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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4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작가의 집 
2008.08.15   산골편지7 -- 애들 교육은 어때요?? 
2008.08.15   귀농일기--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 1
2008.08.14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2008.08.13   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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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8   산골편지2 -- 애들 탓할 필요없습니다. 
2008.08.07   상도[전5권]을 읽고... 
2008.08.07   산중일기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작가의 집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12. 4. 22:23  
작가의 집 상세보기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 윌북 펴냄
펼쳐진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20인의 집을 엿보는 이야기 『작가의 집』. 작가들의 정신과 일상적 삶이 함께...있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인 ‘작가의 집’을 엿보는 이 에세이는 작가의 집을 엿보는 동시에...


서울에 가면 꼭 들리는 곳이 교보문고이다.
주로 광화문을 가지만 넷째 언니네에서 가까운 서초동에도 교보문고가 생겼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니 근지러워 가봐야 한다.

그곳에 갔을 때, 새 책 코너에서 내게 말을 걸던 책이다.

 

이 책은 나도 흥미롭지만 선우, 주현이에게 읽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이들까지 영역이 잡히면 바로 사야지 굼시러워 견디질 못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 냄새를 맡았겠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20명이 소개되고 있다.
사람이 소개된다기 보다 집이 더 소프트 라이트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작가와 집...
어떤 관계일까.

 

 

 

내가 생각해도 작가에게 있어서의 집은 더없이 중요한 공간일 것이다.
누구든 집은 중요한 공간이겠지만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직장에서 생활을 하지만 작가는 집의 집필실에서 많은 시간이 보내다 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작가는 집에서 왕도 되었다가 , 왕따도 되었다가, 거지도 되었다가, 이 세상 고독을 다 짊어진 사람도 되었다가 할 것이다.
거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집 주위의 풍광이 그의 글 소재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집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의 어린시절, 결혼생활, 소개된 집에서 어떤 작품이 탄생했는지를 알 수 있어서 작가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의 집은 친구이며, 자극제이며, 위로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내가 자주 들어왔던 작가도 있지만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노벨상 수상자도 등장하는지라 읽던 책을 뒤로 밀치기에 충분했다.

 

쟁쟁한 작가들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데 그들이 늘상 몸담았던 집은 어떠했는지는 더더욱 호기심이 발동했다.

 

등장하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 --내면세계를 찾아 떠난 여행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스 --구대륙의 유목민 마담
어니스트 헤밍웨이 --키웨스트의 바다 사나이
비타 색빌웨스트 --영국 최고 정원의 안주인
알베르토 모라비아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 로맨티스트
마크 트웨인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만들어낸 스토리텔러
셀마 라게를뢰프 --옛날이야기 들려주는 여인
버지니아 울프 -- 로드멜의 ‘댈러웨이 부인’
장 지오노 -- 영원한 프로방스인
카렌 블릭센 -- 아프리카 농장의 연인
카를로 도시 -- 고고학에 심취한 괴짜 외교관
딜런 토머스 -- 웨일스의 보헤미안
장 콕토 -- 예술을 흠모한 자유로운 영혼
로렌스 더럴 -- 지중해를 그리워한 방랑자
윌리엄 포크너 -- 옥스퍼드의 신사 농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 가르도네의 사치스러운 탐미주의자
크누트 함순 -- 노르웨이의 외로운 은둔자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고향을 노래한 음유시인
피에르 로티 -- 동방을 동경한 모험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 팔레르모의 고독한 귀족

 

 

 

이 책을 쓴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는 서문에서 “그들은 그곳에서 살고, 창조하고, 고통받았다. 스스로 택한 고독과 글을 써야만 한다는 긴박감이 언제나 그곳에 도시리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글쓰기의 열정으로 집을 채웠고, 바로 그만큼 집을 사랑했다.“(본문 7쪽)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고독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독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나는 고독을 만들었다. 글쓰기를 우해서 이곳엣 혼자여야 한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리 된 일이었다. 나는 이 집엣 혼자였다. 나는 스스로를 가두어두었다. 물론 두렵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 집은 글쓰기의 집이 되었고, 내 책들은 이곳에서 나왔다....”(본문 17쪽)

 

 

 

그러면 몇몇 작가를 소개해 보겠다.

 

헤르만 헤세는 스위스의 루가노 호수를 에워싼 언덕에 자리한 몬타뇰라 마을에 있는 카사 카무치 궁에 1919년 도착했다.

“몽상적인 작가는 이 ‘궁’의 과장된 모양새와 그 아래 울창한 정원의 관능미에 깊은 애착을 느꼈다. 목련나무, 등나무, 야자나무, 박태기나무가 어우러져 antd한 숲을 이루고, 정글을 연상케 하는 얽히고설킨 수풀과 조화를 이룬다.주변 산의 경관, 반짝이는 호수의 평화로운 전망도 그의 불안한 정신을 달래주었다.


“몇 년간 이어진 악몽으로 껴져버린 줄 알았던 글쟁이가 다시 깨어났고” 그곳에서 “자유, 공기, 햇빛, 고독, 일”을 되찾았다. 헤르만 헤세는 고독에 취해 창작의 불씨를 되살렸다....“(본문25쪽)고 소개되어 있다.

 

책 안에 들어있는 사진속 작가의 집


금방이라도 헤르만 헤세가챙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나올 것만 같다.

1951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출간하여 아케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받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특이하게도 친구와 늘 함께 살았다.


방도 하나씩 나누어 쓰고 함께 여행도 하고...

살면서 이런 도반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던 나로서는 여간 주의를 끌어들이는 사진과 내용이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
삶이라는 외로운 길을 그렇게 벗과 간다는 것....

 

 

 

 

여자들이 사는 집이어서인지 몰라도 차분하고, 다소곳한 분위기의 집이 소개되어 있다.
사진 속 집에 앉으면 글이 절로 써질 것같은 착각이 일 정도다.

1952년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결혼고 이혼을 반복한 헤밍웨이는 자살미수를 여러 차례 하다가 엽총으로 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작가였다.

 

헤밍웨이는 집 뒤에 외따로 난 별채가 있는 점도 무척 좋아했다. 밖으로 철제 계단이 나 있는 방은 집필실이 되었다. 작가의 피난처요, 창작의 공간이었다. 벽을 따라 선반을 놓고 책을 정리하고, 단순한 원탁에 시가 공장에서 구입한 가죽 등받이 의자를 두고 일했다.
그는 매일같이 조용히 있기 좋은 아침마다 집필실에 갔다. 하루 여섯 시간씩 규칙적으로 일했다....“(본문 67쪽)

울프와 연인관계로 잘 알려진 비타 색빌웨스트...


비타는 “3헥타르의 대지에 탑이 4개, 난로가 100개, 계단이 52군데, 일 년의 날수에 따라 방이 365칸이나 있는 15세기 대저녁에서 비타는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타는 상상력과 시를 향한 열정 외에는 친구가 없는 외로운 소녀였다...(본문78쪽)”고 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본 작가의 집필실, 서재 중 가장 맘에 드는 곳이 비타의 탑 방이다.
그러니까 다락방처럼 꾸며진 탑 꼭대기 방이 그녀의 직업실 겸 안식처다.

 

“우리는 탑에 있는 방의 한쪽 구석에 난로를 세우고 탑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아치는 그냥 남기기로 했다. 가루를 위로 옮기고 시싱허스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처음으로 탁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비타의 일기 내용이다.

 

또 그는
“우리는 탑 꼭대기에 야번 침대 두 개를 놓고 잠을 자며 촛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고 했다.
남편도 그 탑에는 한 번 올라간 것이 다였고, 아들도 30면간 여섯 번뿐이 안올라갔다고 한 그녀만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은 다른 작가의 탁트인 서재나 호화로운 작업실이 아니고 다락방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어 나의 관심을 자극했다.
나 또한 그런 공간이 좋다.

 

 

 

모든 생각이 다 달아나도록 탁 트인 전망을 가진 집필실보다는 이런 공간을 좋아한다.
책꽂이도 수수하고, 그 정리된 모습도 자연스럽다.
일부러 꾸며진 느낌이 없다.

 

우리나라의 어느 여류작가의 서재를 보니 엄청난 책을 전시라도 하는 듯 책꼭이가 너무 인위적이어서 불편했는데 이 사진을 보니 그런 공간 하나 갖고 싶어했던 내 마음에 다시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의 소설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비타와는 정반대로 탁트인 바다가 보이는 곳에 그의 집필실이 있다.
아니 그의 집필실과 그런 것이 아니고 집 자체가 바다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언제나 활동적이었던 작가는 해변에서 무릎을 꿇고 조개껍질을 줍는 것을 좋아했다 한다.

 

“1990년 9월의 어느 날, 모라비아는 마지막 고백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소. 한 인생은 또 다른 인생만큼 가치있기에, 결국 모든 인생은 실패라고 말할 수 있기에 그렇소. 삶은 수수께끼 같은 몇 조각만을 차례에 맞게 건질 수 있는 완벽한 혼란이오.“(본문 108쪽)

 

마크 트웨인은 무모한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 그의 가족이 그렇게 좋아했던 하트포드 자택을 떠나야 했다.
그 심정은 하트 포드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아내에게 남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랑하는 리비, 하트포드에 도착해서 우리 집 근처로는 가고 싶지 않았소. 하지만 현관 문턱을 넘자마자 우리 가족 모두가 이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영영 이 집을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에 사로잡혔소.”(본문 129쪽)

그토록 작가가 좋아했던 집을 떠나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가 하면 1909년에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셀마 라게를뢰프는 조상 대대로 정붙여 살던 모르바카 저택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와 형제자매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팔리게 되었다.

그때 젊은 셀마는 옛 집과 영원히 남을 은밀한 서약을 맺었다고 했다.
“글을 쓰리라, 언젠가 유명해지리라, 그래서 집을 꼭 되찾으리라.....”(본문135쪽)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글쓰기
“나는 몹시 고독하게 산다. 혼자 살며 글을 쓰든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아무 것도 못 쓰게 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했다.

 

 

 

 

1941년 3월으 지독히 추운 어느 날, 외투 주머니에 무거운 돌을 가득 넣고 강에 투신자살한 버지니아 울프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담벼락에 붙여 지은 오두막에 버지니아는 매일 아침 은거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 단출하지만 “낭만적인 방”에서 글쓰기에 전념했다.“(본문 15쪽)

 

작가는 8시 30분이면 세 시간 연속적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영원한 프로방스인인 장 지오노는 고향을 정렬적으로 사랑한 작가인 만큼 작가에게 있어 그곳은 삶의 전부였는지도 모르겠다.

“지오노의 작품은 자기 고장에 대한 연가다. ”앙젤로는 옛 회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시쪽을 바라보았다. 겹치고 얽힌 지붕들은 크고 불그스름한 느릅나무들과 문 위의 방어용 요철에 이르러서야 끝이 보였다“(본문 173쪽)고 ‘지붕 위으 기병’에 쓰고 있다.

그리고 케렌 블릭센의 집이 소개된다.


“나에게는 딱 한 가지 야망밖에 없다. 이야기들을, 아주 멋진 이야기들을 만들겠다는 야망”
에발 살롱의 책상 앞에 앉아 아프리카 기념물에 둘러싸인 작나는 마침내 과거를 살풀이 하고 “쓰디쓴 상실감 없이” 운명의 연인 데니스 핀치 해턴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본문 190쪽)

꽃을 좋아한 그녀의 집은 곳곳에 꽃을 두고 보기를 좋아했다.

 

 

이 외에도 카를로 도시,
영국의 시인인 딜런 토머스,
그 유명한 장 콕도,
“나는 내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방랑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 로렌스 더럴,
신사 농부 윌리엄 포크너,
시인이자 군인이었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누트 함순은 농사를 지으며 온전히 자신의 뿌리를 되찾았음을 느꼈고, 스스로 일년 농사를 계획하고 별채에 일꾼을 두어 땅을 경작했다고 한다. “나는 농사꾼 작가요”라고 고백했다는 그는 결국 ‘의 혜택’이라는 책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내 인생은 시에 있었다.시를 쓰기 위해 삶을 절구에 넣고 찧었다”고 했던 음유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피에르 로티에 대해서는 “이국적인 것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던 시골뜨기는 무한한 지평을 발견했다. 그는 오두막에 처박혀 흔들리는 촛불 앞에서 몸소 체험한 감정과 풍경을 생생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써내려갔다”고 적고 있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는 고전이 그득한 서재에서 독서에 탐닉했단다. 부자로 태어났지만 의심과 모순으로 망쳐버 인생의 유일한 기쁨은 독서였다고 고백던대로 서재와 집안 분위기 역시 중후하고 가볍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간단하게나마 이 책에 소개된 작가를 나열해 보았다.


공통점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다락방처럼 생긴 은신처와 같은 곳에 두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연을 가까이 하려 하였고, 더러는 농사에 깊이 빠졌던 작가도 있었다.

 

 

 

 

우리 아들 선우와 딸 주현이에게 그처럼 포근한 다락방과 같은 서재를 하나 마련해주면 정말 좋겠다는 꿈을 더 재차 확인하게 된 책이었다.

은 지니고 있던 꿈도 더 선명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사진은 무작위로 올렸음을 밝혀둔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 있습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귀농 아낙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7 -- 애들 교육은 어때요??
+   [산골편지]   |  2008. 8. 15. 16:0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가 온다.
그 비가 집 앞 도랑으로 빨려 나가고 작은 개울을 거침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 집 비포장 도로 끝나는 작은 다리 밑에 가보았더니 나보다 먼저 도착한 것들이 벌써 내를 이뤄 한목소리한다.
그것이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제구실을 한다.
바다에 가면 시끄러운 이유가 여기 있나보다.
각자 자신이 떠나온 산골짜기의 사연들을 모두 듣고 와서는 바다에 토해내니 그리 시끄럽고 드셀 수밖에.

세상의 온갖 못볼 일, 듣지 못할 일들을 다 듣고 오니 바다는 또 그리 가슴에 멍이 드는가보다.

************************

산골로 옮겨 앉고 신이 난 쪽은 아이들이다.
도시에서처럼 학원다니지 않아도 되고 공부 많이 안해도 되니 좋단다.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이나 전화거는 사람들이 걱정어린 듯 묻는 말이 있다.
"애들 교육은 어때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30명이다. 3학년인 선우네 반은 12명이고, 1학년인 주현이네 반은 5명이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교실에서 4~5명씩 마주보고 앉아 두 학년이 같이 공부한다.
마을 입구에 분교가 있는데 학생 수가 적어 폐교되었고 대신 거기까지 스쿨갤로퍼가 온다.

학교까지는 15분 정도 걸리고 선생님과 학생이 그저 식구처럼 지낸다.
학원은 물론 없고 굳이 가야 한다면 울진읍까지 불영계곡을 따라 50분 정도 가야 하지만 학원에 보낼 일이 없다.

논과 밭, 개울, 개집, 닭장이 선우, 주현이에게는 학원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것 저것 묻고 논이나 밭에 데리고 가 일거리도 배분해 준다.

도시에 있을 때에도 책은 잘 읽는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더 잘 본다. 요즘은 만화삼국지와 위인전에 푹 빠져 있는데 만화를 허용한 지는 1년되었다.
산골로 온 후 반년을 신나게 놀다 올해부터 학습지 국어, 수학을 하는데 그게 공부의 전부다.

시골학교라 숙제도 일기밖에 없다.
이사온 후 지금까지 TV안테나를 부러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TV 앞에 앉아 헛시간 보낼 일도 없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지금은 아주 좋다.
그대신 아이들은 비디오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온 가족이 책을 많이 읽는다.

사실 긴 겨울을 산골에서 아이들과 어찌 지내나 고민을 했었다.
자연 앞에선 너그러운 남편이 밭언덕에 자연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퇴비봉투를 하나씩들고 나서면 점심 때 불러야 들어온다.

작년에 눈이 바쳐 주었으니 아이들 얼굴은 여름보다 더 시커먼스.
엄마도 타보라고 하도 권하기에 애들 사기차원에서 앉았다가 "누가 나좀 말려줘유~~~~"하고 소리소리질렀으나 이 산골에서 누가 말려주랴.
결국 가시오갈피 나무 몇 그루를 아작냈다.

그런 급경사를 애들은 잘도 탄다.
그 덕에 두 놈이 내 부츠 두 켤레를 고스란히 분리수거장으로 보냈다.
겨울공부 종목은 또 많다.

가끔씩 남편은 "우리 영토에 누가(노루, 맷돼지 등)침범했나 가보자"며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갔다온다. 눈이 어른의 허벅지까지 쌓인 산비탈 밭으로 ...

애비는 노루 등이 눈 때문에 먹이찾으러 내려왔나 먹이걱정에 간 거였지만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침입자를 찾는다.

여름이 되었다.
나를 아는 친절한 이들이 "애들 공부걱정 안하세요?"라며 염려해 주시지만 이제는 자연과 어떤 공부를 할지 눈에 선하다.

언제 다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자연을 더 많이 느끼고 자신의 맑디 맑은 눈에 그것을 넣어 성인이 되었을 때 조금씩 꺼내 쓰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듯이 아이들이 자연에서 많은 생각을 얻고 맑히기를 바란다.

선우는 손님오는 게 싫단다.
오는 사람마다 같은 내용을 물어 그렇단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배운다.
하늘, 구름, 시냇물, 논과 밭, 해님, 개구리 친구들이 아이들 오기를 더 기다린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면 그 친구들이 내 대신 번갈아 마중나간다.

***************************

오늘은 아이들과 앵두를 땄다.
바구니를 하나씩 팔에 걸어 주었더니 잘도 딴다.

한참 후에 보니 바구니 바닥에 겨우 한겹 엎드려 있는 게 다였다.
"앵두 다 어디갔니?"
"엄마, 우리가................."하며 웃는데 입가에 빠알갛게 앵두물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색처럼 아이들 가슴도 곱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효소를 담아 맑디 맑은 유리잔에 넣어주면 고추잠자리와 한 모금씩 나누어 먹겠지........

모기와 파리가 극성인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사진은 필리핀 갔을 때이다)

2001년 유월 22일


 
 
        

 

귀농일기--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
+   [귀농일기]   |  2008. 8. 15. 16:00  
오늘은 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이다.
이곳 지역자체가 워낙 오지이다 보니 1년에 한번씩 농한기인 지금
겨울철에 한번하는 행사가 얼마나 반가운 행사인지 모른다.

비용도 부품비 정도의 실비만 받거니와 이동하기 힘든 농기계를 수리하러
어렵게 읍내까지 운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월 8일에 한다는 것이 당일날 수리요원의 귀경때문에 18일로 연기되더니
어느날 갑자기 15일인 오늘 한다는 것이다.

아마 서울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인데도 시골사람들은 그저 이해할 따름
이다.

나 역시 화는 났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이곳 저곳 손볼 요량으로 경운기를
몰고 폐교 운동장으로 나갔더니 내가 제일 첫번째이다.
수리하는 사람들이 셋이 왔는데 모두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나 역시 씨익 웃어줬다.

이유는 말을 안해도 알지만 아뭏은 설명하면 그렇다.
귀농하여 경운기며 예취기며 엔진톱, 그리고 귀농인들 공동으로 구입한 벼 탈곡기
등을 그동안 사용하면서 사용법 내지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몰라 수십번 그곳을 들락
날락 했기 때문에 그사람들 속으로는 아마 그랬을 꺼다.

"아휴! 저 양반 또 무었때문에 왔을까! 또 그저 간단한 고장가지고 저렇게 난리치겠지..."
....
...
상호간에 그런 교감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이 그런 불평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수리하여 주고
덤으로 사용방법, 관리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니 여간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깨긋이 수리해서 경운기를 몰고 올라오려니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경운기 엔진소리가 한결
부드러운것 같고 기계톱으로 나무를 썰어보니 한결 잘 썰리는것 같다...

초보농사꾼 박찬득(이전 글이다)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   [산골편지]   |  2008. 8. 14. 13:26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다에 갔었다.
4식구 올망 졸망 방파제를 지나 해송처럼 뾰족 뾰족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아 놀았다.

선우가 성당교육이 있는 날이라 미사시간까지 근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자장면 사먹고 서점에서 서로 다투어 책도 사고 이내 바다로 달렸다. 나도 닥아가고 바닷새도 마중나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바다에 취한다.
바다를 보니 문득 몇 달 전에 바다를 언제나 품고 사시다 엄마별에게 가신 작가 정채봉 님이 생각났다.

주현이는 애기 홍함을 3개 뜯어서는 주머니에 넣고 미역줄거리도 반찬해먹는다고 자기 끝 손가락만한 것을 딱 1개 뜯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랫만에 바닷가에 섰다.

저만치서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달려와서는 내 발 앞에 엎어진다.
그리고는 침을 하얗게 뱉어 놓고 되돌아갔다 다시와 침을 뱉는다.
바다는 자연을 닮은 것만 받아들이고 인간이 내다버리는 것들은 그대로 밀어낸다.

증오, 이기심, 시기, 쓰레기 등은 거칠게 밖으로 밖으로 밀어낸다. 그래도 세상에 불만이 많은지 침까지 뱉는다.

**********************************

사람은 똑같은 사람인데 얼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닥아와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듯 싶다. 그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를 지금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도시에서야 부족함이 있었던가. 그래도 늘 마음이 깔끔하지 못하고 안개 속을 걷듯 답답하기만 했었다.

열 수만 있다면 마음 속을 열고 비설거지하듯 씻어낸 후 햇볕에 말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정도로.

그 길이 진리인줄 알고 살았었고 지금도들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행복, 여유로움도 내 마음이 짓기 나름인 것을.
그저 큰 바람없이 지금 갖고 있는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혹여 바람이 있다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듯 소박하고 가슴절인 바람이라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올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왔었다.
그 눈오는 어느 날 정채봉 님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을 카톨릭신문에서 접했다.
순간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동안 기를 쓰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살았던 도시같았으면 '안됐네'라는 짧은 생각이 다 였으리라.

그러나 이곳 산골에서 접한 한 작가의 죽음을 두고 두고 마음에서 접었다 폈다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그 분의 책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정채봉 님에게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아들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닷바람에 묻어 오는 해송타는 내음.

어떤 책에선가 어머니의 산소를 이장하러 가는데 스무 살 어머니가 머리가 히끗히끗한 늙은 아들을 보면 마음아파하신다며 머리에 처음으로 염색을 하고 갔다는 글을 읽었다.

그 분의 글 곳곳에는 어머니에 대한 절제된 그리움이 얼룩져 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간혹 할머니를 힘들게 하면 할머니는 팔을 베어 버리고 천 리나 만 리나 도망가 버리겠다고 하였단다.

그런 밤이면 팔베개를 내준 할머니가 팔을 베어 버리고 도망가실까봐 할머니 속적삼 옷고름을 손가락에 묶어 두고 잠들곤하였다고 마음아픈 어린 시절을 고백하기도 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남의 일로, 남의 가슴앓이로 내 가슴을 내어 놓은 적이 있는가.
그저 내 가슴 속의 것들만 아프다고 후벼파내 보이며 반응을 구걸하지 않았던가.


그저 굳어져만 가는 가슴과 차가운 마음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은 평소에 지어먹은 마음대로 되는가보다.

정채봉 님은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 그쪽 별로 가는 때도 눈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라는 실개천같은 바램을 안고 살았었는데 정말 1월 눈이 내리는 날 엄마별에게 가셨다.

눈이 그토록 많이 내리는 날, 눈 위에 속세의 발자국을 남기며....

**********************************
산골에서는 나 모르게 피었다가 지는 꽃도 많다.
나 알게 피어도 워낙 꽃이름에 까막눈인 내가 이름 한 번 불러 줄 순 없지만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줄 수는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하얀 찔레꽃이 구석진 곳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작년 두릅밭 언덕에 찔레나무가 너무 많아 하도 팔과 다리를 찌르기에 '쓸모 없는 건 지천이고 정작 요긴한 것은 드물고....'라며 서툰 낫솜씨로 구박했던 일이 미안스럽다.

세상 어디에도 쓸모 없는 것은 없는 것을.......
어찌나 하얀 다섯 손가락이 여리고 예쁘던지. 향기 또한 진하지도 않은 것이 제 몸의 가시를 감추고도 남음이 있다.
난 내 몸에 고슴도치처럼 돋은 가시를 무엇으로 가릴 것인가.

2001년 오월 26일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가


 
 
        

 

완득이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8. 8. 1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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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한마디'에 산천어님이 추천을 해주셨을 때 일전에 서점에서 표지를 보았을 때 만화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표지가 청소년 만화같았거든요.

그런데 만화가 아니었습니다.

현재 선우, 주현이, 저 이렇게 셋 다 보았고 초보농사꾼이 한 반 정도 읽은 것같습니다.

저는 젊은 작가가 참 예리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 날개에 작가 소개와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작가 사진에서 그런 책을 쓸 정도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인상이 강해보였습니다.
젊은 작가가 현실을 그런 방면으로 비출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욕도 리얼하고 나옵니다.
또 학생이 선생이 죽기를 교회에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아름답고, 그리고 맘 아프고, 아리합니다.

소설에 그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요?

현실을 꼬집는 방법이 참으로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딱딱하기는 커녕 계속 읽으면서 너도 나도 킥킥 웃게 됩니다.

욕도 자주 나오지만 상스럽지 않더라구요.

온가족이 보기에 참 좋은 책인 것같습니다.
함께 거기에 나온 용어를 쓰면서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먼저 읽은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재미나게 웃는데 읽지 않은 초보농사꾼만 멍하니 있습니다.

이제 초보농사꾼도 반 정도는 읽었으니 함께 대화할 수 있겠지요.
청소년이 있는 가정에서는 더더욱 가족 모두가 함께 읽고 웃고 대화하기 참 좋은 책입니다.

주현이가 그런 책 안읽는다고 쭉 빼다가 내가 다시 권해서 읽었는데 내가 그 말 하면 웃고 제 방으로 들어갑니다.

슬픈 이야기인데 슬픔은 한 쪽 구석에 두고, 한 쪽은 웃게 하는 재주를 젊은 작가가 가졌네요.

조카들이 오면 보게 하려구요.
그리고 주현이 친구들에게 빌려주라고 했습니다.

식구 모두가 읽으려면 한권 사는 것도 괜찮지만 빌려 읽는게  좋을 것같습니다.
선우가 '선우 주현이의 책이야기' 코너에 후기를 썼기때문에 안올리려고 하다가 그래도 내 느낌을 전하고 싶어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비가 옵니다.
빗소리가  그만 자라고 하는 소리로 들리네요. 너무 늦은 시간이지요??
그래도 빗소리를 더 듣다 자려고 합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3 -- 스스로 크는 아이들
+   [카테고리 없음]   |  2008. 8. 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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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뿌리려고 작년에 씨를 받아두었던 바구니를 찾았다.
바구니에서 그대로 엎드려 일년을 보낸 터라 그런지 냉큼 내 가슴으로 와 안긴다.

봉선화, 채송화, 과꽃씨등을 심으려니 여간 땅이 가문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비가 오면 심기로 마음먹고 검고 하얀것들을 다시 올려 놓았다.

아무리 가물어도 오늘 꼭 심으려고 했던것이 목화였다.씨를 어렵게 구한지라 물을 매일 길어다 줄 요량으로 언덕에 심었다.

지금 아이들이 목화를 기억할까?
아마 문익점이라는 위인전에서나 들어본 이름일게다.

한 숟가락 정도 되는 양이지만 어서자라 나의 아이들에게 "옛날 분들은 이불솜을 이꽃에서 구했단다" 라고 얘기해 주려고 서둘러 심었다.

가문땅에 심은지라 물을 길어다 주는데 꽤 인내력을 필요로 했다.
올해 씨를 더 많이 받아 내년에는 한밭 가득 목화를 심어야 겠다.
내용이야 있든 없든 많은 아이들이 목화를 보러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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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잘 적응을 할까?
햄버거, 치킨, 피자등이 먹고 싶을텐데, 재래식 화장실에 쭈구려 앉아 볼 일을 못볼텐데, 학교에 다녀왔을때 에미,애비가 저 윗밭에 가 안보이면 무서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지금은 아이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크고 나면 부모에게 고맙다고 할거야"
남편은 자신에 찬 소리를 했다.

그러나 난 글쎄 였다.
막상 귀농하고는 애들 상태만 살폈다.

짐정리, 집정리 등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집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집을 위해서 있는건 아니다 싶었다.
더욱 아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소한의 문화충격을 줄여주어야 할 의무가 내겐 있었다.

남편은 이삿짐만 내리고는 서울로 갔다.

사표수리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적응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암세포 번지듯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적응을 못했다. 화장실 갈 때 대낮에도 두놈이 같이 가주고 한참을 그러더니 낮에는 혼자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두워지면 후레시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가주었다.
도시에서는 놀 때에도 각자 노는 일이 많았다.

이곳 산골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다. 아이들이 둘인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그러다 애들 아빠가 산골로 합류하게 되니 아이들이 더 명랑해지고 재미있어 했다.

아이들은 논리적이고 머리로 다가오는 지 에미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다가오는 지 애비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도 보다 단순하게 행동해야 팬들을 놓치지 않을것 같다.

얼마전에는 아침에 주현이가 "학교에서 오는 길에 덕거리 친구집에서 놀다 오면 안되느냐" 고 물었다. 그곳은 마을 입구로 어른도 15~20분 걸리는 거리다.

그 전에도 놀다 온다기에 올때는 혼자 걸어서 오라고 했는데 결국 지 아빠를 불러 그때 아빠와 약속한 바가 있었다.
혼자 걸어올 자신이 없으면 놀러가지 말라고....

친구도 없는 곳인데 아이들 데리러 가는 것 쯤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건 아닌가 생각하니 그이가 야속했다.

주현이는 혼자 걸어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결론이야 어땠든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녁이 다 되어도 아이 그림자는 안보이고 나무 그림자만이 늘어만 갔다.
이제 초등학교 아이를 너무 일찍 산골아이 취급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애려왔다.

전화를 하자니 버릇될 것 같고 선우에게 집 입구 다리까지 가보라고 일렀더니 한참후에 어둠만 데리고 나타났다.
이제는 버릇이고 뭐고 애 놀랄까 싶어 뛰어 나갔다.
비포장길 끝날 즈음에 하얀 물체가 보였다.

"주현이니?"

"네 엄마!"

아이의 목소리는 맑고 밝았다.

"주현아, 혼자 걸어왔어? 왜 이렇게 늦었니?"

아이는 극히 침착한데 에미만 호들갑이다.

"엄마, 오다가 냇가보며 생각도 하고 또 오다 멈추다 놀고도 왔다"
어린 것이 에미보다 낫구나 싶었다.

아이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타다 세워둔 두발 자가용을 보더니 샬롬 샬롬 노래를 부르며 뛰어가 탄다.

헤브라이어로 샬롬은 "평화"라는 뜻이다.
**********************************************

이제 봄이 지나려는 듯 바람도 기가 죽어있다.

어쩌면 바람이 봄 따라 갈지도 모른다 싶을 정도로 처마밑에 걸어둔 풍경이 제 구실을 못한다.

오늘 밤에는 개구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줘야 겠다.

2001년 사월 마지막 날에

(필리핀에 갔을 때의 사진이다. )

조팝나무 꽃잎 날리는 산골에서 배 동 분


 
 
        

 

자발적 가난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8. 8. 9.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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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에세이’라는 말로도 대충 어떤 풍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나보다 아들 선우가 좋아하는 작가다.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 다르다.

고1인 선우는 최인호 작가의 역사 지식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부분이 무지 부럽고 존경스럽단다.

그러나 나는 역사 등에는 젬뱅이라 그런지 최인호 작가의 그런 책은 아직 안읽었다.
선우랑 대화가 되려면 ‘유림’ 정도는 읽어야지 하고 있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선우는 ‘유림’을 읽고 공자와 노자의 차이점,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과 스승을 대하는 점에 대해 느낌이 깊었다고 한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면 에미가 ‘유림’을 읽어야 하는데 ....

사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자극샘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산중일기’라고 되어 있듯이 일상을 얘기하지만 그 일상이 집이든 어디이든 마음이 가 있는 곳이 그곳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는 출발을 한다.

읽는 내내 놀라운 것은 천주교신자이면서 불교를 가까이 하고 그 좋은 면을 보려고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좋은 면이라기 보다 종교의 벽이 애초부터 없음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같다.

책 본문 중에 이 대목이 이 책을 쓰게 한 힘이 아닐까.
그 마음이 참 맑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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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교 신도도 아니고 새삼스레 초파일을 맞아 무어 소원을 빌 것도 없었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절에 들어서는 꼭 내 식대로 향 피우고 절 세 번 하는 법도를 잊지 않았다.
그게 무슨 즐거운 일인 양 꾸벅꾸벅 고개를 조아려 세 번씩 절을 했다.
나는 그리스도료 신자이지만 그것이 죄라고 생각지 않는다.
불교도 좋은 종교이며 그리스도교도 좋은 종교이므로 나는 종교 앞에서는 그저 두렵고 그리고 죄송스럽다. 두렵고 죄송스러우면 그 순간만이라도 겸손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무엇이 담력이 크다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예수님과, 내가 무에 대단한 데가 있다고 천 년도 넘게 세세연년 내려오는 저 자비로운 불상의 미소 앞에서 무릎을 세울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천주교 신자이지만 절에 가면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난 불교 신자들이 하는 절 방법을 몰라 서서 한참 부처님만 바라보다 돌아오곤 하였다.

초보농사꾼 역시 산에 갔다가 절이 있으면 꼭 들린다.
초보농사꾼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싶다.

천주교 신자라고 절을 멀리하고 할 일도 아니고, 절을 하면 안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코드가 맞다.

이 책에는 사진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가 절 풍경이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의 모습도 나오고, 스님의 고무신, 노스님의 뒷모습, 절 뒤켠, 스님의 차 마시는 모습, 절 문의 그림자 등등 모두가 절 풍경이다.

그냥 사진만으로도 묵상이 절로 되고, 일상의 뒤돌아 봄이 절로 될 것만 같다.
작가가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일상의 일들을 다른 장르로 표현했을 뿐이지만 독자의 마음은 어느 산속 깊은 암자에 가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선우가 시험 공부하는 중간중간 잠시 읽더니 이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다.

이 책은 사서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었다.
그리고 밭에서도 한 꼭지씩 읽으면 답운재밭, 새점밭, 호수밭, 달밭이 절이 된다.
그 옆의 조팝나무꽃은 절 처마끝의 풍경이 되고 말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2 -- 애들 탓할 필요없습니다.
+   [산골편지]   |  2008. 8. 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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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읍에 다녀오다가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꾀골재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일단 차를 세워 할머니를 부르니 너무 반가워하십니다.
늘 우리 가족을 친 혈육처럼 이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우리 반 할머니...

길가에 죽 내놓은 짐을 차에 실으니 미안해 하십니다.
우리 집 꺾어지는 곳에서 기름값 비싸다고 내려 달라시는 할머니....
들은 척도 안하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니 입이 닳도록 고마워 하십니다.

어여 올라가시라고 해도 짐을 막 푸십니다.
거기서 아는 분이 농사지은 양파를 주셨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자꾸 꺼내주시려 그 많은 짐보따리를 다 풀어보십니다.

거절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감사히 받는 것이 할머니 기쁘게 해드리는 길입니다.
잘 받아온 양파를 차에서 꺼내 계단에 두고 바라봅니다.
동글동글 할머니의 따사로운 얼굴이 을비칩니다.

오늘은 유독 하늘이 파랗습니다.


********************************************

요즘 아이들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를 열거해 보라면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어른 무서운줄 모르고, 위 아래가 없고, 생각이 없고,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고, 나눌줄 모르고........

모두가 부정적인 말 일색입니다.

왜 그리 되었을까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장 호르몬을 맞고 항생제를 들이 부어 기른 육류를 먹고 자란 세대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대가족 제도가 붕괴되면서 기가 세어진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어린 손자까지 모두 한 집에 살았다는 점을 들먹입니다.
그런 까닭에 센 젊은 아이들의 기가 약한 노인들에게 나누어지고 하여 기의 적정 배분이 이루어졌다는 논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 보니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이 자라서 배고픔도 모르고, 참을성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다섯 손가락 정도 꼽는 거는 보통이고 거기다 조금 넉넉하다 싶으면 마저 다섯 손가락이 동원되는 정도의 자식을 낳았는데 지금은 달랑 하나 떨어뜨리다 보니 양보할줄도 모르는 ‘너 잘났다 세대’가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모두가 일리 있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밥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먹기 힘든 세대가 우리네 부모 세대였지요.

그때는 가마솥에 밥을 지어 제일 먼저 그 집의 가장 밥을 먼저 펐습니다.
그리고 신주단지 모시듯 아랫 목에 묻어두고 나머지 식구들이 남은 밥을 퍼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앵무새처럼 말도 잘하는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대로 퍼먹습니다.
어른, 애 순서도 없습니다.
늦은 저녁에 들어온 가장도 전기밥솥에 남아있는 밥을 퍼먹으면 그만입니다.

"인간이 지금이 몇 신데 밥도 못얻어 먹고 다니다 들어와 달그락거려"라는 소리 듣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 목숨과도 같이 여겼던 밥에 우선 아래, 위가 없어졌습니다.

옛말에 배부르고 등 따수우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지요.
밥 다음으로는 등이 따수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랫목은 항상 어른, 가장의 자리였습니다.

지금은 공부하는 애들이 상전입니다.
걔들이 밥먹으러 나오면 제일 편한 식탁의자를 내어주고, 걔들이 쉬려고 거실로 등장하면 쇼파를 내어줍니다.

"인간이 신문은 꼭 쇼파에서 봐야 하나. 애들 쉬려면 꼭 쇼파 차지하고 난리야."소리 듣습니다.
그러니 가정에서 어른 지정석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른보다 늦게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래서 어둠이 깔리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마음조림과 어른의 눈치를 자연스레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금은 그 어른이 일로 지친 몸으로 새벽까지 차 안에서 자식 과외 끝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다 자식이 계단을 내려 오시면 잽싸게 차 문을 열고 나가 가방 받아들고 차문 열어 편안히 타시게 하는 풍경은 이제 이상하지 않습니다.

배고프다고 하기 전에 먹여 주고, 춥다고 하기 전에 따숩게 모시고 다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키운 것은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들이대던 부정적인 눈초리를 우리 자신에게 조명해야 할 때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슬을 먹고 자라지요.

어른들의 가치관과 언행을 먼저 조명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깊이,  안으로 안으로 반성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상도[전5권]을 읽고...
+   [산골아이들의 책이야기]   |  2008. 8. 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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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책의 제목에 내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다.

상도?
장사의 길이란 뜻 아닌가.

내 장래희망은 상업자가 아닌 작가였지만 이미 내 손은 책의 표지를 넘기고 있었다.
꿈이 다른 나라고 해서 돈벌기 싫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개의 작품도 그렇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이 책의 주 내용은 장사에 임할 때 갖춰야 할 정신 등에 대해서 2백년 전.
조선 팔도 제일의 전후후무 했던 거상 임상옥의 전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주로 알기에 장사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한순간의 운으로 기회만 잡으면 된다고 크게 착각하고 있다.
무릇 장사로 성공하려면 돈계산이나 학문, 덕 등은 팔도 제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가장 크게 착각하는 것은 상운이다.
다른 운은 아닐지 몰라도 상운이라는 것은 그 장사꾼의 덕, 학문, 지혜 등으로 예정되어 찾아오기 마련이다.

조선의 거상 임상옥 역시 이것을 꿰뚫어 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임상옥은 몇 안되는 인삼 교역권을 얻기위해 조선의 한 권력자에게 백지 수표를 바칠 정도로 대담한 사람이었다.
그때 그걸 본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비하했지만 상운은 준비된 그에게 조선 제일의 거부 자리에 앉혀 주었다.

흔히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고들 한다.

거상의 씨 역시 마찬가지다. 거상의 씨는 그 노력, 운 등으로 만들어 싹틀 수도 있고 썩어버려 악취를 풍길 수도 있다.

자, 이젠 우리도 품종은 다르지만 우리나라를 지탱할 거목의 씨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떠한가??

산골소년 박 선우

 
 
        

 

산중일기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8. 8. 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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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에세이’라는 말로도 대충 어떤 풍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나보다 아들 선우가 좋아하는 작가다.
좋아하는 이유가 나랑 다르다.

고1인 선우는 최인호 작가의 역사 지식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부분이 무지 부럽고 존경스럽단다.

그러나 나는 역사 등에는 젬뱅이라 그런지 최인호 작가의 그런 책은 아직 안읽었다.
선우랑 대화가 되려면 ‘유림’ 정도는 읽어야지 하고 있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선우는 ‘유림’을 읽고 공자와 노자의 차이점,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과 스승을 대하는 점에 대해 느낌이 깊었다고 한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려면 에미가 ‘유림’을 읽어야 하는데 ....

사실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자극샘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산중일기’라고 되어 있듯이 일상을 얘기하지만 그 일상이 집이든 어디이든 마음이 가 있는 곳이 그곳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는 출발을 한다.

읽는 내내 놀라운 것은 천주교신자이면서 불교를 가까이 하고 그 좋은 면을 보려고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좋은 면이라기 보다 종교의 벽이 애초부터 없음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같다.

책 본문 중에 이 대목이 이 책을 쓰게 한 힘이 아닐까.
그 마음이 참 맑아서 좋다.

"나는 불교 신도도 아니고 새삼스레 초파일을 맞아 무어 소원을 빌 것도 없었지만, 여행 중에 만나는 절에 들어서는 꼭 내 식대로 향 피우고 절 세 번 하는 법도를 잊지 않았다.
그게 무슨 즐거운 일인 양 꾸벅꾸벅 고개를 조아려 세 번씩 절을 했다.
나는 그리스도료 신자이지만 그것이 죄라고 생각지 않는다.
불교도 좋은 종교이며 그리스도교도 좋은 종교이므로 나는 종교 앞에서는 그저 두렵고 그리고 죄송스럽다. 두렵고 죄송스러우면 그 순간만이라도 겸손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무엇이 담력이 크다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예수님과, 내가 무에 대단한 데가 있다고 천 년도 넘게 세세연년 내려오는 저 자비로운 불상의 미소 앞에서 무릎을 세울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천주교 신자이지만 절에 가면 한없이 인자해 보이는 부처님 앞에 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난 불교 신자들이 하는 절 방법을 몰라 서서 한참 부처님만 바라보다 돌아오곤 하였다.

초보농사꾼 역시 산에 갔다가 절이 있으면 꼭 들린다.
초보농사꾼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싶다.

천주교 신자라고 절을 멀리하고 할 일도 아니고, 절을 하면 안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코드가 맞다.

이 책에는 사진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가 절 풍경이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의 모습도 나오고, 스님의 고무신, 노스님의 뒷모습, 절 뒤켠, 스님의 차 마시는 모습, 절 문의 그림자 등등 모두가 절 풍경이다.

그냥 사진만으로도 묵상이 절로 되고, 일상의 뒤돌아 봄이 절로 될 것만 같다.
작가가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일상의 일들을 다른 장르로 표현했을 뿐이지만 독자의 마음은 어느 산속 깊은 암자에 가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선우가 시험 공부하는 중간중간 잠시 읽더니 이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다.

이 책은 사서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었다.
그리고 밭에서도 한 꼭지씩 읽으면 답운재밭, 새점밭, 호수밭, 달밭이 절이 된다.
그 옆의 조팝나무꽃은 절 처마끝의 풍경이 되고 말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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