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아티크 라히미는 1962년 아프가니스탄의 지성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1985년에 프랑스로 망명하여 살고 있는 시나리오 작가이다.
<흙과 재>는 아프간 사람들의 전통과 역사, 현재, 전쟁의 상처 등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한 굴레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어쩌면 소설이기보다는 한 가정 구성원의 마음 구석 구석을 예리한 pen으로 단순하게 파헤친 일기와도 같다.
먼지투성이에 찌들대로 찌든 옷을 입은 한 노인이 전쟁으로 인해 귀가 먼 어린 손자를 데리고 탄광으로 가는 트럭을 기다리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탄광에는 아들이 일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마을이 소련의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그들 뿐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트럭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의 일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소설의 전체가 다 설명된다. 그런데도 한 역사를 모두 볼 수 있게 하는 작가의 묘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소련군의 폭격으로 아내가 죽고, 목욕탕에서 폭격을 맞은 며느리는 벌거벗은 채 불구덩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다 봐야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한 노인
이 책에서는 2인칭 단수인 '너'를 주어로 하는 문장 형식으로 되어 있어 등장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표현이 단순하면서도 뼛 속으로 스미는 효과를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노인의 아니, 아프간의 고통을 단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나온다.
"네가 기도를 올리든 올리지 않든, 분명한 진실은 신께서 조금도 네게 관심을 두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딱 한순간만이라도 네 생각을 하셨더라면, 네 쓰라린 심정을 돌아보셨다면....! 슬프게도 신께서는 당신의 피조물들을 버리셨다......"
유대인 학살 때 그들이 부르짖었던 '신은 있는가'라는 물음이 생각났다.
소설이면서도 소설이라는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가슴 오랫 동안 아프간 비극이 남아있는 이 작품은 많은 여운을 남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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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통해, 책을 통해 아프간 소식을 그렇게도 많이 접했어도 그저 지구 어느 한 쪽에서 전쟁이 났구나하는 습관화된 생각 뿐이었다.
도시에서야 '그렇구나'하는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산골에 와서도 그런 못된 습관은 계속되니 자주 속을 들여다볼 수 밖에...
이 소설을 읽고나서는 그런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또 하나는 소설 중간에 미르차 카디르라는 가게 주인이 등장한다.
그 사람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 한 문장 나온다.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이미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
과연 난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준 적이 있는가.
힘든 상황에 있는 이에게 그런 눈길은 큰 힘이 되는데 언제 그런 자선을 베푼 적이 있는가.
위의 문장은 살아가면서 자주 되새김질해봐야 하는 소리없는 울림이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한두 시간만 집중하면 읽을 수 있는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마음 속의 스며듬은 몹시 긴 그런 소설이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소설을 읽지 않고 있다.
책에도 사이클이 있는지 그저 스토리전개대로 감정이 끌려가는 것 같아 소설을 읽지 않고 있다. 이 시기도 지나면 언제였었나 하며 소설에 빠져들 날이 있으리...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읽는 내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담담한데 읽는 나는 소리없는 흐느낌으로 몇 번씩 읽는 것을 중단하고 마당에 서야 했던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감사하는 그런 밤이다.
2002년 3월에 산골 오두막에서 (www.skyheart.co.kr--하늘마음농장)
흙과 재(동문선현대신서 ) 상세보기
아티크 라히미 지음 | 동문선 펴냄
아프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 황망한 풍경 속에 바짝 마른 강과 그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널목지기가 지키고 있는 건널목 초소,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 세상을 생각하는 상인, 슬픔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