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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_해당되는 글 18건
2009.09.11   귀농풍경--귀농정보 하나 알려드리려구요. 
2008.08.15   산골편지7 -- 애들 교육은 어때요?? 
2008.08.15   귀농일기--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 1
2008.08.14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2008.08.13   완득이 
2008.08.13   산골편지5 --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는가?? 
2008.08.12   귀농일기 --거북바위 이야기 
2008.08.12   산골편지4 --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2008.08.09   산골편지3 -- 스스로 크는 아이들 
2008.08.08   산골편지2 -- 애들 탓할 필요없습니다. 

 

귀농풍경--귀농정보 하나 알려드리려구요.
+   [산골풍경]   |  2009. 9. 11. 17:05  

요즘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귀농한지도 10년차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송을 보고, 잡지 등을 보시고 찾아오시거나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국에서도 메일로 귀농 상담을 요청하기도 하고, 귀농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한 가족의 삶의 방향, 가치관의 방향을 바꾸고 재정립하는 것이 귀농. 귀촌이다 보니 상당을 해주는 우리 부부 역시 여간 신중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던중 농민신문에 난 공지를 보고 혹여 이 정보를 못보신 분들이 계실까 해서 올려 봅니다.

 

▲ 지난 8월 하늘마음농장에서 있었던 안동교구내 즉, 봉화, 영덕, 상주, 영주, 울진, 안동 지역의 귀농가족 모임 사진입니다.


농업인재개발원에서

농림수산식품부와 함께 안정적인 귀농. 귀촌 컨설팅 및 멘토링 수요자 선정을 하고 있습니다.

자격은 귀농희망자 및 2004년 이후 귀농자라고 하네요.

요즘 귀농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답답한 마음으로 저희 하늘마음농장에도 많은 문의를 해오시는데 한번 사이트에 들어가 보시고 정보를 얻으셨으면 합니다.

신청 접수 기간은 2009년 8월 18일부터 9월 13일 일요일까지네요.

비용 등 자세한 사항은 농업인재개발원에 문의 하시면 됩니다.

www.agriedu.net 입니다.

문의 전화는 농업인재개발원 교육지원팀 귀농.귀촌 담당자 031-460-8984

아무쪼록 좋은 정보를 얻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7 -- 애들 교육은 어때요??
+   [산골편지]   |  2008. 8. 1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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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그 비가 집 앞 도랑으로 빨려 나가고 작은 개울을 거침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 집 비포장 도로 끝나는 작은 다리 밑에 가보았더니 나보다 먼저 도착한 것들이 벌써 내를 이뤄 한목소리한다.
그것이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제구실을 한다.
바다에 가면 시끄러운 이유가 여기 있나보다.
각자 자신이 떠나온 산골짜기의 사연들을 모두 듣고 와서는 바다에 토해내니 그리 시끄럽고 드셀 수밖에.

세상의 온갖 못볼 일, 듣지 못할 일들을 다 듣고 오니 바다는 또 그리 가슴에 멍이 드는가보다.

************************

산골로 옮겨 앉고 신이 난 쪽은 아이들이다.
도시에서처럼 학원다니지 않아도 되고 공부 많이 안해도 되니 좋단다.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이나 전화거는 사람들이 걱정어린 듯 묻는 말이 있다.
"애들 교육은 어때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30명이다. 3학년인 선우네 반은 12명이고, 1학년인 주현이네 반은 5명이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교실에서 4~5명씩 마주보고 앉아 두 학년이 같이 공부한다.
마을 입구에 분교가 있는데 학생 수가 적어 폐교되었고 대신 거기까지 스쿨갤로퍼가 온다.

학교까지는 15분 정도 걸리고 선생님과 학생이 그저 식구처럼 지낸다.
학원은 물론 없고 굳이 가야 한다면 울진읍까지 불영계곡을 따라 50분 정도 가야 하지만 학원에 보낼 일이 없다.

논과 밭, 개울, 개집, 닭장이 선우, 주현이에게는 학원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것 저것 묻고 논이나 밭에 데리고 가 일거리도 배분해 준다.

도시에 있을 때에도 책은 잘 읽는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더 잘 본다. 요즘은 만화삼국지와 위인전에 푹 빠져 있는데 만화를 허용한 지는 1년되었다.
산골로 온 후 반년을 신나게 놀다 올해부터 학습지 국어, 수학을 하는데 그게 공부의 전부다.

시골학교라 숙제도 일기밖에 없다.
이사온 후 지금까지 TV안테나를 부러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TV 앞에 앉아 헛시간 보낼 일도 없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지금은 아주 좋다.
그대신 아이들은 비디오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온 가족이 책을 많이 읽는다.

사실 긴 겨울을 산골에서 아이들과 어찌 지내나 고민을 했었다.
자연 앞에선 너그러운 남편이 밭언덕에 자연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퇴비봉투를 하나씩들고 나서면 점심 때 불러야 들어온다.

작년에 눈이 바쳐 주었으니 아이들 얼굴은 여름보다 더 시커먼스.
엄마도 타보라고 하도 권하기에 애들 사기차원에서 앉았다가 "누가 나좀 말려줘유~~~~"하고 소리소리질렀으나 이 산골에서 누가 말려주랴.
결국 가시오갈피 나무 몇 그루를 아작냈다.

그런 급경사를 애들은 잘도 탄다.
그 덕에 두 놈이 내 부츠 두 켤레를 고스란히 분리수거장으로 보냈다.
겨울공부 종목은 또 많다.

가끔씩 남편은 "우리 영토에 누가(노루, 맷돼지 등)침범했나 가보자"며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갔다온다. 눈이 어른의 허벅지까지 쌓인 산비탈 밭으로 ...

애비는 노루 등이 눈 때문에 먹이찾으러 내려왔나 먹이걱정에 간 거였지만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침입자를 찾는다.

여름이 되었다.
나를 아는 친절한 이들이 "애들 공부걱정 안하세요?"라며 염려해 주시지만 이제는 자연과 어떤 공부를 할지 눈에 선하다.

언제 다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자연을 더 많이 느끼고 자신의 맑디 맑은 눈에 그것을 넣어 성인이 되었을 때 조금씩 꺼내 쓰기를 바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듯이 아이들이 자연에서 많은 생각을 얻고 맑히기를 바란다.

선우는 손님오는 게 싫단다.
오는 사람마다 같은 내용을 물어 그렇단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배운다.
하늘, 구름, 시냇물, 논과 밭, 해님, 개구리 친구들이 아이들 오기를 더 기다린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면 그 친구들이 내 대신 번갈아 마중나간다.

***************************

오늘은 아이들과 앵두를 땄다.
바구니를 하나씩 팔에 걸어 주었더니 잘도 딴다.

한참 후에 보니 바구니 바닥에 겨우 한겹 엎드려 있는 게 다였다.
"앵두 다 어디갔니?"
"엄마, 우리가................."하며 웃는데 입가에 빠알갛게 앵두물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색처럼 아이들 가슴도 곱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효소를 담아 맑디 맑은 유리잔에 넣어주면 고추잠자리와 한 모금씩 나누어 먹겠지........

모기와 파리가 극성인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사진은 필리핀 갔을 때이다)

2001년 유월 22일


 
 
        

 

귀농일기--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
+   [귀농일기]   |  2008. 8. 15. 16:00  
오늘은 농기계 순회수리하는 날이다.
이곳 지역자체가 워낙 오지이다 보니 1년에 한번씩 농한기인 지금
겨울철에 한번하는 행사가 얼마나 반가운 행사인지 모른다.

비용도 부품비 정도의 실비만 받거니와 이동하기 힘든 농기계를 수리하러
어렵게 읍내까지 운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월 8일에 한다는 것이 당일날 수리요원의 귀경때문에 18일로 연기되더니
어느날 갑자기 15일인 오늘 한다는 것이다.

아마 서울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인데도 시골사람들은 그저 이해할 따름
이다.

나 역시 화는 났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이곳 저곳 손볼 요량으로 경운기를
몰고 폐교 운동장으로 나갔더니 내가 제일 첫번째이다.
수리하는 사람들이 셋이 왔는데 모두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나 역시 씨익 웃어줬다.

이유는 말을 안해도 알지만 아뭏은 설명하면 그렇다.
귀농하여 경운기며 예취기며 엔진톱, 그리고 귀농인들 공동으로 구입한 벼 탈곡기
등을 그동안 사용하면서 사용법 내지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몰라 수십번 그곳을 들락
날락 했기 때문에 그사람들 속으로는 아마 그랬을 꺼다.

"아휴! 저 양반 또 무었때문에 왔을까! 또 그저 간단한 고장가지고 저렇게 난리치겠지..."
....
...
상호간에 그런 교감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이 그런 불평하지 않고 이곳 저곳을 수리하여 주고
덤으로 사용방법, 관리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니 여간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깨긋이 수리해서 경운기를 몰고 올라오려니 기분이 그래서 그런지 경운기 엔진소리가 한결
부드러운것 같고 기계톱으로 나무를 썰어보니 한결 잘 썰리는것 같다...

초보농사꾼 박찬득(이전 글이다)

 
 
        

 

산골편지6--지어먹은 마음대로..
+   [산골편지]   |  2008. 8. 1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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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갔었다.
4식구 올망 졸망 방파제를 지나 해송처럼 뾰족 뾰족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앉아 놀았다.

선우가 성당교육이 있는 날이라 미사시간까지 근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자장면 사먹고 서점에서 서로 다투어 책도 사고 이내 바다로 달렸다. 나도 닥아가고 바닷새도 마중나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바다에 취한다.
바다를 보니 문득 몇 달 전에 바다를 언제나 품고 사시다 엄마별에게 가신 작가 정채봉 님이 생각났다.

주현이는 애기 홍함을 3개 뜯어서는 주머니에 넣고 미역줄거리도 반찬해먹는다고 자기 끝 손가락만한 것을 딱 1개 뜯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랫만에 바닷가에 섰다.

저만치서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달려와서는 내 발 앞에 엎어진다.
그리고는 침을 하얗게 뱉어 놓고 되돌아갔다 다시와 침을 뱉는다.
바다는 자연을 닮은 것만 받아들이고 인간이 내다버리는 것들은 그대로 밀어낸다.

증오, 이기심, 시기, 쓰레기 등은 거칠게 밖으로 밖으로 밀어낸다. 그래도 세상에 불만이 많은지 침까지 뱉는다.

**********************************

사람은 똑같은 사람인데 얼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닥아와 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린듯 싶다. 그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를 지금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도시에서야 부족함이 있었던가. 그래도 늘 마음이 깔끔하지 못하고 안개 속을 걷듯 답답하기만 했었다.

열 수만 있다면 마음 속을 열고 비설거지하듯 씻어낸 후 햇볕에 말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정도로.

그 길이 진리인줄 알고 살았었고 지금도들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행복, 여유로움도 내 마음이 짓기 나름인 것을.
그저 큰 바람없이 지금 갖고 있는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혹여 바람이 있다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듯 소박하고 가슴절인 바람이라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올 겨울은 유독 눈이 많이 왔었다.
그 눈오는 어느 날 정채봉 님이 돌아가셨다는 내용을 카톨릭신문에서 접했다.
순간 눈내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 동안 기를 쓰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살았던 도시같았으면 '안됐네'라는 짧은 생각이 다 였으리라.

그러나 이곳 산골에서 접한 한 작가의 죽음을 두고 두고 마음에서 접었다 폈다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그 분의 책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정채봉 님에게는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아들낳고 꽃다운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 못해도 어머니의 내음은 때때로 떠오른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닷바람에 묻어 오는 해송타는 내음.

어떤 책에선가 어머니의 산소를 이장하러 가는데 스무 살 어머니가 머리가 히끗히끗한 늙은 아들을 보면 마음아파하신다며 머리에 처음으로 염색을 하고 갔다는 글을 읽었다.

그 분의 글 곳곳에는 어머니에 대한 절제된 그리움이 얼룩져 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간혹 할머니를 힘들게 하면 할머니는 팔을 베어 버리고 천 리나 만 리나 도망가 버리겠다고 하였단다.

그런 밤이면 팔베개를 내준 할머니가 팔을 베어 버리고 도망가실까봐 할머니 속적삼 옷고름을 손가락에 묶어 두고 잠들곤하였다고 마음아픈 어린 시절을 고백하기도 하셨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남의 일로, 남의 가슴앓이로 내 가슴을 내어 놓은 적이 있는가.
그저 내 가슴 속의 것들만 아프다고 후벼파내 보이며 반응을 구걸하지 않았던가.


그저 굳어져만 가는 가슴과 차가운 마음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사람은 평소에 지어먹은 마음대로 되는가보다.

정채봉 님은
"엄마,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엄마를 만나러 그쪽 별로 가는 때도 눈내리는 달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
라는 실개천같은 바램을 안고 살았었는데 정말 1월 눈이 내리는 날 엄마별에게 가셨다.

눈이 그토록 많이 내리는 날, 눈 위에 속세의 발자국을 남기며....

**********************************
산골에서는 나 모르게 피었다가 지는 꽃도 많다.
나 알게 피어도 워낙 꽃이름에 까막눈인 내가 이름 한 번 불러 줄 순 없지만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줄 수는 있는데 말이다.

지금은 하얀 찔레꽃이 구석진 곳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작년 두릅밭 언덕에 찔레나무가 너무 많아 하도 팔과 다리를 찌르기에 '쓸모 없는 건 지천이고 정작 요긴한 것은 드물고....'라며 서툰 낫솜씨로 구박했던 일이 미안스럽다.

세상 어디에도 쓸모 없는 것은 없는 것을.......
어찌나 하얀 다섯 손가락이 여리고 예쁘던지. 향기 또한 진하지도 않은 것이 제 몸의 가시를 감추고도 남음이 있다.
난 내 몸에 고슴도치처럼 돋은 가시를 무엇으로 가릴 것인가.

2001년 오월 26일에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가


 
 
        

 

완득이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8. 8. 1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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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한마디'에 산천어님이 추천을 해주셨을 때 일전에 서점에서 표지를 보았을 때 만화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표지가 청소년 만화같았거든요.

그런데 만화가 아니었습니다.

현재 선우, 주현이, 저 이렇게 셋 다 보았고 초보농사꾼이 한 반 정도 읽은 것같습니다.

저는 젊은 작가가 참 예리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 날개에 작가 소개와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작가 사진에서 그런 책을 쓸 정도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인상이 강해보였습니다.
젊은 작가가 현실을 그런 방면으로 비출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욕도 리얼하고 나옵니다.
또 학생이 선생이 죽기를 교회에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아름답고, 그리고 맘 아프고, 아리합니다.

소설에 그럴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요?

현실을 꼬집는 방법이 참으로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딱딱하기는 커녕 계속 읽으면서 너도 나도 킥킥 웃게 됩니다.

욕도 자주 나오지만 상스럽지 않더라구요.

온가족이 보기에 참 좋은 책인 것같습니다.
함께 거기에 나온 용어를 쓰면서 얼마나 웃는지 몰라요.
먼저 읽은 우리 세 사람은 그렇게 재미나게 웃는데 읽지 않은 초보농사꾼만 멍하니 있습니다.

이제 초보농사꾼도 반 정도는 읽었으니 함께 대화할 수 있겠지요.
청소년이 있는 가정에서는 더더욱 가족 모두가 함께 읽고 웃고 대화하기 참 좋은 책입니다.

주현이가 그런 책 안읽는다고 쭉 빼다가 내가 다시 권해서 읽었는데 내가 그 말 하면 웃고 제 방으로 들어갑니다.

슬픈 이야기인데 슬픔은 한 쪽 구석에 두고, 한 쪽은 웃게 하는 재주를 젊은 작가가 가졌네요.

조카들이 오면 보게 하려구요.
그리고 주현이 친구들에게 빌려주라고 했습니다.

식구 모두가 읽으려면 한권 사는 것도 괜찮지만 빌려 읽는게  좋을 것같습니다.
선우가 '선우 주현이의 책이야기' 코너에 후기를 썼기때문에 안올리려고 하다가 그래도 내 느낌을 전하고 싶어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비가 옵니다.
빗소리가  그만 자라고 하는 소리로 들리네요. 너무 늦은 시간이지요??
그래도 빗소리를 더 듣다 자려고 합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산골편지5 --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사는가??
+   [산골편지]   |  2008. 8. 1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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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장날이다.
성당에 선우교육이 있어서 6월까지는 매주 토요일에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

차로 50분 되는 거리를 꼬불 꼬불 불영계곡을 따라 몸도 같이 휘두르고 간다.
성당에 도착하면 어찌나 어지러운지 주현이는 그만 토할 때가 종종 있다.

아이를 성당 교리실에 보내고 나머지 식구들은 장보러 나섰다.
토마토,방울토마토,가지,오이,수박,참외,고구마 모종을 샀다.

과일에도 워낙 종약,제초제를 많이 치는터라 아이들 간식거리를 넉넉히 준비한 셈이다. 몇 낱 열릴지 몰라도....

아이들위해 이것 저것 고르는 무늬만 농부인 그이의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내일은 아이들과 먹을거리 심는다고 부산을 떨 박씨 일가를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

귀농을 허락하자 그이는 사표수리도 되지 않은채 차 먼저 처분했다.
지금 차는 농촌에서 너무 사치스럽다고.

그래 구입한 것이 포터 더블캡이다.
앞에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트럭.

그 트럭을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것을 보고 그만 혼자 울었다.
처음 그 트럭을 타고 나가는데 얼굴이 화끈거리고 몸둘바를 몰라 하는데 아이들은 좋단다.
뒤에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다나.

처음 그 트럭을 타고 광화문에 있는 한국생산성본부에 원고갖다 주러 가는데 내내 우울했었다.

옆에 탄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창 밖을 보니 다 나만 쳐다보는 것같고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이 표정은 나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듯했다.

그리고 귀농!!!

귀농 후에는 처음보다 조금 덤덤해지긴 했지만 솔직히 아무렇지 않은듯하지는 않았다.

손도 그을릴대로 그을리고 나물캐고 고추심느라 갈라지고 터져 시장이나 성당에서 무엇을 집으려다가 내 손에 내가 놀라 움츠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내 산골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산골차림에는 그 터진 손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우리는 흔히 나 위해서 산다고 한다.
그리 강조하는 걸보면 남위해 사는 부분 또한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어떨까'하는 마음에 집착하다보면 우선 주체성을 잃게 되고 겉치레에 치중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내가 얼마만큼 주인으로서 자리잡고 있느 하는 것이다.

내가 중고트럭을 타고도 행복하면 그만이고 다 갈라진 손으로 다녀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았는데 이제는 일치되어가고 있다.

도시에서 좋은 차타고 좋은 옷입고 다니면서 제일 행복해했는가.
불평도 없고 자식,남편에게 만족하며 살았는가 반문해 보고 싶다.
몸뚱아리의 주인인 마음이 평화로운가가 문제라고 본다.

우리 산골에 심심잖게 손님이 찾아온다.
가족이나 부부가 올 때가 많은데 대부분 남자는 이 생활을 동경하는 눈치인데 부인은 거침없이 "이런데서 살으라면 난 못살아요"한다.

이곳이 사람살 데가 아닌가? 듣고 나면 이내 마음이 언잖다.
그럴 때 묻고 싶다.

"그대는 도시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인가?"

난 말이다.
우리 하늘마음농장에 오는 다른 이들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이곳에 돈을 벌기 위해 오지 않았다.

돈은 도시에서 버는 편이 훨씬 고상하고 빠르다.

그러나 나만이 평화롭기 보다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평화를 맛보기를 바란다.
도시에서 찌든 때를 벗어버리고 싶을 때 조용히 마음을 감싸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저 바람처럼 왔다가 세속의 모든 가슴앓이를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빈 자리를 마련해 놓고 싶다.

지금 이 순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달라이라마는 말했다.

"진정한 자비심은 물질을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라고............

*******************************
비가 안온다고들 야단이다.
아닌게 아니라 마늘들도 삐죽 삐죽 고슴도치 가시처럼 쑥쑥 돋아나더니 얼굴이 노래가지고 땅만 쳐다보고 있다.

길가에 뿌려둔 조그만 꽃씨들도 꼭꼭 숨어 어디에 있는지 찾지도 못하고 있다.
하늘을 본다.

별들이 소풍나온듯 여기 저기서 보물찾기를 하고 있다. 내일도 나의 이웃에게 물주기는 틀린듯하다.

내일은 하다못해 물을 길어다가라도 먹여야겠다. 마늘,채송화,목화,홍화,매실나무에게....................


2001년 오월 13일에
개구리소리 요란한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일기 --거북바위 이야기
+   [귀농일기]   |  2008. 8. 12. 02:3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로 기이한 노릇이다.

서울서 이곳으로 귀농하려고 땅 주인과 가격협상을 할 때 땅 주인 아저씨께서

이 터가 육관 손석우가 헬기타고 봐 둔 명당터이며 금구몰니(金龜沒泥)형이니

비싸게 땅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나는 그냥 토지를 파는 사람이야 당연히 많이 팔고싶은 욕심에 그려려니

하고서는 적당한 가격에 매수를 해서 살았다.


그런데 작년에 집 앞에 큰 바위가 있고 그옆에 두릅나무 밭을 조성했던 것을 두릅나무가

죽어서 밭을 개간하다가 그 큰 바위가 거북바위 몸통이었고 땅속에 묻혀진 거북이 머리부분을 발견

했던 것이다.(사진에 보이듯 검은 부분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흰부분은 당시에 묻혀있던

것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에는 거북바위를 보고 깜짝놀라 당시에 터를 살때 금구몰니니 명당터니 하던말이 진짜인것

같아서 가슴이 덜컹덜컹 했으나 지금은 그저 우리집을 지켜주는 수호 거북이가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는 마음으로 매일 올라가 마음속으로 대화하며 산다.


 
 
        

 

산골편지4 --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   [산골편지]   |  2008. 8. 12.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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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께서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은 그래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기껏 아는 게 뻐꾹새 소리밖에 없느냐"고 핀잔을 주시며 일일이 새이름을 구별해 가르쳐 주셨다듯이 나 역시 새소리는 뜸부기,까치,까마귀 소리밖에 모른다.

또 설령 열심히 알려줘도 그 소리가 그 소리같고 그 모습이 그 모습같아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뿐인가.
나물이름,들꽃이름도 매한가지다.

특히 나물은 더 까막눈이라 왼손에 샘플을 들고 다니면서도 똑같은 것 뜯기가 여간 능력에 부치는 것이 아니다.

이웃 형님의 놀림도 놀림이지만 이곳 산골에서 뿌리내릴 사람이다보니 내 자신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오늘은 샘플로 뜯어 준 것이 시들어 꼬부라지도록 똑같은 것을 못뜯었다.
나물과 새와 들꽃들과 정말 친해지고 싶은데 잘 안되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

부모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공부는 엄마주려고 하니? 너 위해서 하지."

내가 한국생산성본부 첫 여자 연구원으로 입사했을 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난 사실 학교다닐 때 정말이지 엄마위해 공부할 때가 많았어. 그 정도로 엄만 내게 헌신적이셨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여느 엄마가 자식에게 헌신적이지 않을까마는 얼굴이 안개꽃처럼 하얀 내 엄마는 당신은 없고 오직 자식만 있었다.

어쩌다 한 겨울 새벽에 도서실가는 것이 귀찮아 포기하려다가도 내 에미 새벽부터 도시락 싸놓고 자식 머리맡에서 시계 초세고 계시는 모습이 가슴저려 졸면서 도서실갈 때가 부지기수였다.

또 개인주택에 산 탓에 한 겨울 자식이 신을 신발을 미리 방안에 갖다놓으시고는 혹여 덜 따뜻할세라 당신 옷으로 덮어두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도서실에서 잠시 졸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곤했었다.

그 덕에 이 머리로 대학.대학원을 수석졸업할 수 있었다.
엄마는 늘 "여자도 많이 배워 활동적인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유학도 자신있으면 해보라고 부추겨서 아버지에게 시집이나 보내지 쓸데없는 소리한다며 핀잔을 들으시기도 했다.

결국 일본유학을 계획하고 사전답사도 다녀왔었다.

그러던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느라 유학을 덮어놓고 있었다.
몇 달 전에 풍을 맞으신 엄마를 보기 위해 서울에 갔었다.

시원찮은 발을 끌며
"막내야, 그 때 유학을 더 서둘러 보냈더라면 벌써 다녀왔을텐데...."하셨다.
산골에 들어가 뙤앝볕에 고추밭매고 나물뜯는 막내딸이 가슴에 저려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며 눈에서 맑은 물을 흠치셨다.

그 때 내 가슴은 두릅나무 가시보다도 더 큰 가시가 파고드는 것같았다.

그 때 보았다.
우리 고추밭골보다도 더 깊이 깊이 패인 엄마의 주름을...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충청도의 어느 종가집 맏며느리셨다.
머슴까지 13명의 뒷치닥거리를 다 해야 하는 전형적인 종가집.

이러다가 딸 다섯을 다 시골남자와 결혼시키겠다 싶어 밤마다 아버지 옆구리찔러 서울가자 하셨었단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축하시던 아버지도 결국 엄마의 끈질긴 설득끝에 아이들을 서울에서 공부시켜 서울남자와 결혼시키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때 난 코흘리개였고.

그랬더니 결국 막내딸이 다시산골로 들어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 에미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어느새 목구멍이,목구멍이 불덩이로 막히는 것같다.

병든 엄마가 보고싶을 때마다 읽는 글이 있다.
피천득님의 '엄마'라는 글이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자지 못한 때문이다."

이 글을 맨 처음 읽었을 때 많이 울었다.
이 밤에 혼자 중얼거려본다.

'엄마 나도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영광이야. 사람은 어느 하늘 아래에 머리를 두고 살든 착하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한거야. 엄마, 너무 마음아파 하지마.'

******************************
오늘은 과꽃같은 우리 엄마가 보고싶을 때 보려고 과꽃씨를 뿌렸다. 가뭄에 말라죽지 않고 흐드러지게 피어 이 산골이 엄마의 향기로 가득찼으면 좋겠다싶어......

도시에 있을 때에도 글을 썼었다. 책으로 내서 울 엄마에게 드리려고..... 이 곳 산골에 와서 더 열심히 쓰고 있다.

오늘따라 하늘에 별도 몇낱없다. 모두 지에미 품에 들어가 자는가보다. 바람도 자고 텃밭의 마늘들도 자겠지.
나도 자기 전에 병든 엄마에게 목소리 공양을 해야겠다.


2001.5.13일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싶던 날에.

산골에서 배 소피아.


 
 
        

 

산골편지3 -- 스스로 크는 아이들
+   [카테고리 없음]   |  2008. 8. 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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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뿌리려고 작년에 씨를 받아두었던 바구니를 찾았다.
바구니에서 그대로 엎드려 일년을 보낸 터라 그런지 냉큼 내 가슴으로 와 안긴다.

봉선화, 채송화, 과꽃씨등을 심으려니 여간 땅이 가문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비가 오면 심기로 마음먹고 검고 하얀것들을 다시 올려 놓았다.

아무리 가물어도 오늘 꼭 심으려고 했던것이 목화였다.씨를 어렵게 구한지라 물을 매일 길어다 줄 요량으로 언덕에 심었다.

지금 아이들이 목화를 기억할까?
아마 문익점이라는 위인전에서나 들어본 이름일게다.

한 숟가락 정도 되는 양이지만 어서자라 나의 아이들에게 "옛날 분들은 이불솜을 이꽃에서 구했단다" 라고 얘기해 주려고 서둘러 심었다.

가문땅에 심은지라 물을 길어다 주는데 꽤 인내력을 필요로 했다.
올해 씨를 더 많이 받아 내년에는 한밭 가득 목화를 심어야 겠다.
내용이야 있든 없든 많은 아이들이 목화를 보러 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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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이들이 제일 걱정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잘 적응을 할까?
햄버거, 치킨, 피자등이 먹고 싶을텐데, 재래식 화장실에 쭈구려 앉아 볼 일을 못볼텐데, 학교에 다녀왔을때 에미,애비가 저 윗밭에 가 안보이면 무서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지금은 아이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크고 나면 부모에게 고맙다고 할거야"
남편은 자신에 찬 소리를 했다.

그러나 난 글쎄 였다.
막상 귀농하고는 애들 상태만 살폈다.

짐정리, 집정리 등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집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집을 위해서 있는건 아니다 싶었다.
더욱 아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소한의 문화충격을 줄여주어야 할 의무가 내겐 있었다.

남편은 이삿짐만 내리고는 서울로 갔다.

사표수리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들이 적응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암세포 번지듯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이들보다 어른이 더 적응을 못했다. 화장실 갈 때 대낮에도 두놈이 같이 가주고 한참을 그러더니 낮에는 혼자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두워지면 후레시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가주었다.
도시에서는 놀 때에도 각자 노는 일이 많았다.

이곳 산골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다. 아이들이 둘인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그러다 애들 아빠가 산골로 합류하게 되니 아이들이 더 명랑해지고 재미있어 했다.

아이들은 논리적이고 머리로 다가오는 지 에미보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다가오는 지 애비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도 보다 단순하게 행동해야 팬들을 놓치지 않을것 같다.

얼마전에는 아침에 주현이가 "학교에서 오는 길에 덕거리 친구집에서 놀다 오면 안되느냐" 고 물었다. 그곳은 마을 입구로 어른도 15~20분 걸리는 거리다.

그 전에도 놀다 온다기에 올때는 혼자 걸어서 오라고 했는데 결국 지 아빠를 불러 그때 아빠와 약속한 바가 있었다.
혼자 걸어올 자신이 없으면 놀러가지 말라고....

친구도 없는 곳인데 아이들 데리러 가는 것 쯤이야 당연히 해야 하는건 아닌가 생각하니 그이가 야속했다.

주현이는 혼자 걸어올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결론이야 어땠든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녁이 다 되어도 아이 그림자는 안보이고 나무 그림자만이 늘어만 갔다.
이제 초등학교 아이를 너무 일찍 산골아이 취급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애려왔다.

전화를 하자니 버릇될 것 같고 선우에게 집 입구 다리까지 가보라고 일렀더니 한참후에 어둠만 데리고 나타났다.
이제는 버릇이고 뭐고 애 놀랄까 싶어 뛰어 나갔다.
비포장길 끝날 즈음에 하얀 물체가 보였다.

"주현이니?"

"네 엄마!"

아이의 목소리는 맑고 밝았다.

"주현아, 혼자 걸어왔어? 왜 이렇게 늦었니?"

아이는 극히 침착한데 에미만 호들갑이다.

"엄마, 오다가 냇가보며 생각도 하고 또 오다 멈추다 놀고도 왔다"
어린 것이 에미보다 낫구나 싶었다.

아이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타다 세워둔 두발 자가용을 보더니 샬롬 샬롬 노래를 부르며 뛰어가 탄다.

헤브라이어로 샬롬은 "평화"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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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봄이 지나려는 듯 바람도 기가 죽어있다.

어쩌면 바람이 봄 따라 갈지도 모른다 싶을 정도로 처마밑에 걸어둔 풍경이 제 구실을 못한다.

오늘 밤에는 개구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줘야 겠다.

2001년 사월 마지막 날에

(필리핀에 갔을 때의 사진이다. )

조팝나무 꽃잎 날리는 산골에서 배 동 분


 
 
        

 

산골편지2 -- 애들 탓할 필요없습니다.
+   [산골편지]   |  2008. 8. 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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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읍에 다녀오다가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신 꾀골재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일단 차를 세워 할머니를 부르니 너무 반가워하십니다.
늘 우리 가족을 친 혈육처럼 이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우리 반 할머니...

길가에 죽 내놓은 짐을 차에 실으니 미안해 하십니다.
우리 집 꺾어지는 곳에서 기름값 비싸다고 내려 달라시는 할머니....
들은 척도 안하고 댁까지 모셔다 드리니 입이 닳도록 고마워 하십니다.

어여 올라가시라고 해도 짐을 막 푸십니다.
거기서 아는 분이 농사지은 양파를 주셨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자꾸 꺼내주시려 그 많은 짐보따리를 다 풀어보십니다.

거절을 해도 소용이 없으니 감사히 받는 것이 할머니 기쁘게 해드리는 길입니다.
잘 받아온 양파를 차에서 꺼내 계단에 두고 바라봅니다.
동글동글 할머니의 따사로운 얼굴이 을비칩니다.

오늘은 유독 하늘이 파랗습니다.


********************************************

요즘 아이들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를 열거해 보라면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어른 무서운줄 모르고, 위 아래가 없고, 생각이 없고,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고, 나눌줄 모르고........

모두가 부정적인 말 일색입니다.

왜 그리 되었을까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장 호르몬을 맞고 항생제를 들이 부어 기른 육류를 먹고 자란 세대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대가족 제도가 붕괴되면서 기가 세어진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어린 손자까지 모두 한 집에 살았다는 점을 들먹입니다.
그런 까닭에 센 젊은 아이들의 기가 약한 노인들에게 나누어지고 하여 기의 적정 배분이 이루어졌다는 논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 보니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이 자라서 배고픔도 모르고, 참을성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전에 다섯 손가락 정도 꼽는 거는 보통이고 거기다 조금 넉넉하다 싶으면 마저 다섯 손가락이 동원되는 정도의 자식을 낳았는데 지금은 달랑 하나 떨어뜨리다 보니 양보할줄도 모르는 ‘너 잘났다 세대’가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모두가 일리 있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밥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먹기 힘든 세대가 우리네 부모 세대였지요.

그때는 가마솥에 밥을 지어 제일 먼저 그 집의 가장 밥을 먼저 펐습니다.
그리고 신주단지 모시듯 아랫 목에 묻어두고 나머지 식구들이 남은 밥을 퍼먹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앵무새처럼 말도 잘하는 전기밥솥에 밥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대로 퍼먹습니다.
어른, 애 순서도 없습니다.
늦은 저녁에 들어온 가장도 전기밥솥에 남아있는 밥을 퍼먹으면 그만입니다.

"인간이 지금이 몇 신데 밥도 못얻어 먹고 다니다 들어와 달그락거려"라는 소리 듣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 목숨과도 같이 여겼던 밥에 우선 아래, 위가 없어졌습니다.

옛말에 배부르고 등 따수우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지요.
밥 다음으로는 등이 따수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랫목은 항상 어른, 가장의 자리였습니다.

지금은 공부하는 애들이 상전입니다.
걔들이 밥먹으러 나오면 제일 편한 식탁의자를 내어주고, 걔들이 쉬려고 거실로 등장하면 쇼파를 내어줍니다.

"인간이 신문은 꼭 쇼파에서 봐야 하나. 애들 쉬려면 꼭 쇼파 차지하고 난리야."소리 듣습니다.
그러니 가정에서 어른 지정석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른보다 늦게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래서 어둠이 깔리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마음조림과 어른의 눈치를 자연스레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금은 그 어른이 일로 지친 몸으로 새벽까지 차 안에서 자식 과외 끝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러다 자식이 계단을 내려 오시면 잽싸게 차 문을 열고 나가 가방 받아들고 차문 열어 편안히 타시게 하는 풍경은 이제 이상하지 않습니다.

배고프다고 하기 전에 먹여 주고, 춥다고 하기 전에 따숩게 모시고 다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키운 것은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들이대던 부정적인 눈초리를 우리 자신에게 조명해야 할 때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슬을 먹고 자라지요.

어른들의 가치관과 언행을 먼저 조명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깊이,  안으로 안으로 반성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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