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햇살이 자글자글하던 초여름 무렵, 산골에 살구나무 한 그루 들였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소리인지 몰라도 살구나무 첨 봤습니다.
이젠 그의 목숨에 내 목숨을 겁니다.
혹여 목이 말라 죽는 것은 아닌지.
넓지도 않은 미간을 찌뿌리기까지 하며 걱정하는 척하지만 난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의 목마름을 잊습니다.
물론 핑계는 다 있습니다. 농사 일로 바쁘다고...
농사가 무슨 벼슬인지,
누구 위해 농사를 짓는지 하여간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지요.
안 바쁜 사람이 있는지.. 유치원생에게 물어봐도 거의 같은 대답일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의 목숨을 점검합니다.
뭣도 모르고 돌팔이가 점검해 봤댔자 죄다 오진이겠지만...
그의 목숨을 생각해 준답시고 처방한 것이 개똥입니다.
매일 개똥을 정성껏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난 어느 날 보니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돌팔이를 원망하는지 억센 가시만 저를 향해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처방한 개똥이 너무 독했던걸까’
‘가을이라 그런가’
‘속이 타서 목이 말라 저리 기가 죽은 것일까’
‘겨울잠 준비를 다른 나무들보다 먼저 하는지...’
이젠 고상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다 들먹입니다.
새 봄을 한번 맞이해 보면 결판날 일이나 그 안에 생명을 닫아걸까 그게 겁납니다.
이런 초라해지고 꾀죄죄한 살구나무를 며칠 봐서 인지 살구가 탱글탱글 열리는 환상은 벌써 물건너간지 오랩니다.
그런 환상만 갖고 나무를 들였다가 여러 나무 골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요.
시기가 절절치 못할 때 옮겨서 그럴 수 있고, 또 뿌리가 예민한 부분인데 뭣도 모르고 그저 가져가라고 했다고 신바람이 나서 앞뒤 안가리고 파재껴 와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또 물도 많이 주고 거름도 적당히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알고도 못한 그 부분은 제 불찰입니다.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은 있다고 전과자는 말합니다. 바빠서 그랬다고...
이제 그런 이유는 내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어설픈 처방이지만 나무 상태를 휘번뜩이며 관찰한 결과, 나의 처방전에는 물과 개똥 밖에 쓰여 있지 않습니다.
처음 살구나무를 들였을 때의 처방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팔이 아프도록 물도 열심히 들어다 부어주었고, 개똥도 나무 주위에 소복이 쌓아주었습니다.
이제는 봄만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봄이 되어 가시만 곧추세우고 있던 그 자리에 파리한 싹이 돋아나면 나도 파리하게 놀라 환호성을 지르겠지요.
여하튼 생명붙은 것을 산골로 들이는 일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가을이라 안그래도 해골복잡한데....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www.skyheart.co.kr 에서 보세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