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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1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딸도 자라고 엄마도 자라고... 
2009.06.03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점선뎐 1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딸도 자라고 엄마도 자라고...
+   [산골편지]   |  2010. 1. 11. 00:45  

그렇게 가물더니 비가 내린다.
여름끝에서부터 가을걷이까지 그렇게 애걸을 해도 깜깜 무소식이던 비가 아니었는지.


이제사 뭣도 모르고 내리는지 아니면 한 해를 잘 갈무리하라는 뜻에서 대지도 씻기고, 세상사에 찌들린 인간의 마음도 씻어주려는 깊은 뜻으로 내리는지 어디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 알 수 있는지.

다만, 안그래도 마음이 구죽죽한데 비까지 박자를 맞춰주니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실만 감지할 뿐이다.


2009년 11월 29일



밤늦도록 가방 하나 달랑 싸는데 무슨 이삿짐 싸는 폭은 된다.
수건, 치약, 칫솔, 비누, 작은 베개 하나, 컵, 휴지 등을 챙기는 것은 여행이나 서울에 잠깐 다녀올 때 챙기는 것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마음이 다르다.


내일이면 주현이가 병원을 간다.
이번에는 명색이 입원이다.


지난 해, 여름에 작은 수술로 물혹을 떼어 냈는데 이번에는 반대편에 다시 생겨 수술을 또 하게 된 것이다.

지난 번에는 비용은 비싸지만 간단한 시술로 하는 것을 택했는데 이번에는 예민하게 해야 하는 수술이라서 아예 전심마취를 하자고 하신다. 의사 선생님이...


나야 의학쪽에 상식이 없으니 당연히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서동권 선생님은 홈에도 가끔 오시는 분으로 산골가족을 잘 아시고, 따사로움을 간직하신 분이라 그 분의 말씀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내일 입원하기 위해 오늘 가방을 싸고 있다.
칫솔 하나 찾아 넣고 멍해 하고, 수건 하나 챙겨 넣고 물방울 하나 없는 주방을 닦고 또 닦는다.


정신의 반은 신생아 머리 위에 흔들거리는 동물 모빌처럼 공중을 흔들거리고, 정신의 반은 어여 가방을 챙기라고 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다.

내가 누구의 명령을 받을 처지가 아니나 내가 나에게 시키는 것은 거절 못하는 단점이 이번에는 많이 거슬린다.
다시 가방 챙기기에 집중한다.


이제 겨우 가방의 반은 채웠다.
하던 일을 놓고 이번에는 퍼질러 앉아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내가 융단폭격을 맞은 사람처럼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법, 어린 것을 전신마취하고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나 요즘처럼 이름도 못 들어본 병도 많고, 별의 별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일로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듯, 뼈없는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이 맞는지...

이 세상의 모든 병원의 병실마다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희비가 엇갈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건 명함도 못 내밀 일이 아닌지.

사람의 일이란 어디에 견주느냐에 따라 같은 일이라도 생사가 갈린다.

어린 것이 전신마취 한다고 한숨이라면 이제 막 태어나 세상의 공기를 몇 번 마신 신생아도 심장수술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것도 몇 번이나 엄마 젖 빨듯 수술하는 신생아도 있지 않은가.


또 몸에 칼을 댄다고 했는데 몸의 장기 일부를 잘라내고 떼우고, 남의 것을 갖다 붙이고 하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무거울 일이 아니다.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던 내 얼굴의 반쪽이 슬슬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쪽에서는 슬슬 미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요즘 늘상 입에서 오물거리는 말이 있다. 어린 아이 옹알이하듯...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고...


이런 일 쯤이야 생각하고 이보다 더한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하고 털려고 들면 이런 일은 쨉도 아니다.

마음의 숲에 이런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그까짓 이틀 입원하는 가방이야 쌀 것도 없다는 생각에 지퍼를 닫아 걸었다.

그리고 통창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는 자기 먼저 웃어보이는 달을 보며 그대로 따라 웃었다.
미친 여자처럼 미이라 같은 얼굴을 어찌어찌 움직거려 웃었다.


웃어서 행복할 것이라 굳게 믿으며...

그렇게 날이 샜다.


2009년 11월 30일


포항의 병원까지 가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주현이는 당일 수술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금식을 지키며 서둘렀다.
잠을 쫓으며 어제 늦도록 준비한 가방을 들고 나서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어제 가깟으로 물에 젖은 솜을 말렸건만 다시 마음이 젖어들려 한다.
바로 그때를 잘 경계해야 한다.


그런 주변 상황이 나를 바쳐주지 않아도 어제 다짐한  그 평안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
말이 그렇지 쉽지 않으나 그래야만 그대로 쭉 그 분위기가 내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난 믿는다.


포항에 도착하여 피검사, 초음파 검사, 심장검사, X-ray 촬영 등을 마치고 병실에서 대기를 했다.
주현이가 혹여 긴장할까봐 난 되지도 않는 농담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주현이가 더 내 안색을 챙긴다.
그새 내가 나이값을 못한 모양이다. 어린 주현이보다도...

드디어 주현이가 수술실로 들어간다.


그의 움직이는 침대를 따라가며
“주현아, 기도해라.”


그게 내가 나의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말 다 였다.

수술실로 사라진 주현이...


수술실 앞에 기다리는 보호자들 틈에 초보농사꾼과 내가 서있다.

전광판에는 ‘박주현--준비중“이라고 떠 있다.
이제 전신마취를 하겠지.


내 새끼 이름은 이 작고 째진 눈에 금방 들어온다.

한참을 문만 쳐다 보고 있다가 다시 전광판을 보니 내용이 바뀌었다.


“박주현--수술중”

간단한 수술이라 했기에 나름 후한 시간을 예상했는데도 그 시간을 훨씬 넘기고 있고 전광판에는 계속 “박주현 -- 수술중“이란 글이 내 눈을 맞추고 있다.

주현이보다 늦게 수술실로 들어간 여학생은 벌써 엄마의 품에 안겼는데 주현이는 소식이 없다.
점점 초조해졌고, 오른팔이 자꾸만 저리다.


초보농사꾼이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는다.

‘저 애는 부분 마취를 한걸꺼야’
‘안에서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야’.....


말주변 없는 남자가 마누라 진정시키느라 용을 쓰고 있다.

‘이보다 더한 병으로 수술실 앞에서 기다린다면 ...그보다야 기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내 안의 나에게 해댔다.

그건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건 진실이었다.


‘이보다 더한 병이라도 받아들여야지 인간이 별 수 있는가’말이다.

사람이 어찌 푹신한 평지만 걸을 수 있는가.


물웅덩이를 걸어야 하고, 언덕도 올라가야 하고, 내리막길도 내리달려야 한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걸을수록 쉽지 않은 길도 걸어야 한다.
울퉁불퉁거리는 길도 ...


그러다 보면 푹신한 오솔길도 나오고, 햇살 가득한 푸근한 길도 나온다.

그런데 자꾸만 수술실 앞에서 잠이 쏟아진다.


옆으로 몸을 뉘이고 싶을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

이제 수술실로 간지 2시간이 넘었다.
몸도 굳어지려 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잠은 쏟아져 앉아 있기도 힘이 드는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고 서동권 선생님이 우릴 부르신다.

가보니 이제 막 꺼낸 조직을 보여주신다.


생각보다 크기가 큰 것같다고 이제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꿰매면 되니 걱정말라는 말을 담배연기처럼 날려주시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신다.

이제 안심이다.


몸을 일으키려니 오른쪽으로 자꾸만 몸이 기울고 멍한 머리는 여전하다.
한참만에 전광판이 바뀌었다.

‘박주현--회복중’

이제 됐다.
다시 얼마를 기다렸을까 수술실 문이 열리고 ‘박주현 보호자분’이라는 말이 굳게 닫혀 있던 내 귀를 뚫고 들어와 앉는다.

용수철 튕겨나가듯 초보농사꾼과 난 몸을 일으켜 주현이 침대에 몸을 붙였다.


아이는 의식이 돌아와 있었고 조금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그게 고맙다.


병실로 돌아와 얼마 지나면 마취가 완전히 풀려 통증이 시작되련만 주현이는 한 마디 말도 없다.
그저 수술실에 들어가서의 일들을 말할 뿐이다.


속깊은 주현이는 엄마를 가르친다.
그러면서 딸도 자라고, 그만큼 엄마도 자란다.


제 침대 옆에 엄마더러 누우란다.
수술앞에서 기다릴 때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더니 그것이 계속 되었다.
감당이 안될 정도로 머리가 아프니 정신까지 흐느적거렸다.


침대도 좁디 좁더만 저나 편히 쉬어도 통증이 있을텐데 엄마더러 자꾸 자란다.

저녁까지 주현이는 금식을 했고, 나중에서야 초보농사꾼이 병원 근처에서 따끈한 죽을 사다 주었더니 사래 걸리지 않고 잘 먹는다.

이제 밤이다.


난 주현이 병실 간이침대에서 자기로 했고, 초보농사꾼은 나와 늦디 늦은 저녁을 먹고 찜질방으로 갔다.
연고없는 곳이라 이렇구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주현이와 난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2009년 12월 1일

병원의 아침을 무지 빠르다.
그 시간이 참 싫다.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간호사의 신발 끄는 소리가 귀에 자꾸만 달그락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

다시 서동권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퇴원을 했다.
집에 돌아오니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


아마도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떠났다 병원에서의 시간을 보내서일 것이다.
산골에 왔을 때 낯설음이 깊다는 것은 집 밖에서 마음의 부담이 컸었다는 뜻과도 통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의 걱정은 안하기로 맘먹었다.


생각이란 것은 단지  생각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각한 상황 그대로를 끌어당긴다고 믿으니 그쯤에서 걱정의 문을 닫아 걸었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할 일만 남았다.


그게 귀농


전과 귀농 후에 달라진 내 모습 중 하나다.
귀농 전같았으면 별 호들갑을 다 떨고, 세상 어머니 중 가장 속상한 어머니인양 온갖 얼굴연기를 다 했을 것이다.

교과서적인 말이라고 치부했던 것을 이제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고, 그 진실을 이제 훤히 꿰뚫고 있다.
그게 먹힌다는 것이 신통방통하다.


중국 속담에 “염라대왕이 삼경에 부르면 오경까지 살 수 없다”고 했다.
이건 목숨에 관한한 누구도 시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구도 언제, 어느 때 나를 태울 배가 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배꼽빠지도록 웃어야 한다.
그래야만 웃을 일이, 감사할 일이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에서!!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귀농아낙의 책이야기--점선뎐
+   [산골아낙의 책 이야기]   |  2009. 6. 3. 23:41  

((사진에서 초보농사꾼 담배갑을 보니 또 ... 조금이라도 줄이라고 사정을 해도 안되고...어머님이 끊으라고 협박을 해도 안되고...뭔 수를 서야할지... 왜 갑자기 담배이야기로 기분에 초를 치는지...나도 참))


 


전혀 다른 색깔의 삶을 경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내 스스로 일을 저지르던지, 아니면 간접 경험을 하던지...

이 책은 후자로서는 손색이 없는 책이다.


김점선 님에 대해 안 것은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였다.
우선 머리스타일과 표정, 그리고 옷이 놀라웠다.


저렇게 까치집 (본인이 까치집이라고 표현했듯이)을 하고 다니는 화가도 있구나, 표정은 영락없는 남자이고, 옷도 그렇게 꾸미지 않은 그런 모습...놀라웠다.

그러나 이내 화가니까, 예술가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좀더 가까이 간접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장영희 교수님의 책에서였다.
'축복'이라는 책은 그 안의 시와 장교수님의 글이 감각샘을 자극하고도 남았지만 그 옆에 삽화로 김점선 님의 그림이 들어간 것은 눈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 '축복'이라는 책을 보고 그림을 갖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강하게 느꼈을 정도였다.
하여간, 그렇게 간접 경험을 한 것으로도 벅찬데 도서실에서 본 '점선뎐'이라는 책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이미 이 세상분이 아니라는 점까지 가세를 하여 이 책을 빌려 가슴에 끌어안고 산골로 돌아왔다.

우선 책 날개에 적힌 작가소개를 하겠다.


<b>김점선</b>

1946년 개성에서 태어나 이화여대를 거쳐 홍익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1972년 제1회 앙데팡당 전에서 백남준, 이우환의 심사로 파리 비엔날레 출품 후보에 선정되며 등단하였다.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림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1987~88년 2년 연속 평론가협회가 선정한 미술 부문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로 선정되었다.
1983년 첫 전시회레를 연 뒤 20년 이상 개인전만 60여  차례 열었으며, 2002년부터 디지털 판화전도 개최했다.
작가는 작품 활동 외에도 KBS-TV '문화지대'의 진행자를 맡는 등 문화 전방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10cm 예술' '나는 성인용이야' '나 김점선' '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 '김점선 스타일' 그림동화 시리즈 '큰엄마' '어주의 말' '게사니' 등이 있다.




여기까지의 작가 소개로는 그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느끼는 그의 삶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색다른 세계였다.


프롤로그의 한 문장을 소개하겠다.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할 의사에게 한 말이다.

"이왕 배를 여는 데 왕창 잘라내주시오. 나는 늘 내 창자들이 쓸데없이 긴 게 불만이었고.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내장은 크로마뇽인과 다름없지 않고. 나는 나의 내장을 디자인하고 싶소. 십이지장에서 항문까지 직선으로 연결하고 나머지 창자들은 잘라서 버려주시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긴 창자 때문에 쓸데없이 섬유소를 먹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왔소. 이왕 배를 열 거면 나를 도와주시오."

이 문장 만으로도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감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서전 형식으로 쓰여졌고 그러다 보니 사진이 중간중간 차지하고 있다.
작가가 화가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말했다.
"내 빛나는 전생은 선인장이었다.
동물이 거의 없는 사막,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수백 년 된 무지 큰 선인장. 무수한 날카로운 가시를 빛살처럼 온몸에서 발산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는 선인장. 나는 그것이었다. 아주 천천히 자라면서 아주 오래오래 멈춰선 듯이 살아 있는, 심한 더위와 혹독한 추위를 비웃으면서 죽은 듯이 서 있는 선인장이었다. 한곳에 멈춰선 채 성장하기만 하는, 늘 같은 장소에서 태양을 바라보고, 늘 같은 그림자를 빙빙 돌리면서.... 나는 그 선인장이었었다. 식물로서의 기억이 현생을 지배한다"


그랬던 것같다.


사막의 오래된 선인장이었던 것 같다.
그의 삶이...

자기 색깔이 너무 분명해서 우리가 느끼기에는 좀 덜익은듯한 사람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덜익은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서 가장 투명한 모습으로 살다가 간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부러움이 있었다.

내 가치관대로, 누가 뭐래도 난 이런 색깔이야 하고 내 색이 발광하는대로 산다는 것...
그거 쉬운 일 아니다.


아니, 아주 어려운 , 내가 흉내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부러웠고, 책으로나마 이런 삶을 간접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하고, 행복해 했고, 따라하고 싶었다.
내 색깔을 그대로 발광하도록 두고 싶었다.

김점선...


이 대목이 또 나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세 명의 독신자가 한집에 모여 있는 것처럼 누가 정하지 않았는데도 각자가 해야 할 고유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단, 자기 담당이 아닌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예를 들어 남편이 긴 여행 중인 동안 고양이가 화분을 밀어서 떨어뜨렸다.
화분이 방 한가운데 떨어진 채 산산조각이 났다.
흙이 쏟아지고 식물의 뿌리가 드러났다.


그래도 아들과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식물을 기르거나 사들이거나 집안을 정리정돈하는 일은 우리 일이 아니다.
아들과 나느 아무리 집 안이 어질러져 있어도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잘 정돈해 놓아도 감탄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남편의 일이다.
<중략>


나는 대부분의 내방객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으로 대한다.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가고 싶은 데도 없는데 자꾸 누가 오겠다고 하고 어딜 가자고 한다.
그래서 나는 뚱한 채 전혀 집 안을 치우지 않은 상태에서, 내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손도 더러운 상태로 그냥 사람들과 얘기하는데 남편은 다르다......"

위의 글을 읽었을 때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아있는 생명을...'하며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다.
누가 다른 사람의 삶에 감내라 대추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때 '너나 잘하세요'하고 말하는 것이 아마 정답일 것이다.

자연 운운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다.
어떤 사람이 남의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 또한 그 사람의 삶의 방식, 가치관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다음 글에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렇지 손님이 왔는데 머리를 까치집을 하고 , 더러운 손으로 사람들을 대하다니...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세겨 생각해 면 이상할 것이 없다.

분명 작가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고, 가고 싶은 데도 없는 상태에서 어거지로 사람이 오고, 누군가와 함께 가게 되니 그럴 수 밖에...
누구나 그렇다.


속은 그렇게 궁시렁거리면서 겉으로 내색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난 주로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사람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면 자신의 삶의 방식대로 사는 것을 손가락질 해서는 안된다고...
그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이 주인공이다.
조언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읽는 내내 진솔한 표현에 난 겉에 흐르던 기름을 한겹 벗겨낸 기분이 들었다.
그 대표적인 대목 중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남편에 대한 대목이다.


"그는 그냥 음악이 좋아서 혼자서 다듬고 즐기다가 죽어버렸다.
그는 노래를 잘했다.


목소리가 금속성 있는 탁음이다.
일상적인 대화도 힘들게 느껴질 만큼 탁음이다............힘들게 쥐어짜야 겨우 소리가 나오는듯, 듣기에도 힘든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날 때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서른 가까이에 만났을 때 이미 그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
그러니 좋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말하는 데 비해 김청남이 말하면 하찮은 말도 아주 힘들게 뱉어내는 듯 들린다.
그래서 그의 일상을 숭배하게 되었다.


그의 비천함과 무식과 탁성과 무능력까지를 숭배하게 된 것이다.
그런 목소리의 그가 노래를 하면 나는 그 순간 죽어도 후회가 없다고 느낀다....그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그렇게 노래 불렀다. 감히 누가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무지렁이 몇 마리 모아놓고 거는 그렇게 노래 불렀다.
아무라도 서넛만 모이면 그렇게 혼신을 다해서 노래 불렀다.
그래도 그렇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우선 밥을 안먹고 속이 빈 상태에서 두 홉들이 소주 두 병은 목에 들이부어야 노래가 나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산화지 노래냐?
말 그래도 생명을 태운 거지.


소주 붓고 불 지르면서 그열기와 빛을 보고 지랄한 거지.
그런 데서 감동 안할 동물이 어디 있냐?
최소한의 단위로 만들어진 생명체, 예를 드면 짚신벌레나 아메바라도 감동할 것이다.
왜냐면 뻔하지 않은가?


그가 명예를 바라서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하냐?
돈을 바라서 예술의 전당에서 노래하냐?
아니면 스타성을 즐기려고 잠실운동장에서 노래하냐?


오직 거는 작업실 귀통이 나무의자에 앉아서 한두 명 청중을 놓고 카네기홀에 선 듯 몰을 태우는 것이다.
거기서 그의 노래를 듣던 자들이 행여나 그런 사실을 추측이라도 할 능력을 가진 자가 있기나 했을가.
다들 그냥 밥 먹고 나서 배부르니까 심심풀이 땅콩으로 청남이 노래나 듣자고 모인 것이다................"

난 얼마나 소리내어 웃었는지 모른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지 남편을 이따위로 표현하는 여자가 뭐가 대단하다고 난리냐고...

여기서는 대단하고 안하고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렇게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난 좋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남편에 대한 것이라 언행과 전혀 다른 표현을 하는 사람을 난 더 경멸한다.

그렇다고 하여 작가가 남편을 쉽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덜했냐 하고 묻는다면 누가 대답할 것인가.

자서전 형식을 빌렸지만 그런 류의 다른 책에 비해 분명 번뜩이는 매력이 있다.


대부분의 이런 류의 책이 어릴 때부터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전개하다 책장을 덮는 것과는 달리 그의 가치관, 삶의 방식, 그리고 인간관계,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 등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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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선 지음 | 시작 펴냄
화가 김점선이 글로 그려낸 자화상 각자의 삶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다! 자유롭고 파격적인 그림 세계만큼이나, 독립적인 인생의 길을 걸어온 화가 김점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 입학하여...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다간 사람으로서 그가 말하는 것 같다.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난 성격상 이 길을 갔다고...

나도 말하고 싶다.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남들이 다 묻어가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고 그 길이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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