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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권 선생님 _해당되는 글 1건
2010.01.11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딸도 자라고 엄마도 자라고... 

 

귀농아낙의 산골편지--딸도 자라고 엄마도 자라고...
+   [산골편지]   |  2010. 1. 11. 00:45  

그렇게 가물더니 비가 내린다.
여름끝에서부터 가을걷이까지 그렇게 애걸을 해도 깜깜 무소식이던 비가 아니었는지.


이제사 뭣도 모르고 내리는지 아니면 한 해를 잘 갈무리하라는 뜻에서 대지도 씻기고, 세상사에 찌들린 인간의 마음도 씻어주려는 깊은 뜻으로 내리는지 어디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 알 수 있는지.

다만, 안그래도 마음이 구죽죽한데 비까지 박자를 맞춰주니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바닥을 기고 있다는 사실만 감지할 뿐이다.


2009년 11월 29일



밤늦도록 가방 하나 달랑 싸는데 무슨 이삿짐 싸는 폭은 된다.
수건, 치약, 칫솔, 비누, 작은 베개 하나, 컵, 휴지 등을 챙기는 것은 여행이나 서울에 잠깐 다녀올 때 챙기는 것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마음이 다르다.


내일이면 주현이가 병원을 간다.
이번에는 명색이 입원이다.


지난 해, 여름에 작은 수술로 물혹을 떼어 냈는데 이번에는 반대편에 다시 생겨 수술을 또 하게 된 것이다.

지난 번에는 비용은 비싸지만 간단한 시술로 하는 것을 택했는데 이번에는 예민하게 해야 하는 수술이라서 아예 전심마취를 하자고 하신다. 의사 선생님이...


나야 의학쪽에 상식이 없으니 당연히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서동권 선생님은 홈에도 가끔 오시는 분으로 산골가족을 잘 아시고, 따사로움을 간직하신 분이라 그 분의 말씀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내일 입원하기 위해 오늘 가방을 싸고 있다.
칫솔 하나 찾아 넣고 멍해 하고, 수건 하나 챙겨 넣고 물방울 하나 없는 주방을 닦고 또 닦는다.


정신의 반은 신생아 머리 위에 흔들거리는 동물 모빌처럼 공중을 흔들거리고, 정신의 반은 어여 가방을 챙기라고 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다.

내가 누구의 명령을 받을 처지가 아니나 내가 나에게 시키는 것은 거절 못하는 단점이 이번에는 많이 거슬린다.
다시 가방 챙기기에 집중한다.


이제 겨우 가방의 반은 채웠다.
하던 일을 놓고 이번에는 퍼질러 앉아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내가 융단폭격을 맞은 사람처럼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법, 어린 것을 전신마취하고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나 요즘처럼 이름도 못 들어본 병도 많고, 별의 별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일로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듯, 뼈없는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이 맞는지...

이 세상의 모든 병원의 병실마다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희비가 엇갈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건 명함도 못 내밀 일이 아닌지.

사람의 일이란 어디에 견주느냐에 따라 같은 일이라도 생사가 갈린다.

어린 것이 전신마취 한다고 한숨이라면 이제 막 태어나 세상의 공기를 몇 번 마신 신생아도 심장수술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것도 몇 번이나 엄마 젖 빨듯 수술하는 신생아도 있지 않은가.


또 몸에 칼을 댄다고 했는데 몸의 장기 일부를 잘라내고 떼우고, 남의 것을 갖다 붙이고 하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무거울 일이 아니다.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던 내 얼굴의 반쪽이 슬슬 녹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쪽에서는 슬슬 미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요즘 늘상 입에서 오물거리는 말이 있다. 어린 아이 옹알이하듯...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고...


이런 일 쯤이야 생각하고 이보다 더한 고통중에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하고 털려고 들면 이런 일은 쨉도 아니다.

마음의 숲에 이런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그까짓 이틀 입원하는 가방이야 쌀 것도 없다는 생각에 지퍼를 닫아 걸었다.

그리고 통창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는 자기 먼저 웃어보이는 달을 보며 그대로 따라 웃었다.
미친 여자처럼 미이라 같은 얼굴을 어찌어찌 움직거려 웃었다.


웃어서 행복할 것이라 굳게 믿으며...

그렇게 날이 샜다.


2009년 11월 30일


포항의 병원까지 가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주현이는 당일 수술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금식을 지키며 서둘렀다.
잠을 쫓으며 어제 늦도록 준비한 가방을 들고 나서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어제 가깟으로 물에 젖은 솜을 말렸건만 다시 마음이 젖어들려 한다.
바로 그때를 잘 경계해야 한다.


그런 주변 상황이 나를 바쳐주지 않아도 어제 다짐한  그 평안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
말이 그렇지 쉽지 않으나 그래야만 그대로 쭉 그 분위기가 내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그것을 난 믿는다.


포항에 도착하여 피검사, 초음파 검사, 심장검사, X-ray 촬영 등을 마치고 병실에서 대기를 했다.
주현이가 혹여 긴장할까봐 난 되지도 않는 농담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주현이가 더 내 안색을 챙긴다.
그새 내가 나이값을 못한 모양이다. 어린 주현이보다도...

드디어 주현이가 수술실로 들어간다.


그의 움직이는 침대를 따라가며
“주현아, 기도해라.”


그게 내가 나의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말 다 였다.

수술실로 사라진 주현이...


수술실 앞에 기다리는 보호자들 틈에 초보농사꾼과 내가 서있다.

전광판에는 ‘박주현--준비중“이라고 떠 있다.
이제 전신마취를 하겠지.


내 새끼 이름은 이 작고 째진 눈에 금방 들어온다.

한참을 문만 쳐다 보고 있다가 다시 전광판을 보니 내용이 바뀌었다.


“박주현--수술중”

간단한 수술이라 했기에 나름 후한 시간을 예상했는데도 그 시간을 훨씬 넘기고 있고 전광판에는 계속 “박주현 -- 수술중“이란 글이 내 눈을 맞추고 있다.

주현이보다 늦게 수술실로 들어간 여학생은 벌써 엄마의 품에 안겼는데 주현이는 소식이 없다.
점점 초조해졌고, 오른팔이 자꾸만 저리다.


초보농사꾼이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는다.

‘저 애는 부분 마취를 한걸꺼야’
‘안에서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야’.....


말주변 없는 남자가 마누라 진정시키느라 용을 쓰고 있다.

‘이보다 더한 병으로 수술실 앞에서 기다린다면 ...그보다야 기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내 안의 나에게 해댔다.

그건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건 진실이었다.


‘이보다 더한 병이라도 받아들여야지 인간이 별 수 있는가’말이다.

사람이 어찌 푹신한 평지만 걸을 수 있는가.


물웅덩이를 걸어야 하고, 언덕도 올라가야 하고, 내리막길도 내리달려야 한다.
바닷가의 모래처럼 걸을수록 쉽지 않은 길도 걸어야 한다.
울퉁불퉁거리는 길도 ...


그러다 보면 푹신한 오솔길도 나오고, 햇살 가득한 푸근한 길도 나온다.

그런데 자꾸만 수술실 앞에서 잠이 쏟아진다.


옆으로 몸을 뉘이고 싶을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

이제 수술실로 간지 2시간이 넘었다.
몸도 굳어지려 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잠은 쏟아져 앉아 있기도 힘이 드는 순간, 수술실 문이 열리고 서동권 선생님이 우릴 부르신다.

가보니 이제 막 꺼낸 조직을 보여주신다.


생각보다 크기가 큰 것같다고 이제 되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꿰매면 되니 걱정말라는 말을 담배연기처럼 날려주시고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신다.

이제 안심이다.


몸을 일으키려니 오른쪽으로 자꾸만 몸이 기울고 멍한 머리는 여전하다.
한참만에 전광판이 바뀌었다.

‘박주현--회복중’

이제 됐다.
다시 얼마를 기다렸을까 수술실 문이 열리고 ‘박주현 보호자분’이라는 말이 굳게 닫혀 있던 내 귀를 뚫고 들어와 앉는다.

용수철 튕겨나가듯 초보농사꾼과 난 몸을 일으켜 주현이 침대에 몸을 붙였다.


아이는 의식이 돌아와 있었고 조금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그게 고맙다.


병실로 돌아와 얼마 지나면 마취가 완전히 풀려 통증이 시작되련만 주현이는 한 마디 말도 없다.
그저 수술실에 들어가서의 일들을 말할 뿐이다.


속깊은 주현이는 엄마를 가르친다.
그러면서 딸도 자라고, 그만큼 엄마도 자란다.


제 침대 옆에 엄마더러 누우란다.
수술앞에서 기다릴 때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더니 그것이 계속 되었다.
감당이 안될 정도로 머리가 아프니 정신까지 흐느적거렸다.


침대도 좁디 좁더만 저나 편히 쉬어도 통증이 있을텐데 엄마더러 자꾸 자란다.

저녁까지 주현이는 금식을 했고, 나중에서야 초보농사꾼이 병원 근처에서 따끈한 죽을 사다 주었더니 사래 걸리지 않고 잘 먹는다.

이제 밤이다.


난 주현이 병실 간이침대에서 자기로 했고, 초보농사꾼은 나와 늦디 늦은 저녁을 먹고 찜질방으로 갔다.
연고없는 곳이라 이렇구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주현이와 난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하룻밤을 보냈다.


2009년 12월 1일

병원의 아침을 무지 빠르다.
그 시간이 참 싫다.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간호사의 신발 끄는 소리가 귀에 자꾸만 달그락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

다시 서동권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퇴원을 했다.
집에 돌아오니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


아마도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떠났다 병원에서의 시간을 보내서일 것이다.
산골에 왔을 때 낯설음이 깊다는 것은 집 밖에서 마음의 부담이 컸었다는 뜻과도 통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의 걱정은 안하기로 맘먹었다.


생각이란 것은 단지  생각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각한 상황 그대로를 끌어당긴다고 믿으니 그쯤에서 걱정의 문을 닫아 걸었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할 일만 남았다.


그게 귀농


전과 귀농 후에 달라진 내 모습 중 하나다.
귀농 전같았으면 별 호들갑을 다 떨고, 세상 어머니 중 가장 속상한 어머니인양 온갖 얼굴연기를 다 했을 것이다.

교과서적인 말이라고 치부했던 것을 이제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고, 그 진실을 이제 훤히 꿰뚫고 있다.
그게 먹힌다는 것이 신통방통하다.


중국 속담에 “염라대왕이 삼경에 부르면 오경까지 살 수 없다”고 했다.
이건 목숨에 관한한 누구도 시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구도 언제, 어느 때 나를 태울 배가 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배꼽빠지도록 웃어야 한다.
그래야만 웃을 일이, 감사할 일이 생긴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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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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