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핑크빛 작약이 활짝 피었다.
안그래도 기숙사에서 오는 딸아이에게 보여줄 꽃이 보라색 붓꽃 밖에 없어서 매일 꽃밭에 물을 주며 주문을 외웠었다.
환상의 꽃밭을 딸아이에게 선사하고 싶다고...
그 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핑크빛 작약이 붓꽃 옆에서 화사하다.
딸아이 가슴 속 작은 방에 산골꽃밭의 화사함을 많이 담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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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밥을 먹으면서 묵직하게 닥아오는 것 중 하나가 자식이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란 심히 긴장해야 하고, 신경 바짝 써야 하는 것까지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자식은 그 부메랑효과까지 생각해야 하고, 무엇보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하고, 그 행동은 시퍼런 아이들 눈에 늘 모범이, 거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사람 묵직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다른 집 자식들과의 변별성에 관심이 두어졌지만, 애들 머리가 커가면서는 그의 투명하고 파릇한 가치관과 철학에 에미로서 기스나는 짓을 하는 것은 없는지, 나를 엄마로 선택하여서 더 성공할 것을 인생 구기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머리가 시도 때도 없이 쭈삣거린다.
예전에 읽은 책내용이 하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들게 하여 내 작은 공책에 일부의 긴 문장을 적어두었었는데 오늘은 그 공책을 뒤적이다 다시 읽게 되었다.
아들 선우가 아주 좋아하는 세계적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41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아버지 때문에 고통을 받은 작가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로 인해 머리 한번 한가한적이 없었던 그런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는 집안의 독재자처럼 군림했고, 권위적이었으며 중상, 모욕적인 말로 인해 어린 카프카는 큰 고통과 죄의식 속에 성장했다고 한다.
그것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것이 아들 카프카가 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라는 책이다.
그 중 일부를 인용하면
“어렸을 때 주로 식사시간에 아버지를 보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훈육은 대개 식사법과 예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차려놓은 것은 모두 먹어라. 음식투정은 말아라 하는 식으로.
그런데도 종종 당신은 음식이 형편없다고 투정했습니다.
식탁을 감도는 침울한 고요는 번번이 훈계에 의해 깨졌지요.
“먼저 먹어라. 이야기는 다음에 하고.”
“빨리 먹어라. 더 빨리, 더 빨리 먹어.”이런 식이었습니다.
뼈는 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했습니다.
잔을 입으로 빨아서는 안되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했습니다.
문제는 빵을 똑바로 써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소스가 뚝뚝 떨어지는 나이프로 빵을 썰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음식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은 당신의 자리였습니다.
식탁에서는 먹는 데만 전념해야 될 터인데 당신은 손톱을 깎고 연필을 깎거나, 이쑤시개로 귀를 후벼팠습니다.
아버지, 부디 제가 하는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사소한 일은 그 자체만으로는 실로 무가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저에게 괴로움을 준 것은 제가 보기에 너무도 권위적이셨던 바로 당신이 저에게 강요하시던 계율을 당신 자신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만약 카프카가 그런 독재자인 아버지 밑에서가 아니라 언행이 일치하는 그런 따사로운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면 그의 작품세계는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작품세계를 가졌던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작가 이전에 한 인격체가 그런 삶을 살다가 갔다면....
자식을 키우는 일은 인생 선배라는 이유로 자식을 불심검문하기에 앞서, 부모 자신의 그림자를 자주자주 점검하는 일이지 싶다.
그래서 함께 성장하고, 함께 소풍길을 오손도손 어깨동무하고 가는 사이가 아닌지.
자식에게는 숨쉴틈 없는 세세한 잣대를 들이대고, 내맘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는 관대한지는 않은지.
자식을 키우는 일은 자식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도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여 나이값을 해가는 일이지 싶다.
아들 선우가 주말에 오더니 아빠를 찾는다.
밭에 일 가신 것을 알련만 꼭 묻고 또 묻는다.
통화를 할 때마다 “아빠는???” 한다.
한번은 물었다.
왜 그렇게 묻냐고...
밭에 가셨다고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자기가 공부하면서 힘들 때는 아빠를 생각한단다.
아빠는 우리 자연에서 키우려고 오셔서 농사지으시며 고생하시는데 난 앉아서 공부하는데 힘들다고 하나....그런 생각이 든다고...
그래서 자꾸 아빠를 묻게 된다고.
그때 말해주었었다.
“엄마, 아빠가 너희들 때문에 희생한다고 생각지 말어.
그건 희생이 아니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최선이지.
그 최선을 다하면서 고생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란다.
너희들에게 딸랑이를 흔들어 주었을 때, 너희들이 까르르 웃는 그 웃음이 효도였고, 섬마섬마를 할 때, 그 비틀거림의 몸짓으로 인한 웃음은 영양제보다 더 약효가 좋았단다.
파리하게 작은 두 손을 엄마의 두 손에 의지한채 걸음마, 걸음마라는 엄마, 아빠의 구령에 맞추어 네가 발을 땔 때의 기쁨으로만 쳐도 넌 벌써 효도를 많이 한거지.
어리기만 한 녀석이 초등학교를 들어갔을 때는 가슴팍이 뻐근하게 대견했었단다.
그렇게 너희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너희들이 주는 깜짝 생일 이벤트를 보며, 기쁘고, 대견하고, 기특하고 그런 행복을 다 받았으니 엄마, 아빠에게 꼭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지 말아라.
그저, 가족이라는 울타리만을 잊지 말아라.“
고3 아들이 주말에, 산골로 들어서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아빠를 찾는다.
마침 밭에서 일하다 선우를 태우고 차가 들어오자 초보농사꾼도 서둘러 내려온다.
아빠를 보자마자 달려가 지아빠와 어깨동무를 한다.
그리고 오랫만에 기숙사에서 나온 주현이까지 모두 모여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우리집의 높은 지붕이 뚫어져라 웃고 떠들었다.
아들이 설거지를 할테니 엄마는 쉬란다.
그것으로 고3인 아들 녀석은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자신이 잘 있음을 보여준 것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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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귀농아낙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