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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 _해당되는 글 1건
2011.03.10   귀농편지, 산골의 다락방 풍경 

 

귀농편지, 산골의 다락방 풍경
+   [산골편지]   |  2011. 3. 10. 17:35  



“그들은 그곳에서 살고, 창조하고 고통받았다.
스스로 택한 고독과 글을 써야만 한다는 긴박감이 언제나 그곳에 도사리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들은 글쓰기의 열정으로 집을 채웠고, 바로 그만큼 집을 사랑했다.
작가들의 삶에서 집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은 작가들의 추억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들의 불안을 달래주며, 사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글은 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작가의 집>이라는 책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장 지오노, 장콕토, 윌리엄 포크너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그 집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다룬 책이다.

 

난 환장하듯 읽어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닭꼬치처럼 엮여 있었기 때문에....

 

 

 

 

과연 이 유명한 작가들에게만 집이 그런 역할을 할까?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집은 그런 휴식처요, 창조의 산실이요, 사랑을 갈고 닦고 기름치는 정비소인 것이다.

나 또한 집이 그랬다.


처음 귀농한 집은 15평도 안되는, 눈만 씨게 흘겨도 금방 삐뚤어질 것같은 낡은 오두막이었다.
우리집에 오신 최용건 화백님의 표현으로는 김밥 옆구리가 터질 것같아 불안했다는 말씀을 하셨던 그런 오두막이었다.^^

 

 

 

작은 그 오두막은 어린 아이 앞에서도 맥을 못출 것 같이 힘없어 보였지만, 천만의 말씀.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당당함과 노련함이 검으티티한 서까래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었다.

 

그 집은 지금 새로 지은 넓은 집보다도 더 위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흙방의 구들은 늘 가장인 초보농사꾼의 배려로 절절 끓었다.


갈라진 흙벽 사이로 바람이 들락거리며 공기를 바꿔 주었다.

집 안의 공기를 귀신같이 정화해 준다는 무슨무슨 공기청정기 유도 아니었다.


네 가족이 막 귀농해서는 아이들이 어렸고 적응기간도 있기에 그 작은 흙방에서 4식구가 누워 잤다.
그러고도 공간이 남았다.

 

그렇게 누우면 더 많이 갈라진 흙벽 사이로 별들이 혹여 산골가족이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탈새라 밤새 지켜주는 모습이 죄다 보였다.
그 흙집 덕에, 자연 친구들 덕에 이 낯선 곳에서도 마음의 언저리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집은 그런 거다.
이제 새집을 지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좋아하는 현대인들 눈에는 지금 새 집이 번지르르하고 멋들어져 보이겠지만 난 사실 오두막에 마음이 간다.

오두막이 숭늉과 같은 맛이라면 지금 새 집은 스프 같다는 느낌이다.


오두막이 나무타는 냄새처럼 마음 한 자락을 아리하게 해준다면, 새 집은 원두커피 내릴 때의 냄새처럼 가볍게 향기롭다.

오두막이 구수한 사투리같다면, 새집은 똑 뿌러지는 서울 말씨 같은 느낌이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오두막은 내 눈물 속에 포크레인 몇 바가지로 사라지고 새 집이 산골에 들어서 있다.

새 집이 싫다는 게 아니라 오두막이 더 정스러웠고, 훈훈했었기에 지금도 가슴 한 자리에 그렇게 오두막은 들어앉아 있다.
얼마 전에 아이들도 나와 같은 소리를 했다.


가끔 오두막이 그립다고...
자연으로 돌아와 살다보니 아이들과 느낌이나 감동도 비슷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새 집을 짓게 되었을 때, 난 모양새나 구조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귀농 전, 내 성격 같았으면 일일이 참견을 했을 것이다

.
이건 요래야 하고, 저건 조렇게 구조를 해야 하고, 여기는 이 모양이어야 하고...
내가 1류 건축가처럼 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들어와 살다보니 겉모양새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뭐든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결국은 초보농사꾼이 거의 모든 설계를 다 했다.


다만 한 가지 다락방은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글을 쓰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초보농사꾼은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었고 다락방은 그렇게 해서 얻게 되었다.

 

진중권님이


“나의 다락방은 콜라주 같은 것이었어요.
벽엔 신문을 발라 놓았는데 거기에 수많은 기사들이 있었죠.
그게 초현실주의적으로 다가왔어요.

사용되지 못한 물건들이 있고 같이 있을 수 없는 물건들이 뒤엉켜 있고 어딘가 마법적이었죠....”


라고 한 말을 책에서 읽었다.

 

나에게 있어서 다락방은 “안개꽃과 같은 존재이다”
안개꽃은 다른 꽃의 배경이 되어 주는 꽃이다.


저 자신이 돋보여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뒷배경이 되어주고 다른 꽃을 튀게 해주는 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다락방은 그렇게 편안한 방석처럼 내가 들어서면 나의 배경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내가 기도를 하고 싶으면 촛불의 은은함이 주위를 감싸도록 다른 빛을 자제시키고, 내가 명상을 하고 싶을 때는 다락방의 아주 작은 창으로 새소리만 통과시켜 준다.


내가 글을 쓸 때에는 열어놓은 창으로 솔바람을 실어다 주어 머리를 한없이 맑게 만들어주는 그런 공간이다.

 

그곳은 어떤 강렬한 마음도 자제시켜주는 진정제와 같은 약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낮게 낮게 마음을 주저앉히라고 이명처럼 속삭여주는듯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가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다.

다락방은 노오란색 계단에서 시작된다.


노란 나무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다 오른쪽 벽면으로 머리를 돌려 보면 내 표현으로는 ‘아기자기한’ 우리 언니들 표현으로는 ‘조잡한’ 소품들이 걸려 있다.


주현낭자 어려서 사진도 걸려있고, 꼬맹이 선우가 내복바람으로 책읽고 있는 모습도 걸려있어 오르내릴 때 그 사진을 눈에 넣으며 씩 웃곤 한다.

그리고 내가 자지러지게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은은한 소리를 내주는 풍경들이 몸을 벽에 바짝 기대고 있다.

 

 

 

한 계단씩 올라가며 하나하나 들여다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렇게 올라가는 계단 끝마다에는 시어머님이 평생 자식처럼 아끼셨던 수석들이 새까맣고 뺀질뺀질한 얼굴로 나와 앉아 있다.

어머님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가지실 정도로 수석에 베테랑이시다.
그렇다면 그 분의 외아들인 초보농사꾼의 수석을 보는 안목은???


예전에는 짱돌이라고 해서 어머님께 지청구를 먹었는데 요즘은 변별력이 쬐금 나아졌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친정 엄마가 쓰셨던 재봉틀이 보인다.


아마 일흔 살 이상 잡순 분들은 재봉틀과 미싱이라는 말을 혼용했던 것으로 아는데 내 어설픈 기억으로는 후자가 더 많이 그 세대분들 입에 오르내린 것으로 안다.

 

 

 

재봉틀 알맹이는 내던지고 다리만 남겨놓고는 그 위에 칼라 유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콘솔이다.

그 위에는 사진액자와 동물농장 모습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가 있다.


신혼 때 선물로 받아 지금껏 들여다 보며 침흘리는 것인데 그 미니 도자기 속 그림이 어찌나 풍요로워보이던지...
결국 그쪽으로 나의 삶이 선회할 줄이야.

 

그 옆은 키작은 책꽂이가 새색시처럼 수줍게 앉아 있다.
다락방에도 거실처럼 책꽂이를 아예 집지을 때 짜 넣으려고 했는데 다락방이라 그 무게가 겁나서 포기하고 달랑 이 작은 책꽂이로 만족하고 있는데 볼수록 소박하다.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 박완서님 책 등이 들어 앉아 있다.
그리고 다락방에서 제일 많이  뭉개는  책상과 의자가 있다.


이것들은 친정 부모님의 원대로 서울에 말뚝박고 사는 언니가 혼자 쓰기에 좋을 거라며 준 것인데 다 좋은데 내가 숏다리라 발이 편안하게 바닥에 닫지 않는 게 흠이었다.ㅜㅜ

결국은 망설임 없이 톱을 들었다.


그리고는 의자의 다리 길이를 과감하게 잘라냈다.
소가지 없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쓰기 편하면 되는 거지 모양은 뭐 말라비틀어진 모양???‘이라는 후렴을 붙여가며 톱질을 해댔다.

 

 

 

그렇다면 내 앞의 의자도 잘랐느냐?
아니다.


그 자리에는 주로 롱다리가 앉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 내 의자 다리만 절단냈다.

거기에 앉으면 오른쪽으로 난 창으로 소나무 싶이 내 옆구리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이 들어오고 눈을 조금만 내리 깔면 나무장작이 쌓여 있다.

 

보일러 주둥이로 들어갈 번호표를 받아들고 대기중이다.
그들이 대기하는 모습에는 인간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조바심이 없다.

 

이 책상과 붙어 있는 곳에 풍금이 있다.
날카로운 피아노소리와는 달리 풍금소리는 고동소리처럼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울림이 크다.

 

 

 

 

책상 정면으로는 기도하는 자리가 보인다.
이 낮은 자리에 앉을 때야말로 신과 내가 가장 가까이서 투명한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초에 불을 댕기고 살포시 눈을 감으면 마음에도 은은한 그 빛이 내리 깔려 어느새 내 몸은 따사로운 들판을 걷는다.
이 순간에 자리를 함께한  '침묵'과 '고독'과 '외로움'이 나를 키우는 퇴비가 된다.

 

피타고라스는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뛰어난 말을 하라‘고 또 다른 정리(?)를 해 주었듯이 난 뛰어난 말을 할줄 모르니 침묵해야 하지만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자신에게 물을 일이다.

 

 

 

그리고 뒤로는 홀로 앉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의자가 하나 있다.
주로 봉사처럼 눈감고 앉아 나를 훑어보는 살벌한 시간을 갖는 곳이다.

 

작은 다락방 구석구석으로 영혼을 데리고 순회하다보면 아주 까만 밤이 주위를 감싼다.
이제 서서히 일어나 다락방 난간에서 통창을 내다보면 하늘에 쫙 깔린 별들이 앞 다투어 쏟아져 들어온다.

 

그 순간은 별의 그 날카로운 모서리에 정수리를 찔린 듯 정신이 바짝 들고, 뽕을 맞은 사람처럼 몽롱해지는 이중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뽕한 사람의 모습이야 영화에서 죄다 똑같이 연기를 하니 간접경험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머리를 산발한 여자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도 저녁에 다락방에 앉으면 어느 새 내 머리는 참빗으로 곱게 빗겨져 빛나고 있다.

 

 

내가 다락방이 그런 공간이듯이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


힘든 나를 대피시킬 수 있는 그런 공간.
그 공간이 좁든, 초라하든, 잡냄새가 나든 그건 상관할 필요가 없다.

 

내가 오두막에서 가장 많이 자신을 닦았듯이 눈에 보이는 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루를 전투를 치르듯 정신없이 산 자신을 토닥여주고, 위로를 해주고, 내일을 위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락방에서 내려갈 때는 아랫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내려간다.
그 아래는 또 다른 세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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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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