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에서 난 낮에서 저녁으로 가는 바로 그 교차 시간을 좋아한다.
아주 밝디 밝은 것도 아니고, 어둠이 깔린 것도 아닌, 낮시간 동안에는 돌수제비를 뜨는 것처럼 붕 떠있는 낮시간을 보냈다면 이제 서서히 몸에 , 가슴에 지녔던 것들을 서서히 내려놓는 그 시간이 참 좋다.
뭐랄까, 묵상시간이랄까.
하루 농사 일로 지친 몸을 털고 둥지로 들어가는 그 시간...
도시에서야 꿈엔들 이런 귀한 시간을 느꼈을까.
이제 산중의 모든 자연물도 잠들고, 산골가족들도 그들의 깃털 아래서 잠든 시간.
마음이 달그락거려 때를 놓친 내가 마지막 나무 당번이 되었다.
우리집은 제일 늦게 자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나무 보이러 입 속에 하나 가득 나무먹이를 넣어주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게 싫으면 일찍 자는 게 장땡이다.
아니면 동화에 나오는 곰 앞에서 마냥 죽은채, 아니 자는채 하던지...
창문을 후려치는 바람소리에 먼저 주눅이 들어 코와 눈만 남겨 놓고 목도리로 둘둘둘 미이라처럼 감았다.
나가려고 불을 켜려는데 밖이 훤하다.
달빛이 얼마나 훤하고 은은스럽던지 도시의 무슨 찬란한 수입 크리스탈 조명인지 뭔지는 명함도 못내민다.
그 달빛을 대동하고 보일러실로 들어갔다.
오래 타는 참나무를 골라 보일러 입을 가득 채웠다.
무겁기는 얼마나 무거운지 그 여진이 시원찮은 허리를 자극한다.
그런 후, 부채로 두어 번 그 갈라진 피부를 간지러 주니 좋아죽겠다며 훨훨 탄다.
그 화기를 전해받아 볼까지 뜨거워지면 신문 한 장 바닥에 깔고 아예 주저앉는다.
이제 책임을 다했으니 들어가 자도 누가 눈꼴셔 할 사람은 없는데도 그러고 앉아 있기를 한참 한다.
'무슨 인연으로 이 깊은 산중에서 불을 때고 있을까'
'그 큰 지구상에 어떤 인연으로 이 깊고도 깊은 산중에 들어 앉아 불 앞에서 면접을 보고 있는지...'
'이제 자연에서 얻은 것이 참으로 많고 자연의 한쪽 깃털에서 가족을 찾고 나를 찾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행운아였는데 이제는 나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난 구술면접을 보는 사람마냥 중얼중얼거린다.
더없이 소중한 묵상시간이다.
귀농하지 않고 도시같았으면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던 낮시간 동안의 피곤에 짓눌려 밤도 그렇듯 무겁게 잠으로만 젖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중생활에서는 자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딱 흑미만한 꽃망울까지 하나하나 터지고 있는 이 봄날에도 산골의 밤은 그렇게 또 다른 세계다.
그건 나만 맞이하는 내 영혼 속 세상이다.
이 소중한 내 세상....</font>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