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가끔씩 보여주고 감추는 사진이 있다.
애들이 아주 어려서의 사진이다.
내가 그 사진을 보면 찢는다고 달라고 하면 아내는 잠깐 보여주고 감추느라 한바탕 실강이를 벌리며 웃는다.
사진 속의 모습은 볼수록 나를 돌아보게 하는 사진이다;
선우, 주현이가 한 다섯 살, 세 살 정도 되었을까.
내 앞에서 두 놈이 부동자세로 서있는데 복장이 자다나온 복장이다.
그리고 내 손 하나는 뒤로 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검은 봉다리가 들려져 있는 사진이다.
그 봉다리에는 아이스크림이 늘 들려져 있었다고 아내는 기억하고 있다.
그 사진은 그냥 보면 별 특이사항이 없어보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옛이야기처럼 두고 두고 떠내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
직장에서 소장이라는 완장을 하나 채워주니 정말 정신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할수록 가정을 여유있게 보고 가족을 대할수 있는 시간은 반대로 줄어들었다.
저녁에는 잦은 회식으로 술을 했고, 늦은 귀가(아내 표현으로는 아주 이른 귀가란다. 새벽 2시)를 하면 애들 얼굴 볼 시간이 없었다. 자니깐.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술을 마셔서 차를 회사에 두고 왔으니 총알택시(지금처럼 대리운전이 없었다)를 타고 출근하느라 더 일찍 일어나 나갔다. 애들이 깨기 전에 달아났다.
그러니까 정말 애들 얼굴을 제대로 보는 때는 주말밖에 없었고, 그나마 이런 저런 결혼,회갑, 기타 행사 등에도 쫓아다녀야 했으니 뭐 별로 애들과 보낸 시간은 참으로 알량했다.
그게 아쉬운 생활이라는 것을 그 당시에도 느꼈지만 삶은 그것을 오래 고민하도록 한가하게 사람을 두지않았다.
나에게 욕심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
일단 조직에서 맡긴 일은 칼같이 해야 한다는 그것 말이다.
누구나 조직에 몸담은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일을 칼같이 한다.
그러나 정도차이는 많았던 것같다.
하여간 그렇게 늦은 귀가를 하면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자는 애들을 깨웠다.
애들은 아빠를 어려워 하던 시절이다 보니 그저 아빠가 깨우니까 일어났던 것 같았고 아내는 자는 애들 깨운다며 말을 했지만 그렇게라도 아빠 얼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한두번 잔다고 깨우지 말라고 하다가 이내 애들을 깨우곤 했다.
아내 말이 그렇게 깨우면 애들을 안아주고 자는데 깨워서 졸리지? 라던지 그런 애정어린 멘트를 해야 하는데 겨우 한다 소리가 “애로사항 없나?” 였다고...
정말 내가 그랬던 것같다. 애들을 어떻게 예뻐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렇게 내가 애로사항 없냐고 하면 선우는 신병처럼 빳빳이 서서 “애로사항 없습니다“를 외쳤고, 주현이는 어려 그냥 오빠 행동만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자다깨서.
아내가 지금도 놀린다.
아니 자는 놈들 깨워 애로사항 없냐고 물으면 다른 건 고사하고 바로 그 깨우는 게 바로 애로사항이지 뭐냐고... 하며 웃는다.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는 정말 속상했고 자는 애 깨우는 내가 야속했단다.
그랬을 것같다.
아내가 아이들과 나 사이를 좁혀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었던 것을 귀농하고 알았다.
그러니 뒤집어 말하면 귀농하지 않았다면 아내의 그 노고(?)를 전혀 모르고 빛나는(?) 완장을 차고 무엇이 삶을 빛나게 하는지도 모르고 아침, 저녁으로 총알택시랑 씨름하며 살았을 것이다.
요즘 애들과 내 모습은 이렇게 되었다.
서울에서 사진 속 어린시절의 모습대로 컸더라면 사춘기 때는 대화도 없이 각자의 방에서 생활하는 애들이 되었을 것이다. 도시의 대부분의 가정이 그런 것처럼 .
그런데 귀농하고는 그렇지 않다.
선우가 고등학생이라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난다.
지엄마가 점된다고 짜라고 하면 아프다고 실강이를 벌이기에 이번에는 주현이랑 내가 합세를 했다.
아들 여드름을 짜주는데 선우가 아빠는 엄마처럼 요령있게 짜지 않고 힘으로 짓누른다며 악을 쓴다.
“야 임마, 그러니까 니 엄마가 짜준다고 할 때 잘 짜. 안그러면 계속 아빠가 짜준다.”
“동네 사람들, 아빠가 아들 잡아요~~~~ 아, 아, 알았어요. 엄마랑 짤께요.”
한바탕 온가족이 여드름을 짜며 놀았다.(?)
정말 내가 눌러 짜긴 짰는가 보다. 선우 얼굴에 벌건 꽃이 뒤덮었다.
녀석.
10시가 넘었지만 밖에 나가 돌복숭아 나뭇가지를 끊어왔다.
돌복숭아 나무와 잎을 끓여 그 물로 피부를 씻어내면 이런저런 피부질환에 좋다.
아토피에도 그렇게 하면 좋다.
돌복숭아 나무를 끊어다가 전지가위로 잘게 썰어 물에 끓여 구멍난 채반에 건더기는 걸려내고 그 물을 수건으로 적신 다음 아들 얼굴에 덮어주었다.
귀농하고 이제는 아들 얼굴의 점까지 들여다 보게 되었으니 서울생활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아들 얼굴 공사(?)를 위해 온 신경을 동원했더니 아까 먹은 쏘주가 확 깬다.
(이 글은 지난 10월에 써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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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주동자 초보농사꾼 박찬득