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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아낙의 산골편지--못먹어도 G0라고 외쳤던 야콘농사의 변천사
+   [산골편지]   |  2010. 1. 27. 22:42  



2009년 12월


겨울밤 하늘에 별이 많이 나와 있으면 모가지가 아프도록 올려다 본다.
겨울 칼바람으로 인해 온몸에 소름이 돋아도 상관하지 않고, 하다못해 세포까지 죄다 오그라져 있던 몸을 확 펴게 된다.


그건 아마도 이 추운 겨울에 그 많은 별무리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그러고 있는 것은 혹여나 핏줄과 뚝 떨어져 귀농한 산골가족이 외로울까 정수리를 비춰주기 때문이라 믿는다.


*************************


사람들이 귀농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야콘이라는 것을 심게 된 특별한 이유를 자주 묻는다.
게다가 지금이 야콘철이라보니 찾아온 손님도 그렇고, 전화로도 특별한 이유를 묻는다.

여기서 ‘특별한’이 중요하다.


아마도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서 수도 없이 반복한 말이지만 영화처럼 지나온 날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그러나 묻는 이의 호기심을 풀어줄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목에 힘주고 시건방을 떨며 말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귀농하자고 옆구리 푹푹 쑤시던 초보농사꾼은 정작 사표수리가 안되어 그냥 기회를 보며 회사를 다니고, 귀농이라니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눈을 허옇게 뜨고 입게 게거품 물던 내가 먼저 애들 데리고 귀농했다.
첩첩산중으로...




(▲ 야콘의 관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늦은 7월에서야 초보농사꾼이 진정 사표를 제출하려는 이유를 읽으신 이사님(지금은 현대 부사장님이 되셨다)의 사인이 떨어지자 그가 뒤따라 귀농했다.

7월에 귀농했으니 쥐뿔도 농사지을 게 없었겠다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사표수리의 연기 등 돌발사고가 생길 것을 대비하고, 봄 농사철 지나서 귀농하면 그 해 영낙 없이 백수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주말마다 울진에 마련한 터전으로 내려와 논 준비와 모내기를 했다.

일명 주말농사 꼴이 되었다.


“우리나라 통털어 주말농사를 이렇게 멀리 지으러 다닌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며 초보농사꾼이 요즘도 우스개소리로 목에 힘주고 하는 말이다.




 


(▲ 관아를 겨우내 땅에 묻어두었다가 봄에 심으면 이렇듯 싹이 나온다. 그것이 모종이 되는 것이다.)

촛자 주제에 그런 생각까지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통한 일이다.


몸과 농사기술은 안따라 줬지만 아쉬운대로 통박 하나는 굴렸으니까 고추도 어느 정도 주말마다 내려와 땅에 박았다.

그래야만 한 해를 공치지 않는다는 무슨 보험심리같은 것이 작용했을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다.


그리고 가을이 되었다.


벼와 고추,  얼마 되지 않는 것을(지금 생각하면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때 눈으로는 대농 수준으로 느꼈다)  달랑 수확하고 나서 이웃 동네 형의 수확을 도와주러 부부가 갔다.

그때 처음 만난 것이 야콘이다.


그날 노동의 댓가로 캐다가 부러지고, 호미 자국난 야콘을 몇 자루나 받았다.

그러니까 귀농하고 처음으로 품삯을 받은 셈이다. 현물이지만.
그렇게 받은 야콘을 겨우내 먹어본 초보농사꾼이 무릎을 쳤다.
이제부터 나의 길은 “야콘”이라고...



 




초보농사꾼은 귀농 전 직장다닐 때(도시의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변비에 장이 좋지 않았다. 물론 신경성이다.
그런데 야콘을 먹어보니 이거야 원.


변비약 먹은 듯, 그리고 장 진정제를 먹은 듯 그렇게 속이 좋을 수가 없다는 거다.
초보농사꾼 혼자 야콘을 복용(?) 했으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내가 먹어봐도 신통했다.


처음 야콘을 자루째 받았을 때는 이걸 언제 먹느냐며 사실 애지중지까지 하지  않았는데 거덜이 나가자 아껴 먹게 되었다. 사람의 간사함이란...

하여간 다음 해 봄이 오기를 두 주먹 불끈 쥐고 기다린 초보농사꾼.


야콘 모종을 구하려니 야콘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모종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 야콘을 주었던 형에게 모종을 어렵게 구해 심으려 하니 동네 어른들께서 걱정이 늘어졌다.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야콘을 어디에 팔려고 심느냐며 말리셨다.


그래도 웃으면서 야콘을 심는 우리를 보시고 말씀은 안하셔도 골이 비어도 한참 비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 야콘을 심는 날, 하도 허리가 아파 땅바닥에 누웠다. 허리가 시원하다.)

‘이렇게 약성이 좋은데 언젠가는 알려지겠지’


이게 초보농사꾼이 믿는 구석의 전부이고, 야콘 농사를 짓기 시작한 '특별한 '이유의 전부였다.

여하튼 풀도 일일이 뽑아주고, 한방영양제를 뿌려주며 유기농으로 기똥차게 키워 수확하는데까지는 그런대로 몸이 후줄근해져서 그렇지 그런대로 좋았는데 창고가 없었다.


그때는 귀농한다고 하면 눈을 휘번덕대며 아래 위로 훑어보던 시절이었다.


‘이거, 하자 있는 인간 아냐?’ 하는 눈빛. 그런 때라 귀농지원금이나 귀농정착자금 등의 지원은 1원도 없었다.

그러니 창고지을 돈이 있는지.


오지 산골의 겨울날씨는 두 말 하면 잔소리 아닌가.

할 수 없이 부랴부랴 마을 입구의 폐교를 빌려 거기에 모셨다.(?)


말이 모셨지 창문은 다 깨지고 문짝도 아귀가 맞지 않으니 한데에 내놓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거기에 이불쪼가리와 담요 등을 죄다 갖다 덮어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거기까지가 죽도록 농사지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초보농사꾼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어떤 때는 담요 하나 들고 그 폐교에 가서 야콘이랑 자보기도 했다.
야콘이 어느 정도 추위를 견딜 수 있는지 생체실험(?)을 한 것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해봤댔자 야콘이 보란듯이 창문 쪽에서부터 얼기 시작했다.
물론 팔 곳은 없고 야콘이라는 말을 하면
“약콩요?” 하지 않으면 다행일만큼 야콘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누구도 몰랐다고 보면 된다.

둘이 오두막에 마주 앉아 의논을 했다.


고생고생해서 키운 야콘을 이렇게 얼려 버릴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선물하자.”

“OK"

그때는 귀농의 열기가 분기탱천하던 시절이니만큼 합의도 여의도 둥근 지붕 속 사람들 같지 않고 빨랐다.


 


(▲ 이렇게 초록의 물결로 야콘이 자라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넣어 보내느냐였다.
박스가 없었다.


박스까지 제작하면 많은 돈이 들다보니 상상으로라도 바라지 못했다.

결국 읍으로 40분 달려가 마트를 돌며 부부 넝마주이처럼 박스를 줍기 시작했다.


주위 여자들이 눈을 마구 휘번득대는 것을 뒤통수로 느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그렇게 박스를 주워다 편지지에 일일이 약성을 구구절절이 적어서, 잘 드시라는 진심어린 멘트까지 부록처럼 박은 다음 야콘박스에 넣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택배비였다.


그때는 택배비 지원도 일원 한푼 없었기 때문에 그 많은 곳을 보내자니 적잖이 부담이었다.
어쩐다지...


 


(▲ 야콘의 꽃은 애기 해바라기 같다.)

선물해 달라고 하지도 않은 것을 착불로 턱하니 보내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때나 이때나 ‘되도록이면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자‘ 쪽으로 삶의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택배비도 내가 쏜다‘쪽으로 금방 합의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야콘을 택배로 발송하고 나니, 야콘을 받아본 분들이 꿈인 듯 생시인 듯 고맙게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갈 일이 있어 갔다가 어느 지인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단이 난 건 그 때였다.


그 집 대문 앞에 우리가 그 고생을 해서 보낸, 일일이 손으로 풀 뽑아주고 한방 영양제 부어줘 가면서 쌔가 빠지게 길러 보낸 유기농 야콘이 탱탱 얼어 터져 검으티티해진 것을 박스째 버린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내 마음도 야콘처럼 얼어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본 초보농사꾼의 얼굴 그림자를 지금도 난 잊지 못한다.
산골로 내려오는 내내 우린 아무 말이 없었다.




 



(▲ 야콘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내 돈 내고 산 거였으면 끔찍이 여겼을테지만 주어온 라면 박스에 생전 보지도 못한 것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보냈으니 하잖게 여긴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었다.


뼈아픈 경험을 한 야콘을 다시 심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하지도 않았다.
초보농사꾼의 야콘의 약성에 대한 의지는 초심 그대로였다.


나 또한 가장이 ‘못먹어도 GO’라고 하는데 패를 돌려야지 별 수 있나.
귀농 초, 우린 왠만하면 의견을 서로 맞추어가며 살자고 다짐했던 그 약발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 애들도 함께 돕고...)


그리고 초보농사꾼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현상에 애걸복걸하지 말자고 했다.
그건 도시 생활에서 신물나도록 했으니 이젠 산골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자고 서로를

초보농사꾼 입에서 이처럼 한 끝발 높은 소리가 술술 나오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건 순전히 자연의 힘이지싶다.

그때부터 TV 출연 때마다 야콘 자랑을 했다.


멀쩡히 둘다 왠만한 직장 다니다 왜 귀농했냐며 다행히 방송국에서 구미당겨 하는 일이 심심잖게 있었기 때문에 기회 닿는 대로 야콘을 알렸다.

초보농사꾼이 그때나 이때나 연사처럼 부르짖는 것은 판매도 판매였지만 이처럼 약성이 좋은 것을 모르고 못 먹으면 안타깝다는 거였기때문에 방송에서라고 예외겠는지...


지금 생각하면 팔리지도 않던 야콘을 계속 그 의지로 신주단지 모시듯 야콘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대단해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먹어본 분들이 점점 약성을 입소문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워온 박스에 담아 보내던 것을 조금 진화하여 스티로폴 박스를 사다가 담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어 해 하다가 ‘하늘마음농장 유기농 야콘’이라고 턱하니 인쇄된 박스도 만들었다.


창고가 없어 다 쓰러져 가고, 유리창도 다 깨진 폐교에 넣다가 그 다음에는 하우스를 하나 지어 그 안에 넣었다.
문제는 아침 저녁 기온차가 커서  해지고 나서의 하우스 안은 정말로 추웠다.





(▲ 수확철에는 너도 나도 수확을 하기 때문에 남자일꾼 구하기가 어렵다. 낮에 품을 사서 왕창 캐놓은 것을 초보농사꾼 혼자 다 실어 날랐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이불과 보온덮개를 있는대로 가져다 야콘을 덮어 놓았지만 강추위에는 당해내질 못하고 가장자리부터 얼기 시작했다.
그러다 야콘창고도 대출받아 마련하게 되었다.


지금은 당뇨환자분들 대부분이 야콘을 알 정도로 그 약성이 알려진 편이었지만 2001년 우리가 유기농으로 지었을 당시에는 야콘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발음도 어려운 야콘, 하늘마음농장 야콘의 변천사를 핏대 세우며 이야기 하다 보니 무슨 5일장의 약장사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도....

그런데 왜 지금 귀농 초, 그 얘기를 하는데 목젖이 뎅그랑거리며 매어오는 것일까.


괜시리 야콘의 전설 이야기를 하느라 정수리가 뻐근해지고 있다.

이제 야콘은 많이 알려져 외국에서 수입까지 해대고 있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큰 산골에서 자라 맛이 남다르고, 유기농으로 기른 것이라 약성 또한  끝내준다고 침튀겨봤자 수입가격으로 치고 들어오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어졌다.



 



(▲ 어둔 밤이 되어 내가 손전등을 비추고 초보농사꾼이 그 무거운 박스를 죄다 실었다. 밭에 두면 얼기 때문에 그 날 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으로 날라야 했다. )


그러나 난 믿는다.
사람도 어느 부모밑에서 어떤 이슬먹고 자랐느냐에 따라 물건이 달라지듯이 초보농사꾼이 무릎에 관절염이 생기도록 풀 뽑아주고, 약 한번 안주고 우리나라 땅에서 자식처럼 키운 야콘은 남다를 거라고 난 믿는다.


야콘철이라 더 부쩍 손님들이 와서 늘상 묻는 것이 야콘을 어떻게 알고 농사짓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이 더 많아진터에 귀농초부터 야콘에 대한 사연과 뼈 아픈 경험들을 적게 되었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고...
그런 눈물나는 시절도 있었다고....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로 마실오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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