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1일
산골의 꽃밭은 모두 태아를 몸에 끌어안고 있는 임신부들의 모임 장소같다.
접시꽃도 그렇게 오늘, 내일 하고 있고, 향기가 죽이는 백합이, 이원무 신부님이 투톤 칼라라고 선물하신 찰스톤 장미가 그렇다.
일부는 아주 작은 머리를 내밀고 막 진통을 시작한 꽃도 있다.
그렇게 꽃밭을 한 바퀴 돌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교육이 된다.
꽃밭은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을 보며 끈기와 인내심과 생명력을 배운다.
줄기가 커가고, 이파리가 파리하게 돋기 시작하면서 바람과 태양과 하늘에서 내려주는 비의 눈치도 보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상생을 배운다.
무질서하게 제 잘난 멋에 피어난 것같지만 서열이 분명하다.
어느 왕가의 왕위 계승 서열만큼이나 철저히 지켜짐을 보면서 질서와 섬김을 배운다.
가물면 서로 가지고 있는 뿌리 끝 습기까지 나누어 먹고, 장마철이면 병들지 않으려 서로의 안색을 살펴주면서 배려와 나눔을 배운다.
자신이 가야할 때를 잘 알아 주변 정리를 하고, 올 한 해 함께 한 인연에게도 폐끼치지 않고 고스란히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삶의 끝도 저런 모습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오늘은 아무리 농사 일이 바빠도 이 가뭄을 함께 견디고 있는 꽃들에게 물을 길어다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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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게 처음엔 많은 반동이 없다.
그런데 그 충격은 서서히 사람을 옥죄어 오고, 반응이 잔여 지진처럼 오래 간다.
어제는 울진의 어느 직장에 다니는 한 가장이 딸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쳤다는 내용을 들었다.
그것도 여중생인 딸을 데리고...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하루 종일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게 무슨 일이래?”
“뭘?”
“왜 자살을 하냐고,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지. 사람 사는 게 말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 고통이 있으면 웃는 일도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껌처럼 붙어다니는 일...사는 일, 어제 오늘이 똑같지 않은데 말이야....”
“그러게나 말이야.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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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뭘?”
“이제 막 피어나려는 어린 딸은 왜 데려가냐구...”
“................................”
그 다음부터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마누라가 진종일 저 일로 머리를 싸매겠구나 벌써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계속되는 궁시렁거림에 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도 일손이 안잡힌다며 답운재밭의 비닐펴러 가야 하는데 안가고 데크칠이나 한단다.
뙤약볕에서 쭈구리고 앉아 칠을 하며 초보농사꾼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초보농사꾼은 월드컵 축구를 보다 그대로 쇼파에서 잠이 들어 있고....
아무리 잠을 청하려고 해도 어린 딸이 왜그리 눈에 밟히는지...
주현이 또래지 싶다.
우리 주현이가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중학생이라면 그 정도의 앳된 소녀가 아닌지...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침대에서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답답증이 몰려와 커텐을 열고 밤하늘을 보았다.
가뭄이 계속되려는지 별들은 더 똘망똘망하다.
어제 삶을 끝낸 어린 소녀의 눈망울도 그렇게 빛났을텐데...
새벽 3시가 지나고 있다.
그러다 잠시 잠이 들었는지 비몽사몽이었는지 무서운 느낌이 들고 일어나려 해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가위가 눌렸던 모양이다.
그럴 때는 몸이 말을 안듣는다.
겨우 몸을 일으켜 초보농사꾼을 깨우니 벌써 눈치를 채고 일어나 많이 놀란 모양이라며 어서 자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
그렇게 날을 샌 모양이다.
왜 이 생각이 이토록 오래 나를 붙잡는 걸까?
아마도 주현이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요즘 읽은 책 제목이 “네가 헛되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라는 것이다.
그 말은 오래 전부터 유행되어온 문장이지만 그저 참 기가막힌 표현이다 라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전해듣고 보니 어떤 이들은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중환자실 작은 침대에서 삶을 부여잠고 몸을 비틀고, 어떤 이는 주어진 삶을 스스로 정리한다.
사람사는 일,
그거 말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고통이 번갈아 오는 것,
더 억세게 재수없는 인생은 벌갈아 오는 것이 아니고 행복보다 고통이 투스탭을 밟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눈으로 보면 후자가 재수 옴 붙은 삶이라고 , 불공평한 세상살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신은 공평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까 바로 눈 앞의 삶만 보면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삶까지 생각하면 자로 잰듯이 공평하리라고 난 믿는다.
나만의 개똥철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믿음이 있기에 지금 주어진 현실의 순서가 고통 중에 있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옹달샘이 물고이듯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는 일, 톡 까놓고 얘기해서 늘 좋아죽겠는 사람 있는지...
욱하는 마음에 한번쯤 이 더러운 인생...어쩌구 저쩌구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 드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견주어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그것을 잘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가 아닌지...
노자나 공자에게서만 지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 꽃밭의 생명들을 통해서 나의 삶을 견주어 보는 연습을 하면 한결 삶이 부드러운 것을....
그렇게 하루를 샜다.
그러고 나니 머리가 아파 걸을 때마다 뎅그랑뎅그랑 뒷골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내년에는 나름의 꿈이 있다.
그 꿈 중에 하나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이 일이 나를 깨우쳐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무쪼록 그렇게 생을 접은 두 영혼이 새로운 세상에서는 고통없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두손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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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