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트웨인이 “뉴잉글랜드 지방은 아홉 달은 겨울이고, 석 달은 썰매타기에 나쁜 날씨”라고 했다는데 산골도 만만치가 않다.
10월부터(9월에도 간간히) 나무를 때기 시작해서 얼추 5월까지는 그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낮의 기온은 봄이라 하더라도 밤기온은 현저히 곤두박질치니 거의 한 해의 반은 나무를 부등켜안고 살아야 한다.
요즘 그나마 지구온난화로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는 하나 산골의 겨울은 이러나 저러나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장작더미 몇 개를 거덜내고서야 끝의 기미가 보인다.
지금 산골의 연통에서는 펑펑 연기가 잘도 나온다.
아무리 불경기라지만 그것을 보는 이의 마음은 풍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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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TV를 틀줄 모른다.
도시에서야 기본 채널을 틀면 나왔지만 산골은 스카이 라이프인지 뭔지가 있어야 TV가 나온다.
그러다 보니 리모콘의 버튼을 이러 저리 공기돌 놀리듯 돌리면 엄청 많은 채널의 방송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아는 분이 메가 TV인지 뭔지 하나 신청해 달라고 하여 끄덕였더니 TV트는 일이 더 복잡스러워졌다.
단순해도 볼까말까한 TV를 더 틀일이 없다보니 난 혼자 틀줄도 모르게 되었다.
배우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더러 TV에 목매일 일이 없으니 불편하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다.
같은 시간을 주고 TV볼래, 책 볼래 하면 난 단연 후자이니 그깟 TV를 못튼다고 하여 아리고 씨릴 일도 없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초보농사꾼이
“당신이 좋아할 프로가 있어”하며 나를 끌어다 앉히고 채널을 돌려준다.
타샤 튜더 할머니에 대한 방송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타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맘이 많이 설겅거렸었다.
그 속내를 아는 초보농사꾼이 그런 마음을 쓴 것이다.
이 프로는 그 분이 돌아가시고 한국인 둘째 며느리랑 동행하면서 찍은 것이다.
그토록 화려하고, 귀티나고, 품격있고 아기자기하던 그 화원은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주인의 그 온기가 사라지자 그 짧은 시간에 정원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 분신과도 같은 정원을 두고 어떻게 신발을 둘러 신으셨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에 젖어 있는데 TV에서 며느리의 이 말이 귀에 박혔다.
타샤 할머니는 나이들어서의 삶을 너무 좋아하셨다고 했단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고...
많이 의아했다.
과연 그럴까.
누구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며느리의 이야기가 계속 되면서 내 의문은 안개걷히듯 사라졌다.
타샤 할머니는 젊어서 이혼을 하고 아이들 셋의 책임을 져야 했단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 팔면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 가장이 된 것이다.
그것도 힘들 판에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침튀기는 상처가 더 젊은 여자 가장은 버거워 했다는 거다.
신기한 일이다.
남의 일에 그리들 침튀기는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왜 깡통은 차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것은 지구상의 악습인가보다.
젊어서는 혼자 벌어 아이들 키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겨워 했다고 했다.
그런 무게를 벗게 되었을 때는 새털처럼 어깨가 가벼웠을 것이다.
그러니 그때부터의 삶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사는 삶이었으니 그 나이가 얼마나 좋았을까...
그 생각에 미치자 이해가 되었다.
그러다 박경리님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유고 시집을 사게 되었다.
그 시집을 읽으며 박경리 할매와 타샤 할매가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박 할매 역시 결혼한지 4년만에 남편과 사별하여 가장이 되었단다.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가 두 할매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옛날의 그 집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심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번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렇게 시는 끝이 났다.
가장으로서의 힘듬도 힘듬이었겠지만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이 으르렁거렸다고 했다.
그 짐승이 무엇이겠는가.
남에게 상처주는 일.
남의 일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모습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음이 분명하다.
지금의 내 상처를 봐도 그렇고...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이 풍진 세상에 왜 그런 일에 사람들은 흥미로워할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박 할매 역시 그냥 두어도 힘든 가장인데 대문 밖 짐승들은 늘 그렇게 발톱을 세웠던 것이다.
그래서
‘모진 세월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며 숨통트여 한 것이다.
타샤 할매는 그나마 위로자가 꽃과 나무였을 것이고, 박 할매는 글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분은 늙어서야 편안함을 느끼고 홀가분해 하신 것같다.
오늘 두 분의 책을 다시 읽었다.
책을 유독 느리게 읽는 내가 두 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두 분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 모두는 이 두 분의 삶을 내 삶에 접붙이며 살의 상채기를 돌보아야 한다.
살면서 남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양면성이 있어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우리는 전자에 관심을 갖을 일이다.
돈 안드는 말이라고 함부로 해버려서도 안되며, 내 일이 아니라고 감놔라 대추놔라 쉽사리 판단하여 세 치 혀를 놀릴 일도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밤이다.
남의 말할 일이 아니고 내 단속이나 잘 할 일은 아닌지...
내 안의 나에게 여러 번 묻고 또 물어본다.
(사진은 불영사의 모습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