 컸다.

 


(▲ 이황의 묘소)

 

그 묘를 찾기 전에 조금 산으로 올라가니 하나의 커다란 묘가 있었는데 선우와 난 그 묘가 이황의 묘인줄 알고 그것에서 조금 있다가 내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여 저 아래 마을의 사람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물으니 한참 더 올라가란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니 거기에 이황의 묘가 있었다.
선우는 감격스러운지 한참 무덤을 둘러보고, 무덤 앞에 앉아보고 , 석상들을 어루만져보고 감격해 했다.

 

 

 

다음은 서둘러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퇴계 이황이 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가르쳤던 곳이며, 사후에 이황의 위패를 모시고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들과 유림이 세웠다는 곳이다.

 

한참을 걸어서 가는 흙길이 참 고왔다.
길 한 쪽으로 유유히 휘감아 흐르는 강은 살얼음 그림자 등으로 그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러 선우, 주현이의 환호를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 딸 주현이와 나)

 

서원 한 쪽에는 이황이 직접 지었다는 도산서당이 있었다.
아주 아담하게 지은 작은 공간이었고,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 눈으로만 보기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나는 조심조심 혹여 닳을세라 눈으로만 보았다.
또 그 앞에 들어가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팻말도 있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위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찰나,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안으로 들어가고 술래잡기를 하는지 난리가 났다.
이럴 때 못참는 성격.

 

거기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멀리서 소리를 질렀더니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말
“야, 들어가지 말란다.”하는 아이들 엄마의 소리.


그럼 바로 옆에 부모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아이들을 그렇게 두었다는 말인지.
그러니까 내가 그곳의 관리인인줄 안 것이다.
선우, 주현이도 몇 번이나 혀를 찬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모라고 말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구석구석 구경을 하는데 우리는 광명실이라고 쓰인 곳에 머물렀다.
양쪽으로 똑같이 건축물이 있는데 그것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란다.

 

 

 

 

 

동, 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아주 높게 지었다.
광명이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준다”는 뜻이라는 뜻이라며 아이들이 한참을 둘러본다.


책 욕심이 많은 우리 아이들로서는 책을 소중히 여기는 선비의 마음씀이 참 따뜻했던 모양이다.

도산서원을 나온 시간이 네 시.


아점을 먹고 나선 가족들이라 속이 허전했다.
그러나 서둘러 볼 곳이 있다며 간 곳이 경북 산림과학박물관이다.

 

주현이는 예전에 왔었던 곳이라며 다시 가보고 싶다고 좋아한다.
초보농사꾼이야 산에 사는 사람이니 당연히 구미가 당겼을 것이다.


선우야 무조건 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니 코드가 맞았을 것이고...

 

 

 


(▲ 도산서원, 책을 보관하는 서고)

 

다만 산골아낙 나만 오한이 심하고 편두통이 심해 차에 남아있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박씨 일가들이 안나온다.


푹 빠진 모양이다.

또 호기심 많은 초보농사꾼이 갔으니 얼마나 꼼꼼히 보고 느낄 것인가.
이제 해가 지고 있고 차 안은 추위에 물들었다.


안그래도 오한에 추위에...

기동을 걸려고 보니 키가 안꽂혀 있다.
초보농사꾼이 습관적으로 빼 간 거다. 아이고...


(▲ 선우가 부러운듯 오래 쳐다본다. 이황이 책의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높게 지었다는 서고)

발도 시려오고 머리는 더 아파오고...

 


세 박씨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차에 올라도 난 아,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키를 빼 간 것을 안 초보농사꾼.
서둘러 밥먹으러 가잔다.


그러면서 일단 밥먹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오늘 많이 보았고, 날씨가 점점 추워져 산골생각들이 간절한 모양인지 다른 두 어린 박씨도 집에 가자고 한다.

 

오면서 숯불에 독특하게 굽기로 유명한 집이라는, 그런 집에 꼭 붙어있는 또 하나의 문구 어디 어디 방송에 나왔다고...그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더니 그제서야 얼었던 발이 녹는다.

 

그렇게 다시 산골로 돌아돌아 오는 길.
아이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소중하고, 느낌이 강하고, 유익한 여행이었다며 기회되면 또 나서잔다.


(▲ 이런 여행을 좋아하는 아들 선우와 주현이가 참 기특하다.)

 

교육이라는 것,


꼭 학교에서 언어영역, 수리영역, 외국어 영역, 사탐영역이라는 글자에 열을 올려야 함은 결코 아니라고 느꼈다.

 

아이들의 각각의 연세에 맞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감탄하게 해주어야 하는 그런 교육이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 아닐까.

 

이육사라면 다 민족시인, 청포도 어쩌구 저쩌구 외워서 다 아는 분이지만 직접 그 분의 생가를 보며, 그 분의 일대기를 설명들으며, 그 분이 쓰던 안경, 친필 원고 등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교과서에 들어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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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 달밤의 체조
+   [산골편지]   |  2010. 4. 28. 19:25  

 


2010년 1월


겨울과 다른 계절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람'이다.
다른 계절엔 뜨뜻미지근하게 주구장창 바람이 분다면 겨울의 그것은 한몫에 온다는 거다.


이것 역시 귀농 10년차에 깨달은 것이다.


깨달았다고까지 하면 좀 뻐근하고 알아차렸다고 할 수 있다.

겨울에도 산골에서 밤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있는데 그건 배드민턴이다.
산골의 한밤중에, 외등 아래서...


그런데 날은 하늘의 별들도 추워 나와 있지 않을 정도로 쌀쌀 맞지만 바람 한 점이 없다.
실바람도 없다.


그러다 어느 날은 뭔 심사가 뒤틀리는지 불어재끼려 들면 금방이라도 차가 코 앞에서 멈출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숲이 찻소리를 낸다.
그런 날은 자주 통창으로 밖을 내다 보게 된다.
누가 왔나 해서...


오늘도 바람의 심사가 안녕하신지 재미지게 산골소녀와 배드민턴을 쳤다.

안그래도 새 학기부터 고등학생이 되는 주현낭자.


이곳에서 원하는 울진고등학교에 가느라 나름대로 애를 썼던 주현이가 날아오를듯 배드민턴을 친다.

한밤중에 신났다고 딸이랑 악을 써도 누가 뭐랄 사람 없으니 좋다.


룰을 어겼다며 서로 목에 핏대를 올리고 시비를 가려도 누가 뭐랄 사람 없으니 좋다.

이 깊은 산골에 달밤의 체조로는 배드민턴 이상 없다.


그런데 누가 뭐랄 사람은 없지만 가을에는 나보다 더 부지런한 다람쥐, 가끔씩 토하는듯한 소리를 내며 짝을 찾는 노루, 개사료에 늘 눈독을 들이는 까마귀, 꿩, 아침이면 모닝콜을 해주는 새들에게는 공해가 될 수 있을테니 좀 자중하며 달밤의 체조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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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 그 맛을 아는 사람이 좋다.
+   [산골편지]   |  2010. 4. 17. 10:20  
사람들은 내가 지금껏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산골로 틀어박혔다 하면 다기를 다루는 솜씨가 공기돌 놀리듯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에, 귀농했다 하면 남정네도 개량 한복에 고무신 신고, 머리 뒤로 묶고, 거기에 수염 정도는 액세서리로 길려줘야 하는 정도의 센쓰가 있어야 하는줄로 아는 것과 같은 ‘믿음’이다.

일단 귀농했다 하면 그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으니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차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커피면 커피, 녹차, 잎차면 잎차 다 잘 마신다.
잎차를 마시더라도 다기 놀리는 것에 크게 신경 안쓴다.

다기는 요렇게 무릎을 꺾고 앉아서, 조렇게 돌리고, 몇 번 나누어 부어주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다도에 목숨거는 사람이 들으면
‘이런 무식한 인간같으니...’하겠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

그저 차를 우려서 부어 마시면 그만이다.
다기가 얼마짜리고 하는 등의 가치는 소용없는 일로 안다.

물론 숭늉마시듯 후후 소리내어 불고 들이키는 경우, 또 식사 후 가글을 하듯 차를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나나 상대방의 차 마시는 모습에 눈초리의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말 그대로 ‘다도’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방식이고 난 내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다.

다만, 누구와 마시는 것을 제일로 치느냐 하는 것에는 많은 의미를 둔다.
난 혼자 마시는 차맛을 제일로 친다.

여럿이서 잡담중에 마시는 차는 목을 축이는 것이고, 들이키는 것이지 차맛과 침묵에 무게를 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초의 선사는


<b>"차를 혼자 마시는 것은 가장 신명나게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는 것은 보통 잘 마시는 것이고,
서넛이서 마시는 것은 취미쯤인 것이고,
대여섯이 마시는 것은 덤덤하고,
칠팔인이 마시는 것은 보시하듯 나누어 마시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b>

여럿이서 를 앞에 놓고 마시는 경우는 차의 맛과 정취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고 잡담의 중간중간에 잠시 쉬는 정도로 입을 축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혼자 마시는 차 맛을 더 자주 느끼는 복을 누리고 싶다.
그때의 차는 그저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한 모금의 차를 마시며, 나의 오늘 발걸음의 속도가 어떠 했는지, 발걸음의 방향이 제대로 향해졌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때만큼 내일의 발걸음을 점검하는데 좋은 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개구리 소리가 참견해 보라지.
매미소리와 소나기 퍼붓는 소리, 가을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어느 시인이 표현한대로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내는 눈이 함께 하면 그 이상의 명품차는 없다고 본다.

지금 이 새벽에 깬 것은 차 한잔을 하면서 산중의 묵직한 침묵에 동참하며 새 날을 기대해 보라는 신의 작은 신호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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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집터의 좋고 나쁨은 내가 만든다
+   [산골편지]   |  2010. 4. 15. 14:14  



2010년 1월

 

우리집은 마을 이장님이 마이크 부여잡고 하소연하는 '전달사항'이 전달되지 않는 먼 골짜기에 살고 있어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책읽느라고, 꼴난 글 좀 쓴다고, 고추 꼭지 딴다고 늦도록 꼼지락 거리다 자다 보니 해가 똥구멍을 치받아야 일어나는 날이 솔찮은 나로서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라도 도시인들에게는 이른 시간이지만 산골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벌써 6시만 되도 "박반장"하고 전화들을 하신다.


일단 늦게까지 야콘작업을 하고 잔 우리들은 혼수상태로 전화를 받는다.

결국 이장님의 전달사항은 박반장 몫이다.

 

다행히 귀농 10년차가 지나도록 단 한번도 그 스피커 알람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감사할 일이다.
오늘은 뜬금 없이 그 생각에 이르자, 초보농사꾼이 이 터를 귀농지로 점찍은 것이 나를 반려자로 점찍은 것 다음으로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참에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내가 예를 들어도 나랑 견주는 예를 들었으니 답이야 빤하다.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귀농하잘 때 나더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더니 당신이 까먹는 거야?"

"오늘 당신이 야콘씻는 일을 무리하더니... 결국은... 쯔쯔,  일찍 자는 게 낫것네."

"안그래도 가끔 혈압이 높다더니 혈압 한번 재봐."

.... 그 중 하나다.

 

난 이 집터가 좋다.
국도에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으면서도 완전 산골 모습 그대로 이다.

이곳은 독가촌이면서도 조금만 내려오면 이웃의 할아버지댁이 보인다.


움푹 들어간 곳에 우리집만 위치해 있으니 여간 좋은 위치가 아니다.

또 이웃집이랑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아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자든, 안하고 자든, 숟가락짝이 몇 개든 참견할 사람 없으니 좋다.


내가 필요하면 몇 발자욱 발품만 팔면 이웃을 보러 갈 수 있으니 아쉬울 것이란 없다.

손님들이 와서 너 죽고 나 살기로 악을 쓰고 놀아도 시끄럽다고 할 사람은 없다.


다만 새들에게, 노루에게 주위 자연 도반에게 미안해서 그렇지...

내가 침묵하고 묵상하고 싶을 때, 바로 그 버전으로 돌입하면 그곳이 바로 피정의 집이고 절간이다.
내가 좋다고 믿는 곳이 바로 명당이다.

 

남이 명당이라고 해서 들뜨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남의 말에 솔깃한 것이라 그럴 것이다.


또 집 구조 중에 뭐가 나쁘다던데...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면 거기에 매이게 된다.

세상이 복잡하다 보니 내 말, 즉, 내 확신에 살지 못하고 남의 말에 의지해서 산다.
내 의지는 없고, 남의 의지, 남의 입김에 휩쓸려 살아간다.

그러나 명당이고 뭐고 내가 좋으면 거기가 천국부지다.


내 좋아하는 기가 흘러넘치면 어떤 곳도 다 명당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거 풍수가들이 들으면 무식한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영국의 시인인 진 잉겔로가 쓴 시 중 이런  시가 있다.

 

"기쁨을 집으로 데리고 가라.
그리고 당신 마음에 기쁨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자라날 시간을 주고 아껴 주어라.
그러면 기쁨이 당신에게 찾아와 노래를 부러 줄 것이다.
당신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신성한 시간인 새벽에 잡초를 뽑고 있을 때,
만족스러운 느낌이 조용히 찾아온다.
기쁨은 우리가 신에게 드리는 기도다.

 

 

귀농하기 위해 이 터를 살 때도 우린 그냥 우리 눈에 뒤집히도록 좋은 위치라는 생각에 바로 계약을 했고, 일부 이삿짐을 처음 들여오는 날에도 아무 날잡아 성모님상만 앞세우고 들어왔다.

내 마음이 어디로 가 있느냐에 따라 거기에 천국과 지옥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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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 안그러면 절단이다.
+   [산골편지]   |  2010. 4. 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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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문짝도 제대로 안닫힐 정도로 골병이 든 세레스에서 노인네의 가래 끓는 소리가 요란하다.
초보농사꾼이 한 차 해온 나무를 내린다.


그게 하도 힘겨워 보여 힘을 거들지 못하고 잔소리로 거든다.

“선우 아빠, 인제 그 놈의 토막 좀 작게 잘라.”

“왜?, 커야 한 방에 내리지.”

 

예전에는 그렇게 대답할 사람이
“좀 무겁긴 무겁다”하면서 잠시 허리를 펴고 담배를 빡빡 빨아댄다.

사실 그 토막을 작게 하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집 난방 담당인 초보농사꾼이 커다란 나무를 부둥켜 안고 힘에 부치게 내리는 것에 대한  안스러움도 있고 또 하나는 나를 위함도 있다.

홈관리를 하고 꼴난 책 조금 읽다 초보농사꾼보다 늦게 잠드는 난 마지막 불을 챙기게 된다.
그때 나무토막을 집어 넣으려면 애를 먹는다.

 

귀농 초처럼 팔팔했을 때는 나 역시 그 정도는 만만했었는데 귀농 10년차가 지나가다 보니 온 삭신이 쑤시고 탈이 나고, 허리도 골병드는 바람에 그 놈의 나무토막을 붙들고 끌어 앉았다, 뒹굴렸다. 생쑈를 해야 겨우 불길에 던질 수 있다.

 

산골 식구들 등바닥이 땃땃하게 긴긴 겨울밤을 나게 하려면 이 나무 보일러의 아가리가 꽉 차도록 넣어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나무와 씨름을 하다보면 생전 땀 안흘리는 사람의 볼따구니가 촉촉해진다.

달밤에 체조 별거 없다.


그렇게 쑈를 끝내고 보일러실 문을 나서면 달이 혼자보기 아깝다는 듯 씩 웃는다.
나도 그를 흉내내어 씻웃으며 손을 흔든다.

 

초보농사꾼이 그렇게 해온 나무에 눈이 쌓였다.
작년에는 눈비에 젖지 않도록 나무 집에 차곡차곡 쌓았었는데 올해는 야콘즙


 을 만드느라 시간이 없는 초보농사꾼이 나무를 저렇게 노상에 쌓아두고 때고 있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나무토막을 잘게 톱질해달라고 초보농사꾼에게 그 속내를 드러내야겠다.
안그러면 당신이나 나나 허리 절단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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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 마음이 급하다.
+   [산골편지]   |  2010. 4. 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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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끄트머리에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얼어있는 듯 보인다.
강아지 벤자민도 가만히 있으면 얼었나 싶어 가서 불러보기도 한다.

산골을 넉넉한 분위기로 연출해 주는 각양각색의 항아리들도 금방이라도 얼어 터져 그 파편이 내 종아리를 칠 것만 같다.
이제 막 손빨래 한 초보농사꾼의 외출용 셔츠도 밖에 내다 널었더니 금방 로봇처럼 뻣뻣해졌다.

그러다 이내 햇살이 나와 아는체를 하니까 처음엔 콧대를 높이며 들은척도 안하더니만 지금은 흐느적거리다 못해 침을 질질 흘리며 좋아라 한다.

햇살이 나오면 그런 마음은 녹지만 다시 저녁이 되어 햇살이 퇴근하면 이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다시 얼어 있는 듯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더니만 틀린 말이 아닌가보다.

****************************************

나에게 중학교 때부터 죽으라 붙어 다녔던 친구가 있다.
그렇게 평생 붙어 다닐 것을 몰아서 붙어다녔는지  지금은 저 멀리 미국에 있다.
얼마 전에 서울에 갔다가 명동 롯데백화점 본관에 들렸다. 일부러.
무엇을 사기 위함이 아니고 그 친구와 함께 앉았던 본관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있는 계단을 보기 위해서다.

친구의 향기가 아직도 묻어 있는지,
계단위의 친구 모습이 남아 있을려나 기대하면서...

그 계단을 보러 난 없는 시간에 볼일을 재껴두고 거기로 갔다.
계단이 명품(?) 계단이라서가 아니다.

 그 친구와 약속을 하면 그런 식으로 한 적이 많았다.
그냥 노상(?)에서 기다리는...
그 때는 핸드폰이 없었으니 그냥 무작정 무식하게 기다리는 거다. 그게 좋았다.
그렇게 기다리다 심심하면 슥 아이쇼핑도 하다 다시 계단에서 기다리고...

그 기다리는 시간이 편안하고 좋았다. 상대방이 제아무리 늦어도 화가 나지 않고 자존심도 상하지 않고...

1시간이 넘게 기다리게 한 적도 있다.
우린 상대방이 아무리 늦어도 꼭 온다는 것만 알고 있으니 기다리는 그 자체를 좋아했다.
지금 세상에 이런 짓하면 바로 귀싸대기 올라온다.
바쁜 사람 기다리게 한다고..

그렇다면 그 때는 모두가 한가했었느냐 하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의 바퀴는 정신없이 돌아가긴 마찬가지였다.

요즘 사람들은 기다리는 일이라면 질색이다.
우선 자신의 시간이 귀함을 내세운다. 바쁨을 내세운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안가진 사람이든 모두가 기쁜 날로 지내는 때다.

천주교에서는 성탄 전, 4주, 즉 바로 지금을 대림절이라 하여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사람도 못 기다리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불러도 대꾸도 잽싸게 안하는 아기 예수님을, 부처님을  어떻게 기다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벗을 기다리는 마음이 즐겁고 기분이 들뜨듯이 그 이상으로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 부처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더욱 즐겁고 잔잔한 감동이 일어야 한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나 먹는다고 사람도 기다리는 멋과 맛을 아는 사람이나 기다리듯이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고, 부처님오심을 기다리는 일이란 그보다 더 깊어야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은 청소시간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을 청소하는 ...
미움도, 질투도, 욕심도, 시기도 모두 털어버리는, 그런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총채로 먼지를 털 듯 턴다고 쉽사리 털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면서 수없이 묵상하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내가 다 용서를 해도 저 인간만은 어렵겠어.
혹여 이 세상 사람이 다 그런다 해도 지는 초보농사꾼에게 그러면 안되지.
초보농사꾼이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새로운 삶 시작할 때, 그렇게 애써준 것은 다  어디로 가고 그따위 행동을 하느냐구. 똥 누러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하며 치를 떨었던 것을 털어내는 것이 어찌 일순간에 가능할까.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 침묵의 시간, 묵상의 시간 속에서만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화해와 용서와 기쁨의 시간이다.

나의 다락방에는 4가지 색의 대림초가 있다.
오늘은 일찍이 그곳에 불을 댕기고 구유 속에 아기 예수님의  빈 자리를 바라본다.

아기 예수님을 따숩게 맞이하려면 내 안의 찌꺼기들을 죄다 털어내야 한다.
오늘도 묵주를 굴리며 철저히 내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마음이 급하다.
청소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성탄이 연말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 연말에는 너나 나나 할 것없이 그런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종교와 관계 없이 이 한 해 끝에는 내 안을 들여다 보고, 내가 나에게 용서하라고 부탁도 하고, 화해하라고 손도 내밀어 보는 그런 연습이 필요한 시기이기에 그렇다.

지난 가을에 집 옆에 핀 작은 해바라기 생각이 난다.
그는 다른 해바라기에 비하면 신생아 수준이었다.
키도 작고, 꽃도 아주 작아 그것이 해바라기라고 말해 주기 전에는 잘 모르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난 얼굴에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크고 화려하고 빵빵한 해바라기 보다는 그 작은 해바라기에 더 눈이 갔다.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오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다가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그에게서 느꼈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보다 더 명품인 '신생아 해바라기'

그를 이른 아침에 보면 이슬을 얼굴에서 막 털고 수건으로 닦지 않은 해맑은 모습으로 나를 맞곤 했다.
몸에는 솜털이 보송보송 돋은 그런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곤 했다.

새해에는 지난 가을의  애기 해바라기처럼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길 빌어본다.

촛불이 흔들린다.
유리 통창 밖으로 별들이 보인다.
별들도 한 해를 정리하고 있는지 눈망울이 똘망똘망하다.

우리 각자는 이 연말에 어떤 일로 바쁜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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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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