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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편지 _해당되는 글 132건
2008.12.11   귀농음식 -- 노릇노릇 단호박전 
2008.12.11   귀농 아낙의 글 --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 
2008.12.08   산골편지 -- 귀농 후 산골 서재에 대한 욕심 
2008.12.06   산골편지 -- 무엇이 남고 무엇이 스쳐지나가는지를.... 
2008.11.30   산골편지-- 내 귀농의 삶도 절절하기를.... 
2008.11.23   산골편지 -- 이젠 손대지 않으마... 
2008.11.16   산골편지-- 깊은 산중에서도 외롭지 않은 이유 
2008.11.09   산골편지 -- 살아 생전에 못만날 '인연' 
2008.10.27   산골편지 --팔 수도 없는 표고버섯 1
2008.10.13   산골편지14 -- 범접할 수 없는 향기 

 

귀농음식 -- 노릇노릇 단호박전
+   [산골편지]   |  2008. 12. 1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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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의 이 원무 베다 신부님께서 그곳 분들과 직접 농사지으신 단호박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이젠 논산에서까지 먹거리를 찬조받는다.

사실 논산에서 찬조받는 것이 먹거리뿐이 아니다.
많은 것을 찬조받고 있다.

단호박을 자르니 아주 잘 속이 찼다.
우선 제일 겉껍질을 칼로 얇게 깎았다.
아주 얇게...

그리고 사진처럼 잘라 튀기려고 하다가 그냥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전처럼 부쳤다.
계란 옷을 입혀서...소금간 하고...

조금 얇은 느낌이다.
조금 도톰하게 해서 다음에는 튀김을 하려고 한다.
언제가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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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손님이 오신다고 하는데 재료가 변변치 않다.
단호박을 채썰어 부침이를 하려고 한다.

날이 비가 왔다 , 햇살이 따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사람 가을에 단련시키는중인가 보다.
하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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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귀농 아낙의 글 --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
+   [산골편지]   |  2008. 12. 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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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30일

울진 장날은 5일장으로 2일과 7일이다.
장날은 구경꺼리가 많아 좋다.
바쁜 걸음 멈추고 작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라 바쁘다.

옛날의 장날 풍경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런 풍경을 도시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그러나 그 순수하고 건강한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없다.
엊그제도 우연히 일보러 갔는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헌옷을 수선하는 집에 들려 옷을 맡기고 나오며 용기내어 카메라를 꺼냈는데 등골에 땀이 흐른다.
결국 작은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말았다.

내가 진정 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은 명품 옷을 걸치고 명품 핸드백과 온갖 액세서리를 주렁주렁하고 화장을 겹겹이한 모델이 아니다.
작은 헝겊 자루에 깜장콩, 조, 보리를 담아 놓고, 도라지 한 종지, 부추 한 단 등을 당신 앞에 놓고 그냥 무작정 앉아 계시는 할머니 모습이었끼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다.

그 모습이 하도 신선해서...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삭막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나를 비추어 보고, 부모를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미치니 아쉬움은 남는다.
다음 장날까지 카메라를 꺼낼 용기가 생길 것같진 않다.
*****************************************************

우리 집은 독가촌이다.
그러니까 한 골에 한 집이 있는 것을 이곳에서는 독가촌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옆집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고,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할아버지댁은 300~400미터 정도 거리에 있다.

그것도 멀리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집이 산자락 움푹 패인 곳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신다.
성격이 강직하시고 남에게 폐끼치는 것을 싫어하시는 그런 분이다.

하루는 할아버지댁의 잔디꽃이 참 이쁘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느 비오는 날 아침에 잔디꽃을 비닐 포대에 담아오셔서는 본보기로 몇 개 심어놓으시고 두고 가셨다.
새벽잠이 없으시다보니 새벽에 오셔서 우리가 깰까봐 그렇게 조심조심 해놓으시고 가셨을 때의 그 마음이란.................

그렇게 심은 잔디꽃이 해가 바뀌자 핑크빛으로 산골을 밝혀줄 무렵 할아버지는 올 여름에도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저 아래 다리결 있는 데서부터 양쪽 길가로 쭉 올라오며 심어주시고 가셨다.
그것은 더 몰랐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보니 촘촘히 그 더운 날 오셔서 슬며시 심어주시고 가셨다.

산골은 걸어서 다니기보다는 주로 이웃도 멀리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다니다보니 그 잔디꽃이 그렇게 심겨져 있는줄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얼마나 마음이 따사롭던지...

그리고 내가 무슨 꽃이 이쁘다고 했었는지 그것을 기억하셨다가 가을에 꽃둥지까지 베어다가 주셨다.
더 말렸다가 내년 봄에 줄줄이 꽃밭을 끌고 다니면 꽃씨가 떨어질 거라는 방법까지 세세히 알려주셨단다. 초보농사꾼 박반장에게...

초보농사꾼이 반장으로 있는 새밭 어르신들은 죄다 그렇게 따뜻한 분들이다.
우리 홈에 자주 등장하시는 꾀골재 할머니도, 감이랑 김치랑, 손수 만드신 두부를 박반장이 좋아한다고 늘 가져다 주시는 다른 할아버님도 연고도 없는 이곳 울진에서는 친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다정한 분들이시다.

말이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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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꽃둥지를 나 또한 다른 농작물 이상으로 애정을 갖고 말렸다.
지금 잘 말라 저나 나나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할아버지 댁에 안좋은 일이 있으시다며 초보농사꾼이 입을 뗀다.
이제 막 40 넘은 사위가 직장에서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그만 별나라로 갔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오늘 그냥 집에서 계신다고...

가까운 이웃으로서 아무 말씀도 못드리고 있다.
그냥 뭐라고 세 치 혀로 위로 말씀드릴 수 없어서다.

나중에 조금 시간이 흐르면 반 어른들 모시고 저녁이나 준비해야겠다.
근데 겨울에도 야콘 가공을 쪼금 하다보니 이거 가을걷이 때만큼이나 일이 많고 바쁘다.

달과 별이 유독 반짝이는 밤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산골편지 -- 귀농 후 산골 서재에 대한 욕심
+   [산골편지]   |  2008. 12. 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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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지식인의 서재'라는 코너를 보았다.
거이에는

사진작가 -- 배병우의 서재
클래식 음악가 -- 장 한나의 서재
대중음악가 -- 이적의 서재
건축가-- 승효상의 서재
영화감독 -- 박찬욱의 서재가 소개되었다.

서재, 책하면 이 산골아줌마 정신이 확 드는데 그 코너에 나와 있는 서재를 동영상과 함께 보니 거의 침이 나온다.

사실 난 책욕심이 많다.
책욕심많은 사람이 당연히 따라오는 욕심은 서재 욕심일 것이다.

맞다.
나 역시 책욕심 , 서재욕심하면 남다르지 않을 것이다.

귀농하고 오두막에 살 때 책을 쌓아둘 곳이 없어서 아이들이 그렇게 남주지 말고 , 버리지 말고 간직하라고 했던 책들을 그렇게 해서 산골을 떠나보냈다.
그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 후회가 된다.

그래서 작년에 집지을 때 딱 하나 초보농사꾼에게 말했다.
책장은 거실에서 가장 많은 신경을 쓰겠다.
책장은 높게, 크게 짜넣을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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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른 구조나 설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초보농사꾼이 유럽에 갔었을 때부터 짓고 싶어하는 스타일이 있었고, 초보농사꾼이 집짓는데에 참으로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에 내가 굳이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도 없었다.
초보농사꾼은 성격에 맞지 않게 집짓는 일에 참으로 공을 들여 구상하고 설계를 수정하고를 반복했었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책장을 거실에 짜넣었지만 좀더 높에 할 것을 하고 후회하고 있다.
그런데 서재가 없어 늘 아쉬움이 있었다.
산골 집은 방이 세 개,
주현, 선우 방, 우리방 , 다락방...

다락방에 하면 좋은데 다락방은 앞이 트여져 있어서 거실에서의 소리가 다 들린다.
아무도 없는 시간은 더없이 좋지만,,

그래서 늘 서재... 를 꿈꾸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다 보니 더더욱...

또 이 동영상을 보니 서재 욕심이 일어나 두근두근거리기까지 한다.
책도 사고 싶은 것이 많고...

애들 시험이 끝나면 책도 더 사고, 방학하면 서울 광화문 교보에 함계 가서 책과 놀다 오려고 한다.
산골일이 나를 도와 줄려는지...

사람이 무엇에 자극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 자극은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꿈꾸게 만든다.
사람에게 자극받는 것도 더없이 좋지만 이런 것을 통해 자극받은 날은 큰 체험을 한 것처럼 기쁘다.

오늘 밤 자긴 다 틀렸다.
머리는 지금 산골집의 서재를 떠올리며 조명, 책꽂이 소재, 책상, 의자, 커텐까지 떠올리며 침까지 흘리고 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산골편지 -- 무엇이 남고 무엇이 스쳐지나가는지를....
+   [산골편지]   |  2008. 12. 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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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호미다. 한 해 동안 내 손과 하나가 되어 주었던 도반이라 수고했다는 마음에 금장 액자에 넣어주었다.)

2008년 11월 22일

오늘은 산골아이들이 아빠를 도와 준다고 하는 날이다.(전혀 협박이 없었음.전혀...^^)
그래도 오늘은 가벼운 일이라며 작업복을 갈아입고 , 장화를 끼고 알아서 밭으로 출근을 한다.

오늘 미션은 비닐 수거 작업이란다.
산골아가들이 나서는 뒤통수에다 대고 엄마도 곧 가마 하는 말을 날렸다.
물론 그 말을 휘날릴 때만 해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초보농사꾼과 밭으로 향하고 나서 뒤쫓아 오르려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눈뒤집어질 지경이다.
이 추운 날, 냉이와 달래가 싱싱한 표정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면 섭하지....
같이 대지에 몸붙이고 사는 처지에 말이다.

그래서 밭으로 가려던 계획을 묵살하고 호미를 찾으러 내려왔다.
호미를 들고 냉이를 캐는데 제법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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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땅을 뚫고 나온 봄의 그것만은 못하지만 이 추운 날, 흙으로 스러지기 전에  인간에게 한번 더!!를 외치며 호객행위를 하는 냉이와 달래를 그냥 흰눈 아래 방치한다면 도리가 아니지...

달래 역시 딸려 나오는 자식들이 싱싱하다.
그렇게 달래와 냉이에 눈이 팔려 온 밭을 누비고 다니다 호수밭을 올려다 보니 두 아가들이 초보농사꾼의 세레스에 비닐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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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엄마는 왜 안와??”하는 소리를 지르며...

“이 눔들아, 지금 그 보다 더 중한 일을 하고 있으니 니들끼리 잘 하렴...”

치사하다, 약속이 틀리다, 아빠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 이건 법정감이다,,,어디서 주워 읽은 것은 많아서...

그러거나 말거나...
귀농하고 는 것은 배짱뿐...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기존 호미 반만한 앙증맞은 호미를 들고 냉이와 달래랑 한참을 놀았다.
나중에 보니 수확물이 제법 되었다.
오늘 저녁 반찬은 진수성찬이다.
냉이를 데쳐 무치고, 달래로 양념간장을 만들어 슥슥 비벼 먹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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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다른 반찬이 뭐가 필요한지...

자연에서 얻는다는 것...
그 무궁무진한 세계를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알고 있는지,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얼마 전에 ‘부처의 지혜’라는 책에서 읽은 대목이 생각난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라.
그리고 곁을 스쳐 지나는 모든 것을 보라.
눈에 보이는 산과 강,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모든 형태의 생명과 자연의 창조물을 보라.
그러면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스쳐 지나가는지를.................“


그것들을 잘 들여다 보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이 남고, 우리 눈에서 무엇이 스쳐 지나가는지를 알 것이다.

그나저나 입에 십 리 밖으로 나와서 밭에서 내려온 산골아가들을 생각해서 지금부터 참기름 냄새 풍기며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멋지게 저녁상에 올려 놓아야겠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산골편지-- 내 귀농의 삶도 절절하기를....
+   [산골편지]   |  2008. 11. 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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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3일

<font color="#7B2183">사람이 어떤 계기가 있으면 더 삶의 바퀴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야기 듣는 등 간접 경험에 의해 내 삶이 비춰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 자주 듣는 노래가 있다.
Tom Jones의 "I who have nothing"과 “Delilah"라는 곡이다.
예전에는 가사에 심취하여 고개를 있는대로 흔들며 듣곤 했던 곡이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지금은 그 가수의 그 절절한 가창력에 매혹되어 듣고 또 듣는다.
다른 가수들이 부르기도 했지만 이 가수 어림없다.

삶도 그러리라.
주어진 삶이라고 누구든 절절하게, 곱씹으며 살지 않으리라.

산중에서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가을걷이 때 자주 눈이 마주친 다람쥐도 잠들고, 유독 뒷산에서 캥캥거리던 노루도 잠든 시간에 그 노래를 들으면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감싼다.

아마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것을 표현하자면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감도는 느낌이다.
어금니깨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은 달콤함에 젖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의욕으로 충만하다.
그것은 내 삶의 의지와 그 가수의 노래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지 싶다.

산골로 온지 9년차,,,
귀농밥을 먹을수록 삶이 더 절절하길 원한다.
누구는 그러고 싶지 않을까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고 싶고, 하루하루가 값지길 바라고 또 바라는 삶이다 보니 이 노래들을 들으면 그 각오가 더 절절해진다.
오늘도 이 노래를 틀어놓고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찬 삶이길...
내일은 오늘보다 더 절절한 삶이길....</font>

*********************************************

어제에 이어 새점밭의 야콘을 캐는 날이다.
오전에는 답운재밭에 조금 남은 야콘을 캤다.
부랴부랴 근처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야콘박스를 주문해 두었는데 포항에서 지금 납품 온다고...
점심 빨리 먹고 새점밭에 남은 야콘을 종일 캐야 마무리 될 것같은데 ...
점심을 먹고 새점밭에 나만 남겨두고 초보농사꾼은 박스를 받으러 다시 집으로 향했다.

예전같았으면 일도 아닌 정도의 분량이나 지금 허리 상태로 보아 조금 무리다.
일단 초보농사꾼도 무릎이 아픈데 그가 돌아오기 전에 뽑는 것은 죄다 뽑아는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욕심은 많아서 허리 한번 안펴고 죽으라 뽑았다.

한 골 한 골 뽑아가는데 땀이 났다.
난 체질상 왠만해서는 땀이 안난다.
땀을 많이 흘리는 초보농사꾼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에 비해 초보농사꾼은 보통 사람 이상으로 땀을 흘리니 난 그 모습을 보는 것으로 땀이라는 것을 간접 체득한다.
그런데 오늘은 몸이 얼마나 달았는지 땀이 막 흐른다.

계절로 보아 아주 추운 시절이다. 이곳 산중에서는...
그렇게 껴입은 옷 속으로 땀은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야콘을 뽑는데 노란 박스가 보인다.
그 박스는 야콘을 담으려고 어제 그냥 두고 간 것인데 그 중 한 박스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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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는 대부분 내려 놓을 때 똑바로 군데군데 놓지 저렇게 얌전히 엎어 놓지는 않는다.
물론 그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짚이는 데가 있었다.

야콘을 캐다가 보니 빈 자루가 착착 접혀져 있고 그 위에 날아가지 말라고 돌로 꼭 눌러 놓은 것이 있었다.
누굴까...

생각해 보니 분명 어제 새점 할매 모습이 생각났다.
다른 집에 일하다 오시는 할매께 야콘을 자루에 넣어 드렸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며 초보농사꾼이 차에서 내려 자루를 마루에까지 놓아드렸다.

할매는 자루를 그렇게까지 들어다 준 것이 너무 너무 고마우시다는 말씀을 계속 하시며 우유 끓여 먹고 가라고 자꾸 붙드셨었다.
주현이도 있어서 그냥 가야 한다고 하니 자꾸 우유 끓여 먹고 가라고....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우유는 소중하셨을 것이고 겨울이니 따끈하게 끓여 주고 싶으셨던 거다.
그런데 어제도 빨리 어둡기 전에 가서 야콘을 내리고 혼자 있는 주현이 때문에 가야 했다.

‘그래, 할머니가 오늘도 다른 집 일가신다고 우리 밭을 지나가시며 빈 자루를 이렇게 돌려주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니 저 바구니도 이유가 있어서 엎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콘을 캐다 말고 박스를 뒤집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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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비닐이 들어 있다.
비닐을 풀어보니 하얀 비닐 속에 노란 감이 들어 앉아 있다.

어제 야콘을 줬다며, 그리고 그 야콘 자루를 마루까지 들어다 주었다며 그렇게 고마워 하시더니 할매로서는 최선의 보답을 하신 거다.
나 역시 그 어떤 선물보다 귀했다.

야콘을 정신없이 캐다 말고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감 하나를 들어 옷에 슥슥 문질러 먹었다.
달고 부드러운 감....
분명 할매는 일가셨다가 돌아오시며 우리 밭에 오실 것이다.
이쁜 스웨터를 입으시고 우리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막 걸어오실 것이다.

그렇게 감 하나 먹고는 야콘을 정신 없이 캤다.
초보농사꾼은 아픈 다리로 그 많은 박스를 나르고 있을 것이다.
야콘밭에 혼자 두고 온 나 때문에 더 땀이 나도록 아픈 다리도 잊고 일을 하겠지 생각하니 허리 펼 시간이 없었다.

다른 밭도 아니고 새점밭은 불영계곡을 가로질러 가는 밭이고 거기에는 아는 사람도 근처에 집도 없으니 그도 몸이 달았을 것이다.

부부란 세 치 혀로 나불거리지 않아도 알아주는 마음이 있는 관계...
그 마음도 이러려니 하고 미루어 헤아리는 마음이 있는 관계가 아닐런지...

할매 덕분에 잠시의 귀한 참을 먹었으니 나도 기쁘게 일을 해야 했다.
또 내 삶이니 절절이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힘듬도 잊을 수 있고, 오히려 더 힘이 난다.

한참을 야콘을 캐는데 초보농사꾼이 왔다.
생각보다 많이 캐놓았다며 두 골 남은 야콘을 캤고 그때부터 난 캐는 것을 놓고 야콘을 따고, 선별하여 박스에 담았다.

초보농사꾼에게 할매가 이렇게 감을 두고 가셨다며 그에게 하나 닦아 주었더니 씩 웃으며 먹는다.
그 웃음은 아마도 상대방의 따사로운 마음을 알겠다는 특수문자일 것이다.

날이 어둡기 전에 서둘러 다 1차 선별을 하고 박스에 담고 해야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추위가 갑자기 몰려온다.
땀을 흘린 터라 조심하지 않으면 감기 몸살을 앓아야 한다.

서둘렀다.
이제 거의 다 담고 상품이 안되는 야콘을 자루에 담으려는데 저 멀리에 누군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닥아오고 있다.

“할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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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는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부리나케 우리 밭으로 진입하고 계시다.
하나라도 도와주려는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계신 거다.
그것을 난 안다.

야콘을 박스에 담다말고 소리를 질렀다.

“할매, 지금 일 끝나셨어??”

“그려, 아직도 일이 남았지?”

빈 자루며, 감이며 다 할매가 두고 가셨냐고 당연한 이야기를 물었다.
고개만 끄덕이시고는 정신없이 일을 도와주신다.
할매의 고운 스웨터가 더 곱게 눈에 들어온다.

일을 다 하고 우린 셋은 낡은 세레스에 몸을 실었다.
강을 건너 할매를 내려드리고 우린 다시 산중으로 돌아가야 한다.

할매가 차 안에서 씩 웃으시며
“감 사가”
하신다.

감을 따신 모양이다.
볼품도 없는 감이다 보니 마땅히 팔 곳이 없으셨을 것이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거다.
아는 분들이 감을 많이 주셨다.
선물로도 받았지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바구니씩 주셨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 주기에는 너무 물러 그럴수도 없으니 천상 우리가 다 먹어야 한다.
그러나 할매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 아름 사왔다.

불영계곡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둠 속에 단풍이 뭐라 뭐라 속삭인다.
아마도 곧 추위가 닥쳐 오니 어여 가을걷이며 밭정리를 서둘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니들 마음 내가 알고, 내 마음 니들이 아는 산중이니 다 알아들을 수 있지. 고맙구나.’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산골편지 -- 이젠 손대지 않으마...
+   [산골편지]   |  2008. 11. 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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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1일


이것은 두어 달 전에 써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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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고,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라고 했듯이 아침에 눈을 뜨면 성호 먼저 긋습니다.
절로 절로 그리됩니다.

이런 아름다운 아침을 그것도 사지 멀쩡하게 맞이 할 수 있게 해 주신 신께 감사기도가 절로 납니다.
그리고 검정 고무신을 꾀차고 들로 나섰습니다.
야콘을 심은 호수밭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 때문에 단숨에는 힘듭니다.

마음이 거북할 때처럼 숨도 가쁩니다.
그런데 길바닥에 금방 나무에서 떨어진듯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 알밤이 하나 떨어져 있습니다.

‘어?? 가차운 곳엔 밤나무도 없는데...’

그것을 주워 낼름 한 입 깨물었더니 우윳빛 속살이 어찌나 미어터지게 들어 있던지요.
오물오물 넘기며 생각해 보니 다람쥐가 가을걷이 해가다 히에 부쳐 떨어뜨린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생각이 그에 미치자 아무 생각없이 홀랑 먹어치운 것이 미안스러워졌습니다.
분명 그에게도 식솔이 있을텐데...
겨우내 그 식솔들 목에 거미줄치게 하지 않으려고 그리 바삐 가을걷이하려던 것을...

자기 자식들에게 주려고 가장 좋은 것을 구하느라 발품도 많이 팔았을텐데...
이것을 다시 찾으러 올지도 모를 일인데...

야콘밭으로 올라가던 걸음을 돌려 두릅산 아래 밤나무로 갔습니다.
그 나무 아래를 아무리 눈씻고 봐도 아까처럼 반지르하고 튼실한 놈은 없습니다.
가시를 찔려가며 뒤집어 봐도...

겨우 하나 찾아냈지만 아깟 것 어림반푼어치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주워다 아까 남의 것을 훔쳐(?) 먹은 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한참만에 야콘밭에서 내려오며 그 자리를 살폈습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손대지 않으마' 다짐다짐합니다.

가장으로서 제일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이 인간보다 깊은데 이 부실한 것을 가져갈 리가 없겠지요.
밤 한 톨이 마음 무겁게 하는 날입니다.
---------------------------

그리고 한동안 날짜가 흐르고 산골의 늙은 대추나무 아래서 대추를 주웠습니다.
그리고 태양 아래 얼굴이 쪼글거릴 때까지 말렸습니다.
나 역시 겨우내 식솔들에게 줄 겨울 양식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누군가 먹다 두고 간 것도 있고 흐트러지기도 한 것입니다.
누굴까...
서씨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통창으로 보니 다람쥐가 내 양식에 손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완전자동으로 나가려던 작동을 멈추었습니다.
나도 네 양식을 덥석해놓고 내 것은 이렇게 앙칼지게 지키려는 내 모습이 우스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자연에서 났으니 너나 나나 서로 나누어 먹고 겨울을 잘 나면 될 일입니다.
내 것, 니 것이 없다는 거지요.
너도 먹고, 나도 먹고...
서로서로 나누어 먹으면 될 일이지요.

요즘 다람쥐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된서리 오고는 집 안에서 겨울을 날 모양입니다.
이제 흉내내어 열심히 가을걷이할 도반도 안보이니 그를 생각하며 열심히 가을걷이를 끝내야겠습니다.

이제 가을이 집니다.
마지막 은행잎 떨어지는 소리가 쿵하고 가슴을 칩니다.
이제 한 해를 마감해야 하는 시기라는 경고음같습니다.

아직도 그 울림이 남아 가슴에 잔물결을 일으킵니다.

올해는 한 해를 마감하기 전에 한 해 동안 수고한 나에게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이 때만큼은 ...

평소에는 닦달하고, 지청구를 하고, 바보라고 손가락질했던 나에게 이때만큼은 따사로운 말 한 마디를 해주고 싶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산골편지-- 깊은 산중에서도 외롭지 않은 이유
+   [산골편지]   |  2008. 11. 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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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2일

<font color="#0E73A2">불영계곡의 단풍이 자리저지더니 이제는 조금씩 눈에 띄게 혈색이 안좋아졌다.
얼마 전부터 된서리가 몇 차례 오더니 그럴 때마다 그들의 화려함도 조금씩 을먹어 그 색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거다.

사람도 된서리 한번 맞고 나면 앓고 일어나 사람처럼 몰골이 형편없어지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자연의 이피를 닮아가는 인생사...

붉다 못해 검게 보이던 단풍나무...
그 머리 꼭대기부터 서리를 맞았음인지 그곳은 드라이 플라워처럼 건조하고 그 희생양 아래의 잎새들은 건재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숲에 귀를 기울였다.
숲이 아주 요란하다.

마른 잎 떨어지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맑은 것으로 보아 그 건조함이 절정에 이르는 모양이다.
그 소리가 어찌나 맑던지 내 영혼도 말라 부서질 것만 같다.
혼자 숲길을 걸으면 그렇게 이방인에게 숲은 말을 걸어온다.

낯가림도 없고 사람 차별도 없고 타향에서 온 사람이라도 경계하는 눈빛도 없다.
사람이 자연의 1%만 닮는다면 천국이 따로 있겠는지...

제 발 아래로 아래로 잎을 떨구어 발등을 단단히 덮으니까 겨울에 그 많은 눈이 온몸을 짓눌러도 동상걸리지 않는 모양이다.
낙옆이 제 발등을 다 덮고 나면 나무는 맨 몸으로 겨울을 날 것이고, 나 또한 그 곂 산중에서 나무를 흉내내며 겨울을 날 것이다.</font>

*************************************

산골에 낯선 사람이든 지인이든 오면 꼭 묻는 말 중에 하나가 이 깊은 산중에서 외롭지 않느냐는 거다.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친구는 귀농하고 어느 교육에서 만났다.
어찌나 착하고 맑던지,,, 또 말끝에 흘리는 충청도 사투리는 그를 내 마음에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우연인지 나와 동갑이었기에 갑장이라는 칭호로 서천과 울진에 멀고 먼 거리를 두고 살아도 우린 늘 마음에 서로를 담고 살았다.

김사업을 크게 하는 친구라서 늘 산골에서 반찬없을 때 먹으라고 김떨어질까봐 앞서서 김을 보내주곤 했다.
나 역시 농산물이 나오면 갑장에게 보내주곤 했다.
멀쩡한 것을 보내주면 굼벵이 먹고, 부러진 것을 보내지 않고 멀쩡한 것을 보냈다고 싫은 소리를 하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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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린 소꼽친구 이상으로 우정을 쌓아갔다.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김을 넉넉히 보낼테니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도 나누어 주고 산골가족들도 손님들과 먹으라고...
나 바쁜데 전화 붙들고 있으면 안된다고 용건만 말하고 끊는다.

전화를 해도 밤에 하는 친구다.
낮에 일하느라 바쁘다고...

택배를 찾아와 보니 박스가 엄청 컸다.
이 바쁜 성수기에 나에게 이렇게 신경쓰려면 .. 난 다 안다. 바쁜 손이 이런 일을 하려면 얼마나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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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그러나 갑장이랑 나랑은 그렇지가 않다.
늘 내 눈 안에 있는듯 함께 있다. 만난지 몇 년 되었어도...

갑장아,,,

잘 받았어.
늘 산골에 마음 써주고 고마워.
자기가 바라는대로 독거 노인분들에게 전할께...

우린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지.
갑장은 겨울이 성수기이고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가 바쁘고 말이야.
그러니 서로 얼굴보기 힘들지만  우리 새해에는 얼굴 한번 보자.
얼굴 본지 몇 년일까...

갑장아,
감기조심하고 바쁜 사업이지만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리고 보고싶다.

***************************************

지난 주에 성당에 갔을 때, 미사가 끝나고 마당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황루시아가 손을 잡아 끈다.
황루시아는 우리 홈에 오는 채영 공주의 엄마이다.
그 남편이 내가 귀농하고 얼마 안되어 정말 똥오줌 못가리고 힘들게 농사일을 시작할 때 바람처럼 연락도 없이 요셉 형님과 나타나 힘들게 하루 종일 농사 일을 도와주고 말없이 돌아간 사람이다.

그때의 그 장면, 그때의 그 감동은 지금은 꽁치 젖갈처럼 진하고 깊게 맛이 남아 있다.
그런 루시아가 일찍부터 우리 홈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가면서도 부끄럽고, 쑥스러워 성당에서 봐도 그 말을 못하고 몇 년을 지낸 거다.

그러면서 고춧가루를 주문한다고 전화를 하면서 말을 해보니 그렇게 산골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였다.
얼마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그때부터 자매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오늘 내 손을 잡아 끈 것이다.

그가 이끄는대로 가보니 그의 차에서 큰 뭉치를 꺼내준다.
내가 싫은 소리할까봐 먼저 입을 연다.

"언니, 이거 죽변항에는 흐드러졌어. 정말이야. 아주 흔한 거야. 알았지?"

생선인 것같았다.
내 차에 싣고 집으로 와서 다듬으려고 비닐팩도 다섯 장 정도 미리 꺼내 놓고 싱크대에 있는 설거지도 다 끝내고 생선을 다듬으려고 비닐을 열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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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살아..."

"내가 못살아..."

연신 이 말을 싱크대에 달라 붙어 연방 해대니 거실에 있던 초보농사꾼이 왜그러냐며 달려온다.
말을 안하고 비닐을 까보였더니 말없이 돌아간다.
초보농사꾼은 왜 내가 그렇게 그 말만 되풀이 하는지를 다 안다.

황루시아는 직장맘이다.
아들이 초딩이고 채영이가 6살이다.
그러니 얼마나 바쁘겠는지...

집에 오면 화장지우고 자기도 바쁠텐데 어린 애들이랑 낮근무, 밤근무가 바뀌는 남편 뒷바라랑, 그 와중에 손빨래까지 하는 알뜰하고 야무진 엄마가 무슨 시간이 있다고 내 생선을 다 손질하여 한번 먹을 분량으로 팩에 넣어서 고등어랑 오징어를 보낸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한지..
난 생선을 다듬으려고 준비한 것들을 제자리에 집어 넣으며 생각했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하고 말이다.

얼마 전에도 쑥스럽게 성당 마당에서 가방을 건내주던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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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기 집에 왔을 때 들고 왔던 가방은 책이 안들어 가는 작은 가방이었다며 언니는 책을 넣고 다니니 이만한 것이 필요할 거라 그냥 샀다고...
안비싼 거라고...
내가 한소리 할까봐 먼저 막 말을 늘어놓는 이쁜 루시아...

루시아야!

몇날 며칠 야콘을 캐느라 반찬 없을 때 고등어랑 무 넣고 조림을 해먹었어.
그 반찬만 많이 먹었어.
등푸른 고등어를 보며 나도 누구에겐가 이런 푸르름을 준 적이 있는가를 돌아보았지...

부끄럽더라구.
나보다 어린 루시아가 내가 길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그래 함께 가자.
그래서 서로의 등불이 되어 주고 잣대가 되어 주면 좋겠지.
난 자신이 없지만 노력해보려구.
그러면서 나도 많이 크겠지...

기도 안에서 늘 함께 살자꾸나.
고마워.

******************************************************************

그렇게 루시아에게 생선을 받아서 달길님네에 들렸다.
들려서 가라는 전화를 받았기에...

달길님을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 우린 달길님네서  사과를 마시고 가려고 일어서니 그때서야 쫓아와서 우리차 트렁크에 커다란 무엇을 두 개나 실어준다.

그게 용건이었던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초보농사꾼에게 혹시 당신이 필요하다고 했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No다.

그럼 그렇지.
달길님은 그런 사람이다.
우리집 어디에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집 공사 중에 무엇을 덜했는데 비올 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공사한 것 중에 무엇의 뚜껑을 해닫아야 하는지를 초보농사꾼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고,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맨홀 뚜껑이란다.
두 개의 맨홀 뚜껑인데 속은 나무로 동그랗게 맨홀에 딱 들어맞게 파였고 겉은 썩지 말라고 스텐레스로 마감을 야무지게 한 것이다.
물론 기성품이 아니고 만든 것이다.

그것 두 개를 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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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E73A2"> 트렁크에 얌전히 앉아 있는 뚜껑...</font>


그것을 싣고 오는데 내 부러져 나간 손가락의 의수를 싣고 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손...
우리 몸의 어느 부분인들 불필요하고 덜 필요한 곳이 있을까마는 제일 많이 쓰는 손이 그리되었을 때 누가 딱 맞는 의수를 만들어 실어준 그런 기분 말이다.

이것 하나가 아니라서 그런다.
집의 기초 공사뿐만 아니고 장독대, 물공사, 창고 앞 하수 공사,,,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산골의 티도 안나는 공사를 그는 말없이, 따뜻한 손길로 다듬고, 만들어 주고를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정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준 사람이다.

산골에서 진종일 일하면서 기껏 말하는 것이 몇 마디 없다.
작은 소리로 초보농사꾼에게 형님,,,하면서 자근자근 말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

초보농사꾼이 집 앞의 맨홀에 뚜껑을 닫아 놓았다.
딱 들어 앉아 있는 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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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의 마음에 그렇게 딱 들어 앉은 적이 있는지...
어쩌다 조금만 무엇을 해도 생생내기 급급한 나는 아니었는지...(아니긴 뭘 아니겠는가.)
행동보다는 입이 앞서서 작동하여 일보다 말이 더 큰 역할을 한 적이 얼마인지...

달길님...

직장다니면서 일일이 산골에 신경을 써주셔서 늘 고마워요.
뚜껑을 싣고 오면서 참 많이 생각했네요.
비가 오면 산골의 어디 어디가 걱정이라며 전화하고, 눈이 많이 와도....

산골에 오셨을 때 초보농사꾼과 두런두런 공사를 상의하는 모습이 제일 따뜻했어요.
외아들이라 형제가 없는 초보농사꾼이라 그런지  나는 그 형님 소리가 참 좋더라구요.

산골은 추워요.
달길도 춥겠지요.
달길님 마음처럼 늘 따뜻하게 지내시고 가을 갈무리 잘 하시길 바래요.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산골에 낯선 사람이든 지인이든 오면 꼭 묻는 말 중에 하나가 이 깊은 산중에서 외롭지 않느냐는 거다.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내 입에서 대답이 왜그렇게 나오는지는 이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위에 열거한 일들 뿐이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모습과 마음과 색깔로 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은행나무를 심고 싶다는 말에 부산에서 울진으로 한밤중에 은행나무를 싣고 오신 분, 초보농사꾼 작업화와 아이들 영화 CD를 보내주는 분, 옷이랑 양말, 털신을 보내주시는 분, 내가 이쁜 편지지와 문구류를 좋아한다고 산골아이들과 쓰라고  한 박스 최신 문구류를 보내주신 분, 반찬에, 밭에서 일하고 내려오면 참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나 그러지 못하니 내려와서 쉽게 칼국수 끓여 먹으라며 언니처럼 칼국스를 싸보내주신 분 , 과일, 인형, 수해때 쓰라고 자루며 라면, 물까지 보내주신 분, 내가 어린시절 삼립빵을 그리워 한다고 그 빵을 한 박스 택배로 보내주신 분, 농사일이 고되다고 몸보신 하라고 얼린 고기를 보내주는 분, 또 무엇보다 매일 홈에 안부인사를 전해주며 형제, 자매처럼 따뜻한 위로 노동으로 힘든 몸으 피로를 풀어주시는 분들.......

내 나쁜 머리로 열거도 다 안된다.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용어를 사용할 때 부정적인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무어냐 하면
'내가 무슨 복이 있다고...'

그런데 난 이 용어를 이렇게 긍정적일 때 사용한다.
'내가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관심 가운데에 있는지...'

'이래도 되는지...'라는 말을 어둔 밤에 별을 보며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이런 생활 속에서 살면서 힘들고, 외롭다니...

내 스스로를 정화하고, 묵상하기 위한 외로움은 필수지만 누군가로부터의 어떤 관계로부터의 외로움이란 있을 새가 없다.
그러니 난 귀농에 성공한 것이고 더 나아가 제2의 이 삶이 없었다면 살아 생전에 맛볼 수 없는 현장에서 나는 서있는 거다.

이제 마당에 나가려고 한다.
달을 보며, 조금씩 그들과 나를 비추어 보려고 한다.
은은한 달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산골편지 -- 살아 생전에 못만날 '인연'
+   [산골편지]   |  2008. 11. 9. 23:37  

2008년 10월 19일

미사중에 초보농사꾼(프란치스코)가 팔뚝을 툭툭치며 내 눈에 들이미는 주보...
‘미사시간에 거룩하게 미사나 드리지 못하고 평소와 달리 왠 주보를 들이대나??‘ 하며 어벙벙해 있는 내게 주보의 본당소식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내용인즉, 프랑스에서 신부님 다섯 분이 우리 본당을 반문하시는데 모시고 싶은 가정은 신청을 하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다음 주면 초보농사꾼이 서울 다녀와야 하는 일이랑 겹치기 때문에 주보글만 읽었을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런데 모기만한 소리로

“우리 집에 모시자”한다.

“서울은??”

“못가는 거지. 뭐.”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다섯 분이 어디서 다 주무시나?...
반찬은?? 난 프랑스 음식 할줄 아는 게 없는데....

그건 다음에 고민하기로 하고 우린 그렇게 신부님 강론말씀은 안듣고 일단 모시기로 용감하게 합의를 끝냈다.

미사가 끝나고 추가설명을 하시는데 보니 빠리 근교에서 사목하시는 분들로 금년 사제서품 1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방문하신다는 추가 설명을 하셨다.

지금은 경주에 묵고 계시는데 성당에서 한꺼번에 모시는 것보다는 한국의 가정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한 가정에 한 분씩 모신다는 거였다.
그러니 총 다섯 가정의 신청을 받는 거였다.
그런데 우린 용감하게도 다섯 분을 다 모시려 했던 것...

어쨌거나 날짜는 부득부득 닥아오고 나의 염려와 걱정도 얼떨결에 몸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제외한 세 가정에서 신청을 하였기 때문에 한 분은 남루시아 자매님이 모시기로 했다.

난 남루시아 자매님께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서 같이 모시면 신부님들이 우리랑 말이 안통해도 두 분이 이야기하시면 되겠다는 생각과 요리를 잘 하는 루시아 형님과 함께 모시면 의지도 되고 금상첨화일 것같았다.

그렇게 합의를 보고 마침 우리 차를 폐차했기 때문에 신부님은 신 베드로 형제님(남루시아 형님의 남편)이 모시고 산골로 오시기로 했다.

사제를 우리 집에 모시고 일박을 하는 것은  처음은 아니지만 그 일은 예삿일은 아니라고 늘 생각했다.
사제를 모신다는 것은 늘 기쁨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다.

예전에 했었던 것처럼 신부님들이 오시기 전날 이불과 요, 베개 커버를 다 뜯어 빨고 그 속은 햇살에 죄다 내다 널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S8004626e.jpg">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까지 대청소를 했다.
마음은 왜그리 걱정스러운지...

새벽 4시가 넘도록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잠못들게 하는지...
이번 ‘인연’에서 가장 마음을 쓰게 된 부분이 있었다.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이 세상 그 많은 사람 중에 인연이 된다는 것. 그것도 두 번 다시 살아 생전에는 못만날 인연이라는 것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다른 집에서 모시면 더 의미있고, 기억에 남고, 재밌었을텐데 혹여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어 그 기회를 놓치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난 모든 일이든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뒷 마음이 깨끗하다. 내 능력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고 나머지는 내 능력밖의 일이니까...
그러나  내 스스로 돌아보아 어떤 이유에서든 최선을 다 못했으면 두고두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후회를 하고, 아려하는 타입이다.

그렇게 날이 샜다.
드디어 신부님이 오시는 날.

 남루시아 형님이 오후에 장을 다 봐오셨다.
그리고 형님은 노련한 손놀림으로 저녁준비를 하셨다.
나야 양파까고, 파, 마늘까고, 직접 딴 고사리 물에 불리고...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거들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38.jpg">

일이 번거롭게 되려고 며칠 전에 차를 폐차하게 되었다.
내가 읍에서 볼일을 보고 산골로 향하던 중 차가 섰고 카센타로 견인해 가니 그 사장님, 두 손발 다 들었다.
진단은 폐차...

그러고 나니 신부님을 우리가 모셔오지 못하고 남 루시아 형님의 아저씨인 베드로 형제님이 늦은 저녁에 터미널에서 기다리시다 모시고 산골로 오셨다.
미안스럽게도 형님네 차 두 대가 다 동원된 것이다.

초보농사꾼은 서울에서 중고차를 구하고 그 차로 신부님을 모시러 가려 했으나 결국은 시간이 늦어 그냥 부랴부랴 산골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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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산골에 좍 깔린 후 두 분의 신부님이 도착하셨다.
딸 주현(안나)이가 축하의 뜻으로 걸어둔 오색 풍선이 나보다 먼저 환영 인사를 하고 있었다.

두 분은 처음 뵙는 분 같지 않게 낯설지 않았다.
오시자마자 준비해둔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본당 신부님 말씀대로 ‘우리가 사는 그대로, 우리가 먹는 그래도 접대한다‘는 전략대로 우린 한정식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신부님들은 프랑스에서 직접 울진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경주 등을 거쳐 오셨다는데 우리네 처럼 바닥에 앉아 식사하시는 것이 처음이신 모양이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41.jpg">

우리는 식사 전 기도를 신부님들께 부탁드렸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어로 식사 전 기도를 하셨다.
그 순간...

머릿속이 찌릿찌릿하더니 얼굴에 진동이 일고 알수 없는 것이 나의 머리에 가득 참을 느꼈다.
하마터면 눈물이 쏟아질 뻔했고 울컥하는 마음에 꾹 힘주어 다물었던 입에서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만 흘러나와 다행이었다.

분명 우리가 늘 식사 전 후에 하는 기도인데 왜그리 영혼에 진동이 오던지...
내가 신부님들을 모시기 전에 깊이 생각했던 처음이자 어쩌면 살아 생전에 마지막 인연일 거라는 것이 크게 작용을 했을 것이고 그 순간 신도 우리 옆에서 함께 앉아 계실 거라는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이 순간의 경험을 난 잊을 수가 없고 어떻게 세 치 혀로 표현도 다 못하겠다.

식사 전 기도가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다리를 오무렸다가 무릎을 꿇고 앉으셨다가...
그러시면서도 새 경험에 신기하고 좋으신 모양이다.

식탁은 있었지만 그렇게 우리 식대로 모시기로 했으니 그렇게 붕 둘러앉아 먹었다.
외국을 나가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한국식당에 가면 무지 실망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우리 것을 보여 드리기로 했다.

처음엔 이렇게 저렇게 둘러 앉으시더니 이내 익숙해지셨다.
젓가락 대신 포크도 드렸지만 젓가락으로 한동안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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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48.jpg">

이제 식사를 끝냈으니 계획된 공연을 할 차례이다.
주 공연자는 주현(안나)이다.
선우(아론)는 시험기간이 바로 코앞이라 읍에 머물렀다.
그 점은 여간 아쉬운 점이 아니었다.

안나는 장고 공연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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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노래도 ‘아리랑’으로 불렀다.
어린 것이 그 노래할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63.jpg">

아마도 아리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라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엄마보다 낫다.
난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주현이가 장고 공연을 하는 동안 난 서울의 어느 본당에서 쓰던 징으로 그의 흥에 박자를 맞추었다.
물론 난 징을 배운 바가 없지만 최선을 다해 흥이나 돋우면 되지 하는 배짱이 작용하여  주현이 공연의 맥을 끊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두들겨 댔다.

안나도 나도 한복을 입었고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제사때만 아껴 쓰는 어머님께 물려받은 돛자리도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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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장고 공연이 끝나고, 꾕과리 공연이 시작되었다.
선우가 있었다면 안나가 장고를 치고 아론이 꾕과리를 치는 공연을 했었야 했다.
그러나 지오빠가 없으니 주현이가 북치고 장고치고 다한 셈이다.

두 신부님들은 흥분하여 박수도 치시고, 사진도 찍으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그렇게 공연을 끝내려니 주현이가 두 신부님들도 장고와 꾕과리를 직접 쳐보시라는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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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흔쾌히 장고와 꾕과리를 쳐 보셨고, 주현이는 채를 잡는 방법을 바로 잡아드렸다.
그리고 그 물건(?)들의 이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발음을 해보이시려 애쓰셨지만 장고야 어찌 발음이 되는데 꾕과리는 꼬부랑 불어에 익숙하신 입으로는 많이 어려우신지 계속 그 물건의 이름을 물으시고 외우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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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거기서 끝났다.
통창으로 보이는 별과 달도 흥이 났던지 더 빛을 발했다.

다음은 성가책을 펴고 모두 함께 성가를 불렀다.
프랑스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많이 부르는지 그 성가를 두 분이 부르셨다.
우리는 우리 성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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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끝내면 박씨 일가가 아니지...

한국의 대중가요라며 주현이에게 노래를 시킨 것.
이건 대본에 없는 것인디...
그러나 주현이가 누군가.
주현이 한 곡, 내가 한 곡을 불러 재꼈다.

주현이야 우리의 간곡한 부탁으로 불렀지만 나를 노래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시켜야 하나, 난 안시켜도 한다.
인생 뭐 있나.
불러재끼며 분위기 업시키면 되는 거지.

내 노래로 분위기가 업되었는지 다운 되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말하면 클난다.^^

거기까지가 하루의 일정 끝이면 재미없지.
우리는 다 내 기도방인 다락방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신부님들은 그곳에 모셔둔 성모님을 보자 반가워 하시며 루르드 성모님이라며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한 신부님이 어린 소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 모습이 그려진 동전만한 패를 선물로 주셨고, 난 그 답례로 손바닥 조각보를 하나씩 선물로 드렸다.

그 날은 일정은 모두 끝나고 선우, 주현이 방에 잠자리를 준비해 드렸고,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두 신부님이 잠든 사이 주현이는 신부님들께 편지를 썼다.
영어로 한 줄, 그 아래는 한국말로 한 줄...써놓고 혼자 쑈하느라 힘든 안나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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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우린 아침을 서둘렀다.
아침은 아침대로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우선 집에서 보이는 산 아래의 표고버섯을 따러 가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남자들은 신부님을 모시고 표고버섯을 따오라고 몰았다.
직접 표고버섯을 따 보시니 아주 흥분되셨던 모양이다.
따오신 버섯을 내게 내보이며 환하게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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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이 아니고 본당으로 가기 전에 불영사에 들리기로 하고 서둘러 산골을 떠났다.
울진성당의 미사가 10시 30분이기 때문에 그 전에 다섯 분의 신부님이 도착완료를 해야 했으니 여간 빡빡하지 않았으니 강행했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가을단풍이 절절한 불영사는 모르면 몰라도 프랑스에서 오신 두 신부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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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사는 주차장에서 차를 두고 한참을 비포장 길로 걸어 들어가는데 그곳의 풍경이 또한 죽음이다.
내 감동이 이쯤이면 프랑스에서 오신 코큰 신부님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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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성당에서 다섯 분의 신부님들이 다 모였을 때 불영사에 들린 것 또한 감동이었다며 초보농사꾼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더란다.

불영사를 보고 나오면서 초보농사꾼이 미사 시간 늦다며 서둘자고 제안을 했고  불영사를 빠져 나왔다.

울진성당에 도착하니 다른 댁에서 묵으신 세 분 신부님들도 모두 와 계셨다.
여기까지로 우리가 맡은 일정은 끝이 났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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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분의 신부님들도 사제복으로 갈아입으시고 함께 미사를 드렸다.
점심은 가정봉사를 한 가족들과 신부님들을 위해 성당에서 마련했다.
우리 집에서 묵으셨던 신부님들은 장고와 꾕과리 발음을 하시면서 산골의 행사를 말씀하시는 것같았다.
성당으로 합류가 선우는 신부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여간 아쉬워 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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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이에게 편지도 받았다며 편지를 다른 신부님들께도 자랑하시고...
주현이도 이번 인연에 대한 감동이 대단한 모양이다.
그게 산 교육이지 싶다.

이제 신부님들의 다음 목적지는 봉화에 있는 우곡성지였다.
초보농사꾼 차로 우리 집에서 묵으셨던 두 분 신부님과 이영길 본당 신부님을 모시기로 했고, 김종수 형제님이 나머지 세 분의 신부님을 모시고 봉화로 출발했다.

우리 신부님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사목을 하시다 울진본당으로 오신지 오래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차 안은 온통 프랑스어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우리 신부님은 프랑스에 계실 때 르망교구에 계셨고, 오신 두 분의 신부님들은 리스교구 소속이시라 프랑스에 계실 때 서로 만난 적은 한번도 없으셨단다.

봉화로 가기 전 우리 집에 모두 들리셨다.
내가 쓴 책을 한 권씩 선물로 드렸고 거북바위도 구경하셨다.

나만 그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고 주현이와 초보농사꾼, 본당 신부님, 그리고 다섯 분의 프랑스 신부님, 또 다른 운전병인 김종수 형제님이 그렇게 먼지를 날리며 봉화로 출발했다.

‘만남과 이별’
그것은 지상에서의 연이고 우리 모두가 이승에서의 끈을 놓았을 때는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리...
참으로 서리했다.
짧은 시간 속에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과 사랑...

이제 포옹으로 인사를 매듭지었다.
‘인연’이란,
‘헤어짐’이란 그런 거다.
속으로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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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
살아가는 동안 어느 순간 산골을 기억하신다면 우리의 미소를 기억해 주소서.
다시는 못만날 인연이지만 주님 안에서 늘 행복하십시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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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산골편지 --팔 수도 없는 표고버섯
+   [산골편지]   |  2008. 10. 27. 23:19  

2008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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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갑자기 어린시절 생각을 생각했다.
코흘리개 때 한양으로 죄다 올라오고도 방학때만 되고 뒤도 안돌아보고 시골로 튀었었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우리가 모두 한양으로 올라오기 전 엄마방(우리는 안방을 그렇게 불렀다.)과 연결된 방에는 벽장이 있었다.
벽장...

다른 지방에서도 그런 말을 쓰는지 몰라도 내 고향 충청도 천원군 병천면 병천리 1구 신성동(난 이 주소도 잊지 않고 있다. 지금은 천안시로 바뀌었을 것이다)에서는 그렇게 표현을 했다.

벽장과 다락방은 전혀 다르다.
벽장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계단도 없이 작은 의자를 놓고 올라가 양옆으로 미는 아주 작은 문을 열고 물건 등을 넣어두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쁜 머리면서도 고향의 일은 잘도 기억하는데 지금 또 기억으로는 거기에 자주 곶감, 꿀병, 마른 오징어 등을 넣어두었던 것으로 안다.
그 당시 천안에는 바닷 것이 귀한 곳이었지만 할머니는 장날 그런 것들을 사서는 손자와 손녀 구분하지 않고 쬐금씩 나누어 주시곤 했다.

그러나 다락방이란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이고 다락방에는 꼭 계단이 있다.
다락방에는 사람이 자거나 다른 용도로 쓰이지만 벽장은 말그대로 벽에 뭔가를 보관하는 장소였다는 사실을 지금 알았다.

내가 지금 벽장이 어떤 용도이고 다락방과 무엇이 다른가를 안들 살아가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오늘은 맑디 맑은 하늘을 보다가 어린시절 멱감으러 동무들과 가던 하늘도 이렇게 눈이 시리도록 파랬더랬지 하는 생각이 미치자 그것이 벽장까지 이어진 것이다.

가을은 세월이 한참 흐린 일도 코앞의 일인양 , 코앞의 그림인양 떠벌릴 수 있는 힘이 있다.

********************************************
사람이 말이다.
그 의미라는 것....
더러는 잔잔한 감동과 힘을 주지만 더러는 발목에 묶은 모래 주머니처럼 스스로를 힘겹게 할 때도 있다.

표고버섯을 첫 수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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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여러 차례 산 아래 표고목이 서있는 곳으로 혹시..하는 마음으로 뛰어 올라가 그 신기한 물건이 튀어 나와 있는지 확인했었다.
그러나 번번히 실망을 하고 그들에게 뒤통수를 보이고 빈 자루를 휘두르며 내려와야 했다.
곧 죽어도 그릇이 아니라 자루씩이나 가지고 올라간다.
이 대목만 보더라도 귀농 후에도 욕심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을 헛수고하고 나니 숨을 할딱이며 뛰어 올라가는 횟수가 줄었고 급기야는 내년에나 보자며 다시는 안올라올 것처럼 작별인사를 하고 쌩소리나게 내려왔다.

얼굴이 칼자국처럼 하얗게 갈라진 그 야들야들하고 향긋한 표고버섯을 먹어보는 건 올해는 틀려먹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 근처에 얼씬도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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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얘기하면 내년으로 미루는 여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나쁘게 얘기하면 사람이 매몰차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뭔가 보이지 않으면 관심을 끊는 것 말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대충 감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초보농사꾼이 호수밭 산 아래서 뛰어 내려오면 빨리 올라가 보란다.
난리났다고...
무슨 난리가 산에서 나는지...

아닌게 아니라 올라가보니 내가 그들을 푸대접한 것이 서러웠는지 벌써 표고버섯이 멍석만하게 제 몸을 키우고 있었다.
그것을 처음 따는 순간...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것은 그저 처음 경험한 것에 대한 감동의 몸밖 증상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표고나무를 한겨울에 죽으라 해오고, 봄에 일일이 종균을 넣느라 초보농사꾼은 무리를 해서 '테니스 엘보'라는 병명을 얻었다.
팔을 올리지도, 가벼운 물건을 들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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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힘들게 그 병을 끌어안고 농사를 지어야했다.
더러는 팔의 통증으로 들고 있던 삽을 던지기도 하고, 퇴비 봉투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트렉터로 밭을 갈다가도 그 핸들 돌릴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으로 그는 트렉터 안에서 그냥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멍하니...

그렇게 병을 얻어가며 산골로 오게 된 것이 표고목이고 그 표고목에 버섯이 첫 얼굴을 내민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덥석덥석 좋아라 따지 못하고 혹여 흠집이라도 날까봐 신생아다루듯 절절 맸다.
서두에 말한 의미라는 것.
그 의미라는 것이 사람 마음 무겁게도 만든다.

그렇게 첫 수확한 표고버섯,
그 깊은 산 아래서 저 혼자 자란 표고버섯이기에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먹기로 했다.
사람이 아주 의미있는 것은 돈받고 팔기도 아까운 그런 것이 있다.

그것을 서로 나누어 먹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신바람이 났다.
표고버섯 머리 위로 보이는 파리한 하늘도 그런 내게 응원을 보내느라 분주한 눈치다.
구름이 별의 별 모양으로 주위를 넘나드는 것으로 보아도 그도 내 결정에 응원을 보내는 것같다.

일부는 그렇게 나누어 먹고 일부는 눈내리는 겨울에 먹으려고 태양 아래 벗은 몸을 일광욕시키기로 했다.
우선 돛자리를 찾아야 했고, 그것을 깨끗이 물로 닦아서 먼저 태양 아래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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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무엇 하나 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돛자리의 물기가 다 마른 것을 확인한 후 막 따온 표고버섯을 줄세워 뉘웠다.
하루가 다르게 태양 아래 여물어가는 표고버섯이 점점 핼쑥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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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도 첫수확이 뿌듯한지 따가지고 내려오는 발걸음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이제 동부(콩)만하게 나오는 놈도 있으니 이제 당분간은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여 문안인사를 드려야겠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14 -- 범접할 수 없는 향기
+   [산골편지]   |  2008. 10. 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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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천연염색 강연장이다.
수강자가 있든 없든 제 몸을 하루가 다르게 염색해 보이며 가을을 강의학 있다.

형형색색으로 염색이 잘 되었다 하여 그것을 뽐내거나 거들먹거리지도 않고 그것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때가 되면 그 아름다운 옷도 다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겨울을 난다.
인간사에서는 정신나간 행동임에 틀림없다.

인간이야 작은 거 하나라도 손에 들어오면 꼭 쥐고 놓을줄 모르지만 그들은 거침없이 놓는다.
놓아야 더 큰 것을 얻고 내면이 풍요로워짐을 안다.
세상의 모든 자연물이 다 아는 진리를 영악하다는 인간만 모른다.

오늘도 병풍처럼 둘러쳐진 통고산 자락을 보며 자연이 몸소 들여주는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
언젠가는 콘크리트보다 더 강한 세상 것들로 들어 차 있는 귀가 뚫어지겠지...</font>

**********************************

하루를 들여다 보면 다른 이에게 하는 물음이나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피해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가족이지 싶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영역을 더 확장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염병처럼 옮겨간다.
죽어도 짹한다고 물론 사랑과 관심이 있어서라고 변명한다.
이것은 관심하고는 또 다른 거다.

사랑과 관심에서 그렇다고 이제껏 나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탈을 쓴 간섭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정녕 사랑과 관심이 있다면 지켜 보야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특히 가족에게 뱉는 말 중에 안해도 되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특히 아이들에게 말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가.
온갖 수식어를 써가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주입시키려 든다.
그렇게 쏟아낸 말들을 죽 펼쳐 놓고 찬찬히 들여다 보라.

꼭 말로 해야만 했던 것들이었는지...
믿음으로, 침묵으로, 행동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던 사항이 더 많을 것이다.

가을이다.
이제는 밖으로 내돌렸던 시선을 안을 향해보자.
자신에게 거듭거듭 물어보자.

나는 내 길 어디쯤에 와 있는지...
내 삶의 무게에 맞는 신을 신고 그 길을 잘 가고 있는지...
과거에 매이지 않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앞질러 가지도 않고 지금, 현재에 살기 위해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는지...
금쪽 같이 귀히 주어진 하루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살고 있는지...

다른 이에게 카랑카랑하다 못해  째진 목소리로 들이댔던 대로 자신에게 물어보라.

안으로 살피고 살피는 사람에게선 자신감뿐만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향기가 넘쳐 난다.
그것으로 자식을 키우고 사람을 대해야 하는데 입이 먼저 동작을 시작하니 사단이 나는 거다.

지금 내 얘기를 너무 다 드러내 놓고 하고 나니 기운이 쭈욱 빠진다.
가을은 지 얘기도 남 얘기같이 할 수 있는 용기있는 계절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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