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일
이번에 울진성당의 주임신부님으로 오신 분은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이신 이영길 가롤로 신부님이시다.
프랑스에서 무지 오래 사목을 하시고 오신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오래 프랑스생활을 하셔서 조금 한국정서에는 낯설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도 사실 잠깐 했었다.
그러나 신부님은 그런 나의 쓸데없는 걱정을 한방에 날려버리신분이고 이제는 다른 생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뭐냐 하며는...
사람이 자기가 오래 살다온 아니, 생활하다온 곳의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때의 생각을 말할 때도 많고, 습관이나 특별했던 일들이 사람은 많이 겪기때문에 시키지않아도 지금의 이야기를 설명하기위해서라도 그전에 있었던 곳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많다.
나 역시 귀농 전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처럼...
귀농전에 살았던 서울이 지금 울진에서 산 기간보다 월등히 길기때문이고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학교를 나오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였으니 말하지않을수는 없다.
그런데 신부님은 프랑스 얘기를 하시는 것을 전혀 못들었다.
재작년에 부임하신 것으로 아는데 지금껏 한번도 프랑스얘기를 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렇다고 보면 일부러 안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깊은 뜻이 있으신 것으로 알기에 그것 하나만으로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한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검소하신 것은 말할수가 없다.
그런 생각으로 지내는중에 산골소년이 지엄마에게 신부님은 꼭 자상하신 아버지같고 따뜻하고...한참 자랑을 늘어놓더니 거기에 나를 언급하더라는 거다.
내가 거기에 왜 등장했을까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아내의 말을 기다렸다.
아빠에게는 느낄 수 없는 자상함과 따뜻함이 묻어나온다나 뭐라나....
나도 자상하고 따뜻한데... ㅎㅎ
표현을 잘 못하는 거...그게 화근이다.
아내도 자주 그런 말을 하지만 남자가 일일이 말로 해야하는지...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실 자상하고 인자해 보이는 얼굴상은 아니다.
아들 놈 표현으로는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서 더러는 범접하기 어렵다나 뭐라나...말은 잘한다.
귀농하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가진 결과 상태(?)가 많이 좋아졌는데도 그러니 귀농 전에 어린 애들이 아빠를 얼마나 어려운 사람으로 알았을까...
아내는 아이들과 나랑의 관계가 참 부드러워지고 사춘기자식들과 대화가 술술 되는 것만으로도 귀농에 성공한 거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보고 더 분발하라는 뜻으로 나는 안다.
하여간 아들 선우는 신부님을 정말 좋아하고 바라보면서 자신의 거울로 삼는 눈치다.
주현이가 워낙 말수가 적으니 알수가 없다.
그러던중 아내가 그런 말을 한다.
우리 신부님이 공지영 작가가 쓴 <수도원기행>에 나오는 그 신부님이라는 것이다.
그래?
나도 그 책을 몇년전에 읽었는데 ...하고 책을 찾았다.
우리는 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가야지 궁금한 것은 못참는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이 디게 급한거란다. 아내가.
하여간 그 책을 책꽂이마다 찾아 다시 보니 정말 맞다.
작가가 <아르정탱(Argentan)가는 길>이라는 제목 바로 전에 쓴 글이 눈에 들어온다.
"" ...........이제 숙소에 도착하면 수첩을 열고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이신 이영길 신부님께 전화를 드려야 했다.
이름도 처음 들었고 본 적도 없는, 하다못해 고향도 다르고 아마 만나보면 기차관도 다를 게 틀림없는-- 왜냐하면 그분의 목소리는 매우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으로 드렸기 때문이다. 첫 전화에서 내 소개를 하자 이 신부님은 물으셨던 것이다. 아이들 엄마가 그리 오래 집 비워도 돼요? 게다가 그분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안동 출신이시기까지 하다--그런데 나를 아르정탱의 수도원으로 데려다 주시겠다는 이영길 샤를르 신부님...""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때 책을 읽을 때는 프랑스의 어느 한국 신부님이 안내를 하셨구나 하고 말았다.
아내도, 이 책을 읽은 선우도 그랬다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는데 선우에게 아내가 그 얘기를 한 모양이다.
선우는 나보다 더 신기해하고, 특별한 일로 알고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주 흥분된 목소리로 우리 신부님이 바로 책 속의 그 신부님이라는 것이 놀랍다고 말한다.
아마도 자기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신부님 얘기를 책에서 보니 아주 새로웠고 감동이엇던 것 같았다.
선우는 그렇게 신부님을 보며 자신의 영적 성장을 잘 챙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존경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굉장히 큰 복이라는 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신부님께 다시 한번 감사한다.
그리고 이 길다란 글을 쓰면서 내심 하고 싶은 말은 나도 카리스마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움의 카리스마, 자상함의 카리스마 말이다.
왠지 그것은 처음 농사지으려고 막 산골로 내려왔을 때 보다도 힘든 일인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초보농사꾼 박찬득(하늘마음농장--www.skyheart.co.kr)
(위의 사진들은 지난 9월에 산골에 오셔서 송이를 처음으로 채취해 보신다는 신부님과 수녀님과 남 루시아 자매님과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