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59)
하늘마음농장 소개 (1)
개복숭아효소(발효액) (24)
쇠비름효소(발효액) (23)
산야초효소(발효액) (7)
천연숙성비누 (8)
유기농 야콘, 야콘즙 (12)
산야초, 약초이야기 (5)
산골편지 (132)
귀농일기 (92)
산골아이들의 책이야기 (22)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39)
야콘 이야기 (1)
산골풍경 (74)
산골밥상 (8)
하늘마음농장  농사  산골 다락방  귀농일기  산골  배동분  귀농  야콘  귀농아낙  초보농사꾼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Total :
+ Today :
+ Yesterday :
  

 

 

 

프랑스 _해당되는 글 3건
2009.04.07   귀농아낙의 책이야기--황금물고기 
2008.12.15   귀농풍경-- 손님 중 첨입니다. 
2008.11.09   산골편지 -- 살아 생전에 못만날 '인연' 

 

귀농아낙의 책이야기--황금물고기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4. 7. 19:3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르 클레지오라는 프랑스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이 작품에 대한 찬사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해서다.
그 찬사 중 ‘막 건져 올린 은빛 언어...’등의 표현이 많은 책이기 때문이 첫째이고, 둘째는 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두 이유는 앞뒤가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황금물고기’가 더 표면에 떴기 때문에 그런 찬가들이 이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같은 작품도 그냥 읽으면 그렇다가, 노벨 문학상을 탔데..하면서 읽는 거랑은 다르다.

어쨌거나 내가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읽힌다는 늘 비슷한 전략으로 책을 구입했으나 이번에도 주현이가 먼저 읽고 내가 나중에 읽는 꼴이 되었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
그때 일은 잘 기억자지 않는데, 너무 어렸던데다가 그 후에 살아온 모든 나날이 그 기억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 일은 차라리 꿈이랄까, 아들하면서도 끔찍한 악몽처엄 밤마다 되살아나고 때로는 낮에도 나를 괴롭힌다. ...............“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밤이라는 뜻을 가진 라일라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

이 첫문장만으로도 소설 속 주인공 라일라는 어떤 여정을 걸을지는 대충 감잡을 수 있지 싶다.

라일라의 그 어둠 속 생활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밝은 곳에서 숨쉬는 것보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사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느끼는 주인공의 삶, 언제 어느 때 다시 붙잡혀 속박된 삶을 살지 모르는 불안감은 늘 그의 옷처럼 그의 몸과 마음에 따라다녔다.

여기서 주인공에 대해 느낀 점은 대부분의 이런 상황에서의 주인공은 강한 의지력과 인내력 등을 무기로 자신을 길을 개척해 나가는 면이 부각된다.

그러나 르 클레지오는 라일라를 그렇게 묘사하지는 않았다.
어디에서도 라일라의 강한 극복심이나 의지력 등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결론적으로 달려가다보면 그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주인공에 대한 아픈 일생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라일라와 첫 번째 인연을 맺은 랄라아스마라는 노파의 집에 팔려갔지만 그 노파의 향기를 자주 기억해 내며 자신의 삶의 일부로 여긴다.
첫 만남이 그렇게 우리네 삶에도 영향을 미치듯이 라일라 역시 되풀이되는 구속된 삶에서 자주 랄라아스마를 느낀다.

우리네 삶도 들여다 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삶의 역정은 있다.

그러나 르 클레지오만이 그려 낼 수 있는 그 감성적이고 세부적이며 생동감있는 표현력으로 인해 ‘황금물고기’는 라일라의 일생에 더 빛나는 황금색을 입혔다고 생각한다.

소설 중반에 예감했듯이 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며 그렇게 소설은 주인공의 삶을 마지막으로 비춘다.

“더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움음소리.
십오 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복수를 위하여 힐랄 부족의 적인 크리우이가 부족의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 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닷가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황금 물고기 상세보기
르 클레지오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물고기처럼 순진무구한 천진성과 강한 생명력을 지닌 한 소녀의 역경에 찬 성장기를 그린 프랑스 작가의 장편.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라일라는 어린 나이에 인신 매매범들에게 납치돼 아랍, 프랑스, 미국을...


 


 
 
        

 

귀농풍경-- 손님 중 첨입니다.
+   [산골풍경]   |  2008. 12. 15. 22:3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늘은 아는 형님과 수녀님이 다녀가셨어요.
나 바쁘다고 자주 못오시던 분인데 오늘 오셔서 같이 다락방에서 기도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함께 저녁도 먹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손을 흔들고 들어와 설거지를 하는데 전화가 왔어요.
길을 잘못들어 어디인데 차를 돌리려 하면 미끄러져 위험한 상황이라고...

크...

왜 그 위로 올라가셨댜???

초보농사꾼과 함께 달려가보니 언덕에서 차를 돌리다 자꾸 개울로 떨어질 것같으니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그곳은 우리집과 마찬가지로 핸드폰이 안터지는데 어찌 전화를 하셨을까...
거기로는 가셨을 리가 없고 다른 곳인데 선우엄마가 잘못 전화받은 것 아니냐며 걱정하고 갔었는데...

그러니까 우리집에서 내려가면 왼쪽으로 내려가야 국도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올라간 것...

우리집을 찾아 올 때 그 위까지 가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잘 와서 돌아갈 때 그 위로 가는 사람은 오늘 그 형님이 최초...

"내가 길치잖아"하며 웃는 형님...
무지 놀라서는 서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두 분이 그 외진 길에서 얼마나 놀라셨을까...

초보농사꾼이 어찌어찌하여 차를 돌리고 헤어져 들어오면서 초보농사꾼이 영주쪽으로 가실까봐 걱정걱정을 합니다.
중간에 전화를 했더니 형님이 잘 울진읍쪽으로 가고 있다고...

이제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주셨네요.

오늘 정말 좋은 시간을 가졌다며 좋아하십니다.
상대방이 그정도로 좋았다면 당연히 저도 그정도로 행복한 것이지요......

함께 둘러앉아
다락방에서 셋이서 기도를 하는데 정말 좋더라구요.

그리고 저녁은 형님이 팔 걷어부치고 하셨어요.
프랑스 신부님들 오셨을 때처럼...^^
저는 그 사이 초보농사꾼과 야콘을 씻고...

꽃이 피면서 소리를 내고 빙빙 춤추며 핀다는 왕달맞이꽃처럼 같이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빙금빙글 돌렸습니다.

기쁜 날입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산골편지 -- 살아 생전에 못만날 '인연'
+   [산골편지]   |  2008. 11. 9. 23:37  

2008년 10월 19일

미사중에 초보농사꾼(프란치스코)가 팔뚝을 툭툭치며 내 눈에 들이미는 주보...
‘미사시간에 거룩하게 미사나 드리지 못하고 평소와 달리 왠 주보를 들이대나??‘ 하며 어벙벙해 있는 내게 주보의 본당소식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내용인즉, 프랑스에서 신부님 다섯 분이 우리 본당을 반문하시는데 모시고 싶은 가정은 신청을 하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다음 주면 초보농사꾼이 서울 다녀와야 하는 일이랑 겹치기 때문에 주보글만 읽었을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런데 모기만한 소리로

“우리 집에 모시자”한다.

“서울은??”

“못가는 거지. 뭐.”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다섯 분이 어디서 다 주무시나?...
반찬은?? 난 프랑스 음식 할줄 아는 게 없는데....

그건 다음에 고민하기로 하고 우린 그렇게 신부님 강론말씀은 안듣고 일단 모시기로 용감하게 합의를 끝냈다.

미사가 끝나고 추가설명을 하시는데 보니 빠리 근교에서 사목하시는 분들로 금년 사제서품 15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방문하신다는 추가 설명을 하셨다.

지금은 경주에 묵고 계시는데 성당에서 한꺼번에 모시는 것보다는 한국의 가정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한 가정에 한 분씩 모신다는 거였다.
그러니 총 다섯 가정의 신청을 받는 거였다.
그런데 우린 용감하게도 다섯 분을 다 모시려 했던 것...

어쨌거나 날짜는 부득부득 닥아오고 나의 염려와 걱정도 얼떨결에 몸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제외한 세 가정에서 신청을 하였기 때문에 한 분은 남루시아 자매님이 모시기로 했다.

난 남루시아 자매님께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서 같이 모시면 신부님들이 우리랑 말이 안통해도 두 분이 이야기하시면 되겠다는 생각과 요리를 잘 하는 루시아 형님과 함께 모시면 의지도 되고 금상첨화일 것같았다.

그렇게 합의를 보고 마침 우리 차를 폐차했기 때문에 신부님은 신 베드로 형제님(남루시아 형님의 남편)이 모시고 산골로 오시기로 했다.

사제를 우리 집에 모시고 일박을 하는 것은  처음은 아니지만 그 일은 예삿일은 아니라고 늘 생각했다.
사제를 모신다는 것은 늘 기쁨이고,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다.

예전에 했었던 것처럼 신부님들이 오시기 전날 이불과 요, 베개 커버를 다 뜯어 빨고 그 속은 햇살에 죄다 내다 널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S8004626e.jpg">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까지 대청소를 했다.
마음은 왜그리 걱정스러운지...

새벽 4시가 넘도록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잠못들게 하는지...
이번 ‘인연’에서 가장 마음을 쓰게 된 부분이 있었다.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우선, 이 세상 그 많은 사람 중에 인연이 된다는 것. 그것도 두 번 다시 살아 생전에는 못만날 인연이라는 것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다른 집에서 모시면 더 의미있고, 기억에 남고, 재밌었을텐데 혹여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어 그 기회를 놓치시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난 모든 일이든 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뒷 마음이 깨끗하다. 내 능력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고 나머지는 내 능력밖의 일이니까...
그러나  내 스스로 돌아보아 어떤 이유에서든 최선을 다 못했으면 두고두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후회를 하고, 아려하는 타입이다.

그렇게 날이 샜다.
드디어 신부님이 오시는 날.

 남루시아 형님이 오후에 장을 다 봐오셨다.
그리고 형님은 노련한 손놀림으로 저녁준비를 하셨다.
나야 양파까고, 파, 마늘까고, 직접 딴 고사리 물에 불리고...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거들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38.jpg">

일이 번거롭게 되려고 며칠 전에 차를 폐차하게 되었다.
내가 읍에서 볼일을 보고 산골로 향하던 중 차가 섰고 카센타로 견인해 가니 그 사장님, 두 손발 다 들었다.
진단은 폐차...

그러고 나니 신부님을 우리가 모셔오지 못하고 남 루시아 형님의 아저씨인 베드로 형제님이 늦은 저녁에 터미널에서 기다리시다 모시고 산골로 오셨다.
미안스럽게도 형님네 차 두 대가 다 동원된 것이다.

초보농사꾼은 서울에서 중고차를 구하고 그 차로 신부님을 모시러 가려 했으나 결국은 시간이 늦어 그냥 부랴부랴 산골로 돌아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둠이 산골에 좍 깔린 후 두 분의 신부님이 도착하셨다.
딸 주현(안나)이가 축하의 뜻으로 걸어둔 오색 풍선이 나보다 먼저 환영 인사를 하고 있었다.

두 분은 처음 뵙는 분 같지 않게 낯설지 않았다.
오시자마자 준비해둔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본당 신부님 말씀대로 ‘우리가 사는 그대로, 우리가 먹는 그래도 접대한다‘는 전략대로 우린 한정식으로 저녁을 준비했다.

신부님들은 프랑스에서 직접 울진으로 오신 것이 아니고 경주 등을 거쳐 오셨다는데 우리네 처럼 바닥에 앉아 식사하시는 것이 처음이신 모양이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41.jpg">

우리는 식사 전 기도를 신부님들께 부탁드렸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어로 식사 전 기도를 하셨다.
그 순간...

머릿속이 찌릿찌릿하더니 얼굴에 진동이 일고 알수 없는 것이 나의 머리에 가득 참을 느꼈다.
하마터면 눈물이 쏟아질 뻔했고 울컥하는 마음에 꾹 힘주어 다물었던 입에서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만 흘러나와 다행이었다.

분명 우리가 늘 식사 전 후에 하는 기도인데 왜그리 영혼에 진동이 오던지...
내가 신부님들을 모시기 전에 깊이 생각했던 처음이자 어쩌면 살아 생전에 마지막 인연일 거라는 것이 크게 작용을 했을 것이고 그 순간 신도 우리 옆에서 함께 앉아 계실 거라는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이 순간의 경험을 난 잊을 수가 없고 어떻게 세 치 혀로 표현도 다 못하겠다.

식사 전 기도가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다리를 오무렸다가 무릎을 꿇고 앉으셨다가...
그러시면서도 새 경험에 신기하고 좋으신 모양이다.

식탁은 있었지만 그렇게 우리 식대로 모시기로 했으니 그렇게 붕 둘러앉아 먹었다.
외국을 나가보면 그 나라의 문화와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한국식당에 가면 무지 실망했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우리 것을 보여 드리기로 했다.

처음엔 이렇게 저렇게 둘러 앉으시더니 이내 익숙해지셨다.
젓가락 대신 포크도 드렸지만 젓가락으로 한동안 드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48.jpg">

이제 식사를 끝냈으니 계획된 공연을 할 차례이다.
주 공연자는 주현(안나)이다.
선우(아론)는 시험기간이 바로 코앞이라 읍에 머물렀다.
그 점은 여간 아쉬운 점이 아니었다.

안나는 장고 공연부터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들어가는 노래도 ‘아리랑’으로 불렀다.
어린 것이 그 노래할 생각은 어떻게 했는지...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63.jpg">

아마도 아리랑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라는 생각을 했던 것같다.
엄마보다 낫다.
난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주현이가 장고 공연을 하는 동안 난 서울의 어느 본당에서 쓰던 징으로 그의 흥에 박자를 맞추었다.
물론 난 징을 배운 바가 없지만 최선을 다해 흥이나 돋우면 되지 하는 배짱이 작용하여  주현이 공연의 맥을 끊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두들겨 댔다.

안나도 나도 한복을 입었고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제사때만 아껴 쓰는 어머님께 물려받은 돛자리도 깔았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62-1.jpg">

안나의 장고 공연이 끝나고, 꾕과리 공연이 시작되었다.
선우가 있었다면 안나가 장고를 치고 아론이 꾕과리를 치는 공연을 했었야 했다.
그러나 지오빠가 없으니 주현이가 북치고 장고치고 다한 셈이다.

두 신부님들은 흥분하여 박수도 치시고, 사진도 찍으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그렇게 공연을 끝내려니 주현이가 두 신부님들도 장고와 꾕과리를 직접 쳐보시라는 주문을 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69.jpg">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 분은 흔쾌히 장고와 꾕과리를 쳐 보셨고, 주현이는 채를 잡는 방법을 바로 잡아드렸다.
그리고 그 물건(?)들의 이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발음을 해보이시려 애쓰셨지만 장고야 어찌 발음이 되는데 꾕과리는 꼬부랑 불어에 익숙하신 입으로는 많이 어려우신지 계속 그 물건의 이름을 물으시고 외우려 하셨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74.jpg">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88.jpg">

공연은 거기서 끝났다.
통창으로 보이는 별과 달도 흥이 났던지 더 빛을 발했다.

다음은 성가책을 펴고 모두 함께 성가를 불렀다.
프랑스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많이 부르는지 그 성가를 두 분이 부르셨다.
우리는 우리 성가를 불렀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594.jpg">

거기서 끝내면 박씨 일가가 아니지...

한국의 대중가요라며 주현이에게 노래를 시킨 것.
이건 대본에 없는 것인디...
그러나 주현이가 누군가.
주현이 한 곡, 내가 한 곡을 불러 재꼈다.

주현이야 우리의 간곡한 부탁으로 불렀지만 나를 노래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시켜야 하나, 난 안시켜도 한다.
인생 뭐 있나.
불러재끼며 분위기 업시키면 되는 거지.

내 노래로 분위기가 업되었는지 다운 되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말하면 클난다.^^

거기까지가 하루의 일정 끝이면 재미없지.
우리는 다 내 기도방인 다락방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신부님들은 그곳에 모셔둔 성모님을 보자 반가워 하시며 루르드 성모님이라며 설명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한 신부님이 어린 소녀에게 발현하신 성모님 모습이 그려진 동전만한 패를 선물로 주셨고, 난 그 답례로 손바닥 조각보를 하나씩 선물로 드렸다.

그 날은 일정은 모두 끝나고 선우, 주현이 방에 잠자리를 준비해 드렸고,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두 신부님이 잠든 사이 주현이는 신부님들께 편지를 썼다.
영어로 한 줄, 그 아래는 한국말로 한 줄...써놓고 혼자 쑈하느라 힘든 안나도 잠이 들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602.jpg">

다음 날 아침,,,
우린 아침을 서둘렀다.
아침은 아침대로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우선 집에서 보이는 산 아래의 표고버섯을 따러 가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남자들은 신부님을 모시고 표고버섯을 따오라고 몰았다.
직접 표고버섯을 따 보시니 아주 흥분되셨던 모양이다.
따오신 버섯을 내게 내보이며 환하게 웃으신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S8004637catholic2.jpg">

이게 끝이 아니고 본당으로 가기 전에 불영사에 들리기로 하고 서둘러 산골을 떠났다.
울진성당의 미사가 10시 30분이기 때문에 그 전에 다섯 분의 신부님이 도착완료를 해야 했으니 여간 빡빡하지 않았으니 강행했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가을단풍이 절절한 불영사는 모르면 몰라도 프랑스에서 오신 두 신부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609.jpg">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영사는 주차장에서 차를 두고 한참을 비포장 길로 걸어 들어가는데 그곳의 풍경이 또한 죽음이다.
내 감동이 이쯤이면 프랑스에서 오신 코큰 신부님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가 아닐런지..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606.jpg">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성당에서 다섯 분의 신부님들이 다 모였을 때 불영사에 들린 것 또한 감동이었다며 초보농사꾼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더란다.

불영사를 보고 나오면서 초보농사꾼이 미사 시간 늦다며 서둘자고 제안을 했고  불영사를 빠져 나왔다.

울진성당에 도착하니 다른 댁에서 묵으신 세 분 신부님들도 모두 와 계셨다.
여기까지로 우리가 맡은 일정은 끝이 났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628.jpg">

다섯 분의 신부님들도 사제복으로 갈아입으시고 함께 미사를 드렸다.
점심은 가정봉사를 한 가족들과 신부님들을 위해 성당에서 마련했다.
우리 집에서 묵으셨던 신부님들은 장고와 꾕과리 발음을 하시면서 산골의 행사를 말씀하시는 것같았다.
성당으로 합류가 선우는 신부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여간 아쉬워 한 것이 아니었다.

<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7633-1.jpg">

주현이에게 편지도 받았다며 편지를 다른 신부님들께도 자랑하시고...
주현이도 이번 인연에 대한 감동이 대단한 모양이다.
그게 산 교육이지 싶다.

이제 신부님들의 다음 목적지는 봉화에 있는 우곡성지였다.
초보농사꾼 차로 우리 집에서 묵으셨던 두 분 신부님과 이영길 본당 신부님을 모시기로 했고, 김종수 형제님이 나머지 세 분의 신부님을 모시고 봉화로 출발했다.

우리 신부님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사목을 하시다 울진본당으로 오신지 오래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차 안은 온통 프랑스어로 대화가 이루어졌다.
우리 신부님은 프랑스에 계실 때 르망교구에 계셨고, 오신 두 분의 신부님들은 리스교구 소속이시라 프랑스에 계실 때 서로 만난 적은 한번도 없으셨단다.

봉화로 가기 전 우리 집에 모두 들리셨다.
내가 쓴 책을 한 권씩 선물로 드렸고 거북바위도 구경하셨다.

나만 그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고 주현이와 초보농사꾼, 본당 신부님, 그리고 다섯 분의 프랑스 신부님, 또 다른 운전병인 김종수 형제님이 그렇게 먼지를 날리며 봉화로 출발했다.

‘만남과 이별’
그것은 지상에서의 연이고 우리 모두가 이승에서의 끈을 놓았을 때는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리...
참으로 서리했다.
짧은 시간 속에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과 사랑...

이제 포옹으로 인사를 매듭지었다.
‘인연’이란,
‘헤어짐’이란 그런 거다.
속으로 크게 외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부님 !!
살아가는 동안 어느 순간 산골을 기억하신다면 우리의 미소를 기억해 주소서.
다시는 못만날 인연이지만 주님 안에서 늘 행복하십시오~~~~~~~‘라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이전 | 1 | 다음>>

하늘마음농장's Blog is powered by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