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59)
하늘마음농장 소개 (1)
개복숭아효소(발효액) (24)
쇠비름효소(발효액) (23)
산야초효소(발효액) (7)
천연숙성비누 (8)
유기농 야콘, 야콘즙 (12)
산야초, 약초이야기 (5)
산골편지 (132)
귀농일기 (92)
산골아이들의 책이야기 (22)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39)
야콘 이야기 (1)
산골풍경 (74)
산골밥상 (8)
귀농아낙  야콘  농사  하늘마음농장  귀농일기  배동분  귀농  산골 다락방  산골  초보농사꾼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 Today :
+ Yesterday :
  

 

 

 

산골편지 _해당되는 글 132건
2008.10.10   산골편지13--철들자 노망이라고... 1
2008.09.19   산골편지12 -- 산골아빠의 비애 2
2008.09.09   산골편지11-- 어디에 눈이 가는가?? 1
2008.08.28   산골편지10 --뜨거운 거름 2
2008.08.22   산골편지9--까마귀야, 까마귀야~~ 2
2008.08.21   산골편지8-- 산골의 결혼기념일 
2008.08.15   산골편지7 -- 애들 교육은 어때요?? 
2008.08.14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2008.08.13   산골편지5 --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는가?? 
2008.08.12   산골편지4 --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산골편지13--철들자 노망이라고...
+   [산골편지]   |  2008. 10. 10. 09:3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상하지도 못한 그가 요즘 들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합니다.
청소며, 다 본 신문지 제자리에 갖다 놓고, 자기가 화장실 앞에 벗어 던진 꽈배기 모양의 양말과 옷가지를 빨래통에 갖다 놓기, 나 없는 동안 먹은 것 설거지하기 등....

어찌 보면 책제목처럼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이 연세가 되어서야  하는 것이지만 그에게는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내가 좋아하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이 말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절정기는 중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보다 완벽해지고 영혼은 성숙기를 맞이한다.

사고는 더욱 넒어지고 능력은 최대한 발휘되며 행동은 이성에 순응한다.
모든 것이 무르익고 성숙하다.
그대는 이 시기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절정기가 되어도 어떤 사람은 전혀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삶을 시작한다.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는 방식에 따라 위대한 삶이 결정된다.

유년시절처럼 무지하지도 않고 청년시절처럼 광적이지도 않으며
노년처럼 둔하고 지쳐 있지도 않다.
정오에 태양은 가장 빛난다.

자연은 인생의 계절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힌다.
유년에는 장미색의 옷을 입히고
청년시절에는 파란색의 옷을 입힌다.
마침내 인생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노년의 복장은 솔직해야 하므로 자연은 하얀색으로 끝맺는다."


그렇다면 초보농사꾼이 그럼 위의 글대로 영혼이 성숙기를 맞이한 것일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철들자 노망이라고 왠지 그가 늙어간다는 생각에서 인 것같습니다.
그냥 신문지 봤으면 화장실에서 꺼내 놓아라, 거실 청소 좀 해달라, 양말 똘똘 말아서 화장실 앞에 팽개치지 말라,,,, 그렇게 잔소리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것같습니다.

왠지 늙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가을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습니다.

날이 따갑습니다.
그는 오늘 무슨 일로 나를 놀래킬까요.
안놀래켰으면 좋겠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산골편지12 -- 산골아빠의 비애
+   [산골편지]   |  2008. 9. 19. 23:5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낮에 보았던 달맞이 꽃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달빛을 많이 받아서 인지 얼굴도 노래가지고 하루가 다르게 키가 훌쩍 커져 있는 달맞이꽃.

하필이면 허구많은 공간중에 두릅밭에 피어 마음쓰이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먼 발치에서나 바라다볼 뿐 달리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다.
무엇에 대해 바라는바가 크고 진실하면 어찌되는지 달맞이꽃을 보면 알 수 있다.

달을 향해, 달을 향해 손과 발, 온몸을 다 동원하는.........................
비바람이 치는 날에는 걱정이 되어 뒷문을 수시로 열어본다.
혹여 바람때문에 억센 두릅나무가시가 달맞이꽃의 여린 얼굴을 할퀴지나 않나하고............

************************************

휴가철이 되자 산골에도 많은 이들이 찾아들었다.
그 중 두 언니네 가족이 휴가를 보내고 갔다.

아이들은 형과 오빠가 온다며 며칠을 기다린 끝이라 만남 자체가 기쁨이었다.
손님을 인근 유명한 계곡으로 안내한다는 핑계로 우리 가족도 그 김에 휴가를 보냈다.

그러나 휴가는 곧 끝이 나고 언니네 가족들이 모두 떠난 후에는 네 식구 모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이 없다.
일도 손에 안잡히고 밭에 올라가기도 싫었다.

일은 커녕 울적한 마음 가라앉히기에도 하루 해가 짧았다.
여운을 오래 끌고 사는 아내의 슬픈 속내를 읽었는지 그이는 내게 한숨자란다.
자꾸 목이 메어와 자리펴고 누웠다.

왜 작은 자극에도 내 호수의 파장은 그리 큰 걸까?

여러 번 몸을 굴리며 애써 소용돌이를 잡으려 애쓰는데 옆방에서는 나를 제외한 산골식구들의 ‘레슬링’이 시작되었다.

어른만큼이나 서운해 하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그이는 편을 갈라놓고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일단 패가 갈리면 애비도 아이들도 인정사정이 없다.
서울에서도 자주 보던 일이었다.

한참을 그리 산골이 떠나가라 함성을 지르더니 가장 큰 선수 하나가 기권을 하고 마루에 나동그라졌다.
하도 선우에게 얻어맞은 옆구리가 아프다며 꾀병을 부리기에 못들은 척하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이는 도저히 아파 못견디겠다며 병원을 가잔다.
하루 일을 포기하고 병원에가 X-ray를 찍어보니 10번 갈비뼈에 금이 간 것.
5주 진단이 나왔다.

무거운 것 들지 말고 힘든 일 하지 말고 푹 쉬란다.
언니들의 빈 자리를 씻기도 전에 산골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으니 팔자도 참.
남편은 심지어 멜라뮤트 밥주러 가는 일도 힘들어 했다.

형들과 재미있게 놀다 남아있는 아이들 생각하니 마음이 쓰이더란다.
그래 한 게임하며 아이들 기분전환시켜 주려던 것이 그만 그리되었단다.
2주가 지났는데도 차도가 없다.

산골아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지애비 심부름을 쏜살같이 한다.
돌아눕기도 힘들어 하고 기침할 때는 옆구리를 움켜쥐고 뒹군다.
병원약 먹고, 홍화씨달여 먹으며 원상회복을 위해 총매진중이다.

***************************

가슴이 하도 설겅거리기에 밤바람 맞으러 툇마루에 앉았더니 달님도 설겅거린다.
모든 것이 마음따라 가는가보다.

내 마음이 을씨년스러우면 나의 주위 친구들도 그리 보이는 걸 보니 말이다.
한참을 앉아있자니 가슴이 시려온다.

바로 앞 대추나무에게 가까이와 앉자고 하니 위로한답시고 자식을 주렁 주렁 달고 냉큼와 앉는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2001년 8월 20일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하늘마음농장)


 
 
        

 

산골편지11-- 어디에 눈이 가는가??
+   [산골편지]   |  2008. 9. 9. 00:43  

2008년 9월 6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을이 성수기를 맞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코스모스, 해바라기가 피고 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벌개미취 역시 한 쪽에서는 작은 몽우리를 터뜨리고 한 쪽에서는 검으죽죽하게 졌다.
거기다가 마타리까지 한 쪽에서 지고 있다.

이쯤 되면 마음 단속을 잘 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넋놓고 있다간 '내 마음 나도 몰라'다.

가을엔 이래저래 단속할 것이 많다.


************************************

산골 집으로 올라오는 미니 언덕에 꽃을 심었다.
예전같았으면 거기까지가 관심의 종착지였다.
밭이 오라고 시도 때도 없이 불러재끼니 별 수 없이 갈 수 밖에...

그렇게 ‘밭의 종‘처럼 불려 다니다 어느 날 보면 꽃모종이 풀에 녹아 흔적도 없이 눈에서 사라지곤 했다.
꽃이 밥먹여 주는 것도 아니다 보니 밭에 아부하며 귀농생활이 익어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산중생활도 익숙해지고, 낯선 곳에서 부초처럼 떠다니던 마음도 잔뿌리를 내리게 되자 올해는 관심을 좀 나누어 보자고 이른 봄부터 다짐했었다.

집으로 올라오는 작은 비탈길 왼쪽에는 코스모스를 얻어다 심었다.
오른쪽에는 봉선화와 벌개미취를 심었다.
어린 싹이 나오면 내 작은 눈을 뒤집어 까고 풀을 뽑아주어 꽃모종이 그들에게 놀이갯감이 디지 않도록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나무 밑에 묻으러 다녀오다가도 째진 눈으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효소실에 들락거릴 때마다 주저 앉아 맨 손으로 풀을 뽑아 주었다.

그랬더니 어느 새 튼튼하고 의젓하고 멋진 꽃을 피웠다.
길 양쪽에 꽃이 피니 그 느낌이 아주 새롭고 흥분되기까지 했다.
뭐랄까...
의장대를 사열하는 것처럼 괜시리 가슴이 일렁거리곤 했다.

꽃들의 그 순수한 모습을 볼 때면 사악하고 인정머리 없는  인간을 위해 도열해 있는 꽃들에게 미안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마냥 좋고 푸근하고 기분이 째졌다.

얼마 전에 비가 내렸다.
나의 헌신에 힘입어 화사하게 피었던 봉선화 꽃잎이 발 아래 내려와 앉아 있다.
그런데 도열해 있는 싱싱한 꽃에 눈이 가기보다 제 발 아래 꽃잎을 수북이 떨군 꽃에 눈이 자주 가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젠 아예 꽃나무 아래만 본다.
그리 눈영접을 하고 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대도 한 때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젊음과 화려함을 지녔으니...’
예전에는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에만 눈이 갔지 그 발 아래는 관심도 없었다.

그렇게 쌓인 꽃잎 위로 다시 비가 내렸다.
굵은 비는 이미 사기를 잃은 자 위를 확인사살하듯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붓는다.

자연의 변화를 가만 들여다 보면 그 안에 우리네 삶의 모습과 견주어 보며 교훈으로 삼을 것이 쌔고 쌨다.

작년까지만 해도 화려하게 피는 꽃에만 온 신경을 꽂았었다.
그러나 세월밥을 먹을수록 떨어진 꽃에 눈이 더 가고 생각도 그 꽃 위에 함께 쌓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해가 날 것이다.
그러면  제 몸을 말렸다, 이슬에 적셨다 몇 번 하고 나면 흔적도 없이 내 눈에서 떨어진 꽃들도 사라질 것이다.

사람의 한 생애도 이에 견줄 수 있겠다 생각하니 그 앞에 쭈그리고 있는 내 마음 또한 하염없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산골편지10 --뜨거운 거름
+   [산골편지]   |  2008. 8. 28. 23:2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은 시골길 곳곳이 다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그래서인지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이라는 표현이나 모습은 옛날 사진에서나 봄직하다.

다행히 우리 오두막으로 올라오는 길은 100미터 정도가 비포장 도로이다.
한쪽 산을 깎아 만든 길인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툇마루에서 그 길로 걸어 들어오는 하교길 아이들의 모습은 눈을 하늘에 행구고
다시 볼 정도이다.

그이와 약속했다.
저 길은 끝까지 비포장길로 놓아 두기로...

****************************************


어린시절 방학 때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앞마당에 여러 가지 꽃들이 제일 먼저 와서 안기곤 했다.
우리 부모님이 아이들만큼은  서울에서 공부시킨다며 서울로 다 데리고 가면서도 늙으신 부모님이 걱정되어 둘째언니를 부러 두고 왔었단다.

그래서 둘째 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를 서울로 모실 때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생각을 하면 둘째 언니에게 미안타.

그 언니가 동생들 온다고 할머니와 꽃밭을 매년 그렇게 아름답게 꾸며준 탓에 그나마 내가 조금 서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생각에서 우리 산골 아이들에게도 동요 가사처럼 꽃밭가득 예쁘게 과꽃을 보여주려고 앞마당에 큰 꽃밭을 만들었다.

작년에 받아둔 씨앗이 별반 없는 탓에 과꽃, 봉선화, 나리꽃, 채송화, 홍화 등을 고루 뿌렸다.
요즘 한창 한두 송이씩 시샘하는 듯 타는 가슴을 터뜨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밭 전면에는 머리내미는 것이 없었다.

'이상하다. 앞면에 더 예쁜 꽃을 고루 뿌린듯 한데...'
그 이유를 오늘 발견했다.

주범은 박씨 일가!
애비나 아이들이나 기회만 있으면 꽃밭에 대고 노상방뇨를 하는 바람에 그만 씨가
뜨거워 죽은  것이었다.

그곳에 꽃씨가 들어 앉았으니 고맙게 거름은 안줘도 된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했었다.
도시 같았으면 노상방뇨는 5만원 벌금은 족히 내야 했을 터이지만 난 산골아줌마로 마음이 넉넉하니 경고로 끝냈다.

그러나 버릇은 못고친다.
결국 꽃밭이 뒤에만 예쁘게 꽃이 피고 앞면엔 기계충 앓은 듯 하다.
그 상황을 직접 확인하였으면서도 요즘에도 착실하게 뜨거운 거름을 주고들 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내 탓도 있다.
귀농하고 한동안을 박씨 일가는 그냥 마당이나 길에다 대고 볼 일을 보는 거였다.

"당신 농부 맞아? 그 아까운 거름을 길바닥에 쏟아 버리다니...."
그 날 이후 꽃밭에 거름을 주려고 그리 했다니 나 또한 별반 할말을 잃을 수 밖에.

꽃밭을 볼 때마다 아쉬워 오늘은 대머리에 머리카락 이식하듯 꽃 이식을 했다.
앞에만 호미로 골을 파고 아이들 줄세우듯 홍화와 봉선화를 옮겨 심었다.

꽃도 자리텃을 하는지 며칠 몸살을 앓더니 그만 황달이 들었다.
한 밭 가득 이식하려던 욕심을 버리고 그대로 두었다.
식구들 눈요기 하자고 녀석들 자리텃하는 걸 볼 수 없어서....

***********************************************

비가 온다고 하더니 별들이 슬리퍼신고 마실나온 걸로 보아 비오는 것도 글렀지싶다.
초보농사꾼이 내일은 야콘밭에 풀 뽑자고 한다.

오늘까지 고추밭 풀 뽑았는데 종목을 좀 달라하지 며칠을 한 종목만 하니 싫증이 난다.

그래도 너무 진지하고 열심인 초보농사꾼을 봐서라도 나의 주특기인 김매는 일을 충실히
해야겠다..

2001. 7. 12

넓은 잎을 벌리고 나를 반길 야콘들을 생각하며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하늘마음농장)

 
 
        

 

산골편지9--까마귀야, 까마귀야~~
+   [산골편지]   |  2008. 8. 22. 15:3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가 온다.
여느 곳이나 비가 오면 습하고 끈적 끈적하여 군불을 지피고 싶어진다.

우리 '전설의 고향 세트장'에는 군불때는 방이 하나 있다.
4식구 오밀 조밀 누우면 다른 것은 끼어들 공간이 없는 작은 흙방
군불땔 수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도록 고마워 이사와서 어찌나 애용을 했는지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구들이 다 내려 앉은 것. 아직껏 수리를 못하니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

작년에는 못본 것 같은데 올해는 까마귀가 무척 많아졌다. 성대로 존재를 알리려 하더니 이제는 시선까지 끌려고 기를 쓴다. 관심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옛부터 까마귀는 기분좋은 새가 아니었다기에 나의 고정관념도 같은 맥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텃밭에 있는 새로 산 파쇄기(퇴비용 나무 파쇄하는 기계) 위에 앉아 고함을 질러대기에 오늘은 돌을 던졌다.

날아가는 까마귀 입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가까이 가보았더니 퇴비장의 음식물쓰레기를 입에 물고가다 떨어뜨린 거였다. 이내 돌 휘두른 걸 후회했다.

지도 먹고 살려고 물고가는 것을 쓸데없는 선입견이 생명의 먹이를 빼앗았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있는 어린 자식에게 줄 것은 아니었는지, 늙은 어머니께 드리려고 했는데 부랴 부랴 먹이던지고 빈 손으로 간 것은 아닌지......

다음에 까마귀를 만났을 때 큰 소리로 말했다.
"까마귀야, 어서 와 먹이가져가. 오늘은 물고 가기 쉽게 잘 펴두었어"
"오늘은 왜 그리 슬피우니? 애기가 아프기라도 하니?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아니고?"
그런 후로는 까마귀가 싫지 않다. 마음 하나 돌려먹기는 어려운 게 아닌 듯하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마음을 다시 돌려 먹을 일이 생겼다.
닭사료와 개사료 올려 놓는 곳에 자꾸 사료가 쏟아져 있기에 주어담기를 며칠 했다. 그러더니 강도가 심해져 아예 새사료 봉투 3개를 다 갈기 갈기...............
그 때까지도 주범이 '까씨'라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서씨'만 의심했다.
급기야 오늘 현장을 목격했다. 사료통, 봉투가 땅에 엎드려 있고 까씨는 갈길로 가고........

종자 봉투도 다 뜯어 모래알만한 각종 종자 등이 땅에 드러누워 서로 섞여 놀고 있었다.
사료담고, 흙고물 묻은 종자 주워 담는데 반나절을 반납해야 했다.

화를 삭히려 장독대에 가려니 작물에 병나면 쓰려고 계란껍질을 겨우내 모았는데 온통 땅에 조각을 내 못쓰게 만들었다.
일이 이쯤되고 보면 자연사랑이고 생명사랑이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동네 어르신께 사정얘기를 했더니 덫을 놓으란다.

덫?!
그럼 잡은 놈은?
그래도 생명이 있는 것을 어찌!

결국 다 포기하고 '기습품(?)'을 단속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퇴비장도 흙으로 대충 덮었다.
그래도 몇 날을 와서 울고 일을 저지르더니 요즘은 통 보이질 않는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어디서 비를 피하는지 마음이 쓰인다.

*************************************

잠자리, 나비, 매미, 새 등 제 자리에서 산골을 지키는 것들이 비가 쏟아지면 어디로 가는지 나보다 먼저 비를 피해 산골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비오는 소리만이 땅 위에 엎어질 뿐
그러다 반짝 비가 개이고 해님이 대지를 덮으면 그것들이 나보다 먼저 나타나 비설거지를 한다.
산골에서는 내가 제일 게으름뱅이다.

2001년 7월 8일 일요일 불영계곡따라 마음을 흔들며 성당다녀와서

배동분 소피아 (2000년 귀농, 하늘마음농장)



 
 
        

 

산골편지8-- 산골의 결혼기념일
+   [산골편지]   |  2008. 8. 21. 09:55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추가 바람에 많이 부러졌다.
저도 안부러지려 애를 써서인지 부러진 놈의 다른 줄기도 얼굴이 노랗다.
고추줄은 그래서 쳐준다.

일일이 고추 4~5주마다 지주대를 박아 주고 그것을 기둥으로 삼아 줄을 띄운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하는 작업이라 보통 허리가 아픈 일이 아니다.
주인의 손을 기다리지 못하고 부러진 놈은 저대로 서운한 모양인지 땅에 온전히 몸을 붙이지 못하고 어미 몸에 부러진 채 붙어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한 줄 한 줄 하다보니 어느 새 반은 했다. 더 이상은 허리가 바쳐주지 않으니 그만 내려올 수 밖에 없다.
내일까지는 꼬박해야 되는데 밤새 바람에 잘 버텨줄지......
****************************

사람이 무엇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길들여진다는 건 생각없이 당연히 그리해야 되는 것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멜라뮤트(일명 썰매끄는 개)도 밖의 수도에서 물소리가 나면 늑대소리를 내며 짖는다. 주인아저씨가 제 밥주기 전에 꼭 물을 길어다 주었기 때문이다.
개집을 집가까이에서 멀리로 옮겼는데도 그 행동은 여전하다.

하물며 사람이야.
오늘은 우리가 결혼한지 10년째되는 날이다.
도시에서야 며칠 전부터 각자 잔머리 굴리기에 바빴다.

눈치껏 제 속셈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이미지관리, 표정관리, 분위기관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 전날 슬쩍 '욕구’를 풍기면 거의 대부분은 미끼에 걸려들었고 서로의 주머니 사정에 관계없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곤 하였다.
그러나 이곳 산골에서는 뻔한 상황에서 며칠 전부터 잔머리돌릴 일이 없으니 속편하다.

단지 남편이 이 산골로 온 후 그 날을 기억할까만이 궁금했었다.
오늘은 고추줄을 매어 주기로 한 날이라 계획대로 고추줄을 넣은 베낭을 하나씩 등에 메고 줄을 띄웠다.

워낙 더운 날이라 '오늘이 그 날’이라는 기억도 오락가락할 정도였다.
남편이 저 쪽에서 매던 끈을 놓고 오기에 담배 한 대 피우려나 보다 했다.
“선우엄마, 축하해. 달리 줄 것도 없네”하며 쑥스럽게 내미는 것이 있었다.

하얀 개망초꽃
평소에 하도 흐드러지게 피기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는데 하얗고 작은 것이 향기도 그윽했다. 도시에서의 그 어떤 선물이 이에 비길까?

남편은 마음이 야물지 못한 아내의 얼굴에 흐르는 속내를 읽으려고 애쓰는 표정이다.
하얀 선물을 들고 잠시 서있었다.

감정이 제 갈길을 못찾고 헤맨 탓에.....
우리 둘은 밭고랑에 앉았다.

그러자 축하공연이 시작되었다.
해님은 조명을 맡았고, 구름은 소품담당, 나무와 바람은 음향담당.
고추잠자리와 나비가 춤을 추더니 이름 한 번 불러 주지 못한 새들도 제 목청껏 노래를 불러 주었다. 무대를 장식한 꽃들은 향기뿜기에 나 만큼 땀을 흘리고 있다.

밭가에 아주 작은 냇물도 한 목소리한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 보는 눈가에 흐르는 하얀 물을 흠치며 나도 나의 고마운 친구들에게 답가를 불렀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도시에서는 지금 이 시각쯤이면 아파트에 꽃바구니와 케익,카드가 배달되었을테지만 그런 것은 없어도 내 마음의 구석진 부분까지 읽어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마음든든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정말 선물이 배달되었다.
4시경에 배달되는 나의 산골 아이들.

지에미, 애비가 집에 안보이자 밭으로 직행한 결혼기념선물을 끌어 안았다. 축하공연하느라 비지땀을 흘린 친구들도 같이 안아 주었다. 남편은 선물도 배달되었으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잔다. 하늘, 바람, 구름도 등을 떠민다. 아이들도 좋아라 고추잠자리 앞세우고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산골 오두막에 촛불을 켜고 주현이에게 축하곡을 부탁했다.
도시에서 피아노를 배우다 산골로 내려온 후 배움을 중지한 주현이는 밑천이 별로 없는 것이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아는게 ‘징글벨’ 외에 몇 곡이 전 재산.
산골에 울려퍼지는 여름밤의 ‘징글벨’소리
************************************

사람이 무엇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만은 아니다.
난 이리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나더러 더 맑아지라 한다.
별은 나더러 더 푸르름을 가슴에 안으라 한다.

2001년 6월 29일 아주 따갑던 날에 산골에서 (하늘마음농장)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7 -- 애들 교육은 어때요??
+   [산골편지]   |  2008. 8. 15. 16:0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가 온다.
그 비가 집 앞 도랑으로 빨려 나가고 작은 개울을 거침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 집 비포장 도로 끝나는 작은 다리 밑에 가보았더니 나보다 먼저 도착한 것들이 벌써 내를 이뤄 한목소리한다.
그것이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제구실을 한다.
바다에 가면 시끄러운 이유가 여기 있나보다.
각자 자신이 떠나온 산골짜기의 사연들을 모두 듣고 와서는 바다에 토해내니 그리 시끄럽고 드셀 수밖에.

세상의 온갖 못볼 일, 듣지 못할 일들을 다 듣고 오니 바다는 또 그리 가슴에 멍이 드는가보다.

************************

산골로 옮겨 앉고 신이 난 쪽은 아이들이다.
도시에서처럼 학원다니지 않아도 되고 공부 많이 안해도 되니 좋단다.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이나 전화거는 사람들이 걱정어린 듯 묻는 말이 있다.
"애들 교육은 어때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30명이다. 3학년인 선우네 반은 12명이고, 1학년인 주현이네 반은 5명이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교실에서 4~5명씩 마주보고 앉아 두 학년이 같이 공부한다.
마을 입구에 분교가 있는데 학생 수가 적어 폐교되었고 대신 거기까지 스쿨갤로퍼가 온다.

학교까지는 15분 정도 걸리고 선생님과 학생이 그저 식구처럼 지낸다.
학원은 물론 없고 굳이 가야 한다면 울진읍까지 불영계곡을 따라 50분 정도 가야 하지만 학원에 보낼 일이 없다.

논과 밭, 개울, 개집, 닭장이 선우, 주현이에게는 학원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것 저것 묻고 논이나 밭에 데리고 가 일거리도 배분해 준다.

도시에 있을 때에도 책은 잘 읽는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더 잘 본다. 요즘은 만화삼국지와 위인전에 푹 빠져 있는데 만화를 허용한 지는 1년되었다.
산골로 온 후 반년을 신나게 놀다 올해부터 학습지 국어, 수학을 하는데 그게 공부의 전부다.

시골학교라 숙제도 일기밖에 없다.
이사온 후 지금까지 TV안테나를 부러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TV 앞에 앉아 헛시간 보낼 일도 없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지금은 아주 좋다.
그대신 아이들은 비디오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온 가족이 책을 많이 읽는다.

사실 긴 겨울을 산골에서 아이들과 어찌 지내나 고민을 했었다.
자연 앞에선 너그러운 남편이 밭언덕에 자연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퇴비봉투를 하나씩들고 나서면 점심 때 불러야 들어온다.

작년에 눈이 바쳐 주었으니 아이들 얼굴은 여름보다 더 시커먼스.
엄마도 타보라고 하도 권하기에 애들 사기차원에서 앉았다가 "누가 나좀 말려줘유~~~~"하고 소리소리질렀으나 이 산골에서 누가 말려주랴.
결국 가시오갈피 나무 몇 그루를 아작냈다.

그런 급경사를 애들은 잘도 탄다.
그 덕에 두 놈이 내 부츠 두 켤레를 고스란히 분리수거장으로 보냈다.
겨울공부 종목은 또 많다.

가끔씩 남편은 "우리 영토에 누가(노루, 맷돼지 등)침범했나 가보자"며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갔다온다. 눈이 어른의 허벅지까지 쌓인 산비탈 밭으로 ...

애비는 노루 등이 눈 때문에 먹이찾으러 내려왔나 먹이걱정에 간 거였지만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침입자를 찾는다.

여름이 되었다.
나를 아는 친절한 이들이 "애들 공부걱정 안하세요?"라며 염려해 주시지만 이제는 자연과 어떤 공부를 할지 눈에 선하다.

언제 다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자연을 더 많이 느끼고 자신의 맑디 맑은 눈에 그것을 넣어 성인이 되었을 때 조금씩 꺼내 쓰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듯이 아이들이 자연에서 많은 생각을 얻고 맑히기를 바란다.

선우는 손님오는 게 싫단다.
오는 사람마다 같은 내용을 물어 그렇단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배운다.
하늘, 구름, 시냇물, 논과 밭, 해님, 개구리 친구들이 아이들 오기를 더 기다린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면 그 친구들이 내 대신 번갈아 마중나간다.

***************************

오늘은 아이들과 앵두를 땄다.
바구니를 하나씩 팔에 걸어 주었더니 잘도 딴다.

한참 후에 보니 바구니 바닥에 겨우 한겹 엎드려 있는 게 다였다.
"앵두 다 어디갔니?"
"엄마, 우리가................."하며 웃는데 입가에 빠알갛게 앵두물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색처럼 아이들 가슴도 곱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효소를 담아 맑디 맑은 유리잔에 넣어주면 고추잠자리와 한 모금씩 나누어 먹겠지........

모기와 파리가 극성인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사진은 필리핀 갔을 때이다)

2001년 유월 22일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   [산골편지]   |  2008. 8. 14. 13:26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다에 갔었다.
4식구 올망 졸망 방파제를 지나 해송처럼 뾰족 뾰족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아 놀았다.

선우가 성당교육이 있는 날이라 미사시간까지 근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자장면 사먹고 서점에서 서로 다투어 책도 사고 이내 바다로 달렸다. 나도 닥아가고 바닷새도 마중나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바다에 취한다.
바다를 보니 문득 몇 달 전에 바다를 언제나 품고 사시다 엄마별에게 가신 작가 정채봉 님이 생각났다.

주현이는 애기 홍함을 3개 뜯어서는 주머니에 넣고 미역줄거리도 반찬해먹는다고 자기 끝 손가락만한 것을 딱 1개 뜯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랫만에 바닷가에 섰다.

저만치서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달려와서는 내 발 앞에 엎어진다.
그리고는 침을 하얗게 뱉어 놓고 되돌아갔다 다시와 침을 뱉는다.
바다는 자연을 닮은 것만 받아들이고 인간이 내다버리는 것들은 그대로 밀어낸다.

증오, 이기심, 시기, 쓰레기 등은 거칠게 밖으로 밖으로 밀어낸다. 그래도 세상에 불만이 많은지 침까지 뱉는다.

**********************************

사람은 똑같은 사람인데 얼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닥아와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듯 싶다. 그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를 지금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도시에서야 부족함이 있었던가. 그래도 늘 마음이 깔끔하지 못하고 안개 속을 걷듯 답답하기만 했었다.

열 수만 있다면 마음 속을 열고 비설거지하듯 씻어낸 후 햇볕에 말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정도로.

그 길이 진리인줄 알고 살았었고 지금도들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행복, 여유로움도 내 마음이 짓기 나름인 것을.
그저 큰 바람없이 지금 갖고 있는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혹여 바람이 있다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듯 소박하고 가슴절인 바람이라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올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왔었다.
그 눈오는 어느 날 정채봉 님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을 카톨릭신문에서 접했다.
순간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동안 기를 쓰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살았던 도시같았으면 '안됐네'라는 짧은 생각이 다 였으리라.

그러나 이곳 산골에서 접한 한 작가의 죽음을 두고 두고 마음에서 접었다 폈다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그 분의 책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정채봉 님에게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아들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닷바람에 묻어 오는 해송타는 내음.

어떤 책에선가 어머니의 산소를 이장하러 가는데 스무 살 어머니가 머리가 히끗히끗한 늙은 아들을 보면 마음아파하신다며 머리에 처음으로 염색을 하고 갔다는 글을 읽었다.

그 분의 글 곳곳에는 어머니에 대한 절제된 그리움이 얼룩져 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간혹 할머니를 힘들게 하면 할머니는 팔을 베어 버리고 천 리나 만 리나 도망가 버리겠다고 하였단다.

그런 밤이면 팔베개를 내준 할머니가 팔을 베어 버리고 도망가실까봐 할머니 속적삼 옷고름을 손가락에 묶어 두고 잠들곤하였다고 마음아픈 어린 시절을 고백하기도 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남의 일로, 남의 가슴앓이로 내 가슴을 내어 놓은 적이 있는가.
그저 내 가슴 속의 것들만 아프다고 후벼파내 보이며 반응을 구걸하지 않았던가.


그저 굳어져만 가는 가슴과 차가운 마음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은 평소에 지어먹은 마음대로 되는가보다.

정채봉 님은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 그쪽 별로 가는 때도 눈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라는 실개천같은 바램을 안고 살았었는데 정말 1월 눈이 내리는 날 엄마별에게 가셨다.

눈이 그토록 많이 내리는 날, 눈 위에 속세의 발자국을 남기며....

**********************************
산골에서는 나 모르게 피었다가 지는 꽃도 많다.
나 알게 피어도 워낙 꽃이름에 까막눈인 내가 이름 한 번 불러 줄 순 없지만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줄 수는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하얀 찔레꽃이 구석진 곳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작년 두릅밭 언덕에 찔레나무가 너무 많아 하도 팔과 다리를 찌르기에 '쓸모 없는 건 지천이고 정작 요긴한 것은 드물고....'라며 서툰 낫솜씨로 구박했던 일이 미안스럽다.

세상 어디에도 쓸모 없는 것은 없는 것을.......
어찌나 하얀 다섯 손가락이 여리고 예쁘던지. 향기 또한 진하지도 않은 것이 제 몸의 가시를 감추고도 남음이 있다.
난 내 몸에 고슴도치처럼 돋은 가시를 무엇으로 가릴 것인가.

2001년 오월 26일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가


 
 
        

 

산골편지5 --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는가??
+   [산골편지]   |  2008. 8. 13. 20:4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진 장날이다.
성당에 선우교육이 있어서 6월까지는 매주 토요일에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

차로 50분 되는 거리를 꼬불 꼬불 불영계곡을 따라 몸도 같이 휘두르고 간다.
성당에 도착하면 어찌나 어지러운지 주현이는 그만 토할 때가 종종 있다.

아이를 성당 교리실에 보내고 나머지 식구들은 장보러 나섰다.
토마토,방울토마토,가지,오이,수박,참외,고구마 모종을 샀다.

과일에도 워낙 종약,제초제를 많이 치는터라 아이들 간식거리를 넉넉히 준비한 셈이다. 몇 낱 열릴지 몰라도....

아이들위해 이것 저것 고르는 무늬만 농부인 그이의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내일은 아이들과 먹을거리 심는다고 부산을 떨 박씨 일가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

귀농을 허락하자 그이는 사표수리도 되지 않은채 차 먼저 처분했다.
지금 차는 농촌에서 너무 사치스럽다고.

그래 구입한 것이 포터 더블캡이다.
앞에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트럭.

그 트럭을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것을 보고 그만 혼자 울었다.
처음 그 트럭을 타고 나가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둘바를 몰라 하는데 아이들은 좋단다.
뒤에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나.

처음 그 트럭을 타고 광화문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에 원고갖다 주러 가는데 내내 우울했었다.

옆에 탄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창 밖을 보니 다 나만 쳐다보는 것같고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이 표정은 나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듯했다.

그리고 귀농!!!

귀농 후에는 처음보다 조금 덤덤해지긴 했지만 솔직히 아무렇지 않은듯하지는 않았다.

손도 그을릴대로 그을리고 나물캐고 고추심느라 갈라지고 터져 시장이나 성당에서 무엇을 집으려다가 내 손에 내가 놀라 움츠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내 산골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산골차림에는 그 터진 손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우리는 흔히 나 위해서 산다고 한다.
그리 강조하는 걸보면 남위해 사는 부분 또한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어떨까'하는 마음에 집착하다보면 우선 주체성을 잃게 되고 겉치레에 치중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내가 얼마만큼 주인으로서 자리잡고 있느 하는 것이다.

내가 중고트럭을 타고도 행복하면 그만이고 다 갈라진 손으로 다녀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았는데 이제는 일치되어가고 있다.

도시에서 좋은 차타고 좋은 옷입고 다니면서 제일 행복해했는가.
불평도 없고 자식,남편에게 만족하며 살았는가 반문해 보고 싶다.
몸뚱아리의 주인인 마음이 평화로운가가 문제라고 본다.

우리 산골에 심심잖게 손님이 찾아온다.
가족이나 부부가 올 때가 많은데 대부분 남자는 이 생활을 동경하는 눈치인데 부인은 거침없이 "이런데서 살으라면 난 못살아요"한다.

이곳이 사람살 데가 아닌가? 듣고 나면 이내 마음이 언잖다.
그럴 때 묻고 싶다.

"그대는 도시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인가?"

난 말이다.
우리 하늘마음농장에 오는 다른 이들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이곳에 돈을 벌기 위해 오지 않았다.

돈은 도시에서 버는 편이 훨씬 고상하고 빠르다.

그러나 나만이 평화롭기 보다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평화를 맛보기를 바란다.
도시에서 찌든 때를 벗어버리고 싶을 때 조용히 마음을 감싸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저 바람처럼 왔다가 세속의 모든 가슴앓이를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빈 자리를 마련해 놓고 싶다.

지금 이 순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달라이라마는 말했다.

"진정한 자비심은 물질을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라고............

*******************************
비가 안온다고들 야단이다.
아닌게 아니라 마늘들도 삐죽 삐죽 고슴도치 가시처럼 쑥쑥 돋아나더니 얼굴이 노래가지고 땅만 쳐다보고 있다.

길가에 뿌려둔 조그만 꽃씨들도 꼭꼭 숨어 어디에 있는지 찾지도 못하고 있다.
하늘을 본다.

별들이 소풍나온듯 여기 저기서 보물찾기를 하고 있다. 내일도 나의 이웃에게 물주기는 틀린듯하다.

내일은 하다못해 물을 길어다가라도 먹여야겠다. 마늘,채송화,목화,홍화,매실나무에게....................


2001년 오월 13일에
개구리소리 요란한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4 --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   [산골편지]   |  2008. 8. 12. 02:2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법정스님께서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은 그래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기껏 아는 게 뻐꾹새 소리밖에 없느냐"고 핀잔을 주시며 일일이 새이름을 구별해 가르쳐 주셨다듯이 나 역시 새소리는 뜸부기,까치,까마귀 소리밖에 모른다.

또 설령 열심히 알려줘도 그 소리가 그 소리같고 그 모습이 그 모습같아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뿐인가.
나물이름,들꽃이름도 매한가지다.

특히 나물은 더 까막눈이라 왼손에 샘플을 들고 다니면서도 똑같은 것 뜯기가 여간 능력에 부치는 것이 아니다.

이웃 형님의 놀림도 놀림이지만 이곳 산골에서 뿌리내릴 사람이다보니 내 자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오늘은 샘플로 뜯어 준 것이 시들어 꼬부라지도록 똑같은 것을 못뜯었다.
나물과 새와 들꽃들과 정말 친해지고 싶은데 잘 안되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

부모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공부는 엄마주려고 하니? 너 위해서 하지."

내가 한국생산성본부 첫 여자 연구원으로 입사했을 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난 사실 학교다닐 때 정말이지 엄마위해 공부할 때가 많았어. 그 정도로 엄만 내게 헌신적이셨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여느 엄마가 자식에게 헌신적이지 않을까마는 얼굴이 안개꽃처럼 하얀 내 엄마는 당신은 없고 오직 자식만 있었다.

어쩌다 한 겨울 새벽에 도서실가는 것이 귀찮아 포기하려다가도 내 에미 새벽부터 도시락 싸놓고 자식 머리맡에서 시계 초세고 계시는 모습이 가슴저려 졸면서 도서실갈 때가 부지기수였다.

또 개인주택에 산 탓에 한 겨울 자식이 신을 신발을 미리 방안에 갖다놓으시고는 혹여 덜 따뜻할세라 당신 옷으로 덮어두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도서실에서 잠시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곤했었다.

그 덕에 이 머리로 대학.대학원을 수석졸업할 수 있었다.
엄마는 늘 "여자도 많이 배워 활동적인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유학도 자신있으면 해보라고 부추겨서 아버지에게 시집이나 보내지 쓸데없는 소리한다며 핀잔을 들으시기도 했다.

결국 일본유학을 계획하고 사전답사도 다녀왔었다.

그러던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느라 유학을 덮어놓고 있었다.
몇 달 전에 풍을 맞으신 엄마를 보기 위해 서울에 갔었다.

시원찮은 발을 끌며
"막내야, 그 때 유학을 더 서둘러 보냈더라면 벌써 다녀왔을텐데...."하셨다.
산골에 들어가 뙤앝볕에 고추밭매고 나물뜯는 막내딸이 가슴에 저려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며 눈에서 맑은 물을 흠치셨다.

그 때 내 가슴은 두릅나무 가시보다도 더 큰 가시가 파고드는 것같았다.

그 때 보았다.
우리 고추밭골보다도 더 깊이 깊이 패인 엄마의 주름을...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충청도의 어느 종가집 맏며느리셨다.
머슴까지 13명의 뒷치닥거리를 다 해야 하는 전형적인 종가집.

이러다가 딸 다섯을 다 시골남자와 결혼시키겠다 싶어 밤마다 아버지 옆구리찔러 서울가자 하셨었단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시던 아버지도 결국 엄마의 끈질긴 설득끝에 아이들을 서울에서 공부시켜 서울남자와 결혼시키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때 난 코흘리개였고.

그랬더니 결국 막내딸이 다시산골로 들어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 에미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어느새 목구멍이,목구멍이 불덩이로 막히는 것같다.

병든 엄마가 보고싶을 때마다 읽는 글이 있다.
피천득님의 '엄마'라는 글이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자지 못한 때문이다."

이 글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많이 울었다.
이 밤에 혼자 중얼거려본다.

'엄마 나도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영광이야. 사람은 어느 하늘 아래에 머리를 두고 살든 착하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한거야. 엄마, 너무 마음아파 하지마.'

******************************
오늘은 과꽃같은 우리 엄마가 보고싶을 때 보려고 과꽃씨를 뿌렸다. 가뭄에 말라죽지 않고 흐드러지게 피어 이 산골이 엄마의 향기로 가득찼으면 좋겠다싶어......

도시에 있을 때에도 글을 썼었다. 책으로 내서 울 엄마에게 드리려고..... 이 곳 산골에 와서 더 열심히 쓰고 있다.

오늘따라 하늘에 별도 몇낱없다. 모두 지에미 품에 들어가 자는가보다. 바람도 자고 텃밭의 마늘들도 자겠지.
나도 자기 전에 병든 엄마에게 목소리 공양을 해야겠다.


2001.5.13일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싶던 날에.

산골에서 배 소피아.


 
 
        
<<이전 | 1 | ··· | 10 | 11 | 12 | 13 | 14 | 다음>>

하늘마음농장'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