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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6   산골편지-- 깊은 산중에서도 외롭지 않은 이유 

 

산골편지-- 깊은 산중에서도 외롭지 않은 이유
+   [산골편지]   |  2008. 11. 1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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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2일

<font color="#0E73A2">불영계곡의 단풍이 자리저지더니 이제는 조금씩 눈에 띄게 혈색이 안좋아졌다.
얼마 전부터 된서리가 몇 차례 오더니 그럴 때마다 그들의 화려함도 조금씩 을먹어 그 색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거다.

사람도 된서리 한번 맞고 나면 앓고 일어나 사람처럼 몰골이 형편없어지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자연의 이피를 닮아가는 인생사...

붉다 못해 검게 보이던 단풍나무...
그 머리 꼭대기부터 서리를 맞았음인지 그곳은 드라이 플라워처럼 건조하고 그 희생양 아래의 잎새들은 건재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숲에 귀를 기울였다.
숲이 아주 요란하다.

마른 잎 떨어지는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맑은 것으로 보아 그 건조함이 절정에 이르는 모양이다.
그 소리가 어찌나 맑던지 내 영혼도 말라 부서질 것만 같다.
혼자 숲길을 걸으면 그렇게 이방인에게 숲은 말을 걸어온다.

낯가림도 없고 사람 차별도 없고 타향에서 온 사람이라도 경계하는 눈빛도 없다.
사람이 자연의 1%만 닮는다면 천국이 따로 있겠는지...

제 발 아래로 아래로 잎을 떨구어 발등을 단단히 덮으니까 겨울에 그 많은 눈이 온몸을 짓눌러도 동상걸리지 않는 모양이다.
낙옆이 제 발등을 다 덮고 나면 나무는 맨 몸으로 겨울을 날 것이고, 나 또한 그 곂 산중에서 나무를 흉내내며 겨울을 날 것이다.</font>

*************************************

산골에 낯선 사람이든 지인이든 오면 꼭 묻는 말 중에 하나가 이 깊은 산중에서 외롭지 않느냐는 거다.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친구는 귀농하고 어느 교육에서 만났다.
어찌나 착하고 맑던지,,, 또 말끝에 흘리는 충청도 사투리는 그를 내 마음에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우연인지 나와 동갑이었기에 갑장이라는 칭호로 서천과 울진에 멀고 먼 거리를 두고 살아도 우린 늘 마음에 서로를 담고 살았다.

김사업을 크게 하는 친구라서 늘 산골에서 반찬없을 때 먹으라고 김떨어질까봐 앞서서 김을 보내주곤 했다.
나 역시 농산물이 나오면 갑장에게 보내주곤 했다.
멀쩡한 것을 보내주면 굼벵이 먹고, 부러진 것을 보내지 않고 멀쩡한 것을 보냈다고 싫은 소리를 하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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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린 소꼽친구 이상으로 우정을 쌓아갔다.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김을 넉넉히 보낼테니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도 나누어 주고 산골가족들도 손님들과 먹으라고...
나 바쁜데 전화 붙들고 있으면 안된다고 용건만 말하고 끊는다.

전화를 해도 밤에 하는 친구다.
낮에 일하느라 바쁘다고...

택배를 찾아와 보니 박스가 엄청 컸다.
이 바쁜 성수기에 나에게 이렇게 신경쓰려면 .. 난 다 안다. 바쁜 손이 이런 일을 하려면 얼마나 발을 동동거려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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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그러나 갑장이랑 나랑은 그렇지가 않다.
늘 내 눈 안에 있는듯 함께 있다. 만난지 몇 년 되었어도...

갑장아,,,

잘 받았어.
늘 산골에 마음 써주고 고마워.
자기가 바라는대로 독거 노인분들에게 전할께...

우린 서로 만나기가 쉽지 않지.
갑장은 겨울이 성수기이고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가 바쁘고 말이야.
그러니 서로 얼굴보기 힘들지만  우리 새해에는 얼굴 한번 보자.
얼굴 본지 몇 년일까...

갑장아,
감기조심하고 바쁜 사업이지만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리고 보고싶다.

***************************************

지난 주에 성당에 갔을 때, 미사가 끝나고 마당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황루시아가 손을 잡아 끈다.
황루시아는 우리 홈에 오는 채영 공주의 엄마이다.
그 남편이 내가 귀농하고 얼마 안되어 정말 똥오줌 못가리고 힘들게 농사일을 시작할 때 바람처럼 연락도 없이 요셉 형님과 나타나 힘들게 하루 종일 농사 일을 도와주고 말없이 돌아간 사람이다.

그때의 그 장면, 그때의 그 감동은 지금은 꽁치 젖갈처럼 진하고 깊게 맛이 남아 있다.
그런 루시아가 일찍부터 우리 홈에 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가면서도 부끄럽고, 쑥스러워 성당에서 봐도 그 말을 못하고 몇 년을 지낸 거다.

그러면서 고춧가루를 주문한다고 전화를 하면서 말을 해보니 그렇게 산골가족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였다.
얼마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그때부터 자매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오늘 내 손을 잡아 끈 것이다.

그가 이끄는대로 가보니 그의 차에서 큰 뭉치를 꺼내준다.
내가 싫은 소리할까봐 먼저 입을 연다.

"언니, 이거 죽변항에는 흐드러졌어. 정말이야. 아주 흔한 거야. 알았지?"

생선인 것같았다.
내 차에 싣고 집으로 와서 다듬으려고 비닐팩도 다섯 장 정도 미리 꺼내 놓고 싱크대에 있는 설거지도 다 끝내고 생선을 다듬으려고 비닐을 열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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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살아..."

"내가 못살아..."

연신 이 말을 싱크대에 달라 붙어 연방 해대니 거실에 있던 초보농사꾼이 왜그러냐며 달려온다.
말을 안하고 비닐을 까보였더니 말없이 돌아간다.
초보농사꾼은 왜 내가 그렇게 그 말만 되풀이 하는지를 다 안다.

황루시아는 직장맘이다.
아들이 초딩이고 채영이가 6살이다.
그러니 얼마나 바쁘겠는지...

집에 오면 화장지우고 자기도 바쁠텐데 어린 애들이랑 낮근무, 밤근무가 바뀌는 남편 뒷바라랑, 그 와중에 손빨래까지 하는 알뜰하고 야무진 엄마가 무슨 시간이 있다고 내 생선을 다 손질하여 한번 먹을 분량으로 팩에 넣어서 고등어랑 오징어를 보낸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한지..
난 생선을 다듬으려고 준비한 것들을 제자리에 집어 넣으며 생각했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나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하고 말이다.

얼마 전에도 쑥스럽게 성당 마당에서 가방을 건내주던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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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기 집에 왔을 때 들고 왔던 가방은 책이 안들어 가는 작은 가방이었다며 언니는 책을 넣고 다니니 이만한 것이 필요할 거라 그냥 샀다고...
안비싼 거라고...
내가 한소리 할까봐 먼저 막 말을 늘어놓는 이쁜 루시아...

루시아야!

몇날 며칠 야콘을 캐느라 반찬 없을 때 고등어랑 무 넣고 조림을 해먹었어.
그 반찬만 많이 먹었어.
등푸른 고등어를 보며 나도 누구에겐가 이런 푸르름을 준 적이 있는가를 돌아보았지...

부끄럽더라구.
나보다 어린 루시아가 내가 길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어.
그래 함께 가자.
그래서 서로의 등불이 되어 주고 잣대가 되어 주면 좋겠지.
난 자신이 없지만 노력해보려구.
그러면서 나도 많이 크겠지...

기도 안에서 늘 함께 살자꾸나.
고마워.

******************************************************************

그렇게 루시아에게 생선을 받아서 달길님네에 들렸다.
들려서 가라는 전화를 받았기에...

달길님을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 우린 달길님네서  사과를 마시고 가려고 일어서니 그때서야 쫓아와서 우리차 트렁크에 커다란 무엇을 두 개나 실어준다.

그게 용건이었던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초보농사꾼에게 혹시 당신이 필요하다고 했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No다.

그럼 그렇지.
달길님은 그런 사람이다.
우리집 어디에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집 공사 중에 무엇을 덜했는데 비올 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공사한 것 중에 무엇의 뚜껑을 해닫아야 하는지를 초보농사꾼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고,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맨홀 뚜껑이란다.
두 개의 맨홀 뚜껑인데 속은 나무로 동그랗게 맨홀에 딱 들어맞게 파였고 겉은 썩지 말라고 스텐레스로 마감을 야무지게 한 것이다.
물론 기성품이 아니고 만든 것이다.

그것 두 개를 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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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0E73A2"> 트렁크에 얌전히 앉아 있는 뚜껑...</font>


그것을 싣고 오는데 내 부러져 나간 손가락의 의수를 싣고 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손...
우리 몸의 어느 부분인들 불필요하고 덜 필요한 곳이 있을까마는 제일 많이 쓰는 손이 그리되었을 때 누가 딱 맞는 의수를 만들어 실어준 그런 기분 말이다.

이것 하나가 아니라서 그런다.
집의 기초 공사뿐만 아니고 장독대, 물공사, 창고 앞 하수 공사,,,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 산골의 티도 안나는 공사를 그는 말없이, 따뜻한 손길로 다듬고, 만들어 주고를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정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준 사람이다.

산골에서 진종일 일하면서 기껏 말하는 것이 몇 마디 없다.
작은 소리로 초보농사꾼에게 형님,,,하면서 자근자근 말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

초보농사꾼이 집 앞의 맨홀에 뚜껑을 닫아 놓았다.
딱 들어 앉아 있는 뚜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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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의 마음에 그렇게 딱 들어 앉은 적이 있는지...
어쩌다 조금만 무엇을 해도 생생내기 급급한 나는 아니었는지...(아니긴 뭘 아니겠는가.)
행동보다는 입이 앞서서 작동하여 일보다 말이 더 큰 역할을 한 적이 얼마인지...

달길님...

직장다니면서 일일이 산골에 신경을 써주셔서 늘 고마워요.
뚜껑을 싣고 오면서 참 많이 생각했네요.
비가 오면 산골의 어디 어디가 걱정이라며 전화하고, 눈이 많이 와도....

산골에 오셨을 때 초보농사꾼과 두런두런 공사를 상의하는 모습이 제일 따뜻했어요.
외아들이라 형제가 없는 초보농사꾼이라 그런지  나는 그 형님 소리가 참 좋더라구요.

산골은 추워요.
달길도 춥겠지요.
달길님 마음처럼 늘 따뜻하게 지내시고 가을 갈무리 잘 하시길 바래요.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산골에 낯선 사람이든 지인이든 오면 꼭 묻는 말 중에 하나가 이 깊은 산중에서 외롭지 않느냐는 거다.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내 입에서 대답이 왜그렇게 나오는지는 이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위에 열거한 일들 뿐이 아니다.
상상할 수 없는 모습과 마음과 색깔로 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은행나무를 심고 싶다는 말에 부산에서 울진으로 한밤중에 은행나무를 싣고 오신 분, 초보농사꾼 작업화와 아이들 영화 CD를 보내주는 분, 옷이랑 양말, 털신을 보내주시는 분, 내가 이쁜 편지지와 문구류를 좋아한다고 산골아이들과 쓰라고  한 박스 최신 문구류를 보내주신 분, 반찬에, 밭에서 일하고 내려오면 참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나 그러지 못하니 내려와서 쉽게 칼국수 끓여 먹으라며 언니처럼 칼국스를 싸보내주신 분 , 과일, 인형, 수해때 쓰라고 자루며 라면, 물까지 보내주신 분, 내가 어린시절 삼립빵을 그리워 한다고 그 빵을 한 박스 택배로 보내주신 분, 농사일이 고되다고 몸보신 하라고 얼린 고기를 보내주는 분, 또 무엇보다 매일 홈에 안부인사를 전해주며 형제, 자매처럼 따뜻한 위로 노동으로 힘든 몸으 피로를 풀어주시는 분들.......

내 나쁜 머리로 열거도 다 안된다.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용어를 사용할 때 부정적인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무어냐 하면
'내가 무슨 복이 있다고...'

그런데 난 이 용어를 이렇게 긍정적일 때 사용한다.
'내가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관심 가운데에 있는지...'

'이래도 되는지...'라는 말을 어둔 밤에 별을 보며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이런 생활 속에서 살면서 힘들고, 외롭다니...

내 스스로를 정화하고, 묵상하기 위한 외로움은 필수지만 누군가로부터의 어떤 관계로부터의 외로움이란 있을 새가 없다.
그러니 난 귀농에 성공한 것이고 더 나아가 제2의 이 삶이 없었다면 살아 생전에 맛볼 수 없는 현장에서 나는 서있는 거다.

이제 마당에 나가려고 한다.
달을 보며, 조금씩 그들과 나를 비추어 보려고 한다.
은은한 달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하늘마음농장 -- www.skyhe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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