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늦자락의 글
올해는 밭농사가 흉작이다. 고추농사도, 야콘농사도...
가물어서가 이유이든 어쨌든 우리 부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미련도 후회도 없다.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눈에 보이는 농사가 흉흉하다 하여 마음농사까지 되숭숭할까 그게 조심스럽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더 초보농사꾼의 안색을 챙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차 한 잔 앞에 두고 초보농사꾼에게 그런 소리를 했다.
귀농하던 해, 이 낯선 연고도 없는 곳으로 귀농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올 한 해의 끄트머리는 기운이 자꾸 땅속으로 기어 들어간다고...
초보농사꾼 안색을 챙길 것이 아니라, 이건 내 안색이 문제인가 보다.
그게 사실이다.
늘 자신감있고, 꿈을 향해 달려가던 그 굳센 마음이 내가 이 바람부는 낯선 터에 서있게 하는 알맹이였는데 올해는 한 겨울 엿치기하듯 엿가락을 부러뜨린 것처럼 뚝 하고 인정사정없이 분질러지는 기분이다.
물론 분지른 엿속은 구멍이 숭숭...
초보농사꾼도 의외라는듯 쳐다 보고 말이 없다.
그러나 난 안다.
내가 나를 잘 안다.
오뚜기처럼 금방 나의 꿈을 다시 주머니에 주워담고, 나의 가족을 눈에 넣으며 힘차게 걸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당분간은 그렇게 헤매고 싶다.
나도 헝클어진 마음상태로 그렇게 헤매고 싶다.
미친년 머리 헝클어지듯 그렇게 헝클어진 마음을 한 올 한 올 쓰다듬어 뽀마드를 바른 것처럼 차른한 머리로 거듭날 날이 있다는 것을 난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늪지처럼 바라볼수록 깊어지는 지혜가 생길 것이고, 내일을 향해 걸음의 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감지하며 내 작은 발을 내놓을 것이다.
귀농하고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저녁밥을 따뜻하게 지어먹고 나면 초보농사꾼과 차 한 잔씩 들고 마당으로 나서는 그 시간이다.
오늘도 그렇게 차 한잔을 떠받들고 마당에 섰다.
언제 내 마음 속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산골의 밤 속 분위기는 온통 ‘괜찮다’는 소리만 들린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고만 한다.
하늘에는 소리없이 내려다 보는 별과 달이 든든한 후원자이고, 땅에서는 마지막 남은 가을국화가 또한 큰 위로자가 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그 소리의 진원지이다.
사람은 저 안겨주는 쪽으로 피사의 탑처럼 기울어지게 되어 있나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마당에 선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 격려로 난 내일 하루를 살 영양을 저장한다.
산골의 밤은 어머니 손처럼 ‘약손’이다.
내 안길 곳이 이 산골이라는 것을 보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아쉬운 마음도 든다.
욕심 그득한 도시의 그 물에서 보다 일찍 발을 뺐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껏 발을 못뺐다면 어찌 되었을뻔 했을까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건포도처럼 새까매진다.
그러니 지금이 얼마나 금쪽같은지...
밭농사는 재미를 못봤지만 마음밭만은 여느 해보다 풍년이길 원한다.
원이 강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책읽을 여유도 더 생기고, 다른 때같았으면 중요도에 밀려 있던 일들도 여유롭게 해치우고 있다.
산골가족의 얼굴도 점까지 선명하게 보려 하고...
다 좋을 수는 없다 하면 난 마음밭에 손을 들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평소에 바빠 밀쳐 두었던 화분갈이를 했다.
사랑초가 항아리에서 자손을 번창시켜 분갈이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매번 바쁜 농사일로 밀쳐 두었었는데 이제 날이 추워지고 서리도 위협하는지라 오늘 낮엔 고상하게 화분에 손을 댔다.
지금 상태로도 이쁘지만 몸을 나누어 주면 더 풍성해지기 때문에 분갈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준비물은 항아리 하나, 화분 하나, 꽃삽, 그리고 깨진 항아리 조각 하나를 준비했다. 항아리 밑구멍을 막아야 하니까...
항아리에서 사랑초를 빼내어 보니 그 안에 스승이 들어있다.
이렇게 작은 알갱이에서 열심히 꽃대를 올리고 올려 산골가족에게 보랏빛 이쁜 이파리와 새하얀 작은 꽃을 선사한 것이다.
소리없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그 작은 알갱이가 다칠까봐 조심스레 신생아 다루듯 하면서 나 또한 더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껏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랑초에 보답이라도 하듯 보다 더 검고 영양가가 풍부한 흙을 찾아 꼭꼭 눌러주었다.
이제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겨우내 산골가족의 동무가 되어주겠지.
이렇게 세 집 살림을 내주었다.
지금은 엉성하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저들은 또 힘껏 저 살궁리를 하여 풍성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진다는 것을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몸으로 보여주겠지.
산골엔 눈만 돌리면 스승이 즐비하다.
이렇듯 밭농사의 결과가 재미없어진 댓가로 이런 마음의 여유도 부리며 교훈을 얻으니 애들말로 쌤쌤이다.
낮에 마음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늦은 밤 마당에 선 산골부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괜찮다’는 소리에 등이 밀려 집으로 들어오는데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