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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_해당되는 글 52건
2010.06.30   귀농일기, 대지에 영양을 주는 날 
2010.06.04   귀농일기, 함께 날개짓해준 사람 
2010.04.12   귀농풍경-이태석 신부님 프로를 보고 1
2010.04.09   귀농감동 
2010.01.27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못먹어도 G0라고 외쳤던 야콘농사의 변천사 
2009.12.30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엿처럼 부러져 구멍이 숭숭 뚫릴 때 
2009.12.02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 돌팔이의 처방전 
2009.11.25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무서운 대물림 1
2009.11.17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제 새끼잡아 먹는 에미 
2009.11.17   귀농일기--밤에도 잔업을 계속 된다. 

 

귀농일기, 대지에 영양을 주는 날
+   [귀농일기]   |  2010. 6. 30. 18:45  

 2010년 4월

 

올해는 유독 춥다.


겨울이 추웠다는 뜻도 되고 봄이 되었는데, 4월이 되었는데도 한겨울 날씨처럼 춥다.

날씨가 추우면 없는 사람들이 고생한다더니 우리 역시 나무를 때는지라 나무해나르느라 고생이다.
눈도 자주 왔기 때문에 쓰러진 나무 등을 해오는 일이 쉽지 않은 해였다.

 

그런데 봄인데도 이렇게 춥고 얼음이 얼고 하다보니 봄농사준비 역시 차질이 생겼다.
이제는 춥던지, 눈이 오던지 농사 준비를 해야 한다.
다른 해에 비해 늦은감이 있지만 날씨는 여전히 매섭게 땅으로 나선 농부의 등을 떠민다.

 

 

 

주일이라 성당에 다녀오면 늘 그렇지만 긴장이 풀려서인지 몰라도 축 늘어진다.
옷을 갈아입으려면 시간도 걸린다.
그때 주저앉으면 끝장이다. 하루 일은.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마음의 준비작업을 한 다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나서야 한다.
물론 농사꾼도 주일이 있겠지만 비오는 날, 눈오는 날이 휴일이니 굳이 주일이라고 해서 긴장을 풀 수는 없는 일이다.

 

또 갑자기 일이 생기면 또 하루를 일을 못하니 그렇게 치면 평소에 그냥 열심히 하면 될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답운재 양 모두 퇴비를 뿌리려고 하는데 무리이긴 무리다.


그런데 아내가 따로 할 일이 있을텐데 따라나선다.
자기 삽도 가져가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한 몫 하려는 모양이다.

 

 

아내는 체구는 작지만 일할 때는 나와 성격이 비슷해서 너 죽고 나 살기로 한다.
그리고 쉴 때 쉬더라도 할 때는 그런 식이다.


아내가 찢어진 장화를 억지로 껴신는다.
다른 곳은 멍쩡한데 이상하게 뒤꿈치 거기만 찍어진다며 끙끙거리고 낀다.

답운재밭에 일단 퇴비를 군데군데 던져 놓은 일은 지난번에 다 해두었으니 오늘은 그것을 뿌리는 일이다.

 

아내의 일이 따로 있다.
아내는 칼로 퇴비비닐을 X자로 가른 다음 퇴비를 그 곳에 쏟아놓으면 내가 삽으로 그것을 떠서 골고루 뿌리는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내의 일이 아주 쉬워 보여도 그렇지가 않다.
허리를 구부려 칼로 자르고 다시 퇴비를 다 털어서 빈 봉투를 손에 잡고 다니며 작업을 하다가 손에 비닐이 많아지면 한 곳에 봉투를 모아 두었다가 묶어서 마을에서 모아두는 곳에 내놓아야 한다.

 

 

 

어쨌거나 이 일을 내가 혼자 하면 정말 진도가 안나간다.
그러면 일이 배로 힘들어진다.


일의 진척 정도가 눈에 들어와야 사람이 기운찬데 하는지 마는지 하고 있는 듯 보이면 벌써 성격이 급해진다.

아내의 일이 그래서 아주 소중하고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작은 덩치가 돌아다니며 퇴비 봉투를 갈라 엎어주고 다닌다.

 

 

 

아내는 성격이 잘 안쉰다.
나야 힘들면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는데 아내는 쉬지도 않는다.
얼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나와 같아서 자주 밥 때도 넘기곤 한다.

 

“이것만 다 해놓고 먹자”이런 식으로 손발이 맞는다.
퇴비를 한참 뿌리다 보니 옆구리가 아프다.


아내와 잠시 쉬자면 가져온 참도 먹고, 담배도 한 대 피워문다.
땅바닥에 허리를 이렇게 펴고 있으면 정말 좋다.

 

 

담배 맛도 좋고, 하늘을 보고 심호흡하면 그것이 뼈속깊이 스며드는 기분이라 좋고, 허리가 쭉 펴지니 시원해서 좋다.
쉬는 시간엔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작년에 이 대지는 농부에게 조금의 수확만 하도록 허락했다.
난 대지의 그 뜻을 잘 받아들여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올해 수확 역시 대지의 몫이다.
나는 아내와 최선을 다해 농부로서의 일을 하면 나머지는 대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내가 퇴비봉투 작업을 다 마치고 삽을 찾는다.


퇴비를 뿌리는 아내.

지금 속으로 귀농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라...ㅎㅎ
꼼꼼하게 골고루 뿌린다.

 

계속 산골이야기, 아이들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일해주니 난 고마울뿐.

 

아내가 뿌리는 일을 거드니 속도가 팍팍 나간다.


혼자 뿌리는 일을 했으면 결국 답운재밭 양쪽을 다는 못했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서서히 기운도 빠질 시간이지만 함께 진도를 해나가니 일이 수워해진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6시가 넘었다.
시골에서 6시면 모두 일을 마칠 시간이다.

 

하기야 우린 일이 남았으면 어두워 안보일 때까지 하는 성격이지만 마침 이때 답운재밭은 끝이 났다.

이제 제일 경사가 심한 집 뒤의 호수밭과 새점밭의 퇴비만 뿌리면 될 일이다.

아내와 돌아오는 길,


너무 마음이 좋다.
도시에서 퇴근시간이 이렇게 뿌듯하고, 개운하고, 상큼할까??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그러나 산골로 와서 대지로 출근해서 대지에서 퇴근을 하는 삶이 시작되고는 하루를 마치는 시간이 참으로 개운하고 상큼하다.

거기에 내 땀냄새를 내가 맡을 때의 그 기분은 더 보람차다.

가면서 마을 입구 유이장님댁 ‘방앗간’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 상큼한 기분이 절정에 달할 것이다.
“자, 방앗간 앞으로...“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일기, 함께 날개짓해준 사람
+   [귀농일기]   |  2010. 6. 4. 14:25  


얼마 전에 아내가 책을 컴퓨터 책상에 놓고 밥하러 갔기에 들여다 보았다.
몇장을 흥미롭게 읽어가던중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일곱 가지’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에 하도 이런 제목을 내세운 책들이 많아 ‘이젠 독자들도 왠만큼 겁주는 제목이 아니면 들여다도 안보나보다’하고 씁쓸해했었다.

사람들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점점 점점 쎄져서 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건성건성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 하나 읽어갈수록 내 이야기를 쓴 듯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대충보면,
첫째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어? 이건 내 얘기 아냐?’


난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도시의 한 독방 사무실에서 지내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신입생 시절에는 저 독방(그때 소장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우린 그렇게 불렀었다)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 일찍 독방에 들어앉았을 때 기분 참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분좋음이 퇴색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박광수씨 말대로라면 난 거기까지만 해도 억세게 재수 좋은 사람인데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껏 죽 해왔던 일을 과감히 던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
그러니 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한 행운의 싸나이다.


둘째,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 “저 사람은 미쳤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거라고 적어 놓았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기 일에 미쳐 보지 않은 사람이 그 일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절대 없다는 것이다.

“햐, 이거 나를 모델로 쓴 거 아냐?”하면서 “이 친구 글 잘쓰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 생각이랑 일치하는 말을 했다고 해서 글을 잘 쓰고 못쓰고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도 나를 보는듯해서 그런 말이 절로 튀어나와 자판 위에 굴러다녔다.


내가 처음 귀농 얘기를 꺼냈을 때 이구동성으로 “미쳤어.”소리를 들었다.
나를 낳아주시고 죽으라 키워주시고 없는 돈에 머리에 투자하면 망할 일이 없다며 공부를 시키셨던 엄마도 “너 단단히 미쳤구나.”하셨고 며느리에게도 대놓고 “저 놈 미쳤으니까 애미야 이혼해라. 손자들이랑 너까지 고생시킬 수 없다”며 통곡을 하셨다.


그리고 며칠씩 밖에 외출도 안하셨단다. 기운이 없고 챙피해서...
그렇게 난 그 말, "미쳤다"는 말을 귀농 전에 원없이 들었다.


하도 많이 들어서 나중에는 그 말이 그다지 기분 나쁜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셋째,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한번쯤 꼭 해봐야 할 일은 멀고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진정 목숨을 걸고 날갯짓을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란다.

정말 그랬다.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삶을 열망했고, 그 선택이 어떤 시련과 고난이 동행할지 눈감고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삶은 단 한번만 주어지기 때문에 뒤로 미룰 수도 없었고,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난 날갯짓을 했다.


그 날갯짓뒤에 후폭풍이 어떻게 몰아칠지도 다 알면서 어린 아이들과 농사
도 모르는 마음 여린 아내를 데리고 난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산골로 둥지를 옮겼다.

그러나 그 날갯짓에 늘 내 옆에서 같은 진동과 폭으로 함께 날갯짓을 해주어 그 길이 결코 외롭지 않게 해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내는 그렇게 나와 같이 힘든 날갯짓을 해주었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아내는 따뜻한 국과 밥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다.
난 뜬금없이 “고마워. 잘 먹을께”했다.


아내는 그 말이 어떤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함께한 날갯짓에 대한 깊은 내 마음 속 표현인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귀농풍경-이태석 신부님 프로를 보고
+   [산골풍경]   |  2010. 4. 12. 15:06  





지난 주의 일이다.
산골로 와서도 TV를 잘 안보는 내가 초보농사꾼이 켜놓은 것을 보았는데 다음 주 예고를 하는 거였다.
그러니까 다음  주에 이태석 신부님의 특집.


사실 난 이태석 신부님에 대해 잘 몰랐다.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 알았다.


그래서 너무 보고 싶었고, 나의 컴 앞 커다란 시골 달력(시골달력, 일단 글씨가 겁나게 큰 것이고, 말날인지, 소의 날인지 그런 그림도 있고, 이사가는 날 표시도 있는 그런 도시에서 보기 힘든 달력 ㅎㅎ)에다 빨간 펜으로 붉게 칠해 두었다.

그리고 막상 당일인 날은 잊었다.


그게 나의 한계다.^^

에서 초보농사꾼이랑 퇴비를 펴는 날이었기에 늦게 밭에서 귀가하였다.


농사꾼의 몸은 피곤했지만 저녁 이내 냄새를 맡으며 대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행복 만땅이다.

그렇게 돌아와 TV를 우연히 켠 초보농사꾼이 소리를 지른다.


"선우 엄마 빨리 와, 당신이 기다리던 프로 한다."

‘뭔 일이랴.






내가 언제 뭔 TV프로를 기다려. 기다리긴...‘ 속으로 옹알이며 그냥 있었다.

그런 내게 다시 소리를 지른다.


"이태석 신부님이 나오셨다니깐"

하던 일 던지고 거실로 튕겨져 나갔다.


이미 시작된 프로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하며 나머지를 들여다 보았다.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수단슈바이처'라는 이 태석 신부님...


아프리카 오지 중에서도 오지 남부 수단 톤즈라는 곳에서 젊은 생을 다 보내시고 서둘러 하늘에서의 부르심을 받고 삶을 마감하신 분.

그러니까 신부님은 안정된 직업인 의사의 길을 마다하고 신부가 된다.
그리고 그가 떠난 곳은 아프리카 중에서도 오지...

그곳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본다.


더러는 장갑도 끼지 않은 채 그냥 진료를 하고 그들의 한쪽 가슴으로 녹아드신 분.
누구도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 그들의 뭉그러진 몸을 맨손으로 어루만지고, 입을 맞추는 젊은 신부님,


그들을 위한 일이면 뭐든 하신 분.
그들의 뭉그러진 발에 당연히 신발이 없자 그들의 발을 다 본뜬 후 샌들을 만들어 일일이 신기신다.


하루에 400명이 넘는 불쌍한 환자들을 혼자 돌보시고 밤에도 계속 이어지는 환자를 돌려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의료뿐이 아니라 교육에도 , 그리고 음악에도 그곳의 사람들에게 신부님은 그저 하느님이었을 것이다.

학교도 없는 곳에 같이 흙을 빗어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신다.


그러던 중 한국에 잠시 나오셨다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도 수단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하시다 결국은 생을 마감하신다.

그 분은 나와 같은 62년생으로 올해 1월에 그렇게 돌아가시려고 했던 수단으로 가지 못하고 서둘러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취재진이 신부님의 사진을 복사하여 일일이 나누어주자 그들은 신부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을 흘린다.


어느 눈먼 한센병 환자 할머니는 신부님 사진이라고 하자 너무 보고싶다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진에 입을 맞추고, 보이지도 않는 눈이지만 초라한 집 가장 좋은 곳에 신부님 사진을 올려놓는 그 손길은 어떤 예식을 치르는 모습같았다.

그뿐인지.


신부님과 함께 음악대를 결성하여 함께 연주도 하고 공부도 했던 아이들에게 신부님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CD를 틀어주자 모두가 엉엉 운다.

그곳 다른 수사님 말씀으로는 이곳 아이들인든, 어른이든 이곳 사람들은 정말 잘 안운다고 한다.
아파도 안울고, 슬퍼도 눈물을 잘 안흘린다고.


그러나 신부님의 아픈 모습 , 장례식 모습을 보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엉엉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운다.

잠시 한국에 다녀오신다고 하신 후 다시는 못보았으니 ...



그랬다.
그런 꿈같은 모습을 보면 내가 많이 초라해진다.
더더군다나 나와 같은 나이의 신부님,


난 이 나이먹도록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나누었는지, 무엇을 고민했는지 ...

그 프로를 보고 한동안 어둔 밤 마당을 몇 바퀴 돌았을까.
탑돌이하듯이 그렇게 돌았다.

사람은 어떤 모습을 대하고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늘 남의 말 하고,  뻑하면 배신 때리는 사람, 돈 앞에서는 우정이고 뭐고도 없는 사람, 이해관계 앞에서는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사람과 함께 하다보면 어느 새 내게도 그런 냄새가 배어들리.

그러나 이런 모습을 자주 보고 느낀다면 각자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향기에 젖어들어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가깝게 마음이 성장해 간다고 난 믿는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 아들, 딸, 아론과 안나랑 함께 보질 못해 안타깝다.
아이들과 함께 모인 날, 다시 인터넷으로 아이들과 함께 다시 보리라 다짐한다.
특히나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쇠질대로 쇠어버린 나보다 더 뼈속 깊이 골수 속으로 그 분의 아름다운 모습이 스며들리라 나는 굳게 믿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감동
+   [산골편지]   |  2010. 4. 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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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성당에서는 성탄전야 미사를 있다.
초보농사꾼이 아이들은 두고 가자고 한다.
오늘 바로 방학해서 이제 읍에서 집으로 들어왔는데 다시 읍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그러니 내일 성탄미사 때나 데리고 가자고 한다.

"가장의 말씀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가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주현이가 오늘 밤 미사 언제 가실거냐며 계속 묻는다.
난 지오빠랑 할 얘기가 있어서, 아니면 영화보려고 그러나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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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이 몸살이 났기 때문에 나 역시 둘이서 성당가기로 합의는 보았으나 지금 몸이 안좋아 늘어져 자는 사람을 깨우기가 쉽지 않았다.
불러봐서 대답을 못하면 약을 한번 더 먹이고 그냥 자도록 두고 내일 성탄 미사나 가야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주현이는 계속 언제가실 거냐며 묻고...

초보농사꾼을 불러보니 대답 대신
"아, 성당가야지."하며 일어선다.

몸이 안좋으니 그냥 그만두자고 했다.
그래도 가야 한단다.

불영계곡을 그 밤에 돌아돌아 가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귀농 10년차도 지나고 이제 한 매듭이 지나 11년차가 되는데 하면서 뒤도 돌아보고 새해 꿈도 이야기하고...
그런 시간을 참 귀히 여긴다.
이 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이 오지 국가를 달리며 우리는 낯선 곳에 온 이후를 돌아 보았다.
참 의미있는 삶,
남들은 한번 택한 길을 가는데 우리는 뭐가 독특한지 두 가지 길을 가고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그 이슬이 미처 털리지 않은 숲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맑고, 영롱하다. 지금의 이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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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전야 미사를 드리고 좋아하는 분들과 성당 마당에서 막거리에 과메기, 두부부침 등을 안주로 한 잔 하고 돌아올 때는 내가 운전을 했다.
이럴 때 운전배운 것이 참 좋다.

귀농 전에는 장농면허로 그냥 두었다.
안그러면 뻑하면 회식이 있는 남편이 차 가져오라고 전화할 것이고 어린 아이들 두고 달려가는 것이 싫은 이유 하나, 또 그렇게 모시러 가다보면 자주 술을 마실 것같다는 이유 하나에서 아예 나 죽었소 하고 운전대를 안잡았다.

귀농하고 운전연수를 초보농사꾼에게 배워(그때 구박 하나도 안받았다고 하면 아무도 안믿는다. 진짠데...) 운전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신 초보농사꾼을 태우고 산골로 돌아올 때가 참 좋다.

집에 돌아왔는데 애들 인기척이 없다.
'벌써 자나???...'

안그러면 튀어나와 인사하고 장난하고 할텐데 두 놈 다 동시에 자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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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런가 보다 하고 현관문을 여는데 종이쪽지가 보인다.
이게 뭐지?
읽었을 때도 정확히 감이 안잡혔다.

일단 집 안으로 들어오면 트리로 눈이 가게 되어 있다.
그 위치이고, 이번에는 적당한 나무로 했더니 이쁘기 때문에 내가 자주 본다.
근데 그 아래 웬 박스가 있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넣어준다는 빨간 양말에 내 이름이 쓰인 흰 봉투가 보인다.

외출했다 들어오면 초보농사꾼은 집 뒤로 먼저 가서 나무 보일러를 확인하고 식구들을 따듯하게 해주기 위해 죽으라 나무를 해온 것을 보일러 아가리에 듬뿍 집어넣는다.

난 선물을 보고 놀라 초보농사꾼을 불렀다.
그리고 정말 자는지 애들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선우는 누워 자고 주현이는 방문을 잠그고 자는 것 같았다.

초보농사꾼이 들어왔기에 조용조용 보여주었더니 나보다 더 놀란다.
작은 소리로
"햐, 이게 뭘까? 이 놈들이 ..."

그때 애들이 와르르 방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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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깜짝 놀랐지?"

애들이 빨리 선물을 뜯어 보란다.
초보농사꾼이 박스를 뜯어보니 헉, 그렇게 하나 사려고 했던 CD플레이어다.

겨우내 가공실에서 일을 하는 초보농사꾼은 오래된 카세트를 듣는다.
물론 작년에는 테이프 돌아가는 것도 고장이 나고, 올해는 죽으라 라디오만 듣는다.
뉴스를 외울 정도로 듣고 또 들으니 너무 지겹단다.

그러면서 이거 하나 사야지 한 것이 돈 생각해서 덥석 못산 모양이다.
일전에 주현이가 서울에 다녀와서 할머니랑 이모들에게 앵벌이(?) 해 온 용돈을 보더니 돈이 많다며 아빠 CD플레이어 하나 사달라고 농담삼아 말했었다.

그때 주현이가 딱 잘라 안된다고 하더니만 이 짓을 한 것이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 양말에는 웬 구속영장과 상품권.

담당검사 : 박선우 검사란다.(선우의 꿈은 검사란다.)
문서번호라고 적은 것은 우리집 전화번호다. ㅎㅎ
어디서 본 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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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은 장난으로 만든 것이고 5만원을 주면서 상품권 대신 현금이니 꼭 엄마 옷을 사란다.

그러니까 주현이는 지아빠 선물을 한 것이고 , 선우는 내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초보농사꾼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이제 애들이 이렇게 커서 이엄마 아빠 마음까지 생각하는구나 싶으니 눈물이 났다.

벌써 초보농사꾼은 CD를 찾아 들어본다며 난리다.
선물받은 놈을 뚤어져라 쳐다보고 뒤도 만져보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아빠가 너무 필요했던 거라며...

내가 생각해도 하나 사주어야겠다 생각만 하고 주문해 주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현이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이제 아이들은 고3이 되고, 고1이 된다.

졸업선물이니 입학선물이니 말을 꺼낼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초보농사꾼이 충격과 감격이 뒤엉켜 감정조절이 안되는 모양이다.
두 놈을 끌어 안아주고 고맙다고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성탄축하겸, 아이들 둘 다 기쁜 일이 있으니 그 겸사겸사 마주앙 한잔씩 하잔다.
모두 둘러앉아 마주앙을 마시며 오늘 선물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오빠랑 그렇게 상의를 하고 주현이가 미리 인터넷으로 CD플레이어를 사서 친구집으로 배달을 시켰단다.
안그러면 엄마가 받을 판이니까.
친구집에서 그 박스를 찾았는데 집으로 가져올 일이 난감하더란다.

엄마가 물을 텐데 뭐라고 대답할까부터 고민을 했단다.
안그래도 날이 추워 주현이 학교차가 오는 마을 입구로 데리러 가니 애가 무슨 박스 하나를 들고 탄다.
뭐냐고 했더니 이제 졸업이라 개인사물을 담아오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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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런줄 알고 보니 박스로 덕지덕지 뭐가 붙어 있고 그럴듯해서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그렇게 보이려고 일부러 그런 것을 박스에 붙였단다.

어린 것이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그 다음은 오늘 당일.
아빠가 몸살이 나셔서 아차하면 두 분이 성당을 못가시게 생겨 난감했단다.
일단 가셔야 그동안 그런 짓(?)을 해두고 하는데...

그래서 그렇게 성당 안가시냐고 물었던 거였었다.

선우는 엄마, 아빠가 귀농하고는 되도록이면 중고를 사고 하는 것이 맘에 걸렸었다고...
큰이모가 예전에  산골에 오셔서
"니 엄마는 예전에는 백화점 옷 아니면 안사입고 그렇게 그랬는데 ... 시골오고는..."그러면서 이모가 우셨단다.
그 말을 하는 선우의 눈가에서 눈물이 또르르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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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르는 일인데 아마 큰언니가 내가 시골로 온 것이 맘이 아파 선우 붙들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런 엄마가 알뜰히 살려고 그러셨다는 것을 안다며 자기가 드린 돈으로는 엄마 옷을 사입으란다.
선우는 옷값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
자기 옷도 사주면 입고 안사주면 있는 거 입고 그러는 아이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구속 영장이 등장한 모양이다.
피고는 배동분이고 죄명은
"피고는 그 간 정당한 구매욕구를 억누르고 중고, 특히 경매물품만으로 대리만족해온 혐의가 드러남"이라 한 모양이다.

구형이 재밌다.

"5만원 한도 내에서 자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할 것.
위의 권고를 어길시에는 빵과 커피 반영구 지급 중지에 처함."

아이고, 빵과 커피는 엄마 아킬레스건인줄 이 눔들이 훤히 아는구나....

우린 구속영장을 읽고 또 읽으며 웃고 또 웃었다.
CD플레이어를 틀어놓고 박씨 일가가 춤을 추고 따라 부르고 난리다.
물론 거기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7080노래'다.

애들도 많은 부분 그 노래들을 안다.
아빠가 좋아하는 조용필 노래도 많이 따라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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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새벽이다.
모두 마주앙 한 잔씩 하고 오늘 선물에 대한 놀라움과 고마움을 전했다.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엄마 , 아빠가 생각보다 기쁨을 넘어 감격스러워 하고 좋아한다며 지들이 좋은 선물 받은 것보다 더 좋단다.

다 컸다.
이렇게 엄마, 아빠 마음을 헤아려주는 아이로 큰 것이 어디 부모 덕이겠는가.

하늘마음농장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들이,
집 옆에 졸졸 흐르는 개울이,
드넓은 대지가,
집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쳐진 늘 푸른 소나무들이,
봄이면 흐르러지게 피는 진달래, 개나리가,
여름이면 빨간 고추잠자리가,
가을이면 오색 단풍이,
겨울이면 모두가 하얘지라는 뜻으로 하늘이 내려주는 흰눈이....

그런 자연이 키운 것이다.

그리고 책이 또한 한몫했다.
늘 책을 소중히 여기며 읽고 감동받는 아이들에게는 책 또한 큰 스승이었다.

우리의 귀농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성공했다고 난 말한다.
남들은 성공했다면 아직도 연간 매출이 얼마냐고 묻는다.

그럼 위에 열거한 저런 자연의 혜택을 연간 매출로 매길 수 있을까....
금액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이니 그게 대성공이지 않은지....

내 아들 선우도 자고, 내 딸 주현이도 잔다.
엄마가 해준 것도 없는데 잘 자라주었다.

오늘은 내 대신 아이들의 정서를 위해 , 그리고 아이들의 꿈을 위해 도움을 준 별, 달, 개울물, 등 자연에게, 그리고 책에게 큰 절 하고 자야겠다.

"선우야, 주현아, 오늘 참 많이 놀랐다.
기쁨보다는 충격 쪽이 더 나은 표현인 것같아.
이렇게 컸구나 감동이었고,
컸어도 속이 제대로 영글어가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나더구나.
그저 건강하게 그리고 은갈치처럼 반짝이는 꿈과 희망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길 바란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못먹어도 G0라고 외쳤던 야콘농사의 변천사
+   [산골편지]   |  2010. 1. 27. 22:42  



2009년 12월


겨울밤 하늘에 별이 많이 나와 있으면 모가지가 아프도록 올려다 본다.
겨울 칼바람으로 인해 온몸에 소름이 돋아도 상관하지 않고, 하다못해 세포까지 죄다 오그라져 있던 몸을 확 펴게 된다.


그건 아마도 이 추운 겨울에 그 많은 별무리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러고 있는 것은 혹여나 핏줄과 뚝 떨어져 귀농한 산골가족이 외로울까 정수리를 비춰주기 때문이라 믿는다.


*************************


사람들이 귀농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야콘이라는 것을 심게 된 특별한 이유를 자주 묻는다.
게다가 지금이 야콘철이라보니 찾아온 손님도 그렇고, 전화로도 특별한 이유를 묻는다.

여기서 ‘특별한’이 중요하다.


아마도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서 수도 없이 반복한 말이지만 영화처럼 지나온 날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그러나 묻는 이의 호기심을 풀어줄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목에 힘주고 시건방을 떨며 말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귀농하자고 옆구리 푹푹 쑤시던 초보농사꾼은 정작 사표수리가 안되어 그냥 기회를 보며 회사를 다니고, 귀농이라니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눈을 허옇게 뜨고 입게 게거품 물던 내가 먼저 애들 데리고 귀농했다.
첩첩산중으로...




(▲ 야콘의 관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늦은 7월에서야 초보농사꾼이 진정 사표를 제출하려는 이유를 읽으신 이사님(지금은 현대 부사장님이 되셨다)의 사인이 떨어지자 그가 뒤따라 귀농했다.

7월에 귀농했으니 쥐뿔도 농사지을 게 없었겠다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사표수리의 연기 등 돌발사고가 생길 것을 대비하고, 봄 농사철 지나서 귀농하면 그 해 영낙 없이 백수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주말마다 울진에 마련한 터전으로 내려와 논 준비와 모내기를 했다.

일명 주말농사 꼴이 되었다.


“우리나라 통털어 주말농사를 이렇게 멀리 지으러 다닌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며 초보농사꾼이 요즘도 우스개소리로 목에 힘주고 하는 말이다.




 


(▲ 관아를 겨우내 땅에 묻어두었다가 봄에 심으면 이렇듯 싹이 나온다. 그것이 모종이 되는 것이다.)

촛자 주제에 그런 생각까지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통한 일이다.


몸과 농사기술은 안따라 줬지만 아쉬운대로 통박 하나는 굴렸으니까 고추도 어느 정도 주말마다 내려와 땅에 박았다.

그래야만 한 해를 공치지 않는다는 무슨 보험심리같은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다.


그리고 가을이 되었다.


벼와 고추,  얼마 되지 않는 것을(지금 생각하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때 눈으로는 대농 수준으로 느꼈다)  달랑 수확하고 나서 이웃 동네 형의 수확을 도와주러 부부가 갔다.

그때 처음 만난 것이 야콘이다.


그날 노동의 댓가로 캐다가 부러지고, 호미 자국난 야콘을 몇 자루나 받았다.

그러니까 귀농하고 처음으로 품삯을 받은 셈이다. 현물이지만.
그렇게 받은 야콘을 겨우내 먹어본 초보농사꾼이 무릎을 쳤다.
이제부터 나의 길은 “야콘”이라고...



 




초보농사꾼은 귀농 전 직장다닐 때(도시의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변비에 장이 좋지 않았다. 물론 신경성이다.
그런데 야콘을 먹어보니 이거야 원.


변비약 먹은 듯, 그리고 장 진정제를 먹은 듯 그렇게 속이 좋을 수가 없다는 거다.
초보농사꾼 혼자 야콘을 복용(?) 했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내가 먹어봐도 신통했다.


처음 야콘을 자루째 받았을 때는 이걸 언제 먹느냐며 사실 애지중지까지 하지  않았는데 거덜이 나가자 아껴 먹게 되었다. 사람의 간사함이란...

하여간 다음 해 봄이 오기를 두 주먹 불끈 쥐고 기다린 초보농사꾼.


야콘 모종을 구하려니 야콘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모종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야콘을 주었던 형에게 모종을 어렵게 구해 심으려 하니 동네 어른들께서 걱정이 늘어졌다.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야콘을 어디에 팔려고 심느냐며 말리셨다.


그래도 웃으면서 야콘을 심는 우리를 보시고 말씀은 안하셔도 골이 비어도 한참 비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 야콘을 심는 날, 하도 허리가 아파 땅바닥에 누웠다. 허리가 시원하다.)

‘이렇게 약성이 좋은데 언젠가는 알려지겠지’


이게 초보농사꾼이 믿는 구석의 전부이고, 야콘 농사를 짓기 시작한 '특별한 '이유의 전부였다.

여하튼 풀도 일일이 뽑아주고, 한방영양제를 뿌려주며 유기농으로 기똥차게 키워 수확하는데까지는 그런대로 몸이 후줄근해져서 그렇지 그런대로 좋았는데 창고가 없었다.


그때는 귀농한다고 하면 눈을 휘번덕대며 아래 위로 훑어보던 시절이었다.


‘이거, 하자 있는 인간 아냐?’ 하는 눈빛. 그런 때라 귀농지원금이나 귀농정착자금 등의 지원은 1원도 없었다.

그러니 창고지을 돈이 있는지.


오지 산골의 겨울날씨는 두 말 하면 잔소리 아닌가.

할 수 없이 부랴부랴 마을 입구의 폐교를 빌려 거기에 모셨다.(?)


말이 모셨지 창문은 다 깨지고 문짝도 아귀가 맞지 않으니 한데에 내놓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거기에 이불쪼가리와 담요 등을 죄다 갖다 덮어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거기까지가 죽도록 농사지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초보농사꾼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어떤 때는 담요 하나 들고 그 폐교에 가서 야콘이랑 자보기도 했다.
야콘이 어느 정도 추위를 견딜 수 있는지 생체실험(?)을 한 것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해봤댔자 야콘이 보란듯이 창문 쪽에서부터 얼기 시작했다.
물론 팔 곳은 없고 야콘이라는 말을 하면
“약콩요?” 하지 않으면 다행일만큼 야콘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누구도 몰랐다고 보면 된다.

둘이 오두막에 마주 앉아 의논을 했다.


고생고생해서 키운 야콘을 이렇게 얼려 버릴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선물하자.”

“OK"

그때는 귀농의 열기가 분기탱천하던 시절이니만큼 합의도 여의도 둥근 지붕 속 사람들 같지 않고 빨랐다.


 


(▲ 이렇게 초록의 물결로 야콘이 자라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넣어 보내느냐였다.
박스가 없었다.


박스까지 제작하면 많은 돈이 들다보니 상상으로라도 바라지 못했다.

결국 읍으로 40분 달려가 마트를 돌며 부부 넝마주이처럼 박스를 줍기 시작했다.


주위 여자들이 눈을 마구 휘번득대는 것을 뒤통수로 느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그렇게 박스를 주워다 편지지에 일일이 약성을 구구절절이 적어서, 잘 드시라는 진심어린 멘트까지 부록처럼 박은 다음 야콘박스에 넣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택배비였다.


그때는 택배비 지원도 일원 한푼 없었기 때문에 그 많은 곳을 보내자니 적잖이 부담이었다.
어쩐다지...


 


(▲ 야콘의 꽃은 애기 해바라기 같다.)

선물해 달라고 하지도 않은 것을 착불로 턱하니 보내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때나 이때나 ‘되도록이면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자‘ 쪽으로 삶의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택배비도 내가 쏜다‘쪽으로 금방 합의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야콘을 택배로 발송하고 나니, 야콘을 받아본 분들이 꿈인 듯 생시인 듯 고맙게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갈 일이 있어 갔다가 어느 지인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단이 난 건 그 때였다.


그 집 대문 앞에 우리가 그 고생을 해서 보낸, 일일이 손으로 풀 뽑아주고 한방 영양제 부어줘 가면서 쌔가 빠지게 길러 보낸 유기농 야콘이 탱탱 얼어 터져 검으티티해진 것을 박스째 버린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내 마음도 야콘처럼 얼어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본 초보농사꾼의 얼굴 그림자를 지금도 난 잊지 못한다.
산골로 내려오는 내내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 야콘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내 돈 내고 산 거였으면 끔찍이 여겼을테지만 주어온 라면 박스에 생전 보지도 못한 것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보냈으니 하잖게 여긴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었다.


뼈아픈 경험을 한 야콘을 다시 심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하지도 않았다.
초보농사꾼의 야콘의 약성에 대한 의지는 초심 그대로였다.


나 또한 가장이 ‘못먹어도 GO’라고 하는데 패를 돌려야지 별 수 있나.
귀농 초, 우린 왠만하면 의견을 서로 맞추어가며 살자고 다짐했던 그 약발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애들도 함께 돕고...)


그리고 초보농사꾼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현상에 애걸복걸하지 말자고 했다.
그건 도시 생활에서 신물나도록 했으니 이젠 산골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자고 서로를

초보농사꾼 입에서 이처럼 한 끝발 높은 소리가 술술 나오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건 순전히 자연의 힘이지싶다.

그때부터 TV 출연 때마다 야콘 자랑을 했다.


멀쩡히 둘다 왠만한 직장 다니다 왜 귀농했냐며 다행히 방송국에서 구미당겨 하는 일이 심심잖게 있었기 때문에 기회 닿는 대로 야콘을 알렸다.

초보농사꾼이 그때나 이때나 연사처럼 부르짖는 것은 판매도 판매였지만 이처럼 약성이 좋은 것을 모르고 못 먹으면 안타깝다는 거였기때문에 방송에서라고 예외겠는지...


지금 생각하면 팔리지도 않던 야콘을 계속 그 의지로 신주단지 모시듯 야콘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대단해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먹어본 분들이 점점 약성을 입소문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워온 박스에 담아 보내던 것을 조금 진화하여 스티로폴 박스를 사다가 담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어 해 하다가 ‘하늘마음농장 유기농 야콘’이라고 턱하니 인쇄된 박스도 만들었다.


창고가 없어 다 쓰러져 가고, 유리창도 다 깨진 폐교에 넣다가 그 다음에는 하우스를 하나 지어 그 안에 넣었다.
문제는 아침 저녁 기온차가 커서  해지고 나서의 하우스 안은 정말로 추웠다.





(▲ 수확철에는 너도 나도 수확을 하기 때문에 남자일꾼 구하기가 어렵다. 낮에 품을 사서 왕창 캐놓은 것을 초보농사꾼 혼자 다 실어 날랐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이불과 보온덮개를 있는대로 가져다 야콘을 덮어 놓았지만 강추위에는 당해내질 못하고 가장자리부터 얼기 시작했다.
그러다 야콘창고도 대출받아 마련하게 되었다.


지금은 당뇨환자분들 대부분이 야콘을 알 정도로 그 약성이 알려진 편이었지만 2001년 우리가 유기농으로 지었을 당시에는 야콘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발음도 어려운 야콘, 하늘마음농장 야콘의 변천사를 핏대 세우며 이야기 하다 보니 무슨 5일장의 약장사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도....

그런데 왜 지금 귀농 초, 그 얘기를 하는데 목젖이 뎅그랑거리며 매어오는 것일까.


괜시리 야콘의 전설 이야기를 하느라 정수리가 뻐근해지고 있다.

이제 야콘은 많이 알려져 외국에서 수입까지 해대고 있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큰 산골에서 자라 맛이 남다르고, 유기농으로 기른 것이라 약성 또한  끝내준다고 침튀겨봤자 수입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어졌다.



 



(▲ 어둔 밤이 되어 내가 손전등을 비추고 초보농사꾼이 그 무거운 박스를 죄다 실었다. 밭에 두면 얼기 때문에 그 날 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 날라야 했다. )


그러나 난 믿는다.
사람도 어느 부모밑에서 어떤 이슬먹고 자랐느냐에 따라 물건이 달라지듯이 초보농사꾼이 무릎에 관절염이 생기도록 풀 뽑아주고, 약 한번 안주고 우리나라 땅에서 자식처럼 키운 야콘은 남다를 거라고 난 믿는다.


야콘철이라 더 부쩍 손님들이 와서 늘상 묻는 것이 야콘을 어떻게 알고 농사짓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이 더 많아진터에 귀농초부터 야콘에 대한 사연과 뼈 아픈 경험들을 적게 되었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그런 눈물나는 시절도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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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엿처럼 부러져 구멍이 숭숭 뚫릴 때
+   [산골편지]   |  2009. 12. 30. 16:46  

 



2009년 10월 늦자락의 글


올해는 밭농사가 흉작이다. 고추농사도, 야콘농사도...
가물어서가 이유이든 어쨌든 우리 부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미련도 후회도 없다.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눈에 보이는 농사가 흉흉하다 하여 마음농사까지 되숭숭할까 그게 조심스럽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더 초보농사꾼의 안색을 챙긴다.


그런데 며칠 전에 차 한 잔 앞에 두고 초보농사꾼에게 그런 소리를 했다.
귀농하던 해, 이 낯선 연고도 없는 곳으로 귀농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올 한 해의 끄트머리는 기운이 자꾸 땅속으로 기어 들어간다고...




초보농사꾼 안색을 챙길 것이 아니라, 이건 내 안색이 문제인가 보다.

그게 사실이다.
늘 자신감있고, 꿈을 향해 달려가던 그 굳센 마음이 내가 이 바람부는 낯선 터에 서있게 하는 알맹이였는데 올해는 한 겨울 엿치기하듯 엿가락을 부러뜨린 것처럼 뚝 하고 인정사정없이 분질러지는 기분이다.


물론 분지른 엿속은 구멍이 숭숭...

초보농사꾼도 의외라는듯 쳐다 보고 말이 없다.


그러나 난 안다.
내가 나를 잘 안다.


오뚜기처럼 금방 나의 꿈을 다시 주머니에 주워담고, 나의 가족을 눈에 넣으며 힘차게 걸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당분간은 그렇게 헤매고 싶다.


나도 헝클어진 마음상태로 그렇게 헤매고 싶다.
미친년 머리 헝클어지듯 그렇게 헝클어진 마음을 한 올 한 올 쓰다듬어 뽀마드를 바른 것처럼 차른한  머리로 거듭날 날이 있다는 것을 난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늪지처럼 바라볼수록 깊어지는 지혜가 생길 것이고, 내일을 향해 걸음의 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감지하며 내 작은 발을 내놓을 것이다.




귀농하고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저녁밥을 따뜻하게 지어먹고 나면 초보농사꾼과 차 한 잔씩 들고 마당으로 나서는 그 시간이다.

오늘도 그렇게 차 한잔을 떠받들고 마당에 섰다.


언제 내 마음 속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산골의 밤 속 분위기는  온통 ‘괜찮다’는 소리만 들린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고만 한다.

하늘에는 소리없이 내려다 보는 별과 달이 든든한 후원자이고, 땅에서는 마지막 남은 가을국화가 또한 큰 위로자가 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그 소리의 진원지이다.


사람은 저 안겨주는 쪽으로 피사의 탑처럼 기울어지게 되어 있나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마당에 선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 격려로 난 내일 하루를 살 영양을 저장한다.
산골의 밤은 어머니 손처럼 ‘약손’이다.


내 안길 곳이 이 산골이라는 것을 보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아쉬운 마음도 든다.
욕심 그득한 도시의 그 물에서 보다 일찍 발을 뺐더라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지금껏 발을 못뺐다면 어찌 되었을뻔 했을까를 생각하니 머릿속이 건포도처럼 새까매진다.
그러니 지금이 얼마나 금쪽같은지...


밭농사는 재미를 못봤지만 마음밭만은 여느 해보다 풍년이길 원한다.

원이 강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책읽을 여유도 더 생기고, 다른 때같았으면 중요도에 밀려 있던 일들도 여유롭게 해치우고 있다.

산골가족의 얼굴도 점까지 선명하게 보려 하고...


다 좋을 수는 없다 하면 난 마음밭에 손을 들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평소에 바빠 밀쳐 두었던 화분갈이를 했다.
사랑초가 항아리에서 자손을 번창시켜 분갈이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매번 바쁜 농사일로 밀쳐 두었었는데 이제 날이 추워지고 서리도 위협하는지라 오늘 낮엔 고상하게 화분에 손을 댔다.


지금 상태로도 이쁘지만 몸을 나누어 주면 더 풍성해지기 때문에 분갈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준비물은 항아리 하나, 화분 하나, 꽃삽, 그리고 깨진 항아리 조각 하나를 준비했다. 항아리 밑구멍을 막아야 하니까...

항아리에서 사랑초를 빼내어 보니 그 안에 스승이 들어있다.




이렇게 작은 알갱이에서 열심히 꽃대를 올리고 올려 산골가족에게 보랏빛 이쁜 이파리와 새하얀 작은 꽃을 선사한 것이다.
소리없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그 작은 알갱이가 다칠까봐 조심스레 신생아 다루듯 하면서 나 또한 더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껏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랑초에 보답이라도 하듯 보다 더 검고 영양가가 풍부한 흙을 찾아 꼭꼭 눌러주었다.
이제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겨우내 산골가족의 동무가 되어주겠지.





이렇게 세 집 살림을 내주었다.
지금은 엉성하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저들은 또 힘껏 저 살궁리를 하여 풍성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진다는 것을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몸으로 보여주겠지.

산골엔 눈만 돌리면 스승이 즐비하다.






이렇듯 밭농사의 결과가 재미없어진 댓가로 이런 마음의 여유도 부리며 교훈을 얻으니  애들말로 쌤쌤이다.

낮에 마음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늦은 밤 마당에 선 산골부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괜찮다’는 소리에 등이 밀려 집으로 들어오는데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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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산골 돌팔이의 처방전
+   [산골편지]   |  2009. 12. 2. 03:04  


2009년 10월

 

햇살이 자글자글하던 초여름 무렵, 산골에 살구나무 한 그루 들였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소리인지 몰라도 살구나무 첨 봤습니다.
이젠 그의 목숨에 내 목숨을 겁니다.

혹여 목이 말라 죽는 것은 아닌지.


넓지도 않은 미간을 찌뿌리기까지 하며 걱정하는 척하지만 난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의 목마름을 잊습니다.

물론 핑계는 다 있습니다. 농사 일로 바쁘다고...
농사가 무슨 벼슬인지,


누구 위해 농사를 짓는지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지요.


안 바쁜 사람이 있는지.. 유치원생에게 물어봐도 거의 같은 대답일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의 목숨을 점검합니다.


뭣도 모르고 돌팔이가 점검해 봤댔자 죄다 오진이겠지만...

그의 목숨을 생각해 준답시고 처방한 것이 개똥입니다.

 

 매일 개똥을 정성껏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난 어느 날 보니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돌팔이를 원망하는지 억센 가시만 저를 향해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처방한 개똥이 너무 독했던걸까’
‘가을이라 그런가’
‘속이 타서 목이 말라 저리 기가 죽은 것일까’
‘겨울잠 준비를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하는지...’

 

이젠 고상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다 들먹입니다.

새 봄을 한번 맞이해 보면 결판날 일이나 그 안에 생명을 닫아걸까 그게 겁납니다.

 

이런 초라해지고 꾀죄죄한 살구나무를 며칠 봐서 인지 살구가 탱글탱글 열리는 환상은 벌써 물건너간지 오랩니다.

그런 환상만 갖고 나무를 들였다가 여러 나무 골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요.

 

시기가 절절치 못할 때 옮겨서 그럴 수 있고, 또 뿌리가 예민한 부분인데 뭣도 모르고 그저 가져가라고 했다고 신바람이 나서 앞뒤 안가리고  파재껴 와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물도 많이 주고 거름도 적당히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알고도 못한 그 부분은 제 불찰입니다.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은 있다고 전과자는 말합니다. 바빠서 그랬다고...

이제 그런 이유는 내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어설픈 처방이지만 나무 상태를 휘번뜩이며 관찰한 결과, 나의 처방전에는 물과 개똥 밖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처음 살구나무를 들였을 때의 처방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팔이 아프도록 물도 열심히 들어다 부어주었고, 개똥도 나무 주위에 소복이 쌓아주었습니다.

이제는 봄만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되어 가시만 곧추세우고 있던 그 자리에 파리한 싹이 돋아나면 나도 파리하게 놀라 환호성을 지르겠지요.

여하튼 생명붙은 것을 산골로 들이는 일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가을이라 안그래도 해골복잡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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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무서운 대물림
+   [산골편지]   |  2009. 11. 25. 03:15  

 

 

 

2009년 10월

 

저녁을 지어먹고 나무 보일러의 불꽃 상태를 보려고 밖으로 나갑니다.
주위는 검으티티한데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봅니다.

 

어둠으로 인해 눈은 까막눈이지만 나무들이 옷을 벗어 제 발등을 덮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하염없습니다.
장작 하나 집어넣으려던 나도 하염없이 서서 그 소리에 귀를 씻어냅니다.

 

나도 하루살이처럼 코 앞의 일에 헉헉거리고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긴 겨울 발등 덮을 것을 미리미리 장만해야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무의 성은이 하해와 같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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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인 아버지가 자식 공부시킨다며 온가족을 데리고 한양으로 갔을 때, 할머니 심정이 어땠을까를 왜 지금 사무치게 느끼는걸까요.
나이를 먹는가 봅니다.
내가 나이 먹는 것을 이제는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거지요.

 

그렇게 손자, 손녀가 여섯이나 되는 대가족이 살갑게 살다 훌쩍 떠나보냈으니 얼마나 가슴이 휑하셨을까요.
내가 딱 그 처지가 된 것처럼 가슴에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할머니는 봄부터 여름까지 더 정확히 여름방학때 눈에 넣어도 안아픈 손자, 손녀들이 내려오면 보여준다는 이유 하나로 그 큰 꽃밭을 진종일 지어다니셨습니다.


그 시절, 시골에서 그만한 꽃밭(땅 적은 집 밭만했지요.)을 가꾼다는 것은 거의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심고, 풀 뽑고, 함석 물조리개로 물주며 그곳에 치성을 들이셨습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특유의 향기를 내뿜으며 할머니와 함께 우리를 기다렸지요.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그 꽃밭은 황금 밭이 되어 지금도 내 가슴 한 켠을 도백하고 있다가 내가 힘들 때마다 특유의 향기로 나를 치유해주곤 했습니다.

 

 

 

 

난 지금 농사를 지으면서 내 능력에 부치는 꽃밭을 갖고 있습니다.


내 할머니의 꽃밭에 비하면 쨉도 안되지만...

 

할머니가 삭막한 서울로 가버린 손자, 손녀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가꾸셨듯이 나 또한 귀농할 때, 얼떨결에 따라 내려온 내 아들, 딸의 영혼을 위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경영은 내가 몇 년을 머리 싸매가며 전공한 ‘이윤추구’를 위한 경영이 아니고 ‘행복추구’를 위한 경영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을 잘 안배하고, 눈높이와 땟깔도 배려하고, 꽃의 모양새도 고려하면서 꽃을 키웠던 나의 할머니를 흉내내어 꽃밭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보니 내 할머니와 똑같이 그러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찌 아이들을 위한 공간만이겠는지요.


그곳은 내 영혼이 지쳤을 때,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고 있고, 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임희숙의 노래 가사처럼 ‘등이 휠 것같은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또한 이곳입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시아 어느 시인은
"내게 은전 두 닢이 생긴다면 그 중 한 닢으로는 빵을 사고, 나머지 한 닢으로는 내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고 했듯이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최우선순위를 둔 것뿐입니다.


난 말이예요.
고2, 중3인 산골아이들이 우리집의 코스모스가 제일 아름답다고, 우리집의 국화가 제일 이쁘다고 하면 그 말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럴 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래, 아가들아! 눈에, 가슴에 찐하게 담아두렴.


그리하여 니들이 험한 세상 살아갈 때 한 자락씩 꺼내 보며 위안을 삼으렴.
그리고 엄마가 엄마의 할머니로부터 보고 배웠듯이 너희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너희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늘 생각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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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제 새끼잡아 먹는 에미
+   [산골편지]   |  2009. 11. 17. 02:42  

2009년 10월

여름내내 풍성한 잎파리 속에 실한 포도송이를 감추고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지금은 포도나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앉아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땅바닥을 서걱서걱거리며 마지막 남은 힘을 삭히는중인가 보다. 얼굴은 노래가지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 그를 보면 영원히 번창할 것같았지만 때가 되면 그 어떤 것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가 보다.
오늘은 유심히 더 노란 얼굴에 검버섯까지 펴 있고 구멍까지 난 모습으로 땅바닥을 기고 있다.

가을에는 더더욱 어느 것 하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오늘은 그의 땅바닥을 기는 소리가  유심히 크게 들린다.
한 해의 끝이 보이고 있다는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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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언니네 갔을 때, 돌확 속에서 노는 물고기가 하도 이뻐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귀농한 동생을 늘 마음 아파하던 언니가 물고기를 담아 주었다.
패트병을 잘라서 그 안에...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름은 구피이고, 제 새끼 잡아먹는 놈들이니 단도리 잘 하라는 말도 물 속에 섞어 담아주었다.
난 후자의 부탁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설마...

물고기는 산골로 이사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새깨를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부탁이 가시처럼 걸려 어른과 신생아를 칼같이 갈라 놓았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떼어 놓는 것이 옳은 일일까 끙끙거리면서...

한참 지나 '그래도 그렇지 제 새끼 잡아 먹는 어미가 어딨냐"고 산골아이들이 하도 나를 공격하기에 얼떨결에 합쳐 주었다.

한동안 난 에서 돌아오면 숫자 세기에 바빴다.
새끼의 수를 칼같이 세고 또 셋다.
안그래도 숫자에 대해 야무지지 못한 나로서는 그 일도 큰 일이었다.

어제 요맘때의  숫자와 변동이 없다는 사실이 신통방통하여 먹이도 고봉으로 주었다.
후한 먹이 공세로 금방 물이 탁해졌다.
그물이 촘촘한 체로 어이, 새끼 할 것 없이 떠서 작은 그릇에 옮겨 주고 그들의 둥지를 깨끗이 청소를 하고 산골의 가재도 산다는 1급수 물을 담아다 놓았다.

그런데 그 옆의 화초를 간섭하느라 깜빡 잊고 작은 그릇에 있던 물고기들을 제 집에 넣어주지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그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물고기를 원래의 집에 넣어 주려는데 새끼의 수가 형편 없이 모자란다.
아니, 새끼들이 아예 안보인다.

어디로 튀었나 하고 사방을 둘러보고 아무리 돋보기까지 동원해서 찾아도 새끼 8마리는 다 어디로 가고 달랑 새끼 한 마리에 어른 5마리만 남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제서야 제 새끼를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우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다시 분리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어미 물고기 밥을 주지 않았다.

어둠이 깔리고 어린 물고기 혼자 제 집에 둥둥 떠있는 푸른 물배추 아래에 잠이 든 것을 들여다 보았다.
나의 까막정신이 어린 새끼들을 희생시켰구나...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작고 검은 돌 하나 집에 넣어주었다. 친구하라고...

그러는 동안 씩씩거리던 기분은 사라지고 과연 내가 어미 물고기를 타박할 자격이 있을까???

자연에서 키운다며 산골로 데려 와서는 농사 일로 바쁘다고 내 새끼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었는지, 어미로서의 역할을 칼같이 해냈는지 생각하니 누가 누구에게 지적질할 처지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미 물고기에게 아까 주지 못한 먹이를 고봉으로 주면서
'너도 나도 어미 구실 잘 하자'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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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밤에도 잔업을 계속 된다.
+   [귀농일기]   |  2009. 11. 17. 02:31  

 

2009년 10월 20일


오늘은 답운재에서 고추를 땄다.
아내와 따면 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아내는 손을 잽싸게 놀리기 때문에 고추도 잘 따고, 김매기도 훨씬 앞서서 나간다.
자기 골을 다 매고 돌아와 내 골을 매주면 우린 중간에서 만난다.

낮에는 고추를 따고 저녁에는 고추꼭지를 따야 한다.


아내는 낮에 고추꼭지를 따고 있으면 시간이 아깝다고 한다.
밤에도 할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쉴새 없이 일하는 것이라서 말리지만 안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고추꼭지를 잘 따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체질상으로 못하는 데다가 왼손잡이라 손도 잽싸지는 않다.

그래도 처음은 꼭 같이 해준다. 이정도의 센스가 있어야지.
아내는 왼손으로 고추꼭지 따는 것이 영 신통치않다며 물러나 앉아 구경이나 하란다.


설거지를 끝낸 아내의 손놀림이 정신없이 돌아가더니 벌써 한쪽부터 비어간다. 자리가..

늦도록 고추를 다 땄다.
내일이면 봉화디딜방아로 고추를 빻으러 간다고 약속을 해두어서 일찍 자야한다.

고추는 사실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다.


말목도 모종 다섯 포기정도 마다 일일이 박아주어야 하고, 다른 작물의 수확은 한번 하는데 고추는 여러번 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일일이 끈을 고추모종의 크기에 따라 한번, 두번 , 세번까지 일일이 다 매주어야 한다.



 


그리고 수확후 일일이 물에 넣어 씻은 후 건조하고 다시 건조한 꼭지를 하나 하나 다 따야 한다.
모두 재래식으로 손이 가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디딜방아로 가서 내가 손수 빻아서 발송할 때는 마음이 뿌듯하다.
내일 봉화까지가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고추꼭지 딸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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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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