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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 _해당되는 글 2건
2009.03.18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오랫동안 주저앉고 싶다. 
2009.01.09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빨리 옷을 벗어라!" 

 

귀농아낙의 산골편지--오랫동안 주저앉고 싶다.
+   [산골편지]   |  2009. 3. 1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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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8일

지난 24일에 서울에서 엄마와 네째 언니가 왔었다.
언니가 대상포진이라는 피부병때문에 고생을 한다는 소식을 그 전에 접했고 그것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다고 했다.
대상포진이 생기기 전에는 얼굴과 목에 열이 나고 그곳에 버즘, 화상입은 사람처럼 붉게 얼룩이 져 자주 애들 먹었었다.

그렇게 열이 나면 며칠을 잠을 못잤다.
사람이 피곤해도 잠을 잘 자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첫째 조건이 되는데 그 조건은 우선 팔자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두 가지 증상이 한꺼번에 왔고, 언니는 며칠을 날밤으로 새워야 했다.
조카는 엄마 병간호를 그렇게 지성으로 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내가 조카들을 이뻐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시켜 보면 더더욱 지엄마에게 잘 하는 조카를 업어주고 싶을 지경인 것은 사실이다.

일단 대상포진은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그렇게 독하다는 약을 먹고 우선 잠재울 수 있었다.
문제는 몇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열과 얼굴에 얼룩이 지고 가렵고 하는 것이었다.
이 증상은 내가 서울을 다니며 잘 봐왔기때문에 그 고통이 어떻다는 것도 잘 안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제안을 했다.
무조건 울진으로 오라고...
산골에 와서 솔숲에도 가고, 나무에게 말도 걸고, 맨발로 솔숲 걷기를 하고, 맑디 맑은 물을 먹고 , 맑은 공기를 마시자고 그러자고...

그러니까 자연에게 언니를 맡기고 싶었다.
누가 언니의 상태를 보고 이 말을 들으면 정신나간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며칠 내려와 있는다고 낫진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난 돌파리 기질이 있는지 몰라도 확신이 있었다.

당연히 언니는 말꼬리를 흐렸다.
내가 잘은 몰라도 언니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막내가 농사일로 바쁜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또 성당 일도 보고 있는데...
아들 세무도 돌봐주어야 하고,,,,
마침 엄마도 네째 언니네에 머물고 계시고...

언니 발목을 잡는 일들 투성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뜸을 오래 들였다.

이번에는 조카들과 내가 동시 공작을 폈다.
겁도 주고, 윽박도 지르고 해서 겨우 산골로 오게 되었다.

산골에 온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아니다,  서서히 내성이 생길 것이고, 그동안 독한 약을 많이 먹은 언니 몸의 독소와 노폐물을 배출시켜 주고, 소나무, 하늘, 물, 공기 등 자연은 인간보다 더 현명하게 언니를 치료할 것으로 난 믿었다.

일단 눈을 뜨면 운동을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우리 소나무 산을 돌았고, 나중에는 초보농사꾼이 까밧골이라는 임도를 처형과 가면 좋을 것같다고 제안하여 셋이서 4시간 거리를 맨발로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은 통고산 정상까지 맨발로 산행을 했다.
저녁에는 우리 산의 질좋은 황토로 문제의 부위인 얼굴, 목을 마사지했다.
그러다 여리디 여린 솔잎을 따서 야콘을 넣고 믹서기에 간 다음 얼굴과 목에 붙이기도 했다.
그 황토를 숨쉬는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지장수로 매일 환부를 씻도록 했다.

그것이 더 병을 악화시키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처음 그렇게 했을 때 역반응이 나올 수는 있지만 자연의 것을 계속 접하다 보면 그것이 서서히 제 기능을 잘 하리라 믿었다.
자연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난 확신했으니까.
돌파리가 사람잡는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니는 주방을 떠나질 않았다.
산골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어 진종일 도마 소리를 냈고, 저녁에 우리 부부가 야콘을 씻고 다듬고 하여 야콘즙을 만들면 동행하여 함께 일을 했다.
그게 화가 났지만 언니로서 그럴 수 있겠구나 했다.
말려도 안되어 나중에는 늦은 밤이나 이른 시간에 언니 몰래 일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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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8609.jpg">
(지장수로 얼굴과 목을 닦았던 그 흔적이 나를 지금 마음아프게 한다)

일하면서 언니의 중얼거리는 소리는 스스로 죽비를 두드리는듯했다.
"막내야, 이렇게 고생하는줄 , 이렇게 바빠 동동 걸음을 걷고 뛰어다니고 하는줄, 이 정도인줄 몰랐구나."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하고 앞으로 꿈도 있고 하는데 뭘 그러냐고 해도 핏줄로서의 아리함을 언니는 감추려 해도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중에 눈이 왔다.
겨우내 그렇게 비치지도 않던 눈이 왔다.
언니는 산골에서 눈도 보고 좋아했지만 운동때문에 내 맘은 급하기만 했다.
눈이 왔는데도 임도의 소나무 숲길을 가자고 했다.

집에만 있어도 좋다며 언니는 동생 생각하여 안간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씨도 안먹히는 얘기였다.

그러다 비도 왔고 날은 추웠다.
그렇게 비도 안오더니 왜 이 귀한 기간에는 비도 오는지....
그런 날이라고 예외는 없다.
비가 오는데도 운동을 가자고 했고 언니는 눈때와 마찬가지로 데크에서 운동을 해도 되니 쉬라고 했다.
물론 내가 힘들까봐 언니는 안간다고, 다녀왔다고도 했다.
내가 다 알지 그거 모르까봐.

우산쓰고 내가 먼저 나섰다.
알아서 하라고...
결국 내 등살에 언니도 우산을 쓰고 우린 그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내가 대상포진이나 얼굴에 열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을 이번 상태만큼은 보진 못했기때문에 산골에서 좋아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언니는 약을 병원에서 받아 왔고 먹어야 하는데 산골에 와서는 약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단다.
이 약을 끊어서 치료중인 것을 내성만 생기게 하고 재발 가능성만 높이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왜 안그렇겠는지...
속으로 걱정이 얼마나 되었을까...
난 그것도 모르고 매일 아침 언니 약먹었냐고 챙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언니도 점점 자연에 치료를 맡기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도 지팡이를 집고 아기처럼 아장아장 간신히 걸으셨는데 한 사흘 자갈 깔린 앞마당을 걸으시더니 지팡이 없이도 걸음을 걸으실 수 있게 되었다.
소화도 시원찮아 위로 가스가 올라왔었는데 아래로 나온다며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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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src="http://www.skyheart.co.kr/po/IMG_8610.jpg">
(훌라후프도 공기좋은 곳에서 한다며 ... 그랬었는데...)

언니는 서울로 올라가려고 기회를 보는듯했다.
내가 쐐기를 박았다.
이렇게 일찍 올라가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알아서 하라고...

언니의 문제는 우선 잠을 충분히 못잔다는 거다.
그래도 이곳의 공기가 너무 좋다며 창문을 열고, 데크에 나가 훌라후프도 돌리고 눈부신 햇살도 쐬고 기분 좋아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일찍 자야 하는데 책을 오랫동안 보았고, 기도도 오랫동안 하고 있는 것을 내가 문틈으로 확인할 때는 마음이 미어졌다.

서울의 아파트 침대에서 자다가 이렇게 바닥이 따뜻한 곳에 자니 참 좋다며 맨바닥에 누워 있기를 좋아했다.

드디어 서울가는 날을 스스로 정했고, 큰조카 세종이가 엄마랑 할머니를 모시러 온다고 했다.
엄마는 이곳에 더 계시게 하자고 초보농사꾼이 아무리 말해도 언니는 이 바쁜 사람들이 무슨 ... 말이라도 고맙다고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알았다며 고마운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나 안된다고 했다.

다음에 내려오면 그때 엄마를 며칠 계시게 하는 것은 몰라도 말도 꺼내지 말라고 일축했다.

세종이랑 새조카 며느리가 어제 왔다.
와서는 점심 먹자마자 이모부랑 밭으로 가서 작년에 썼던 말목을 차에 다 싣고, 고추밭에 깔았던 그 많은 부직포도 정리하고 싣고 답운재 밭으로 가서 내리고는 다시 땔감을 잘라서 한 차 싣고 왔다.

일단 저녁을 먹고 다시 야간작업에 들어갔다.
야콘을 선별하고, 다듬과 세척하는 일이다. 야콘즙을 만들기 위해...

난 새조카 며느리가 시이모집에 처음 왔는데 이 일을 시키면 안된다고 했고 초보농사꾼은 이제 가족이기때문에 무엇이든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더 친해질 수 있고 좋은 거지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하면 그게 남이지 내 식구이냐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계속 남으로 남아야 하지 내 집 사람과 섞이기 어렵다며 단호하다.

난 그의 마음을 잘 안다.

초보농사꾼은 처형과도 농담을 잘하며 재밌게 지냈다.
이런 저런 자녀 교육에 관해 언니가 이야기를 하면 그 말에 귀기울이고 실행에 바로 옮기곤 했다.
당연히 조카들도 자기 조카처럼, 처형들도 누나처럼 그렇게 대하기때문에 조카 며느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난 씨도 안먹히는 얘기만 했고 결국은 가장의 말대로 모두 달라들어 밤 10시부터 야콘 작업을 했다.

야콘 작업이 끝나고 야참을 먹으며 산골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드디어 내 핏줄이 가겠다고 한 날이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은 것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봄날씨처럼 따사로운 날이 못마땅해보기는 귀농생활 10년만에 첨이다.

울 언니랑 엄마계실 때, 주구장창 이런 날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니가 깰까봐 살금살금 나와 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 송이산 한켠으로 달려가 질좋고, 때깔좋은 황토를 봉투 가득 퍼담았다.
그리고 다시 집 바로 뒤켠으로 올라가 아주 어린 소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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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씻기려고 지장수를 만들었는데 다 쓰지도 못하고 갔다)


언니가 서울가서 이 소나무 숲에서 맡았던 냄새를 소나무 화분에서나마 맡으면 그 놈의 피부병에 쬐끔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다.
그리고 소나무를 캔 주위의 좋은 흙도 퍼담아 묶었다.

그리고 어린 소나무 가지를 가지치기 하여 신문지에 싸고 그것이 행여 가다가 마를까봐 비닐을 꼭꼭 쌌다.
서울 거실에서 펴놓고 소나무에서 나오는 좋은 성분을 쥐똥만큼이라도 얻으라고...

아침 먹고 성당가야 할 시간이 닥아올수록 내 발걸음은 바쁘기만 했다.
이제 되었다.
이렇게 준비하고도 혹여 언니가 잊고 갈까봐 데크로 올라가는 계단에 이 준비물을 죽 늘어 놓았다.
전리품처럼...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아침 준비를 하는언니를 호수밭으로 내몰았다.
공기가 너무 좋으니 오늘 호수밭이라도 올라갔다 와서 서울가라고...

언니가 아무 말없이 밭으로 올라간다.
난 아침 준비를 하러 들어가야 하나 언니의 모습이 분필만하게 보일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눈치도 없이 뭉클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동생네 집이라고 왔는데 야콘즙 일로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니 언니 맘을 아프게 했을 것이 또 아리했다.

미사를 다녀와 다시 산골에서 짐을 싸는 가족들...
내 핏줄들이 이제 가겠다고 짐을 싼다.
내가 거들어야 하지만 난 점심 먹은 설거지만 하고 있었다.

가슴팍이 뻐근한 것을 짓누르며 애궂은 그릇만 빡빡 문질러댔다.
엄마도 오늘 떠나는 것을 아시고 어제부터 안색이 안좋으셨다.
막내 딸...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라 엄마는 혹여 딸이 알아차릴까 표정을 몇 번이고 바꾸시려 애쓰셨다.

그렇게 오래 설거지를 해도 내가 거들어야 했다.
이제 핏줄들의 짐정리를 거든다.

"막내랑 아제 덕분에 너무 편하게 있다가 건강해져서 간다. 바쁜데 처형데리고 솔숲도 가고, 몸에 좋은 것도 잡아주고, 눈도 보고, 비도 보고 호강하다 간다..............."

그런 말 좀 안했으면 좋으련만 언니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 했다.
난 눈에 힘을 바짝 주었다.
새 조카며느리 앞이라 더더욱 애를 썼지만 주문빨이 잘 안먹혔다.

조카의 차는 서서히 떠났다.
조카도 발걸음이 무거운지 뭔가를 빠뜨리고 가는 사람처럼 느리게 느리게 , 차창으로 손을 내 흔들며 차는 그렇게 미끄러졌다.

난 그의 차를 따라갔다.
나도 조카를 흉내내어 천천히...
다리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까지 그렇게 걸었다.

드디어
다물었던 입이 터지며 울었다.
다리결은 휑했다.
핏줄의 그림자도 안남기도 휑했다.

한숨 자고 싶었지만 잘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 시원찮은 다리로 운동하다가 쉬는 의자를 보면 다시 왈칵거렸고,
언니를 지장수로 씻긴다고 마련한 지장수 항아리를 보고도 그랬다.
집에 들어오니 온천지에 엄마랑 언니의 흔적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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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시원찮은 발로 운동하다 쉬던 의자)

운동하다 벗어놓은 옷이며, 잠이 안와 책을 보던 스텐드며, 공기좋은 곳에서 훌라후프하라고 내다 준 것이며, 언니가 만들어 주고 간 음식들이며,,,,
난 정신나간 사람처럼 그것들을 내 눈에서 치웠다.

핏줄들의 흔적을 치우지 않으면 난 내 정신으로 오늘을 날 수가 없다는 것을 귀농하고 터득했다.

이럴 때 무슨 단어를 떠올릴까...
헤어짐", 슬픔?, 그리움?...

그보다는
삶의 모습에서 흔적이란 무엇인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난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딸 주현이가 나를 위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난 다시 마음이 추스려야 한다.
언니가 바쁜 아제를 위해 잎차를 끓여주던 곳에 언니를 흉내내어 잎차를 준비한다.

초보농사꾼은 내 마음을 먼저 알고 야콘즙 포장하러 벌써 가공실로 내려가고 없다.
주현이랑 마주앉아 차를 마셨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아리함을 잎차로 눌러본다.

내가 오늘 곧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을지 난 자신이 없다.
옛날 같았으면 약발이 받았는데 점점 연해지는 약발에 자신감을 잃는다.
이런 상태는 오래 갈 것같다.

"삶의 모습에서 흔적이란 무엇인가??"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빨리 옷을 벗어라!"
+   [산골편지]   |  2009. 1. 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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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을 베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뱃사공은 고기 잡는 그물을 치기 위해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강으로 갔다.
아들은 한쪽 뱃전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고, 뱃사공은 강 한가운데로 노를 저었다.

부지런히 노를 젓는 뱃사공의 얼굴에는 어느새 땀이 맺혔고 급기야는 땀이 줄 줄 흐를 정도가 되어 겉옷을 훌훌 벗었다.
그는 뱃전에 기대어 있는 아들이 무척 심심해하는 것 같아 말을 걸었다.

“무척 덥구나. 너도 어서 옷을 벗어라!”

아들은 옷을 벗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윗옷만 벗었다.
아버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냉큼 벗으라는데도!”

어쩔 수 없이 아들은 속옷만 남긴 채 겉옷을 전부 벗었다.
뱃사공은 다시 노를 저어 가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움직여 노를 젔던 뱃사공의 몸은 또 다시 온통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몸에 착 달라붙은 속옷마저 훌렁 벗어 던졌다.

“한겨울인데도 꽤나 덥구나, 더워!”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들은 살피지 않고 노만 저으면서 뱃사공은 아들에게 남은 옷마저 모두 벗으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쫌짝도 하지 않았다.

“빨리 옷을 벗어라, 이렇게 더운데 옷을 잔뜩 입고 있으면 되겠냐?”

“..........................”

아들의 대답이 없자 뱃사공능 그때서야 아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들은 뱃전에 기대 웅크리고 있었다.
뱃사공은 다시 큰 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뱃사공은 노를 놓고 아들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만 옆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아들이 그만 얼어 죽어 버린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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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도서관에 갔었다.
책을 읽는데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감기가 걸리려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리 신호가 오면 제일 먼저 머리가 반응을 한다.
지끈지끈...

그러다 보니 책내용도 머리에 잘 안들어 오고, 눈은 점점 감기고... 그러면서도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 빌린 책을 계속 보았다.
반은 머리에 들어 왔다 나가고 반은 아예 들어오지 않고...

그러다 정신이 화들짝...들게 하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이 글이었다.

자식이란 내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동안 신이 맡기신 보물을 잘 간수해야 하는 것...
그 간수라는 것이 의무와 책임,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머리로는 아는데 난 곧잘 그 본문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귀농 전에는 욕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로 소홀했을 것이며, 귀농 후에는 그저 낯선 이곳에 뿌리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 의무를 소홀히 했을 것이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말이 있다고 할 이유는 있다.
그러나 저러나 결론은 피해가지 못한다.

나에게 인연이 되어 온 아이들에게 사랑과 행복, 기쁨의 씨를 심어주어 싹을 틔우게 했어야 했지만 밥먹듯 그 의무를 소홀히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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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에서처럼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느라 아이들 입장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날이 차다.
마당에 나섰는데 겨울바람까지 등을 돌려 울적한 마음을 더 얼리고 있다.

바다는 하루에 70만번이나 파도를 쳐서 새로워진다고 하는데 난 몇 번이나 죽비로 내 등을 쳐야 새로워지려는지....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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