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3일
산골에는 모과나무가 서너 그루있다.
늦가을에 그의 자식들을 따다가 산골아이들이 좋아하는 모과차를 만들어 주곤 했다.
그런 후광을 입었는데도 5월에 연분홍꽃을 피운다는 모과나무가 두릅나무와 찔레꽃 사이에 끼어 있고 후미진 곳에 있다 보니 그 이쁜 꽃을 귀농한 이래 본적이 없다.
아무리 다른 나무들과 얽혀 있어서 그렇다는 이유를 둘러대더라도 내 무관심 탓으로 밖에 돌릴 수 없다.
산골가족의 사랑을 못받아 일까...
온몸에 개구리복을 입은 것처럼 버즘이 핀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 달력 5월에 이렇게 적었다.
‘모과나무에게 찾아 갈 것’
**********************************************
사실 난 TV를 잘 보지도 않지만 TV나 책에서 보고 정말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신영복 교수님이다.
교수님이 쓰신 <강의>라는 책 날개에 소개된 글을 옮겨 보겠다.
신영복//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복역한 지 20년 20일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작년에 정년퇴직하신 것으로 안다)
저서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가 있으며, 역서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공역) 등이 있다.
우리에게 알려지기는 이 정도지 싶다.
나 역시 책에서나 보았고 TV프로에서 한 번 뵈었던 것이 전부이니 다른 사람들이랑 아는 정도가 비슷하다고 본다.
그런데 왜 굳이 이 분만은 한번 뵙고 싶어하는 걸까...
위의 책 날개 설명에서도 나왔지만 그 긴 세월 동안 감옥살이 한 분이라고는 누구도 믿지 않을 정도의 향기가 풍겨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만나보지 않고 어떻게 향기를 아는냐고 하겠지만 사람의 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말투로, 언어 구사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사고, 가치관으로 충분히 맡을 수 있다.
그 분은 한겨울 화롯불과 같은 분이다.
온 방안을 건조하게까지 하는 그런 난방이 아니라 혹여 따뜻한 숯덩이가 빨리 삭을까봐 재로 살짝 덮어두고 부짓갱이(지를 뒤집는 그것을 뭐라 하는지 기억에 안난다)로 필요한 만큼만 헤집어 두면 진종일 따사로움을 주는 화롯불...
또 인두도 머금도 있다가 주면 우리네 구겨진 옷뿐만 아니라 구겨진 마음까지도 다림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화롯불...
그 구실만 하는가.
구수한 된장찌개도 올려놓고, 밤이나 고구마도 구워 먹을 수 있듯이 난방이면 난방, 취사도구면 취사도구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분의 책을 통해 많은 부분 성품을 알았지만 TV에 나와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의문나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첫째, 사람들은 말한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정말 맞는 말이고 나도 그런 말을 많이 할 정도로 체득하며 산다.
그런데 모든 것에도 예외는 있다고 이 분만큼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에 어긋나는 분이다.
환경이 만들었다고 감옥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사람의 성품이 그럴 수 있는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버섯이 아무리 곱다한들 화분에 떠서 기르지 않듯이 욕설이 그 속에 아무리 뛰어난 예능을 담고 있다 한들 그것은 기설 응달의 산물이며 불행의 언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분으로서는 감옥에서의 많은 부분들이 견디기 힘드셨겠지만 그 중 욕설 또한 이해하기 힘든 언어였던 것같다.
두 번째는 감옥에서 그렇듯 부대끼고 단순한 생활을 했을텐데 그 분의 지식과 그 앎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내가 얻어 들은 바로나 체험한 바로는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유명해지려면 그 분야에서 호가 나야한다고 본다.
학문이면 학문, 기술이면 기술, 예능 방면이면 예능방면에서 호가 나야 유명해지고 알려진다.
그러나 학문에 정진한 기간보다도 감방에서 지낸 날이 훨씬 많았던 그분에게는 그렇게 호가 나지 않아도 이렇듯 향기를 끌어 안고 다니니 존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들이 자주 TV 등에도 나와야 하는데 요즘 어쩌다 TV를 보면 왠 말장난으로 웃고 넘어가는 예능 프로가 그리도 많은지...
이처럼 보는 이가 달게 먹을 수 있는 프로는 눈을 불을 켜고 건질래야 건질 수가 없다.
그러니 현대인들이 곱씹어 보고 느끼고 반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회용처럼 일순간 웃고 넘어가는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나 또한 그 부류에 발 담그고 있으니 더 할 말은 없다.
산골에서 욕심인지는 몰라도 만나보고 싶은 분 중 한 분은 단연 신영복 교수님이다.
나도 그 향기를 맡고 조금이나마 짝퉁같은 흉내라도 내고 싶어서 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