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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 깜짝여행 2탄
+   [산골편지]   |  2011. 3. 18. 14:35  

2010년 5월 22일

 

낯선 곳에서의 아침은 늘 두근거린다.
비록 찜질방에서의 아침을 맞았지만 이내 여기가 길 위라는 생각이 들자 그 설레임 또한 신선했다.

 

부시럭거리며 미니 담요을 갰다.
찜질방에서 자도 우리 주현이 것만큼은 미니 담요를 덮어주려고 가져간(초보농사꾼 몰래 챙긴 거다. 별나게 군다고 할까봐.) 것을 주섬주섬 개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잤던 주현낭자가 씩 웃더니  롤러코스트를 타자는 거였다.


나는 사실 아무리 쉽고 완만하고 특이할 것 없는 놀이기구라도 그런 것을 당최 못탄다.
어지러워서...현기증이 심하고...

 

아이들이 어려서 에버랜드에 몇 번 갔었는데 시시하다고 꼬맹이들만 타는 놀이기구도 자신없어 했다.
그러나 애들이야 당연히 엄마랑 아빠랑 같이 타고 싶어하지...

 

그 마음은 알아가지고 용기내어 탔다가 못내려 도우미들이 와서 부축해서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애들도 그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주동자 주현낭자가...

 

내가 롤러코스트를 타는 입구에 턱하니 붙여놓은 그림으로 보니 타고 있는 애들이 놀라 소리소리 지르는 사진이더만...
롤러코스트라니 무슨 소리냐고 살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랑 같이 재미있게 타려고 했는데....’하며 포기를 하는 소리를 들으니 이거 에미로서....

‘그래, 인생 뭐 있냐, 타보는 거지’하고는 두 당 3천원씩 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앞에 탄 팀들이 지르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자 내가 들어갔을 때의 어려움이 불보듯 뻔했다.

 

그러나 우리 딸이 오랜만에 엄마랑 타고 싶다는데...
이게 사람 죽이는 소리다. ㅎㅎ

 

 

 


(▲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하여간 우리 순서가 되어 탔다.


그런데 우리랑 같이 탄 어린이랑 우린 찍소리도 안했다.


같이 탄 어린이는 찜질방 아저씨가 너 또 왔냐고 할 정도로 단골인 것같으니 당연했고, 우리 주현이는 번지점프도 한 여성이라 그런지 찍 소리도 안나왔다.

아마 밖에서 돈받는 아저씨가 어쩌면 제일 걱정이 심했을 것이다.


‘이 팀들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쥐소리도 안들리니...‘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겁쟁이 소피아는 왜 찍소리를 안했을까요???

우리 주현이가 딱 맞췄다.


우리 엄마 분명히 눈감고 있었을 거라고...
사실 눈을 떠야 본전을 빼는 건데 4D영상으로 보는 것을 눈을 감고는 몸으로만 흔들리는 것만 느꼈으니 뭐 기절할 정도가 아니었던 거였다.

 

 

 

 


(▲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봐야 주현이랑 느낌을 말할텐데 걱정이 되어 실눈을 뜨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질 않나, 담벼락에 부딪치지를 않나 난리가 아니라 찜질복이 벌써 젖어오고 붙잡은 손잡이 사이에 땀이 끼어들어 미끄덩거렸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돈만 버린 꼴이 되었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탔기 때문에 주현이는 그래도 엄마랑 탔다는 것이 되었을 것이니 후회는 없다.

 

내가 그곳에서 나오자 초보농사꾼이 웃는다.
그 웃음을 안다.


초보농사꾼도 내가 그런 것에 잼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찜질방에서 나와 아침으로 추어탕을 먹었다.


주현이가 처음엔 추어탕 이야기가 귓구멍에 도착하자마자 인상을 쓴다.
아마 학교에서 주는 추어탕에 질린 모양이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니었겠지.
그랬단다.

 

그렇다면 추어탕의 이미지도 다시 주입시킬겸해서 추어탕집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이건 완전히 다른 맛이라며 아주 잘먹는다.

 

이제 배도 든든하겠다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했다.
이번에 들린 곳은 ‘박경리 문학공원’


난 공원이라는 말이 영 걸렸다.

그냥 그분의 이름만 따서 공원을 만든 것이려니 생각했던 거다.


그럴 바에는 문학관을 찾아가자고 했는데 초보농사꾼은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발길이 닿는대로 가는 거라고 한다.

‘아, 예,예.... 박기사님이 어련히 잘 데리고 다니실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곳은 박경리 선생님께서 1980년부터 1998년까지 약 18년 정도를 이곳에서 사시면서 대하소설 토지의 4부와 5부를 집필하시고 완간하신 곳이란다.

 

 

 

 

책에서 이 집을 보았었는데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다니.
그 분의 체흔이 느껴지고, 그 분이 동물들의 먹이를 챙겨 먹이시느라 부르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리는 것같다.

 

선생님은 이곳에서 치열하게 글을 쓰시고, 외로움과 고독을 끌어안으며 자신을 지탱하셨을 것이다.
여기서 외로움은 내가 늘 말하지만 바로 옆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다.

 

그러면서 옆의 텃밭에서 고추도 심으시고, 상추도 가꾸시며 사셨을 그 흔적을 재연하여 찾는 이들이 집을 향해 선생님을 큰소리로 부르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감탄한 부분이 그것이었다.
다른 곳 같았으면 이렇게 했을까.

 

그러니까 선생님이 쓰셨던 바로 그 텃밭을 지금도 그 모습대로 보여주려 파도 심고, 상추도 심고 배추, 호박 등을 소박하게 심어 놓았다.
그 섬세한 배려와 마음씀이 그것을 관리하고 보전하려 애쓰는 원주시에 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집 울타리 안의 텃밭에 또 울타리를 쳐 놓은 것이리.


한국 사람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꼭 들어가고, 개념 없는 사람들 꼭 들어가서 확인하고 사진 찍느라 짓밟으니 아예 나무로 울타리를 쳐 놓았다.

그런 것은 ‘허브나라 농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애가 꽃밭으로 들어가 다 짓밟고 다녀도 내 자식 체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엄마, 내 자식 사진도 되도록 들어가서 꽃을 만지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직 멀었구나’싶었다.

주현이는 박경리 선생님의 시를 읽어주곤 했고 ‘토지’를 읽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서 관심이 많았다.


일일이 집 주위도 둘러보고 청동으로 사진찍으라고 만든 선생님 동상 무릎에 앉아서 포즈도 취했다.

그 동상은 사람들이 선생님 무릎에 앉도록 만들어 놓아 찾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그 분의 마음을 가져가도록 배려해 놓았다.

 

 

 

 

집 바로 앞에 연못을 만들게 된 이유 등을 다 기록해서 세워놓았다.


그러다 보니 바로 현관문을 열고 선생님이 나오실 것만 같았다.
집을 둘러서는 그 분의 시가 여러 번 오는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읽는 내내 애려온다.
그 분의 시집에서도 읽었지만 글쓰는 사람의 고독, 외로움, 을씨년스러움이 묻어나오는듯하다.


거기다가 ‘대문 밖 짐승들’(시의 표현)은 얼마나 쓸데 없이 남의 일에 손톱을 세우는지....
주현이도 거기에 세워진 선생님의 시를 찬찬히 읽는다.

 

나 역시 그 시들이 수동타자기에 박히는 소리가 순서대로 들린다.
수동타자기의 그 글씨 판이 서로 꼬이면 손으로 떼어주면서 치는 그 수동타자기.

 

박경리 선생님은 원고지에 펜으로 눌러 쓰셨을텐데 왜 수동타자기가 자판이 내 가슴에다 대고 이 시를 쳐댔을까.
따다닥 따다닥...두르륵(이건 행갈음하는 소리다. 수동타자기를 쳐본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 선돌의 모습이다. 두 박씨만 구경했다.)

그곳에서 말했다.


주현이가 ‘토지’를 읽어야 하는데 시작하겠냐고...
알았단다.

 

하기야 지금 박경리 선생님이 사시던 실제 집에 와본다며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 말은 쥐약이었을 것이다.^^
안그래도 읽으려고 했는데 워낙 긴 작품이라 사실 엄두가 안났다고 한다.

 

지금 주현이가 읽고 있는 독서량으로도 난 만족하고 대견하지만 더 늦기 전에 ‘토지’를 들이밀어야 했다.

다음에 우리를 선돌로 모신단다. 박기사가.


선돌로 모시던, 누운 돌로 모시던 모셔봐봐...

그리고는 내가 잔 모양이다.


선돌이라며 내리라는데 이거 여행떠나기전에 밤새 책읽은 후유증이 사람죽인다.
선돌이야 몇 번 가본 곳이니 박씨들만 다녀오라고 했다.


물론 곱게 가겠는가.
여행 온 사람이 저렇다느니, 온갖 야유를 다 귓구멍으로 아련히 쑤셔 넣어주고 두 박씨가 갔지만 어쩌랴.

 

 

 


(▲ 탄광문화촌에서)

 

두 박씨가 돌아오기에 선돌이 잘 서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렇게 세 사람의 웃음까지 싣고 가느라 우리 차의 무게는 훨씬 무거웠으리.

박기사님의 말씀으로는 이번엔 탄광문화촌으로 간단다.


이곳에 갈 때까지도 혼수상태에서 헤어나질 못해 탄광문화촌 체험도 두 박씨들만 했다.
이번의 야유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드셌다.

 

내 몸을 내 몸대로 못하겠고, 정신도 왜그리 오락가락하는지...
어제 찜질방에서도 주현이를 데리고 자다보니 신경이 엄청 쓰였다.


자다 일어나고, 자다 일어나고...
그 와중에 남녀들이 왜그리 내 방인양 떠들고 난리인지...

 

 

 


(▲ 탄광의 막장까지 가보고)

여하튼 난 바로 고 시간에 혼수상태중에 있었다.

 

다녀온 두 박씨들이 더 흉보기 전에 난 깨어 차 밖으로 나가 정신을 불러들였다.
나 이제 정신이 안들어오면 이거 여행 모두 황이라고...


서서히 정신이 들어오고...
밖을 서성이는데 빗방울이 좀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 탄광문화촌에서)

 

저 멀리서 두 박씨들이 웃으며 온다.


어떻드냐고 물으니 막장까지 가보고 온단다.
순간 우스개소리인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그랬다.

 

막장을 보고 우리가 흔히 쓰는 인생 막장 운운하는 것이 이 막장을 말한다고 주현낭자에게 초보농사꾼이 설명해준 모양이다.

막장....


사진으로 보는 동상의 표정에서도 삶의 무게가 느껴져 가슴팍이 뻐근해온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

작가가 어느 탄광을 방문해서 막장까지 들어갔단다.


거기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의 소원은 '땅 위 직업'을 갖는 것이란다.

'땅위 직업'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농사를 지을수록 농협 빚만 늘어가고 결국은 감당할 수가 없어 땅 아래에서 이렇게 지내는데 돈이 모아지는데로 고샹에 가서 농사짓는 것이 소원이란다.

 

'땅위의 직업'이 소원...
이 시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면 얼마나 가슴팍에 와 닿을까.

 

그때의 이야기가 생각나다 보니 위의 막장에서의 동상들의 표정과 어깨에 짓눌려지는 무게를 느껴보지만 나 또한 얼마나 알량하게 그 무게를 느낄 것인가.

 

 

 

 


(▲ 탄광문화촌에서)

 

또 그곳에는 1960~1970년대 탄광지역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아 그 시절 탄광촌 사람들의 애환과 고뇌, 힘듬,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도록 해놓았단다.


이러한 곳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 세대부터는 탄광촌은 그저 소설에서 보는 짧은 설명으로, 역사시간에 들리는 아련한 소리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 봉평에서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다.


“엄마, 정말 우리 여기 잘왔다. 그치??”

이제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서서히 울진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웰컴투 동막골 셋트장’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주현이가 이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게 웬떡인지...


우린 입을 다물지 못하며 환호했다.
박기사가 데려다 줄지 아닐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그러나 주현이가 환호가 들리자마자 핸들을 좌측 표지판이 얌전히 안내하는 곳으로 꺾는 우리들의 박기사

그곳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아주 산속 깊은 곳이었다.
산아래 첫동네이면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쳐진 곳이었다.


정말 사방이...

어느 한 쪽도 탁 트인 풍광이 아니고 바구니처럼 그렇게 옴팍하게 들어앉은 형상의 외지고 외진 곳이었다.

 

그곳은 그나마 다른 셋트장보다는 잘 보존이 되어 있었고 관리의 손질이 보여져 주현이의 환호소리가 땅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하늘에 떠있게 해주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지만 보는 즐거움은 그 비를 말리고도 남았다.


그곳 한 켠에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입었던 옷과 총, 모자 등을 빌려주고 있었다.
물론 주현이는 강혜정이 입고 썼던 가발을 빌렸다.

 

빌리는 비용은 단돈 천원.
너무 싸다 싶었다.


시골의 맘씨 좋아보이는 아저씨께서 돈을 받으시는데 자꾸 너무 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돈을 모으면 마을분들이 이곳을 유지하고 보존하는데 사용하실텐데 그에 비하면 ....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주현이가 또 오빠랑 함께 못온 것을 후회한다.
‘오빠랑 같이 왔더라면...’하는 마음이 여행 내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모양이다.

 

 

 

 

주현이가 강혜정이 입었던 옷과 썼던 가발을 뒤집어 쓰고 포즈를 취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던진다.

 

이 때는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처럼 해야 맞단다.
머리를 계속 비비 돌리면서 정신줄을 놓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셋트장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벌써 오후 5시가 되었다.
비도 오고 서둘러 울진으로 향해야 한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선우를 데리고 산골 집으로 가야한다.

 

저녁을 먹으려고 면 단위로 찾아갔다.
막국수집에도 가고 중국집에도 가고 다 돌아다녀봐도 식당이 장사하는 집이 없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곳 중학교 체육대회여서 장사를 다 안한단다. 거기서 먹느라고...

배는 고프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트에서 빵 등을 사서 차 안에서 먹었다.


차로 이동하고 노동을 안하다 보니 배고픔을 다 놓았다.
결국은 학교에서 끝난 선우를 읍에서 태우고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으려니 어설펐지만 오랜만에 온가족이 만났으니 어떤 것을 먹은들 맛나지 않을까.

주현이는 오빠가 아쉬워할까봐 여행 이야기를 많이 안하는 눈치다.


선우가 그 마음을 알고 오빠는 그런 생각 없다고...어차피 고3이니 학교의 일정대로 해야 하는 일이라 상관없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어디 어디를 갔었는데 하며 말을 시작한다.

 

 

 

단 이틀의 여행.


정말 아무 준비없이, 아무 계획없이 길을 나섰는데 어느 여행때보다 알찼다.
양떼 목장에서의 실망감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 부부에게는 교훈이었다.
정말 교훈이었다.


오히려 배울 점은 양떼 목장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랬으니 모두 정말 잘 들렸다.


아마 몇날 며칠 계획을 세워도 이렇게 다양한 체험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내 둥지로 돌아왔다.


여행에서의 그 느낌, 묵상, 웃음, 행복감을 간직한체 다음 여행을 뜰 때까지 다시 ‘열심히 일한 당신’이 되자고 했다.
그래야 다음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를 다시 외치며 길을 나설 수 있지 않냐며....

 

여행다녀온 자의 얼굴에서는 어떤 이유모를 아우라같은 것이 있음을 또 확인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편지,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는 일
+   [산골편지]   |  2011. 3. 16. 15:56  



뒷말 없이, 날개 없이 떨어지는 복사꽃을 보며 나도 어떤 행위를 하면서 그렇듯 조건 없고, 뒷말 없어본 적이 있는가 되물어 본다.

대낮에는 땅에 코를 박고 내 얼굴로 흐르는 땀냄새를 양념으로 맡다가 부은 얼굴로 집으로 향하는 시간, 그 시간은 얼마나 가슴이 뿌듯한지 모른다.


요즘 비노바 바베의 말이 자주 생각난다.
“내가 말하는 명상이란 기도와 탈키(또는 차르카) 물레질을 모두 의미하는 것이며, 탈키 물레질은 행동으로 표현한 명상이다”라고 했다.


그렇듯이 나 또한 대지에 코를 박고 챙 큰 모자 안이 우주인 듯 그 안에서 명상을 하고, 땀을 흘리다 보면 하루 해를 등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여름안거를 마치고 나서는 스님의 발걸음만큼 가볍다.


그렇게 들을 내려와 집으로 향할 때 두 농부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아는체하는 개복숭아 나무.
뿌연 어둠이 내리는지, 돋보기를 많이 쓴 탓에 눈이 맛이 갔는지 눈깔빠지게 들여다 봐도 복사꽃의 선명함은 맛보지 못했다.


내가 그런 성실하지(?) 못한 처지로 바라보아도 연한 핑크인지, 인디언 핑크인지, 허여멀건 핑크인지 하는 복사꽃잎이 농부를 위해 하늘하늘 땅으로 자세를 낮춘다.


나도 누군가에게 뒷말없이, 조건없이 행동한 적이, 자세를 낮춘 적이 있는지 괜시리 미안스러워지는 밤이다.
오늘은 귀눈이 콩만한 복사꽃이 내 혼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


귀농하고 두 해인가 모를 심어봤다.
집이 딸린 6천평 땅 중에 세 다랑이나 되는 논이 있었다.


그것도 집 바로 앞 황금위치에...

논농사는 밭농사와는 달리 물에서 하는 일이다.


우선 봄에 모심기를 할 때면, 엉덩이를 하늘로 높이 치켜 세우고 모 몇 가닥을 다섯 손가락을 오무린 끝에 살포시 쥔 다음 땅에 박아야 한다.

이 때, 힘의 분배가 절정을 이루어야 한다.


너무 깊이 박으면 모의 모가지까지 물이 차서 죽게 된다.

그렇다고 힘을 빼서 꽂으면 내 손이 물 속을 빠져나오자마자 모도 얼떨결에 따라나와 수영장의 튜브처럼 둥둥 배회하고 다닌다.


내게는 수능만큼 어려운 모를 하나 심고 나서 다음 모를 심기 위해 발을 빼려면 논바닥 밑에 귀신이 달라붙어 있는지 도통 발목을 잡고 놓아줘야 말이지.

어찌어찌 허벅지에 힘을 주고 한 발을 빼면 그 옆 발이 안빠지네.


그렇다고 달랑 모 하나 심고 쳐들었던 엉덩이를 원위치시키고 직립 인간임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꼿꼿이 서서  발 빼는 작업에 있는 힘 다 빼고 언제 또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옆 모를 심는단 말인가.


그래도 자존심 하나는 꼿꼿해서 허리를 펴지 않고 눈깔빠지게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경배를 했었다.

난 모를 잘 심을줄 알았다.


왜냐 하면 난 손이 잽쌌기 때문이다.
단순 반복 작업이라면 손이 안보일 정도로 실력을 발휘해 왔던 전력으로 보아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모내기를 하기 전 옷맵시부터 프로는 다르다는 되먹지 않은 생각으로 여물게 챙겨입고 의기양양하게 ‘논으로 돌진’이라는 초보농사꾼의 명령이 떨어지길 모가지에 힘주고 기다렸었다.


그러나 사단은 논에 들어가자마자 났다.
일단 들어가면 발이 빠져야 잰 손을 놀리든지 말던지 할게 아닌지.


어쩌다 발이 떨어진다 해도 물 속의 모간 간격이 영 어른거려 그것 눈대중치느라 또 분기탱천하던 사기는 논바닥에 패대기쳐지기 일쑤였다.

물밖 눈대중은 귀신인데 물 속 눈대중은 죽어도 안되었다.


르노아르는 장미를 그리다가 잘 안되면 장미꽃잎을 따서 먹었단다.
혹여 그러면 잘 그릴까해서란다.


그때 심정이라면 모라도 씹어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점점 사기는 떨어지고 하늘로 쳐든 엉덩이 중간은 부러질 듯 아프고 이래저래 내 맘대로 안되니 거의 논바닥에 얼굴을 닿을 듯 쳐내린 탓에 피가 몰려 건드리기만 해도 분수처럼 사방으로 피가 튈 것같았다.


혼자서도 내 자신을 수습못하고 있는 판에 산통을 깨는 쪽은 꼭 초보농사꾼이었다.
왜 옆으로 이동을 못하고 한 자리에 북박이라느니,

모심던 선우 엄마 뒷간 갔느냐느니...

다른 아주머니들도 웃겨 죽는단다.


안그래도 단순반복 작업을 잘한다고 되어 있는 나의 이미지에 금이 간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초보농사꾼까지 가세를 하니 그 말의 모서리에 찔려 논바닥에 박은 종아리에서 거머리에 물린 것처럼 피가 날 것같았다.

사실 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나의 손놀림을 믿어왔기에 그 상심은 아주 컸다.


이쯤되면 눈에 세운 핏대와 자존심을 누그러뜨려야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성질머리와 자존심은 뭣같아서 그러고도 논에서 오래 버텼다.

그 후로 난 논에 들어가지 않았다.


모심는 날이 닥아오면 나쁜 머리를 총동원하여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물 밖의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핏대를 세워가며 초보농사꾼 귀에 넣어주었고 단순한 그는 어렵지 않게 세뇌되었었다.


어쨌거나 논농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웃 할아버지가 당신이 들어갈 묘자리에 물길이 지나가면 안된다고 우리 논으로 들어오는 보를 막아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가 이사오기 전에는 멀쩡히 그 가묘자리로 물길이 지나가도 전 주인이 논농사를 잘 하셨다는데 우리가 뭣도 모른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런 일이 생겼다.


초보농사꾼은 말싸움이 싫어 논을 닫아 걸었다.
그것으로서 세 다랑이 되는 논은 논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봄이다.
야콘을 심고나서 고추를 심을 시기가 되면 겨우내 물기 없이 뽀송거리던 마을 논에 물이 찰랑찰랑거리게 된다.


그리고 논을 삶는다(논을 간다는 표현을 이곳에서는 이리 표현한다.), 모를 심는다 분주해진다.

올해는 보무도 당당하게 이웃분의 논에 모를 심어드릴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논 주인이 ‘거부의사’를 밝혀올까 두렵다.
혹여 예전 나의 실력(?)을 기억해내신다면 그럴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어렵다.


솔직히 모심는 실력은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니까.

내일은 야콘즙 포장작업이나 그 재다는 손으로 실력발휘해 가며 쌩소리나게 해치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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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편지,마가렛꽃과 같은 사람냄새
+   [산골편지]   |  2011. 3. 14. 19:00  



2010년 5월 5일

 

올해는 소광리에도 야콘을 심었다.


그곳에 이장을 맡고 계신 분과 작년에 인연이 되었는데 올해 같이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초보농사꾼이 하기로 한모양이다.

지금 현재는 매번 심는 호수밭과 답운재밭에 야콘을 심었다.


달밭은 농사가 잘 안되어 소나무를 심었고, 답운재밭의 일부도 길로 나가는 부분이 있어서 야콘은 안심고 감자를 심었다.

그리고 소광리에 농사를 지으러 오늘까지 딱 3일 다녀왔다.


책 원고가 마무리 안된 상태라 머리가 한가롭진 않았지만 인도의 비노바 바베의 말대로 노동의 환희와 노동의 기적을 알기에 초보농사꾼과 함께 빨간 원피스 작업복을 입고 빨간 장화 신고 나섰다.

그곳은 핸드폰도 안터지는 곳이라서 산골에 연락이 안된다며 걱정 전화를 주신 분도 계셨다.

 

사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하는 일은 신경이 배로 쓰인다.
나 혼자 하는 일이면 힘들면 쉴 수도 있고, 일이 있으면 내일 할 수도 있지만 함께 하는 일이란 기본적으로 더 마음을 쓰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울진읍에 일이 있어서 가야 했지만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소광리로 향했다.
난 일을 못하는줄 알고 오지 않을줄 알았다고 하신다.


일을 하든 못하든 같이 하는 일에는 무조건 마음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내가 한 일은 삽질.
진종일 삽질을 했다.


바람은 불어 흙이 날려 눈으로 코로 들어오고 삽 자체의 무게때문에도 팔에 쥐가 나는 것같았다.
손으로 빨리빨리 하는 일은 잘하는데...

 

난 쥐는 힘이 없어서 사실 무게에 무지 민감하다.
그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하는 일은 배로 힘들어 한다.
그러나 어쩌랴.

 

누군 안힘드나 다 힘들지...
그러니 입을 꾹 다물고 하다보니 중간중간에 신음소리가 막 터져나온다.

 

그렇게 오늘까지 3일을 초보농사꾼과 나 그리고 이장님 부부 이렇게 열심히 일했다.
서로 마음을 챙겨주시니 힘든 일인데도 마음이 가벼웠다.

원래는 2틀 정도면 끝나는데 야콘씨가 남아 조금 더 심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러다 보니 5월 5일 어린이날에 달길님이 산골에 와서 포크레인을 봐주시기로 했는데 어쩌나 했다.

 

그래서 사실대로 일이 하루 더 해야 할 것같다고, 같이 하는 밭이라 빠지기 어렵다고 초보농사꾼이 말씀드렸더니 달길님이 괜찮다며 혼자 가서 하면 된다고...

 

그 일을 다 하고 소광리로 만나러 가겠다고 하셨다는 거다. 초보농사꾼에게...

안그래도 사람도 없는 집에서 혼자 우리 일을 봐주러 먼 길 오시는데 미안스러운 마음이었다.


소광리에서 일을 하면서도 핸드폰이 안터지는데 잘 찾아오실지...
전화로 위치를 알려드리긴 했는데 초보농사꾼이 걱정을 했다.

 

결국 일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핸드폰이 터지는 지역에서 전화를 했다.
달길님은  벌써 다 일을 하고 소광리로 우리를 찾아찾아 헤매셨으나 결국 우리를 못찾고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새 차인데 비포장길도 많은 그 멀고 먼 소광리길을 찾아왔었는데 못만나고...

 

어찌나 마음이 싸하던지...
직장인의 휴일이란 금쪽이 아닌지.

 

그런 분이 그것두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 어린이날 집을 비우고 산골로 와서 포크레인을 손봐주시다니...
사람도 없는 집에서 혼자...

 

불영계곡의 바람도 내 미안한 마음을 알았는데 세차게 바람을 차 안으로 밀어넣어 주었다.
집에 도착해서 초보농사꾼이 내게 아침에 꽃밭에 물을 줬느냐고 한다.


아니라고...
그런데 꽃밭 군데군데 젖었다나...(혹시 나의 노상방뇨를 의심하는 것 아니것지.)

그리고 꽃밭을 보니 마가렛이 심겨져 있었다.


아차, 아까 소광리 이장님댁에서 점심을 먹으려는데 달길님 부인(그러니까 우리 홈 아이디는 달의 노래님)이 전화를 하셨다.

달길님이 산골에 가는데 그 길에 마가렛을 보내려고 하는데 산골에 그것이 있냐는 물음이었다.


없다고 하면서 어린이날 이렇게 달길님이 우리집 일 때문에 산골에 오셔서 어쩌냐고 하니까 남편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그 집에 어린이가 한 명 있는데...

 

그렇게 해서 산골로 오기로 되어 있던 마가렛.
그 하얀 꽃을 달길(김승하 님)님은 포크레인도 다 손봐주시고, 마가렛도 물을 주어가며 일일이 군데군데 심어놓고 가신 거야.

 

포크레인도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초보농사꾼이 산골에 도착하자마자 보더니 내가 옆에서 잔손을 거들었으면 그래도 편하게 했을텐데 내가 없이 혼자서 해야 하니 이렇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플라스틱 통을 놓고 애를 먹으신 모양이라며 달길님께 고생하셨다며 전화를 건다.

그렇게 꽃까지 심어놓으시고 소광리 그 먼길을 우리 본다고 오셨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되돌아 가시는 생각을 하니 찡해왔다.

 

하얀 마가렛이 그 분의 마음처럼 깨끗하다.
이번 농사 일이나 급한 불 끄면 읍에서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

 

요즘 바람이 아주 세다.
그 바람 속에 사람의 향기가 묻어서 달려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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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귀농편지, 산골의 다락방 풍경
+   [산골편지]   |  2011. 3. 10. 17:35  



“그들은 그곳에서 살고, 창조하고 고통받았다.
스스로 택한 고독과 글을 써야만 한다는 긴박감이 언제나 그곳에 도사리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들은 글쓰기의 열정으로 집을 채웠고, 바로 그만큼 집을 사랑했다.
작가들의 삶에서 집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은 작가들의 추억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의 불안을 달래주며, 사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글은 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작가의 집>이라는 책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장 지오노, 장콕토, 윌리엄 포크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그 집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다룬 책이다.

 

난 환장하듯 읽어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닭꼬치처럼 엮여 있었기 때문에....

 

 

 

 

과연 이 유명한 작가들에게만 집이 그런 역할을 할까?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집은 그런 휴식처요, 창조의 산실이요, 사랑을 갈고 닦고 기름치는 정비소인 것이다.

나 또한 집이 그랬다.


처음 귀농한 집은 15평도 안되는, 눈만 씨게 흘겨도 금방 삐뚤어질 것같은 낡은 오두막이었다.
우리집에 오신 최용건 화백님의 표현으로는 김밥 옆구리가 터질 것같아 불안했다는 말씀을 하셨던 그런 오두막이었다.^^

 

 

 

작은 그 오두막은 어린 아이 앞에서도 맥을 못출 것 같이 힘없어 보였지만, 천만의 말씀.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당당함과 노련함이 검으티티한 서까래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었다.

 

그 집은 지금 새로 지은 넓은 집보다도 더 위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흙방의 구들은 늘 가장인 초보농사꾼의 배려로 절절 끓었다.


갈라진 흙벽 사이로 바람이 들락거리며 공기를 바꿔 주었다.

집 안의 공기를 귀신같이 정화해 준다는 무슨무슨 공기청정기 유도 아니었다.


네 가족이 막 귀농해서는 아이들이 어렸고 적응기간도 있기에 그 작은 흙방에서 4식구가 누워 잤다.
그러고도 공간이 남았다.

 

그렇게 누우면 더 많이 갈라진 흙벽 사이로 별들이 혹여 산골가족이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탈새라 밤새 지켜주는 모습이 죄다 보였다.
그 흙집 덕에, 자연 친구들 덕에 이 낯선 곳에서도 마음의 언저리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집은 그런 거다.
이제 새집을 지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좋아하는 현대인들 눈에는 지금 새 집이 번지르르하고 멋들어져 보이겠지만 난 사실 오두막에 마음이 간다.

오두막이 숭늉과 같은 맛이라면 지금 새 집은 스프 같다는 느낌이다.


오두막이 나무타는 냄새처럼 마음 한 자락을 아리하게 해준다면, 새 집은 원두커피 내릴 때의 냄새처럼 가볍게 향기롭다.

오두막이 구수한 사투리같다면, 새집은 똑 뿌러지는 서울 말씨 같은 느낌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오두막은 내 눈물 속에 포크레인 몇 바가지로 사라지고 새 집이 산골에 들어서 있다.

새 집이 싫다는 게 아니라 오두막이 더 정스러웠고, 훈훈했었기에 지금도 가슴 한 자리에 그렇게 오두막은 들어앉아 있다.
얼마 전에 아이들도 나와 같은 소리를 했다.


가끔 오두막이 그립다고...
자연으로 돌아와 살다보니 아이들과 느낌이나 감동도 비슷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새 집을 짓게 되었을 때, 난 모양새나 구조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귀농 전, 내 성격 같았으면 일일이 참견을 했을 것이다

.
이건 요래야 하고, 저건 조렇게 구조를 해야 하고, 여기는 이 모양이어야 하고...
내가 1류 건축가처럼 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들어와 살다보니 겉모양새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뭐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결국은 초보농사꾼이 거의 모든 설계를 다 했다.


다만 한 가지 다락방은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글을 쓰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초보농사꾼은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었고 다락방은 그렇게 해서 얻게 되었다.

 

진중권님이


“나의 다락방은 콜라주 같은 것이었어요.
벽엔 신문을 발라 놓았는데 거기에 수많은 기사들이 있었죠.
그게 초현실주의적으로 다가왔어요.

사용되지 못한 물건들이 있고 같이 있을 수 없는 물건들이 뒤엉켜 있고 어딘가 마법적이었죠....”


라고 한 말을 책에서 읽었다.

 

나에게 있어서 다락방은 “안개꽃과 같은 존재이다”
안개꽃은 다른 꽃의 배경이 되어 주는 꽃이다.


저 자신이 돋보여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뒷배경이 되어주고 다른 꽃을 튀게 해주는 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다락방은 그렇게 편안한 방석처럼 내가 들어서면 나의 배경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내가 기도를 하고 싶으면 촛불의 은은함이 주위를 감싸도록 다른 빛을 자제시키고, 내가 명상을 하고 싶을 때는 다락방의 아주 작은 창으로 새소리만 통과시켜 준다.


내가 글을 쓸 때에는 열어놓은 창으로 솔바람을 실어다 주어 머리를 한없이 맑게 만들어주는 그런 공간이다.

 

그곳은 어떤 강렬한 마음도 자제시켜주는 진정제와 같은 약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낮게 낮게 마음을 주저앉히라고 이명처럼 속삭여주는듯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가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다.

다락방은 노오란색 계단에서 시작된다.


노란 나무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다 오른쪽 벽면으로 머리를 돌려 보면 내 표현으로는 ‘아기자기한’ 우리 언니들 표현으로는 ‘조잡한’ 소품들이 걸려 있다.


주현낭자 어려서 사진도 걸려있고, 꼬맹이 선우가 내복바람으로 책읽고 있는 모습도 걸려있어 오르내릴 때 그 사진을 눈에 넣으며 씩 웃곤 한다.

그리고 내가 자지러지게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은은한 소리를 내주는 풍경들이 몸을 벽에 바짝 기대고 있다.

 

 

 

한 계단씩 올라가며 하나하나 들여다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렇게 올라가는 계단 끝마다에는 시어머님이 평생 자식처럼 아끼셨던 수석들이 새까맣고 뺀질뺀질한 얼굴로 나와 앉아 있다.

어머님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가지실 정도로 수석에 베테랑이시다.
그렇다면 그 분의 외아들인 초보농사꾼의 수석을 보는 안목은???


예전에는 짱돌이라고 해서 어머님께 지청구를 먹었는데 요즘은 변별력이 쬐금 나아졌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친정 엄마가 쓰셨던 재봉틀이 보인다.


아마 일흔 살 이상 잡순 분들은 재봉틀과 미싱이라는 말을 혼용했던 것으로 아는데 내 어설픈 기억으로는 후자가 더 많이 그 세대분들 입에 오르내린 것으로 안다.

 

 

 

재봉틀 알맹이는 내던지고 다리만 남겨놓고는 그 위에 칼라 유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콘솔이다.

그 위에는 사진액자와 동물농장 모습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가 있다.


신혼 때 선물로 받아 지금껏 들여다 보며 침흘리는 것인데 그 미니 도자기 속 그림이 어찌나 풍요로워보이던지...
결국 그쪽으로 나의 삶이 선회할 줄이야.

 

그 옆은 키작은 책꽂이가 새색시처럼 수줍게 앉아 있다.
다락방에도 거실처럼 책꽂이를 아예 집지을 때 짜 넣으려고 했는데 다락방이라 그 무게가 겁나서 포기하고 달랑 이 작은 책꽂이로 만족하고 있는데 볼수록 소박하다.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 박완서님 책 등이 들어 앉아 있다.
그리고 다락방에서 제일 많이  뭉개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이것들은 친정 부모님의 원대로 서울에 말뚝박고 사는 언니가 혼자 쓰기에 좋을 거라며 준 것인데 다 좋은데 내가 숏다리라 발이 편안하게 바닥에 닫지 않는 게 흠이었다.ㅜㅜ

결국은 망설임 없이 톱을 들었다.


그리고는 의자의 다리 길이를 과감하게 잘라냈다.
소가지 없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쓰기 편하면 되는 거지 모양은 뭐 말라비틀어진 모양???‘이라는 후렴을 붙여가며 톱질을 해댔다.

 

 

 

그렇다면 내 앞의 의자도 잘랐느냐?
아니다.


그 자리에는 주로 롱다리가 앉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 내 의자 다리만 절단냈다.

거기에 앉으면 오른쪽으로 난 창으로 소나무 싶이 내 옆구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들어오고 눈을 조금만 내리 깔면 나무장작이 쌓여 있다.

 

보일러 주둥이로 들어갈 번호표를 받아들고 대기중이다.
그들이 대기하는 모습에는 인간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조바심이 없다.

 

이 책상과 붙어 있는 곳에 풍금이 있다.
날카로운 피아노소리와는 달리 풍금소리는 고동소리처럼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울림이 크다.

 

 

 

 

책상 정면으로는 기도하는 자리가 보인다.
이 낮은 자리에 앉을 때야말로 신과 내가 가장 가까이서 투명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초에 불을 댕기고 살포시 눈을 감으면 마음에도 은은한 그 빛이 내리 깔려 어느새 내 몸은 따사로운 들판을 걷는다.
이 순간에 자리를 함께한  '침묵'과 '고독'과 '외로움'이 나를 키우는 퇴비가 된다.

 

피타고라스는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뛰어난 말을 하라‘고 또 다른 정리(?)를 해 주었듯이 난 뛰어난 말을 할줄 모르니 침묵해야 하지만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자신에게 물을 일이다.

 

 

 

그리고 뒤로는 홀로 앉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의자가 하나 있다.
주로 봉사처럼 눈감고 앉아 나를 훑어보는 살벌한 시간을 갖는 곳이다.

 

작은 다락방 구석구석으로 영혼을 데리고 순회하다보면 아주 까만 밤이 주위를 감싼다.
이제 서서히 일어나 다락방 난간에서 통창을 내다보면 하늘에 쫙 깔린 별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들어온다.

 

그 순간은 별의 그 날카로운 모서리에 정수리를 찔린 듯 정신이 바짝 들고, 뽕을 맞은 사람처럼 몽롱해지는 이중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뽕한 사람의 모습이야 영화에서 죄다 똑같이 연기를 하니 간접경험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머리를 산발한 여자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도 저녁에 다락방에 앉으면 어느 새 내 머리는 참빗으로 곱게 빗겨져 빛나고 있다.

 

 

내가 다락방이 그런 공간이듯이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


힘든 나를 대피시킬 수 있는 그런 공간.
그 공간이 좁든, 초라하든, 잡냄새가 나든 그건 상관할 필요가 없다.

 

내가 오두막에서 가장 많이 자신을 닦았듯이 눈에 보이는 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루를 전투를 치르듯 정신없이 산 자신을 토닥여주고, 위로를 해주고, 내일을 위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락방에서 내려갈 때는 아랫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내려간다.
그 아래는 또 다른 세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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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편지, 달밤의 체조
+   [산골편지]   |  2010. 4. 28. 19:25  

 


2010년 1월


겨울과 다른 계절을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람'이다.
다른 계절엔 뜨뜻미지근하게 주구장창 바람이 분다면 겨울의 그것은 한몫에 온다는 거다.


이것 역시 귀농 10년차에 깨달은 것이다.


깨달았다고까지 하면 좀 뻐근하고 알아차렸다고 할 수 있다.

겨울에도 산골에서 밤에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있는데 그건 배드민턴이다.
산골의 한밤중에, 외등 아래서...


그런데 날은 하늘의 별들도 추워 나와 있지 않을 정도로 쌀쌀 맞지만 바람 한 점이 없다.
실바람도 없다.


그러다 어느 날은 뭔 심사가 뒤틀리는지 불어재끼려 들면 금방이라도 차가 코 앞에서 멈출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숲이 찻소리를 낸다.
그런 날은 자주 통창으로 밖을 내다 보게 된다.
누가 왔나 해서...


오늘도 바람의 심사가 안녕하신지 재미지게 산골소녀와 배드민턴을 쳤다.

안그래도 새 학기부터 고등학생이 되는 주현낭자.


이곳에서 원하는 울진고등학교에 가느라 나름대로 애를 썼던 주현이가 날아오를듯 배드민턴을 친다.

한밤중에 신났다고 딸이랑 악을 써도 누가 뭐랄 사람 없으니 좋다.


룰을 어겼다며 서로 목에 핏대를 올리고 시비를 가려도 누가 뭐랄 사람 없으니 좋다.

이 깊은 산골에 달밤의 체조로는 배드민턴 이상 없다.


그런데 누가 뭐랄 사람은 없지만 가을에는 나보다 더 부지런한 다람쥐, 가끔씩 토하는듯한 소리를 내며 짝을 찾는 노루, 개사료에 늘 눈독을 들이는 까마귀, 꿩, 아침이면 모닝콜을 해주는 새들에게는 공해가 될 수 있을테니 좀 자중하며 달밤의 체조를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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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KBS 2TV에서 보세요
+   [산골풍경]   |  2010. 4. 23. 20:0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와 그제 촬영을 했습니다.
방송은

토요일 24일 KBS 2TV의 '오늘'이라는 프로라고 합니다.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한다고 합니다.




촬영이 있는 날 서울에서 다섯 분의 손님이 오셨지요.


손님께 최선도 못하고 촬영도 그렇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이 쓰였습니다.

손님들과는 야콘즙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촬영이 급해서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했어요.
그게 죄송하더라구요.


물론 사전 전화를 하셨기에 촬영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오신다고 하시긴 했어도 손님인데...

물론 처음 뵙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을 어제도 찍고...

오늘 비가 와서 야콘눈을 땄습니다.


그러니까 겨우내 모종용으로 야콘관아를 보관했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칼로 잘랐습니다.
그러니까 감자 눈따는 것 생각하시면 맞습니다.


토요일에 산골 모습을 보시며 봄의 기운과 흙의 기운을 화면을 통해서라도 한번 보세요.

봄이나 추워서 덜덜 떨며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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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풍경, 울진고등학교 기숙사의 휴가
+   [산골풍경]   |  2010. 4. 18. 00:10  


오늘은 주현낭자가 울진고등학교 기숙사에서 휴가를 나오는 날^^이다.
2주에 한번 기숙사에서 나오면 잽싸게 목욕탕을 가서 한바탕 몸무게를 줄인다(?)


주현이는 그 시간도 아깝다며 빨리 산골로 가자고 하지만 일단 땀내고 때빼고 광을 내야 신체 건강상에도 좋다며 그의 말에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달리고 달린다.


주현이가 하도 빨리 산골로 가고 싶다고 하니 고무탄내 나도록 달릴 수밖에...

주현이가 오기 전에 주현이의 곰돌이 인형을 일광욕시켰는데 그것을 알았는지 오자마자 그것을 끌어안고 햇빛 냄새를 맡는다.



 

 집에 오면 진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딸아이
내가 본 것만 해도 5번.
아직은 기숙사가 남의 집 같을 거다.


손님으로 가 있는 기분이 들다보니 시원히 숙변을 못보았겠지.

집에만 오면 ‘마음을 비우고 간다’며 웃는다.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지만 이미 시간은 오래 되었고 모두 배고파 한다.
생선요리를 하고 있는데 초보농사꾼이 주현이에게 바람을 넣는다.


 



너 오면 먹으려고 2주일이나 개봉을 안하고 모셔 두었다며 아이스 와인을 꺼낸다.


일전에 홈에 오시는 진달래님이 주현이를 기숙사에 보내고 짠해 있는 내게 마음을 달래보라며 와인 잔과 아이스 와인 그리고 책 등을 꼼꼼히 포장하여 보내주셨다.

드디어 오늘 와인 맛을 보는 날이다.


난 술을 못먹기 때문에 달달한 아이스와인이 기대되었다.

잠시 나머지 반찬을 만드는데 빨랑 오라고 난리다.


벌써 딸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주는 초보농사꾼.
엄마에게 어떤 와인인지 사연을 들은 주현이도 아주 좋아한다.




딸에게 그저 건강히 재미나게 그리고 꿈을 갖고 기숙사 생활하라며 와인을 콸콸 따라준다.
나에게도 한 잔을 부어주며 셋이서 건배를 하잔다.


선우는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선물이 어떻게 해서 엄마 손에 오게 되었는지를 주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도 토를 달아주었다.

딸 아이는 이렇게 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마음의 표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연’이 얼마나 보석처럼 빛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선우에게도 일전에 말해주었다.


'인연'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의 표현'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다.


아이들 뿐인가.


고기도 못어본 사람이나 먹는다고 '인연'에 대해 많은 감동을 받아본 사람이 타인에게도 그런 '인연'이 되고, '감동'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선우에게도 아이스와인의 맛을 보여주며 ‘인연’에 대해 가슴 깊이 스미게 해주어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선우 몫으로 와인을 조금 남겨두었다.

와인맛처럼 그렇게 산골의 귀농가족의 밤은 달콤하게 깊어갔다.


저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편지, 그 맛을 아는 사람이 좋다.
+   [산골편지]   |  2010. 4. 17. 10:20  
사람들은 내가 지금껏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산골로 틀어박혔다 하면 다기를 다루는 솜씨가 공기돌 놀리듯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에, 귀농했다 하면 남정네도 개량 한복에 고무신 신고, 머리 뒤로 묶고, 거기에 수염 정도는 액세서리로 길려줘야 하는 정도의 센쓰가 있어야 하는줄로 아는 것과 같은 ‘믿음’이다.

일단 귀농했다 하면 그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으니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차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커피면 커피, 녹차, 잎차면 잎차 다 잘 마신다.
잎차를 마시더라도 다기 놀리는 것에 크게 신경 안쓴다.

다기는 요렇게 무릎을 꺾고 앉아서, 조렇게 돌리고, 몇 번 나누어 부어주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다도에 목숨거는 사람이 들으면
‘이런 무식한 인간같으니...’하겠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

그저 차를 우려서 부어 마시면 그만이다.
다기가 얼마짜리고 하는 등의 가치는 소용없는 일로 안다.

물론 숭늉마시듯 후후 소리내어 불고 들이키는 경우, 또 식사 후 가글을 하듯 차를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나나 상대방의 차 마시는 모습에 눈초리의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말 그대로 ‘다도’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방식이고 난 내 방식일 뿐이라는 말이다.

다만, 누구와 마시는 것을 제일로 치느냐 하는 것에는 많은 의미를 둔다.
난 혼자 마시는 차맛을 제일로 친다.

여럿이서 잡담중에 마시는 차는 목을 축이는 것이고, 들이키는 것이지 차맛과 침묵에 무게를 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초의 선사는


<b>"차를 혼자 마시는 것은 가장 신명나게 마시는 것이고,
둘이서 마시는 것은 보통 잘 마시는 것이고,
서넛이서 마시는 것은 취미쯤인 것이고,
대여섯이 마시는 것은 덤덤하고,
칠팔인이 마시는 것은 보시하듯 나누어 마시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b>

여럿이서 를 앞에 놓고 마시는 경우는 차의 맛과 정취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고 잡담의 중간중간에 잠시 쉬는 정도로 입을 축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혼자 마시는 차 맛을 더 자주 느끼는 복을 누리고 싶다.
그때의 차는 그저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한 모금의 차를 마시며, 나의 오늘 발걸음의 속도가 어떠 했는지, 발걸음의 방향이 제대로 향해졌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때만큼 내일의 발걸음을 점검하는데 좋은 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개구리 소리가 참견해 보라지.
매미소리와 소나기 퍼붓는 소리, 가을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 어느 시인이 표현한대로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내는 눈이 함께 하면 그 이상의 명품차는 없다고 본다.

지금 이 새벽에 깬 것은 차 한잔을 하면서 산중의 묵직한 침묵에 동참하며 새 날을 기대해 보라는 신의 작은 신호가 아닐는지....

더 자세한 자료는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 있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풍경--울진고등학교 기숙사(기숙형 고등학교)
+   [귀농일기]   |  2010. 4. 2. 09:35  


내가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울진고등학교는 경북 울진군에 있는 고등학교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다.

서울에서 귀농하면서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자연 옆의 작은 학교에서 교육을 시키리라는 희망을 안고 왔다.

그 희망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배신은커녕 자연 속에서의 아이들 성장은 내게 행운이고 아이들에게도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시골학교에서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는 읍에 있기 때문에 읍이 있는 학교를 다녔다.

두 아이다 울진중학교를 나왔다.


울진 지역은 대도시와 달리 비평준화지역이다.
비평준화 지역이다 보니 부모들이 아이들 고등학교 진학에 온통 신경계를 다 동원한다.

대도시 아이들이 특목고에 열올릴 때, 여기는 울진고등학교를 보내려고 열을 올린다고 들었다.


나야 열을 올려봤댔자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요즘 엄마들이 나를 평가할 때 말하는 진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나고 보니 나의 방식이 결코 진부한 방식만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계속 그 길을 가려고 한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쯤 되면 앞에서 소를 잡아끄는 것이 아니고, 뒤에서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보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어쨌거나 아이들에게 자신의 길을 잘 가는지 뒤에서 지켜보는 일에 소홀함은 없었지만 남들처럼 앞에서 잡아 끌 동안 아이들과 책을 이야기하고, 작가를 이야기하고 그리고 가을 구름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울진중학교를 졸업하고 울진고등학교에 다닌다.

둘째인 산골 소녀 주현 낭자가 이번에 울진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에 앞서 지난 2월 4일에 기숙사(연호학사) 개관식이 있어서 참석을 했었다.
자식이 가서 3년 동안 살아야 할 곳인데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환경을 고려하여 지었나 궁금했다.

또 아이들의 개인생활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 감안을 했고, 아이들의 정서를 어느 정도 고려했느냐가 내 관심분야였다.


다른 엄마들은 열람실, 컴퓨터실 등 공부환경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난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과 가슴이 얼마만큼 따뜻하고 꿈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단단하면 막말로 길바닥에서 공부를 해도 충분히 아이들이 스폰지처럼 흡수한다고 믿는다.






또 울진고등학교에는 마음이 따뜻하고 아이들을 정말 따사로운 애정을 갖고 보살펴 주시는 선생님들이 많으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여기 울진고등학교에도 적용된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교육도 작은 규모로 애정을 갖고 이루어지는 곳에 관심과 애정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이들과 선생님과의 관계, 믿음, 사랑이 아닐까.


너무나 성적으로 몰려가는 현상에 그나마 복이 있다면 울진고등학교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는 거다.

그러니 산골아이들에게도 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울진고등학교에 대한 소개를 다음에도 많이 하겠지만 오늘은 기숙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기숙형 고등학교 울진고등학교


울진고등학교에는 기존에 기숙사가 있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기숙형 고등학교로 선정되면서 대대적으로 기숙사를 새로 짓게 된 것이다.


신 기숙사인 '연호학사'의 생활실수는 50, 수용학생수는 200명, 실당 학생수는 4명, 사감실3 등 모두 3층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그러니까 구관과 신관 모두 사용하기로 했고, 주현 낭자는 자신이 원하는 새 건물로 입주(?) 하게 되었다.




걱정은 새집증후군이다.
이렇게 산골에서 살다 보니 그런 것에 코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후속으로 머리가 아프고 속도 매스껍고 그렇다.

그러다 보니 자식의 건강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학교측에서는 '새집증후군'에 대한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그 개선방안으로 어떤 안을 갖고 있는지 무지 궁금하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우선 쾌적하고 건강한 환경이 우선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이런 행사에는 꼭 나오는 누구 누구의 인삿말, 격려사, 감사패 전달....등이 길게 이루어졌다.
물론 이런 것을 죄다 생략할 수는 없지만 너무 많은 격려사가 이어지면 사실 본래 취지는 희석되기 마련이다.





(▲ 개인 열람실)

모든 것이 새 것이라 좋긴 하지만 본드냄새, 새 가구에서 나는 각종 화학물질이 뿜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나 하나 둘러보았다.
샤워실도 둘러보고..
아직은 모든 것이 정리가 안되어 보이지만 형태는 갖추었으니 주현이가 사용할 공간을 찬찬히 눈에 넣었다.






세면실도 나란히 나란히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실은 한 방에 4개씩 들어 앉아 있고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으로는 북박이 수납장이 짜여져 있었다.
개인 사물이나 준비물 등을 넣어두는 곳





다음은 여자 화장실...
다행인지 몰라도 주현이의 방 바로 앞이 화장실이다.
잠결에 화장실 가기에 좋은 위치긴 한데 학생들이 몰려다니는 곳이라는 점도 있다.
어찌 모든 것이 다 좋겠는지...

그저 주현이가 밤에 배가 아프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편리하면 되었지 싶다.




워낙 구경온 엄마들이 많아서 밀려다니며 보았다.
그래서 사진도 제대로 못찍었다.


주현이가 이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저 기숙사가 공부하기 위해 머무는 곳이라는 개념보다는 정말 3년 후에 홀로서기하는 전 단계로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주길...
그리고 그곳에 정을 붙여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기를...





가끔씩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휴식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잊지 않기를...

그곳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많은 꿈을 꾸고 그 희망으로 하루하루가 구름처럼, 파란 하늘처럼 맑고 푸르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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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책이야기--침대와 책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10. 1. 12. 12:12  

 

침대와 책 상세보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이 책은 CBS PD 정혜윤이 온라인 웹진 서점에 연재한 칼럼 <침대와 책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독서의...작가는 이 책을 통해 침대와 책의 공통점과 현실을 직시하는 또 다른 눈이 되어버린 책의 다양한 이야기와...

 

 

 

정혜윤님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이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였다.
그 책을 고를 때, 여러 사람들이 나온 것을 묶은 것이라는 판단에서 사실 망설였다.
그런 책은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달랐다.


나도 감명깊게 읽었지만 아들 선우가 읽고 또 읽으며 진정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자주 엿보고 자극제로 삼는 것같다.

<그들은....>이 나중에 나왔고, 오늘 내가 소개하려는 <침대와 책>이 나중에 나왔다.
난 거꾸로 본 셈이다.

 

두 권의 책에서 난 정혜윤이라는 작가는 책이 삶의 일부이고 거기서 삶을 지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러웠다.

 

그만 부러워하고 책 소개를 해야겠지...

우선 이 책 날개에 소개된 작가를 소개하고 싶다.
작가를 잘 알 수 있는 글이니까....

 

“엄마는 나의 검은 피부를 싫어했고 나는 나의 갈색 피부를 좋아했으며, 엄마는 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싫어했고 나는 나의 부스스한 머리를 좋아했다
엄마는 레슬링과 가요와 관광버스를 좋아했으며 나는 레슬링과 관광버스를 싫어했다. 우리는 많은 부분 통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엄마는 내가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자기를 닮아서 애가 이렇게 책을 좋아한다고 칭찬하고 인정해줬다.
칭찬받을 일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 뒤로도 쭉 책 읽는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사랑받았다.
언젠가는 라디오 PD의 좋은 점을 글로 써보겠지만, 라디오 PD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사소한 인간인지를 깨닫는 직업이며 동시에 남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를 깨닫는 직업이므로 참 근사한 일인 것같 다.
나는 라디오 PD가 된 뒤로 잘 놀라지도 상처받지도 않는다.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수만 가지 방식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책과 라디오 때문이다. "(책 날개에서)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우선 책의 맛을 잘 알고 하루하루 그것을 즐겼다.


정혜윤 작가를 보면서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이 정도는 되야지...생각하며 얼굴이 달아오르곤 했다.

산골에서 누군가를 모델로 삼아 스스로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발견인지 모른다.


귀농 전 같았으면 끼리끼리 즉, 책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 차도 마시면서 읽은 책을 서로 권하면서 나누는 대화에는 국화향같은 것이 난다.
국화향은 진하지 않다.


그러나 냄새를 맡고 돌아서면 치맛자락을 붙드는 그 어떤 매력이 있다.

우선 독특한 책의 구성을 설명하려면 목차가 필요하다.
이 책의 목차는 이렇게 이어진다.

 

서문- ‘침대와 책’을 시작하며

꽃 같은 그대가 울고 있을 때
우울한 다음 날 술 한 잔 딱 걸치고 돌아오는 길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싶은 아침
도시의 연인들이 여자들의 가슴 크기에 주목하게 될 때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하면 어디로라도 떠나고 싶어!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이면
별일 없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술
버지니아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사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고독해서 사랑을 하나? 사랑을 해서 고독한가?
성형수술이 우리를 유혹할 때
오늘은 내 꼴이 추레하고 처량하구나
사랑이 끝나버린 걸 아는 순간
기죽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낯선 사람에게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마음의 평화가 깨졌다
세월은 가고, 헛되이 나이 들어가거나 늙어간다고 느낄 때
'나 젊어져서 돌아올게' 귓가에 울리는 이 말!
부장님께 된통 깨지고 나서
외로운 날 꼭 듣고 싶은 한 마디
꿈은 있지만 꿈에 이르는 길을 몰라 불안할 때
밉고 싫고 감정은 파도치고 삶은 휘청대는 날
이 글이 우리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에 바치는 엔딩의 사(辭)
- 지

 

상에서 가장 아늑한 침대

정혜윤의 침대 위 책들

 

 

 

이렇다.

예를 들어 ‘우울한 다음 날 술 한 잔 딱 걸치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꼭지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수잔 손택의 ‘우울한 열정’이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이라는 책과 작가가 등장한다.

 

예를 들면,
“내 우울 때문에 다른 인간을 할퀴고 싶지 않은 날에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거나 아니면 재빨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토성 편을 펼쳐 든다.


토성편에는 파이어니어 11호 발사 후 5년 정도 경과한 시점인 1979년 8월 26일에 찍은 토성의 고리 사진이 실려 있다....“(본문22쪽)

물론 여기에는 다른 관련 작가도 등장한다.
발터 벤야민...
 
“자신의 우울을 토성적 기질 때문이라고 설명한 발터 베야민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본질적인 외로움, 인생에서의 성공에 대한 공포, 우유부단, 둔감, 느림, 실수를 잘 하는 것, 고집, 서투르고 멍쳐해 보이는 것, 눈에 들어오는 것의 3분의 1밖에 보지 못하는 시선....”(본문23쪽)

 

그렇게 폴 오트서가 소개되고, 수잔 손택이 등장한다.
그들의 책이 이 글에 대한 심증을 더 짙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작가는
“자아식이란 건 우리가 그 무게에 짓눌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해석해야 할 대상이고 만들어 나가야 할 대상일 뿐이니, 지금의 우울로 둔갑한 자의식 역시 우리를 지배하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은 제대로 술 한잔 마신 날인 것이다. 그런 의미로 한잔 더!”(본문27쪽)


이렇게 그 꼭지를 마무리 하는 식이다.

명쾌하다.
어떤 책에 대해 감동이다, 어떤 교훈이다를 진한 연필로 언급한 것이 아니고, 파스텔로 아련히 그려낸다고나 할까.

요즘 이런 류의 책이 많다.


그 이름만 대면 금방 알아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쓴 책도 많다.
그러나 나랑 아들 선우가 정혜윤에게 끌리는 것은 크게 드러내려 하지 않으면서 등장하는 작품을 살려주고, 그 속의 일부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찡한 울림을 그대로 표현해 준다는 데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성격이 좋다.

 

“내 명함에는 회사 이름과 직책 대신 결코 표현된 적은 없었지만 사실은 꼭 알아줬으면 싶은 이력들을 써넣는 사상을 한다. ‘아마추어 여행 작가, 고기 요리를 싫어함, 귀를 뚫지 않았음, 스타킹 수집가, 증명사진 싫어함, 옆얼굴에 더 자신 있음, 자고 나서 푸석푸석할 때 가장 예쁨, 출신 대학과 직책을 말하는 것을 싫어함, ’어쩔 수 없다‘란 말을 싫어함, 예외 없다는 말을 싫어함, 누군가를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싫어함, 누가 나를 안다고 말하면 깜짝 놀람, 프로보다 아마추어를 편애함, 나의 장점을 찬양하는 사람보다 나의 단점에 웃어주는 사람을 편애함.’ (본문 206쪽)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좋아죽나보다.


수다는 언제 들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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