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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 _해당되는 글 6건
2009.10.28   귀농아낙의 산골편지--골이 달그락거린다. 
2009.06.22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나만의 공간이 있는지... 
2009.06.16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대머리 민들레가 나를 가르친다. 
2009.04.15   산골편지--올 한해 잘 살아보자. 
2009.04.03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실의의 날엔... 
2009.03.18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오랫동안 주저앉고 싶다. 

 

귀농아낙의 산골편지--골이 달그락거린다.
+   [산골편지]   |  2009. 10. 2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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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가을이 깊어지는 것을 무엇으로 느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이웃집 할아버지의 부지런함을 보면서도 단박에 알아차린다.


우리 집에서 내려가면 다리결에 이웃집 할아버지의 밭이 있다.
그곳에 메밀을 심으셨다.


여름에 하얗고 앙증맞은 을 피워 오고가는 나를  침을 질질 흘리게 해주더니 지금은 깡똥하게 쌓여져 있다.

할아버지는 벌써 밭을 비워 놓으셨고, 초보농사꾼의 야콘밭은 땅 속에서 아직도 야콘들이 몸집을 키우고 있다.


********************************************


얼마 전에 느닷없이 손님이 왔다.
한번도 본적도 , 통화를 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들이닥친다고 예고도 없었다.


남자는 귀농에 관심이 있는 부부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입가에 잔뜩 불만이 불어 있는 그의 아내를 내 가까이로 잡아끈다.
그의 멘트와는 다르게 그의 아내는 귀농에 관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밭에서 일하다 내려왔기 때문에 집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참 해야 했다.


장화를 벗어야 하고,
장화속으로 튀어 들어온 흙과 트분데기를 털어내야 하고,
발이 건조해서 늘 180도 돌아가 있는 양말을 바로 돌려 신어야 하고...


그러는 사이 그의 아내는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가 앉아가지고서는 내가 보다가 엎어뜨려 놓은 책을 뒤적이더니 한 마디 던진다.

"고려대학교까지 나온 여자가 왜 중이 되었데? 골이 비어도 한참 비었던지, 뭔 하자가 있나부지."한다.


그 책은 고려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홍대 미대를 다닌 어느  비구니 스님이 쓴 책이다.

그 말이 꼭 손님 뒤꽁무니를 쫓아 느리게 들어와 차를 준비하려는 내게 던지는 말같다.


입을 씰룩이며 잔뜩 불만에 찬 표정으로 보아 그런 것같다.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들이 왜 귀농해서 땅파먹고 산데?? 골이 비어도 한참 비었던지, 하자가 있나부지?' 내게 내던지는 말같다.





예전 같았으면 남이야 을 파먹던, 골이 비던, 하자가 있던 무슨 상관인가 싶어 나 또한 입이 십리는 나와서 몇 마디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귀농하여 자연의 한 자락 빌붙어 살다보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말인지를 판가름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판가름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지 그런 말을 들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4차원적인 수준에는 못이렀다.

내가 그들에게 귀농하라고 권한 것도 아니고, 한번 다녀가라고 말한 적도 없는 생면부지 사람들이 왜 그럴까... 하고 입은 굳게 다물게 되었다.


거기까지는 되었다.


흙과 나무, 시냇물, 실눈을 뜨고 웃는 초승달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언제, 어느 때 , 어떤 상황에서도 두 팔 벌려 품어주는데
사람 잘못 마주한 날은 진종일 골이 달그락거린다.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으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나만의 공간이 있는지...
+   [산골편지]   |  2009. 6. 22. 00:30  

2007년 6월 12일

햇살이 따가워 밭에 나가기 겁이 납니다.
챙 큰 모자를 쓰고 그것도 모자라 거기에 수건을 둘러 씁니다.

귀농 전, 여행을 가다 만나는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저 밭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은 챙 큰 모자에 왜 또 수건을 둘렀을까?
그 궁금증이 귀농하고 풀렸습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지 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자로 가리기 부족한 얼굴 측면으로 내리 꽂히는 햇살을 막아보자는 심산이지요.

귀농 초에은 그 수건이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수건 안의 그늘이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룹니다.

나만의 그 작은 그늘 안 세상에서 난 위안을 얻습니다.
지금의 나를 벌겨 벗겨 보고, 내일을 어림잡아도 보고, 작은 그늘을 닮은 작은 희망의 싹도 틔웁니다.

챙 큰 모자 아야기에 너무 진도가 오버됐습니다.

하여간 챙 큰 모자에, 긴 팔 옷에, 다시 긴 난방을 덧입고 나섭니다.
한참 밭 일을 하다 쉬는 시간...
얼굴로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햇살을 지청구 하다가 길고 긴 장마철을 생각합니다.

방에도, 마루에도, 마당에도, 옷에도 온통 습기가 진을 칩니다.
젖은 수건은 마를 줄 모르고, 인간의 힘으로는 부족하던지 기계의 힘까지 빌려 짜 널은 빨래는 마르기는커녕 더 무거워집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람까지 습해져서 생각까지 눅눅하게 가라앉습니다.

어서 이 시간이 자나갔으면 하고 입을 씰룩이다가도 장마철을 떠올리며 오늘 이 햇살을 내 몸에 난 모공마다 감사히 찔러 넣어둡니다.

장마철 대비 작업 중 하나가 되었으니 많이 시골 생활에 지혜로워졌지요??

뙤약볕 아래 잠시 쉬며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대만의 어떤 공간을 갖고 있는지요?? 그 공간에서 내일을 꿈꾸고 희망을 일구고 있는지??"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대머리 민들레가 나를 가르친다.
+   [산골편지]   |  2009. 6. 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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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1일


철늦은 민들레꽃의 샛노란빛이 화사하기 보다는 측은하다.
남들은 벌써 다녀갔건만 무엇을 하다 이제서야 홀로 피어 섞이지 못하는지.

그 집안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몸살을 앓다가 이제야 몸을 추스려 그래도 제 할 일을 하려고 서둘러 늦은 꽃을 피운 것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나처럼 성격이 느긋하여(좋게 얘기하면 느긋하고 좀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느려터져) 부랴부랴 꽃몽우리를 터뜨린 것인지 말을 안하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막 꽃피울 차례를 기다리며 마음을 정갈히 하고 있는 작약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그 홀로 바닥에 앉아 있다.
그게 마음이 쓰인다.


****************************************

산골에는 씨뿌리지 않았어도 민들레가 지천이다.


사람이 욕심껏 걷우려 씨를 방사하지 않아도 정도껏만 민들레를 채취하면 제가 알아서 자식을 번창시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 좋다면 멸종될 때까지 잡아들이고, 뽑아재끼고, 낚아 재낀다.


우리도 인디언들처럼 자신에게 최소한의 필요한 양만 취하고 나머지는 자연의 것으로 남겨둘 날은 언제일까...

요즘 민들레가 항암효과에 좋다, 어디에 좋다하니 보이는 족족 캐고, 뽑고 난리라고 한다.
병을 고치려는 급박한 마음이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 이처럼 '욕심'이 작용했기에 물도, 공기도, 먹거리도 모두가 안전하지 못해  병을 부른 것이라고 생각하니 욕심이란 먹이사슬처럼 끝없는 상처를 남기고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암세포와도 같은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민들레철이 아니나 민들레를 보면 샛노랗고 하얀꽃보다는 그 이후에 보이는 현상에 더 눈과 마음이 간다.
나도 귀농 8년차에 눈과 마음이 뜨인 것이라고 보면 맞다.


지금껏은 이마에 지렁이같은 핏발을 세우고 살아서 그런지 화려한 꽃만 눈에 들어왔다.
민들레 철이구나, 캐서 효소담아야겠구나 하는 정도가 그를 대하는 내 태도의 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화려한 꽃보다 그 다음에 오는 현상에 눈이 오래 머문다.
민들레는 다른 꽃과는 달리 화려한 꽃이 지고 나면 후편이 이어진다.
제삿밥처럼 고봉으로 씨를 매달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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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서커스하듯 바람과 맞서고 서있는 둥그런 씨봉우리를 보면 뒷간을 가다가도 발로 찼다.
차주는 것이 그들의 번식을 도와준다는 알량한 마음도 작용을 해서고 차주기를 기다렸다는듯이 사방으로 힘없이 흩어지는 그이 모습이 재밌기도 해서다.

그러나 올해는 뒷간 가면서 그것을 발로 걷어 차지 못했다.
짚이는 데가 있었다.
절대로 씨 한 톨 빼앗기지 않을듯 동그르랗게 끼고 있던 자식들을 때가 되면 사방으로 그들을 떠나보낸다는 사실을 알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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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자식을 떠나보낼 때의 마음이야 오죽할까마는 그는 그렇게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식을 하나도 안남기고 모두 떠나보내면 달랑 자신의 빈 몸뚱이만이 바람을 맞고 서있다 어느날 그도 스러지고 자취 조차 남기지 않는다.

민들레의 이 영화 한 편을 보면 우리네 삶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도 올해에야 깨달은 바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는다.


자식 또한 평생 끼고 살 것처럼 늘 어려보여 보호하려들지만 어느 순간에는 매정하게 홀로서기를 시켜야 할 때가 온다.


등을 떠미는 에미 마음이 서럽지만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토머스 머튼의 말을 되뇌고 되뇌며 손을 놓아야 한다.
그렇게 다 떠나보내고 나면 우린 어느새 아무 것도 쥐지 않고 올 때처럼 그렇게 갈 것이다.

갓태어난 아기의 까까 머리와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서있는 민들레.
난 그 모습을 오랫 동안 쭈그리고 앉아 보았다.


그것은 나의 시계바늘도 폼생폼사의 시기를 지나 민들레의 변화모습처럼 후반으로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인식했기때문이다.

대머리 민들레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간디와 함께 인도의 정신적 지주인 비노바 바베의 말이 생각났다.

"실제로 우리의 고향은 저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들이다.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며칠 남았을 뿐.


나는 분명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며 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들....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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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 해 농사는 안되도 좋다.
인생농사가 풍요로우니 말이다.


이번에는 대머리 민들레가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면 다음은 이 산중에서 누가 내 스승이 될지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바라건대 내 모든 숨쉬는 의식이 앞으로도 쭈욱 오늘과 같은 방향으로 자맥질해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날이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산골편지--올 한해 잘 살아보자.
+   [산골편지]   |  2009. 4. 1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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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일

아무리 바빠도 오늘은 답운재밭에 꼭 가야한다.
털신신고 집에서 나와 걸어올라가는 텃밭이 아니라 일이 있어야만 시동을 건다.
오늘의 용건은 표고버섯 따는 일...

원래 표고버섯은 달밭과 호수밭 중간에 위치한 하우스안이 제 집이었다.
초보농사꾼이 거기에 멋지게 배열을 해두었고 앙증맞게 나오는 표고버섯을 잘 따서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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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다르게 뽀얀 속살을 내미는 표고버섯을 보며 내게 소중한 분들을 떠올렸고 그분들에게 두어 개라도 맛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 자주 올라가 동태를 살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작은 집을 하나 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년만에 표고버섯은 방을 빼야 했다.
초보농사꾼이 겨울동안 야콘즙을 짜느라 온 기운을 다 뺐기 때문에 표고목을 어떻게 옮기나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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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저 표고목에 종균 넣느라 팔에 ‘테니스 엘보’라는 병명으로 고생이 심했었다.
그러니 나 또한 걱정이 될 수 밖에...
어느 날 보니 혼자 표고목을 옮긴다.
아마 몇 차 날랐을 것이다.

일단은 답운재밭 한 켠에 있는 하우스로 새 터전을 옮기기로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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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옮기다 다시 이런 저런 일로 못 옮겼고 세종이 조카가 왔을 때 마지막 표고목을 옮겼다.

그렇게 옮겨 놓은 표고목에 표고버섯이 많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답운재밭으로 내달렸던 것이다.

커다란 소쿠리랑 그릇을 두 개나 가지고 갔다.
그러고도 자루를 가져갈까를 생각했으니 얼마나 야무진 생각인지...

가보니 웬걸, 조금 밖에 안나왔다.
이 놈들이 시치미를 뚝 떼고 서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내 정신의 버팀목처럼 든든하던지..



단단히 준비하고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갔는데, 지들도 자리텃을 하는 모양이다.
달밭의 집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가 갑자기 방 빼라고 하고 옮겨 앉았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초보농사꾼이 바쁠 때 옮겨 놓아서 일부는 세워 놓았고 일부는 미처 세워놓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이곳의 야콘을 마지막으로 캐면서 수확이 거의 없었던 개울가쪽 비닐을 미처 못걷었었다.
너무 추울 때까지 마지막 야콘을 캤고 이미 그때는 땅이 얼어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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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 것을 아까워 할 것이 아니고 비닐을 다 걷고가자..고 맘먹었다.
비닐을 걷기 시작했다.
우아하게 표고버섯을 따오려고 집에서 입고 있던대로 왔는데 이거 막노동을 하게 생긴 것이다.
그게 무슨 상관인지...

그렇다고 내가 명품 옷을 입고 온 것도 아니고 옷이야 빨면 되는 일이라 작업복을 입은듯 비닐을 가슴에 안아가면서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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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글송글 땀도 나고 기분이 참 좋다.
비록 표고버섯은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지만 지금 난 대지와 새해 인사를 하며 놀고 있으니 좋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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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비닐도 다 걷었으니 작은 수확물을 기쁘게 받아들고 집으로 가야 한다.
땀흘려 일하고 나니 제대로 시간을 보낸 기분이 들어오랫만에 새로운 기운을 얻었다.

다시 답운재 전체의 밭을 둘러본다.
작년에 수고한 대지...
긴 겨울동안 잘 쉬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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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나 나나 한해 농사를 잘 시작해 보자.
땀흘리며, 서로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올 한 해 잘 살아보자‘고 인사를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실의의 날엔...
+   [산골편지]   |  2009. 4. 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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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집을 짓는다고 하면서 마당에 심겨 있던 꽃나무 등을 옮겼었다.
더러는 제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고, 더러는 새로 옮긴 터전에서 열반에 들고, 더러는 새집으로 옮겨지기도 전에 시들어 죽기도 했다.

그 중 자귀나무는 두번째 이유로 열반에 들었다.
늦은 봄이면 내가 좋아하는 핑크빛 꽃으로, 공작새의 깃털처럼 생긴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꽃을 피워 산골 아낙의 사랑을 받던 자귀나무.
딱 한 그루가 멋드러지게 피었었는데 올해도 그 영광은 못누리게 생겼다.

열반에 들기 전
돌확에 내려앉은 자귀나무꽃잎...
물 위에서도 그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젠 눈감아야만 볼 수 있는 그리운 모습이다.

*************************************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  버스 운전석 머리 위나 그 오른쪽에 붙어 있던 것을 기억하는지...
그 중 1위는 ‘오늘도 무사히’라고 써 있는 액자와 어느 여인이 두 손 모으고 있는 액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2위는 무엇이었을까.
지금 기억으로는 초가집 그림과 텃밭 등이 그려진 그림 위에 적힌 이 시가 아니었을까..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실의의 날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믿으라
이제 곧 기쁨이 오리니
마음은 내일에 사는 것
오늘이 비참하다 해도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리워지는 것이다

최소한 이 시의 앞부분, 그러니까 첫 행은 그 시절 사람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도 그 첫 행만 들으면 왠지 진부하고 촌스럽다는 느낌까지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아주 오랜만에 천양희 시인의 ‘시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에서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이 시를 보았다.
얼마나 반갑던지...그래서 소리내어 읽고 또 읽었다.

지금 세계가 어렵다고 하는 이 상황에서 이 시만큼 심금을 울리는 시도 드물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부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한 이 시가 지금은....
사람의 간사함이란 여기에도 해당되니 씁쓸하다.

한국경제, 아니 세계 경제가 뿌리채 뽑혀 허옇게 흔들리고 있다.
고학력자들인 청년들은 일 자리가 없어 도서실로 출근을 한다.

40~50대 가장은 IMF 이후 또 한번 회사의 타깃이 되었다.

기업들은 그들에게 춘향이처럼 어떤 명목을 모가지에 씌워 내쫓을까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예전에는 상사에게 깨지면
‘ 아, 드러워서. 이 드러운 회사 그만둔다. 그만둬.’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고 성질급한 사람은 와이셔츠 주머니에 사표를 써가지고 다니다가 기회만 오면 내던지고 여봐란듯이 자신이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그 더러운 회사를 뛰쳐나오곤 했다.

지금???

지금은 상사가 어떤 말을 해도 문어처럼 들러붙어 있단다.
애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 회사에서 대학등록금을 다 대주다보니 무슨 소리를 들어도 책상붙들고 있는단다.

그러자니 오죽하겠는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거다.

그보다 더 심각한 집은 아버지가 명퇴했는데 애들도 도서관행이니 벌어오는 이는 누구도 없는 집도 허다하단다.

물론 IMF라는 시기에 한번 뜨거운 국물을 마셨지만 이번 세계적인 불경기는 거의 모두에게 비껴갈 수 없는 실망, 좌절을 안겨 주었다.

신문마다 세계적인 기업의 구조조정 이야기가 단골메뉴로 나오니 읽는 사람들도 같이 조정 대상감이 된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니 지금 이 마당에 희망적이고,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한다는 말이 어울리기나 하는지.

우연히 천양희 시인의 ‘시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에서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 옛날의 진부한 감정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행을 읽어 내려 가면서부터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희망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다시 읽었다.
지금 이 절망적인 세상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같았다.

“실의의 날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믿으라.........“

그렇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엔 제일 먼저 나 자신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가장이라는 완장을 찬 사람도 우선 나를 믿고 추스려야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때, 아내된 자가 따사롭게 손 한번 잡아준다면 아무리 험한 파도도 다 헤쳐나가지 않을까.

모두가 힘들다는 이 상황에서 어깨에 맷돌만한 삶의 무게를 안고 사는 이 시대의 가장들에게 이 시를 선물하고 싶다.

가장들이여, 모두 힘내시기를...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sheart.co.kr--하늘마음농장)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오랫동안 주저앉고 싶다.
+   [산골편지]   |  2009. 3. 1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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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8일

지난 24일에 서울에서 엄마와 네째 언니가 왔었다.
언니가 대상포진이라는 피부병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소식을 그 전에 접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다고 했다.
대상포진이 생기기 전에는 얼굴과 목에 열이 나고 그곳에 버즘, 화상입은 사람처럼 붉게 얼룩이 져 자주 애들 먹었었다.

그렇게 열이 나면 며칠을 잠을 못잤다.
사람이 피곤해도 잠을 잘 자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첫째 조건이 되는데 그 조건은 우선 팔자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두 가지 증상이 한꺼번에 왔고, 언니는 며칠을 날밤으로 새워야 했다.
조카는 엄마 병간호를 그렇게 지성으로 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가 조카들을 이뻐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시켜 보면 더더욱 지엄마에게 잘 하는 조카를 업어주고 싶을 지경인 것은 사실이다.

일단 대상포진은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그렇게 독하다는 약을 먹고 우선 잠재울 수 있었다.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열과 얼굴에 얼룩이 지고 가렵고 하는 것이었다.
이 증상은 내가 서울을 다니며 잘 봐왔기때문에 그 고통이 어떻다는 것도 잘 안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제안을 했다.
무조건 울진으로 오라고...
산골에 와서 솔숲에도 가고, 나무에게 말도 걸고, 맨발로 솔숲 걷기를 하고, 맑디 맑은 물을 먹고 , 맑은 공기를 마시자고 그러자고...

그러니까 자연에게 언니를 맡기고 싶었다.
누가 언니의 상태를 보고 이 말을 들으면 정신나간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며칠 내려와 있는다고 낫진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난 돌파리 기질이 있는지 몰라도 확신이 있었다.

당연히 언니는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잘은 몰라도 언니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막내가 농사일로 바쁜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또 성당 일도 보고 있는데...
아들 세무도 돌봐주어야 하고,,,,
마침 엄마도 네째 언니네에 머물고 계시고...

언니 발목을 잡는 일들 투성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뜸을 오래 들였다.

이번에는 조카들과 내가 동시 공작을 폈다.
겁도 주고, 윽박도 지르고 해서 겨우 산골로 오게 되었다.

산골에 온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아니다,  서서히 내성이 생길 것이고, 그동안 독한 약을 많이 먹은 언니 몸의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시켜 주고, 소나무, 하늘, 물, 공기 등 자연은 인간보다 더 현명하게 언니를 치료할 것으로 난 믿었다.

일단 눈을 뜨면 운동을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우리 소나무 산을 돌았고, 나중에는 초보농사꾼이 까밧골이라는 임도를 처형과 가면 좋을 것같다고 제안하여 셋이서 4시간 거리를 맨발로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통고산 정상까지 맨발로 산행을 했다.
저녁에는 우리 산의 질좋은 황토로 문제의 부위인 얼굴, 목을 마사지했다.
그러다 여리디 여린 솔잎을 따서 야콘을 넣고 믹서기에 간 다음 얼굴과 목에 붙이기도 했다.
그 황토를 숨쉬는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지장수로 매일 환부를 씻도록 했다.

그것이 더 병을 악화시키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처음 그렇게 했을 때 역반응이 나올 수는 있지만 자연의 것을 계속 접하다 보면 그것이 서서히 제 기능을 잘 하리라 믿었다.
자연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난 확신했으니까.
돌파리가 사람잡는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니는 주방을 떠나질 않았다.
산골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어 진종일 도마 소리를 냈고, 저녁에 우리 부부가 야콘을 씻고 다듬고 하여 야콘즙을 만들면 동행하여 함께 일을 했다.
그게 화가 났지만 언니로서 그럴 수 있겠구나 했다.
말려도 안되어 나중에는 늦은 밤이나 이른 시간에 언니 몰래 일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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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수로 얼굴과 목을 닦았던 그 흔적이 나를 지금 마음아프게 한다)

일하면서 언니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스스로 죽비를 두드리는듯했다.
"막내야, 이렇게 고생하는줄 , 이렇게 바빠 동동 걸음을 걷고 뛰어다니고 하는줄, 이 정도인줄 몰랐구나."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앞으로 꿈도 있고 하는데 뭘 그러냐고 해도 핏줄로서의 아리함을 언니는 감추려 해도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중에 눈이 왔다.
겨우내 그렇게 비치지도 않던 눈이 왔다.
언니는 산골에서 눈도 보고 좋아했지만 운동때문에 내 맘은 급하기만 했다.
눈이 왔는데도 임도의 소나무 숲길을 가자고 했다.

집에만 있어도 좋다며 언니는 동생 생각하여 안간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씨도 안먹히는 얘기였다.

그러다 비도 왔고 날은 추웠다.
그렇게 비도 안오더니 왜 이 귀한 기간에는 비도 오는지....
그런 날이라고 예외는 없다.
비가 오는데도 운동을 가자고 했고 언니는 눈때와 마찬가지로 데크에서 운동을 해도 되니 쉬라고 했다.
물론 내가 힘들까봐 언니는 안간다고, 다녀왔다고도 했다.
내가 다 알지 그거 모르까봐.

우산쓰고 내가 먼저 나섰다.
알아서 하라고...
결국 내 등살에 언니도 우산을 쓰고 우린 그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내가 대상포진이나 얼굴에 열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이번 상태만큼은 보진 못했기때문에 산골에서 좋아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언니는 약을 병원에서 받아 왔고 먹어야 하는데 산골에 와서는 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단다.
이 약을 끊어서 치료중인 것을 내성만 생기게 하고 재발 가능성만 높이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왜 안그렇겠는지...
속으로 걱정이 얼마나 되었을까...
난 그것도 모르고 매일 아침 언니 약먹었냐고 챙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언니도 점점 자연에 치료를 맡기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도 지팡이를 집고 아기처럼 아장아장 간신히 걸으셨는데 한 사흘 자갈 깔린 앞마당을 걸으시더니 지팡이 없이도 걸음을 걸으실 수 있게 되었다.
소화도 시원찮아 위로 가스가 올라왔었는데 아래로 나온다며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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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후프도 공기좋은 곳에서 한다며 ... 그랬었는데...)

언니는 서울로 올라가려고 기회를 보는듯했다.
내가 쐐기를 박았다.
이렇게 일찍 올라가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알아서 하라고...

언니의 문제는 우선 잠을 충분히 못잔다는 거다.
그래도 이곳의 공기가 너무 좋다며 창문을 열고, 데크에 나가 훌라후프도 돌리고 눈부신 햇살도 쐬고 기분 좋아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일찍 자야 하는데 책을 오랫동안 보았고, 기도도 오랫동안 하고 있는 것을 내가 문틈으로 확인할 때는 마음이 미어졌다.

서울의 아파트 침대에서 자다가 이렇게 바닥이 따뜻한 곳에 자니 참 좋다며 맨바닥에 누워 있기를 좋아했다.

드디어 서울가는 날을 스스로 정했고, 큰조카 세종이가 엄마랑 할머니를 모시러 온다고 했다.
엄마는 이곳에 더 계시게 하자고 초보농사꾼이 아무리 말해도 언니는 이 바쁜 사람들이 무슨 ... 말이라도 고맙다고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알았다며 고마운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나 안된다고 했다.

다음에 내려오면 그때 엄마를 며칠 계시게 하는 것은 몰라도 말도 꺼내지 말라고 일축했다.

세종이랑 새조카 며느리가 어제 왔다.
와서는 점심 먹자마자 이모부랑 밭으로 가서 작년에 썼던 말목을 차에 다 싣고, 고추밭에 깔았던 그 많은 부직포도 정리하고 싣고 답운재 밭으로 가서 내리고는 다시 땔감을 잘라서 한 차 싣고 왔다.

일단 저녁을 먹고 다시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야콘을 선별하고, 다듬과 세척하는 일이다. 야콘즙을 만들기 위해...

난 새조카 며느리가 시이모집에 처음 왔는데 이 일을 시키면 안된다고 했고 초보농사꾼은 이제 가족이기때문에 무엇이든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더 친해질 수 있고 좋은 거지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하면 그게 남이지 내 식구이냐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계속 남으로 남아야 하지 내 집 사람과 섞이기 어렵다며 단호하다.

난 그의 마음을 잘 안다.

초보농사꾼은 처형과도 농담을 잘하며 재밌게 지냈다.
이런 저런 자녀 교육에 관해 언니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에 귀기울이고 실행에 바로 옮기곤 했다.
당연히 조카들도 자기 조카처럼, 처형들도 누나처럼 그렇게 대하기때문에 조카 며느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난 씨도 안먹히는 얘기만 했고 결국은 가장의 말대로 모두 달라들어 밤 10시부터 야콘 작업을 했다.

야콘 작업이 끝나고 야참을 먹으며 산골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드디어 내 핏줄이 가겠다고 한 날이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은 것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봄날씨처럼 따사로운 날이 못마땅해보기는 귀농생활 10년만에 첨이다.

울 언니랑 엄마계실 때, 주구장창 이런 날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니가 깰까봐 살금살금 나와 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 송이산 한켠으로 달려가 질좋고, 때깔좋은 황토를 봉투 가득 퍼담았다.
그리고 다시 집 바로 뒤켠으로 올라가 아주 어린 소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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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씻기려고 지장수를 만들었는데 다 쓰지도 못하고 갔다)


언니가 서울가서 이 소나무 숲에서 맡았던 냄새를 소나무 화분에서나마 맡으면 그 놈의 피부병에 쬐끔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다.
그리고 소나무를 캔 주위의 좋은 흙도 퍼담아 묶었다.

그리고 어린 소나무 가지를 가지치기 하여 신문지에 싸고 그것이 행여 가다가 마를까봐 비닐을 꼭꼭 쌌다.
서울 거실에서 펴놓고 소나무에서 나오는 좋은 성분을 쥐똥만큼이라도 얻으라고...

아침 먹고 성당가야 할 시간이 닥아올수록 내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이제 되었다.
이렇게 준비하고도 혹여 언니가 잊고 갈까봐 데크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 준비물을 죽 늘어 놓았다.
전리품처럼...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아침 준비를 하는언니를 호수밭으로 내몰았다.
공기가 너무 좋으니 오늘 호수밭이라도 올라갔다 와서 서울가라고...

언니가 아무 말없이 밭으로 올라간다.
난 아침 준비를 하러 들어가야 하나 언니의 모습이 분필만하게 보일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눈치도 없이 뭉클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동생네 집이라고 왔는데 야콘즙 일로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니 언니 맘을 아프게 했을 것이 또 아리했다.

미사를 다녀와 다시 산골에서 짐을 싸는 가족들...
내 핏줄들이 이제 가겠다고 짐을 싼다.
내가 거들어야 하지만 난 점심 먹은 설거지만 하고 있었다.

가슴팍이 뻐근한 것을 짓누르며 애궂은 그릇만 빡빡 문질러댔다.
엄마도 오늘 떠나는 것을 아시고 어제부터 안색이 안좋으셨다.
막내 딸...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라 엄마는 혹여 딸이 알아차릴까 표정을 몇 번이고 바꾸시려 애쓰셨다.

그렇게 오래 설거지를 해도 내가 거들어야 했다.
이제 핏줄들의 짐정리를 거든다.

"막내랑 아제 덕분에 너무 편하게 있다가 건강해져서 간다. 바쁜데 처형데리고 솔숲도 가고, 몸에 좋은 것도 잡아주고, 눈도 보고, 비도 보고 호강하다 간다..............."

그런 말 좀 안했으면 좋으련만 언니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 했다.
난 눈에 힘을 바짝 주었다.
새 조카며느리 앞이라 더더욱 애를 썼지만 주문빨이 잘 안먹혔다.

조카의 차는 서서히 떠났다.
조카도 발걸음이 무거운지 뭔가를 빠뜨리고 가는 사람처럼 느리게 느리게 , 차창으로 손을 내 흔들며 차는 그렇게 미끄러졌다.

난 그의 차를 따라갔다.
나도 조카를 흉내내어 천천히...
다리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까지 그렇게 걸었다.

드디어
다물었던 입이 터지며 울었다.
다리결은 휑했다.
핏줄의 그림자도 안남기도 휑했다.

한숨 자고 싶었지만 잘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 시원찮은 다리로 운동하다가 쉬는 의자를 보면 다시 왈칵거렸고,
언니를 지장수로 씻긴다고 마련한 지장수 항아리를 보고도 그랬다.
집에 들어오니 온천지에 엄마랑 언니의 흔적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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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시원찮은 발로 운동하다 쉬던 의자)

운동하다 벗어놓은 옷이며, 잠이 안와 책을 보던 스텐드며, 공기좋은 곳에서 훌라후프하라고 내다 준 것이며, 언니가 만들어 주고 간 음식들이며,,,,
난 정신나간 사람처럼 그것들을 내 눈에서 치웠다.

핏줄들의 흔적을 치우지 않으면 난 내 정신으로 오늘을 날 수가 없다는 것을 귀농하고 터득했다.

이럴 때 무슨 단어를 떠올릴까...
헤어짐", 슬픔?, 그리움?...

그보다는
삶의 모습에서 흔적이란 무엇인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난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딸 주현이가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난 다시 마음이 추스려야 한다.
언니가 바쁜 아제를 위해 잎차를 끓여주던 곳에 언니를 흉내내어 잎차를 준비한다.

초보농사꾼은 내 마음을 먼저 알고 야콘즙 포장하러 벌써 가공실로 내려가고 없다.
주현이랑 마주앉아 차를 마셨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아리함을 잎차로 눌러본다.

내가 오늘 곧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지 난 자신이 없다.
옛날 같았으면 약발이 받았는데 점점 연해지는 약발에 자신감을 잃는다.
이런 상태는 오래 갈 것같다.

"삶의 모습에서 흔적이란 무엇인가??"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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