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9일
오늘만큼은 눈이 오면 안된다.
바쁜 중에 몇 번이나 밖을 내다 보았다.
하늘은 내 초조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누가 봐도 금방 눈을 쏟아낼듯 눈을 잔뜩 모금고 있는 표정이다.
아마도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하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바람의 느낌도 예사롭지 못하다.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눈이 올 것같다며 초조한 내 마음을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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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울진분들 벙개하는 날이다.
전국 단위 벙개를 한번 하고 싶은 맘이야 오래 되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내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같다.
그러다 안되겠다 싶어 울진분들만이라도 벙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홈에서 요즘 활약하고 계시는 황루시아네 가족과 장현칠님네 부부가 오시기로 한 날이다.
눈이 오면 산골엔 겁나게 많이 쌓이니 오늘 만남도 수포로 돌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눈이 금방이라도 올 것처럼 내 눈치를 살핀다.
'오늘만은 참아다오............'
몇 번이나 싱크대에 매달려 화살기도를 했다.
처음 벙개에 재뿌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늘이 한 모양이다.
눈은 오지 않았으나 날은 무지 추웠다.
그러나 그쯤이야 감지덕지하다는 생각으로 택배발송준비를 부지런히 끝내고 청소를 하고 나니 4시가 넘었다.
장현칠님 부부와 황루시아 부부 모두 직장생활을 하니 6시가 넘어 퇴근하고 집에 들려 애들 데리고 오려면 7시는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메뉴는 오갈피 백숙...
일단 닭을 주문했다.
집에 키우는 닭을 주문하면 바로 잡아서 연락을 해준다.
그리고 차타고 10분 정도 거리로 닭을 찾으러 가는 일은 초보농사꾼이 맡아주었다.
닭백숙을 하고 7살 채영이가 먹도록 밑반찬 두어 가지 해놓고 준비를 하는데 전화는 많이 오고 맘은 급하고...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퇴근해서 오는 사람들 일찍 밥을 먹여야 하는데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주현이는 환영의 뜻으로 풍선을 불어 현관 앞 외등 앞에 걸었다.
지난번 프랑스 신부님들이 오셨을 때 풍선을 샀는데 몇 개 남아서 그걸로 썼다.
장현칠님 부부가 먼저 산골에 도착했다.
정현칠님은 지난 1월 1일 봉평해수욕장에서 있은 해돋이 미사때 와주었다.
산골가족 만난다고...
그때 인사를 했고 그의 부인 외경씨는 초면이다.
그런데 낯설지 않았고 왠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같았다.
집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7시가 넘어서 황루시아 가족이 도착했다.
읍에서 방학인데도 학교를 다니는 선우를 태우고...
다시 인사를 시작했다.
두 가족은 모두 초면...
홈에서 아주 익숙해져서 그런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이내 오래 묵은 포도주처럼 농담이 오가고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딩인 용선이는 어깨 부위를 다쳐서 못오는줄 알고 서운해 했는데 오게 되어 얼마나 반갑던지...
붕대를 감아 조금 불편해 했지만 채영이와 함께 주현이 누나 방에서 선우 형이랑 넷이서 노는 소리가 밖의 자지러지는 소리 못지 않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지면 클난다.
술은 이원무 신부님이 찬조해 주신 안동소주로 했다.
20도가 조금 넘는지라 부담이 없다나...
안동소주 총 6병에 1.8리터 들이 소주 패트병에 남아 있던 소주를 다 마셨다.
세 남자들 모두 서로 주거니 받거니 목으로 술 넘어가는 소리에 환하게 터뜨리는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추운 겨울밤에 열기를 더해주었다.
세 남자 중 한 명이라도 술을 마시지 못하면 마시는 사람도 못마시는 사람도 신경이 쓰일테지만 물만난 사람들처럼 술을 만나 즐거워 하는 세 남자들...
초보농사꾼 보다 모두 동생들이라 외아들인 초보농사꾼이 두 동생을 보는 눈빛도 따사롭다.
어깨를 다쳐 못오는줄 알았던 황루시아 아들 용선이가 와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안그래도 오고싶었다고 했는데 말이다.
장현칠님의 부인 외경씨랑 황루시아는 한끗발 차이...
그러니 그들 또한 동생뻘이라 여간 이쁘지 않았다.
장현칠님이 전날 술을 하고 노래방에서 솜씨를 뽐내다 그만 못이 잠겨 말을 별로 못하자 외경씨가 이쁜 입으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황루시아는 중간중간에 깔끔한 멘트로 분위기를 푸근하게 해주고...그 두 사람이 얼마나 이뻐보이던지...
7살 채영 공주는 오면서 차멀미를 했다며 양 미간을 찌뿌리더니 집에 들어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꺼운 옷을 벗어 던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복 패션으로 다큰 언니랑 오빠 틈바구니에서 공주티를 내며 오가는 동작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그렇게 웃고 노는 사이 날은 바뀌고 새벽이 되었다.
헤어지려는데 차 한잔을 따뜻하게 해야 한단다.
일단 상을 밀어 놓고 우린 차를 한 잔 나누었다.
구수한 차 한잔에 '인연'도 구수하게 가슴에 스며든다.
모두가 헤어질 시간,
초보농사꾼이 기념사진 찍는다며 폼을 잡으란다.
칼날같은 바람 사이에 서서 우린 '인연'의 날 기념 사진촬영을 했다.
(찍사가 시원찮아 멋진 얼굴들이 이리 된 점 정말 양해를 구한다.)
각자 차에 몸을 싣고 산골을 빠져 나가는 두 차량...
오늘 하루,,,
직장에서의 작은 피로라도 씻고 갔으면,,,,
살면서
'인연'이라는 단어를 한번이라도 떠올리는 날이었으면....
훗날 지금의 인연이 등시린 날 작은 손난로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고 화살기도를 하면서 차량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