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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_해당되는 글 2건
2011.03.18   귀농편지, 깜짝여행 2탄 
2009.01.24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귀농편지, 깜짝여행 2탄
+   [산골편지]   |  2011. 3. 18. 14:35  

2010년 5월 22일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늘 두근거린다.
비록 찜질방에서의 아침을 맞았지만 이내 여기가 길 위라는 생각이 들자 그 설레임 또한 신선했다.

 

부시럭거리며 미니 담요을 갰다.
찜질방에서 자도 우리 주현이 것만큼은 미니 담요를 덮어주려고 가져간(초보농사꾼 몰래 챙긴 거다. 별나게 군다고 할까봐.) 것을 주섬주섬 개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잤던 주현낭자가 씩 웃더니  롤러코스트를 타자는 거였다.


나는 사실 아무리 쉽고 완만하고 특이할 것 없는 놀이기구라도 그런 것을 당최 못탄다.
어지러워서...현기증이 심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에버랜드에 몇 번 갔었는데 시시하다고 꼬맹이들만 타는 놀이기구도 자신없어 했다.
그러나 애들이야 당연히 엄마랑 아빠랑 같이 타고 싶어하지...

 

그 마음은 알아가지고 용기내어 탔다가 못내려 도우미들이 와서 부축해서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애들도 그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주동자 주현낭자가...

 

내가 롤러코스트를 타는 입구에 턱하니 붙여놓은 그림으로 보니 타고 있는 애들이 놀라 소리소리 지르는 사진이더만...
롤러코스트라니 무슨 소리냐고 살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랑 같이 재미있게 타려고 했는데....’하며 포기를 하는 소리를 들으니 이거 에미로서....

‘그래, 인생 뭐 있냐, 타보는 거지’하고는 두 당 3천원씩 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앞에 탄 팀들이 지르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자 내가 들어갔을 때의 어려움이 불보듯 뻔했다.

 

그러나 우리 딸이 오랜만에 엄마랑 타고 싶다는데...
이게 사람 죽이는 소리다. ㅎㅎ

 

 

 


(▲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하여간 우리 순서가 되어 탔다.


그런데 우리랑 같이 탄 어린이랑 우린 찍소리도 안했다.


같이 탄 어린이는 찜질방 아저씨가 너 또 왔냐고 할 정도로 단골인 것같으니 당연했고, 우리 주현이는 번지점프도 한 여성이라 그런지 찍 소리도 안나왔다.

아마 밖에서 돈받는 아저씨가 어쩌면 제일 걱정이 심했을 것이다.


‘이 팀들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쥐소리도 안들리니...‘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겁쟁이 소피아는 왜 찍소리를 안했을까요???

우리 주현이가 딱 맞췄다.


우리 엄마 분명히 눈감고 있었을 거라고...
사실 눈을 떠야 본전을 빼는 건데 4D영상으로 보는 것을 눈을 감고는 몸으로만 흔들리는 것만 느꼈으니 뭐 기절할 정도가 아니었던 거였다.

 

 

 

 


(▲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봐야 주현이랑 느낌을 말할텐데 걱정이 되어 실눈을 뜨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질 않나, 담벼락에 부딪치지를 않나 난리가 아니라 찜질복이 벌써 젖어오고 붙잡은 손잡이 사이에 땀이 끼어들어 미끄덩거렸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돈만 버린 꼴이 되었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탔기 때문에 주현이는 그래도 엄마랑 탔다는 것이 되었을 것이니 후회는 없다.

 

내가 그곳에서 나오자 초보농사꾼이 웃는다.
그 웃음을 안다.


초보농사꾼도 내가 그런 것에 잼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찜질방에서 나와 아침으로 추어탕을 먹었다.


주현이가 처음엔 추어탕 이야기가 귓구멍에 도착하자마자 인상을 쓴다.
아마 학교에서 주는 추어탕에 질린 모양이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니었겠지.
그랬단다.

 

그렇다면 추어탕의 이미지도 다시 주입시킬겸해서 추어탕집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건 완전히 다른 맛이라며 아주 잘먹는다.

 

이제 배도 든든하겠다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했다.
이번에 들린 곳은 ‘박경리 문학공원’


난 공원이라는 말이 영 걸렸다.

그냥 그분의 이름만 따서 공원을 만든 것이려니 생각했던 거다.


그럴 바에는 문학관을 찾아가자고 했는데 초보농사꾼은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발길이 닿는대로 가는 거라고 한다.

‘아, 예,예.... 박기사님이 어련히 잘 데리고 다니실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곳은 박경리 선생님께서 1980년부터 1998년까지 약 18년 정도를 이곳에서 사시면서 대하소설 토지의 4부와 5부를 집필하시고 완간하신 곳이란다.

 

 

 

 

책에서 이 집을 보았었는데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다니.
그 분의 체흔이 느껴지고, 그 분이 동물들의 먹이를 챙겨 먹이시느라 부르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리는 것같다.

 

선생님은 이곳에서 치열하게 글을 쓰시고, 외로움과 고독을 끌어안으며 자신을 지탱하셨을 것이다.
여기서 외로움은 내가 늘 말하지만 바로 옆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다.

 

그러면서 옆의 텃밭에서 고추도 심으시고, 상추도 가꾸시며 사셨을 그 흔적을 재연하여 찾는 이들이 집을 향해 선생님을 큰소리로 부르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감탄한 부분이 그것이었다.
다른 곳 같았으면 이렇게 했을까.

 

그러니까 선생님이 쓰셨던 바로 그 텃밭을 지금도 그 모습대로 보여주려 파도 심고, 상추도 심고 배추, 호박 등을 소박하게 심어 놓았다.
그 섬세한 배려와 마음씀이 그것을 관리하고 보전하려 애쓰는 원주시에 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집 울타리 안의 텃밭에 또 울타리를 쳐 놓은 것이리.


한국 사람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꼭 들어가고, 개념 없는 사람들 꼭 들어가서 확인하고 사진 찍느라 짓밟으니 아예 나무로 울타리를 쳐 놓았다.

그런 것은 ‘허브나라 농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애가 꽃밭으로 들어가 다 짓밟고 다녀도 내 자식 체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엄마, 내 자식 사진도 되도록 들어가서 꽃을 만지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직 멀었구나’싶었다.

주현이는 박경리 선생님의 시를 읽어주곤 했고 ‘토지’를 읽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서 관심이 많았다.


일일이 집 주위도 둘러보고 청동으로 사진찍으라고 만든 선생님 동상 무릎에 앉아서 포즈도 취했다.

그 동상은 사람들이 선생님 무릎에 앉도록 만들어 놓아 찾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그 분의 마음을 가져가도록 배려해 놓았다.

 

 

 

 

집 바로 앞에 연못을 만들게 된 이유 등을 다 기록해서 세워놓았다.


그러다 보니 바로 현관문을 열고 선생님이 나오실 것만 같았다.
집을 둘러서는 그 분의 시가 여러 번 오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읽는 내내 애려온다.
그 분의 시집에서도 읽었지만 글쓰는 사람의 고독, 외로움, 을씨년스러움이 묻어나오는듯하다.


거기다가 ‘대문 밖 짐승들’(시의 표현)은 얼마나 쓸데 없이 남의 일에 손톱을 세우는지....
주현이도 거기에 세워진 선생님의 시를 찬찬히 읽는다.

 

나 역시 그 시들이 수동타자기에 박히는 소리가 순서대로 들린다.
수동타자기의 그 글씨 판이 서로 꼬이면 손으로 떼어주면서 치는 그 수동타자기.

 

박경리 선생님은 원고지에 펜으로 눌러 쓰셨을텐데 왜 수동타자기가 자판이 내 가슴에다 대고 이 시를 쳐댔을까.
따다닥 따다닥...두르륵(이건 행갈음하는 소리다. 수동타자기를 쳐본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 선돌의 모습이다. 두 박씨만 구경했다.)

그곳에서 말했다.


주현이가 ‘토지’를 읽어야 하는데 시작하겠냐고...
알았단다.

 

하기야 지금 박경리 선생님이 사시던 실제 집에 와본다며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 말은 쥐약이었을 것이다.^^
안그래도 읽으려고 했는데 워낙 긴 작품이라 사실 엄두가 안났다고 한다.

 

지금 주현이가 읽고 있는 독서량으로도 난 만족하고 대견하지만 더 늦기 전에 ‘토지’를 들이밀어야 했다.

다음에 우리를 선돌로 모신단다. 박기사가.


선돌로 모시던, 누운 돌로 모시던 모셔봐봐...

그리고는 내가 잔 모양이다.


선돌이라며 내리라는데 이거 여행떠나기전에 밤새 책읽은 후유증이 사람죽인다.
선돌이야 몇 번 가본 곳이니 박씨들만 다녀오라고 했다.


물론 곱게 가겠는가.
여행 온 사람이 저렇다느니, 온갖 야유를 다 귓구멍으로 아련히 쑤셔 넣어주고 두 박씨가 갔지만 어쩌랴.

 

 

 


(▲ 탄광문화촌에서)

 

두 박씨가 돌아오기에 선돌이 잘 서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렇게 세 사람의 웃음까지 싣고 가느라 우리 차의 무게는 훨씬 무거웠으리.

박기사님의 말씀으로는 이번엔 탄광문화촌으로 간단다.


이곳에 갈 때까지도 혼수상태에서 헤어나질 못해 탄광문화촌 체험도 두 박씨들만 했다.
이번의 야유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드셌다.

 

내 몸을 내 몸대로 못하겠고, 정신도 왜그리 오락가락하는지...
어제 찜질방에서도 주현이를 데리고 자다보니 신경이 엄청 쓰였다.


자다 일어나고, 자다 일어나고...
그 와중에 남녀들이 왜그리 내 방인양 떠들고 난리인지...

 

 

 


(▲ 탄광의 막장까지 가보고)

여하튼 난 바로 고 시간에 혼수상태중에 있었다.

 

다녀온 두 박씨들이 더 흉보기 전에 난 깨어 차 밖으로 나가 정신을 불러들였다.
나 이제 정신이 안들어오면 이거 여행 모두 황이라고...


서서히 정신이 들어오고...
밖을 서성이는데 빗방울이 좀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 탄광문화촌에서)

 

저 멀리서 두 박씨들이 웃으며 온다.


어떻드냐고 물으니 막장까지 가보고 온단다.
순간 우스개소리인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그랬다.

 

막장을 보고 우리가 흔히 쓰는 인생 막장 운운하는 것이 이 막장을 말한다고 주현낭자에게 초보농사꾼이 설명해준 모양이다.

막장....


사진으로 보는 동상의 표정에서도 삶의 무게가 느껴져 가슴팍이 뻐근해온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

작가가 어느 탄광을 방문해서 막장까지 들어갔단다.


거기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의 소원은 '땅 위 직업'을 갖는 것이란다.

'땅위 직업'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농사를 지을수록 농협 빚만 늘어가고 결국은 감당할 수가 없어 땅 아래에서 이렇게 지내는데 돈이 모아지는데로 고샹에 가서 농사짓는 것이 소원이란다.

 

'땅위의 직업'이 소원...
이 시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가슴팍에 와 닿을까.

 

그때의 이야기가 생각나다 보니 위의 막장에서의 동상들의 표정과 어깨에 짓눌려지는 무게를 느껴보지만 나 또한 얼마나 알량하게 그 무게를 느낄 것인가.

 

 

 

 


(▲ 탄광문화촌에서)

 

또 그곳에는 1960~1970년대 탄광지역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아 그 시절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과 고뇌, 힘듬,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도록 해놓았단다.


이러한 곳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 세대부터는 탄광촌은 그저 소설에서 보는 짧은 설명으로, 역사시간에 들리는 아련한 소리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 봉평에서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다.


“엄마, 정말 우리 여기 잘왔다. 그치??”

이제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서서히 울진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웰컴투 동막골 셋트장’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주현이가 이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게 웬떡인지...


우린 입을 다물지 못하며 환호했다.
박기사가 데려다 줄지 아닐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그러나 주현이가 환호가 들리자마자 핸들을 좌측 표지판이 얌전히 안내하는 곳으로 꺾는 우리들의 박기사

그곳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아주 산속 깊은 곳이었다.
산아래 첫동네이면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곳이었다.


정말 사방이...

어느 한 쪽도 탁 트인 풍광이 아니고 바구니처럼 그렇게 옴팍하게 들어앉은 형상의 외지고 외진 곳이었다.

 

그곳은 그나마 다른 셋트장보다는 잘 보존이 되어 있었고 관리의 손질이 보여져 주현이의 환호소리가 땅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하늘에 떠있게 해주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지만 보는 즐거움은 그 비를 말리고도 남았다.


그곳 한 켠에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입었던 옷과 총, 모자 등을 빌려주고 있었다.
물론 주현이는 강혜정이 입고 썼던 가발을 빌렸다.

 

빌리는 비용은 단돈 천원.
너무 싸다 싶었다.


시골의 맘씨 좋아보이는 아저씨께서 돈을 받으시는데 자꾸 너무 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돈을 모으면 마을분들이 이곳을 유지하고 보존하는데 사용하실텐데 그에 비하면 ....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주현이가 또 오빠랑 함께 못온 것을 후회한다.
‘오빠랑 같이 왔더라면...’하는 마음이 여행 내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모양이다.

 

 

 

 

주현이가 강혜정이 입었던 옷과 썼던 가발을 뒤집어 쓰고 포즈를 취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던진다.

 

이 때는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처럼 해야 맞단다.
머리를 계속 비비 돌리면서 정신줄을 놓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셋트장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벌써 오후 5시가 되었다.
비도 오고 서둘러 울진으로 향해야 한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선우를 데리고 산골 집으로 가야한다.

 

저녁을 먹으려고 면 단위로 찾아갔다.
막국수집에도 가고 중국집에도 가고 다 돌아다녀봐도 식당이 장사하는 집이 없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곳 중학교 체육대회여서 장사를 다 안한단다. 거기서 먹느라고...

배는 고프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트에서 빵 등을 사서 차 안에서 먹었다.


차로 이동하고 노동을 안하다 보니 배고픔을 다 놓았다.
결국은 학교에서 끝난 선우를 읍에서 태우고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니 어설펐지만 오랜만에 온가족이 만났으니 어떤 것을 먹은들 맛나지 않을까.

주현이는 오빠가 아쉬워할까봐 여행 이야기를 많이 안하는 눈치다.


선우가 그 마음을 알고 오빠는 그런 생각 없다고...어차피 고3이니 학교의 일정대로 해야 하는 일이라 상관없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어디 어디를 갔었는데 하며 말을 시작한다.

 

 

 

단 이틀의 여행.


정말 아무 준비없이, 아무 계획없이 길을 나섰는데 어느 여행때보다 알찼다.
양떼 목장에서의 실망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 부부에게는 교훈이었다.
정말 교훈이었다.


오히려 배울 점은 양떼 목장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랬으니 모두 정말 잘 들렸다.


아마 몇날 며칠 계획을 세워도 이렇게 다양한 체험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내 둥지로 돌아왔다.


여행에서의 그 느낌, 묵상, 웃음, 행복감을 간직한체 다음 여행을 뜰 때까지 다시 ‘열심히 일한 당신’이 되자고 했다.
그래야 다음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를 다시 외치며 길을 나설 수 있지 않냐며....

 

여행다녀온 자의 얼굴에서는 어떤 이유모를 아우라같은 것이 있음을 또 확인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산골편지]   |  2009. 1. 24. 13:29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크 트웨인이 “뉴잉글랜드 지방은 아홉 달은 겨울이고, 석 달은 썰매타기에 나쁜 날씨”라고 했다는데 산골도 만만치가 않다.
10월부터(9월에도 간간히) 나무를 때기 시작해서 얼추 5월까지는 그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낮의 기온은 봄이라 하더라도 밤기온은 현저히 곤두박질치니 거의 한 해의 반은 나무를 부등켜안고 살아야 한다.

요즘 그나마 지구온난화로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는 하나 산골의 겨울은 이러나 저러나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장작더미 몇 개를 거덜내고서야 끝의 기미가 보인다.

지금 산골의 연통에서는 펑펑 연기가 잘도 나온다.
아무리 불경기라지만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은 풍요롭기만 하다.

*************************

난 사실 TV를 틀줄 모른다.
도시에서야 기본 채널을 틀면 나왔지만 산골은 스카이 라이프인지 뭔지가 있어야 TV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리모콘의 버튼을 이러 저리 공기돌 놀리듯 돌리면 엄청 많은 채널의 방송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아는 분이 메가 TV인지 뭔지 하나 신청해 달라고 하여 끄덕였더니 TV트는 일이 더 복잡스러워졌다.
단순해도 볼까말까한 TV를 더 틀일이 없다보니 난 혼자 틀줄도 모르게 되었다.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더러 TV에 목매일 일이 없으니 불편하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다.
같은 시간을 주고 TV볼래, 책 볼래 하면 난 단연 후자이니 그깟 TV를 못튼다고 하여 아리고 씨릴 일도 없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초보농사꾼이
“당신이 좋아할 프로가 있어”하며 나를 끌어다 앉히고 채널을 돌려준다.
타샤 튜더 할머니에 대한 방송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타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맘이 많이 설겅거렸었다.
그 속내를 아는 초보농사꾼이 그런 마음을 쓴 것이다.

이 프로는 그 분이 돌아가시고 한국인 둘째 며느리랑 동행하면서 찍은 것이다.
그토록 화려하고, 귀티나고, 품격있고 아기자기하던 그 화원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주인의 그 온기가 사라지자 그 짧은 시간에 정원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 분신과도 같은 정원을 두고 어떻게 신발을 둘러 신으셨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에 젖어 있는데 TV에서 며느리의 이 말이 귀에 박혔다.
타샤 할머니는 나이들어서의 삶을 너무 좋아하셨다고 했단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고...


많이 의아했다.
과연 그럴까.
누구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며느리의 이야기가 계속 되면서 내 의문은 안개걷히듯 사라졌다.

타샤 할머니는 젊어서 이혼을 하고 아이들 셋의 책임을 져야 했단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 팔면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 가장이 된 것이다.


그것도 힘들 판에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침튀기는 상처가 더 젊은 여자 가장은 버거워 했다는 거다.

신기한 일이다.


남의 일에 그리들 침튀기는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왜 깡통은 차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것은 지구상의 악습인가보다.
젊어서는 혼자 벌어 아이들 키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겨워 했다고 했다.


그런 무게를 벗게 되었을 때는 새털처럼 어깨가 가벼웠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부터의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사는 삶이었으니 그 나이가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생각에 미치자 이해가 되었다.


그러다 박경리님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유고 시집을 사게 되었다.
그 시집을 읽으며 박경리 할매와 타샤 할매가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박 할매 역시 결혼한지 4년만에 남편과 사별하여 가장이 되었단다.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가 두 할매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심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번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렇게 시는 끝이 났다.
가장으로서의 힘듬도 힘듬이었겠지만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이 으르렁거렸다고 했다.
그 짐승이 무엇이겠는가.

남에게 상처주는 일.


남의 일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모습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음이 분명하다.
지금의 내 상처를 봐도 그렇고...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이 풍진 세상에 왜 그런 일에 사람들은 흥미로워할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박 할매 역시 그냥 두어도 힘든 가장인데 대문 밖 짐승들은 늘 그렇게 발톱을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모진 세월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며 숨통트여 한 것이다.

타샤 할매는 그나마 위로자가 꽃과 나무였을 것이고, 박 할매는 글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분은 늙어서야 편안함을 느끼고 홀가분해 하신 것같다.

오늘 두 분의 책을 다시 읽었다.
책을 유독 느리게 읽는 내가 두 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두 분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는 이 두 분의 삶을 내 삶에 접붙이며 살의 상채기를 돌보아야 한다.

살면서 남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양면성이 있어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우리는 전자에 관심을 갖을 일이다.
돈 안드는 말이라고 함부로 해버려서도 안되며, 내 일이 아니라고 감놔라 대추놔라 쉽사리 판단하여 세 치 혀를 놀릴 일도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밤이다.

남의 말할 일이 아니고 내 단속이나 잘 할 일은 아닌지...
내 안의 나에게 여러 번 묻고 또 물어본다.

(사진은 불영사의 모습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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