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우리집은 마을 이장님이 마이크 부여잡고 하소연하는 '전달사항'이 전달되지 않는 먼 골짜기에 살고 있어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책읽느라고, 꼴난 글 좀 쓴다고, 고추 꼭지 딴다고 늦도록 꼼지락 거리다 자다 보니 해가 똥구멍을 치받아야 일어나는 날이 솔찮은 나로서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이라도 도시인들에게는 이른 시간이지만 산골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벌써 6시만 되도 "박반장"하고 전화들을 하신다.
일단 늦게까지 야콘작업을 하고 잔 우리들은 혼수상태로 전화를 받는다.
결국 이장님의 전달사항은 박반장 몫이다.
다행히 귀농 10년차가 지나도록 단 한번도 그 스피커 알람소리(?)를 듣지 못했으니 감사할 일이다.
오늘은 뜬금 없이 그 생각에 이르자, 초보농사꾼이 이 터를 귀농지로 점찍은 것이 나를 반려자로 점찍은 것 다음으로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참에 한번 물어볼 생각이다.
내가 예를 들어도 나랑 견주는 예를 들었으니 답이야 빤하다.
"무슨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귀농하잘 때 나더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더니 당신이 까먹는 거야?"
"오늘 당신이 야콘씻는 일을 무리하더니... 결국은... 쯔쯔, 일찍 자는 게 낫것네."
"안그래도 가끔 혈압이 높다더니 혈압 한번 재봐."
.... 그 중 하나다.
난 이 집터가 좋다.
국도에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으면서도 완전 산골 모습 그대로 이다.
이곳은 독가촌이면서도 조금만 내려오면 이웃의 할아버지댁이 보인다.
움푹 들어간 곳에 우리집만 위치해 있으니 여간 좋은 위치가 아니다.
또 이웃집이랑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아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자든, 안하고 자든, 숟가락짝이 몇 개든 참견할 사람 없으니 좋다.
내가 필요하면 몇 발자욱 발품만 팔면 이웃을 보러 갈 수 있으니 아쉬울 것이란 없다.
손님들이 와서 너 죽고 나 살기로 악을 쓰고 놀아도 시끄럽다고 할 사람은 없다.
다만 새들에게, 노루에게 주위 자연 도반에게 미안해서 그렇지...
내가 침묵하고 묵상하고 싶을 때, 바로 그 버전으로 돌입하면 그곳이 바로 피정의 집이고 절간이다.
내가 좋다고 믿는 곳이 바로 명당이다.
남이 명당이라고 해서 들뜨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남의 말에 솔깃한 것이라 그럴 것이다.
또 집 구조 중에 뭐가 나쁘다던데... 하고 계속 생각하게 되면 거기에 매이게 된다.
세상이 복잡하다 보니 내 말, 즉, 내 확신에 살지 못하고 남의 말에 의지해서 산다.
내 의지는 없고, 남의 의지, 남의 입김에 휩쓸려 살아간다.
그러나 명당이고 뭐고 내가 좋으면 거기가 천국부지다.
내 좋아하는 기가 흘러넘치면 어떤 곳도 다 명당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거 풍수가들이 들으면 무식한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영국의 시인인 진 잉겔로가 쓴 시 중 이런 시가 있다.
"기쁨을 집으로 데리고 가라.
그리고 당신 마음에 기쁨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자라날 시간을 주고 아껴 주어라.
그러면 기쁨이 당신에게 찾아와 노래를 부러 줄 것이다.
당신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신성한 시간인 새벽에 잡초를 뽑고 있을 때,
만족스러운 느낌이 조용히 찾아온다.
기쁨은 우리가 신에게 드리는 기도다.
귀농하기 위해 이 터를 살 때도 우린 그냥 우리 눈에 뒤집히도록 좋은 위치라는 생각에 바로 계약을 했고, 일부 이삿짐을 처음 들여오는 날에도 아무 날잡아 성모님상만 앞세우고 들어왔다.
내 마음이 어디로 가 있느냐에 따라 거기에 천국과 지옥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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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