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서기가 요즘들어 두려워지기도 한다.
알 것 다 아는 나이에 접어들어서인가 보다.
시어머님이 명절을 쇠시고 가셔야 하고, 아이들도 방학 때마다 서울의 박물관, 미술관, 영화, 뮤지컬 등을 보러다니기 때문에 모두 서울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난 마음의 결정을 못했다.
나머지 식구들은 당연히 엄마도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나를 붙들어 매는 무엇이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무슨 이유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 무엇...
무엇이었을까.
서울로 떠나는 날 아침, 전날 오셨던 손님들이 아침 식사후 먼저 출발하실 때도 그냥 남을까를 내 머리에게 물었다.
가슴에 물어야 하는 일을 머리에 물은 것...
머리는 단순하여 가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가슴에게 물었더라면 뭐라 했을까...
말 장난이 아니고 가슴에 물으면 잘 생각해 보라고 했을 거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길나서는 두려움이었던 거다.
대인기피증이 아니고 길을 나섰다 돌아와서의 뒷감당의 문제 말이다.
서울가면 핏줄을 만난다.
내 엄마도 만나고, 좋아하는 언니들도 만나고... 그런데 짧은 만남 끝에 남는 그 아리함을 감당할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그럴 상황을 안만들고 싶은 그 이유가 정확하다.
무인도나 다름 없는 이 연고도 없는 울진...
정붙여 살만하면 사람이 한번씩 뿌리채 뒤흔들어 놓아 그 알량하게 박혀 있던 허연 뿌리가 휘~하고 뽑혀 나기 일쑤였다.
그런 앓이를 견디며 행복을 찾았던 세월...
핏줄을 보고 돌아서 오는 그 걸음걸음이 어떤 고통을 동반하는지 알기에 난 아예 길을 나서기가 어려운 것이다.
작은 이유때문에 큰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한다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난 나서기가 두려울 뿐이다.
그렇게 걸음을 떼고 서울에 갔었다.
어머님을 모셔다 드리고 홈에서 만난 인연을 만나고 그리고 다음 날 핏줄을 만났다.
잠깐의 만남이었다.
울진에는 비가 오고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 사고가 많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핏줄을 더 봐야 하는데 서둘러 산골로 향했다.
그렇게 톨게이트로 진입하고서야 아리함이 꾸물거리기 시작했다.
산골엔 나보다 먼저 비가 도착해 나를 맞아준다.
역시 내 도반들밖에 없다.
산골에 도착하니 나무는 다 타고 집은 썰렁하다.
서울에서 주섬주섬 싸주신 짐을 풀었다.
언니, 어머님 그리고 홈에서 만난 분들이 싸주신 사랑의 물건들...
거실에 또 죽 펴놓았다.
그것이 차라리 아리함을 보자기로 덮는 효과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가는데 들어 오는 물건...
헉...
숨이 턱하니 막힐듯...
그건 요강이다.
늙으면 오줌도 자주 마렵다는 친정 엄마의 말씀이 생각나 다리가 시원찮아지신 어머님이 오시면 요강을 꺼내 놓아 드린다.
어머니 머리맡에...
그러면 어머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며느리 손이 가기 전에 요강을 부셔 놓으신다.(여기서 부신다함은 씻어 놓는다는 말...^^)
어머님이 서울로 가시는 날 아침에도 일찍 요강을 내다 씻어 두고 가신 것이다.
흔적...
사람의 흔적...
씻으려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다.
나중에 씻자 하고는 짐을 정리하려는데 아이스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어머님이 산골에 손님오면 반찬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고 어머님 단골 생선아저씨에게 생선을 서둘러 사셔서 우리 차에 실어 주셨다.
세 종류의 생선들이 하얀 박스 안에 조신히 앉아 있다.
생선을 한 번에 먹기 좋도록 비닐 팩에 넣는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막내라 그런지... 나이 헛먹었다.
큰언니의 전화를 받자 명랑표로 버로 위장을 한 내 목소리가 나를 더 슬프게 한다.
큰언니네 집에 다니러 오신 친정 엄마가 막내딸이 너무 갑자기 다녀가서 멍해 하신다고...
엄마 바꿔 드릴테니 또 온다고 안심시켜 드리라고..
난 정녕 길을 나서지 말았어야 옳았다....</font>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