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1일
얼마 전에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천리향’을 선물로 받았다.
무슨 의식을 치르듯 장갑끼고 뿌리의 키만큼 구덩이를 판 다음 조심스럽게 새집에 앉혔다.
‘천리향’... 말 그대로 꽃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활절을 코앞에 두고 생각해 본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고 이 꽃나무에 환장을 할 것이 아니라 사람향기도 천리를 간다면??
꽃향기는 거리제한이 있지만 사람향기는 시공을 넘나들지 않은가.
과연 내게서는 어떤 향기가 나며 그 향기의 제한거리는 얼마쯤일까?
엎어지면 정강이라고 그 정도에서 약발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천리향’을 들여다 보며 나 역시 침묵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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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젊은 부부가 있다.
산골까지 그 부부의 향기가 흘러넘친다.
산골에 무슨 일이 있으면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농사일을 나서서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나는 부부다.
늘 우리 홈에 들어와 산골에 무슨 일이 있는지 마음조이며 지켜보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 그 부부를 보면서 세족례를 흉내내며 내 영혼을 씻어내고 있다.
어쩜 다른 사람의 일에 저토록 온전히 마음을 쓰고 애틋해할까.
하다못해 통화할 일이 있어도 덥석 전화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농사일로 바쁜데 방해된다고, 저녁에 힘든 몸 쉬어야 하는데 방해된다고...
무인도나 다른 없는 이 낯선 울진에서 그들은 그렇게 등대처럼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직장다니면서 어린(7살) 딸과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까지 있는 엄마가 밤마다 시간을 쪼개어 성서쓰기를 미루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농사일로 바쁘다는 좋은 핑계를 끼고 살며 쥐똥만큼 성서쓰기를 해놓은 나로서는 얼마나 부끄럽고 머리에 번개가 치는지 지금은 밀린 성서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들에게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배려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나이먹었다고 더 나은 것 하나도 없다.
요즘 가장 많이 옹알거리는 말이 ‘근묵자흑’이다.
시기와 질투를 일삼고, 남의 말이나 전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면 내 영혼이 어찌될지는 불보듯 뻔하다.
그러나 남을 배려하는 이 젊은 부부와 같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 내 영혼에도 천리향이 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들 부부처럼 다른 이의 가슴에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두릅가시 보다 더 날카로운 엄나무 가시로 상대방의 가슴에 남아 있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있다.
이 봄에 나도 그 젊은 부부처럼 천리향으로 부활하고 싶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