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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편지 _해당되는 글 132건
2009.10.28   귀농아낙의 산골편지--골이 달그락거린다. 
2009.10.2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작은 보답일 뿐입니다. 
2009.09.27   귀농편지--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벗들에게 쓴 편지 
2009.09.19   귀농이야기--EBS FM생방송을 마치고... 
2009.09.14   김수환추기경님의 사랑을 쫓아서... 
2009.09.10   귀농아낙의 산골편지--귀농은 스스로 뻑가는 삶이어야 한다. 1
2009.09.08   머리 일하고 먹는 저녁 밥 맛은 또 남다르다. 
2009.09.07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니가 이렇게 컸구나." 
2009.08.2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의 미니 번개 
2009.08.13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2

 

귀농아낙의 산골편지--골이 달그락거린다.
+   [산골편지]   |  2009. 10. 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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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가을이 깊어지는 것을 무엇으로 느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이웃집 할아버지의 부지런함을 보면서도 단박에 알아차린다.


우리 집에서 내려가면 다리결에 이웃집 할아버지의 밭이 있다.
그곳에 메밀을 심으셨다.


여름에 하얗고 앙증맞은 을 피워 오고가는 나를  침을 질질 흘리게 해주더니 지금은 깡똥하게 쌓여져 있다.

할아버지는 벌써 밭을 비워 놓으셨고, 초보농사꾼의 야콘밭은 땅 속에서 아직도 야콘들이 몸집을 키우고 있다.


********************************************


얼마 전에 느닷없이 손님이 왔다.
한번도 본적도 , 통화를 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들이닥친다고 예고도 없었다.


남자는 귀농에 관심이 있는 부부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입가에 잔뜩 불만이 불어 있는 그의 아내를 내 가까이로 잡아끈다.
그의 멘트와는 다르게 그의 아내는 귀농에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밭에서 일하다 내려왔기 때문에 집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참 해야 했다.


장화를 벗어야 하고,
장화속으로 튀어 들어온 흙과 트분데기를 털어내야 하고,
발이 건조해서 늘 180도 돌아가 있는 양말을 바로 돌려 신어야 하고...


그러는 사이 그의 아내는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가 앉아가지고서는 내가 보다가 엎어뜨려 놓은 책을 뒤적이더니 한 마디 던진다.

"고려대학교까지 나온 여자가 왜 중이 되었데? 골이 비어도 한참 비었던지, 뭔 하자가 있나부지."한다.


그 책은 고려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홍대 미대를 다닌 어느  비구니 스님이 쓴 책이다.

그 말이 꼭 손님 뒤꽁무니를 쫓아 느리게 들어와 차를 준비하려는 내게 던지는 말같다.


입을 씰룩이며 잔뜩 불만에 찬 표정으로 보아 그런 것같다.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들이 왜 귀농해서 땅파먹고 산데?? 골이 비어도 한참 비었던지, 하자가 있나부지?' 내게 내던지는 말같다.





예전 같았으면 남이야 을 파먹던, 골이 비던, 하자가 있던 무슨 상관인가 싶어 나 또한 입이 십리는 나와서 몇 마디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귀농하여 자연의 한 자락 빌붙어 살다보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말인지를 판가름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판가름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지 그런 말을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4차원적인 수준에는 못이렀다.

내가 그들에게 귀농하라고 권한 것도 아니고, 한번 다녀가라고 말한 적도 없는 생면부지 사람들이 왜 그럴까... 하고 입은 굳게 다물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되었다.


흙과 나무, 시냇물, 실눈을 뜨고 웃는 초승달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언제, 어느 때 , 어떤 상황에서도 두 팔 벌려 품어주는데
사람 잘못 마주한 날은 진종일 골이 달그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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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작은 보답일 뿐입니다.
+   [산골편지]   |  2009. 10. 25. 01:32  





2009년 9월 22일


산골가족은 집 옆의 작은 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끌어다 마시지요.
물론 저희가 효소를 만들기 때문에 매번 철철한 물 검사를 받습니다.

몇 십 항목이 되는 검사를 검사기관에서 물을 바로 떠서 연구소로 보내 검사를 받는데 합격입니다.
마실 때마다 감탄이 벌어진 이빨 사이로 새어나옵니다.


오늘도 그런 감탄을 흘리다 서둘러 꽃밭으로 갔습니다.
나 혼자 갈증을 푸는 것같아서지요.




함석 물조리개에 물을 길어다 꽃밭에 뿌려 주었습니다.
내가 먹는 그 물을 우린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금방 꽃의 표정에 생기가 돋는듯했습니다.


뒤늦게 피어난 초롱꽃과 두 송이 장미의 얼굴도 금방 환해집니다.

난 신바람이 나서 시원찮은 허리를 생각지 않고 한 말 정도 들어가는 함석 물조리개를 공기돌 놀리듯 들어 날랐습니다.
모두들 좋아죽겠다는 표정들입니다.


갈증나지 않은 모습으로 열반이 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사랑과 위로와 격려로 치자면 이건 새발의 피지요.


난 내친김에 할 일도 잊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건냅니다.
이야기라고 해봤댔자 농부의 아낙이 농사얘기지요.뭐.


난 퍼질러 앉아 우선 야콘이야기를 했습니다.
야콘이 전체적으로 썩 잘된 농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짧으면 하나가 길거라'는 것을 믿는다는 말도 껌처럼 덧붙였습니다.

꽃밭에 앉은 꽃들은 내 이야기를 시시껄렁한 말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어찌 아냐구요?


아무 말 없다는 것은 긍정한다는 또 다른 언어 아닌가요? ^^

난 해가 기울도록 농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역시 한갓진 날이 아니지만 그동안의 은혜에 보답한답시고 한 말이 고작 농사이야기였습니다.

이내 날이 기울었으므로 저녁을 부랴부랴 지어먹고 통창으로 꽃밭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들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보입니다.


매번 꽃들의 이야기와 향기에 취해 살던 이웃이 뭔 생각이 들어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지 몰라도 그 이야기가 싱겁지 않은 모양입니다.


내일은 산야초 이야기를 해줄까?....
산골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줄까?...
이제 재미붙였습니다.^^


지나치면 모자라니만 못하다는 말도 알지만 그것은 여기에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고 스스로 단정지었으므로 난 내일 산야초 이야기를 할 겁니다.

‘사랑이란 서로 상관없는 말에도 귀 기울여 생기돋게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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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편지--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벗들에게 쓴 편지
+   [산골편지]   |  2009. 9. 27. 16:01  


2009년 9월 어느 가을날


친구인 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이 편지를 씁니다.
EBS FM 생방송 인터뷰 선약이 있어서 초보농사꾼과 함께 서울에 갔던 것입니다.

저를 양재동 방송국에 강아지가 똥을 떨구듯(^^) 그렇게 떨구고
"잘해!"라는 말도 부록처럼 붙여 떨구고는 볼일 보러 가더군요.
뭘 잘하라는 말인지...^^


초보농사꾼이 안산에서의  볼일을 다 보고  벗들을 만나 점심 한 끼 하러 간다고 전화했을 때는 방송 일도 다 끝난 시점이었지요.
그리고 난 친정으로 갔습니다.
엄마 얼굴 잠깐 보려고...

풍으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하셔서 시원찮은 발을 끌고는 운동하러 가시고 안계셨습니다.
운동에서 돌아오신 엄마와 짧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미리 연락을 안했습니다.

혹여 못가게 되면 엄마는 눈이 빠져라 막내 딸을 기다리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제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으십니다.


산골로 간 딸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실 것입니다.

짧은 만남으로 인해 서운한 마음을 있는대로 구겨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습니다.
서둘러 본가로 가려구요.


벗들과 점심을 먹고  온 초보농사꾼을 본가에서 만나 산골로 내려오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입니다.

전철 안에 있는데 담배갑만한 물건이 주머니에서 딥다 흔들어대더니  그의 목소리를 전달해 줍니다.
내용인즉, 점심때 얼굴 못본 벗들과 술 한 잔 하기 위해 저녁에 다시 만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옳커니, 올 것이 왔구나'했지요.


왠지 아세요?

제가 산골을 뜰 때, 여행 가방 하나를 챙겼습니다.


그 가방엔 초보농사꾼 추리닝, 양말 한 켤레, 칫솔, 그리고 내 분칠 도구(화장품 세트^^), 나도 집에서 입는 옷 그렇게 챙겼습니다.

산골을 떠나며 당일 내려오기로 둘이 약속했지만 오랜 벗들과 술 한 잔 하는 호사를 그이에게 누리게 하고 싶은 마음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귀농하니 철이 들어 이런 머리는 절로 잘 돌아갑니다.

생전 안해 본 농사를 하느라 손에 못이 박힌 초보농사꾼.
아이들에게 자연을 벗삼아 주고, 아이들의 친구되어 준 초보농사꾼.


성격에 안어울리게 귀농하고는 아내의 눈빛이 촉촉한지, 생기돋는지까지 파악하며 살고 있는 초보농사꾼에게 그쯤은 당연한 일이지요.

굳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래서 전철 안에서 쿨하게 "OK" 하고는 용수철 튕겨나듯 전철에서 튕겨져 내렸습니다.
이왕 산골로 못내려 가게 되었다면 산골아이들의 영혼을 기름지게 해 줄 책을 고르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는 전철을 바꿔 탔지요.

초보농사꾼은 열 명이 넘는 벗들과 즐거운 시간(술에 촉촉히 젖는 시간이었겠지요^^)을 보내고 새벽에 본가로 왔더군요.

그의 얼굴엔 나도 잘 알고 있는 벗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참 건강한 모습이지요.(술에 떡이된 모습을 건강한 모습이라고 하는 이유는 알지요?)

다음 날, 어머님이 챙겨주시는 항아리를 한 차 싣고는 초보농사꾼이 저에게 벗들 얼굴 잠깐 보고 점심도 먹고 가자고 합니다.
벗이 운영하는 방구리 토종 순대국집으로 갔지요.


거기서 세 명(한봉씨, 송철씨, 병화씨)의 벗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난 초보농사꾼의 벗들이 제 친구인양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모두 동갑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결혼 전 데이트할 때부터 함께 만나 와서  그런 것같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내 친구처럼 굴 때가 많은데 그 점은 불쾌하게 생각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 날 따뜻한 점심도 잘 먹었고, 아이들 맛있게 먹이라며 싸준 순대국도 잘 먹였습니다.


산골로 내려 올 일이 급해 오랫만에 산골에서 벗이 왔다며 모여준 나머지 벗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온  미안한 마음을 초보농사꾼 얼굴에서 읽었습니다.


초보농사꾼을 대신하여  인사 전합니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중국 명대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인 뤼신우라는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인격을 향상시키고 일을 배우는 때는 청소년기이고,
도리를 분간하고 인격을 완성시키는 때는 중년기이며,
실제로 인(仁)과 의(儀)를 체득하는 때는 만년에 이르러서부터라고 했더군요.


이제 중년이 된 우리들.
주제넘은 소리 같지만 도리를 분간할 수 있도록,
인격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서로의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더러는 유리 파편보다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곧추 세워 주고,
더러는 흙집 아랫목보다 따사로운 말로 처진 벗의 어깨를 감싸주는 서로의 도반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늦은 밤에 산골에 도착했습니다.
오래 몸담고 살았던 서울에서 묻혀온 추억들도 소중히 짐과 함께 내려 놓았습니다.


벗이여!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주절이 주절이 세 치 혀로 나불대기 보다는 아래 글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라는 책의 한 대목입니다.


참으로 좋은 글이라 작은 공책에 적어 놓고 자주 들여다 보며 마음을 맑히는 구절입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선방에 가면 신발벗는 곳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표찰이 있습니다.
신발 벗는 섬돌에서 자기 발 뿌리를 살피라는 뜻입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과연 내가 오른 이 자리에서 출가수행자로서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 돌아보라는 교훈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저로서는 출가수행자로서가 아니라 자연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으로, 자연을 벗 하고자 들어온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늘 살피며 살려고 합니다.
벗의 모습을 지켜봐 주십시오.


친구를 대신하여 아내가 남편의 벗들에게 쓴 편지글은 어느 책에서도 본 적이 없어 부끄러움도 있지만 오랫 동안 함께 만나와서 이런 용기도 내어 보니 이해해 주십시오.

조금 있으면 송이 철입니다.


가뭄이 심해 씨도 안보이지만, 그 놈이 보이면 연락하겠습니다.
그때는 벗들도 바쁜 하루의 짐을 내려놓고 산골에서 소나무 향기 말아넣은 막걸리 한 잔 합시다.

산골의 또 다른 나의 도반인 코스모스가 지기 전에...



 

그대들!
언제나 초보농사꾼의 든든한 벗이 되어 주어 고마운 마음 전하며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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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이야기--EBS FM생방송을 마치고...
+   [산골편지]   |  2009. 9. 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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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EBS FM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쓴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이라는 책을 읽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래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고2이고 중3인데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방송을 하러 서울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나만 나와 달라는 거다.
곤란했다.


서울까지 가려면 하루가 아니고 이틀을 잡아야 한다.

산골을 뜨기 전에 할 일들이며 아침 10시 생방송이면 넉넉히 나가야 하므로 하루 전에 서울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교육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라 단호하게 거절을 못했다.


산골로 귀농하고 제일 큰 주목거리가 아이들 교육이었고, 이제 아이들이 산골에서 잘 성장한 지금 할 말은 적지 않았다.

일단 교육이야기라는 것에 승낙을 하고 드디어 어제 정확히 새벽 5시에 산골을 나섰다.


그리니까 그 전날 새벽 2시에 잤고 깨어난 시간이 4시이니 딱 두 시간 잤다.

초보농사꾼과 함께 새벽에 집을 나서는 기분이 조금 낯설었다.


내가 서울을 오가거나 해외로 여행을 가더라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서기는 처음이지 싶다.

열심히 달린 탓일까 조금 여유가 있어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양재동 EBS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초보농사꾼은 교육은 신종플루로 취소되었지만 약간의 볼거리가 있다며 안산으로 갔다.


TV촬영은 거의 스무 번에 가깝고 라디오도 세 번인가 나갔지만 한 번은 작가와 PD가 산골로 와서 인터뷰를 해갔고, 한번은 전화인터뷰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방송에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귀농이야기, 아이들 교육이야기를 했다.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라 떨릴 일도 없고, 긴장할 일도 없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그저 ‘살아온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산골살이 이야기, 귀농이야기 그리고 산골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기회가 되는대로 풀어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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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10년차.


그 정도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삶을 이제 결정하려는 이들을 위해, 그런 교육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위해 조금의 참고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이제 다시 산골로 내려가면 내 위치를 더더욱 잘 확인한 후 나의 길을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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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김수환추기경님의 사랑을 쫓아서...
+   [산골편지]   |  2009. 9. 1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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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받은 우편물이 한동안 멍하게 합니다.

뜯어보니 장기기증증서...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또 하나의 사랑 실천 운동이지요.

 

그래서 우리 부부도 성당에서 신청을 했습니다.

  증서에 적힌 사항들을 찬찬히 뜯어 봅니다.

 

장기기증희망등록증

 

한마음한몸 055114 KONOS 554149

이름 박찬득

등록일 2009년 7월 2일

뇌사시 장기기증 조직기증

 

신분증과 함께 늘 소지하시고 기증상활 발생 시 바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뇌사시(장기기증)연락처 굴립장기이식관리센터 02.2260.7029

사망시(각막, 조직기증)연락처 서울성모병원 안은행 02.2258.1217

서울성모병원 조직은행 02.2259.1167

 

 

 

 

그 다음은 제 것입니다.

 

 

                                                                            장기기증희망등록증

 

한마음한몸 055113 KONOS 554134

이름 배동분

등록일 2009년 7월 2일

뇌사시 장기기증 사후 각막기증

 

 

 

그 아래에 적힌 안내는 우리 초보농사꾼 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을 보는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나네요.

 

세상에 오면서 거저 받은 몸, 세상에 거저 주고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렇게 오고 감이 이루어지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 하루도 소중히 알차게 그리고 의미있게 보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어제는 아들 선우(아론)가 학교에 헌혈차가 왔기에 헌혈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할 수만 있다면 헌혈 정도는 일도 아니라고 하면서 증서를 내게 건내줍니다.

 

고딩이라 머리를 써서 그런지 헌혈하고 나니 조금 띵했다고 하네요.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생각하면 띵한 정도는 일도 아니니 푹 쉬면 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만 있으면 헌혈할 거라고 아들이 그러네요.

잘했다고, 훌륭하다고 저보다 더 높이에 있는 아들 어깨를 두들겨 주었습니다.

누가 언제 어느 때 어떤 사람의 도움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주현이 학교에는 헌혈차가 안왔다고 하네요.

중학생들은 나이상 어려서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하늘이 오늘은 조금 흐립니다.

그래도 맑은 하늘을 건강히 바라볼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지요. 

지금도 병원에서 이 한 시간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고통을 참는 분들을 위해 두 손 모았습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오늘 늘 평화로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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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 산골로 귀농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귀농은 스스로 뻑가는 삶이어야 한다.
+   [산골편지]   |  2009. 9. 10.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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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7일

비가 온다.
아침부터 오는 비가 하도 반가워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한참 기분 째지게 걷고 있는데 발 아래 떨어진 꽃이 가슴 철렁하게 만든다.

봄부터 여름 내내 키만 키우며 나의 애간장을 다 태운 내 키만만 백합 한 그루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 마을의 대소사를 공지하는 이장님네 스피커처럼 동서남북을 향해 꽃을 피웠었다.

꽃밭의 다른 꽃들이 그를 우러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키에서 밀렸으므로...

그렇게 새하얀 얼굴로 산골가족의 가을 기분을 좌지우지하던 백합이 그만 땅에 떨어진 것이다.
사람이든 꽃이든 때가 되면 땅으로 가야 하지만 땅에 떨어진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
금방이라도 툭툭 털고 높다란 자기 자리에 다시 올라가 붙을 것만 같다.
너무 생생하게 소풍길을 접는 것이 섬뜩한 아침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이든, 꽃이든 죽을 때는 꼴이 영 말이 아니게 가는 것이 상식처럼 되다 보니 섬뜩하게 가는 꽃의 대명사격인 능소화 등을 보면 그렇게 소름돋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이 말짱한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혹시나 제자리로 올라붙을까 서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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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내가 좋아하는 고 김점선 화백의 책을 읽었다.
거기에 김 화백은 자뻑은 예술가가 되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아, 맞아. 이건 내가 생각했던 거랑 똑같잖아’ 하며 내 작은 다락방에서 책상을 쳤다.

김화백은 “나는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내가 그려논 그림을 바라보면서 자뻑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고백했다.

귀농이 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귀농한 것을 보고 시키지도 않은 주판알을 두드린다.
두 사람이 직장생활할 때 받은 연봉이 얼만데 손에 묻히고, 말이 작업복이지 너덜너덜한 그지같은 옷 입고 쉰 땀내 풍기며 얻는 돈이 얼마냐는 거다.

열심히 주판알을 두들겨 보라. 답이 나오는지...
왜 사람들은 손끝에서 현찰이 오고 가야만 그것을 벌었다고 생각할까?

사람이 돈을 밝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으로 집, 자동차, 명품옷 등을 삼으로써, 몽땅 끌어안음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행복은 상대적이라 남들 앞에서만 빛난다.

그러다 보니 돈=행복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오고 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행복’ 뭐 그런 말일 것이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말해, ‘행복’하면 장땡 아닌가?
내가 귀농에 성공했다는 이유는 외형적, 상대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행복을 일일이 주판알을 튕기지 못하니 숫자로도 나타낼 수 없을 뿐이다.
귀농 전, 도시 살 때 최대의 고민 중 하나가 아빠와 애들과의 관계였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아빠가 워낙 바쁘다 보니 애들이 아빠 얼굴 한 번 보려면 2박 3일 걸렸다.

그러니 애들에게 아빠는 어려운 사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귀농하고는 아빠와 아이들이 친구가 되었다.
그것은 고딩, 중딩이 될수록 더더욱 진한 가족애를 느낄 정도로의 친구이자, 아빠이자, 멘토이자, 그 이상의 관계(이건 가족도에도 나오지 않는 관계이다)가 된 것이다.

귀농이 준 선물이다.
그것을, 이 가슴 터지도록 행복한 것을 돈으로 환산이 될까.

그 다음에 자연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같은 잣대로 닥아서는 스승이다.
인간처럼 지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고 늘 같은 온도로, 같은 색깔로, 같은 모양으로 닥아서는 스승 말이다.

언제 봐도 그 모습인 별을 보면 사람이 변함없어야 함을 배우고,
새초롬했다가, 만삭이 되었다 하는 달을 보며 아이들은 ‘채움과 비움‘에 대해 배우고,
철철이 소리 소문 없이 피는 꽃들을 보며 침묵과 때를 가릴줄 아는 지혜를 배우고,
산골 옆으로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배로 해야 함을 배우고,
봄이면 노오란 송홧가루까지 날려주는 센쓰까지 지닌 소나무를 보면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

이걸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 있는가.

생각할수록 복에 겨운 삶이다.
그렇기에 귀농이야말로 자뻑해야 한다는 거다.

귀농하여 얻은 가족간의 사랑에 소름끼치도록 뻑 가야 하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자연의 혜택과 가르침에 뿅 가야 한다.
자뻑하는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귀농’은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귀농한 사람이 스스로 뻑 가지 않고 도시에서처럼 돈으로 우열을 가리려 든다면 당장 보따리 싸서 되돌아 가야 한다. 뭐든 돈으로 환산되는 회색의 세상으로...

고딩인 아들 선우와 초보농사꾼이 서로 팔을 베개 삼아 주고 하더니 우당탕 난리가 아니다.
끌어 안고 ...
귀농 전 같았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모습이다.

귀농은 자뻑하는 삶이라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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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일하고 먹는 저녁 밥 맛은 또 남다르다.
+   [산골편지]   |  2009. 9. 8. 19:34  

오늘은 수원 농업연수원에서 <농업경영정보화리더>과정 교육이 있는 날이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계속 된다.

농업인들에게 필수인 블로그의 필요성, 블로그 만들기, 블로그 관리 등 정말 요긴한 정보를 하나하나 머리에 넣고 있는 교육이라 누구도 조는 사람이 없다.

그러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시간...
지금껏 배운 그 들뜬 마음으로 다시 들뜬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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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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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는 요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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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차례를 기다리는데..배에서는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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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육생들이 많아 사진을 찍기가 왠지 미안스러워 대강 찍었더니 사진이 엉망이다.
실력 없다는 소리는 죽어도 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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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맛깔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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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육생들도 무지 좋아하나보다.
나도 좋아하는 생선튀김에 달달한 것을 묻히고...
나도 여러 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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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영양식단 ... 비빔밥
고추장을 넣어 비볐더니 침이 꾸~~~울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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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남김 없이 죄다 먹었다.
만들어 주신 분의 정성을 생각하여 남김없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땀흘려 일하고 먹는 저녁밥이랑 이렇게 머리 운동하고 먹는 저녁밥의 맛은 사뭇다르다.

이렇게 고마운 저녁을 먹었으니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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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니가 이렇게 컸구나."
+   [산골편지]   |  2009. 9. 7.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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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6일


여름백수(여름방학) 기간 동안 서울의 네째 이모네 집에 갔던 산골소녀 주현 낭자가 어제 산골로 돌아왔다.
이모네 집에서 하루 전날 철수(?)하여 친할머님 댁에서 하루를 잔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 서울갈 때부터 계획한 거란다.


이제는 할머님댁에 가라 마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챙긴다.
짐이 많아 힘들텐데도 할머니댁에 왔다고 전화가 왔다.


할머니와 하룻밤을 자고 산골로 오는 버스를 탄 것이다.
면까지 초보농사꾼이 데리러 갔다.

백산님 부부가 와 있었기 때문에 저녁을 함께 먹고 늦은 시간에 헤어졌다.


수요일에 '안동교구 귀농가족모임'을 하늘마음농장에서 하기로 되어 있어서 준비도 해야 하기에 내 일을 계속 하는데 손님이 가시자마자 주현이가 작은 꾸러미를 내민다.

풀어 보니 옷이다.


눈물이 핑 도는 옷이다.

옷이 비싸서가 아니다.


그 옷은 사연이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사연...

지난 주에 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갔었다.
주현이는 이모네 집에 먼저 가 있었고, 볼일을 보고 시간을 내어 주현이랑 쇼핑을 했다.

옷이라도 사준다고 하면 무조건 됐다고 하는 주현이.


한창 멋부리고 싶은 나이에 철이 일찍 들어 이것 저것 사달라고 한 적이 없는 딸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라 주현이 눈이 가는 옷을 사주었다.


그리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쇼핑을 하는데 귀여운 옷이 있기에 한번 입어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가게를 나왔다.


옆에서 엄마 왜 안사냐고 하는 주현이...
"음, 뭐...작을 것 같기도 하고... " 그렇게 얼버무렸다.


다음 날 주현이와 헤어져 산골로 내려오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전철을 탔는데 문자가 왔다.


"엄마, 어제 그 옷 엄마에게 어울리던데 왜 안샀어?"

"음, 좀 비싸더라."
며 그땐 생각없이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주현이가 그게 어제부터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물어오는 거다.


말수가 많지 않은 놈이라 이 정도면 많이 생각하고 던지는 질문이다.

그 문자를 보는데 어찌나 뭉클하던지 전철 안에서 눈물이 주루룩...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이럴 때 제어기능, 통제기능의 약발이 떨어진다는 거다.

나는 참으려고 해도 눈은 그 눈치를 못챈다.
주루룩...


손수건으로 땀닦는 시늉을 하며 눈을 꾹꾹 눌렸다.
그러나 마음은 수건으로 꾹꾹 누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컸구나....'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산골에서 어디 갈 일도 별로 없고, 이모들이 사보낸 옷만해도 넘쳐난다...."등등,

그렇게 내가 산골로 왔고 어제서야 주현이가 산골로 왔다.


그런데 손님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선물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랑 쇼핑을 했던 거기까지 한참을 가서 바로 그 집을 찾아 그 옷을 사온 것이다.
내가 입어보고 그냥 나왔던 그 옷을...


다른 사람이 사갈까봐 점심도 안먹고 부랴부랴 다음날 거기에 가서 샀단다.

"엄마, 이 옷 맘에 들어했지?"


이제 엄마 마음속까지 투명하게 읽고 그 마음에 보탬이 되려 행동하는 주현이..
중3이면 묻는 말에 대꾸도 안하고, 부르면 지 방에서 문도 안열고 왜 그러느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할 나이라는 중3.


"엄마, 입어 봐."


난 손님이 가시고 행사 준비로 빨래를 삶고 하던 손을 놓고 옷을 아이처럼 입어 보았다.
아주 잘 맞는다며 우리 주현이가 더 좋아한다.

주현이를 안아 주었다.


'우리 주현이 애기 때, 우리 주현이를 맡아 길러주셨던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남의 손에 아이를 맡겨야 했을 때, 그럴 수 없다며 사표를 내던졌던 때, 그 때 다짐대로 우리 주현이를 키웠는지....


내 일도 중요하고 직장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따사롭게 잘 키워야 한다는 다짐으로 사표를 던졌던 그 다짐대로 우리 아들, 딸을 키웠는지...

미안하기만 한데 너는 커서 이렇게 엄마 마음을 읽는구나.
나 너의 마음을 얼마나 읽고 응답해 주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거봉포도가 목구멍에 걸린듯 순간 꽉 막힌다. 목구멍이...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산골의 두 남자 박씨가 막 야유를 보낸다.


"주현아, 아빠도 이쁜 옷 입고 싶은데...."


"주현아, 오빠 선물은 없냐? 이모들이랑 할머니한테 앵벌이해 온 용돈 반띵하자.^^"며  데모를 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늦은 밤에 차를 마셨다.


네 잔의 찻잔에 그려진 핑크빛 꽃들처럼 가슴 속에는 들이 만발한 화원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귀농하지 않았다면 이런 시간이 있었을까....


아마도 초보농사꾼은 애들 볼 시간도 없이 빠듯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아이들이 자고, 초보농사꾼도 자는 시간.


혼자 깨어 딸아이가 부랴부랴 다시 가서 사온 그 옷을 또 입어 보았다.
그곳으로 뛰어가느라 헐떡여서인지 옷에서 딸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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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의 미니 번개
+   [산골편지]   |  2009. 8. 25. 17:50  


2009년 8월 10일

서울에 갔었다.
두 번째 책 내는 일로 출판사도 가야 했고, 과천에 있는 농수축산부에 들릴 일도 있고, 다른 일도 볼겸해서 나섰다.

산골을 한번 뜨려면 이런 저런 일들이 걸려 미루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다.
이번 서울행은 이틀 예정으로 떴는데 사흘이나 있다가 오게 되었다.
우리 산골소녀 주현 낭자랑 시간을 보내느라 그랬다.
오랫만에 갖는 둘 만의 쇼핑 시간.

무엇을 사서가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도 말하고, 우리 주현이가 좋아하는 것도 말하고, 그렇게 몇 시간 함께 한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일을 보는데 미니 번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하늘마음농장을 사랑하는 분들이 두 번의 번개를 가졌었다.
한 번은 '청계천 번개'였는데 그때는 우리가 참석도 하지 못했는데들 모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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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후기를 읽고 얼마나 고맙고, 가슴벅찼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음 번개 때에는 부부 중 한 사람만이라도 꼭 참석하리라고...

그리고 한참 후에 '삼성동 번개'가 있었다.
그때는 초보농사꾼이 참석했었다.
고마운 분들이 많이 나오셨고, 초보농사꾼도 돌아와 설명해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이른 봄에 울진 산골에서 번개를 했었다.
그 바쁘신 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하룻밤을 보내시고 가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울진 번개 때에 마침  일이 있어 못오신 분들이 몇 분 계셔서 늘 아쉬운 마음을 안고 살았었다.
그러다 이번 서울에 갔을 때 문득  여름이 가기 전에 못오신 분들을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일을 보면서 한 분 한 분께 문자를 드렸다.
치자꽃님, 산천어님, 김요셉 교수님, 김남걸님, 은행장님, 굼뱅이 엄니, 문영미님...

메히틸다 언니는 다른 언니들과 모임을 갖기 때문에 함께 오는 것이 나을 것같아 문자를 생략했다.
그리고 당수님께 이런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고 문자로 보고도 드렸다.^^

사실 갑자기 생각한 일이라 분명 내가 나쁜 머리에 기억 못하고 빠뜨려 발등을 찍을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건망증이 심한 거야 홈의 사랑방에 오시는 분들 모두 아는 사실이라 "생긴대로 살자!"를 외치며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일이 있어 어렵다고 하셨고, 김요셉 교수님은 회답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토요일에 산골로 오신 분이 김남걸 님 부부와 문영미님이었다.

문영미님은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
면에 있는 곳에 내리기로 하여 내가 마중을 나갔다.

정거장에서 우린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가방이 무겁길래 집에 와 보니 가방안에서 밑반찬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산골아낙이 손님맞이에 바쁠까봐 밑반찬을 열 가지 정도 가지고 왔고, 시계가 하루 전날 고장나서 초보농사꾼이 낭패를 보았는데 어찌 그리 귀신같이 알았는지 이쁜 시계와 내가 좋아하는 빵(^^)을 사가지고 왔다.
버스를 갈아타고 불편했을텐데...생각하니 마음이 찡~~~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김남걸 님 부부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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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미님은 장갑끼고 호미들고 마당의 풀을 뽑기 시작하는데 정말 '개가 핥은 것'같았다.
어찌나 손을 잽싸게 놀리는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말끔해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동동거리기 시작했다.

이 산골에 왔는데 자연이라도 많이 보여줘야 하는데 풀을 뽑고 있다니...
서둘러 소광리로 '500년 된 소나무'를 보러 가자고 했다.
소광리로 들어서서부터 울진 금강송에 감동하는 영미님,...

쭉쭉 뻣은 소나무들과 흙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지러지듯 가을을 준비하는 소광리 계곡에 잠시 차를 세우고 맑디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손을 담그며 서로 감탄했다.

그렇게 돌아오니 김남걸님 부부가 도착해 계셨다.
저녁은 데크에서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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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녁 메뉴는 오갈피와 뽕나무를 넣은 닭백숙을 하려고 했는데 닭 잡아 주는 곳에서 하루 전에 주문을 했어야 했단다. 엊그제만 해도 보는데서 잡아주드만...
벌써 오갈피 나무와 뽕나무를 톱으로 베어다 놓았는데 헛수고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메뉴를 삼겹살로...
안개비가 내리는데도 모두가 밖의 데크에서 먹자고 하여 우리는 돛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구웠다.
김남걸님은 초보농사꾼이 좋아하는 1회용 생맥주 통과 여성팬들이 좋아할 와인과 맛난 꽈자, 집에서 신는 신발, 내가 좋아하는 빵(^^) 등을 사오셨다.

선우와 초보농사꾼이 그런다.
얼마나 빵을 좋아한다고 광고를 했으면 오시는 분들마다 빵을 사오시느냐고...ㅠㅠ

그렇게 소주잔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산골이야기를 들으시고, 사랑방 손님들을 떠올리며 늦도록 식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김남걸님께서 우리 산골가족을 생각하시어 백암온천에 숙소를 정해놓고 미리 돈도 지불하시고 가방 하나도 그곳에 두고 오셨다는 거였다.

산골에서 모두 같이 자면 되는데 왜 그러셨냐며 볼멘소리를 했고, 결국은 숙박비를 포기하고 산골에서 주무시기로 했다.
가방은 내일 아침 일찍 찾아서 다시 산골로 오시기로 하고...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사랑방 손님들은 어쩜 그리 눈매가 선하디 선하신지...
오래 전에 만난 인연같고, 오빠같고, 동생같고 그랬다.
그래서 한없이 든든하고 ...

다음날, 김남걸 님 부부는 백암온천에서 가방을 찾아 오셨다.
어제 산골을 둘러보신 후, 집 꼭대기에 말벌집이 있다며 철거해야 한다고 한 걱정을 하시더니 에프킬라 두 통을 사오셨다.
그리고 초보농사꾼과 말벌집 소탕작전을 개시!!!

산골의 집은 워낙 지붕이 높아 아무리 높은 사다리를 펴도 해결이 안되다 보니 제일 긴 철 장대(하우스 대)로 해결하기로 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비옷을 입었다.
업무분장도 했다.
초보농사꾼은 엄청 긴 철 작대기로 벌집을 털어내는 일을 맡았다.
그리고 김남걸님은 에프킬라 두 통을 쏘면서 벌이 벌떼처럼 사람에게 달려들 것을 막기 위해 에프킬라를 양손으로 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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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붕이 워낙 높기 때문에 철 작대기로 여러 번 휘둘러서야 커다란 말벌집이 떨어졌다.
벌집이 공격을 당하자 말벌들이 주위의 두 침략자(?)를 향해 달려들기도 했으니 김남걸님의 쌍권총에 모두 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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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은 다리 아래로 , 머리 위로 달려들었지만 김남걸 님의 그 예리한 눈과 판단력과 지혜에는 꼼짝을 하지 못했다.
저렇듯 2인 1조로 이루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또 사람만 두 명 있다고 가능한가??
아니다.

칼같은 판단력과 작전, 그리고 민첩한 행동 등 3박자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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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이 성격과 달리 말벌집 흔적을 말끔히 털어내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 달 쯤 전에도 말벌집을 그 자리에 지었었다.
초보농사꾼과 선우가 위험을 부릅쓰고 소탕을 했었다.
그런데 그 말벌집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많은 말벌들이 우와좌왕하느라 난리다.

왜 안그렇겠는가.
입장바꿔 생각하면 똑같지.

그렇게 떨어뜨리고 잽싸게 집에 도망들어와 밖의 부서진 말벌집을 구경하고 다음날 보니 그 큰 말벌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다.

아들 선우 말이 자연물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며 감탄한다.

그런데 조금의 흔적이 남아있는 바로 그곳에 예전 것보다 더 큰 말벌집을 지은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시 짓는단다.

아들 선우가 한번 재해를 당하면 저런 생명체들은 다음에는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재연을 한단다.
어디서 알았냐고 하니 책에서 보았단다.
책 값 하는 선우 ㅎㅎㅎ
주현 낭자는 서울 가 있는 관계로 이런 모습을 못보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쉽고 그립고 그랬었다.


여하튼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서 두 남자들이 소탕작전에 몸을 바치는 동안 집 안에서 현관문을 꼭 닫고 통창으로 그 생생하고 스릴있는 ‘말벌소탕작전’을 관람(?)했다.




 

그 안에서는 통통한 애벌레가 쏟아져 나왔다.
정말 신기하다.
말벌집 구조도 신기하고, 시치로폼처럼 생긴 하얀 것들이 저들이 만들 공간이라는 사실도 신기하고, 그 안에서 애벌레가 살아 움직이는 것도 신기했다


나머지 벌들은 집이 쑥대밭 되었으니 웬 놈들이냐며 웽웽거렸고, 그 기세를 노련하신 김남걸 님이 에프킬러로 짓눌렀다.

더운 날 비옷을 입고 그 놈들을 소탕하느라 두 사람 모두 땀이 범벅이 되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신 김남걸님은 다른 곳에 또 벌집이 있는지 늘 주의해서 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대단위 작전이 끝나고 모두 소광리로 출발.
울진의 황루시아 가족(채영 아빠, 용선이, 채영 공주)를 소광리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죽변항에서 회를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회를 찾아 싣고서...
백산님네 부부는 영양의 수비에 펜션을 돌봐야 해서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모두 소광리 끝에 있는 500년된 소나무를 보고 소광리 계곡과 소나무 숲길 등에 감탄을 하며 둘러보았다.
벌써 계곡의 돌에는 돌에 붙은 잎사귀에 단풍물이 들기 시작했다.
어찌나 가슴으로 달려드는지...

소광리와 불영계곡이 만나는 곳에서 발을 담그고, 루시아가 사준 옥수수를 먹으며 잠시 시간을 보내다 산골로 돌아왔다.
김남걸님 네가 먼저 가셔야 한단다.
죽변항에서 사온 싱싱한 회 맛도 못 보시고 한 분은 부산으로, 한 분은 안양으로 가셔야 했기 때문에 먼저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리고 루시아네 가족과 문영미님은 좀더 이야기 시간을 갖다가 문영미님이 서면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나와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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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같이 했는데 이별의 끈은 왜그리 길고 질긴지...
면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서로의 손을 잡았다.
영미님은 좋은 시간 보내고 간다고 했지만 먼 길 온 영미님께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손이 왜 그리 차갑던지...
스웨터라도 입혀 보낼 것을...

버스가 도착했고, 차창으로 손을 흔들고는 버스 뒤꽁무니만 바라보았다.
불영계곡을 돌아 집으로 오는 길...
차를 몇 번이나 세우고 마음을 눌렀다.
버스를 갈아타며 돌고 돌아 온 분들...
영미님에게 문자를 보내고 산골로 돌아왔다.

황루시아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루시아 가족 역시 늘 우리 산골가족에게 든든한 위로자인 사람들.
채영 아빠는 어쩜 그리 착한지(물론 루시아도 착하구..삐지지 말길...), 초보농사꾼에게 형님, 형님 하는 모습이 그리 이쁠(?) 수가 없다.
그 모습은 귀농 초에 만난 모습 그대로다.
세월이 변해도 늘 한결같은 마음 그대로인 사람.

루시아네 가족이 떠나고 나의 사랑하는 인연들이 산골을 다 빠져 나간 시간...
한참, 꽃밭 주위를 서성였다.
코스모스도 손을 내밀고, 노란 서양국화도 길게 허리를 굽혀 내 치맛가락을 스치며 아는체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위로방법이다.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의 길이 어떤 발자국을 남겨야 하는지,
내 살아가는 향기가 들꽃처럼 어떤 잔잔한 파장을 남겨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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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눈물의 사표를 내던지던 날
+   [산골편지]   |  2009. 8. 13. 14:00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둘째인 딸 아이를 키워주시던 친정 엄마가 몸이 안좋아져 아이를 돌봐주실 수 없게 되었었다.
남에게 맡겨 보려고 사람도 구해보았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서 그만 울고 나왔다.


어떻게 남에게 이 어린 아이를 맡긴단 말인가.
그 생각으로 그 집을 나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엉엉 울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절대로 남에게 이 어린 것을 맡길 수는 없어...'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아들 선우는 언니가 봐주다 시어머님이 봐주시지만 주현이까지는 어머님께 너무 어려운 일이고 ...
그렇다고 어떻게 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한 시간이었다.


그 결정은 나만이 할 수 있었다.
직장을 그만 두는 일이야말로 나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남편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전공살려 일하는 직장을 그만 두라고 하지도, 그렇다고 남에게 아이를 맡기라고도 하지 않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긴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남편의 조언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결정은 내 몫이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기지 못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 판...
그러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전공도 살릴 수 있었고, 직장 분위기도 좋았기 때문에 그 결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온 가족이 말렸다.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인데 이제 왜 사표를 내느냐고 다 뜯어말렸다.
친정 아버지는 그렇게 대학원까지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냈더니 사표를 내느냐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결국 사표를 냈다.
얼마나 울었는지....


함께 근무했던 언니들도 의외의 반응이었다. 나의 사표에 대해...

그러나 내 생각으로 그것이 최선이었다.


꿈을 향해 한 계단씩 올라가던 시기에 난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내가 올라가야 할 계단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사표를 낸 시기가 1995년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그만 둔 직장을 이번에 서울 갔을 때 들렸었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도 집에서 회사 일의 일부를 했었기 때문에 광화문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에 갈 일은 많았었다.

직장 그만두고 처음 한국생산성본부에 갔을 때, 그 현관에서 울었었다.
가슴이 뭉클뭉클하고...



그렇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남은 삶은 내 의지대로 산다며 오지 산골로 귀농하고는 한번도 못갔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뻔질나게 갔었으면서도 거기까지 들릴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TV '30분 다큐'를 보고 선배 언니가 얼굴 좀 보고 살자며 전화를 한 김에 일을 보다말고 광화문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은 벌써 머리끄댕이를 다 끄들려 놓은 것처럼 어수선했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경복궁 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안국역에서 내려 한국생산성본부를 찾았으니...
다시 전철을 타고 내리니 선배 언니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졸업하고 입사하여 결혼하고, 둘째 낳고 나서까지 다녔던 한국생산성본부.
그 현관을 보니 다시금 눈가가 촉촉해지고...

지하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점에서 언니들이 사준 커피랑 빵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귀농이야기를 하고, 직장이야기도 듣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다음은 빌딩으로 올라가 전에 국제부 시절, 같이 근무했던 상사분도 만나 보았고, 교육훈련사업본부에 근무했을 때의 동료도 만나 보았다.
거의 대부분은 많이 사퇴를 하여  얼굴을 몰랐지만 같이 근무했던 분들을 보았을 때는 온몸이 전기가 오는듯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추억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마지막 회식을 하고 왔을 때, 우는 나를 위로하며 남편이 말했다.
누구든, 어떤 위치에서든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은 거라고...
난 그 말을 흘려들었었다.

지금 생각해 본다.
그때 그만두길 잘했다고...


엄마 노릇을 잘하지도 못하지만 좋은 결정이었다고....

그렇게 그만 두고 나서 한번도 직장그만 둔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
다만, 아쉬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산골로 귀농하여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은 지금 세상을 다 끌어안으듯 뿌듯하다.

자세한 내용은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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