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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이야기 _해당되는 글 12건
2009.09.19   귀농이야기--EBS FM생방송을 마치고... 
2008.08.15   귀농일기--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 1
2008.08.14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2008.08.12   산골편지4 --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2008.08.09   산골편지3 -- 스스로 크는 아이들 
2008.08.09   자발적 가난 
2008.08.07   상도[전5권]을 읽고... 
2008.08.07   산중일기 
2008.08.06   산골풍경--왜 갑자기 갖고 싶은걸까??? 
2008.08.06   산골편지1 -- 내가 산골로 온 이유 

 

귀농이야기--EBS FM생방송을 마치고...
+   [산골편지]   |  2009. 9. 1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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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EBS FM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쓴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이라는 책을 읽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그래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고2이고 중3인데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방송을 하러 서울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나만 나와 달라는 거다.
곤란했다.


서울까지 가려면 하루가 아니고 이틀을 잡아야 한다.

산골을 뜨기 전에 할 일들이며 아침 10시 생방송이면 넉넉히 나가야 하므로 하루 전에 서울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교육이야기를 해달라는 것이라 단호하게 거절을 못했다.


산골로 귀농하고 제일 큰 주목거리가 아이들 교육이었고, 이제 아이들이 산골에서 잘 성장한 지금 할 말은 적지 않았다.

일단 교육이야기라는 것에 승낙을 하고 드디어 어제 정확히 새벽 5시에 산골을 나섰다.


그리니까 그 전날 새벽 2시에 잤고 깨어난 시간이 4시이니 딱 두 시간 잤다.

초보농사꾼과 함께 새벽에 집을 나서는 기분이 조금 낯설었다.


내가 서울을 오가거나 해외로 여행을 가더라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서기는 처음이지 싶다.

열심히 달린 탓일까 조금 여유가 있어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양재동 EBS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초보농사꾼은 교육은 신종플루로 취소되었지만 약간의 볼거리가 있다며 안산으로 갔다.


TV촬영은 거의 스무 번에 가깝고 라디오도 세 번인가 나갔지만 한 번은 작가와 PD가 산골로 와서 인터뷰를 해갔고, 한번은 전화인터뷰였기 때문에 이렇게 생방송에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귀농이야기, 아이들 교육이야기를 했다.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라 떨릴 일도 없고, 긴장할 일도 없었다.


더함도, 덜함도 없이 그저 ‘살아온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산골살이 이야기, 귀농이야기 그리고 산골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기회가 되는대로 풀어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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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10년차.


그 정도면 이제 전혀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야기를 조금은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삶을 이제 결정하려는 이들을 위해, 그런 교육을 실천하려는 이들을 위해 조금의 참고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이제 다시 산골로 내려가면 내 위치를 더더욱 잘 확인한 후 나의 길을 가려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
+   [귀농일기]   |  2008. 8. 15. 16:00  
오늘은 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이다.
이곳 지역자체가 워낙 오지이다 보니 1년에 한번씩 농한기인 지금
겨울철에 한번하는 행사가 얼마나 반가운 행사인지 모른다.

비용도 부품비 정도의 실비만 받거니와 이동하기 힘든 농기계를 수리하러
어렵게 읍내까지 운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월 8일에 한다는 것이 당일날 수리요원의 귀경때문에 18일로 연기되더니
어느날 갑자기 15일인 오늘 한다는 것이다.

아마 서울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인데도 시골사람들은 그저 이해할 따름
이다.

나 역시 화는 났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이곳 저곳 손볼 요량으로 경운기를
몰고 폐교 운동장으로 나갔더니 내가 제일 첫번째이다.
수리하는 사람들이 셋이 왔는데 모두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나 역시 씨익 웃어줬다.

이유는 말을 안해도 알지만 아뭏은 설명하면 그렇다.
귀농하여 경운기며 예취기며 엔진톱, 그리고 귀농인들 공동으로 구입한 벼 탈곡기
등을 그동안 사용하면서 사용법 내지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몰라 수십번 그곳을 들락
날락 했기 때문에 그사람들 속으로는 아마 그랬을 꺼다.

"아휴! 저 양반 또 무었때문에 왔을까! 또 그저 간단한 고장가지고 저렇게 난리치겠지..."
....
...
상호간에 그런 교감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이 그런 불평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수리하여 주고
덤으로 사용방법, 관리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니 여간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깨긋이 수리해서 경운기를 몰고 올라오려니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경운기 엔진소리가 한결
부드러운것 같고 기계톱으로 나무를 썰어보니 한결 잘 썰리는것 같다...

초보농사꾼 박찬득(이전 글이다)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   [산골편지]   |  2008. 8. 1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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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갔었다.
4식구 올망 졸망 방파제를 지나 해송처럼 뾰족 뾰족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아 놀았다.

선우가 성당교육이 있는 날이라 미사시간까지 근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자장면 사먹고 서점에서 서로 다투어 책도 사고 이내 바다로 달렸다. 나도 닥아가고 바닷새도 마중나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바다에 취한다.
바다를 보니 문득 몇 달 전에 바다를 언제나 품고 사시다 엄마별에게 가신 작가 정채봉 님이 생각났다.

주현이는 애기 홍함을 3개 뜯어서는 주머니에 넣고 미역줄거리도 반찬해먹는다고 자기 끝 손가락만한 것을 딱 1개 뜯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랫만에 바닷가에 섰다.

저만치서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달려와서는 내 발 앞에 엎어진다.
그리고는 침을 하얗게 뱉어 놓고 되돌아갔다 다시와 침을 뱉는다.
바다는 자연을 닮은 것만 받아들이고 인간이 내다버리는 것들은 그대로 밀어낸다.

증오, 이기심, 시기, 쓰레기 등은 거칠게 밖으로 밖으로 밀어낸다. 그래도 세상에 불만이 많은지 침까지 뱉는다.

**********************************

사람은 똑같은 사람인데 얼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닥아와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듯 싶다. 그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를 지금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도시에서야 부족함이 있었던가. 그래도 늘 마음이 깔끔하지 못하고 안개 속을 걷듯 답답하기만 했었다.

열 수만 있다면 마음 속을 열고 비설거지하듯 씻어낸 후 햇볕에 말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정도로.

그 길이 진리인줄 알고 살았었고 지금도들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행복, 여유로움도 내 마음이 짓기 나름인 것을.
그저 큰 바람없이 지금 갖고 있는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혹여 바람이 있다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듯 소박하고 가슴절인 바람이라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올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왔었다.
그 눈오는 어느 날 정채봉 님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을 카톨릭신문에서 접했다.
순간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동안 기를 쓰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살았던 도시같았으면 '안됐네'라는 짧은 생각이 다 였으리라.

그러나 이곳 산골에서 접한 한 작가의 죽음을 두고 두고 마음에서 접었다 폈다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그 분의 책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정채봉 님에게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아들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닷바람에 묻어 오는 해송타는 내음.

어떤 책에선가 어머니의 산소를 이장하러 가는데 스무 살 어머니가 머리가 히끗히끗한 늙은 아들을 보면 마음아파하신다며 머리에 처음으로 염색을 하고 갔다는 글을 읽었다.

그 분의 글 곳곳에는 어머니에 대한 절제된 그리움이 얼룩져 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간혹 할머니를 힘들게 하면 할머니는 팔을 베어 버리고 천 리나 만 리나 도망가 버리겠다고 하였단다.

그런 밤이면 팔베개를 내준 할머니가 팔을 베어 버리고 도망가실까봐 할머니 속적삼 옷고름을 손가락에 묶어 두고 잠들곤하였다고 마음아픈 어린 시절을 고백하기도 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남의 일로, 남의 가슴앓이로 내 가슴을 내어 놓은 적이 있는가.
그저 내 가슴 속의 것들만 아프다고 후벼파내 보이며 반응을 구걸하지 않았던가.


그저 굳어져만 가는 가슴과 차가운 마음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은 평소에 지어먹은 마음대로 되는가보다.

정채봉 님은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 그쪽 별로 가는 때도 눈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라는 실개천같은 바램을 안고 살았었는데 정말 1월 눈이 내리는 날 엄마별에게 가셨다.

눈이 그토록 많이 내리는 날, 눈 위에 속세의 발자국을 남기며....

**********************************
산골에서는 나 모르게 피었다가 지는 꽃도 많다.
나 알게 피어도 워낙 꽃이름에 까막눈인 내가 이름 한 번 불러 줄 순 없지만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줄 수는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하얀 찔레꽃이 구석진 곳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작년 두릅밭 언덕에 찔레나무가 너무 많아 하도 팔과 다리를 찌르기에 '쓸모 없는 건 지천이고 정작 요긴한 것은 드물고....'라며 서툰 낫솜씨로 구박했던 일이 미안스럽다.

세상 어디에도 쓸모 없는 것은 없는 것을.......
어찌나 하얀 다섯 손가락이 여리고 예쁘던지. 향기 또한 진하지도 않은 것이 제 몸의 가시를 감추고도 남음이 있다.
난 내 몸에 고슴도치처럼 돋은 가시를 무엇으로 가릴 것인가.

2001년 오월 26일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가


 
 
        

 

산골편지4 --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   [산골편지]   |  2008. 8. 12.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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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께서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은 그래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기껏 아는 게 뻐꾹새 소리밖에 없느냐"고 핀잔을 주시며 일일이 새이름을 구별해 가르쳐 주셨다듯이 나 역시 새소리는 뜸부기,까치,까마귀 소리밖에 모른다.

또 설령 열심히 알려줘도 그 소리가 그 소리같고 그 모습이 그 모습같아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뿐인가.
나물이름,들꽃이름도 매한가지다.

특히 나물은 더 까막눈이라 왼손에 샘플을 들고 다니면서도 똑같은 것 뜯기가 여간 능력에 부치는 것이 아니다.

이웃 형님의 놀림도 놀림이지만 이곳 산골에서 뿌리내릴 사람이다보니 내 자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오늘은 샘플로 뜯어 준 것이 시들어 꼬부라지도록 똑같은 것을 못뜯었다.
나물과 새와 들꽃들과 정말 친해지고 싶은데 잘 안되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

부모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공부는 엄마주려고 하니? 너 위해서 하지."

내가 한국생산성본부 첫 여자 연구원으로 입사했을 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난 사실 학교다닐 때 정말이지 엄마위해 공부할 때가 많았어. 그 정도로 엄만 내게 헌신적이셨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여느 엄마가 자식에게 헌신적이지 않을까마는 얼굴이 안개꽃처럼 하얀 내 엄마는 당신은 없고 오직 자식만 있었다.

어쩌다 한 겨울 새벽에 도서실가는 것이 귀찮아 포기하려다가도 내 에미 새벽부터 도시락 싸놓고 자식 머리맡에서 시계 초세고 계시는 모습이 가슴저려 졸면서 도서실갈 때가 부지기수였다.

또 개인주택에 산 탓에 한 겨울 자식이 신을 신발을 미리 방안에 갖다놓으시고는 혹여 덜 따뜻할세라 당신 옷으로 덮어두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도서실에서 잠시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곤했었다.

그 덕에 이 머리로 대학.대학원을 수석졸업할 수 있었다.
엄마는 늘 "여자도 많이 배워 활동적인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유학도 자신있으면 해보라고 부추겨서 아버지에게 시집이나 보내지 쓸데없는 소리한다며 핀잔을 들으시기도 했다.

결국 일본유학을 계획하고 사전답사도 다녀왔었다.

그러던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느라 유학을 덮어놓고 있었다.
몇 달 전에 풍을 맞으신 엄마를 보기 위해 서울에 갔었다.

시원찮은 발을 끌며
"막내야, 그 때 유학을 더 서둘러 보냈더라면 벌써 다녀왔을텐데...."하셨다.
산골에 들어가 뙤앝볕에 고추밭매고 나물뜯는 막내딸이 가슴에 저려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며 눈에서 맑은 물을 흠치셨다.

그 때 내 가슴은 두릅나무 가시보다도 더 큰 가시가 파고드는 것같았다.

그 때 보았다.
우리 고추밭골보다도 더 깊이 깊이 패인 엄마의 주름을...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충청도의 어느 종가집 맏며느리셨다.
머슴까지 13명의 뒷치닥거리를 다 해야 하는 전형적인 종가집.

이러다가 딸 다섯을 다 시골남자와 결혼시키겠다 싶어 밤마다 아버지 옆구리찔러 서울가자 하셨었단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시던 아버지도 결국 엄마의 끈질긴 설득끝에 아이들을 서울에서 공부시켜 서울남자와 결혼시키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때 난 코흘리개였고.

그랬더니 결국 막내딸이 다시산골로 들어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 에미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어느새 목구멍이,목구멍이 불덩이로 막히는 것같다.

병든 엄마가 보고싶을 때마다 읽는 글이 있다.
피천득님의 '엄마'라는 글이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자지 못한 때문이다."

이 글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많이 울었다.
이 밤에 혼자 중얼거려본다.

'엄마 나도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영광이야. 사람은 어느 하늘 아래에 머리를 두고 살든 착하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한거야. 엄마, 너무 마음아파 하지마.'

******************************
오늘은 과꽃같은 우리 엄마가 보고싶을 때 보려고 과꽃씨를 뿌렸다. 가뭄에 말라죽지 않고 흐드러지게 피어 이 산골이 엄마의 향기로 가득찼으면 좋겠다싶어......

도시에 있을 때에도 글을 썼었다. 책으로 내서 울 엄마에게 드리려고..... 이 곳 산골에 와서 더 열심히 쓰고 있다.

오늘따라 하늘에 별도 몇낱없다. 모두 지에미 품에 들어가 자는가보다. 바람도 자고 텃밭의 마늘들도 자겠지.
나도 자기 전에 병든 엄마에게 목소리 공양을 해야겠다.


2001.5.13일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싶던 날에.

산골에서 배 소피아.


 
 
        

 

산골편지3 -- 스스로 크는 아이들
+   [카테고리 없음]   |  2008. 8. 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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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뿌리려고 작년에 씨를 받아두었던 바구니를 찾았다.
바구니에서 그대로 엎드려 일년을 보낸 터라 그런지 냉큼 내 가슴으로 와 안긴다.

봉선화, 채송화, 과꽃씨등을 심으려니 여간 땅이 가문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비가 오면 심기로 마음먹고 검고 하얀것들을 다시 올려 놓았다.

아무리 가물어도 오늘 꼭 심으려고 했던것이 목화였다.씨를 어렵게 구한지라 물을 매일 길어다 줄 요량으로 언덕에 심었다.

지금 아이들이 목화를 기억할까?
아마 문익점이라는 위인전에서나 들어본 이름일게다.

한 숟가락 정도 되는 양이지만 어서자라 나의 아이들에게 "옛날 분들은 이불솜을 이꽃에서 구했단다" 라고 얘기해 주려고 서둘러 심었다.

가문땅에 심은지라 물을 길어다 주는데 꽤 인내력을 필요로 했다.
올해 씨를 더 많이 받아 내년에는 한밭 가득 목화를 심어야 겠다.
내용이야 있든 없든 많은 아이들이 목화를 보러 오도록.....
*****************************************************

귀농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잘 적응을 할까?
햄버거, 치킨, 피자등이 먹고 싶을텐데, 재래식 화장실에 쭈구려 앉아 볼 일을 못볼텐데, 학교에 다녀왔을때 에미,애비가 저 윗밭에 가 안보이면 무서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지금은 아이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크고 나면 부모에게 고맙다고 할거야"
남편은 자신에 찬 소리를 했다.

그러나 난 글쎄 였다.
막상 귀농하고는 애들 상태만 살폈다.

짐정리, 집정리 등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집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집을 위해서 있는건 아니다 싶었다.
더욱 아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소한의 문화충격을 줄여주어야 할 의무가 내겐 있었다.

남편은 이삿짐만 내리고는 서울로 갔다.

사표수리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적응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암세포 번지듯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적응을 못했다. 화장실 갈 때 대낮에도 두놈이 같이 가주고 한참을 그러더니 낮에는 혼자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두워지면 후레시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가주었다.
도시에서는 놀 때에도 각자 노는 일이 많았다.

이곳 산골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다. 아이들이 둘인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그러다 애들 아빠가 산골로 합류하게 되니 아이들이 더 명랑해지고 재미있어 했다.

아이들은 논리적이고 머리로 다가오는 지 에미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다가오는 지 애비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도 보다 단순하게 행동해야 팬들을 놓치지 않을것 같다.

얼마전에는 아침에 주현이가 "학교에서 오는 길에 덕거리 친구집에서 놀다 오면 안되느냐" 고 물었다. 그곳은 마을 입구로 어른도 15~20분 걸리는 거리다.

그 전에도 놀다 온다기에 올때는 혼자 걸어서 오라고 했는데 결국 지 아빠를 불러 그때 아빠와 약속한 바가 있었다.
혼자 걸어올 자신이 없으면 놀러가지 말라고....

친구도 없는 곳인데 아이들 데리러 가는 것 쯤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건 아닌가 생각하니 그이가 야속했다.

주현이는 혼자 걸어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결론이야 어땠든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녁이 다 되어도 아이 그림자는 안보이고 나무 그림자만이 늘어만 갔다.
이제 초등학교 아이를 너무 일찍 산골아이 취급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애려왔다.

전화를 하자니 버릇될 것 같고 선우에게 집 입구 다리까지 가보라고 일렀더니 한참후에 어둠만 데리고 나타났다.
이제는 버릇이고 뭐고 애 놀랄까 싶어 뛰어 나갔다.
비포장길 끝날 즈음에 하얀 물체가 보였다.

"주현이니?"

"네 엄마!"

아이의 목소리는 맑고 밝았다.

"주현아, 혼자 걸어왔어? 왜 이렇게 늦었니?"

아이는 극히 침착한데 에미만 호들갑이다.

"엄마, 오다가 냇가보며 생각도 하고 또 오다 멈추다 놀고도 왔다"
어린 것이 에미보다 낫구나 싶었다.

아이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타다 세워둔 두발 자가용을 보더니 샬롬 샬롬 노래를 부르며 뛰어가 탄다.

헤브라이어로 샬롬은 "평화"라는 뜻이다.
**********************************************

이제 봄이 지나려는 듯 바람도 기가 죽어있다.

어쩌면 바람이 봄 따라 갈지도 모른다 싶을 정도로 처마밑에 걸어둔 풍경이 제 구실을 못한다.

오늘 밤에는 개구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줘야 겠다.

2001년 사월 마지막 날에

(필리핀에 갔을 때의 사진이다. )

조팝나무 꽃잎 날리는 산골에서 배 동 분


 
 
        

 

자발적 가난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8. 8. 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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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에세이’라는 말로도 대충 어떤 풍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나보다 아들 선우가 좋아하는 작가다.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 다르다.

고1인 선우는 최인호 작가의 역사 지식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부분이 무지 부럽고 존경스럽단다.

그러나 나는 역사 등에는 젬뱅이라 그런지 최인호 작가의 그런 책은 아직 안읽었다.
선우랑 대화가 되려면 ‘유림’ 정도는 읽어야지 하고 있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선우는 ‘유림’을 읽고 공자와 노자의 차이점,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과 스승을 대하는 점에 대해 느낌이 깊었다고 한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면 에미가 ‘유림’을 읽어야 하는데 ....

사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자극샘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산중일기’라고 되어 있듯이 일상을 얘기하지만 그 일상이 집이든 어디이든 마음이 가 있는 곳이 그곳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는 출발을 한다.

읽는 내내 놀라운 것은 천주교신자이면서 불교를 가까이 하고 그 좋은 면을 보려고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좋은 면이라기 보다 종교의 벽이 애초부터 없음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같다.

책 본문 중에 이 대목이 이 책을 쓰게 한 힘이 아닐까.
그 마음이 참 맑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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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 신도도 아니고 새삼스레 초파일을 맞아 무어 소원을 빌 것도 없었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절에 들어서는 꼭 내 식대로 향 피우고 절 세 번 하는 법도를 잊지 않았다.
그게 무슨 즐거운 일인 양 꾸벅꾸벅 고개를 조아려 세 번씩 절을 했다.
나는 그리스도료 신자이지만 그것이 죄라고 생각지 않는다.
불교도 좋은 종교이며 그리스도교도 좋은 종교이므로 나는 종교 앞에서는 그저 두렵고 그리고 죄송스럽다. 두렵고 죄송스러우면 그 순간만이라도 겸손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무엇이 담력이 크다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예수님과, 내가 무에 대단한 데가 있다고 천 년도 넘게 세세연년 내려오는 저 자비로운 불상의 미소 앞에서 무릎을 세울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천주교 신자이지만 절에 가면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난 불교 신자들이 하는 절 방법을 몰라 서서 한참 부처님만 바라보다 돌아오곤 하였다.

초보농사꾼 역시 산에 갔다가 절이 있으면 꼭 들린다.
초보농사꾼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싶다.

천주교 신자라고 절을 멀리하고 할 일도 아니고, 절을 하면 안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코드가 맞다.

이 책에는 사진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가 절 풍경이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의 모습도 나오고, 스님의 고무신, 노스님의 뒷모습, 절 뒤켠, 스님의 차 마시는 모습, 절 문의 그림자 등등 모두가 절 풍경이다.

그냥 사진만으로도 묵상이 절로 되고, 일상의 뒤돌아 봄이 절로 될 것만 같다.
작가가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일상의 일들을 다른 장르로 표현했을 뿐이지만 독자의 마음은 어느 산속 깊은 암자에 가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선우가 시험 공부하는 중간중간 잠시 읽더니 이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다.

이 책은 사서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었다.
그리고 밭에서도 한 꼭지씩 읽으면 답운재밭, 새점밭, 호수밭, 달밭이 절이 된다.
그 옆의 조팝나무꽃은 절 처마끝의 풍경이 되고 말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상도[전5권]을 읽고...
+   [산골아이들의 책이야기]   |  2008. 8. 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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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책의 제목에 내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상도?
장사의 길이란 뜻 아닌가.

내 장래희망은 상업자가 아닌 작가였지만 이미 내 손은 책의 표지를 넘기고 있었다.
꿈이 다른 나라고 해서 돈벌기 싫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개의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이 책의 주 내용은 장사에 임할 때 갖춰야 할 정신 등에 대해서 2백년 전.
조선 팔도 제일의 전후후무 했던 거상 임상옥의 전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주로 알기에 장사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한순간의 운으로 기회만 잡으면 된다고 크게 착각하고 있다.
무릇 장사로 성공하려면 돈계산이나 학문, 덕 등은 팔도 제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은 상운이다.
다른 운은 아닐지 몰라도 상운이라는 것은 그 장사꾼의 덕, 학문, 지혜 등으로 예정되어 찾아오기 마련이다.

조선의 거상 임상옥 역시 이것을 꿰뚫어 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임상옥은 몇 안되는 인삼 교역권을 얻기위해 조선의 한 권력자에게 백지 수표를 바칠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걸 본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비하했지만 상운은 준비된 그에게 조선 제일의 거부 자리에 앉혀 주었다.

흔히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고들 한다.

거상의 씨 역시 마찬가지다. 거상의 씨는 그 노력, 운 등으로 만들어 싹틀 수도 있고 썩어버려 악취를 풍길 수도 있다.

자, 이젠 우리도 품종은 다르지만 우리나라를 지탱할 거목의 씨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떠한가??

산골소년 박 선우

 
 
        

 

산중일기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8. 8. 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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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에세이’라는 말로도 대충 어떤 풍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나보다 아들 선우가 좋아하는 작가다.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 다르다.

고1인 선우는 최인호 작가의 역사 지식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부분이 무지 부럽고 존경스럽단다.

그러나 나는 역사 등에는 젬뱅이라 그런지 최인호 작가의 그런 책은 아직 안읽었다.
선우랑 대화가 되려면 ‘유림’ 정도는 읽어야지 하고 있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선우는 ‘유림’을 읽고 공자와 노자의 차이점,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과 스승을 대하는 점에 대해 느낌이 깊었다고 한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면 에미가 ‘유림’을 읽어야 하는데 ....

사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자극샘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산중일기’라고 되어 있듯이 일상을 얘기하지만 그 일상이 집이든 어디이든 마음이 가 있는 곳이 그곳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는 출발을 한다.

읽는 내내 놀라운 것은 천주교신자이면서 불교를 가까이 하고 그 좋은 면을 보려고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좋은 면이라기 보다 종교의 벽이 애초부터 없음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같다.

책 본문 중에 이 대목이 이 책을 쓰게 한 힘이 아닐까.
그 마음이 참 맑아서 좋다.

"나는 불교 신도도 아니고 새삼스레 초파일을 맞아 무어 소원을 빌 것도 없었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절에 들어서는 꼭 내 식대로 향 피우고 절 세 번 하는 법도를 잊지 않았다.
그게 무슨 즐거운 일인 양 꾸벅꾸벅 고개를 조아려 세 번씩 절을 했다.
나는 그리스도료 신자이지만 그것이 죄라고 생각지 않는다.
불교도 좋은 종교이며 그리스도교도 좋은 종교이므로 나는 종교 앞에서는 그저 두렵고 그리고 죄송스럽다. 두렵고 죄송스러우면 그 순간만이라도 겸손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무엇이 담력이 크다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예수님과, 내가 무에 대단한 데가 있다고 천 년도 넘게 세세연년 내려오는 저 자비로운 불상의 미소 앞에서 무릎을 세울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천주교 신자이지만 절에 가면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난 불교 신자들이 하는 절 방법을 몰라 서서 한참 부처님만 바라보다 돌아오곤 하였다.

초보농사꾼 역시 산에 갔다가 절이 있으면 꼭 들린다.
초보농사꾼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싶다.

천주교 신자라고 절을 멀리하고 할 일도 아니고, 절을 하면 안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코드가 맞다.

이 책에는 사진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가 절 풍경이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의 모습도 나오고, 스님의 고무신, 노스님의 뒷모습, 절 뒤켠, 스님의 차 마시는 모습, 절 문의 그림자 등등 모두가 절 풍경이다.

그냥 사진만으로도 묵상이 절로 되고, 일상의 뒤돌아 봄이 절로 될 것만 같다.
작가가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일상의 일들을 다른 장르로 표현했을 뿐이지만 독자의 마음은 어느 산속 깊은 암자에 가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선우가 시험 공부하는 중간중간 잠시 읽더니 이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다.

이 책은 사서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었다.
그리고 밭에서도 한 꼭지씩 읽으면 답운재밭, 새점밭, 호수밭, 달밭이 절이 된다.
그 옆의 조팝나무꽃은 절 처마끝의 풍경이 되고 말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산골풍경--왜 갑자기 갖고 싶은걸까???
+   [산골풍경]   |  2008. 8. 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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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문패 하나 갖고 싶습니다.
가족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 하나 갖고 싶습니다.

그냥 스쳐지나간 생각이었는데 요즘 맘이 급해졌습니다.
선우, 주현이가 커가는 것이 더럭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큰다는 것은 홀로서기한답시고 집 떠날 날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지요.
서울 지하철 안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하느님을 믿으라' 부르짖는 사람의 다급함만큼이나 다급해집니다.

아이들이 커서 집떠나기 전에  그 문패가 집보다 더 기억에 남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문패에 적힌 한 사람이 아프면 모두 가슴을 푸벼 팠고, 한 사람의 기쁨이 가문의 가슴 뻐근함이었음을 기억케 하려면 맘이 급합니다.

그런데 나무를 팔 재간이 없어 평생 처음으로 내 손재주없음을 탓하는 날입니다.

돌절구 속 금붕어를 보며 신세한탄을 합니다.
금붕어는 입을 뻐끔거리며 뭐라뭐라 위로를 합니다.
그 이쁜 입으로 위로하는 그 은빛 언어들이 들리는듯합니다.

2008년 6월 17일

 
 
        

 

산골편지1 -- 내가 산골로 온 이유
+   [산골편지]   |  2008. 8. 6. 03:05  
(이 글은 2001년 4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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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가고, 2월은 도망가고, 3월은 사라진다고 한다.
바람이 제법 쌀쌀한 것을 보니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 주기 싫어 앙탈을 부리는 듯하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어우러질듯하다가도 각자 제 밥그릇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같다.

이곳 산골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은 생강나무 꽃이다. 개나리보다 작으면서 색깔은 옅은 노란색이다.
역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그렇게 거칠게 굴던 바람도 아침 9시가 지나 햇살이 쪽마루에 나자빠질 때가 되면 이내 소문도 없이 꼬리를 감춘다.

******************
이곳 산골에 둥지를 튼지도 10개월이 되었다. 처음에 이사와서는 짐은 풀었는데 마음을 풀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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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루소처럼 우기던 남편은 정작 사표가 반려되고 계속 수리되지 않아 나 먼저 이 산골로 이사와야 했으니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은 서울에서, 나와 아이들은 이곳 산골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결국 그이는 한 달 후 대기업 과장의 자리를 미련없이 버리고 이곳 산골에 합류했다.
남편의 산골로의 귀농이유는 어찌보면 간단했다.

남을 밟고 올라가야 내가 서는 생활, 순수한 마음으로 살기보다는 잔머리와 이기적인 생각으로 정년 퇴직때까지 직장생활하다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빨리 이 이기적인 도시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둘째 이유는 내 아이들 만큼은 여러 학원 뺑뺑이질 시키지 않고 자연을 닮고, 자연을 친구로 여기고, 흙을 밟고 살게 하고 싶다는 이유가 다였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 역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터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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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을 고민했다.
결국 아이들 문제때문에 더더욱 결정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컸을 때에는 지금보다 정서가 가장 중요시되는 사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았다.

남편의 가치관이 뚜렷했고, 지금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주었고,나름대로 인정받는 모습만 보아왔다.

또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는 열망은 나 역시 대단했던 터였다.
거기에 나는 성당에 다니지만 평소 존경하는 법정스님의 무소유와 자연사랑의 철학이 귀농결심에 일조를 하게 되었다.

법정스님은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낡은 울타리로부터,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거듭거듭 둘레에 에워싼 제방을 무너뜨리고라도 늘 흐르는 쪽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봄에 나와 모든 이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흐르는 쪽으로 살고 있는가?"

2001.4.11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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